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fun Fun)한 우즈베키스탄 여행 후기
'UZBEKISTAN'의 'UZ'는 카자흐스탄의 남부 카스피해 근처 카라칼파크 지방에 있던 종족의 후예라고 하며, '자기 자신, 진짜, 핵, 중심'이라는 뜻이고, 'BEK'는 백인대장(百人隊長),무사(武士)라는 뜻이며, 'STAN'은 땅이라는 뜻이다.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레닌에 의해 구획된 지명이라고 한다.
면적은 44만7400㎢, 수도는 타쉬켄트, 공용어는 우즈베크어다. 동쪽은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남쪽은 아프가니스탄, 남서쪽은 투르크메니스탄, 북쪽과 북서쪽은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북서 일부는 아랄 해와 면한다. 지리.경제지역은 타쉬켄트, 페르가나 분지. 사마르칸트, 중부, 서부 및 남동부 등 6개지역으로 구분되며, 키르기스스탄내에 격리된 2개 지역이 있다. 행정구역은 1개 자치공화국과 12개 주(州)다.
국토의 대부분이 대륙성 기후지대로 연간 강수량이 적고 여름은 길고 무더워 7월 평균 기온이 북부는 섭씨 26도, 남부는 30도이나 32도 이상인 지역도 있으며, 낮 기온 40도 이상인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겨울은 짧고 대체로 온화한 편이다. 강우량은 봄이 30-50%, 여름이 1-6%, 겨울이 25-40%를 차지한다.
인구는 125개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국가이다. 다수민족인 우즈베크인이 전체 인구 중 71.4%를 차지하고, 러시아인 8.3%, 타지크인 4.7%,카자흐인 4.1%,타타르인 2.4%,고려인 1.0%,유대인 0.3%등의 순이다. 도시인구는 타쉬켄트에 300만 명 이상이 거주하며, 인구 10만 명 이상 되는 도시는 사마르칸트를 비롯해 15개 도시다. 연 인구 증가율은 2.8%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언어는 우즈베크어를 공용어로 채택했고, 러시아어도 일반적으로 통용된다.
종교는 이슬람교가 인구의 88%를 차지한다. 이슬람교도중 수니파가 70%이고, 와하브파는 소수이나 최근에 성장하고 있으며, 수피파는 남부지방에 많이 있다.
6.24. 9:30 염주체육관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Wife에게 5일간 집 잘지키고 있으라고 당부하자, 오히려 나에게 건강하게 잘다녀오라고 이야기한다. 염려붙들어 매라고 이야기하며 차에 타자 봉선동에서 타고 오신 회원님들이 계셔 반갑게 인사하며 비엔날레 주차장으로 출발.
도착하자마자 저에게 US$환전을 부탁하신 회원님들에게 달라봉투를 드리자 다른회원님들께서 나도 휴가비좀 달라고 하여 우즈벡 도착하면 필요한거 사드리겠다고 하자 그럼 김지점장만 따라가면 만사 OK하여 함께 ㅎㅎ웃었다.
총 53명의 회원이 함께 1,2호차로 나누어 탔고, 우리 2호차는 임형승 전총무께서 담당을 하였는데 인천국제공항까지 가면서 본인 소개를 하시자고 하여 한 명씩 소개하며 갔는데, 내 차례 때 나의 소개를 저는 세 가지를 말씀 드리겠다하면서 첫 번째 우리가 살아가면서 안목을 키우는 경우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여행이고, 나머지는 책읽기라고 애기하면서 우리 Wife가 딸애를 잘 키웠다고 하여 어떻게 잘 키웠냐고 묻자? 본인의 키는 165cm인데 딸의 키가 166cm라고 하자 모두 ㅎㅎ.
두 번째는 남존여비 4행시를 4단계로 풀이해보겠다고 하면서 1. 남자의 존재는 여자의 비위를 잘 맞추는 것. 2. 남자의 존재는 여자의 비용을 다 내는 것. 3. 남자의 존재는 여자를 밤에 비명지르게 하는것. 4. 남자의 존재는 여자의 비밀을 철저히 잘 지키는 것이라고 하자 ㅎㅎㅎ.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영감님과 할멈 두 분이서 사는데 영감님이 연세가 있어 밤일이 잘 안되어 하루는 벽에다 벽보를 붙이는데 사자성어로 '하면된다'라고 붙여 놓자 할멈이 내심 밤이되어 기다리는데 전혀 소식이없자 새벽에 벽에다 영감이 붙인 벽보보다 더 큰 글씨로 사자성어를 써 놓았는데, 영감이 보자 '서면 한다'라고 ㅎㅎㅎ 함께 웃으며 2호차는 기분좋은 출발. 여성회원께서 하나 더하라고 하여 경북 포항에 주점이 하나 있는데 간판이름 '3004' 그래서 가게에 들어가보니 세 여성분이 운영하는 주점이었다. 간판이 이해가 되지 않아 들어왔다고 하자 간혹 그런 분들이 있다고 하며 힌트를 준다고 한다. 우리 세명의 고향이 같다고 한다. 그래도 대답이 없어 결국은 제가 '삼천포'라고 이야기 하자 한 회원께서 우리 여행중에 삼천포로 빠지는 일은 없겠지 하여 모두 ㅎㅎㅎ웃음.
