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문화 상품의 시대이다. 돈 5000원 정도이면, 2시간 정도는 충분히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문화 상품의 정점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애니메이션 일 것이다. 왜냐하면, 애니메이션은 파급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화는 코흘리개 어린아이들이나 읽는 것으로 치부하여 무시를 하던 가운데- 어렸을 때 만화를 보고 있으면 공부나 하라며 혼나던 기억은 누구한테나 있을 것이다- 일본이나 미국은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끌어올렸다. 지금은 그 누구도 어린아이들이나 보는 것이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물론 커다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일본 대중 문화 개방이후로 그런 관심은 더욱 커졌다. 많은 애니메이션 관련 사이트를 보면,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청소년들이 굉장히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 상영으로 끝나지 않는다. 출판만화, TV시리즈, 극장용애니메이션, 비디오, 가이드북(포토북), 캐릭터상품, 컴퓨터게임, CD롬의 형태로 나타나면서 엄청난 고부가가치를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을 우리가 인식하기 시작하였을때는 이미 미국과 일본은 저만치 달려갔다.
어린아이들은 미키마우스와 포켓몬스터와 같은 캐릭터를 매우 좋아한다. 이것이 너무 심해서 최근에는 사회 문제화된 적도 있었다. 치밀한 상업주의적인 전략이 애니메이션에 계산되어 있다. 애니메이션 작품이 성공을 하여 캐릭터 상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피카츄나 토이스토리처럼 캐릭터 산업 자체를 겨냥한 애니메이션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이 점에서 애니메이션이 단순한 동화와 신화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철저한 상업주의적 계산에 의해 생산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애니메이션에 보다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철학과 사상이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녹아져있기 때문이다. 사실, 철학과 사상이 없는 만화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이 점에서 우리는 무비판적으로 외국의 애니메이션을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애니메이션속에 녹아있는 사상과 가치, 더 나아가 세계관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숨겨진 코드를 발견해보는 것은 매우 유익한 작업이 될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감성중심의 시대에서 자칫하면 동화와 캐릭터에 숨겨져있는 상업주의적, 제국주의적 의도를 놓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치명적인 일이 될 것이다. 이에 필자는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속에 숨어있는 코드를 해독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분석이 용이하지만은 않다. 필자가 애니메이션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조심스러운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기능적인 이해와 예술적인 이해가 매우 필요로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일반 시청자의 관점에서 모니터링을 한 것을 분석할 것이며, 관련된 문헌 및 언론매체기사를 참고하여 분석을 할 것이다.
2. 미국과 일본의 만화애니메이션
미국과 일본의 만화영화계는 두 거장인 월트디즈니와 미야자키 하야오에 의해 대표될 수 있다.
1925년 월트 디즈니(Walt Disney)에 의해 창설된 월트 디즈니사는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대표적인 만화왕국으로 현재까지 군림하고 있다. 월트 디즈니 픽쳐스(Walt Disney Pictures), 헐리우드 픽쳐스(Hollywood Pictures)등의 영화사도 거느리고 있으며 브에나 비스타(Vuena Vista)라는 자체 독점 영화 배급망을 통해 전세계에 디즈니 영화를 직배하고 있다.
디즈니의 만화영화는 첫 장편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를 시작으로 하여 <피노키오>, <판타지아>, <밤비>, <신테렐라>, <피터팬>등 수많은 장편애니메이션을 제작하였다. 그 후 디즈니의 제2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90년 <인어공주>를 필두로 하여 더욱 발달된 기술력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미녀와 야수>, <알라딘>,<라이온킹>,
<헤라클레스>등에 이어 최근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토이스토리2>까지 디즈니의 신화는 계속되고 있다. 셀애니메이션에서 컴퓨터를 활용한 그래픽 애니메이션의 영역으로 무한 확장하고 있다.
일본애니메이션은 이미 우리와 너무나도 친숙해져있다. 어린시절 <아톰>, <은하철도 999>, <미래소년 코난>, <캔디캔디>를 보지 않은 2,30대의 성인이 있을까? 최근에 디즈니만화의 권선징악형의 뻔한 스토리에 식상을 한 관객들이 일본 만화의 색다른 맛에 감동(?)을 받고 있다. <원령공주>나 <신세기 에반겔리온>, <짱구는 못말려>, <드레곤볼>, <슬램덩크>등 의 열풍은 이미 영화나 비디오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일본 문화가 개방이 되면 가장 많은 타격을 받을 부분으로 예상하고 있다.
