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대리 정00 씨 구술 녹취문
○ 구술자: 정00
○ 구술자 나이: 78세(1935년생)
○ 면담자 : 이학주
○ 면담주제 : 6.25 한국전쟁 전후의 용대리 상황과 구술자의 삶.
○ 면담일자 : 2012년 11월 27일
○ 면담장소 : 북면 용대리 노인회관
<면담 상황>
용대리는 몇 년 전 인제군의 마을제사를 조사하여 책으로 내는 과정에서 비교적 많은 구술자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 중 말씀을 잘하시고 연세가 많으신 어느 어르신과 전화 연락이 되어 면담을 하기로 하였다. 몇 번의 전화 끝에 간신히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막상 만났더니 나이가 너무 많아서 기억을 할 수 없다고 면담을 거부 하셨다.
바람이 몹시 찬 겨울 용대리에서 일을 하지 못하고 갑자기 돌아올 형편에 놓였다. 그때 그 어르신과 함께 있던 정oo씨를 만났다. 정oo 씨는 용대리에서 전쟁 과정을 모두 겪은 보기 드문 구술의 적임자였다. 취지를 말하고 인터뷰를 신청하였다.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간곡한 부탁에 드디어 말씀을 하셨다. 성함은 마지막에 밝혔으나, 사진은 끝내 거부하셨다.
구술자 정00 씨는 기억력이 상당히 좋았으며, 세세한 일까지 당시 본 사건을 막힘없이 구술했다. 일촉즉발 목숨이 왔다 갔다한 치열했던 용대리의 상황이 구술과정에서 그대로 다가왔다. 구술 상황도 아주 힘차고 생생했다. 따라서 6.25한국전쟁 전후의 용대리를 중심으로 한 민간인의 삶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남과 북의 군인, 그리고 미군과 소련군의 상황까지 그 성격의 단면을 볼 수 있었으며, 생사를 넘나든 당시 세대의 힘들었던 삶도 그대로 포착되었다. 특히 방책선 너머에 아버지의 산소를 두고 애타하는 모습은 면담자에게도 눈물이 글썽이게 하였다. 전쟁이 없이 남과 북이 통일을 이뤄야겠다는 다짐을 한 번 더 하는 계기가 되었다.
<면담내용>
면담자: 오늘이 11월 26일인가요?
구술자: 27일.
면담자: 성씨는 어떻게 되세요, 성씨만이라도?
구술자: 정 씨요.
면담자: 올해 연세는?
구술자: 일흔 여덟이에요. 35년생이에요.
면담자: 그때 일제강점기 때 있잖아요, 그때 생각나는 거 있으면 말해주세요?
구술자: 일제 때 우리가 인제 그때만 해도 나이가 어리니까. 제가 8살에 저 일본 지금은 초등학교라 하지만 옛날엔 국민학교라 하잖아요. 국민학교 들어가 가지고 2학년 2학기 배울 때 그때 저 8.15해방이 됐어요. 그때 해방이 돼가지고 그 기간 동안 학교 2학년 다니는 그 기간 동안만 고생 참 많이 했어요. 왜 그러나 하면 신발도 마땅치 않고 옛날에 나무 잘라서 게다라는 걸 아는지 모르겠지만 게다라는 걸 만들어 신었어요.
면담자: 예, 들어봤어요.
구술자: 그 나무를 깎아가지고 거 가죽으로 되고 못질을 하면 나무니까 잘 안 닳거든요. 그래서 게다 신고 학교 다녔고, 왜정 때도 얼마나 강했는지. 뭐 학교를 다녀도 점심 싸면 점심 다 검사하고 그랬어요. 옛날에도. 그래 나는 집에서 그래도 그 전에는 어지간히 일꾼들도 살기 때문에, 제가 외독자고 그러기 때문에, 밑에는 벤또 지금은 도시락이라 하지만 옛날 벤또 밑에다 쌀밥을 싸고 위에는 조밥을 깔고 그래 가면 학교 점심 때 되면 싹 검사해요, 선생이. 검사를 해가지고 왜정 때는 저 야스쿠니 신사가 일본사람은 하나의 신앙이에요. 그 점심을 먹을 때 밥 먹고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우리 저 그때만 해도 점심 못 싸가지고 오는 사람이 참 반이 넘었었어요. 그렇게 하고 뭐 칡뿌리 캐먹고 나무뜯어 그렇게 식생활 하던 그때, 끼니를 때우고 하던 사람들은 거의 그 전부다 열에 일곱 집 정도는 됐을 거예요. 그러다가 8.15 해방되고 그땐 뭐 여기서 사니까 그때 인민통치 받았죠.
면담자: 학교 다닐 때요, 특별한 거 없었나요?
구술자: 학교 다닐 때 뭐 특별한 게 있었냐면 지금 저 해장아리있죠, 뭐라 그래 그전에 해장아리라고 전부 그걸 심었어요. 그걸 왜 그러냐 하면 그걸 기름을 내어 가지고 어떻게 비행기 기름을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면담자: 해장아리요?
구술자: 지금 뭐 둥그런 거.
면담자: 해바라기?
구술자: 해바라기. 그걸 아주 대량으로 심었어요. 학교에서. 학교에서 대량으로 심고, 또 나무 소나무도 기름내고 그랬어요. 그런데 우린 소나무 기름까지는 안냈지만은 그 해바라긴 많이 심었어요.
면담자: 학생들 시켜서 심은 거예요?
구술자: 그렇지요. 그렇게 하고 8.15해방되기 전에 일본이 말하면 망할 때 되니까. 그때는 학교 가서 공부보다도 방공호 파놓고서는 비행기 뜨는 인제 옛날에 인제 군수개요 하면 비행기 뜨고 그렇지. 군수개요하면 방공호 들어가서 눈 막고 귀 막고 거의 다 그랬어요.
