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세상 끝’ 마을에서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인데, 평생을 살아오면서 변하지 않는 꿈이 하나 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공간에서 살아봤으면...... 하는 꿈이다.
그래서 그동안 몇 차례 그런 공간에서 살아보려고 애도 썼고 부분적으로 그렇게 살아 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그 꿈은 사라질 것 같지 않는데......
‘쿠바’라는 나라에 왔고, 기왕에 섬나라에 온 김에(사방팔방이 바다일 테니)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기위해 애를 썼고,
결국 바닷가 마을의 전망 좋은 방을 차지하기는 했는데......
가, 아름다운 나날들
살아 보니, 어떤 때는 굳이 특별한 일이 있어서 행복한 건 아닐 때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저 일상생활 그 자체가 행복일 수 있다는 얘긴데, 지금은 당장 내 눈앞에 펼쳐지는 일이고 살고 있기에 그리 절실한 것 같지는 않지만, 여기 ‘까보 끄루스(Cabo Cruz)’에서의 초반 생활이 그럴 것 같은 느낌이었다.
*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서 저녁 식사를 한 것으로부터 내 '쿠바에 와서의 본격적인 생활'이 시작됐다고 봐도 된다.
특별히 좋은 음식에 맛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 분위기에 젖어 특별한 저녁을 먹은 뒤, 잠깐 노트북 앞에 앉았다가,
나는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바람 가득 통하는 방이다 보니 시원하기 그지없었는데,
'이게 바로 천국이로구나!' 하면서 요 며칠 동안 겪었던 마음고생을 다 날려버리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도 비가 오네!' 하고 의아해 했지만, 사막도 아닌 다음에야 비는 언제 어디서라도 내릴 것이었다.
그러다 잠이 들었던가 보았다.
4 . 12
*
깨어나 보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젠 내 일을 해야지!' 하면서 바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뭐부터 해야 하나?' 하다가, 일단 어제 찍었던 사진들(상당히 많아)을 정리해두기로 했다.
그렇게 일을 하고 있는데, 한밤중인데도 상당히 많은 비가 세찬 바람과 함께 쏟아지는 것이었다.
밤새 의외로 많이 내렸던 비가 멈춘 아침은 다소 쌀쌀하기까지 했다.
정 동향은 아닌 듯 약간 비스듬하게 강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기에, 잠자는 사이 다소 눅눅해져 있던 이불보를 그 햇살에 말릴 요량으로 방의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문밖, 이 집의 테라스는 어젯밤 내렸던 비의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상태였지만, 자연스럽게 물청소를 한 듯 깨끗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햇살이 어찌나 강한지, 그 햇볕의 세계와 그늘의 세계의 격차가 엄청나게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 방에서는 뒷문을 통해 어젯밤엔 등대의 불빛이 돌아가는 것도 보였고, 이 마을의 ‘석호(潟湖)’도 보이는 등 그래도 어느 정도 이곳의 지형까지도 살펴볼 수 있어서 좋기만 하다.
어쨌거나 윌리암 집에서 잤던 그저께 밤부터 글 작업 ‘독일 이야기’가 시작됐기 때문에,
‘오늘은 하다못해 드로잉이라도 하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이미 방에 있는 창을 통해 보이는 바다 모습에 마음을 빼앗겨 있었기에, 그걸 그리기로 했다.
그래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노트북을 치운 뒤 거기에 종이를 놓고 방향을 창 쪽으로 돌려 그림을 그리려는데, 이집 주인인 '초초'가 ‘따마린도 주스’라며 달랑 컵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그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혹시 내가 그림을 그릴 탁자 하나가 있을까?"하고 물었더니,
"어젯밤 식사했던 그 탁자면 되겠어요?" 하고 묻기에,
"그럼,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잖아?" 했는데도,
"나중 일은 나중에 하면 되니까......" 하면서 그 탁자를 가져와 줘서 거기서 조금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렇게 아침나절엔 크레파스를 이용한 드로잉을 하나 했고, 제목을 ‘바다가 보이는 침실’이라고 붙였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 유화로 한다면 이 보다는 풍성한 색감을 낼 수 있을 터라 그걸로 만족했다.
그런 뒤, 역시 ‘4월 달력’도 해야겠기에(나는 이번 여정을 달력으로 표현하고 있는 중으로, 캘리포니아 체류부터 진행되고 있다.),
달력의 그림은 아무래도 여기 ‘까보 끄루스(Cabo Cruz)’가 배경이 돼야 할 것이어서, 이 마을의 상징일 수 있는 등대를 그려넣어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느라 한 시의 틈도 없이 바빴고 오전이 다 가버렸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샤프펜슬로 스케치를 하면서부터 손이 떨려서 제대로 된 선이 나오질 않아 애를 먹었는데, 그 연필 선을 지우지도 않고 그 위에 크레파스 색을 입혔는데도, 그 과정에서도 내가 원하는 선을 그려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내 손이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오늘 따라 새삼스럽게 그리고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만큼 내가 늙었다는 뜻일 것이었다.
그러니 한숨이 절로 나왔는데, 어디 그 것으로 끝날 일이던가?
앞으로는, 이렇게 컴퓨터(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것조차 힘에 겨울 수도 있을 거란 생각으로 미치자,
앞이 막막해지기도 했다.
'아, 그러기 전에 어서 이 일을(글 작업 ‘길’) 마무리 져야 할 텐데......' 하고,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창문 차단막 사이로의 짙은 수평선을 바라보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전성기#
‘뭐든 때가 있다.’듯, ‘그림 그리는 일’도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살아온 것 같다.
평생 그림을 그려온 난데, 요즘에야,
‘아! 그림도 그릴 때(나이)가 있는 것이로구나......’ 하고 느끼고 있는 중이라.
사실 난 그림은 죽을 때까지 그리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이 '정년'이네 '은퇴'네 할 때에도,
‘나는 정년이 없는 사람이니까.’ 하는 우쭐한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예순이 넘어가면서 뭔가 조금씩 이상 징후가 보이는가 싶더니, 이제는 손이 떨려 제대로 된 선(線)도 안 나오고, 세밀하게 그려야 할 부분을 대충 얼버무리는 건 이미 지난 일이 돼버렸다.
물론 지금 당장 그림을 그만 둬야 하는 건 아니다. 요즘에도 그리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분명한 건,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더듬더듬 그려댄다고 하지만,
앞으로 언제 또 다시 그런 새로운 상황(이젠 영영 못 그릴)과 맞닥뜨릴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런 순간은 어김없이 오겠지만......
그러니 이제 그 순간에 대한 준비도 해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뭘, 어떻게?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으로?
그런데 그러고 보면, 나를 허탈하게 하는 게 또 하나 생겼다.
‘내 화가로서의 기능이 그렇게 퇴화되고 있다면, 누구에게나 한 번은 있다는 ‘전성기’, 그러니까 ‘나의 전성기’는 언제였다지?’ 하는 의문이 아니 들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내 전성기는 이미 지나갔단 말인가? 아니면, 아예 없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역시.
그걸 깨닫게 되면서는 또 끝없는 절망이 내 온몸을 감싸기도 한다.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기다려왔던 내 ‘전성기’는,
이미 지났거나 아예 없었다는 얘긴데,
아,
평생 그림을 그렸어도,
언제가 전성기였는지도 모르고 살아온 나는,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는 ‘전성기’조차도, 아예 없는,
그래서 ‘이름도 없는 화가’가 돼 있는가 보다.
어느덧 예순 막바지로 치닫는 나이까지 살아왔건만,
그림은 죽을 때까지 그리는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그림 그리는 것도 다 때가 있는 줄은 상상도 못하며 살아왔다는 것이,
내가 ‘화가’로 살아온 삶이다.
그런데, 왜 이리도 허탈한 것일까? #
그렇게 '짧은 글' 하나를 순식간에 써놓고 나는 또 다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덧붙이기 시작했다.
# 물론 내용적으로 보면 비관적이라, 내가 지금 즐겁다고 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이 대목의 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것마저도 지금의 나는, 일종의 행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쿠바에 와서 겪는 내 인생의 늙어가는 한 변화를 절망으로 받아들이며 이 기분을 꺾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난 행복하니까. #
그러고 있는데 주인이 점심을 가져와 먹었는데,
어제 저녁의 첫 식사에 비해 너무나 무성의한 식사였다.
특히 샐러드에 섞은 상추가 다 낡은 이파리 두 장이어서(그것도 하나는 누런 잎이었고), 아예, 건들지도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
그리고 그 얼마 뒤 그가 돌아와 그릇을 수거해 가면서 다소 멋쩍어 하는 표정이었지만, 그건 내 영역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먹기 싫은 걸 억지로 먹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게 내 스스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어야 했는데, 여기서는 그게 불가능하다니 어쩌겠는가......
그런 뒤, 생각대로 낮잠을 자기로 했는데, 여기는 바람통이라 도대체 아무 것도 필요가 없었다.
정문을 닫아도 창틀만 조절하면 바람이야 얼마든지 쏟아져 들어오니까.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낮잠까지 자고 일어났다.
그리곤 바로 ‘제 6권’ 글작업에 들어갔다.
하루 종일 있어도 여기는 바람이 얼마나 잘 통하는지 땀도 안 나고 그다지 덥지도 않다.
고개만 돌리면 파랗게 펼쳐진 바다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만이 바람결에 따라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고, 이 동네 놔먹이는 닭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소리만이 다소 성가시게 들려오곤 한다.
오후엔 햇살이 어찌나 뜨거운지 문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타월을 말리러 뒤 테라스에 나가니, 햇살이 과히 살인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대로 햇볕에 노출했다가는 살이 다 익을 것 같은 따가움이었다.
그리고 바다가 바로 옆인데도 어째 그다지(의외로) 끈적거리지 않는 특징도 좋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렇게 바닷가에서 지내면 금방 피부가 끈적거릴 텐데, 여기는 습도와 염도가 낮은 건지 약간 눅눅한 기는 있지만, 생각보다는 훨씬 뽀송뽀송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오늘도 얼굴만 씻고 아직은 샤워도 하지 않았는데, 그런 대로 지낼 만한 것만 봐도.
인터넷만 연결된다면 금상첨화일 텐데,(아니, 그로 인해 쓸데없이 더욱 바빠질 게 뻔한데도 그런 생각을 하니......)
일을 하는 사이에도 문득,
‘이젠 뭘 하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래봤자 할 건, 그림은 좀 생각을 해야 하므로, 글 작업밖에 할 게 없는데도......
이제 그 생활하고도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서 여기에 있는 동안 ‘독일 이야기’를 비롯한 일해 놓을 게 많으니까.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좋으니까. 더구나 내가 여기에 휴양온 사람이 아니니까.
더구나 일하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의 공간을 마련한 상황이니까.(문밖이 바다니 누워도 앉아도 서도 바다와 함께하는 기분이다.)
