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생명학 혹은 수왕사의 길
- 횽용희 교수, 문학평론가
이른 더위와 가뭄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낮의 대기는 시리도록 눈부시고 밤은 선선한 바람과 함께 성큼성큼 걸어온다. 오늘 저녁에도 하늘의 구름은 알 수 없는 깊이의 무늬결을 그렸다간 지우고 하리라. 예사로운 듯 하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초여름의 날씨이다.
원주의 김지하 선생댁을 향한다. 멀찍이서도 드러나는 짙은 잿빛 기와지붕이 선생이 즐겨 입으시는 개량한복의 빛깔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다물(多勿)이라는 전통 찻집을 개조한 흙집이다. 다물이란 무엇이던가? 고구려 건국이념이었던 고토 회복, 즉 고조선의 건국 신화와 영토를 다시 찾는 운동이 아니던가. 입고출신(入古出新)의 미학과 예지를 강조해온 선생의 삶과 기묘한 인연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상투적인 견강부회일까. 아무쪼록 분명한 것은 일산이나 원주 아파트보다는 선생과 훨씬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선생은 새벽 닭 울음에 잠을 깬다고 한다. 새 소리가 빗방울처럼 경쾌하게 나뭇가지를 흔든다. 자연의 생기가 야트막한 흙담을 무시로 넘나들고 있다.
<현대시학> 편집위원이기도 한 유정이 시인의 승용차로 제천 의림지를 향한다. 김지하 선생의 인문지리학이 펼쳐진다. 중조선의 하늘과 땅과 사람의 역사가 판소리 사설처럼 넌출거린다. 후고구려의 시조 궁예가 원주 남방의 영원산성에 진을 치고 있던 양길에게 군사를 얻으러 가던 ‘가리파’ 길을 따라 간다. ‘문바위’의 흔적을 지나친다. 제천 선비들은 ‘문바위’를 향해 시를 헌사하기도 했다. 병든 짐승들이 ‘문바위’ 바위부스러기를 먹고 낫는 것을 보고 쓴 송시들이다. 저만치 감악산이 보이는 곳에 ‘백련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육중하게 서있다. 신라 의상 대사가 검은 산 위에 하얀 연꽃 절을 지었던 것이다. 백련사에서 연개소문과 김유신이 3번이나 만나 평화 협상을 벌리기도 했다. 감악산에는 독초가 많다. 그러나 그 독초는 또한 약초를 불러와 우거지게 한다. 그래서 이곳은 약초 마을로 유명하다. 지금도 외딴 산골짜기에 한방병원이 세 개나 있다. 비끼재를 거쳐 명암로로 들어서면 제천 의림지에 곧 당도하게 된다. 의림지는 물의 마을이다. 선사시대 때부터 주변에 물이 좋기로 유명했다. 깊은 땅 속에서 물이 솟구쳐 올랐다. 이 물을 마시면 아프던 사람들이 병을 고쳤다. 주변이 이른바 약수골이었다.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은 여기에 제방을 쌓았다. 의림지가 만들어졌다. 이때부터 제천은 한반도의 대표적인 호수 마을이며 한방 건강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된다.
이상기후와 후천개벽의 몸살
홍용희: 선생님, 원주에서 제천으로 오는 길이 곧 치유의 길입니다. 약초골로 유명한 산악 지역인 까닭도 있겠지만 경치 또한 매우 수려합니다. 원만(圓滿)의 땅 중조선 풍수의 진경을 가로질러 온 느낌입니다. 치유와 정화는 오늘날 현대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람은 물론 전지구가 피로에 지쳐 있기 때문입니다.
제천 의림지에 막상 들어서니까 먼저 근자의 기후 현상에 관한 생각이 새삼 떠오릅니다. 물은 곧 생명의 근원이고 터전입니다만, 전국의 저수지들이 바닥을 드러내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초여름의 더위와 가뭄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기후변화가 지구촌 최대이슈로 떠오른 현실을 생활 속에서 체감하게 됩니다. 기후변화는 인류 삶의 시계를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원인, 적응 방법, 생존전략 등이 깊은 관심사로 회자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논의가 온실가스 농도, 에너지 대체 기술, 친환경 녹색 성장, 저탄소 지속 성장 등의 범주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중요하긴 하지만 너무 지엽적이고 비본질적인 데 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구촌에 엄습한 이상 기후 현상의 본질적 배경은 무엇일까요? 너무 추상적이고 난해합니다만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제기에 대한 생각부터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김지하: 일단 문제제기 차원에서만 언급하기로 합시다. 나는 19세기 충청도 연산 사람 김일부의 <정역>에 예언된 4천년 유리세계가 도래하는 후천개벽을 강조해왔어요. 하지와 동지 중심의 극한(極寒), 극서(極署)가 아니라 춘분, 추분 중심의 겨울엔 온화하고 여름엔 서늘한 지구의 가을이 온다는 것입니다. 지구와 우주를 완강하게 지배했던 태양력 주기가 달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이지요.