면담자: 군수개요가 뭐예요?
구술자: 비행기. 비행기 공습한다고 그 소릴 지르면은 방공호 들어가서 이 저 양손으로 눈 막고 귀 막고 고막 터진다고, 매일 그게 하루의 8시간이라면 매시간씩 그랬어요. 그러다 해방됐죠 뭐. 8.15해방되고 여긴 38이북이니까 인제 그때부터 인민통치 받았어요.
면담자: 공출은 어땠어요?
구술자: 아휴, 옛날에 공출은 삼칠제라 그러죠. 갸들은 취득세라 그랬어요. 취득세라 해놓고선 갸들 말로는 삼칠제라 그러는데, 어떻게 하냐면 평균 논이 인제 벼가. 그때만 해도 벼가 잘 안 됐어요. 비료가 없기 때문에 퇴비나 놓고 해서 벼를 심고 그랬는데. 평균된 자리 가서 비어가지고 훑어가지고 그걸 계산해서 삼칠제로 환산해서 그 순서를 내보내는데 거의 다 받아가다 시피 했어요. 그리고 일단 벼뿐이 아니에요 콩 감자 곡식이란 건 다했어요. 감자도 그렇게 하면 양이 많으니까 감자를 썰어가지고 말려가지고 그렇게 취득세를 하고 그랬어요. 감자는 저장을 할 수가 없으니까 말려가지고 썰어가지고 쌩 걸 키로(kg) 수를 달아가지고 말리면 얼마 나온다는 게 갸들 계산에서 나오잖아요, 그러면 썰어가지고 말려가지고 그것도 또 그렇게 또 매상하고. 그리고 그때 그 사람은 저 왜 인민공화국이라 해서 공동으로 살게 만든다 해가지고 논이 많은 사람은 뺏었어요.
면담자: 인민공화국 가기 전에요 일제 때 끌려갔던 사람들 있잖아요. 대동아전쟁 때?
구술자: 많죠. 많았어요. 못 온 사람도 많고.
면담자: 이 동네도 그랬어요?
구술자: 네, 많았어요.
면담자: 어떻게 됐어요?
구술자: 전부다 소식 없죠, 뭐. 간 사람들은.
면담자: 어떤 분들이 다 끌려갔어요?
구술자: 다 젊은 사람들이었어요.
면담자: 나이가 한.
구술자: 다 젊은 사람인데 대략 그때 끌려간 사람들은 일본 구급대로 갔었어요. 군인으로 가서 한편으로 노무자하고 젊고 빠릿빠릿한 사람은 군대 가고 그래가지고 많이 안 좋았어요. 그래가지고 다 죽었죠 뭐. 소식도 없고.
면담자: 그 다음에 민간인들 같은 경우에 여자들 끌려가고 그런 경우는 없었어요?
구술자: 여기서 여자들은 어려서도 그건 못 들었어요. 남자들만.
면담자: 망할 때 그 상황은요?
구술자: 일본 망할 때요 일본 망할 때는 우리 인제 학교 가면 군수개요 하면 방공호가서 피난하는 거 거의 그거만 받고. 갸들은 망할 때 그래도 마초는 많이 베었어요. 말한테 먹이는 풀 있죠? 그걸 많이 했어요. 그걸 베어가지고 말리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망할 때 되니까요. 갸들도 바싹 쇠붙이 걷어가지고, 그리고 얼마 안가서 해방됐어요.
면담자: 쇠붙이요? 다 걷어요?
구술자: 다 걷어요.
면담자: 어떻게 걷었어요?
구술자: 뭐 집 호당 얼마 뭐 왜 저 옛날엔 밥주발은 놋주발로 많이 했거든요. 그리고 또 수저도 놋숫갈로 하고. 그러면 한 집이 얼마 얼마 호당으로 나와 가주고는 거의 다 걷다시피 했어요. 밥주발은 옛날 밥주발은 옛날 밥할 때도 주걱도 놋그릇도 다 그리로 했는데 거의 전부 걷다시피 했어요. 탄피 만든대요. 총 탄피 만든다고 많이 걷고. 나머지는 해방되고 또 이북에서 또 걷고.
면담자: 해방 딱 되면서 일본인들 다 철수했나요?
구술자: 다 철수했어요.
면담자: 혼란 같은 건 없었어요?
구술자: 없었어요. 해방될 때는 갸들이 먼저 알고 이런데서 만일에 있었으면 맞아 죽었을 거예요. 고통 받던 사람들에게 그러니까 사람들 알고 다 간 거예요. 피난을.
면담자: 일제 앞잡이들도?
구술자: 일제 앞잡이들도 다 여기서 도망가고 그랬어요. 원래는 앞잡이들이 더 악질이었어요. 원래 한국 사람들은 옛날부터 조선 사람들은 일본사람 앞잡이 하는 사람이 더 악질이에요. 일본놈들보다 더 무서운 거예요. 그러니까 있으면 다 맞아죽지요. 그거야. 그러니까 벌써 집집이 해서 다 내뺐어요. 그때 여기는 38이북이잖아요. 그때 도망가고 여기는 벌써 소련놈이 나왔어요. 소련군이 나와 가지고 인제 그 38선까지는 소련군이 들어오고 저쪽엔 미군이 들어왔잖아요? 그때 벌써 이 악질들은 다 이남으로 갔어요. 남한으로 그때 여기 이북이라 하고 이남이라 하는데 그때 삼팔선 넘어서 다 넘어갔어요.
면담자: 삼팔선이 그어질 때 그때 상황은 어땠어요?
구술자: 그땐 많이 어려서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 삼팔선 그어질 때는 소련군이 나와서 그었거든요. 그런데 말로는 우리는 그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 이쪽에서 소련군이 나오고 저쪽에서는 미군이 들어와서 딱 만난 자리에 삼팔선을 그었다 그래요. 그래가지고 인제에 거기 38교(橋) 있잖아요. 그리고 양양 그쪽에도 삼팔 선 있잖아요. 그렇게.