4 . 13
'하루 기록(일기)치고는 양이 엄청나네. 그만큼 할 말이 많다는 건, 그만큼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는 것이고, 그만큼 내가 의욕이 넘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에게 아직 그런 정열이 남아있다는 것이 그래도 나쁘진 않다.'
*
어젯밤에도 적지 않은 비가 내렸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또 그만큼 일찍 잠에서 깨어났는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채 9 시도 되기 전 같았다.
그런데도 일어나 ‘제 6권’ 글 작업을 하는데,
비도 내리고 해서 불을 켜놓았더니, 이상한 날 것이 몇 마리 날아다니며 귀찮게 해서, 불을 끌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다시 누웠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결에도 비가 내리고 있음을 느꼈다.
새벽에 일어나(3시 반) 다시 글 작업을 조금 하는데, 다소 눅눅한 기분이 들어 잠시 누웠는데 잠이 들었고,
일어나 보니 아침은 다시 쌀쌀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해가 뜨려기에 일어나자마자 꼴촌(매트리스) 등을 내다가 햇볕에 말리려고 했는데, 하늘을 보니 크고 시커먼 구름이 떠오르는 해를 덮을 기세여서 관두고 말았다.
아침은 어제 주인이 가져왔던 빵 하나에 우유(분유)를 물에 타서 먹고, 바나나 남은 것 하나로 때웠다.
그렇지만 오늘은 글 작업도 좀 하는 등 어정쩡하게 오전을 보내는데,
주인 ‘초초’가 또 과일 몇 개를 들고 올라왔다.
‘치리모야(Chirimoya)’ 하나, 바나나 하나, 토마토 두 개.
그런데 그걸 받고 보니 문득 그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
그와 다음 월요일 마을에서 버스가 나가는 아침에 ‘니께로(Niquero)’에 장보러 나가기로 약속을 하고, 바로 그림 작업에 들어갔다.
서울에서라면 이런 그림은 그리지 않았을 터지만, 여기서는, 특히 열대 과일이라고 해서 그냥 호기심으로 손을 풀 겸 드로잉을 시작했는데,
그렇게라도 일만 한다면 불만은 없다.
언제 어디서든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내 일만 하게 된다면,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고 나는 행복한 사람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해 둔 게 있다.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글 작업 ‘제 6권’은 ‘독일 이야기’인데, 이번엔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 여기 쿠바에 와서 지내는 이야기도 일기로 남기다 보니, 왠지 그 두 이야기를('독일' '쿠바') 연결시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생각을 거듭한 끝에 옴니버스 식으로 엮어보려고 한다.
어차피 한 사람의 시간 차(25년)를 두고 낯선 외국에 가서 어떻게 적응해가며 지내는지의 기록들이라, 40대 초반의 독일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정리해서 인터넷에 올릴 상황의 주변 상황이 바로 여기 쿠바라서, 두 이야기를 비교해가면서 읽어도(써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다.
그리고 내가 여기 와서 있었던 일을 그냥 흘려버리기엔, 그것 역시 너무 아까워서다.
글쎄,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좀 헷갈릴지 모르지만.
점심이 가까워질 무렵 드디어 ‘윌리암’이 나타났다.
한 손엔 빠빠야 하나를 들고.
그러면서 인터넷을 하려면 언제든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지만, 그 집 식구들이 없는 한가한 시간을 선택해야 할 것 같아서 걱정인데, 그는 ‘안토니오’ 영감님 집에 들렀다 왔는지,
“영감님이 세뇨르 리(나) 얘길 하던데요?” 했다.
왜 아니겠는가? 그저 혼자 시간만 때우고 사시는 분인데...... 더구나 한 이삼 일, 나와 함께 지내다 이제 뚝 떨어져 있으니......
어쨌든 내가 이젠 시간이 많지 않아 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집마저 자주 들락거릴 수는 없다.
점심을 먹고 샤워를 하려는데, 등이 타서 벌겋게 익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제 그저께 밤에 자는데 등이 따가웠던 것인데, 안토니오 영감님 집에서 한 이틀 웃통을 벗고 바깥에서 지냈던 게, 주로 그늘에만 있었는데도 그렇게 탔던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이상하다고만 여겼는데, 여기 햇볕의 강함을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바다에 들어갈 때도 위에 티셔츠 같은 걸 입고 있는가 보았다.
어디 그 뿐인가?
처음 윌리암 집에서 자다가 모기에게 물린 곳이 어찌나 가려운지, 시도 때도 없이 긁게 되고, 또 남들 보기에도 좋지 않을 것 같아 제대로 긁지도 못하는 등,
여기 풍토에 적응하느라 심신이 다 피곤하긴 하다.
그렇지만 이 방은 바람 하나는 끝내주게 잘 통한다.
물론 이 방은 한 쪽이 벽으로 막혀있지만 세 곳에서 들어오는 바람에(그것도 이 마을의 꼭대기에 위치해 있어서) 파리도 오지 못하는 곳이라서 좋다.
요리만 해 먹으면서 지낼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
'물론 이때까지도 나는 여기 쿠바의 현실(사회 구조)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그런 현실성 없는 생각을 했던 건데......'
저녁을 먹고, 하모니카를 소리를 줄여가며 좀 불었고(이웃들이 알아 들으면, 그런 일로 또 이런저런 얘기가 나올 터라, 그런 것도 귀찮기만 해서), 그냥 누웠다.
창문틀을 닫아도 덥지 않은 이 곳.
그리고 눈을 뜨니 9시 반 경이었다.
바로 일어나 한창 일을 하다 보니, 11시 반인데,
인터넷만 된다면 한국하고 채팅하기 좋은 시간이어서, 아쉽기 그지없었다.
4 . 14
*
아침에 창 차단막 틈으로 윌리암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래서 테라스로 나가,
“야, 윌리암! 지금 인터넷 하러 가도 되냐?”고 물으니, 오라고 했다.
그래서 노트북을 챙겨 가지고 갔는데,
나는 그의 아이들이 학교에 갔거나 처 역시 일터에 간 줄로 알았는데,
오늘은 휴일인지 모두 집에 있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 공휴일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기왕에 간 김에 인터넷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새벽에 준비했던 내가 운영하는 까페에, 여기 인터넷 사정으로 당분간 운영을 정지할 수밖에 없다는 안내문을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올릴 수 있었다.
그것만도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요 며칠 동안 그게 마음에 걸려 찜찜했었는데......
그리고 잠깐 '카톡' 문자 교환을 한 뒤 서둘러 인터넷 사용을 중단했는데,
여기 시간과 한국 시간이 10시간 정도 차이가 나서, 그래도 한국에서 잠 잘 밤이 아니라서 몇몇은 내가 카톡을 보낸 즉시 답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렇게 잠시 인터넷 갈증에서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기는 했는데,
내가 서둘러 나오려고 하자, 그는 자기네 벽에 걸려 있는 두 개의 ‘인증서’ 액자를 가리키며 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처가 ‘치과 의사’이자 '닥터'라고 자랑했고, 자기는 또 스포츠 분야의 한 전문가란 사실도 곁들여 자랑하던데,
물론 내가 웃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무시한 건 아니었다.
윌리암은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과 인품이 있는 사람이란 걸 의심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돌아오니, 얼마 뒤에 초초가 치즈 한 덩어리를 가지고 올라왔다.
그래서 치즈 값으로 500 뻬소를 지불하고 바로 냉장고에 넣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미 오늘도 그가 빵 두 개를 가져왔기 때문에, 내 음식물 저장고가 점점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좀 웃긴다.
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먹거리를 비축하고 있는 모습이.
허긴, 혼자 살다 보니 어딜 가서든 먹는 것만큼은 스스로 신경 써가며 챙기는 내 버릇이고 생활이라, 여기서도 내 생활이 조금씩 자리가 잡혀가는 모양새인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아직도 내 발의 부기는 조금 남아 있고(처음 며칠 여기에 오는 여정이 너무 힘들었던 모양), 모기에게 물린 자국도 여전히 가렵기만 하다.
거기다 어느새 살은 시커멓게 탔고 늙은 몰골에 머리는 꺼칠하고......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바람이 시원하지가 않다.
문을 다 열어놓았고 주변의 나무들도 살랑거리기는 하는데, 시원한 바람은 불어오지 않고 있다.
이상하다.
허긴 며칠이나 머물었다고 내가 ‘이곳의 기후’를 다 파악할 수 있을까만......
점심은 랍스터가 나왔다. 그런데 이 집주인의 음식이 전반적으로 짜서,
그 아까운 음식이 별로였다.
아무래도 소금을 좀 덜 치라고 말해줘야겠다.
그런 뒤 낮잠을 잤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는데, 허허롭기 그지없었다.
‘아, 내가 할 일이란... 일밖에 없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순간, ‘그러고 보니 이런 적이 또 있었던 것 같은데......’ 하게 되었다.
2012년, 그러니까 '모로코' '따가즅'에서의 생활도 이와 비슷한 일상이었던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이란, 그저 세 끼 밥 찾아먹고, 일하는 것밖에 없는 생활이었던 것인데,
지금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앞으로 두 달을 어떻게 보낸다지?
오늘 멕시코의 K씨와 카톡('보이스톡'도 잠깐)을 했는데, 5월에 오라고 하던데......
그렇지만 여기서 서둘러 이 ‘독일 이야기’는 완성을 해야겠고, 그 일을 빨리 끝내놓고, 다른 일도 하나 쯤 더 하고 싶은데......
이런 시간과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테니(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꿈도 컸었네!' (며칠 지나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보니 그런 차이도 느껴진다.)
오늘도 비가 오려나 보다.
오후 들어 하늘이 계속 구름에 덮힌 상태다. 그래서 다른 날처럼 살벌한 땡볕도 아닌, 뭔가 조금은 가라앉은 기운인데, 문득,
‘‘안토니오’ 영감님은 어떻게 지내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당장 가 볼 것도 아니지만, 바다를 바라보며 혼자 우두커니 앉아계실 그 분이 걸린다.
그래도 한 2-3일 그 분과 이런저런 상당한 많은 얘기와 시간을 보냈기에, 그 정만으로도 어쩌면 그 분은 내가 올지도 모른다며 기다리고 계실 수도 있어서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한 번 처박히면 도통 움직이지를 않으려는 사람이라, 게다가 이 마을 중심부를 한참을 걸어가야 그 집에 닿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나에겐 달갑지 않아서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나저나 나도 참 웃긴다.
이 쿠바란 나라에 와서도 이렇게 꼼짝 않고 방에 처박혀 내 일을 하고 있다니!
6시 반 경이 되니 어둑어둑해져서 그냥 자두기로 했는데,
일어나 보니 기껏해야 8시 반일 뿐이었다.
그렇게 초저녁에 이미 첫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뒷문과 창 차단막을 부분부분 열어놓았는데도, 나방 한 마리 들어오지 않는 시원하기만 한 밤이다.