김일부는 ‘천지경위 삼천년설’(天地傾危 三千年設), 다시 말해 주나라 성립 전후부터 지구자전축이 서남북방으로 3천년 동안 기울었다가 후천개벽과 함께 본래대로 위치인 북극 태음 쪽으로 복귀 이동한다고 보았어요. 내가 이렇게 말하고 믿으면 너무 순진한 것일까요? 과연 그럴까요?
2004년경까지만 해도 지구 자전축 이동 현상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어.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의 원인은 대륙판과 해양판의 충돌 때문이었는 데, 그 근본적인 원인은 지구자전축의 북극 방향으로 이동 복귀라는 것이었지요.
영국의 조너선 텔스위시는 2008년에 <<캔터벨리 사이언스 위클리>>에서 온난화에 역행하는 지구 냉각 즉 간빙기 현상은 바로 이 지구자전축의 북극 이동 때문이고 이 이동은 또한 라이프니츠의 ‘에너지 버블’ 지양 때문이었으며 그 지양은 또 달의 생성력 상승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어요. 이탈리아 과학자 에밀리아노 포플러는 「혹성과 혹성 사이의 물의 존재에 대한 달의 충격력」에서 달은 우주 공간의 물의 존재에 관한한 장본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요. 그는 ‘그린 포플러’green poppler라는 지표현상을 1700년대 라이프니쯔의 「세 개의 태양에 관한 전문 과학적 상상력」을 끌어들여서 달은 우주 내 물의 작용의 상승을 통해 지구 자전축의 복귀이동을 추동하였고 그 추동은 태양 중심의 ‘에너지 버블’, ‘불이라는 뜨거운 거품’을 ‘심프톰 아우라’, 해맑고 밝은 예감 영역의 ‘빛’의 광휘로 바꾸어 놓는 실질적 충격력이라는 것을 해명하고 있어요.
나는 거듭 묻고 있습니다. 19세기 김일부 정역은 과학이 아닌 망상에 불과한 것인가? 동아시아의 모든 우주생명학적 패러다임은 그저 미신에 불과한 것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지구의 가을 또는 달, 여성, 물의 시대
홍용희: 예.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오늘날의 기후 변화 현상에 대해 김일부 선생이 <정역>에서 예언한 유리세계의 도래 과정을 라이프니쯔가 개진한 태양의 ‘에너지 버블’ 지양 현상과 상응시키면서 해명해 주었습니다.
지구적 이슈로 떠오른 기후변화가 후천개벽의 몸살이며 조짐이라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후천개벽은 선천개벽의 수직적인 지배, 차별, 서열의 질서를 기반으로 하는 양(陽)의 시대에서 수평적인 포용, 수렴, 화해의 음(陰)의 질서를 향한 원시반본(原始反本)의 역사가 도래한다는 것이지요. 특히 이러한 후천개벽은 달의 성정, 즉, 물, 그림자, 여성성, 어린이가 들어 올려지는 우주생명학적 대변동으로 해석해볼 수 있겠지요.
김지하: 그렇지요. 달은 실제에 있어서 물을, 물은 암컷을, 암컷은 여성성을 그것은 다시 모성을, 그리고 모성은 곧 현람(玄覽), 투명하고 순수한 어린이 성(性)을 들어 올립니다. 이것이 노자의 현빈(玄牝)이고 주역 이괘(離卦), 빛 괘 속의 검은 암소를 기름(畜牧牛)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의 버블이 사라지는 빛의 생성 과정에, 물과 암컷의 어둠이 개입된다는 것이지요. 해월 최시형 선생의 주장인 현실적인 후천개벽의 뚜렷한 신기론, 즉 우주생명학적 대변동 과정에 상응합니다.
우주생명학의 핵심 테마는 여성해방입니다. 현대적 개벽, 후천개벽은 남성가부장제의 선천문명의 감옥에서 우주율 그 자체인 여성을 해방시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예요. 공자는 주역 계사전의 종시(終始) 다음에 이렇게 쓰고 있어요. ‘막성호간(莫盛乎艮)’. 무슨 뜻입니까?이 개벽은 간방보다 더 치열한 곳이 없다는 것이지요. 간방이 어디요? 바로 한반도와 동이족이지. 왜 이런 표현이 공자에게서 나타난 것일까요. 명나라 때 강소성 맹주 사람 강호동의 『기만물이서(寄萬物移書)』에 의하면 공자가 ‘종시의 후천개벽’을 쓴 것은 3천여 년 전의 고조선의 문서 『천부경』을 보고나서라고 합니다. 『천부경』에 만왕만래(萬往萬來), 만 가지가 가고 만 가지가 온다는 표현이 있지 않소. 공자의 주역 계사전의 종만물 시만물(終萬物 始萬物)이 여기에서 나왔다는 거지요. 그런데, 만왕만래의 전제가 무엇입니까? 바로 묘연(妙衍)입니다. “묘연”이 무엇입니까? ‘여성과 어린이의 생명, 생활적 주체 형성’이라는 것입니다. 공자가 간방(艮方)에서 치열할 것이라는 후천개벽의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묘연”(妙衍)그 자체인 것이지요.