면담자: 인민군들이 와서 통치를 어떻게 했어요?
구술자: 이북아들요. 이북아들은 맨 처음에 통치는 잘 알겠지만, 거 통치라는 거는 그 무조건 독재 아니에요. 그런데 다 소련에도 그런 말이 있었어요. 왜 전부다 동무라 그래요. 다 동무, 동무 하는데 뭔 얘기가 또 있었냐면 이 밑에는 그런 사실은 없는데 다른 데서 그랬다고 그래요. 동무 동무하니까는 남녀평등권법령이라고 갸들은 냈거든요, 남자나 여자나 똑같다 남녀평등권법령을 내어 가지고 남자와 여자 구별 없이 그렇게 했는데. 하루는 이 며느리가 밥을 하는데 늦게 했는데 시아버지가 잔소리를 했대요. “야, 밥을 빨리해서 가져와야 일을 가는데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하니까. 며느리 하는 말이 “아버지 동무 남녀평등권법령을 모르겠소. 내가 마땅치 않으면 아버지동무가 지으시오.” 그렇게 됐단 말이야. 그러니까 일단 부모로써 그걸 들으니까 화도 나도 참 우습기도 하고 저걸 내가 며느리를 혼을 내키고 길을 들여야겠다고 해서 뭔 얘기를 했냐 하면 “동무 오늘 그러면 나랑 나무하러 갑시다.” 아무리 여자가 젊고 힘이 세도 남자들한테 되겠냐 못되겠지. 나무 한 짐을 해서 오니까 아주 뒤따라서 그 미쳤지 않아요. 남자를 따라서 이렇게 보니까 쫓아오더래요. 쫓아온 걸 와서 한 번 더 그랬대요. 한 번 더 해서 오니까 땀에 뭐에 옷에 여자가 다 범벅을 했더래요. 그렇게 온 걸 아버지가 뭐라 했냐하면 “며느리 동무, 그렇게 해서 과업을 완성 하겠냐고. 김일성 장군님 밑에서 그렇게 일해가지고 과업을 완성하겠냐고.” 그렇게 하니까 며느리 하는 말이 “아이고, 아버지 잘못 했어요.” 그러더래요. 그래 여기서 그런 유래도 있어요. 그런 말도 있고 그랬어요. 그런데 해방되고는 이 일본시대 때보다도 더 고통 받았어요. 일본시대 때는 그래도 그 산에 칡 파먹는 사람 거의 드물었어요. 갸들이 뺏어가고 해도 거의 드물었는데, 해방되고 나서 이 앞산에 소나무 칡뿌리가 없었어요. 다 파먹고. 한 5년 동안 이북정치 받았죠.
면담자: 그때 이북정치 받을 때 토지개혁 같은 거 했잖아요, 어떻게 했어요?
구술자: 토지개혁은 없는 사람들. 그 집의 노력을 봐가지고 갸들은 뭐 인제 사람들을 동원하는 거를 노력동원이라 하잖아요. 지금은 어떻게 하는지는 몰라도 지금도 아마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 집의 논을 봐가지고 그 논 많은 사람은 우리가 1,200평이었어요. 2,000평만 있으면 1,000평 잘려 나가야해요. 그래서 한 집에 1,000평씩 하고. 이 시골엔 논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인제 거 2,000평되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 주었어요. 없는 사람주고. 그렇게 하고 뭐. 하여튼 저. 여기서 비료 없고 하니까 봄에라도 소팔(소똥?) 거름하고 또 이 풀 비어가지고 비료 하는 데 지금 수확에 비하면요 3분의 1도 못 냈어요.
면담자: 비료가 없으니까.
구술자: 비료가 없으니까 수확을 못 냈어요. 옛날에 쌀 10가마라 그러면 부자라 그랬어요. 지금 쌀 열가마니라 하면 아이 이름이에요. 지금 여기선.
면담자: 인민위원회? 그건 뭘 한 거예요?