모기도 없다 보니,
‘지구상에 이런 곳이 또 있을까?’ 할 정도로 좋고 쾌적한 밤이기도 하다.
일도 제법 한 편이다.
그런데 '독일 이야기'보다는 ‘쿠바 이야기’가 더 생생하고 적나라하긴 하지만, 어차피 낯선 곳에 도착해 처음 며칠을 보내는 우여곡절이 나오는 부분이라,
장소에 한정되지 않을 절박함이 공통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나름 흥미는 있는 것 같다.
더구나 25년 전과 작금의 상황이 교차되기 때문에 헷갈리는 면도 없지 않지만, 뭔가 그런 상황이 더 절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고 그걸 표현하고 싶다는 말이다.
일을 하다 보니 엉덩이가 아파(이러다 욕창이 생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침대에 벌러덩 누웠는데,
밤이긴 하지만 너무 시원하고 쾌적해서,
‘이런 게 꿈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여기라고 천국이랄 수는 없지만, 그리고 여러 가지 불편한 점도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행복해서,
‘참, 세상이란......’ 하고 스스로 웃기도 한다.
4 . 15
*
다시 침대에 누웠다가 4시에 일어났다.
파도치는 소리는 여전했고, 닭 우는 소리도 간간이 들려왔다.
그래도 일을 할 수밖에......
오늘은, 어제 집주인한테 산 치즈와 바나나가 있어서, 한층 개선된 아침을 먹고(6시 반),
뒤 수도에 나가 설거지까지 한 다음 희미하게 솟아오르는 해를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토요일이라 오늘은 외부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올까? 그렇다면 비어있는 옆방에 손님이 들 수도 있는데......’ 하는 약간의 우려도 없지는 않았다.
일기를 쓰다 보니 지금이 4월이라는 게 너무 이상하다. 게다가 아직도 중순이라는 것도 신기하고......
여기가 열대기후라 지금 여름 같아서 그럴 거라는 건 스스로도 곧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그러고 보니, 세상 돌아가는 것도 잊어버린 상태다.
‘코로나 상황’도 궁금하고, 우리나라 대통령 문제도 궁금하고(어떻게 윤 00 같은 인간이 대통령이 되었는지, 울화통이 치밀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나에겐 이 00이가 됐다고 뭐 바람직했던 것도 아니라서, 허긴 미국도 트럼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 떵떵거렸고, 아직도 그 영향력이 있는 걸 보면, 세상은 다 그저 그런 듯...... 하다는 생각이 들고), 어떻게 그런 세상 돌아가는 걸 까마득하게 잊고 이렇게 지내고 있는지 내 스스로도 의아하기만 하다.
그렇게 내가, 이 지구 상 어디 한 구석(섬나라의 한 끄트머리)에 있다.
내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돌아다니다 코로나에 걸려서 죽으면 어떡할 거냐?”고도 했고,
“다 늙어서 그런 모험을 감행해도 되겠냐?”고 말리기도 했는데,
아무튼 현재까지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이 햇살 가득한 쿠바라는 섬나라 한 끄트머리에서 멀쩡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이렇게 살아있기는 하다.
그런 것마저도 신기하기만 하고......
#사람의 팔자#
‘나는 왜 이렇게 살까?’
요즘의 나를 스스로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들 같으면 쉽게 이런 생활을 할 수 없을 게 분명한데, 나는 할 수 있다는 게 희한한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원래 타고난 ‘역마살’에, 그 때문에 내가 한창 젊은 시절인 30대 중반에 어느 날 갑자기 스페인이란 나라에 가게 됐고,(물론 그 전에도 나는 국내에서 툭하면 어딘가로 떠나곤 했던 사람이지만 국외로 눈을 돌린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게 발단이 되어, 여기저기 외국을 다니다 보니 노하우가 생겨, 이런 낯선 ‘쿠바’란 나라에까지 와서도 자연스럽게 생활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물론 그러기에는,
무엇보다도 스페인에서 살았던 경험이, 특히 언어가 되기 때문에(이 점이 가장 큰 동기부여인 듯) 더더군다나 스페인어가 통용될 수 있는 여기 멕시코 아래 중남미에서는 어디라 할지라도,
이런 생활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인간사가 다 그렇듯, 인과응보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니, 이것 역시 운명적인 내 ‘길’을 가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다른 말로 한다면 ‘팔자’라고나 할까?
그러니, 지금 쿠바에서의 생활 역시,
그런 내 모든 성향이나 여태까지 살아왔던 노하우가 총 집결되어 벌어지고 있는 일의 일환일 수도 있겠다.#
어젯밤 침대에서 떠올랐던 영감(靈感)인, ‘하모니카 부는 사람’의 드로잉에 나섰다.
요즘, 저녁을 먹고(하루 종일 방 안에 있어서 소화가 안 될 수도 있어서 소화도 시킬 겸), 이웃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작은 소리로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데,
이 실내에서 밖의(바다) 풍경을 내다보며 하모니카 부는 사람을 그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내 얘기이기도 하지만, 이건 더욱 내 스타일을 내세워야 할 작품으로, 구성상으로도 다소 복잡할 수 있겠는데, 잘 나오면(설사 그렇지 않다 해도) 나중에 유화로 확대 재생산하고 싶은 작품이라, 자못 긴장이 되기도 하고 기대가 크기도 하다.
그렇게 일을 하고 있는데,
주인 초초가 달랑 빵 하나를 들고 올라왔고, 나중에 또 하나를 더 가져오겠다기에,
음식에 소금을 조금만 줄여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러고서도 계속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 얼마 뒤엔 또 그의 형 윌리암이 왔는데,
며칠 전에 내가 부탁했던 수제 카스테라를 사왔는데, 그 크기가 작지 않았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여기서 살아갈 태세를 갖춰가고 있고, 또 개선돼가고 있는 중이다.
어쨌거나 오늘 오전엔 그림 작업을 했는데, 필경 비가 올 모양이다.
오전 내내 날씨가 흐린 편이다.
점심을 기다리며, 그 시간이 애매해서 이제는 글 작업 ‘독일 이야기’에 손을 대면서 보니, 몇 대의 대형버스와 깡통버스들이 들어오던데, 제법 많은 사람들을 싣고 있었다.
나는 창 차단막 사이로 그런 모습과 그 너머 바다를 이따금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파도소리까지 느끼면서 글 작업을 했다.
그래도 좀 까다로운 대목이었는데, 초벌이라도 해놓은 편이라 만족이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글이 정리돼 가고 있다.
점심은 닭이 나왔다.
그저 맛없는 닭의 가슴살 부위.
더구나 오늘은 샐러드도 없이 흰쌀밥에 고기와 얇게 썬 감자튀김이 전부여서, 뻑뻑해 먹기도 힘들었다.
심상치 않았던 하늘에서 결국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는 점점 세지더니, 그래서 문을 다 닫았는데도 천둥을 동반한 폭우로 바뀌면서, 무섭게 내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동풍이 부는지 출입문 아래 틈으로 물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어찌할 방법이 없어, 그냥 그걸 보고 침대에 누워 있다가(어차피 낮잠을 자려고 누워 있었기 때문)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깨어났는데, 밖에서 사람 소리도 들리는 걸로 보니 비가 멈춘 듯했는데,
주인이 올라오더니,
걸레 달린 닦개로 바닥을 닦아주면서,
"이상해요. 올해는. 다른 해엔 이런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하는 것이었다.
여기도 기후의 변화가 있어서 이런 집중호우가 내리는가 보았다.
4 . 16
*
사실 나는 지금 이 일기 스케치를 하기 위해 문서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오늘이 며칠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 노트북에 표기된 날짜가 여기 현지와 시간차가 있어 헷갈리기 때문에, 정확히 며칠인지는 잘 모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일요일이고, 17일이란 걸 지금 알게 되었다.
아침에,
지난 밤 잠자리가 조금 눅눅했기에, 베개 꼴촌 사바나 등 모든 침구를 테라스에 내놓았다. 막 해가 솟아오른 뒤였다.
그러면서 바로 ‘독일 이야기’ 작업에 들어갔는데,
윌리암이 찾아왔다.
어떻게 지내냐고 안부를 물어왔던 그는, 내가 환전해야 할 때는 자기를 통해서 하라기에,
"당연하지. 내가 여기서 누구랑 그런 말을 하겠냐? 다만 아직 돈이 필요하지 않을 뿐, 언제든 그럴 경우엔 너를 찾을 수밖에 없어." 했는데,
그는 ‘안토니오’ 영감님 집에 갔다 오는 길이라며, 그 분이 나에 대해 물었다기에,
"너도 알다시피 나는 밖엔 잘 안 나가, 그리고 내가 여기에 온 이유가 일을 하는 것이라,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야 조금이나마 움직이게 될 텐데, 그래봤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 영감님께는 들를 거야. 가서 수영도 좀 하고 싶고... 여까지 왔는데, 바다에도 못 들어가고 그냥 떠날 순 없잖아?" 하자,
그도 웃었다.
그가 돌아간 다음, 바로 아침을 챙겨 먹은 뒤 나는 다시 일에 돌입했다.
그리고 3장(독일 이야기 부분)을 한 단계 마무리 지었다.
그것만도 오늘 아침에 한 일의 성과다.
그러고서도 드로잉 하나를 더 하고 싶었다.
요즘 내 머릿속에 잡히는 생각인데, 어쩌면 모로코 시절에 했던 ‘숨은 집’과 같은 맥락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바람이 잘 통하는 방’이란 제목을 붙일 예정인데, 그 밑 작업을 위해 방과 방에서 보이는 창밖 모습들의 사진도 찍어 두었다.
그런 사진들을 한 평면 위에 임의적으로 배치해 내 쿠바에서의 이야기를 표현하려고 한다. 물론 이것 역시 옴니버스 식이긴 한데,
그 밑 작업을 하느라 오전을 다 보냈다.
그러고 있는데 주인 초초가 점심을 가져왔다.
그런데 식사가 너무하다 싶었다 .
물기 있는 건 하나도 없고, 다 바짝 마른 튀긴 음식 들 뿐이었다.
생선 튀김, 바나나 바짝 튀긴 것(나도 바나나가 있는데, 생 걸로 주는 게 차라리 낫지.), 거기다 꼬들꼬들한 콩밥.
그러니 입맛이 싹 가셨다.
그런데 주인은 원래 월요일인 내일 니께로(Niquero)에 함께 나가 장을 봐오기로 해놓고선,
내가 그 얘기를 꺼냈더니,
"세뇨르 리, 당신이 가봤자 살 게 아무 것도 없을 건데요......" 하면서, “필요한 게 뭔지 나에게 알려주면, 내가 사다줄 게요.”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뭔가 곤란하다거나 꺼림칙해 보여서, 일단 그렇게 하자고는 했는데......