12:20분이 지나고 있었다. 류주식 사무국장께서 7월 첫째주 산행은 순천 조계산 간다고 하자 김성용 산악대장曰 조계가 많냐고 하자 류국장께서 순천만 타고 올라오니 조계가 많다고?? ㅎㅎ
점심은 처마끝 빗소리 들으며 천안 호서대 옆에 있는 대장군가든에서 청국장을 맛있게 먹었다.
아! 임용택 회원께서 일부 회원들께 부채를 하나씩 선물해 주었다. 감사~ 식후 13:15출발
14:50분 인천 국제공항도착 나승채 사장께서 준비해 온 슬리퍼(비행기안에서 사용),물,베개 회원들께 선물. 짐들 붙이고 각자 쇼핑하며 17:30까지 37번 Gate로 모이라고 하여 모두들 뿔뿔히 헤어졌다가, 정확히 시간되자 회원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전 회원 모이자 이광호 회원께서 단체사진 인증샷후 비행기 아시아나 OZ 573탑승.19:40경 치킨밥 식사.
타쉬켄트까지는 4848km. 약 7시간 30분쯤 소요되고, 시차는 그쪽이 4시간 늦다.자다가 주위에서 탄성이 일어 눈을 떠보니 비행기가 천산(天山)산맥 상공을 통과하고 있었다. 천산산맥의 웅장한 산세가 우리를 압도하였고, 설산이 햇빛을 받아 찬란타 못해 눈이 부시다. 아래쪽은 흰 눈과 대비되어 까만 고무줄같은 물줄기가 지렁이가 기어가듯 꼬불꼬불 길게 이어져 있었고, 구름 한 점없이 맑디 맑은 하늘이어서 시야가 확 틔어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켄트 공항도착 20:50분(현지시간) 수속을 마치고 버스에 탑승하자 22시가 되고 있었다. 시간이 소요된 원인은 형광석회원의 부인께서 이유도 모른채 추방당하는 상황이 발생하여 늦어졌다. 버스 2호차에 탑승하여보니 화장실이 차내에 있었다. 공항환경은 주차된것을 보니 질서정연하지 않고 아직은 전형적인 후진국형이다. 택시기사들 호객행위도 그렇고, 아줌마들 보니 대체로 건강하다. 쇠고기와 양고기를 많이 섭취해서 그런것 같다.23:40분 TASHKENT PALACE HOTEL도착 Room 362호 임용택회원님과 함께 3일간 지내게 되었다. 방에 들어가 카드를 넣자 불이 들어오질 않아 Card박스를 한 대 치자 불이 들어왔다 아마 접촉불량인듯 싶다.
냉장고 가동시키고 서울에서 가져온 소주며 과자를 가방에서 꺼내 냉장고에 넣고 생수도 잘 챙겨 넣어 두었다. 씻고 바로 꿈나라로 직행~ 6.25 5:50분 샤워 후 호텔 주변 산책. 마치 잘 짜여진 퍼즐처럼 조경, 도로, 건물들이 잘 정리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타쉬케트는 사막위에 건설된 도시로 알고 있는데 의외로 참 나무가 많고, 아카시아 비슷한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나무마다 벌레가 올라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밑동에서 위쪽으로 약 1m정도 석회를 칠해 놓았다. 또 스피링 쿨러 시설을 참 잘 해놓아 나무들의 성장이 양호했다. 뽕나무. 소나무. 호도나무도 가끔 보였는데 열매가 많이 열려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보기 드문 제비도 많았다. 공원 화장실은 지하에 있는것도 특이했다. 가이드에게 여쭤보니 소련시대에 만든 화장실인데 지상에 있으면 냄새가 많이 나서 지하에 만들었다고 한다. 도로위의 횡단보도는 사람이 적어서 인지 좁게 되어 있었다.
도로에 차들이 대부분 대우차였는데,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이 1991년 이곳에 와서 이스마엘 카리모프 대통령과 호형호제(呼兄呼弟)하면서 대우건설, 대우전자, 대우자동차 등 대우왕국을 이루어 대우에 다니는 신분증만 있으면 공항에서도 프리패스하며, 대우 맨은 특별 대우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길거리에 운행되는 차들은 소형차가 많았고, 티코, 마티스, 모닝, 시보레, 라세티 등 대부분 대우차다. 거리는 한산하고 건물은 대개 4층이하로 낮고 단층이 많았다.