동학 또한 그렇지요.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이란 모심입니다. 사람이 한울이라는 말은 세상에 대한 여성과 아기들의 애틋한 모심이요, 여성과 아기들에 대한 세상의 극진한 모심인 것이지요. 해월 최시형 선생은 여성과 아기의 모심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가르쳤어요. ‘아낙과 아기들을 때리지 말라! 아낙과 아기들은 후천시대의 타고난 도인(道人)이다. 아낙과 아기들을 때리는 것은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다.’ 했어요. 또 있지요. ‘나는 날 저물고 길이 어두울 때는 반드시 아낙들이나 아기들에게 길을 묻는다. 이 어두운 시절엔 그들만이 한울의 밝은 길을 잘 알기 때문이다.’ 여성, 어린이, 소외 대중이 후천개벽모심의 주체라는 웅변같은 가르침이지요.
홍용희: 예, 기후 변화 현상과 후천개벽의 지향성, 우주생명학의 대변동이 좀 더 분명하게 이해됩니다. 이제 논의를 한 걸음 더 구체화시켜 후천개벽을 향한 우리의 현재적 상황, 역할, 소명, 실천 등에 집중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주 생명학의 대변동기에 지금, 여기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과 역할은 무엇인가? 우주의 새 길을 향한 민족적 사명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민족주의 담론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제시할 인류사회를 향한 대변혁의 메시지를 모색하고 찾는 것이 요구된다고 생각됩니다.
메시지 민족의 가능성과 민족통일론
김지하: 그렇지요. 그것이 중요해. 우리나라는 애당초부터 강대국이 되기는 어려워요. 인구나 국토 면적이나 국력이 세계적 강대국이 되기에는 역부족이야. 통일이 되고 문예부흥이 된다면 세계 10위에서 5위 정도의 경제와 그리고 문화를 통해서 온 인류에게, 또 중생에게까지 참 우주생명학을 스스로 전파하고 가르쳐 주는 ‘메시지 민족’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또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고. 이 나라가 절대 만만치 않아요. 신라 말에 자장율사가 화엄을 공부하러 당나라 오대산에 갔을 때 문수보살이 현몽을 해요. 현몽이란 불교에서의 나름 만남의 방식이지. “화엄은 중국에 없다. 화엄은 당신네 나라 동북쪽 산 많은 곳의 바로 그 명계(冥界)에 문수사리가 태어나면서부터 1만 명 모두 산등성이마다 몸을 도사리고 그곳에 있다.” 이때 그곳이 어디겠어요? 바로 강원도요. 강원도의 거의 대부분이 바로 명계(冥界)야. 자장은 강원도의 오대산, 지금의 월정사 터에 움막을 짓고 수행을 시작하지요.
명(冥)이란 불교 용어지요. 이것부터 공부해야 합니다. 새 우주 대개벽은 바로 “명(冥)”에서 시작됩니다. 화엄경의 핵심은 입법계품(立法界品)에 있고 또 그 핵심은 ‘서다림(逝多林)’에 있으며 또한 사자당분신의 주체인 무승당해탈(無勝幢解脫)의 자행동녀(慈行童女) 자신에게 있습니다. 이것을 비켜나가면 화엄은 사라져요. 자행동녀를 언급하는 것은 가르침 없이 스스로 하는 해탈의 중요성을 내세운 것이지요. 자행동녀가 생기하는 구멍이 명(冥)입니다. 명(冥)은 화엄의 비밀이 숨어 있는 어둡고 혼돈스러운 귀신 골짜기요 자궁-우주입니다. 명(冥)의 미학으로 가는 길이 이 시절의 혼돈 속에서 우주의 중심음을 찾는 길이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땅, 우리 민족 참으로 간단치 않아요. 로말 말기 이스라엘 민족 같은 메시지 민족으로서의 가능성을 찾아야 해요. 성배민족으로서의 소명의식을 가져야 돼요. 이걸 함부로 민족주의 운운하며 도외시해서는 안 돼요.
