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럭이 형의 이빨을 아시나요 열여섯번째 이야기
“그 때 그 시절”
요사이 TV를 시청하다 보면 과거 60~70년대 세상살이를 찍어 놓은 영상물이나 흘러간 뉴스 등을 모아 재방영 해 주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프로는 컬러TV를 보면서 성장하고, 컴퓨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요즘 신세대들은 저렇게 살 때도 있었구나 하고 신기해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 명동 거리와 바다를 누비며 한 세대를 풍미하였던 이 우럭이한테는 전혀 생소하지 않고, 지나간 세월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돌이켜 보면 6.25동란을 겪고 째지게 가난한 나라에서 숨가쁘게 살아왔지만 전혀 억울하지 않다. 모든 물자가 귀하고 국민 모두가 잘 살아 보겠다는 일념에 발벗고 나설 때 였지만 인정만은 옹색하지 않았다.
다이빙계도 얼마 안 되는 잠수인 끼리 선후배 관계가 뚜렷하고, 의리를 중요시 하는 등 나름 대로 낭만이 있었다. 모두 친형제같이 지냈고 어려운 여건에도 잠수활동을 위해 서로 도우면서 척박한 환경을 헤져나갔다. 반면에 수중환경은 지금에 비하여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풍요롭기 그지 없었다. 이 시대 한가운데서 젊은 세월을 보낸 이 우럭이는 지금 생각해 보니 대단한 행운아이다. 더욱이 우리나라 다이빙계의 변천사를 지켜 볼 수 있었고, 2세기 동안 아니 더 나아가 1000년 단위의 두 밀레니엄을 모두 살아볼 수 있다는 생각에 소름 끼치도록 흥분된다. 자 이왕 과거 이야기로 시작한 것 끝가지 밀고 나가보겠다.
독자 여러분 중 다이빙 입문 시기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분들은, 옛날의 다이빙 교육이나 방법 등에 꽤 궁금해 할 것이다. 물론 과거지사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겠지만 역사를 바로 알아야, 좀 더 나은 발전을 이끌 수 있기 때문에 한번쯤 되짚어 볼 만하다. 따라서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고 직접 그 때 그 시절로 시간 여행을 함께 떠나보자.
우럭이가 운전하는 타임머신에 탑승이 모두 끝났다면 출발!
눈 깜짝 할 사이에 도착한 곳은? 아뿔싸! 이 몸이 장가든 첫날밤 신방 아닌가? O양, B양 비디오 다음에 내가 주인공 될 일 있나. 다시 급출발, 이번에는 제대로 도착했겠지…. 그런데 뿌연 수증기가 앞을 가려 잘 안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니 때는 1970년도 워커힐 실내 수영장이다. 스쿠버 강습생들이 공기통을 메고 수영장을 계속 뺑뺑이 돌고 있다. 스노클 호흡만 하니 그 열기로 수영장이 목욕탕 같은 분위기이다.
잠수복은 고사하고 수영팬티에 백 팩으로 연결된 공기통을 메고 거기다 웨이트 벨트까지 차고 Lung 수영을 하고 있다. 여기서 Lung 수영이란 말이 먼저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당시 공기통은 미국산이 대부분이었었고, 특정상표 이름이 Aqua Lung 이었다. 그래서 공기통이나 탱크보다는 Lung 이라고 부를 때가 많았다.
당시 스쿠버 교육과 지금의 교육이 틀린 점을 몇 가지 살펴보자. 공기통 밸브도 ‘I’형과 (지금 이런 밸브를 가진 공기통이 있다면 골동품으로 상당한 가치가 있음) 리저브 밸브가 있는 ‘J’형이 대부분이고, 주물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백 팩이 있었지만 맨 공기탱크에 두꺼운 줄로 연결된 것도 있었다. 이 줄도 탱크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뒤에서 시작하여 아래 가랑이로 지나가 앞으로 묶게 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웨이트 벨트는 모든 장비를 다 착용한 후 맨 마지막에 차는 것이 공식으로 되어 있었다. 요즈음 같이 맨 먼저 찬 후 비상시 풀어버리면 다리사이 공기통 줄에 대롱대롱 웨이트가 매달려 있어 아주 골로 간다. 실제로 이런 경우를 당해 지옥 문턱에까지 갔다 온 분이 현재 (사)한국잠수협회에 꽤 높은 분으로 계시다. 정말 웨이트 벨트는 맨 나중이라는 말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시험 문제에도 꼭 나올 정도로 아주 중요한 사항이었다.