아침식사는 소세지, 양고기 등은 너무 짰다. 라이스는 통일벼처럼 길쭉하였다. 빵은 여러종류가 있었다. 그나마 닭곰탕에 라이스을 말아 먹는것이 괜찮았다. 그리고 특이했던 점은 외국에 아침식사때는 꼭 나오는 계란이 없었다.
식사 끝난 시간을 보니 7:45분이었다. 인사 - 아살롬 알레이꿈 답례 - 알레이꿈 아살롬
10:00 이슬람신학교 방문 책꽃이 하나 만드는데 1주일~2주일 소요 한 개 40$, 구경하고 독립기념광장으로 가서 보니 특이했던 점은 나무에 그늘막(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나무가 햇빛에 뜨거우니 해놓은거란다)을 설치 해 놓았다. 옆에 건물을 신축중이었는데 국립도서관 건물이란다. 차로 돌아오는데 여중학생들이 웃으며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서 가지고 있는 사탕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점심먹기 위해 한국식당으로 이동. 식사전 화장실에 갔는데 임용택회원님曰 부자는 고추가 작고 빈자는 크다고 왜 묻자, 빈자 자식은 놀게 없으니 고추만지고, 부자 자식은 장난감갖고 놀기 때문이란다.ㅎㅎ식사中 형광석회원께서 건배사 게3마리 분양한다고, 기쁘게, 신나게, 즐겁게 의미로 건배제의. 오찬 中 제가 먼저 Non-Sense로 여자들이 남자들 평가할 때,4저 이야기 키가 작으면- 루저, 용모가 별로면- 후저, 돈이 없으면 - 꺼저, 마지막으로 거시기가 안 서면 - 디저. 모두 ㅎㅎ박장대소. 이후 화답으로 오희균회원께서 도올 김용옥 교수께서 이화여대 강의중 우리가 세상에 사는 이유는? 묻자 여대생들 묵묵부답. 힌트로 여러분이 이쁘게 보일려고 화장도 하는 이유는? 그래도 대답이 없다. 답은 그거(?) 때문이라고 말하자 웃음바다 되었다고 한말씀. 우리 테이블에 계시던 회원님들 입안에서 먹던 음식물 반찬으로 쏟아져 나오고 ㅎㅎㅎ 웃음.
아미르티무르(Amir Temur)
사마르칸트는 티무르(Amir Temur 1336-1405)와 인연이 깊다.'Amir'는 아랍어로 '왕 또는 지배자'라는 뜻이다. 티무르는 칭기스칸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동서로 분열된 차가타이 칸국을 통일하고 이란과 킵착칸국의 옛 영토까지 정복하고 인도의 델리까지 정벌하는 등 대제국을 이루었다. 마지막으로 명나라 정벌하러 가는 도중 죽었다. 티무르는 평생 정벌로 일생을 마쳤으나 그의 죽음과 더불어 대제국도 무너지고 그렇게도 아끼고 정열을 기울였던 사마르칸트의 문화도 그의 죽음과 함께 궤멸되고 말았다.
13:00 아미르티무르 박물관
박물관은 타쉬켄트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늘색 지붕이 이슬람 사원을 연상케 하고 건물은 은빛 분수와 화려한 꽃들로 둘러싸여 있어, 현대와 고대의 건축술을 융합한 매우 특이한 모습이 돋보인다. 내부로 들어서면 아름다운 샹들리에가 있는 천장을 올려다보면 화려함과 섬세한 문양이 조화를 이룬다. 대리석 기둥, 대리석 계단 등 내부는 매우 품위있게 꾸며 놓았다. 10m쯤 되는 벽에는 아미르티무르의 탄생, 성장, 영광 등의 테마로 나뉘어져 있는 이슬람 양식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1층에는 대리석의 주춧돌 대 위에 거대한 코란이 놓여있다. 커다란 노란색 종이 위의 아랍글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2층에는 은과 구리로 만든 13-14세기의 동전, 19세기 부하라 통치자가 입었던 금으로 수놓은 관복, 갑옷, 티무르의 손자인 울루그벡 천문대의 모형, 비비하님 모스크의 모형, 타지마할 묘의 모형 등 찬란했던 티무르 제국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그의 일생 중 중앙아시아를 제패했던 내용이 주를 이루고 그가 사용했던 무기류 당시 화폐도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다. 밖으로 나오자 가이드 曰 1년에 비가 100mm밖에 오지 않은데 비가 오니 축복받은 날이라고 이야기한다. 14:00 차량으로 타쉬켄트 타워로 이동 총 높이는 375m이나 엘리베이터 타고 110m까지 올라가면 전 시가지가 다 보인다고 한다. 엘리베이터에 순서 기다리며 가만히 보니 정원이 5명이라고 공간은 충분한데 안내원이 더이상 사람을 태우지 않으니 기다릴수 밖에 없었다. 확실히 이 나라는 빨리빨리가 아니라 천천히.15:00 내려와서 개띠 인증샷하는데 총 10명.오성동원장님曰 본인이 왕개라고 ㅎㅎ웃음.