홍용희: 예, 우리 민족의 메시지 민족으로서의 잠재적 가능성을 언급해 주셨습니다. 이를 전제로 우리 민족의 현재적 실현 과제를 중심 논의로 끌고 와 보기로 하지요. ‘통일이 되고 문예부흥이 된다면 세계 5위 정도로 국격이 높아지면서 우주생명학을 스스로 가르쳐 주는 메시지 민족으로서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는 말씀을 해 주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통일과 문예부흥 그리고 메시지 민족의 역할은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적 과정 속의 문제일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민족 통일의 진행 과정 속에는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와 세계사의 문제나 가치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혼돈스럽게 제기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먼저 이 땅의 민족 통일의 가능성과 방법론에 대해 가늠해 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
김지하: 그래요. 통일 얘기부터 하지요. 탄허스님이 이렇게 예언했어요. '월악산 꼭대기 영봉(靈峰) 위에 떠오르는 보름달이 산 밑의 물 위에 비치기 시작하면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나라에 여자 지도자가 나타나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해, 통일이 된다.' 2015년 조선일보 정월 5일자에 조용헌씨도 칼럼에 인용을 했어요. 물이 없던 월악산 밑에 물이 나타난 것은 지금부터 30년 전 충주호 댐 공사 뒤입니다. 지금은 꼭대기 영봉과 그 위에 뜨는 달이 제천 한수면 송계리 앞 강물 위에 화안히 비쳐요.
이런 이야기가 어디에서 나왔을까? 송계리의 '미륵길'로 올라간 월악산 뒤쪽의 덕주사(德周寺)로부터 시작되었어요. 덕주사는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이 원주 양안치 너머 미륵산 아래에 와서 눌러 살 때 그의 딸인 덕주 공주가 아버지의 망국사를 슬퍼하면서 절을 짓고 새 세상을 꿈꾸며 불공을 드린 한(限) 많은 절이야. 여기에서 덕주 공주가 받은 일종의 괘라는 것이야.
이것을 자유당시절 오대산 월정사 주지였던 탄허 스님이 당시 덕주사 주지 월행 스님과 친했거든. 그래, 자주 만나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 나온 이야기인 거라. 그 주변 사람들은 다 알아요. 물론 어쨌든 통일은 안 되었지만, 한반도에 통일의 기운은 그때 매우 강했어요. 북한 김정은이가 그때 신년사에서 ‘올해가 통일의 해이다’라고 발표를 했어. 물론 무력 통일을 염두해 두고 한 말이었지. 남한에서는 남한대로 통일 대박을 내세웠지요.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통일의 기운들이 뜨겁게 달아오르고는 있어. 분명. 이런 정세를 바탕으로 민족적 에너지를 세계 속에 들어올리는 통일론이 요구되는 것이지요.
여성성의 시대와 여성 대통령 지지에 대해
홍용희: 예. 좀 논지에서 벗어난 얘기입니다만, 왜 민족통일론의 지도자로 여성이 언급되었을까요. 이것 또한 우리 민족의 통일론과 후천개벽의 주체로 등장하는 여성성과 깊은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그야말로 우리의 민족 통일을 비약적인 세계사적 전환의 계기로 끌고 가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김지하: 그래, 그렇지요. 덕주사 벽에는 지금도 바로 그 '여성성'의 중요성에 대한 불교적 해설이 붙어있어요. 민족통일 담론은 단지 이 땅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의 문명적 전환기의 새로운 창조적 담론을 구현하고 실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것이지요. 민족적 차원을 넘어서서 새로운 세계를 여는 대개벽의 담론의 장으로 승화해 나갈 것이라는 거고. 이때 이 땅에 잠복되어 있던 고대의 지혜가 아주 혼돈스럽게 전면으로 부상한다는 것이지요.
개벽관으로서 여성성은 곧 그 안에 '아동성'을 내포해요. 앞에서 말한 대로 우리 민족의 최고경전인 천부경(天符經)에서는 '여성과 아동의 생명, 생활중심 가치성'을 뜻하는 묘연(妙衍)이 핵심으로 되어 있잖아요. 불교는 탄허 스님이 몰두했던 바로 그 '화엄경'에서 또한 '여성과 아기들'을 중심으로 세웠고 그들의 대표적 주자가 '자행동녀'(恣行童子)입니다. 동학(東學)의 가르침이 또한 그렇지요. 해월 최시형 선생은 생애 후반에 “후천개벽은 북극태음의 물, 대빙산(大氷山)의 변동으로부터 오고 그 물의 변동은 여성들 몸 속의 월경(月經)의 변동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했지요.