또 한가지는 라이프 재킷 사용법이다. 당시 B.C. 라는 것은 존재치 않았고 부력을 보충해 주는 것이 라이프 재킷, 즉 구명조끼가 전부였다. 이나마 다이빙용은 구경하기도 힘들어 해군이 사용하던 구명의를 구해서 썼고, 일부는 비행기에 비치된 것을 슬쩍 해서 대체하기도 했다.
특이한 것은 공기 주입기가 가슴쪽에 달려있어 입으로 불어넣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빼는 방법에 있어 차이가 있었다. 우선 뒤로 누운 자세로 주입기 끝 부분이 가장 위로 향하게 한 후 잡아당겨 공기를 배출해야 쉽게 빠졌다. 이 때 주의할 점은 공기방울이 빠져나가는 것을 곁눈질하며 계속 주시해야 된다. 만약 공기가 다 빠져나갔는데도 계속 잡아당기고 있으면 거꾸로 구명조끼 안으로 물이 들어간다. 이렇게 되면 장비가 쉬 못쓰게 된다고 선배나 강사에게 얻어터지기 일쑤였다.
다음은 호흡기인데 싱글 호스식(단관식) 과 복관식을 모두 사용했다. 물론 두 가지의 사용법을 익혀야 했고, 호흡기 찾기도 두 가지 다 배워야 했다. 더블 호스라고 불리는 복관식인 경우 마우스피스 부분을 입에서 놓치면 우선 뒤로 누워야 한다. 그럼 공기가 차 있어 위로 뜨는 성질이 있는 호흡기 호스를 쉽게 찾아 물 수 있었다. 왜 그리 뒤로 자빠져야 하는 게 많은지 강습 중에 코로 물께나 들이켰다. 모든 수영장 교육이 거의 군대식으로 진행되어져 치가 떨리고 악이 바치는 P.T 체조, 서키트 트레이닝, 끝도 없는 공기통 수영 등 밥맛을 꿀맛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그럼 이론강의가 한창인 강의실로 가보자. 강사가 미국 교본을 적당히 번역한 걸 그대로 읽고 있다. 자세히 들어보니 가관이다. 좀 부풀려 얘기한다면 잠수 중 호흡을 참고 상승하면 폐가 터져 죽습니다. 오래 잠수하면 재수좋으면 병신되고 그렇지 않으면 사망. 바다에서 백상어를 만나면 바위 뒤로 숨는다고 가르치면서, 상어한테 공격 당한 사람의 너덜너덜해진 상처부위 사진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오리발을 수면에서 차면 상어가 물고기가 죽어가면서 퍼덕대는 소리로 오인해 공격 받기 쉽다는 등 위험요소가 끝이 없다. 바다뱀은 코브라 독의 10배에 해당하는 맹독을 가졌기 때문에 물리면 즉사하고, 해파리도 아주 무서운 종은 쏘이면 바로 요단 강 건넌다고 가르치며, 우리나라에는 살고 있지도 않은 온갖 위험한 생물들의 사진을 보여준다.
도대체 저런 강의를 듣고 다이빙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라는 의구심이 생기지만 교육생의 눈 빛은 모두 진지하다. 우선 잠수교육 현장만 잠깐 둘러 보아도 참으로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이 많다. 그 당시 교육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수고가 뒤따랐다. 단 두 시간의 강습을 위해 화염방사기를 개조한 컴프레서를 들고 조용한 곳까지 옮긴 후, 하루종일 공기충전을 하여 실내수영장까지 한번에 2개씩 지어날라야 했고, 모든 준비를 마치면 퇴근 후 강습을 받으러 온 교육생을 받아 수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긴시간은 아니었지만 잠시 둘러보니 내가 생각해도 흥미로웠다. 솔직히 타임머신을 이용했지만 기계가 워낙 고물이라 옛날 모습이 연상이 잘 안 될 수도 있겠다. 이런 분들은 주위에 다이빙 시작한지가 너무나 오래되어서 고리타분한 선배나, 이 우럭이한테 연락을 해 물어보길 바란다. 자세히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다. 본지 발행인도 나이는 그리 많지 않으나 이런 과정을 겪어 낸 퀴퀴한 냄새 나는 원로 축에 들어 그 때 그 시절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분들을 통해 과거로의 여행을 계속하기 바란다.
다음 호에는 장소를 바꿔 우리나라 초창기 다이빙의 메카이며 수중경기대회가 열리던 과거의 제주도 서귀포를 둘러보도록 하자. 큰 기대를 가져도 좋다. 긴 여행이 될 수 있으니 김밥과 삶은 계란, 그리고 사이다도 2병 정도 준비해 주기 바란다. 소풍 인도하는 이 우럭이를 위해 한개 더 싸오는 것을 잊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