15:05분 재래시장 출발.가면서 승용차 운전하는 사람들 보니 아직은 우리나라같이 여성들이 운전하는게 아니라 99%가 남자들이었다.시장에 가보니 다민족 국가답게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볼 수가 있었다. 과일(포도,사과,살구,자두)은 우리나라같이 크지는 않지만 당도는 높아 먹을만 했다.아이쇼핑을 끝내고 나올 때즘 이영길회장께서 쇠고기 꼬치구이집으로 우릴 안내하여 보드카에 꼬치구이 한점 색다른 맛도 보고 즐거운 휴식도 겸한 시간이었다.18:20분 한식당에서 만찬. 처음엔 생수병의 소주를 자연스럽게 한잔. 술이 부족하여 계속 맥주, 보드카 주문하다보니 화기애애한 만찬을 하였음. 19:40분 호텔도착. 내일 아침 모닝콜 5:00 타국에서 이틀째 밤 꿈나라로 직행.
아침식사는 6.26일 5:15분부터 너무 이른 시간이라 조금은 부족한 메뉴였다. 라이스는 제공되지 않고 계란, 소세지, 빵, 우유(금방 떨어짐),자두, 사과 늦게 오는 사람은 변변치 못한 식사를 하였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많이 먹는다는 속담이 생각나는 아침이었다.
사마르칸트
우즈베키스탄 제 2의 도시로서 공업 및 문화의 중심지다. 제프라샨 강의 계곡과 구릉에 걸쳐 위치하며, 타쉬켄트 및 크라노보스크와 철도로 연결되고 우즈베크 자동차도로의 기점이다. 중앙아시아 최고(最古)도시의 하나로 고대 호라즘 시대부터 마라칸다로 알려졌고, 실크로드가 통과하는 중심지역으로 1220년 칭기스칸에 의해 패망하기까지는 실크로드의 교역기지로 번영하였다.
14세기에 티무르가 몽골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 이 도시를 제국의 수도로 정하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다시 건설하였다. 특히 푸른 색을 좋아하여 도시 곳곳에 산재한 중세 모스크와 왕족들의 묘가 저마다 푸른색 돔을 머리에 이고 있어 이런 이유로 사마르칸트를 '푸른 도시'라고 부른다. 푸른 색은 철록빛깔의 터키석 장식이 연출해내는 신비감의 근원이기도 하여 이슬람 학자들은 사마르칸트를 '이슬람의 진주'라고 불렀다.
민족은 그리스, 이란, 위구르, 월지 등의 혼혈인 타지크족이 다수이며, 인구는 사마르칸트주(州)전체 약 37만 명, 그 중 고려인이 약 7천명이며, 사마르칸트시(市)의 인구는 약20만 명이다. 사막지역인 이곳은 천산의 만년설이 녹아 약 200-300km의 지하강이 흐르고 있다. '카낫(Qanat)시스템'이라 하여 지하강 1km마다 우물을 파서 물을 끌어올려 식수와 농업용수로 쓴다. 물은 석회가 많이 섞여 그냥 마실 수 없다.
열차를 7시에 타야하기 때문에 일찍 서둘렀다. 사마르칸트까지는 340km, 예상시간은 4시간(고속철 공사구간이 있기 때문에 지연 될 수 있다고 한다)6:52분 나는 열차 4호칸에 탔다. 6명이 한 룸에 3명씩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앉아 갈수 있게 되어 있었다. 선반위에는 거울도 붙어 있었고,조승익 회원님曰 선반위에서 자도 되겠다고 한 말씀하신다. 김희원 학생曰 대뜸 열차가 출발하자 너무 느리다고 한 마디한다. 그래서 Non-Sense라고 하며 사과를 한입 베어먹으면- 파인애플(바로 맞춘다) 그럼 눈이 없는 사슴을 영어로 하면? 답이 없다. 힌트 사슴이 뭐냐하자 아! 하며 No Eye Deer한다 함께 ㅎㅎ웃음.