글쎄, 굳이 나를 데리고 니께로 까지 가는 게 싫은 건지, 나와 함께 나가는 게 불편한 건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아니, 식료품이란 게 직접 내 눈으로 봐야, 사든 말든 할 텐데 말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여기 쿠바의 ‘사회주의 경제 체제’에 대해선 거의 백지 상태여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저,
이 마을은 너무 시골이어서(가게마저 없어) 뭘 사고 싶어도 못 사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인근의 조금 큰 도시인 ‘니께로’에 나가면 맘껏 장을 봐올 줄 알고 있었는데, 그건 '자본주의 경제'에만 익숙해져 있던 내 판단 오류였던 것으로, 그게 쿠바의 현실이었다.
그런데 그 문제는, 내가 그 얼마 전(처음) ‘까보 끄루스’에 오던 중간에 거기 큰 도시였던 ‘바야모’에서 점심을 사 먹으려는데, 나를 태우고 왔던 택시기사조차 어디에 가서 점심을 사 먹어야 할지 모르던 상황하고도 이어진다.
그러니까 여기 쿠바 사람들은(‘아바나’ 같은 곳이 아니라면) 서방세계(자본주의)에서의 일상과는 너무나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데, 그걸 알기까지에는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물론, 그것마저도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차이가 있겠지만......
그러니까 지금은, 그 일이 있은지 한 달 정도 지난 뒤라서(그 당시 기록을 정리하면서 다시 회상하고 있는 중) 그나마 조금 이해가 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내 생각만을 하면서, 도무지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불평만 하면서 지냈던 것인데, 아직도 여전히 나는 이들의 체제에 대해 모르는 것투성이다.
저녁은 카스테라 한 쪽에, 치즈 한 덩어리, 그리고 바나나 한 개로 때웠다.
점심 식사를 덜어놓은 건 아직도 내키지 않아 내일 아침에나 먹을 생각인데, 그런 걸 음식이라고 가져온 집주인이 나하고는 참 맞지 않는 사람 같다.
그의 형인 윌리암과는 너무 다른 사람이다. 같은 형젠데도 하는 짓과 성격이 달라도 그토록 다를 수가 없다.
오늘도 일은 제법 했고, 그만큼 피곤하기도 해서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일요일 밤인데도 어디선간 여전히 앰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모퉁이에서 사람들 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4 . 17
#그것도 운명인지...#
조금 일찍 들었던 첫 잠이었는데, 뭔가 이상하면서도 환한 기운에 잠에서 깨어났던 나는,
‘아니, 이 밤에 누가 테라스의 불을 켜놓았담?’ 하고 좀 짜증스럽게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런데,
어?
커다란 달무리가 진 환한 보름달이 정면에서 비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러고 보니 열어놓고 잔 창문 차단막 틈사이로 그 달빛이 그대로 침대까지 비춰져, 그러니까 그 달빛이 나를 깨운 셈이었다. 순간 기분이 묘해지면서,
‘아니, 무슨, 이런 멋지고도 낭만적인 일이 나에게 벌어졌다지?’ 하는 황망함에 잠시 멋쩍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초저녁일 수도 있는 9시 28분에 벌어졌던 실제 일이었다.
사실은 오늘, 오후 내내 구름이 잔뜩 껴(요즘 내내) 있어서,
‘오늘 밤, 보름달 보긴 다 틀렸구나!’ 하고, 며칠 전부터 ‘보름달 아래의 카리브 해’를 보겠다던, 내 오랜 꿈을 접었던 게 무색해진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늘이 다 개어 맑은 게 아닌, 일부 맑은 부분에 달이 떠 있었을 뿐, 밤하늘은 달 주변을 제외하면 짙은 구름으로 덮여있었다.
그러니,
‘저 달빛이 몇 조금이나 가려고......’ 하는 안타까움도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나마 이렇게라도 비춰준 달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테라스의 의자에 앉아 희뿌옇게 보이던 바다를 바라보면서는 약간의 실망도 하는 등,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중에도 어쨌거나 ‘보름달’을 조금 즐겨보기는 했다.
비록 짧긴 했지만, 분명 보름달이 맞긴 했으니까. 더군다나 '카리브 해' 바다 위를 비추는......
그런데 내가 그 ‘보름 달 아래의 카리브 해’ 라는 현상에 애걸복걸해 했던 이유 역시 이번 여행과도 연관이 깊은데,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멕시코에 있는 K씨(옛날 스페인 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이자 내가 이 쿠바를 떠난 뒤 바로 멕시코에 가서 만나게 될)와의 일화 때문이다.
그와도 참 깊은(평생) 인연인데, 옛날 멕시코 시절 때 한 번은,
그가 자기 대학 동문들과 함께 간다던가? 아무튼, K씨가 나에게 ‘깐꾼(Cancun)’에 가자고 했었는데, 내가 그럴 사정이 아니고 형편도 안 돼서(결국은 돈 때문에) 못 갔었는데, 그가 다녀와서는,
“이 형, 언제든지 기회를 내서, 보름달이 뜬 깐꾼의 해변엔 꼭 한 번 가보세요. 정말, 환상 그 자체드라구요!” 하고 극찬을 하면서 적극 추천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그와 함께 가지 못했던 게 너무 억울하기도 했고 또 안타까워서,
‘나도 언젠간 꼭 한 번 가 봐야지!’ 하고 다짐에 다짐을 했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어디 그렇게 돼주던가?(이번 남미 여행도 결국은 그런 식이긴 하다.)
그저 꿈으로 남아, 여태까지 해 보지 못한 일이 돼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쿠바에 오면서도, 멕시코 내에서의 환승지를 그 ‘깐꾼’으로 정했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기회는 이때다!’ 하며, 내 지난 꿈을 실행하기 위해 거기에 2-3일 멈춰 해변 구경이라도 해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하도 짐이 많다 보니, 현지 도심에 들어가 숙소 찾으러 돌아다닐 일이 너무 두렵고 끔찍해서(그것도 결국은 경제력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만.),
그냥 공항도 벗어나지 않은 채 비행기만 갈아타고 지나쳐오면서도 안타깝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며칠 전 달력을 보니, 곧 보름이어서,
‘여기 ‘까보 끄루스’도 ‘깐꾼’과 다를 것 없는 ‘카리브 해’의 바다인데, 여기서라도 카리브 해의 보름달이 뜬 바다 구경을 해보자!’고, 아이들이 명절을 기다리듯 손을 꼽아가며 보름을 기다려왔다.
그런데 결과적으론,
오늘밤 내가 본 바다는 내 기대와는 영 다른 그저 뿌연 밤바다였을 뿐, 특별한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아무 것도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나마 바다를 바라본 게 10 여 분이나 될까?
아무튼 찬란하게 밝았던 달은 곧 구름에 덮여졌고, 이따금 그 틈사이로 살짝 비치기는 했지만, 조금 전의 그 환한 달빛은 그저 과거의 현상일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하늘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검은 구름 덩어리가 너무 커서, 이제 달 자체를 보기도 쉽지 않을 상황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러니 실망이 커도 보통 큰 게 아니었다.
아, 그렇듯... 나는 ‘카리브해의 보름달’을 즐길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질 못한 사람인가 보다.
그렇게 몇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단 한 번 그 진수를 보지 못했으니......
더구나, 이렇게 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집에 머물고 있는데도...... #
*
어제 보름밤을 그렇게 보내고 아침을 맞았는데, 나는,
‘글쎄, ‘카리브해의 보름달’을 보는 것도 좋았겠지만, 지금처럼, 그저 평화롭고 아무 것도 부러울 것 없는 이런 아침을 맞는 순간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 하는 나를 발견했다.
어제 ‘독일 이야기’를 하던 중, 거기 한 대목에서 ‘황제처럼 살고 싶다’는 대목이 나왔는데, 그걸 정리하면서 나는 요즘의 내 일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행복한 아침#
물론 내가 원래 새벽잠이 많지 않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여기 와서도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아직은 약간 어두운 상태다.
침대 오른쪽 벽에 있는 창 차단막을 젖히면, 길 모퉁이의 가로등이 아직 켜져 있을 때가 많으니까.
그러다 침대 정면에 보이는 하늘이 밝아지면서 해가 솟아오른다.
그리고 여기는 일단 해가 솟기만 하면, 정말 찬란한 아침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방 창의 모든 차단막을 올리고, 정문과 그 맞은편 뒷문까지 열어젖히면 여기는 그야 말로 ‘바람통’일 수밖에 없는 구조로, 오죽했으면 내가 여기를 '바람의 방'이라고 했겠는가 말이다.
그렇게, 정면에서 환한 햇볕이 방안으로 하나 가득 쏟아져 들어온다.
그러면 나는 밤새 덮었던 사바나를 의자에 걸쳐서 테라스에 내놓고 말리는 것부터, 침상 정리를 한 뒤(한국에선 않는데), 잠깐 바다를 보며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아침 먹을 준비에 들어간다.
그런데 오늘 느낀 건데, 내가 먹는 아침거리들의 색깔이 다 엇비슷하다는 걸 발견했다.
분유를 물에 탄 우유 한 잔, 삶은 ‘유까’와 ‘고구마’ 한 조각씩, 그리고 ‘치즈’ 역시 한 조각, 다 흐여멀건한 미색의 먹거리들이었다.
글쎄, 거기다 요즘 한창 나오는 주먹만 한 망고 하나 정도를 첨가한다면, 물론 그 색깔이 노랗긴 하지만 정말 환상적인 아침식사일 수도 있다.
그렇게 다용도로 사용하는(그림을 그리고, 식사를 하고, 어떤 때는 노트북 작업을 하는) 탁자에 앉아 느긋하게 아침을 먹는데, 물론 결코 화려하다 할 수 없는 아침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나는,
‘내가 살아오면서 이런 호사를 누릴 때도 있었던가?’ 할 정도로 대만족이다. 물론 그 느낌과 분위기 역시 흠잡을 데 없고.
상큼한 아침 바람은 어디서 들어와도 좋기만 하고, 이제는 정면으로 바뀐 침대 위 창과 왼쪽이 된 창으로(두 창 차단막 사이로) ‘카리브 해’의 짙은 수평선이 보이고 그 아래로 하얀 파도가 밀려오는, 그리고 왼쪽 창의 페르시아나 틈 사이론 강렬한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그래서 어떤 때 너무 강렬하면 정문은 살짝 닫기도 한다.),
그렇게 상큼한 자연을 마주하며 아침식사를 하는 게(삼 시 세끼 마찬가지지만, 아침이 가장 상쾌한 것 같다. 맑고 깨끗한 하늘과 바람이 기가 막히게 시원하니까.) 이젠 일상이 돼 가고 있는데,
그 때가 7시 반에서 8시 사이이다.