3. 디즈니 만화의 특징.
첫째, 사실적인 묘사와 탄탄한 극의 구성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예술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렸다. - 디즈니의 첫 장편인 <백설공주>는 그 전까지의 만화가 웃음에만 치중했던 반면 백설공주의 역경과 고난을 묘사하여 눈물을 흘리게 한 첫 만화영화이다. 그리고 이 작품이 치밀한 기획력과 두터운 인력과 자본에 의해서 생산되었다는 것은 코흘리개도 다 아는 사실이다.
둘째, 극중 캐릭터를 여러 각도로 묘사해서 평면적이지 않은 입체적인 캐릭터로 제작하였다.-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가 가진 난폭하고 거친 야성이 여주인공 벨의 관심과 사랑으로 인해 따뜻한 인간미가 드러나는 과정이 현실감있게 묘사되었다.
셋째, 디즈니의 모든 작품들은 신화나 민담, 전래동화를 바탕으로 하여 디즈니식으로 창작되었다. - <노틀담의 꼽추>에서 주인공 콰지모도는 말도 더듬고 귀도 들리지 않는 어두운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디즈니의 만화에서는 의사소통에 별 무리가 없고 다소 유머감각도 있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인어공주>에서 주인공 에리얼도 원작과는 다르게 왕자와의 사랑을 이루게 된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라이언 킹>역시 원작 햄릿의 인물과 인간관계를 차용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넷째, 디즈니의 모든 만화는 권선징악적인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신데렐라>의 주인공 신데렐라가 유리구두를 신고 왕자의 품에 안기고, <라이언 킹>의 심바도 결국은 왕좌에 오르게 된다.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없이 볼 수 있는 가족영화를 표방하고 있는 디즈니로서는 당연한 결말이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도 공주는 왕자에 의해 구원받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디즈니의 작품들이 선과 악의 명확한 경계를 그어 놓고 선의 승리만 부각시킬뿐 인물들이 왜 선한 주인공이고 악당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세계관 분석에서 다시 다루기로 한다.
다섯째, 디즈니 만화는 화면채색을 일본의 원색과는 달리, 눈에 편한 색을 사용한다. 또한 1초에 24에서 36프레임을 사용하기 때문에 동작이 매우 부드럽고 자연스러우며 사실적이다.
여섯째, 선녹음 후작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사실성이 잘 전달된다. 즉, 입모양과 말소리가 일치하는 것이다. 미국의 자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4. 미국 애니메이션에 숨어있는 세계관
첫째, 성과 사랑에 있어 가부장적이며 보수적인 가치관을 내세우고 있다. - <백설공주>나 <신데렐라>의 여주인공들은 모두 아름다운 외모에 착한 심성으로 인내심을 갖고 모든 어려운 상황을 참고 견디다 결국 백마탄 왕자님에 의해 발탁되어 그 동안의 고생을 보상받는다. <인어공주>의 에리얼이나 <미녀와 야수>의 벨은 그 이전의 여주인공들인 백설공주나 신데렐라보다는 급변하는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향상이나 페미니스트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의식한 듯 제법 적극적이고 모험심을 발휘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결국에는 남성에 의해 보호받고 구원받는 다는 점에서 이전의 나약하고 수동적인 여주인공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에리얼은 왕자가 먼저 키스해야만 마법에서 풀릴 수 있었으며, <알라딘>의 자스민 공주는 알라딘이 감옥에 갇혔을때도 그를 구하기 보다는 마냥 울기에 여념이 없다. <포카혼타스>의 영웅적인 주인공 포카혼타스도 백인남성 스미스가 그녀의 아버지을 대신해 총을 맞아 줌으로서 가장 큰 희생의 미덕을 넘겨주고 말았다. 남편의 성공이 곧 아내의 행복이고 아들의 성공이 어머니의 행복이고 여성은 상냥하고 공손하며 참을성이 많아야 하고 남을 보살피는 것이 미덕이란 것이다.