구술자: 인문위원회라는 거는 지금 그 부락에, 부락에 인민위원회라고 지금 이장이라잖아요. 인민위원장이 이장이랑 똑같은 거예요. 그러면 인민위원회하면 부락 그 사람들은 단체생활이니까. 인민위원회하면 부락 전체가 딱 집결, 거 뭐 인민위원장 말이라면 다 복종하고 그랬어요. 그리고 갸들은 또 그렇게 많잖아요. 세포란 것도 있어요. 세포란 건 당원들이 그 조직을 세포라 그랬어요. 거기에 세포위원장 있어요. 그건 또 당에 위원장 있고. 노동당. 세포란 게 있었고 또 민청이라고 있어요, 민청. 또 여맹이라고 있고. 그러니까 여맹은 여자. 여자 위원장이라 하고 뭐. 갸들은 여기 살 때는 닷 세에 한 번씩은 아마 회의가 있었어요. 닷 세에 한번씩은. 그러니까 갸들은 강하죠. 지금 애들 보면 갸들은 참 강했어요, 여맹도 그렇고 전체가. 처음에 갸들이 인민군대 나갈 때는요. 이 부락에서 한 7명 8명 나오잖아요, 영장이. 나와서 가면은 합격된 사람이 2,3명밖에 없었어요. 인민군대 가는데요. 불합격 돼서 오는 거예요. 그러곤 똑똑한 놈들 배우고 똑똑한 사람은 되고, 웬만한 사람들 빽(back)해서 오고. 그때 그 사람들이 뭐라 했냐면 인민군대는 전투도 안하고 후방에서 후방만 지킨다고 그랬어요. 그렇게 하고 저 전방에서 싸운 사람들은 38보안대라고 있어요. 인민군 아들은 줄이 뻘건 줄이고 38보안대는 파란 줄이었어요. 이 줄도 바짓줄도 소대장들은 빨간 줄 내려가잖아요. 갸들은 파란 줄이에요, 38보안대는. 38보안대만 전투하고, 인민군들은 전투를 안 한다 해가지고, 그게 훈련돼가지고 모집돼가지고 6.25때 나온 거예요. 그때. 그런데 처음 뽑을 땐 똑똑한 애들 뽑았어요. 나중엔 뭐 막 뽑았죠. 저도 인민군대 갈 뻔했어요. 그때 16살인데 그게 17살 되던 해인데 전부 나오래요. 전부 나가니까 갸들은 정치보위부란 게 있어요. 정치보위부란 건 우리 한국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저 보안대나 이런 헌병대 같은 기관이에요. 갸들은 정치보위부는 민간인이고 군인이고 가는데 뭐든 다 조사를 해요. 다 조사를 해요. 그래 우리 친구들이 여기 여섯인가 일곱 됐네. 전부다 모였는데. 그때 여기 12사가 왔어요. 인민군. 12사가 와 가지고. 그땐 여기서 막 전투할 때에요. 그렇게 모이니까. 맨 처음 나올 때 우리 부친이 뭐라 그랬냐면 어떻게 하든 빠지라고. 네가 거기 가면 붙들려 가면 죽는다. 그러니까 어떤 수를 쓰더라도 들어가면 안 되니까 하여튼 거짓말 하더라도 빠지라고. 아주 신신당부를 그렇게 하고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그래서 인제 쭉 앉았는데. 정치보위부장이란 게 소대장은 금줄이 하나지만 옆 금은 두 개가 가요. 완장에 금줄이. 이 두 개에 무궁화도 두 개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봐도 중령급 되죠. 또 갸들은 별이니까 소성, 중성 뭐 그러는데, 보니까 중성이더라고. 딱 서더니 정치보위부장이라 그래요. 그러더니 뭔 얘길 하냐하면, 한참 얘기를 하더라고요. 우리는 얼마 있으면 적화통일을 시킨대요, 그러니까 동무들도 같이 합심해서 적화통일을 해야 된대요.
면담자: 남한을요?
구술자: 예, 적화통일을 해야 된대요. 그러면서 신사적으로 얘길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인민군대 아주 신사적으로 얘기하더라고요. 같이 할 사람 손을 들래요. 그러니 한 사람이 손을 들더라고요. 친군데. 제가 가겠습니다. 손을 드니까.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나가니까. 갸들은 국군한테 뺏은 칼인지 개머리 없는 칼들을 많이 가지도 다니더라고요. 나갔더니 그걸 아주 새 걸로 싹 갈아 입혔어요. 싹 갈아입히고. 거 칼빈총을 거꾸로 해서 앞에 딱 세워놓고 동무들도 이런 동무가 돼야 된다고 그런 얘길 해요. 이런 동무가 돼야 하는데. 그래 동무들도 가야한대요. 그래 우린 가면 죽는 판인데. 그때는 뭐 가면 죽는 판인데. 그래 우리는 간다는 소리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있으니까. 이 동무들 밥 가져다주래요. 그때가 점심때가 됐거든요. 밥 갖다 주라고. 옛날에 소고기국이란 먹고 죽을래도 그건 소고기란 상상도 못했어요. 그런데 소고기 국 한 그릇하고 밥 한 그릇하고, 그 전에 우리 가져다주기 전에 그 사람을 인민군에 간다는 사람을 의자에 앉혀서 소고기국하고, 옛날에는 쌀밥을 이밥이라 그랬어요. 쌀밥하고 소고기국을 가져다주고 그 사람한테 “먹어라” 그러더라고요. 그러니 그 사람이 앉아서 그걸 먹는데. 이 동무들도 가져다주라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하나 앞에 한 그릇씩 받았는데, 환장하죠. 냄새 솔솔 나는데. 그러더니 숟가락 들래요. 그래 숟가락 들고 있으니 먹지는 말래요. 숟가락만 들고. 그렇게 들고 있다 보니까. 한 사람씩 다짐을 받는 거예요. 나 옆에 있는 사람을 보고 “동무 가겠소, 못가겠소.”하니까. “전 못갑니다.” “왜 못가냐.”