그리고 이러한 논지의 깊은 근원은 신시(神市)의 다물(多勿)운동입니다. 14,000년 전 마고시대의 팔려사율(八呂四律), 즉 여성성, 혼동성 여덟에 남성성, 균형성 넷 비율의 혼돈적 질서의 신시 시대를 현대에 다시 불러오는 과정이지요. 이게 바로 여율의 미학적 메타포이고 ‘물의 아포리아’ 이지요. '시끄러운 어둠 속에서도 화안한 빛이 떠오르' 듯이, 바로 이러한 이 땅의 역사 속에 묻혀있는 민족문화, 통일문화, 모심의 문화가 민족평화통일론으로 떠오르고 이것이 또한 대개벽의 문화론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홍용희: 새 우주의 길, 후천개벽은 달, 물, 여성성의 시대라는 전제 속에 우리 민족 통일론 역시 묘연(妙衍)의 가치, 즉 여성의 생명, 생활중심 가치가 전면에 들어 올려 져야 한다는 인식을 강조하셨습니다. 다소 엉뚱한 질문입니다만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것도 이러한 선생님의 개벽관과 시대사적 인식의 연장선에 놓이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선생님은 박정희 유신정권에 가장 치열하게 응전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박근혜 후보 지지는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김지하: 내가 지독하게 박정희를 미워했지. 나를 감옥에 가두고 사형선고까지 내렸잖소. 내가 좋아서 욕 안하는 게 아니야. 공은 공이고 과는 과고 그건 따져야 할 일이지. 당시 박근혜 후보에 대해서는 이런 생각을 했어. 여성이 중요한 시대잖소. 전 세계적으로. 그런데, 자기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총을 맞아 죽은 사람의 딸은 다른 사람하고 틀릴 것이다. 그것도 18년을. 고독 속에서 제 에미 애비 원혼을 품고 살았을 거 아니냐. 그 고난이 어떠했을까? 나 그거 생각 많이 했어. 꼭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림을 해보지 않아도 모성이 있는가? 있다는 거야. 여성은 생래적으로.
선거 유세 중에 박근혜 후보가 나를 찾아온다고 할 때 나한테 오기 전에 원주 부론성지에 있는 지학순 주교 묘지를 반드시 먼저 찾아뵙고 오라고 했어요. 신부님을 동반해서. 그리고 거기서 유신체제 같은 길은 절대 가지 않겠다는 말을 신부님 앞에 선언하라고 했어요. 아버지 박정희의 길이 아니라 육영수 같은 어머니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지. 일정이 바빠서 어렵다는 말이 들려와. 그럼 내게도 오지 말라고 했지. 그날 아침까지도 그랬어요. 결국 내 요구 조건을 다 실행 했어. 그래 만났지. 21세기는 문화적 대변혁의 시대이니, 그에 상응하는 문화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을 당부 했어요.
그때 당시에도 동아일보 칼럼에서 여성이 집권하면 반드시 남성이 주변에서 도와주어야 한다는, <<정역>>의 십일일언(十一一言)을 위해 십오일언(十五一言)이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기위친정(기위친정)의 방법론을 강조했어요. 일종의 책임총리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지. 여야 협치 같은 그런 게 아니고. 그러나 그게 제대로 되질 않았어. 국무회의는 온통 상호 소통 보다는 수직적으로 받아 적기 바쁜 만기친람(萬機親覽)이야. 저 놈의 만기친람(萬機親覽) 때문에 망한다 생각했고 여러 차례 지적도 했어요. 거기에다가 최태민, 최순실이 저 모양으로 저렇게 붙어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지. 이제 나는 다시는 정치 얘기 안할거요. 난이나 치고, 그림에만 몰두할 생각이야. 내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우리 어머니가 환쟁이는 가난하다고 모질게도 말려서 못했거든.
홍용희: 예, 박근혜 전대통령이 여성성의 시대에 부응하는 여성 지도자가 되지 못했던 것이 이래저래 더 안타깝습니다. 다시 통일론으로 돌아가서 얘기를 전개하기로 하지요.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전지구적 시장화가 일상화된 오늘날 분명 기이한 현상으로 보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래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이념적 실험과 대결의 냉전 구도는 녹슨 유물이 되었습니다. 한반도의 분단 체제를 지탱하는 규정력이 이미 해체된 것이지요. 그런데도 한반도는 ‘냉전의 섬’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념적 대결 국면이 아니라 전근대적인 김씨 왕조와 자본주의 체제간의 관성적인 긴장관계로 보입니다.
70여년에 이르는 분단의 역사가 침전시킨 이질적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틈새는 무엇이며 어디에 있을까? 이런 질문을 새삼 하게 됩니다. 이것은 북한의 ‘위로부터의 변화’ 보다 ‘아래로부터의 변화’ 속에서 계기성을 찾는 것이 유효하리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면에서 선생님께서 여러 글에서 주목하고 있는 북한 장마당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생적 시장 문화에 대한 문제이지요.
민족통일론 혹은 북한 장마당과 남한 오일장의 만남
김지하: 아주 중요한 얘기입니다. ‘같은 민족이다’ 이래서 통일하는 거 아니야. 장마당은 김정일의 화폐개혁 실패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된 북한 여성들 중심의 소비시장 유행 현상이야. 처음에는 북에서도 잡으려고 애를 썼어요. 그러나 소용 없어. 장마당은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 사회주의를 변혁하는 힘을 안고 있거든. 이제는 도리어 북한 정권이 그 장마당의 경제적, 사회적 효과에 의지하기 시작했어요. 장마당에는 여러 가지가 겹쳐져 있어, 복합적인 시장구조, 중층구조인데, 한 번에 몇 백만씩 모인다네. 좋은 거 주쇼. 외제가 나온데. 더 좋은 거 내 놓으라 하면 남한 거래. 그 보다 더 좋은 거 내 놓으라면 자기들 꺼 내 놓는 데요. 북한에도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창조적 삶이 있다는 거지.