같이 함께한 김인규회원님曰 어제 술을 왜 먹었는지 모르겠다. 하루 지나면 기억이 잘 나질 않은데 하여 ㅎㅎ웃음.기차 밖으로 슬레트 지붕 집이 많이 보이자 옛날에 슬레트에 삼겹살 구워 먹었다고, 희원이 학생은 모를거야. 20년전 일인데, 내가 메모하자, 오늘도 적자생존(적는 자만이 생존할 수 있다)하고 있는가?한말씀. 밖에는 계속하여 허허벌판이 이어졌고, 잡초만 무성한 벌판이었다.간혹 집앞에 마중물을 부어야 물이 나오는 펌프질 하는 애를 볼 수 있었다. 1시간여를 남기고 사막이 보이기 시작했다.간혹 소들도 보이고 흑염소떼도 보였는데 모든 가축들이 살이 없어 보였다. 시내가 가까워오자 밀, 감자, 목화 재배단지가 보였다. 벌써 12:30분이 지나고 있었다. 12:50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1:50분이 지체되었다. 거리는 제법 깨끗했다. 아스팔트 노면은 울퉁불퉁하였다. 넓은 도로에 차선이 없는 것도 특이했다. 점심식사는 현지식으로 빵과 쇠고기구이, 닭곰탕, 라이스 등이었다. 이 나라는 빵이 크기 때문에 탁자마다 빵이 절반 정도 남아 비닐 봉투에 담아달라고 하여 가지고 나왔다. 식후 커피잔은 우리나라의 절반 크기였다.
14:10분 사마르칸트를 대표하는 관광지 레기스탄광장을 찾았다. 3개의 메드레세로 둘러싸여 있는 레기스탄 광장은 오늘날 가장 뛰어난 동양 건축물의 집결체로 꼽히고 있다. 메드레세는 중세 이슬람의 신학교를 말하며 레기스탄은 "모래 광장"을 의미한다. 메드레세는 신학과 함께 천문학, 철학, 역사, 수학, 음악 등을 연구하는 종합대학의 역할을 수행했다. 레기스탄에서는 과거 왕에 대한 알현식, 공공집회가 열렸다. 이 광장은 15세기 및 17세기에 두개가 더 증축되어 이슬람 종교 건축물인 울르그벡 메드레세(좌), 시르도르 메드레세(우), 티라카리 메드레세(중앙)에 둘러 쌓여 있다. 현재도 레기스탄 광장에서는 매년마다 대통령도 참석하는 "빛과 소리의 제전"을 여는데, 여기서 티무르 제국의 사라진 영화를 볼 수 있다한다. 여기를 둘러보면서 내부에 TV가 한 대 있었는데 우리나라 LG TV였다. 또한 아쉽게 생각한건 이 중요한 문화재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신학교 안에는 모두 장사치들이 들어앉아 맘대로 구조를 변경하여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밖에는 귀찮을 정도로 아이, 여자, 노인 할 것 없이 구걸하는 이들이 많았다. 어린 아기를 안고있는 여인이 계속 구걸하며 따라 다니길래 불쌍해 보여 1불을 쥐어주었더니 주위에 있는 아이들이 저마다 달라고 달려드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의 어린 시절 미군트럭을 쫓아가면서 껌좀 달라고 외치던 뼈아픈 추억이 생각났다. 근데 여기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화장실을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이 나라는 이런 관광자원에 투자할 여력이 없어보여 안타깝게 느껴졌다.
16:00 아프라시압 박물관
도자기, 컵, 도자기 가마,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초상이 도안된 그리스 은화, 2-3세기 배화교에서 불을 피우던 제단, 동검, 술항아리, 6-7세기 소그드인이 사용하던 연자방아 비슷한 맷돌, 옹관, '아프라시압 궁전벽화'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벽화에는 사마르칸트를 방문한 각국 사절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코끼리를 탄 신부와 칼을 차고 낙타를 타고 가는 남자들의 모습 등 당시의 소그드 사람들을 확실히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벽화로, 조우관을 쓴 한국인사신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입구에는 편백(篇栢)이 심어져 있고, 화단에는 코스모스가 심어져있었다. 편백은 측백의 일종으로 이쪽이 원산지이다.
16:30분 비비하눔(BIBIKHANYM) 모스크
중앙아시아 최대의 모스크로 티무르의 아름다운 왕비 비비하눔을 위한 곳이다. 비비하눔은 인도로 원정을 떠난 티무르가 돌아올 시기에 맞춰 선물로 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를 짓기 위해 각지에서 기술자, 장인, 노동자와 100마리에 달하는 코끼리를 동원하여 공사를 시작했다. 왕비의 미모에 반한 책임 기술자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으면 공사를 하지 않겠다며 집요하게 달려들자 왕비는 모스크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으나 티무르에게 발각되어 기술자는 도망가고 왕비는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 뒤 티무르는 모든 여인에게 얼굴을 검은 천으로 가리라고 명령했고, 그 천은 차도르가 되어 지금까지 이슬람 여인들의 얼굴을 가리고 있다고 했다.