고 그러니까 “나는 어제 스케이트 타다가 자빠져 가지고 엉덩이가 아프고 허리가 아파 못가겠습니다.” 그러니까 숟가락 내려놓고 나오라 그러더라고. 밥을 먹지 말고. 아 그러더니 한 놈이 그 사람이 이제 나랑 한 동갑인데 여기 있다가 죽었는데요. 그 사람이 제 차례 오니까 뭐라 그러냐면요, “난 안 갈 테니까 너희끼리 가라”그러면서 빠지면서 나앉더라고요. 하하, 그러니 어이가 없어서 보고 웃더라고요. 그다음에 내 차례가 왔는데, 또. 그래 날보고 “동무 가겠소, 못가겠소?”하니. “못갑니다” 했어요. 그래 “왜 못 가겠냐.”고. 그래서 “나는 밤에 자다가 오줌을 싸서 못갑니다.”했더니. 그랬더니 숟갈 놓고 이쪽에 나앉으래요. 그래서 숟갈 놓고 이쪽에 나앉으니까. 전부 다 뭐 별, 그것들 데려다 뭔 전쟁을 해요. 그거를. 별놈의 핑계를 대면서 못 간다 하니까 그다음에 뭐라고 얘길 하냐면 지금은 봐 준대요. 동무들 조금 더 있다가 내년쯤 한 살씩 더 먹었을 땐 동무들도 가야한대요. 하나하나 빠지게 되면 누가 이 나라를 지키냐고. 그러니까 전부해서 남을 적화통일을 해야 한대요. 그리고 지금도 내가 어떤 때 우수개소리로 그 얘길 하는데 갸들 머리 사상하고. 저도 군대를 갔다 왔어요. 저도 군대 갔다 왔는데. 사상적으로 갸들하고 우리 남한 군인하고 벌써 하는 게 달라요. 갸들은 뭐라 그러냐면요, 지 죽는 건 겁나지 않는대요. 지가 과연 죽으면 지가 남자구실을 못하고 한 사람만 죽이고 자기가 죽으면 자기 임무를 완수한대요. 뭐라 하냐면 갸들은 국군 뭐 우습게 생각했어요. 그전에는. 전쟁하다 한 둘만 죽으면 도망하는 것이 국방군이라고, 갸들은 그랬거든요. 그런데 갸들은 한 사람만 죽이고 자기가 죽으면 자기 임무는 완수한대요. 그러니까 지 죽으면 슬퍼하지도 말고 그러래요. 지가 하나 사람 죽음으로서 이 나라가 성장한다고. 갸들은 구호가 그래요. 그렇다고 우리 국군이야 아 누가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다 나 살기 바쁘죠. 그런데 6.25때 그 후에 사변 때 전쟁 당시 여기 그 당시에 인민군아들도. 하루는 인민군 하루는 국군이에요. 그 때만해도 그러니 여기 휴전선을 딱 막아놓으니까 패잔병들이 여기 설악산에 많았어요. 그런데 한 번은 저 안에 들어가니까 여럿이 이제 먹을 게 없어서 옥수수를 심었는데 옥수수 따러 들어간다고. 여럿이 들어갔는데 공비 나왔다고. 그때는 공비라 해요. 그 이북하고는 반대에요. 나와 가지고 국군통치를 받으니까 또 갸들이 무서운 거예요. 반대로. 그전엔 국군이 무서웠는데. 그래 도망을 해 내려오다 보니까. 나도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잘 뛰었어요. 그래 내뛰다보니 뒤에서 쿵쿵쿵 소리가 나는데 조용해요. 보니까 칼빈총을 나한테다 겨누더라고요. 쏠라고. 그래서 얼른 손들었지요 뭐. 그냥 갈리려고 하니까. 얼른 손드니까, 오래요. 그래 가니까 국군들 들어왔는지 한 달도 채 안됐는데 맘이 그렇게 변했냐고 해요. 그러더니 너들은 총알이 아까워서 대검 맛을 보래요. 하여튼 올라갔어요. 그래 그 위에 올라가니까 한 사람 또 쫓아내려왔어요. 그러더니 칼 대검 맛 좀 보래요. 그래서 ‘이젠 죽었구나.’하고서 올라가면서 뛰려고 하니까. 또 뛰래야 뛸 수가 없어요. 뒤에 바짝 붙어있어서. 그래 가니까 하여튼 머리가 이렇게 길고 통통한 사람이 가니까 뭐라 하냐면 너들 참 불쌍하대요. 지금 공부 한참 할 나이에 공부 못하고 참 피난만 다니고 너희들이 참 안타깝고 불쌍하대요. 그렇게 하는 얘기가. 우리가 6개월 후에 다시 온대요. 여기 다시 나오니까 그때까지만 어떻게 하든지 살래요. 살고. 아 그 말 들으니까 뭐 죽이지는 않을 것 같더라고요. 우리가 그랬죠. 아이고, 군관동무 그때는 뭐 군관동무라 그랬거든요. 군관동지. 너무도 고맙다고 그랬더니. 그러니까 자기네가 여기 노인들도 많이 드나들었지만 더 잘 알아요. 여기 지리를. 지도를 턱 내놓고 먼저 알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아마도 장성급 되는 거 같더라고요. 그러더니 하는 얘기가. 그렇게 우리를 얘기하더라고요. 불쌍하다고. 그러더니 이 사람이 뭐라 하냐하면 내려가서 신고를 하래요. 그래서 인제 “우리가 신고를 하면 어떻게 됩니까.”하니까. 우릴 보고 신고를 안 했다고 하면 비밀이 있다고 이 순간을 누가 또 얘길 해도 한다고 인민군 봤다고 공비 봤다고 얘길 하니까, 가서 무조건 신고를 하래요. 신고를 해야 살지 그러지 않으면 또 국군한테 죽으니까 신고를 하래요. 내려가서 신고할 동안에 우린 천리를 간대요. 그렇게 하고 내려가서 여기 헌병초소를 턴대요. 헌병들을 털어가지고 전방으로 해서 넘어 간대요. 그러니 우리가 쫓겨 내려와 가지고 인제 신고를 했죠. 신고를 하니까. 여기 국군이 저 7중대라고 있는 대요. 개미와 새 같더라고요. 그렇게 차이가 나요. 거기를 못 들어가고요. 여기서 총만 대고 쏘는 거예요, 여기서. 겁이 나니까. 여기서 지금 이 골짜기 있잖아요.
면담자: 아니오니 골짜기요?
구술자: 거기 앞 골짜구니. 거기다 대고 총만 쏘는 거예요. 거기다 대고. 거기 조금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백담사 골짜기 있어요, 국립공원.