그런데 이 ‘까보 끄루스(Cabo Cruz)’ 작은 마을에도 마을이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내가 있는 이 방의 위치가 안마을 가장 위쪽이자, 이곳까지 오면 정면이 ‘카리브 해’라, 오른쪽으로 꺾어져 바다 쪽 포구와 등대가 있는 바깥마을로 가야 하는데, 마을의 주된 건물인 학교, 약국, 식당, 바 등등이 있는 포구 쪽으로 마을 사람들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면서 내 관심을 끄는 게,
자주색 하의와 하얀 상의에, 역시 자주색 스카프를 두른 산뜻한 교복 차림의 아이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재잘거리면서 학교로 가는 모습이다.
열댓 명에서 스물 정도의 안마을의 학교 가는 아이들은 하나 같이 산뜻하고 깔끔해 보이는데, 특히 여자 아이들의 한껏 멋을 낸 듯하게 빗어 올린 머리가 인상적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여기 부모들의 마음(정성)까지를 읽을 수도 있는데,
바다를 배경으로 걸어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너무 평화롭고 생동감이 있어서 좋다.
그리고 어부를 포함한 포구로 출근하는 성인들의 발걸음도(여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은 듯, 상당한 비율의 깔끔하게 차려입은 여인들의 모습도) 활기찬 모습이어서,
‘아, 하루가 활기차게 시작되겠구나!’ 하면서 나는 천천히 아침을 먹는다.
그러면서 그 너머를(그 아래론 약 20미터 절벽) 보면, 카리브 바다 쪽엔 고기 잡으러 나가는 배가 있는가 하면, 이미 돌아오는 배도 한두 척 보이는데, 노를 저어가는 배의 모습 역시 평화로워,
그런 상황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 내 자신이 믿기지 않기도 해서,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글 작업인 '독일 이야기' 중,
‘베를린’에서 집도 못 구한 채 여기저기 떠돌던 어느 날,
‘황제처럼 살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망상에 젖었던 때가 상기되어,
‘아, 그 상황에서 오죽했으면 내가 그런 소리까지 했겠어?’ 하면서,
‘그러고 보니... 지금 여기 '까보 끄루스'에서 이러고 있는 게 바로 ‘황제’ 보다 나은 삶 아닐까?’ 하고,
쿠바에 첫발을 디뎠을 때와 비교할 수도 없는 안락함에, 행복해하고 있다. #
*
아침에 일어나서도 일을 제법 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의외로 빨리 일을 마무리 지을 수도 있을 것 같아 희망적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하늘이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 있어서 비가 올 것 같은데,
점심을 먹고 나서는 안토니오 영감님 집에 한 번 가봐야 할 것 같다.
그 분을 안 본지 어느새 1주일이 다 돼가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어제와 그저께, 이틀 동안 연필로 두 점의 드로잉 스케치를 해놓긴 했는데,
왜 그런지 채색하기가 겁이 나서 손을 못 대고 있다.
너무 오랫동안 수채화 붓을 잡지 않아서일 텐데,
확실히 붓을 잡기가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그건 그렇고, 어젯밤에도 그림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하나 잡힌 게 있는데,
물론 이 방 이야기로 제목이 ‘파도 소리, 바람 소리’다.
밤낮을 가릴 것 없이 방에 누워있으면 절로 들려오는 소리에, 문득 그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드로잉을 하고 있는데, 누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고, 윌리암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음식 얘기를 꺼냈다.
아무리 그의 친동생이라지만, 초초가 가져오는 음식이 내 입에 맞지 않아 힘들다고.
그랬더니 그가, 자기 동생이 오늘 ‘니께로’에 나갔으니 뭔가 채소 등을 사올 거라면서, 오늘 점심은 본인이 가져오겠다고 했다.
물론 그건 환영할 일이었다.
그러고도 작업을 계속했는데, 오늘은 드디어 밀려있던 채색작업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그림들이 괜찮았다.
그림이 거의 다 완성될 무렵, 윌리암이 점심을 가져왔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국물이 있는 콩 요리에 랍스터도 곁들인 음식이었는데, 확실히 그저께 초초가 가져왔던 것보다는 간이 맞고 맛도 있었다.
그래서 저녁으로 반절을 덜어두고 깨끗하게 그릇을 비웠는데,
얼마 뒤 빈 그릇을 가지러 왔던 윌리암이, 내가 안토니오 영감님 집에 간다고 했더니,
"오늘은 그 분이 계속 전화를 받지 않는데... 어쩌면 오늘 ‘니께로’에 나가신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러니, 오늘은 가지 마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낮잠이나 자기로 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글 작업을 하려다, 오전에 밑그림을 그려놓았던 ‘하모니카 부는 사람’의 채색 작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시작은 수채로 했는데, 사람 부분은 크레파스로 해야 할 것 같아 일손을 멈췄다.
그런데 그 느낌이 괜찮았다.
오전에 우중충하던 날씨가 어느새 너무 좋은 날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종일 일만 했더니 눈이 침침해서, 그대로 침대에 벌러덩 누웠는데,
바람이 어찌나 시원하고 좋은지,
‘아, 여기 바람은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하고도 있었다.
얼마 뒤에 집주인 초초가 올라왔는데, 과일을 한 바구니 담아왔다.
그래서 값을 계산하려고 했더니, 그 돈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럴 때도 있나?' 하고 의아해 하는데,
오늘 안토니오 영감님과 '니께로'에서 버스를 함께 탔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일 영감님 집에 가면 되겠네......’ 하는데, 그가 돌아서 내려가기에,
그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4 . 18
나, ‘카리브 해’ 바다 속으로
내가 웬만해선 바다에 몸을 담그는 사람이 아닌데, 여기 ‘카리브 해’ 바다에 와서는 자청해서 바다에 몸을 담그게 된다.
그만큼 여기 바다는 얕고 수온도 온화해, 나 같은 사람의 마음까지 훔쳤던 것이다.
*
어제 낮잠을 자서인지 초저녁에 잠을 청해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 뒤에 일어나 글 작업을 조금 하다 다시 누웠다가, 자정 즈음에 다시 일어났다.
‘독일 이야기’ 중 ‘쿠바 이야기’(이게 훨씬 양이 많다.) 한 대목을 정리했다.
요즘 벌어졌던 일이라 너무 세세하고 자질구레한 게 걸리긴 하지만, 정리는 해둔 편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몸은 피곤했는데, 창을 통해 파도 바람소리는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밤새 비가 내린 모양이었다.
아침에 해가 뜨기에 문을 여니 테라스 군데군데에 물이 고여 있었다.
여기서 지낸지 한 일주일이 되다 보니, 여전히 불편은 해도,
‘사람이 이렇게도 살 수 있는 거구나......’ 하고도 있다.
그러고 보면,
이들은 자기들 나름대로는 잘 살아가고 있는데,
이방인인 내가 괜히 그 사람들 생활상까지 들먹이며, 잘난 체를 했거나,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산담?’ 하고 혼자 찧고 까분 셈이다.
여기도 한 여름 더위는 있다고 하는데, 이런 더위만 같으면 얼마든지 살 것 같은 게(한국의 한 여름 무더위보다 여기가 훨씬 견딜 만 한 것 같은 게) 너무 신기하기만 하다.
'물론 이 즈음까지만 해도 좋았다. ‘열대 기후’라고는 해도 정말, 한국의 그 ‘열대야’와 비교하면 여기가 훨씬 부드러울 정도로 쾌적하기까지 한 기후였으니까.'
#현 상황#
어제까지 이 ‘바람의 방’에서 1주를 보냈고, 오늘 2주째 숙박비를 선불로 지불했다.
하루에 10불, 식사는 하루에 한 끼 3불, 하루에 13불, 일주일에 91불.
결코 비싼 편은 아니지만(싼 편이지만), 나 개인적으론 싸다고만은 할 수 없다.
내가 이렇게 돈을 들여가며 어딘가에서 장기간 머물 정도로 돈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다만 내 일만 하게 되면, 그 일이 잘 풀려만 준다면, 그깟 돈은 아깝지 않은데,
내가 여기에 와서 쉴 틈도 별로 없이 일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에, 불만은 없다. 아니, 오히려 지금의 나는,
‘너무 잘 됐다!’며 쾌재를 부르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1주일 전까지만 해도,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또 다른 제 3국행을 감행해야 하나? 간다면 어디로 가야 하나?’ 하는 고민을 했던 난데, 거기에 비하면 아주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잘은 몰라도, 여기 사람들은 ‘피델 까스뜨로’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특히 남자들이 스페인 사람들 억양으로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멕시코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그건 내가 스페인에서도 ‘피델’의 고향이기도 한 ‘갈리시아(Galicia)’에서 제법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거기 갈리시아 사람들 억양에 좀 익숙해져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는데, 뭔가 그런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분명 멕시코에서는 안 그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들의 말을 잘 이해하지(알아듣지) 못한다.
그저 일상적인 언어들을 이해 못한다는 게 아닌, 이들만의 뭔가 특이한 어투가 낯설기만 하다.
물론 내가 내 식으로 천천히 말하면서 이들을 이해시키는 건 문제가 없는데, 이들의 어투가 나에겐 잘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스페인어를 썩 잘하는 건 아니지만, 스페인에서보다 여기가 훨씬 더 이해가(듣기가) 힘들다.
내 입장으로만 보면,
초반에 입술이 부르트고 발이 팅팅 붓도록 힘든 일정에서,
이제는 발의 부기도 많이 빠졌고 입술의 딱지도 언제 떨어졌는지 모르게 자취를 감춘(요즘엔 거울 볼 일도 없다 보니) 상태고,
처음 윌리암의 집에서 이틀 문을 열어놓고 잤다가 물린 모기 자국은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도 있지만(한 번 긁기 시작하면 계속 긁어야 한다. 그것도 너무 힘들다.),
그래도 요즘은 여기 생활에 맞춰나가려는 모습이기는 하다.
물론 여전히 음식이 맞지 않기는 하지만, 이제 굶어죽을 일은 없을 것 같다.
내가 특별히 식도락을 찾지만 않는다면(내 입이 까탈스러워) 여기 열대 과일에도 익숙해지는 느낌이고(분명 새로운 맛이고),
뭐 특별히 견디지 못할 일은 없을 것 같다.
특히 어떤 한 부분으로 보면, 외부로부터 스트레스 같은 건 전혀 받지 않는 기분인 이런 데가 천국인 것 같기도 한데,
여기 바닷가 마을에 온 이래,
‘코로나’ 같은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돼 버린 느낌이다.
그런 건 일상에선 전혀 염두에 두지도 않고 지내고 있으니까. #
*
일손이 잡히지 않는 날이었다.
그렇지만, 그저께 하다가 사람 부분에서 멈췄던 ‘하모니카 부는 사람’을 하기로 했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부분인 사람 형상에, 그날 오후에 하늘에서 무게를 잃고 떠 있는 독수리를 보면서 영감을 얻었기 때문에, 한 점의 새를 집어넣으려고 한다.
그리고 완성을 했는데, 느낌이 좋아서 만족이다.
그림이 하나 둘 만들어지는 기쁨을 느끼면서,
여기 와서 해놓은 몇 점의 드로잉도 유화를 위한 밑 작업일 수도 있기 때문에,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작업하기도 바쁠 것 같다.