북한의 장마당, 유심히 살펴보면, 옛날 산업 구조, 토지제도 같은 것을 되풀이 하는 방식이 나와요. 정전법과 균전제 같은 양식, 또 하나 둔전의 원리. 주강현 어법으로 ‘마을에 들어간 미륵사상’, 마을에 들어가서 인민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 그게 둔전의 원리입니다. 미륵신앙의 본거지에 둔전이 발달했어요. 과거의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와 중국, 북방 고대에 있었던 복합성을 가진 고대의 경제 구조가 섞여 나오고 있다는 거야. 보통 일이 아니야.
고대의 경제 구조가 뭘까요? 미국의 금융위기 뒤부터 유럽, 미국, 일본 등지 경제학 관련 지식인들이 낮은 목소리로 시도하는 이야기가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제시한 ‘호혜시장’이 핵심이예요. ‘호혜시장’의 지향점은 ‘호혜, 교환, 획기적 재분배라는 ‘옛 아시아의 산 위의 물가에서 열렸다는 이상적인 시장’, 신시(神市) 시스템의 현대적 부활입니다.
조안나 안젤리카가 말한 ‘신의 우물’의 현재화이지요. 조안나 안젤리카는 ‘인류는 이제야 긴 긴 멀미 나는 항해를 끝내고 참으로 옛 고향에 가까운 정든 포구에 도착했다. 그 작은 포구의 이름이 따뜻한 시장이다.’ 라고 쓰고 있어요. 왜, 따뜻한 시장인가? 사람에 따라, 형편에 따라 시장 가격이 정해진다는 거지. 우리 시골 오일장에 가면 이른바 ‘가격 다양성’과 ‘협의 가격’이 있잖소. 가난한 자에겐 형편 봐서 좀 싸게, 있는 자에겐 비싸게 책정하고. 이게 다 예부터 내려온 시장원리인거라.
나는 원주에 있으면서 정선장에 자주 가요. 대단해. 10만, 16만이 모인데. 그런데 거기 가보면 대형 아울렛 CEO들이 적지 않게 와요. 왜? 뭔가 배울게 있으니까 오지. 그게 바로 따뜻한 자본주의이고 신의 우물의 특성 아니겠어요. 정선 오일장이 창조경제의 씨앗입니다. 미국 유행을 들여와 더욱 확산되는 이천, 여주, 문막, 원주 등에 생기는 프리미엄 아울렛이 정선 5일장의 부분적 흉내를 시도하고자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보면, 정선장과 북한의 장마당 그리고 미국 뉴욕 금융사태 직후 더욱 확산되는 대형 프리미엄 아울렛. 이 둘의 창조적 융합, 그로인한 획기적 재분배의 가능성을 구현해 볼 수는 없을까? 여기에 통일의 가능성과 세계사적 새문명의 계기성이 잠복되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묻고 싶은 거요.
홍용희: 그렇습니다. 분명 ‘통일은 민족적 당위성이다’라는 식의 구호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북한 장마당과 남한 오일장의 전통적인 ‘따뜻한 자본주의’적 요소가 서로 만나면서 민족 통일의 교두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말씀을 해 주었습니다. 특히 칼폴라니가 호혜시장에서 강조한 획기적 재분배에서 획기성은 자본주의의 핵심이고 재분배는 공산주의의 핵심 테마라고 할 것입니다. 프리미엄 아울렛은 전자에 전통 5일장이 후자의 성향에 해당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 둘의 융합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적 성향의 창조적 융합이라는 차원에서 남북한이 만나서 지향하는 새로운 인간중심의 시장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인간중심의 시장이 가속도를 내며 확산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시장의 소비자 정서 또는 소비 패턴과 결부되면서 가능해 질 수 있겠지요.
김지하: 예, 바로 그것입니다. 신시(神市)의 현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획기적 재분배입니다. 특히 여기에서 재분배를 결정하는 중심성이 핵심 사안입니다. 임마뉴엘 윌러슈타인과 폴 크루그먼 같은 경제학자들이 “현대 경제의 살길은 소비패턴의 생산시스템의 대거 반영이고 그 소비패턴은 여성 소비판단력의 우수성에서 기인하여 그 여성 소비판단력이 경제 대원리를 좌우한다”고 공언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미국의 마트와 몰mall에서 여성소비판단력의 밑바닥에서부터 이른바 칸트의 판단력비판의 날카로운 쾌•불쾌의 취미 판단이 최근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아시아 태평양에서 새로운 경제, 새로운 문화, 새로운 문명과 정치가 요구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바로 그 칸트의 판단력 비판이나 이 보다 월등한 판단력 비판인 원효의 판비량론(判批量論) 이 명(冥)의 터전, 그 자궁우주의 정선장과 연결된다면 이것은 결코 간단치 않지요. 판비량론은 노(勞)와 겸(謙), ‘배부름과 텅비어 있음’, 신명과 한, 그리고 그로부터 이루어지는 마지막 판단, 쾌와 불쾌를 근간으로 합니다.