면담자: 백담사 골짜기, 국립공원 예, 예
구술자: 거기다 대고 총만 쏘더라고요. 들어가지 못하고. 그래가지고 그날 저녁 그 이튿날 낮이 되니까 헌병초소가 없더라고요. 총 다 뺏기고 식량 다 뺏겼더라고요. 그렇게 하고 갸들은 갔어요. 그러니 지금은 계속 어떤데 보면은요, 그때 여기 와서 간첩 그 강릉 잠수함 간첩 나와서 여기서 죽은 사람들 봐도 그 사람들 둘이서 몇이나 죽였어요. 여럿 죽였잖아요. 기무사 대령이 막 죽고 뭐 하여튼 많이 죽었잖아요. 갸들은 그렇게 강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도 휴전당시에는 인민군아들이 그 얘기는 하더라고요. 그 전에 국방군하고. 갸들은 국군이라 안 그러고 국방군이라고 그래요. 옛날 국방군하고 지금 국방군하고 많이 달랐다고. 그래서 우리가 인제 그때는 여기 이북이니까. 우리가 “국방군애들도 전투 잘해요?”라고 물으니까. 같은 다 조선 사람이니까 다 똑같다 그러더라고요. 그러면서 이북아들 여기 설악산 전투에서 많이 망했어요, 아주 12사단 11사단도 아주 여기서 녹았는데요 뭐. 그리고 여기 구유골(?)사무실 이쪽에 짓다가 만 데서도 여기 백골부대 일개 중대가 다 죽고.
면담자: 백골부대가 뭐예요?
구술자: 그 백골부대 그때 그전에 국군 지금만 해도 여기, 여기 지금 국립공원 다리 이쪽에 다섯 집 있었거든요. 그런데 백골부대가 강릉에서 들어온 게 일개 중대가 들어왔어요. 그런데 이 마크 보니까 백골 사람의 백골을 그렸더라고요. 해골. 그런데 일개 중대가 거기 다섯 집 있는데 들어와 가지고 남의 제사 지내려고 저 막걸리 해놓은 거 그거 퍼먹고, 거개서 남의 벌통 뒤져가지고 꿀 파먹고 막 그랬어요. 그래가지고 꿀에 취해서 자빠지고 드러누워 있고, 또 술에 취해서 또 드러누워 있고. 이젠 안 그러겠지. 보초를 밖에다가 두 사람 세워놓고 그렇게 하고서 그 사람들 꿀에 취해서 막 뭐 쓰러져 자는 사람도 있고, 그 중에도 젊은 여자들 데려다가 축음기 틀고 춤추고 놀았어요. 두드리고.
면담자: 술취해가지고?
구술자: 그럼요. 여기 38이북이에요. 그러고 두드리고 놀고 그러니 뭐. 이북에 여기에 적진지 들어와서 그게 할 짓이냐고요. 그래 술취해가지고 막 두드리고 놀고 막 그럴 때. 여기서도 또 당원 있거든요. 당원이 저기 저 아래 갸들이 패잔병이 모아가지고 일개 중대가 됐다 그래요. 우린 몰랐어요. 거기 있는지도. 거기에 신고해가지고 갸들 일개 중대가 온 거예요. 그런데 벌써 여러 면에서 아군이야 뒤 떨어졌지요. 갸들은 이래 보니까 거의 장교가 반이에요. 일개 중대라도. 패잔병 모은 부대니까. 그리고 그 부대에 대장 보니까 이 무궁화가 서이더라고요. 아, 계급장 붙이고 왔어요. 그렇게 하고서 전투가 따로 붙었는데.
면담자: 패잔병들이 모여서 중대를 만든 거예요?
구술자: 예, 중대를 만든 거예요. 이북 들어가려고. 그렇게 들어가려고 중대를 만들었는데 국군이 왔다 하니까 그 사람들이 여길 온 거예요. 와가지고 백골부대하고 전투를 하는데 벌써 그 사람들이 척후병이. 나중에 그 얘길 하더라고요. 내가 그때 주민회의 있었어요. 그러더니 어떻게 알았냐하니까. 여기 신고를 해서 알고 척후병이 둘이 딱 들어와 보니까. 다섯 집 마당에서 국군이 왔다 갔다 하면서 놀더래요. 딱 돌아서보니까. 그 뒤에 보초 둘이 평상을 놓고 이렇게 자더래요. 그래서 나눠가지고. 자는 거야 뭐 총 들고서는 손들래야 할 필요가 없지요. 그래서 보초 둘 자는 걸 그대로 잡아놓고 아주 여기 삼각형으로 포위 쌓은 거예요. 대문으로 싸우려고 나오는 걸 그 통로 통로에도 싸고. 그래가지고 이쪽에서 내려 갈기니까. 그때가 우리가 급해가지고, 어디 대낮에 수류탄 쾅쾅 떨어지고 어떻게 할 수가 없어가지고. 부엌에 가서 엎드려 있는데 뭐. 옛날에는 이 뭐 잿골 있고 이랬잖아요. 아주 부엌이라고 먼지가 뽀얘 가지고 부엌 바닥에 들어가 엎드려 있다가 또 아궁이에 들어가 있다가 또 비행기가 공습을 해서 마루 밑으로 인제 들어가 있는데. 전투를 하는데 한 30분하더라고요. 전투를. 그러더니 이북 아들이 그때 돌격 앞으로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뭐 쿵덕쿵덕하며 난리에요. 그래 나가보니까 진짜 한 번 보지 두 번은 못 보겠대요. 그래 우리도 총 막, 쑥 들어가 있으니까. 안 나오면 쏜대요. 그래서 여기는 민간인이라 그러니. 빨리 나오래요. 그래 나가니까. 거기 또 누가 있냐고 하니, 없다고 하니. 벌써 나가보니까요. 지금 그 저 식당 앞에 다리 있잖아요. 거 벌써 시체가 너더분해요.
면담자: 백골부대 사람들이.
구술자: 예, 벌써 죽은 게. 벌써 너더분해요. 그리고 그쪽으로 뭐 뛰는 거 갈기기 시작하는데 뭐. 막 내 갈기고 그 다음엔. 그 쪽으로도 포위해 가지고 있는데. 그런데 여기서 한 30,40명 더 죽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때 우리는 어리니까 날보고 뒷문으로 나오래요. 그땐 말 한 마디, 갸들 죽이는 건요. 그건 뭐 파리 목숨만도 못해요. 그때는. 총이 여섯 자루를 지니까 아주 한 짐 돼요. 그래가지고 저 아래 쯤 가니까 거기서 사람들이 어디 올라가라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 여섯 자루를 지고서 거까지 갔다가 인제 올라왔지요.