비비하눔은 티무르 제국의 보석 같은 곳으로 대규모 집회를 할 수 있는 이슬람세계에서 가장 큰 사원의 하나였다. 티무르 생전에 완성되지 못했고, 한계 상황까지 건설을 추진했기 때문에 완공 후에 구조적인 문제로 수세기 동안 서서히 기울다가 1897년의 지진으로 마침내 붕괴되고 도굴꾼들에게 약탈되어 훼손되었다. 현재 파괴된 부분을 보수하고 있으나 재원이 부족하여 언제 완공될지 알 수 없다.
17:00 타쉬켄트발 열차 탑승. 술한잔 하며 각 객실로 다니며 썰렁한 애기 두 세 가지씩하며 함께 웃으며 지루한 시간을 뒤로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헤프닝 하나 애기해보면 20:50분 현재 열차가 멈춘지 꽤 되었는데, 밖이 깜깜한데 아직도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ㅋㅋ밤24:00 타쉬켄트도착. 오늘 이 열차가 저의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기차여행이었다. 또 법정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나의 취미는 끝없는 끝없는 인내'라고 '끝없는'을 두번씩이나 강조하셨다. 01:00 늦은 저녁식사하며 우리가 이렇게 늦은 밤에 식사하면 아내가 종간나새끼라고 한다 하자 ㅎㅎ웃음. 오희균회원님曰 4시간이면 도착한다는 열차가 7시간걸렸으니 이 열차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맞다고 하여 ㅎㅎ웃음. 6.27 7:20분 아침식사는 럭셔리했다. 오늘은 월요일이어서인지 식당에 외국분들도 많고 여러 나라 사람이 함께한 조찬이었다.
9시에 침간산 출발예정.호텔에서 출발이 지연되어 이유묻자,형광석회원님 Wife추방관련 영사관에 항의 전화중이라고 한다. 9:20분 출발 영사관 항의차 방문. 영사관 앞 무궁화 꽃이 피어 있었고, 내부에 나무가 뜨겁다고 그늘막을 역시 해 놓았다. 9:30분 되자 대통령이 출근한다고 우리모두 길옆에 있으면 안된다고 주차장뒤로 들어 가라고 경찰관들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 시간이 몇시인데 이제서야 대통령이 출근하냐고 한마디씩 하였다. 영사관 옆문 앞에는 한국행 비자를 받으려고 우즈벡 국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한편으론 우리나라의 국력을 새삼 재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곳에 있으면서 우리나라에 7년간 쌀 도정공장에서 일했다는 라힘존(34)을 만났는데 우리나라 말을 참 잘했다. 귀국하여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중산층이 되었다고 한다. 김양수 영사와 대표로 오성동원장님,박성수명예원장님, 김국웅차기이사장님이 대면하였는데 항의하면 고유주권이기 때문에 답을 안해주어 알 수 없다고, 이슬람국가이기 때문에 개신교 포교관련 이름이 비슷하면 그럴수 있다고 Database가 없다 보니까 막무가내로 추방. 여권 위조가 가능하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고, 예방적인 차원에서 추후 이런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이 정부하고 협의 하겠다고. 원장님.명 원장님. 부회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시간은 10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침간산으로 가는 도중 모래를 트럭에 실고 있는 사람 둘을 보았는데 아직도 삽질로 차에 모래를 실고 있는것을 보고, 보는 우리가 언제나 다 실을까 궁금했다. 도로변에는 우리나라처럼 휴게소가 없었다. 11:25분경 잠깐 차를 세우고 임용택회원께서 말씀하신대로 영역표시를 하는 시간을 갖었다. 차에 오르자 한 발 들고 일을 보지 않았다고 하여 ㅎㅎㅎ웃음. 산으로 오르는 도중 보니 양봉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꿀도 직접 판매하고 있었다.차가 계속 오르막을 오르자 차에 실내 에어컨 온도가 29도 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평지에서는 20도 였다.가로수 나무 수종도 달라지고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침간산
침간산의 CLARKS이라는 말은 카자흐스탄 말로 '푸른 곳'이라는 뜻이다. 한글로 굳이 풀어보자면 푸른 산이라는 뜻인데, 우즈베키스탄 자체가 사막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푸른 풀과 숲으로 둘러쌓인 침간산을 푸른산이라 불렀음직 하다. 천산산맥의 지류로서 타슈켄트시로 부터 약 70km 가량 떨어져 있다. 보통 승용차로 타슈켄트에서 2시간 정도 걸리며, 해발 2,000미터에 나무가 거의 없는 특이한 모습의 준봉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침간산의 정상은 3,308m이다. 한때 황제국의 대관들이 이곳에 별장을 가지고 있었고, 사회적 엘리트들 또한 혁명 후에 병든 노동자들을 위해 여름 휴양지를 지었었다. 그리고 동계스포츠를 좋아하던 러시아인들은 침간의 개발에 최선을 다했다. 훌륭한 산세와 맑고 상쾌한 공기와 날씨 그리고 훌륭한 슬로프는 타슈켄트 시민들에게는 대표적인 휴양지로서, 여름에는 인근한 차르박 호수에 사람들이 몰리지만, 겨울에는 침간의 스키장이 가장 인기있는 휴양지이다. 침간 스키장은 리프트 길이는 약 500m로써, 천연의 설질을 자랑한다.