보수적인 가치관의 또다른 측면 - <미녀와 야수>에서 보면 야수는 원래 멋진 외모를 가진 왕자였다가 불쌍한 노파로 변장한 마녀를 무시한 죄로 마법에 걸려 추한 야수가 된다. 사람에게 있어 진정 중요한 것은 외모보다는 진실한 마음과 착한 심성이라는 주제설정과는 달리 왕자는 결국 마법에서 풀려 예전의 멋진 외모를 되찾게 된다.-물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만화를 본 수많은 사람들중 외모가 변변치 못한 어린이들, 또는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자신의 자랑스럽지 못한 외모가 혹시 자신의 죄로 인해 벌을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을까?
조 형은 대중매체의 힘을 빌어 널리 유포된 성역할 이데올로기는 계속 재생산됨으로써 남성 지배를 유지하고 여성의 억압을 지속시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이정아는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포카혼타스를 분석한 결과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표출되고 있는 양상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 여성에게 사랑은 세계의 중심이며, 여성은 남성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이다. 둘째, 여성이 남성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지위나 능력이 아니라,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여성 이미지는 천사와 악녀 두가지로 구분되며,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벗어난 여성은 반드시 '벌'을 받게 된다. 넷째, 여성이 그나마 능동적으로 관계할 수 있는 남성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을 지니고 았다. 다섯째, 여성의 계층상승은 남성의 '미적' 기준에 의해 보상받는다. 여섯째, 4편의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들은 모두 선인이며,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다. 이 결과로 알 수 있는 것은 디즈니 만화 영화가 현 사회를 단순히 반영하는 차원을 넘어 여성을 상업화 하는 경우에는 그 사회의 남성 지배이데올로기를 온존시킬 뿐만 아니라 더욱 강화/왜곡시킨다는 것이다."
둘째, 인종차별적인 가치관이 드러나고 있다. 디즈니 만화에 등장하는 케릭터의 경우 주인공이든 악당이든 대부분이 백인이며 미국사회의 일정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흑인이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신화나 전래동화에서 대부분의 이야기 테마를 차용하는 한계에서 오는 문제점일 수도 있지만 아랍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알라딘>이나 영웅적인 인디안 처녀의 실화를 다룬 <포카혼타스>와 같이 유색인종이 등장하는 경우만 간혹 있을 뿐이다. 그리고 최근 개봉한 <타잔>이나 <포카혼타스>에서 백인 우월주의는 쉽게 관찰되어진다. 디즈니 만화에 등장하는 대개의 아름다운 여주인공들은 눈처럼 하얀 피부에 파란눈, 아름다운 금발머리의 소유자이고 남자주인공들도 우람한 체격에 높은 콧대를 지닌 코카서스 인종들이다.
셋째, 국가와 사회, 가족의 소중함에 특히 치중한다. - 나라를 지키고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디즈니의 주요 테마는 경제 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 그 이후의 냉전체제, 메카시즘등으로 어수선했었던 미국사회에서 매우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101마리 달마시안 >에서 마녀로부터 자신의 강아지들을 구하기 위해 뜨거운 모성애를 발휘하는 주인공 달마시안 개나, <인어공주>에서 자신들의 동생 에리얼을 구하기 위해 마녀에게 머리를 팔고 칼을 구해온 6명의 언니들 모두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구현하고 있다.
넷째, 메카시즘적 사고 방식이 숨어있다. 이 점은 일본만화의 선정성이나 폭력성보다도 더욱 무서운 것일 수 있다. <톰과 제리>를 보면서, 톰이라는 고양이가 제리라는 쥐에게 숱한 폭력과 장난에 의해 심하게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즐겁게 웃는다.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여 악당을 희화하는 과정에서 치밀한 사고나 비판적인 사고가 없다면, 미국의 우월주의나 폭력성을 그대로 체화할 수 있다.
미키마우스의 기상 천회한 재치와 도날드 덕의 우스꽝 스러운 실수들을 지켜보면 어린이들이 은연중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대기업의 횡포를 그저 그럴 수 있는 일인양 웃어 넘기게끔 유도한다. 여기에 악덕 기업주를 선으로 미화시키고 이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공산주의라는 절대 악을 설정함으로써 어린이들에게 편파적인 시각을 가중시켰던 것이다.