면담자: 총 여섯 자루를 지고 간 거예요?
구술자: 예, 국군한테 뺏은 거. 거 국군한테 뺏은 총 여섯 자루를 지고 거길 가니까. 그게 거기서 사람들이 나왔더라고요. 그래 돌려주고 오려니까. 어떤 사람들은 옷을 싹 뺏긴 거예요. 신발이고 뭐고 싹 뺏겼어요.
면담자: 그 인민군들이요?
구술자: 예, 갸들이 신발이 없잖아요. 그 6.25 그때 후퇴 당시에는. 아군이 죽은 것도요, 이 팬티하고 넌닝구밖에 없어요, 입은 것은.
면담자: 아군 죽은 사람들이요?
구술자: 예, 싹 뺏긴 거예요. 옷은 신발이고 뭐고. 싹 뺏겼는데. 그렇게 하고서 거기서 묻고 인제 그랬는데. 그 다음에는 우리가. 그런데 여긴 38이북이니까. 또 나중에 피난 갔다 오고. 그러니까 그 묻은 자리. 그때 여우가 다 팠더라고요. 여우가. 그때 나가보니까 여우가 막 파던데 그걸 보니 참 안됐더라고요. 그때 남들 몰래. 그땐 모래자루에다, 모래자루에다 막 넣었어요. 그런데 도로 판 걸 제가 흙으로다 해서 막 이렇게 묻었어요. 그랬는데. 그 후로 또 피난가라 그러더라고요. 이북아들이. 그러니 그때 피난 갔으면 이북사람 된 거예요. 그러니 그때 어르신들이 그때 뭐라 그랬냐면. 이제는 가면 먹을 것도 없고 다 죽으니까 아무데 그냥 골짜기 들어가서 우리 그렇게 피난하자 하고서. 그 다음에 여기 골짜기 딱 들어가서 있더라니까. 그때 국군들이 왔더라고요. 그래 국군이 와서 그때부터 남한정치를 받았어요.
면담자: 그때 그러면 수복된 거예요?
구술자: 그 땐 수복이 안 됐고. 그땐 여기 공비들 막 내려올 때에요.
면담자: 그럼 왔다 갔다 막 할 때네요?
구술자: 그렇지요. 그래 가지고 여기 뭐 공비들 때문에. 그때는 국군들 들어오면 무섭지. 그전엔 국군이 무서웠는데 그 이후론 인민군이무섭더라고요. 그렇게 다니다가 저 너머 피난을 가서 거기서도 한 5년 있다가 다시 그 다음에 수복돼서 그 다음에 여기를 왔거든요. 그래 여기와 있다가 나도 인제 군대 갔다가 그렇게 하고선 한 삼년동안 군대 생활했어요.
면담자: 그땐 어르신은 그러면 민청 같은데 안 들었어요?
구술자: 민청 뭐 한데는 나이 적어서 못했지요.
면담자: 몇 살 때부터 하는 거예요?
구술자: 그때 18세 이상은 돼야했어요. 한 18세 이상 됐어요.
면담자: 민청 말고 다른 조직은 없었어요?
구술자: 없어요. 한청이라고. 한청.
면담자: 한청은 뭐예요?
구술자: 청년들. 인민군 뽑을 때 한청에서 뽑은 거예요.
면담자: 인민군을 한청에서 뽑아요?
구술자: 예, 그게 다 젊은 사람들 집단을 말하는 거예요. 젊은 사람 집단. 그러니까 갸들은 한청회의다 민청회의다 여맹 회의다. 하여튼 갸들은 오일에 한 번씩은, 오일에 한 번도 넘어, 어쩔 땐 3,4일에 한 번씩 계속 회의를 해요.
면담자: 소년단은 없었어요?
구술자: 소년단, 그때는 그런 소년단 같은 거는 없었어요.
면담자: 그때 토지 있잖아요. 지주들은 어떻게 했어요?
구술자: 지주들, 지주들은 뭐 많은 사람들은 뺏어가지고 없는 사람 주고. 갸들은 뭐라고 하냐 하면 자기 땅이 아니란 거예요. 정부 땅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뺏어서 없는 사람주고. 그러니까 노동력을 봐가지고. 그러니까 2,000평 이상은 안줬어요. 아, 아니 1,000평 이상은 안 줬어요. 1,000평 미만으로. 만약 그전에 여기 3,000평 5,000평 가진 사람들은 몰수해서 내쫓았어요. 다 뺏고. 하여튼 전부 다 해서 내쫓았어요. 이남으로. 그러니까 어지간히 2,000평까지는 뺏어가지고 없는 사람주고 갸들은 토지개혁이라 했죠.
면담자: 몇 번 했어요? 토지개혁을?
구술자: 한 번 한 걸로 알아요. 한 번에 다 했을 거예요.
면담자: 친일파들은 어떻게 했어요?
구술자: 갸들은 친일파란 거 뭐 인제 친일파 타도하자 뭐 이렇게 했는데 여긴 뭐 친일파는 없었거든요. 여기는 뭐 남한정치 받지도 않고 바로 짤라 가지고. 그러니까 친일파란 건. 이 노인들을 많이 했어요. 노인들은 그때 당시에 모여서 남한 얘기를 많이 했어요. 이 정치엔 못산다. 어떻게 하든지 남한정치를 받아야지 이 정치엔 못산다, 그리고 우리 부친께서 그때 뭐라 그랬냐면 앞으로 이정치는 언젠가는 망하는 정치다. ‘아버지 동무’가 이게 이게 나라냐. 언제든 망하고. 새 정치, 이남. 새 정치 받을 때 너희들 좋을 때가 한 번 나올 거라고 항시 그 얘기했어요. 그러니 지금 좀 좋아요. 먹을 거도 뭐 먹기 싫을 때까지 먹고. 사실 옛 노인들 말한 게 지금 딱 맞아요.