침간에서 승마도 쉽게 즐길 수 있다. 리프트를 타면 침간산의 중간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중간 정상에 오르자 말이 몇 마리 있고, 유채꽃 비슷한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바람도 불고 나비도 있고 햇빛도 있지만 높이 올라와서 인지 시원했다. 멀리까지 확 트인 시야가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경우다. 정찬용회원께서 보드카를 가지고 오셔서 함께 원삿 참 술맛 좋았다. 박성수 명예원장께서 시 한수 '올라갈 때 못 보던 것이 내려갈 때 보인다'. -고은- 14:10분 김정아회원께서는 리프트 타고 올라가다 모자가 바람에 날려 결국은 찾지 못했고, 구기리연구원님은 올라가면서 핸드폰을 놓쳤는데 내려와서 찾았다고 같이 찾아준 회원들께 수차례 감사인사. 꼭 한번 올라가서 발아래로 펼쳐지는 장엄한 경치를 감상해 보시길.
차르박호수는 150m댐으로 인공호수. 주변에 여름 별장이 있다. 가는 도중 소들이 도로위에 있어 차들이 피해 가야 했다. 14:40 도착. 피라미드호텔에서 점심. 현지식으로 하며 오희균회원께서 함께 양고기 먹으며 외갈비는 냄새가 안나느데, 양갈비라서 냄새가 난다고 ㅋㅋ 차르박 호수 바라보며 지루박 호수 4촌이라고 ㅋㅋ 여기에 19金 하나추가 죽었다 살아나는 이야기. 선교사- 예수님은 죽었다 살아났다고 하자, 스님曰 내 ㅈ같은 놈이구먼ㅋㅋ 여기에서 건배사. 화답을 네 번 해야 한다고 첫 번째 빼고(-), 두 번째 더하고(+), 세 번째 곱하고(X), 네 번째 나누자(%) 선창은 첫 번째 나이는, 두 번째 행복은, 세 번째 돈은, 네 번째 웃음은, 이렇게 마무리하자 주변에 있던 한 회원께서 사랑은 모르게, 하자 모두 ㅎㅎ웃음바다 되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깻잎, 갓 김치, 고추에 맛있게 먹었다. 버스에 탑승하니 16:00 박승만 가이드께서 말 하신 내용 요약. 머리 좋은 한사람이 탱크 한 대와 맞 먹는다고 - 스탈린- 우즈벡사람들 꿈 에어컨-LG, 모니터-삼성, 휴대폰-삼성, 드라마-한국영화.연속극(현재 선덕여왕방송중),자동차-대우, 모두 한국산을 좋아한다고, 우즈벡 실권자는 경찰, 검찰, 중앙정보부라고, 교육제도-9학년(중학교까지)의무교육, 결혼 조기 16세~26세(노처녀). 45살 이면 할머니라고, 일본수상이 대우차 많은 것을 보고 대우베키스탄이다고, 급여 경찰 300-350$, 버스기사 300-400$, 은행원 150-200$, 기술자-인기, 세계 4위 면화생산국, 70%황무지 사막, 석유자원 부국, 연료는 개스, 생선 먹기 힘든 나라. 양어장 많이 만들고 있다. 고기는 양고기, 쇠고기, 닭고기 순으로 많이 먹고있다. 세계 10대 기독교 탄압국, 선교활동하면 추방, 인터넷 통제국가, 현재는 일부일처제, 세속적 이슬람국가, 한 가족당 3명(자식) 대가족제도, 물건을 만들어 놓으면 금방 팔린다(물자 부족), 체리.수박은 설탕보다 더 달다. 목화-백색황금, 빵 전문가가 있어서 대부분 사먹는다.