(그건 분명 너무 긍정적인 현상이다.)
이 전 '모로코', '미국' 등에서 일정 기간 지내다 한국에 돌아가서 했던 유화들처럼, 벌써부터 나를 흥분하게도 한다.
그러고 보면 여기서 지금까지 있었던 시간이 캘리포니아보다 짧은데(미국에서는 3주, 여기서는 이제 2주가 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에 대한 영감은 훨씬 많은 편이다.
그만큼 내가 감동을 많이 한 편이고, 이 생활에 만족하고(? 불편한 게 여전히 너무 많긴 하지만) 있다는 반증이기는 하다.
인터넷이 안 돼 너무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쪽에 신경 빼앗기는 시간 없이 일을 하는 쪽에 신경을 쓸 수 있어서일 터다.
그렇게 보면 문명의 이기가 내 예술생활에 도움만 된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편리한 점은 많지만, 보다 원초적인 영감을 얻는 데는 차라리 인터넷 없는 게 나을 수도 있다.
4 . 19
#성공적인(?) 물놀이#
여기 ‘바람의 방’에 지내면서, 일을 하느라 시간이 없어 거의 일주일 만에 안토니오 영감님 집에 가게 되었다.
그랬더니 대번에,
“나 같은 사람은 잊을 건가 봐요?” 하시기에,
웃으면서도, 그에 따른 변명을 늘어놓아야만 했다.
내가 원래 한 번 처박히면 어디든 잘 안 나가려 하는 특성이 있는 사람이라면서, 앞으론 최소한 1주일에 한 번은 오리라고.
처음에 왔을 때, 얘기 끝에 영감님이 지금도 수영을 너무 좋아한다고 하신 말씀도 들은 데다, 날더러도 수영을 해보라기에,
“저는 바닷가 태생이기도 하고 또 바다를 좋아해서 항상 여행을 바다가 있는 곳으로 가는 사람인데,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직접 물속에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했더니,
“여기 카리브 해 바닷물이 얼마나 좋은데요......” 하시면서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그래도 좀 오래 머물 거라면, 한 번 시도라도 해보세요. 후회하진 않을 테니......” 하고 빙그레 웃기에,
“제가 물속에 들어가는 걸 겁내기도 하고, 일단 물에 들어가면 나와서 샤워도 해야 하는 그런 일들이 번거로워 잘 안 들어갑니다.” 했었는데,
사실 여기 물 색깔만을 보면,
나라고 왜 아니 들어가고 싶겠는가.
무엇보다도 그 색깔이 사진이나 영화 같은 데에서만 보았던 바로 그런 환상적인 연한 녹색 톤의 바다라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건 아깝다는 생각을 오던 첫날부터 하고 있었고, 영감님 말대로 수온도 온화하다고 하니, 슬슬 구미가 당겨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가자마자 자청해서 바닷물 속에 한 번 들어가 봐야겠다고 했더니,
영감님도,
“나도 가겠소.” 하며 준비를 했다. 아마 (물을 두려워하는)나를 보호하려는 생각이셨던 것 같기는 했다. 그런데 영감님이,
“수영복 같은 건 안 가져왔나요?” 하시기에,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렇게 물에 들어갈 생각을 했다면, 어떻게든 가져왔을 텐데, 저는 한국에서 짐을 챙길 때도 평소처럼, 여기에서도 바닷가를 찾아가긴 하겠지만 물속엔 당연히 들어가지 않을 걸로만 생각하고, 수영복이 보였는데도, ‘저절, 어따 써먹게?’ 하며 귀찮아서 안 가져왔거든요......” 했더니,
빙그레 웃으면서도,
“그럼, 그냥 이대로 들어가지요. 어차피 나중에 샤워를 해야 하고, 옷들은 빨아야 할 테니까요.” 하면서, 지난번 한 이틀 이곳 그늘에서 있다가 살이 타서 아직까지도 허물이 벗겨지는 등 그 후유증 때문에 시달렸던 지라, 오늘은 일부러 미리 챙겨온, 좀 허름한(폴리에스터 재질의) 티셔츠를 갈아입는 등의 준비는 했다.
그런 뒤, 나는 바로 그 앞 바다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영감님은,
“저 쪽으로 돌아가서 들어갑시다!” 하고 거기 숲 쪽으로 가자기에 발길을 옮기면서,
“지금 제가 밟고 있는 길도, 여기서는 처음 가는 거거든요?” 하고, 내가 잘 돌아다니지 않으려 하는 특성을 강조하자, 이제는 어느 정도 나를 파악했다는 듯 그 분도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게 100미터 정도를 갔을까?
개울 같이 흐르는 물줄기가 눈에 들어왔고, 가까이 다가가자 정말 제법 큰 개울이 보여,
“여기가 민물인가요? 아니면 바닷물과 섞인 지점일까요?” 하고 물으니,
“이 위에 호수가 있는데, 이 골을 타고 밀물 때 호수로 바닷물이 들어갔다가, 지금은 다시 바다로 빠져나가고 있는 모양이오. 그러니 이 물은 짠물이지......” 하는 것이었다. (이 마을 외부에는 ‘맹그로브’ 숲으로 둘러싸인 생태 호수(석호)가 있는데, 거기에는 홍학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발을 물에 담그고 두어 발자국을 띄자, 그 조금 건너편에 얼마 전 영감님 집 앞을 걸어 나갔던 동네 청소년들 셋이 나무 가지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바로 거기가 맹그로브 숲이었다.
굵은 그러면서도 여러 갈래의 뿌리 겸 위로 연결된 가지들이 상당히 빽빽하게 보이고, 거기서 적어도 1.5미터는 될 높이에 그들은 각각의 나무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그렇게만 보아도 거기가 최상의 그늘이자 그들의 대화 장소일 듯 보이긴 했다. 그런데,
아래로는 물이 흐르는데 나뭇가지에 걸터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니!
그건 쉽게 볼 수 있는 광경도, 쉽게 할 수 있는 우리네 일상은 아닐 것이었는데(나에겐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들에겐 일상인 듯해,
‘아, 어쩌면 ‘지상 낙원’이 이럴 거야.’ 하는 생각도 든 순간이었다. 물론 그들은 그런 것까지 느끼고 있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영감님은 나에게 그런 것도 보여주고 싶었던 듯 일부러 그 쪽으로 나를 인도했던 것인데,
바닥은 미끄러웠다.
그래서 조심조심 그 흐르는 물 쪽으로 몇 발짝 발을 옮기는데, 어느새 허리 정도까지의 깊이가 되었고, 점점 물의 힘이 느껴지면서도 우리는 그 맹그로브 숲 아래로 난 물길을 걸어 나아갔다.
그러자 머지않아 바다와 맞닿는 부분에 도달 할 수 있었는데, 그것도 신기하고 또 희한한 경험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면, 내가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볼 것인가 말이다.
그러니까 거기가 바로 ‘카리브 해’로, 바다가 확 열리는 지점이었던 것이다.
여태까지는 영감님이 내 옆에서 나를 인도하고 있었지만 거기서부터는 앞장을 서며, 가급적 뭍과 연결되는 쪽으로 나를 인도하면서도,
“바닥이 밝은 쪽으로 가는 게 좋아요. 그게 모래니까.” 하기에, 물풀로 우거진 쪽 보다는(그런 곳은 울퉁불퉁한 미끄러운 돌과 자갈들이 있어서 미끄러지면 뭔가에 걸리고 찔리기도 해 발이 아프기도 해서) 하얀 쪽으로 발길을 옮기니, 확실히 부드러운 건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여기 ‘키리브 해’는 밀물과 썰물의 수위 차도 거의 없고, 어떤 곳은 무릎 약간 위 정도로 얕기도 하고, 수온도 따스한 편이라서 썩 위험한 바다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조금씩조금씩, 이제는 영감님의 집 있는 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물론 물의 깊이가 일정하지는 않았지만 허리 위쪽인 것만은 분명했고, 어떤 때는 가슴 높이까지 닿는 곳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확실히 물의 흐름에 내 몸이 저절로 움직여져서,
바다의 힘 앞의 인간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상기되었던 ‘바람 속의 먼지’일 뿐이라는 생각도 드는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어차피 처음으로 카리브 해에 몸을 담근 상태라, 그렇게나마 물을 즐기고 싶기는 해서,
그때부터는 물에 뜨는 연습도 해보는 등, 그냥 물속을 걸어 다니고 있는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물론 이미 영감님은 물속에 누워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무게 하나 없는 물체처럼 보였다.
그렇게 조금씩 영감님 집 앞쪽 조그만 바위섬까지 왔고, 난 손에 들고 있던 슬리퍼를 바위 위에 올려놓고는, 보다 자유롭게 물속에서 놀기 시작했다.
영감님은 내 3-4, 5-6 미터 쯤 떨어진 곳에서 나를 관찰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냥 나대로 물속에서 허우적대기도 하고 어떤 때는 몇 초간 떠있기도 하는 서툰 몸놀림으로, 그리고 쇠망치 같은 몸으로 물과 함께 하면서(아이들 물장구치는 수준으로) 그렇게 전혀 차갑지 않은 물에서 놀았다.
그 과정에서 영감님도 내가 물에 뜨는 건 인정을 해주었다.(물론 그 모습 역시 서툴렀지만.)
그렇게 30분 정도 물장구를 쳤을까?
나는 그걸로 만족할 수 있었고,
어느새 콧물이 자꾸만 나오는 등 물 속에 있었던 증상이 보이기에, 잠깐 그 바위 섬(섬의 돌이 무척 따뜻했다.)을 잡고 돌면서 거기에 혹시 어떤 해물이라도 있는지를 살펴보기도 했다.
그러자,
“언제든 나가고 싶으면 나가요.” 하고 영감님이 말했는데,
“조금만 더 있다가요......” 하고 나는 그 행위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 얼마 뒤,
“전 나가겠습니다.” 하자,
“나도 나가요.” 하고 영감님도 준비를 하고 내 뒤를 따라오는데,
“아, 이것만으로도 저는 오늘, 성공적인데요!” 하자,
“응?” 하고 놀라는 듯하더니, “‘성공’이라고요? 하 하 하....” 하고, ‘무슨 대단한 일을 했다고 ‘성공’ 운운하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그러면서도 그런 내가 너무 웃긴다는 듯 웃었다.
물론 나도 약간 멋쩍긴 했지만, 나에겐 사실이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바다에 들어와 보았던가.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 좋아했지, 이렇게 직접 바닷물에 몸을 담근 건 극히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2012년 모로코 얘기만 해도 그렇다. 거기서 해변 바로 앞에서 살았는 데도, 2달 반 사이에 겨우 너덧 번 몸을 담갔을 뿐이다. 그것도 너무 끈적거리고 더워 견딜 수 없을 때, 기껏해야 10분 안팎으로. 그런데 거기는 파도가 보통 센 게 아니어서, 더 있고 싶어도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 오늘 일은 나에겐 엄청난 일이기도 했으니, 과히 ‘성공적’이라 아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 영감님에겐, 너무 우스꽝스런 보잘 것 없는(사소하다고 볼 수조차 없는) 일이었을 지라도......