아무쪼록, 쾌,불쾌의 날카로운 상품소비판단이 과연 불성의 깨달음을 통해 성불과 해탈의 길에 이른다면 어찌할 터인가? 거대한 인류사상사의 대개벽이 이러한 시류, 이러한 미적 트랜드 속에 잠복되어 있다고 할 수는 없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지요.
홍용희: 쾌. 불쾌가 얽혀지는 미학적 삶의 시장에서, 특히 여성 소비판단력의 쾌,불쾌 취미판단의 차원 높은 미학적 승화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새로운 문명적 전환의 계기들을 찾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렇다면, 소비자 중심의 취미판단이 차원 높게 승화해나가야 할 궁극적인 미학적 성향 혹은 그 아키타입은 무엇일까요.
김지하: 예, 미학이 세상을 새롭게 바꿔야 하는 그런 기이한 시절입니다. 바꿀 뿐만이 아니라 고침, 즉 힐링 하는 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말세라 해도 좋고 가을, 그것도 늦가을이라 불러도 좋은, 대개벽이요 전환에 해당하는 ‘그늘의 계절’이지요. 연담 이운규는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이라 했어요. ‘그늘이 우주를 바꾼다’. 내 문자로 말한다면 ‘흰 그늘’이지요. 내가 항상 강조해온 시김새의 다른 말입니다. 울울한 시커먼 한의 그늘 그 자체로부터 차차차차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새롭고 힘찬 하아얀 신명의 빛, 그것이 흰 그늘이요, 시김새 올시다. 그럼 이 시김새의 근원은 어디인가? 바로 이 명(冥)의 땅, 정선입니다. 판소리 동편제의 명인 송흥록이 ‘판소리의 가장 어려운 비밀을 시김새라고 지적하고 그 시김새의 비밀의 근원이 다름아닌 정선아리랑’이라고 했어요.
명(冥)의 지역, 정선 아리랑의 시김새는 우리 민족, 우리 민중의 가장 강렬한 생명의 진리요 문화의 전통입니다. 판소리도 탈춤도 시나위도 나아가 시도 그림도 기타 일체의 종교적 그리움의 표현마저도 시김을 떠나서는 그 자체의 예술적 지향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시김은 발효입니다. 심지어 김치도, 비빔밥도, 인격까지도 그렇지요. 그렇다면, 시김새, 흰 그늘은 그 스스로 이미 아우라이고 모든 땅과 삶과 일과 일치의 근원, 대화엄세계의 본원이요 근원인 해인(海印)인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화엄경의 여성 예고편이라고 해야 할 법화경, 그 법화경 중의 가장 압도적 부분인 종지용출품(從地湧出品)을 우뚝 떠올리게 됩니다. 하늘에서 하강하는 것이 아니라 땅 속에서부터 그리고 물과 바닷 속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보살들의 여러 기적과 같은 작태들에 관한 것입니다. 그 땅은 물, 즉 해인을 토대로 합니다. 보살의 거룩한 모습이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주생명학의 미학은 종교, 철학, 도덕, 교육, 윤리 따위가 아닌, 위로부터의 가르침과 훈육이 아닌, 아름답게 느끼고, 여성과 아이들(玄牝, 玄覽)이 스스로 아름답게 느끼고 옆에 스스로 전달하고 합의하고 깨달아 가는 우주생명의 깊은, 그리고 새로운, 동서양 공히 공통하는 비밀을 억압 없이, 그래서 노리개 장난감이니 롤리타 따위 왜곡된 개념이 필요없는, 참으로 스스럼 없는 그러한 깨달음, 그것이 모심이고 화엄개벽길의 미학입니다.