송락현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진부한 흑백논리가 이들 작품에 농후히 깔려있다고 본다. 디즈니작품은 아니지만, <사우스 파크>라는 작품을 보면 노골적으로 이런 희화된 폭력성이 드러난다. 후세인이 악당으로 묘사되며 지옥으로 떨어져 사탄과 동성애를 벌이는 사이가 된다는 설정은 미국 우월주의나 메카시즘적인 사고 방식이 스며들어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5.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
일본 애니메이션은 미국의 애니메이션과 매우 차별적인 형태를 보인다. 가장 큰 특징은 저예산 고차원적인 상상력을 들 수 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미국의 그것과 같이 부드럽지 못하며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상상력과 미술적인 구도로 극복을 하였다. 송락현은 다음과 같이 일본과 미국 애니메이션의 특징을 말한다.
"일본같이 동화 매수의 절약 기교가 능한 경우는, 고의적으로 동화 선에 강약을 주어 시청자들이 선의 터치에 현혹당하도록 유도하여 상대적으로 비정상적인 동화를 커버하기도 한다. 반면 미국처럼 동화 매수에 여유가 있는 경우에는 원화와 원화 사이에 있는 동화를 다시 한번 쪼개서 동화와 동화 사이를 그려주는 중간 동화맨을 종종 동원하곤 한다. 즉 일본은 만화 영화의 시각적 함축력에 많은 비중을 두는 반면, 미국은 기본에 충실한 동화를 구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둘째, 만화책의 흥행여부에 근거하여 애니메이션으로 제작을 한다. 히트한 만화의 판권을 사들여서 제작비를 줄이고 그 만화의 유명세를 믿고 만화 영화를 선보이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요술공주 세리>, <마징가 제트>, <캔디 캔디>등 수많은 예들이 있다.
셋째,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효과를 위해 붉은 색, 푸른 색과 같은 원색의 시각 효과와 비명소리, 총소리와 같은 청각효과를 많이 사용한다.
넷째, 비디오 애니메이션을 개척하였다. 만화 영화 산업이 유망직종으로 부각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만화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지만, 공급자가 많아 그에 걸맞는 이윤을 창출하기 힘들어졌다. 즉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위험부담을 덜기위해 그 대안으로 나타난 것이 OVA(Original Video Animation) 장르이다. 따라서 연작형태의 시리즈가 많다.
다섯째, 디즈니 만화와 차별되는 영역으로 순정만화와 로봇 만화 장르가 발달했다. 순정만화로는 <캔디 캔디>, <베르사이유의 장미>, <올훼스의 창>등이 있고 로봇만화로는 <건담>시리즈, <마징가Z> , <짱가>등이 있다.
6. 일본 애니메이션 세계관 분석
첫째, 사무라이 세계관이 나타나있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일본 만화 <드래곤볼>를 보면 마법의 구슬을 얻기위한 이유만으로 강자와 계속 싸움을 하고 심지어 나아가서는 우주를 창조한 신과의 결투장면도 있다. <슬램덩크>, <북두신권>등의 내용도 따지고 보면 강자와 끝없는 싸움을 계속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승리자체를 최고의 선으로 생각하며 그 승리의 당위성이나 이유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는 내용들이 많다. 폭력이 정의의 이름으로 정당화 되는 경우가 많다. 주인공이 뒷골목 해결사인 <씨티헌터>나 우리나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무협만화<북두신권>의 경우 악당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정도는 가히 가공할 만 하다. <시티헌터>의 경우 남자주인공의 여자동료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를 훔쳐볼때마다. 어마어마한 망치로 때리거나 밧줄로 묶어서 아파트에 매달아 놓는다던지 침실에 큰 바늘을 설치해 놓는다. <북두신권>에 경우 폭력의 강도는 더욱 세진다. 머리가 으깨지고 눈알이 빠지는 묘사정도는 다반사이다.
한창완교수는 일본만화에서 두드러지는 로봇메커닉 애니메이션의 구성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일본 로봇에는 칼이 필수 무기인데, 사무라이식 담론 체계가 전제적인 코드를 형성한다. 로봇메커닉의 기존유형처럼 현란하게 묘사되고 있는 스펙터클의 원형은 유일하게 로봇메커닉을 보여주고 있는 일본의 테크노 오리엔탈리즘으로 특화되어 일본의 가상적 힘을 미래사회의 가능성과 동일하게 중복시켜버린다. 이는 가장 강력한 저패니메이션의 시뮬라크르로 상정되는데, 일본이 실질적인 리얼스페이스에서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군사력의 테크놀러지가 이미 저패니메이션의 사이버 스페이스 내에서는 실현되고 있으며, 전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이미지로 치환된다. 신세기 에반겔리온의 '전략자위대'는 기존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자위대의 시뮬라르크로 방어적 군대조직이 아닌 공세적 군대조직을 의미한다."
