효자 태풍 덕에 신나는 우중 산행
태풍주의보, 중부지방에 최고 200mm까지 내린다던 비는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면서 그 세력이 약해져 걱정을 덜어 준다. 가랑비 내리는 오산삼거리 Bus정류장에서 남쪽으로 도로를 가로질러 옥수수와 콩밭 사이로 난 넓은 길을 따라 걷는다. 유별나게 눈에 띄는 아름드리 참나무, 좁은 산길을 따라 오른다.
산성에 올라서니 조금 전까지 가파른 오르막과는 달리 넓은 평지가 나온다. 어느 시대인지는 모르지만 산성 안에는 집터와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주위에는 성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고 담쟁이넝쿨에 쌓인 잣나무 숲이 꽉 들어 차 있다.
산성을 내려서면서 연이어 만나는 철탑 능선을 가득 덮어 버린 칡넝쿨을 헤쳐가며 걷는다. 빗물을 흥건히 품고 있는 풀잎을 가르고 가다 보니 물을 만난 물고기 같다. 옷은 금방 젖어 물에 빠진 것처럼 옷에서 물이 줄줄 흐른다. 포장도로가 시야에 들어온다.
작고개에 내려선다. 백석면과 주내면 을 잇는 7번 군도 상에 있는 작고개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면서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커다란 토마토 두개로 배를 든든히 채워 주고 호명산을 향하여 갈 길을 재촉한다. 철탑과 방카가 지키고 있는 작은 봉우리에 선다. 파헤쳐 놓고 철탑을 세운 전망이 좋은 능선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며 발아래 펼쳐진 백석면의 농촌 마을이 평화롭게 자리 잡고 있어 한 폭에 그림 같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 일반등산로를 따라 억새가 뒤덮인 호명산 정상에 선다. 양주군 백석면과 주내면 경계 상에 있는 420m 높이에 산으로 썬산악회에 표지기가 나무에 부착되어 있다. 떡갈나무 숲에 쌓여 조망이 시원치 않다. 떡갈나무 숲을 따라 내려서는 가파른 내리막길 뒤에 짧은 오르막에 작은 봉에 올라서면서 한상철씨가 가리키는 작은 바위는 호랑이 눈을 닮았고 호명산 정상은 머리 닮았다고 한다.
미끄러운 길을 한발 한발씩 조심하며 내려서고 솔잎이 깔려 양탄자 위를 걷는 것 같은 편안한 길이 이어지면서 짧은 오르막길엔 도장나무열매와 야생화 까치수염이 줄 지여 꽃을 피우고 있다. 한여름 강한 햇볕을 막아 줄 긴 터널숲길도 나타난다. 한 송이 어여쁜 원추리꽃과 만나자 이별에 순간을 맞는다.
백석면 복지리와 장흥면 부곡리와 송추로 이어지는 11번 군도 상에 포장도로로 고갯마루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약수터가 있어 물 한 모금으로 다리 힘을 얻고 접근 금지가 부착되어 있는 철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른다. 잠시 오던 길을 되돌아보니 봉과 봉 사이로 불곡산이 우뚝 솟아 시야에 들어온다. 33도가 넘는 무더위와 강한 햇볕이 바위에 반사되면서 그 열기에 녹초가 된 채 올랐던 불곡산이 구름 사이에서 잠깐 얼굴을 드려 낸다.
15평쯤 되는 넓이에 공터가 있는 한강봉에 선다. 한강봉은 백석면에 있는 476m에 산으로 삼각점과 썬산악회에서 나무에 부착한 표지기가 봉우리를 지키고 있다. 멋진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전시회를 펼치고 있는 정상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며 준비해 온 김밥으로 허기를 메우고 한강봉을 내려서면서 하늘을 가린나무들로 빽빽이 들어찬 숲길로 이어진다. 한북정맥 능선에는 백두대간 능선에서 항상 같이하던 산죽을 볼 수가 없다.
송추로 내려설 수 있는 십자로 안부를 지난다. 부드러운 능선이 이어진다. 이런 길 같으면 하루종일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안개가 밀려오고 바람은 바락바락 악을 쓴다. 힘 빠진 태풍이지만 15시쯤 황해도에 상륙한다는 예보로 보아 지금쯤 인천 앞 바다를 통과하는 것 같다. 좌우로 급사면이지만 오르막길은 평탄하다.
헬기장이 있는 챌봉에 선다. 장흥면과 백석면 경계 상에 있는 516m에 산으로 우리의 순수한 이름을 두고 외래어를 써 가며 챌봉이라고 했을까? 부르게 된 유래는 무엇일까? 사태 지역인 고개를 지난다. 장흥면에 3번 군도 상에 부곡리에서 백석면 11번 군도 상에 홍복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이다. 조그만 봉 하나를 넘으니 한북정맥 능선 상에 이동식 화장실을 만난다. 다시 작은 공터가 있는 고개를 지난다. “그리움 보고싶은 마음! 정맥을 따라가면서 그대와 가고싶은 山” 부산에 준과 희가 남기고 간 주홍색 리본이 길동무가 되어준다.
능선 상에 넓고 평탄하게 터를 정리해 놓은 곳에 도착한다. 전방을 보니 시설물에 보인다. 시설물을 지나 오른쪽 길로 내려서서 시설물로 진입하는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가로질러 다시 숲길로 들어서면서 잘 익은 산딸기를 만난다. 지난해 백두대간 찻갓재에 도착하면서 만난 산 딸기밭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던 때도 7월이었다.
공원묘지를 만나 멋진 소나무 밑에서 잠시 다리쉼을 한다. 묘지 사이사이로 내려서면서 길음동 천주교 묘지 관리 사무소를 통과하여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걷는다. 오른쪽으로 하얀 개망초꽃이 길가를 메우고 있다. 멀리 안개 속으로 오봉이 손에 잡힐 듯하다.
울대고개에 도착한다. 고양시와 의정부를 잇는 39번국도 상에 있는 울대고개를 도착하며 빗방울이 굵어진다. 의정부를 향하는 교회선 열차가 지나간다. 고갯마루 식당에서 따듯한 손칼국수 한 그릇은 오늘에 피로를 말끔히 풀어 주고 마지막 한 구간을 남겨놓은 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울대고개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