그렇게 나와, 나는 어차피 영감님 집에서는 샤워하기도 너무 힘든 상황이라, 물기만을 말린 뒤 ‘바람의 방’에 돌아가 샤워할 요량으로 거기 그늘에 앉았는데, 영감님도 앉으려 하기에,
“샤워하셔야죠? 저는 좀 있다 돌아가서 할 테니,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샤워부터 하세요!” 하자, 알았다며 집으로 들어갔다.
시원했다.
그리고 뭔가 후련했다.
짧은 물놀이였지만, 어쩌면 여기까지 와서 끝내 시도조차도 못한 채 이 바닷가를 떠날 수도 있던 내 특성으로 보면, 얼마나 다행이고 후련한 일인지 몰랐다.
그 얼마 뒤 샤워를 끝내고 말끔한 모습으로 나온 영감님이,
“언제든 수영을 하고 싶으면, 와서 즐겨요.” 하기에,
“그렇잖아도 일단 한 번 들어갔으니, 몇 차례 정도는 더 하고 싶은데요, 아마, 자주는 못 오겠지만, 그래도 오도록 해보겠습니다.” 하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확실히 여기 카리브해 바닷물은 염기가 적은지, 물기만 말리고 있어도 그리 끈적거리지 않는 특성이 있는 것 같았다.
여태까지도, 영감님 집에서 과일 같은 걸 먹은 뒤에도 지저분한 주방에 들어가기가 싫어서 집 앞에 있는 맑은 바닷물에 손을 씻곤 해왔는데, 그래도 물기만 마르면 크게 끈적거리지가 않아서 그 사실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온 몸을 바닷물에 담갔다 말려가는 데도 그 느낌은 크게 다르지 않아,
“여긴 바닷물의 염도가 그리 높지 않은가 봅니다?” 했더니,
영감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다오." 했는데,
‘같은 열대기후라 해도, 모로코와는, 그리고 멕시코의 태평양 연안하고도 많은 차이가 있는 게 분명하다.
여기 기후가 훨씬 부드럽고, 맑은 바람에 물까지 덜 끈적거려 나에겐 좋은 점이 많은데,
'여기에 있는 동안만큼이라도 좀 자주 바닷물에 들어가 보도록 하자!’ 하고 다짐도 했다.
아니, 우리나라만 해도 이런 경우엔 어쩌면 물이 마른 뒤에는 살갗에 얇은 소금기가 있기 마련인데, 여기는 소금기는 고사하고 그저 살갗이 뽀송뽀송한 수준이니...... #
*
어젯밤엔 한 시간 정도 바람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여기도 여름이로구나!’ 하기도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어디선가로부터 만들어진 청량제 같기만 했던 상큼한 바람이 불어와 끈끈하고 찜찜하던 더위를 싹 몰고 갔다.
물론, 그러자 여기에도 날파리들이 몰려와, 불을 켜놓았던 화장실엔 상당히 많은 날 것들이 날아와 빠져있거나 벽에 붙어있기도 했는데,
그래서 화장실 문을 닫아버리고는 방 안의 차단막 1단씩을 반절 정도 열어놓았음에도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내 답답함을 한 순간에 날려 보내 주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여름이 아니고 가을이다.
가을도 시월 아침 같다.
투명한 바다와 맑은 바람은 사람을 움츠리게도 하는데,
그래도 좋다. 가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맛도 너무 맑아서 좋기만 하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한 며칠 내 핸드폰의 시계가 두 시간의 격차가 있었는데,
그저께 부턴가? 다시 한 시간으로 줄어들어 표기되고 있다.
원래가 그랬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두 시간의 차가 있어서,
‘왜 그런가?’ 하고 이들에 확인도 해봤는데,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또 다시 이런 일이 있어서 헷갈리긴 한다.
나는 여기에 파리가 없다는 게 너무 좋다.
어딘가 있기는 하겠지만, 아직까지 내가 머문 ‘바람의 방’에서 파리를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특히 지저분한 환경의 안토니오 영감님 집에서조차, 그 분이 음식을 먹은 뒤 바로 설거지를 하지 않고 한동안 탁자에 내팽개쳐 두는 걸 몇 차례 보았는데도, 그런 식탁에서마저도 파리를 거의 본 적이 없다. 그게 참으로 신기하기도 해서,
‘거참, 이상하네! 사람 사는 곳에 이렇게나 파리가 없다니. 더군다나 여긴 열대기후라는데......’ 하면서, 멕시코거나 모로코를 떠올리면, 특히 모로코는 끔찍하도록 파리가 많아서 상상조차 하기도 싫을 정도다.
그리고 여기 이 마을에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 집 내가 머무는 ‘바람의 방’에는,
파리가 있을 수 없게끔 바람이 세다 보니(모기도 없다.),
파리로부터의 자유는 뭐라 말할 수 없는 후련함이거니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숨어있는) 행복이기도 하다.
방에서 얼마든지 문을 활짝 열어도 되고, 방충망 없는 창을 통해서도(허긴 여긴 유리마저 없다.) 깨끗한 자연(특히 이곳에서는 카리브 해의 맑은 색깔 등)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청량함이 있기 때문이다.
점심을 가져왔던 주인 초초는, 그 얼마 뒤 다시 올라왔는데, 그의 손엔 바나나 네 개가 들려 있었다.
그렇게 후식으로 바나나를 먹고, 낮잠까지 자고 일어났는데,
오후에도 그럭저럭 일은 했다.
그리고 뭔가 드로잉 하나를 더 하려고 머리를 짜내고도 있었는데,
오늘은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그 얼마 뒤 윌리암이 이 마을에서 제일 높고 전망 좋은 집 벽에 달라붙어 있기에 나가서 불렀더니,
날더러 와보라고 손짓을 해서, 그 집 구경도 해보았다.
재주꾼인 그는 그 집의 전기 문제를 점검하고 있었는데,(좌우간, 그는 이 마을의 ‘맥가이버’이기도 하고 또 오지랖도 넓은 친구다.)
그 덕분에 나는 그 집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래서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전망이 너무 좋았는데(거기서는 막히는 것 없이 바다를 다 바라볼 수 있었다.), 막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던 시점이라, 등대 쪽으로의 햇빛 때문에 사진이 잘 나오지 않는 아쉬움도 있었다.
아무튼 그 집 3층까지 올라가 다른 각도의 이 근방 사진도 몇 컷 찍어오긴 했다.
그렇게 돌아와서도 조금씩 부분적인 일을 하다가 7시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자는 중에도 비가 내린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꿈을 꾸고, 일어나 보니 8시 40분경이었는데,
일을 해야 했다.
4 . 20
*
안 좋은 꿈에서 깨어 일어났다.
닭이 울고 있었고, 창 차단막을 열어보니 마을 끝의 가로등만이 밝았다.
그렇다면 아직은 새벽이라는 말인데, 시간은 어느새 6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어젯밤에도 비가 내렸고, 오늘 아침도 청명한 가을 날씨 같다.
그런데 오늘은 다소 쌀쌀하기까지 해서, 나는 홑이불을 어깨에 걸치고도 있다. 괜히 긴 소매 옷을 걸쳤다간, 이래저래 빨랫감만 늘 테니까.
아무튼 이런 날엔, 만약 서울에 있다면, 어디로든 떠나고 싶을 만한 날인데,
여기서는 그런 생각마저도 없다.
어차피 여기는 이 세상의 끝이기도 하고, 이미 내가 떠나온 상태라서인가?
그렇지만 투명하도록 맑고 좋은 아침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오늘 눈의 컨디션이 좋질 않다.
그러니 일을 하기가 겁나고 일손도 잡히질 않아, 그저 맑은 바다만 창 차단막 틈으로 바라보고 앉아 있다.
초초가 올라와 삶은 달걀 네 개를 놓고 돌아갔다.
그런데 무슨 정성으로 껍질까지 벗겨왔던데, 그냥 가져와야 내가 냉장고에 두고 나중에 꺼내 먹지......
좌우간 이들과 사는 방식이 다르다 보니, 이래저래 맞지 않는 게 많을 수밖에......
오전 내내 그림 작업을 했다.
그러는 사이에 정전이 됐는지, 노트북이 ‘베터리 부족’이라는 메시지가 떴는데,
그것도 짜증나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여긴 정전이 너무 잦다.
그러려니 하기에는 작업하는 데 지장이 있어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작업은 80% 이상 된 것 같은데,
조금 두고 보면서 마무리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던 차에 주인이 점심을 가져왔다.
메뉴가 조금씩 개선됨을 보게 된다.
나는 그가 점심을 가져오면, 일단 반절을 덜어 저녁으로 남긴 뒤 나머지로 점심을 때운다.
그래도 내가 많이 먹는 사람이 아니라서, 양이 부족하지는 않다.
어떤 때는 그것도 남기니까.
그런데 그가, 오늘은 옆방에 손님이 든다며 청소를 하려는데 내 화장실도 청소를 해주겠다기에,
내가 하겠다고 했다.
그나저나, 오늘 밤엔 옆방에 사람이 오니, 조금 불편하긴 하겠다. 그동안엔 아무도 없는 2층 전체를 나 혼자 써왔으니.
그런데 오늘은 ‘빠빠야’ 한 개(집 뒤에 열렸던 것 중 익은 것)와 ‘망고’ 조금 큰 것(어른 주먹만 한 것) 네 개를 가져왔던데,
100 뻬소라는 것이었다.
나는 두 말 않고 200 뻬소 지폐를 그에게 넘겼는데(잔돈이 없어서), 그대로 그는 내려갔는데,
자기 집에서 열렸던 과일을 따다 주면서도 돈을 요구하는 그다.
윌리암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
그런 뒤 글 작업 ‘쿠바 이야기’ 뒷부분의 한 대목을 정리했다.
두어 시간을 그저 앉아서 일을 했더니 몸이 끈적끈적해 왔다. 그래서 샤워를 했는데,
얼마 전 탔던 어깨 등에서 껍질이 때처럼 벗겨져 나왔다.
별 거 아닌 것 같았는데, 화끈거려 잠도 제대로 못 자기도 했지만, 또 이렇게 허물 벗듯 껍질가지 벗겨질 줄이야......
아무튼 여기 와서 이런저런 것에 적응하느라 애를 많이 쓰기도 했는데,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4 . 21
#떠돌이 화가#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가?
당연히 일을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꼭 여기여야만 했는가?
그건 아니다.