고려인 마을(김병화농장)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당시 원래 갈대밭이었으나 고려인들이 개간하여 농장을 만들었다. 여러 개의 집단촌이 있는데 그 중 알려진 곳이 김병화 마을,뽈리다젤 마을, 시온고 마을 등이 있다. 고려인 마을의 학교중 학생 수가 가장 많은 학교는 김병화마을의 59학교로 약 230명 정도의 고려인 후손이 다니고 있다. 김병화 농장은 1925년 북극성 농장으로 창설되어, 1974년 김병화 농장으로 개칭되었고, 김병화가 1940-74년간 농장대표를 역임하면서 고려인 중 유일하게 2차례나 노동영웅 훈장을 받으며 정부로부터 인정받는 우수한 집단 농장을 조성하였다. 그의 동상에는 ‘이중 사회주의 로력영웅’이라고 쓰여있다.
김병화마을 마을 회관에서 상황버섯,목화꿀,석류쥬스, 로얄제리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판매 수익금은 고려인 마을 복지기금조성 및 마을 회관 보수 비용으로 쓰인다고 한다.
18:55분 석식장소 도착. 우즈벡 사시는 현지 사업하시는 분들과도 교류 인사. 또 올해 키우리 산악회 우수회원들께 감사패 증정.이제 우즈벡에서 마지막 식사인데 아직도 소주가 나온다. 임원들께서 세심한 준비에 감사할 뿐이다. 20:20분 공항으로 이동. 출국수속 22:20분 OZ 574편 아시아나 서울행출발.
서울 08:50분 도착 입국수속. 벌써 서울의 공기가 상큼하게 다르다. 역시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어서 인지 새삼 우리가 살던 곳에 감사하고 고맙다. 09:25분 송광버스 탑승. 10:30분 화성 휴게소 에서 아침 식사. 야외소풍 온듯 소나무 밑에 탁자와 의자를 놓고 순수 우리나라 반찬에 밥을 먹으니 참 꿀 맛이었다. 여기에 막걸리 한잔 금상첨화였다. 정찬용회원께서 우리 막걸리도 브랜드화해야 한다고 하면서 국순당이 제대로 하고 있다고 말씀. 큰아들은 백세주를 주고, 딸이 자기도 하나 주라고 하자 국순당 막걸리를 주었다고 한다. 14:35분 고인돌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임형승 전 총무 마무리 멘트 해단식은 7.10일 일요일 건영포차에서 한다고 감사. 15:15분 비엔날레 주차장 도착. 각자 집으로 안~녕.
마치면서 이번 우즈벡에서 느낀점
1.우즈베키스탄에는 스탈린의 강제이주에 의한 고려인들이 살고 있었고, 외모는 우리와 비슷하나 우리민족의 특징을 잃어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2.소련 시절에는 고려인들이 잘 살았으나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하면서 우즈베키어를 공용어로 선택. 고려인중 러시아어만 알고 우즈베키어를 몰라 주요 공직을 우즈베키인에세 빼앗겨 살기 힘들어진 경우도 있다고 한다.
3.고려인들이 갈대밭을 죽기 살기로 개간하여 비옥한 농장을 만들고, 대우 자동차가 이 나라의 도로에 가득차있는 것을 보고, 또 한류열풍으로 겨울연가, 대장금, 선덕여왕 등 드라마 방영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간다는 애기를 들었을 때는 우리나라의 국력신장을 보고 참 기분 좋았다.
4. 역사가 오래 되다보니 많은 유적과 유물이 있었지만 우리나라처럼 외침을 많이 받아 유적이 파괴되어 있었다. 재원이 부족하여 많은 유물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5.이슬람국가이지만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은 일부일처제라거나 부모를 공경하고, 버스에서 어른을 보면 일어서서 앉으라고 양보, 집안에 손님이 오시면 제일상석에 앉으라고 권하는 예의 등, 다른 점은 먼저 큰 아들이 결혼하면 부모를 모시고, 다음에 둘째가 결혼하면 큰 아들은 분가하고, 마지막으로 막내가 결혼하면 부모님을 모신다고 한다.
이번 여행은 오성동 원장님, 박성수 명예원장님, 이영길 회장님, 이용현 명예회장님과 임원님들께서 준비를 잘하시어 안목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함으로써 절정에 이르지만 그곳까지 가기 위해 역사를 탐구하고, 여행가방을 준비하는과정, 가는동안 스쳐가는 풍경, 마주치는 사람들, 예기치 못했던 이런 저런 에피소드 또한 소중한 여행의 요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내년에도 키우리의 해외산행이 어디로 가게 될지 벌써부터 설레이는 것은 우리 키우리 회원님 모두 저와 같은 마음이리라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6.24~28(4박5일간)
본글은 한국산학인포지 7월에 편집되어 게재한 글입니다.(썰렁한 애기는 빠지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