한교수는 <에반겔리온>이 결국 대동아 공영권을 세계화시키고 있으며, 이념적 코드가 숨어있다고 밝혀내고 있다. 일본에서 로봇 만화가 그토록 성공을 거두는 이유에 대해서 한번쯤 곰곰히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최근에 일본에서 와타나베의 전쟁론이 그토록 히트를 치고 있는 이유에 끝나지 않은 그들의 대동아 공영권 욕심을 엿볼 수 있다.
둘째, 개방적이고 퇴폐적인 성가치관이 드러난다.
일본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중에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구별이 모호한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은하철도 999>에서도 메텔을 여성으로 확정짓기 어려운 모호한 장면들도 있고, 꽤 많은 순정만화에서 동성애의 주인공들을 매력적인 인물들로 다루고 있다.
한창완 교수는 순정물--> 성인 순정물-->동성애물-->포르노그래피 애니메이션 --> 하드코어 담론 형성의 구도를 지적한다.
일본의 자유로운 성 가치관이 그들의 상품에 묻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성에 대해서 매우 관능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본만화의 경우, 예쁜 여자를 보면 남자가 코피를 흘리는 장면이 많이 드러난다. 여자가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본다든지, 여성 속옷을 훔치려고하는 변태적인 장면들이 <드래곤볼>이나 <소년탐정 김전일>등과 같은 초등학생 관람가 등급의 애니메이션에서도 나타난다.
짱구를 못말려를 모니터한 97모니터 종합보고서의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 만화는 달리 요약하면 성에 대한 끊임없는 담론이다. 물론 이것은 심각하고 진지하게 성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가벼운 농담들이다. 이러한 성에 대한 농담들은 직·간접적으로 만화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성을 보는 작가의 시각이다. 작가는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입장에서 성을 다룬다. 이 만화의 주인공 짱구부터가 남성이며 모든 농담들은 남성인 짱구의 입장에서 행해진다. 짱구의 여성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농담들은 결국 남성들만의 공유할 수 있는 농담이며 여성은 자연스레 성의 담론들에 대한 피해자가 되는 동시에 남성의 역구를 채워주기만 하는 수동적인 입장에 배치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여성 비하적인 일들은 주인공이자 대부분의 행위의 주체자인 짱구가 아직 철모르는 어린아이라는 점에서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며 가벼운 농담들로 변질된다. 남성중심적으로 성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유희적 요소로 성을 보는 것은 일본 작품에 감초처럼 끼어 있다.
<에반겔리온>의 경우, 묘한 성적 자극 요소를 기저에 깔아놓았다. 특히, <에반겔리온>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심리학적인 구성으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딴지일보에서 분석한 <에반겔리온>의 심리학적 요소는 프로이드의 오이디프스 콤플렉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 융의 페르소나 (가면)이론, 성서, 나르시즘(자기애), 에릭슨의 아이덴티론, 모레노의 심리극, 로리타 콤플렉스로 보고 있다. 이 중에서 묘한 성적인 감성을 호소한 부분을 추려내면 오이디프스 콤플렉스, 로리타 콤플렉스일 것이다. 로리타 콤플렉스는 조그만 여자애에게서 사랑을 느끼는 현상인다. 14살의 레이를 섹시하게 그려내고 있는 점, 신비감을 유도한 점에서 로리타 콤플렉스를 유도한 것처럼 보인다.
딴지일보 2월호에서는 오이디프스 콤플렉스는 조종자의 자궁회기를 비롯해, 에바를 자기 부인 유이의 변신이라 생각하는 아버지 켄도우, 에바와 신지, 아버지 캔도우간의 삼각관계, 조종석(태반)에 채워지는 양수와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신지의 모습과 같은 장면 설정을 통해 성을 배경으로 한 심리학적 요소가 있다고 분석해낸다.