아우라지 미학과 시김새
홍용희: 법화경의 종지용출품(從地湧出品)이란 바로 우주 자궁의 미학, 이 땅의 근본적이면서도 우주융합적인 힐링의 한 미묘한 중심음이 생기하는 명(冥)의 미학에 상응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명(冥)의 미학의 요체인 흰그늘 혹은 시김새의 근원지가 앞에서 말씀하신 명(冥)의 지역에 해당하는 정선 아우라지라는 점이 새삼 흥미롭습니다. 앞에서 따뜻한 자본주의, 신의 우물로서 정선장을 얘기했습니다만 바로 그 정선장이 머금고 있는 정선 아우라지 미학이 새우주의 중심음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김지하: 그렇지요. 명(冥)의 미학은 정선 아리랑의 아우라지가 핵심이고 아우라지의 비밀은 그 한자말인 여량(餘糧)입니다. 여량(餘糧)이란 명칭은 고려 중기 몽고 병란과 정부의 강화도 피난시절의 그 황량한 공백기에 강릉 두호촌의 원백 이원호(李圓虎)가 거기에 머물면서 지은 것으로 전합니다. 이름이라기 보다는 헌사예요. 여량의 뜻은 남은 곡식, 잉여입니다. 그러나 잉여는 잉여에 그치는 게 아니지요. 기연상서(奇然祥瑞)올시다.. 기이성과 상서로움. 잉여, 즉 나머지 여분을 얻고자 하는 것은 돈을 벌기 이전에 신에게 ‘감사의 제사’를 지내기 위함이고, 약리(藥理), 즉 땅이나 강에 뿌리기 위함이 우선인 거요.. 제사나 약을 위한, 다시 말해 제사를 통한 치유효과와 약물적 생명을 추구한다는 것이지요. 바로 여기에 미의 힐링, 예술과 문화와 생명과의 연관을 읽을 수 있지요. 이렇게 보면, 여량은 시김새와 상통합니다. 정선 아우라지 미학이 우주생명학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게 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홍용희: 아우라지 미학이 명(冥)의 미학의 요체로서 치유와 생명의 미학이란 논법이군요. 이렇게 보면, 아우라지 미학은 새시대 우주생명학의 중심음이라고 하겠군요. 정선 아우라지에 대한 재발견이고 시김새에 대한 재발견입니다.
한편, 선생님께서 앞에서 언급하신 법화경의 종지용출품(從地湧出品), 물과 바닷 속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보살이란 누구일까요? 저는 해월 최시형이 ‘나는 날 저물고 길이 어두울 때는 반드시 아낙들이나 아기들에게 길을 묻는다. 이 어두운 시절엔 그들만이 한울의 밝은 길을 잘 알기 때문이다.’라고 할 때의 아낙과 아기들로 이해됩니다. 여기에 이르면, 오늘 언급된 내용의 핵심 요체에 해당하는 후천개벽 운동의 실질 역사의 연원이며 전범을 동학에서 찾아볼 수 있을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선생님과 나눈 대화들은 오늘날의 동학, 신동학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지하: 예. 바로 그렇습니다. 신동학입니다. 그리고 신동학을 열어나가야 합니다. 동학이야말로 화엄개벽 그대로의 실현이었지요. 누구에 의해서? 수왕회입니다. 수왕회는 동학의 후천개벽의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갑오혁명 실패 직후 해월선생이 경기도 이천군 실성면 수산 1리(앵산동)에서 낮 11시 동서양 일체 제사 의 근본혁명, 이제까지 벽을 향해 지내는 향벽설위(向壁設位)를 내가 한울님, 부처님, 조상님이 실제로 살아계시는 나 자신을 향해 제사지내는 향아설위(向我設位)로 변혁하는 것이 개벽의 시작이다라고 선언해요. 그 이튿날 새벽 앵산에서 빈삼화상 등 8인과 해월 선생 곁에서 유일하게 수발을 들던 28세의 여성 이수인과 함께 화엄개벽을 위한 수왕회를 결성합니다. 이때 수왕회의 대표자, 여성 임금(水王)으로 누가 추대되느냐 하면 바로 허드렛일을 하던 여성 이수인입니다. 한 많은 꼬래비가 임금 자리에 앉는 기위친정(己位親政)의 실천이지. 이수인은 그 이듬해 양평장터에서 강간, 살해당하고 말아요. 이수인(李水仁)의 실질적 수행 양식이었던 무승당 해탈(無勝幢解脫), 즉 스스로 깨달아 보살이 되는 양식은 바로 향아설위와 모심의 화엄적 확산이었어요. 이수인이라는 여성은 그로써 원만(圓滿) 그 자체이고 수왕회와 여성 아기들은 궁궁원만(弓弓圓滿의 모심체(體)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닦고 나아가야 할 동학의 현대 초현대적인 우주생명학의 첫번 수행이자 실천테마의 역사였습니다.
홍용희: 예, 선생님, 오늘은 이곳, 제천 의림지에서 물의 세상과 우주에 하염없이 빠져든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달, 바다, 그늘, 여성, 생명 중심의 시대로 옮겨 가는 새로운 우주의 길, 화엄개벽의 길을 향한 지리학으로 요약됩니다. 이것은 또한 김지하와 함께 하는 수왕사를 향한 여정이며 21세기 신동학을 열어가는 여정이었습니다. 기연상서(奇然祥瑞)라고 하셨던가요. 치유와 생명의 기이함과 상서로움, 그 우주생명학을 샛별처럼 감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