이 세상 어디라 해도 내 맘에 드는 곳이면 된다. 아니, 설사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라 해도 가게 생기면 가기도 하고 머물기도 한다. 다만, 마음에 드는 곳을 선호하긴 하지만. (그게 다 경제력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여기도 어찌어찌 해서 오게 되었고, 그런대로 맘에 들어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루나 이틀? 아니, 한 나절 정도 있다가 가도 큰 미련이 남을 만한 곳은 아닌 것 같다.
아마 모르긴 해도, 웬만한 다른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했을 테니까.
이런 저런 매력이 있는 곳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빼어나게 아름답거나 마음을 빼앗을 정도의 특별한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아무튼, 그렇지만 나는 다르다.
일을 하기 때문에 장기간(한두 달) 머물 수도 있고, 또 길을 떠나 새로운 곳을 찾느라 버리는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이렇게 정한 곳에서는 남들은 하지 못하는 장기체류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도 몇 차례 들락거리는 여기 ‘윌리암’ 등이,
"세뇨르 리,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이렇게 방에 처박혀 나오지도 않고 지내는 거예요?" 하고 신기하다는 듯 묻곤 하는데,
"윌리암, 내가 일을 하지 않는다면, 여기에서 이렇게 지낼 수 있겠어?" 하고 오히려 묻게 되는데,
"그건... 그런 거 같긴 해요." 하고 수긍을 하면서도, “그래도 도대체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방에서 나오질 않으니, 내가 자꾸 오게 되잖아요?” 하고 웃다간,
“노트북으로 무슨 글을 쓰는지는 모르지만, 그림도 그리잖아요? 그건 내가 볼 수도 있으니까.” 하고 다시 묻기에,
“윌리암, 내가 하는 일이 좀 많아......” 하자,
“아무튼, 세뇰 리는... 좀 신기한 분이기는 해요. 내가 여기서 몇 년 ‘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당신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거든요, 하 하 하...” 하고 웃더니, 요즘엔 올 때마다, “새로 그린 그림 없어요?” 하고 관심을 보여서, 보여주기라도 하면,
“야, 확실히 당신은 ‘화가’가 맞아요!” 하고 나름 감탄을 해서,
물론 그의 관심이 싫지만은 않은데(아예, 그런 쪽에 관심도 없다면 나로서도 할 말이 없겠기에),
“세뇰 리는 한국에서 아주 유명한 예술간가요? 그럼, 부자겠네요?” 하고 물으니 내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아니, 내가 유명한 화가였다면, 윌리암 너에게 숙박료를 깎아달라고 했겠어?” 하고 말을 돌리자,
“그런가요? 그런데, 그것도 이해가 안 되네!”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돌아갔다.
내가 왜 유명하지 않은지 이해가 안 된다는 그......
그와 나누었던 대화처럼, 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것이라, 만약 일을 하지 못한 다면? 당연히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을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윌리암의 말마따나 나도 참 이상한 사람일 수 있는데,
그건 물론 내 ‘역마살’에서 비롯된 일이겠고,
나는 그걸 ‘팔자소관’으로 돌리곤 하는데......
아, 그러고 보니 나는, 지구상 어디라도(?) 그럴 만 한 곳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되어 있다.
바로 '떠돌이 화가'인 것이다. #
*
오늘 윌리암의 집에 가서, 오랜만에 인터넷 접속을 해서 한국과 스페인에 문자를 보내고, 내 인터넷 까페에도 글을 올렸다.
그런 뒤 내내 내 주변을 맴돌던 윌리암에게,
"윌리암, 내가 요즘 여기 쿠바의 남부 '20번 국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쿠바를 떠나기 전이거나 이 마을을 떠나면서 그 길을 한 번 가보고 싶다." 며 그에게 날짜를 알려주면서,
"6월이 되면 한 번 생각해 보자." 는 등의 얘기를 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일손이 잡히질 않았다.
그래서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테라스의 그늘에서 바다만 바라보고 서 있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집 주인 초초가 ‘니께로’에 나갔기 때문에, 점심은 윌리암이 가져왔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낮잠까지 자고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일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러다 저녁 무렵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오늘도 한 번 내리기 시작한 비는 억수로 쏟아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창문 차단막을 다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는데, 어차피 어두워지면서 잠이 들었나 보았다.
몸에 열이 나 깨어보니, 내 몸의 열기로 꼴촌이 후끈거리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다 보니 후텁지근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차단막을 조금 여니 낫긴 했는데, 습도가 높아서 생긴 현상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여기도 열대지역이다 보니, 그런 더위에서 아주 자유로울(벗어날) 수는 없을 테니까.
4 . 22
*
새벽잠은 잘 잔편이다.
날이 샐 때까지 편하게 잤다.
일어나 보니 아직 해가 솟아오르기 전인데, 날씨는 오늘도 마찬가지일 듯 선선하다.
어젯밤 비가 왔기 때문에 공기는 더 깨끗해져 있을 테고, 그만큼 상큼한 아침이기도 하다.
달랑 빵 하나를 들고 올라왔던 초초에게,
"어제 접시를 씻다가 깨트렸는데, 미안하다." 고 얘기하며, 그 값을 치르겠다고 하자,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하더니, "화장실 청소는 어떡하겠어요?" 하고 묻더니, 여기 청소하러 오는 여자가 따로 있다며, 점심 먹은 뒤 그 여자가 올 테니, 그 여자에게 맡기라고 권하기에,
'그건 잘 됐네!' 하면서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다.
그런 뒤 밖을 보니 염소를 끌고 나온 마을사람이 있어서,
지금 구상 중인 ‘카리브 해’의 한 소재로도 좋을 것 같아, 염소 사진을 찍으러 내려가 몇 컷 찍었다.
그런 뒤, 그 사람을 보니(노인인데) 마스크가 너무 허름해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하고는 내 방으로 돌아와, KF 마스크 다섯 포장을 들고 나가 줬더니,
"고맙다." 고 말하면서도, "당신이 내 염소 사진을 찍었으니, 마스크 대금은 지불한 거나 마찬가지에요." 하고 웃던데,
내가 그렇게 계산적으로 행동을 했던 건 아닌데, 일은 그런 식으로 돌아간 것 같아 좀 찝찝하긴 했다.
그렇게 돌아와, 사진 정리하려고 보니, 노트북에 문제가 있는지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은 뒤, 2시나 돼야 청소하는 여자가 온다기에 그 틈에 낮잠을 청했으나 잠이 오질 않았다.
그래서 어정쩡하게 있는데 청소하는 여자가 와서, 땡볕에 나가 있을 수가 없어서 그 옆방에 잠시 가 있었는데,
방이 정말 난리구석이었다.
그러니까 그저께 밤 이 방에 다섯 식구가 묵었는데, 2인용 침대 하나에 방바닥에 놓고 잤던 것 같은 매트리스(꼴촌)가, 그저 약간 두꺼운 스폰지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내 방과 똑 같은 크기와 구조의 방에서 다섯 사람이 잤다는 얘긴데, 침대가 부족하다 보니 바닥에 꼴촌을 깔고 잤던가 본데, 그 꼴촌이 일반 꼴촌의 반절 두께도 안 되면서 겉의 천까지 벗겨진 상태여서,
'여기서 이런 식으로 다섯 식구가 잤던 것이로구나......' 하고 알게 되면서 나는, 절로 나오는 한숨까지를 쉬고 말았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지저분하고 더럽게 방을 이용하고 나갔던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그들의 생활일 수도 있으니), 내 상황과 비교한다면 너무나 큰 차이에(내 방의 환경은 이 집에서는 최상급일 수도 있어서),
내가 고급이라서 우월하고 좋다기 보다는, 여기 쿠바 사람들의 생활상이 안 돼 보이고 안쓰러웠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청소가 시작되어, 방은 물론 바깥의 테라스 바닥까지 물청소를 하고 침구 일절을 갈아주니, 그나마 기분이 상쾌해지기는 했다.
그렇게 청소를 마친 다음에 바로 나는 안토니오 영감님 집으로 향했다.
내가 도착하니 문이 잠겨져 있었지만,
"세뇨르, 안토니오!" 하고 두어 번 큰 소리로 부르자,
"왔소?" 하면서 나오더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두'라면서, 영감님이 나에게 과일 두어 개를 건네주는데,
그건 자두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시큼한 맛은 있었는데,
그늘에 앉아서 어느 정도 얘기를 하다,
"오늘도 온 김에 물에나 들어가야겠습니다." 고 하자,
영감님 본인은 안 들어가겠다고 해서,
나 혼자 들어가기로 했다.
역시 상하의를 다 걸친 채 물에 들어가 갔는데, 뜨는 연습을 조금 하고 나중에는 수영 비슷하게 허우적대고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움직였던 거리가 한 5 미터 정도나 됐을까?
그래서 혼자 웃고 말았는데, 영감님은 바닷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도 30분 정도를 물장구를 치다 나오자, 영감님이,
"내가 보니, '접영'을 하는데요?" 해서,
"접영이라구요? 제가?" 하고 놀라면서 역시 웃고 말았다. 아마 내가 '자유형'을 못하니까 물에서 허우적댄 게 '접영' 비슷하게 보였던가 보았다.
그러니 내가 정말 오글거리는 기분이었는데,
아무튼 물에 들어갔다 나와서 기분은 좋아진 상태로 영감님과 얘기를 나누는데 발에 쥐가 나는 것이었다. 그러자 영감님이, '운동부족'이라면서,
"일을 하면서도 이따금 발과 발가락을 움직여 보세요." 하기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는데......
아무튼 내 발의 부기가 안 빠지는 것도 다 운동부족일 것 같아서, 그것도 걱정이었다.
그런데 서쪽에서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어서,
"비 내리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야겠습니다." 하면서 돌아왔는데, 올 때는 볕이 있더니, 샤워하는 사이에 비가 내리려고 천둥치는 소리가 요란해지고 있었다.
요즘엔 날마나 저녁때가 되면서 비가 오는데,
한 번 오면 엄청 쏟아지는 여기 비에 대비해야만 했다.
그렇게 오늘도 어느새 5시가 넘어가고 있어서,
'마땅히 한 것도 없는데(글 작업 조금 했나?), 왜 이리 시간만 빠른 거야?' 하고 심란해 하고 있는데, 윌리암이 왔다.
그래서 인터넷 얘기를 하자,
“내일 오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식구들도 다 있는 일요일 아침이라(그저께도 그랬다.) 싫다고 했더니,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오세요!" 하면서, 오늘도 옆방에 한 가족이 들 거라고도 했다.
그 얼마 뒤, 옆방에 사람들이 도착했는데, 웬 사람들이 그리 몰려오던지(이 마을의 한 가족과 연결된 듯),
그리고 애와 아버지가 어찌나 떠들어대는지 짜증스러웠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때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나는 차단막을 내려놓았고,
그런 일로 해서 좀 조용해지기는 했다.
사실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녁도 먹은 뒤라서, 나는 그대로 침대에 눕고 말았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는데, 그래도 옆방은 떠들어 대기에,
'저들은 기본 예의도 없나?' 하는 불만도 일었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4 .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