<에반겔리온>에서는 하드코어적인 내용을 절제된 형태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성을 철저하게 상품화해내는 그들의 마케팅 능력을 다시 한번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민족적 문화적 정체감의 모호성과 함께 변형된 세계관을 읽을 수 있다.
캐릭터를 보면, 동양인도 아니고 서양인도 아닌 에매한 인물을 설정하고 있다. 캔디 캔디의 등장인물들이나 요술공주 세리, 밍키, 세일러문등의 여주인공들은 빨강머리, 노랑머리, 보라색머리등 다국적 외형으로 그려지고 있다. 서구인들과 서구적인 외모에 뿌리깊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들의 사대주의적인 가치관이 엿보인다.
딴지일보 2월호 일본애니메이션에 관한 분석 자료는 위의 내용을 뒷받침하여 준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의 출발점은 이러한 신화의 사실성을 바탕으로 세게 여러 나라의 신화를 무국적의 만화로 재구성하는 데 있다. 미야자키가 <스튜디오 지브라>를 만든 이후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신화활용이 여지 없이 드러나는데, <미래소년 코난>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인간이 하늘을 나는 <천공의 성 라퓨타>, 신화 그 자체인 <나우시카>, 유럽 마녀사냥의 희생자 마녀를 코믹하게 그린 <마조노 탁큐빙>, 개구리 왕자처럼 어느 날 갑자기 돼지로 변해버린 <빨간 돼지>등 주요 만화가 거의 신비한 힘을 가진 주인공의 <모험 활극 신화>이다. 이런 신화극을 좀더 리얼하게 표현하기 위해 등장인물의 의상 하나 하나에도 이러한 장치가 심겨져 있다. 예를 들어 소위 <일본적>인 만화인 모노노케 희메의 의상은 일본 무로마치 시대의 의상이 아닌, 사실은 중앙아시아의 <부탄민족>의상이다. 비슷한 것 같지만 무언가 틀린 캐릭터의 설정이 신화의 재구성을 돕는다."
<에반겔리온>의 에바라는 말도 성경에서 차용한 말이며 사도라는 말도 차용한 말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의로 표현된는 사도가 <에반겔리온>에서는 침략자와 파괴자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변용적인 세계관을 읽을 수 있다. 어떤 애니메이션에서는 '할렐루야'라는 이름을 가진 악마를 갈등요소로 그리고 있다. 성서에 나타난 개념을 그들의 임의와 취향대로 변형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선과 악 구별의 모호함이라든지 절대진리를 표현하지 않는 모습은 <에반겔리온>에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는 <원령공주>에서 보여지는 다신론적 세계관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절대적 존재가 없는 그들의 종교관에서 선과 악의 개념이 약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7. 나가며
애니메이션은 물론 성인들도 많이 보고 있지만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이 주로 본다는 점에서 문화소비자 운동이 매우 필요하다. 즉, 무비판적으로 대중매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비판하면서 수용을 하도록 가르치는 작업이 매우 필요하다.
특히, 디즈니사의 만화는 동화와 신화로 구성되었다는 측면에서 큰 위험성이 없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자칫하면, 지나치게 고정화된 성관념을 심어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외모 콤플렉스나 왕자, 공주병과 같은 잘못된 가치관을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디즈니사의 것 이외에도 워너브라더스사의 것에는 인물 설정이 장난스럽거나 괴팍스러운 캐릭터가 많은데, 치밀한 사고가 배제된 채 폭력을 즐기는 잔인한 사람으로 만들 위험성도 있다. 심지어는 영화에서 처럼 미국적 우월주의를 노골적으로 그려낸 작품들도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폭력성과 선정성이 이미 문제화되었는데, 텍스트 안에는 그들의 폭력과 성에 대해 관대한 의식이 애니메이션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특히, 사무라이적 세계관, 자유스러운 성가치관은 주된 메뉴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노골적으로 표현되기 보다는 정제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판적인 수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일본과 미국의 치밀한 상업주의적 전략과 문화 상품에 숨어 있는 그들의 세계관에 놀라게 된다. 굳이 문화 제국주의라는 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이 그들의 문화와 사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수용하고 주체적으로 변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잘 알 것이다.
<참고문헌>
한창완, 「저패니메이션의 시뮬라시옹에 대한 이데올로기 기능 연구」,한국만화애니메이션 학회 논문,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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