면담자: 아버님도 어머님도 6.25 다 같이 겪으셨네요?
구술자: 우리 어머니는 왜정 때 돌아가셨어요. 왜정 때 돌아가시고, 우리 아버지는 저 열일곱 살에 돌아가셨어요. 열일곱 살에 돌아가셨는데, 그때 쉰일곱에 돌아가셨어요. 나이가.
면담자: 그러니 어르신 열일곱에 아버지가 쉰일곱이었네요?
구술자: 예. 쉰일곱에 돌아가셨는데. 그때 당시에 쉰일곱에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동네 사람들이 오래 살았다 그랬어요. 그래도 오래 살았다고 했어요. 내가 지금도 얘기 하는 게 이 동네 전체로 인제군 전체로 아마 말해도 될 거예요. 내 나이 먹은 사람 없어요. 이 동네도 한 50호 거의 한 70호는 되겠네. 환갑 먹은 사람을 못 봤어요. 그 당시에. 환갑 먹기 전에 다 죽고. 글쎄 우리 부친이 57세에 돌아가셨을 때 많이 살았다 했으니까요.
면담자: 그때 전쟁 통이었잖아요?
구술자: 그때 우리 부친은 이 전쟁 통에.
면담자: 인민통치 받을 때?
구술자: 인민통치 받을 때 우리 아버지는 그 병으로 돌아가셨어요. 그 열병이라고 있지요. 그걸 염병이라고 그랬죠. 여기서 병 앓아가지고 죽은 사람이 어떤 집은 문 닫았어요.
면담자: 대가 끊겼네요?
구술자: 대가 다 끊기고.
면담자: 그 병은 정확히 무슨 병이에요?
구술자: 열병이라고. 염병이라고. 그거 걸리면은 그때 당시 걸리면. 바람만 쐤다 하면 죽어요. 10사람이 염병하면, 이 병 관리를 잘 하면은 10사람에 한 7사람은 살고, 그렇지 않으면 10에 잘 살아야 2,3정도 밖에 못살아요. 다 죽고. 그런데 우리 부친도 그 병에 걸려가지고. 그래 지금 그 이북이에요. 우리 아버지는 저 서화리. 처음 피난가라고 그래서 병에 걸린 거를 업고 그래가지고.
면담자: 처음에 서화리로 피난 가셨어요?
구술자: 처음에.
면담자: 여기서 가라 그런 거예요?
구술자: 그렇지요. 갸들이. 옛날엔 부자지간이래도 서로 말 안 해요.
면담자: 왜요?
구술자: 사상적으로 사상이. 그래가지고 그때 우리 아버지도 내가 지금 후회되는 게 우리만 가라 그러더라고요. 나는 이제 우리 늙은이 국군 들어와야 그 사람들도 사람인데 나 죽이겠느냐. 그러니 난 골짜기 들어가서 있어야지 난 피난 가면 죽는다고 안 갈려고 하는데. 안 가면 반동분자로 몰리는 거예요. 이북아들한테. 그래 안 갈 수도 없고. 그래서 아버지를 내가 업고라도 가자고, 그래서 저 서화리 가전리라고 있어요, 가전리. 그 꼭대기 가있다가 돌아가시고, 그 다음에 우리가 나왔어요.
면담자: 그럼 서화리에서 열방이 걸리신 거예요?
구술자: 아니요, 여기서. 걸려서 들어갔어요. 여기서 조금 걸려서 거기로 들어가서 거기서 바람을 쐬고 그러는 바람에 거기서 돌아가셔가지고 거기서 모시고. 그렇게 하고 나와 가지고. 두 번째 가라 그랬을 때는 내가 안 갔어요. 그때 갔으면 이북사람 됐어요. 안 가고 산골짜기에 있다가 국군들 들어오는 바람에.
면담자: 1.4후퇴 때인가요? 그러면.
구술자: 그렇죠. 1.4후퇴 때지요.
면담자: 그때 또 가라 그런 거예요?
구술자: 또 가라 그런 거예요. 그래 그때는 안 갔더니 그때 갔으면 뭐 그때 간 사람들도 있어요. 그때 간 사람들은 지금 소식이 없지요. 다 죽었지요 뭐. 이젠.
면담자: 아예 소식이 없어요?
구술자: 예, 아예 소식이 없어요.
면담자: 그럼 이산가족도 되게 많겠네요?
구술자: 여기 사람들은 다 죽고 문 닫은 집도 많고 실은 그래요.
면담자: 그럼 나중에 국군이 들어와서 수복이 됐잖아요. 수복이 나고 된 다음에는 통치가 어땠어요?
구술자: 국군들 들어오고요. 통치 자유대로 했지요. 자유지요. 근데 국군들은 전투나 하고 국군들은 그러고. 우리는 우리대로 마음대로 자기 하고 싶은 일하고 다 그랬죠 뭐.
면담자: 전쟁 통에도요?
구술자: 그렇지요 뭐.
면담자: 인민군들 들어와서 토지를 가난한 사람들 나눠주고 그랬잖아요? 나중에 국군들 들어 와서는요?
구술자: 국군들 들어와서는 자기 땅 자기가 다 찾은 거죠 뭐.
면담자: 원래 그대로요?
구술자: 예, 그렇지요 뭐. 자기 땅 자기가 다 찾아가지고 등기내고. 그거는 부락사람 다 인정하니까. 저사람 누구 땅이고 누구 땅이고 하는 거를 그거 다 인정하니까. 그러고요. 또 남의 땅을 분배받은 사람들은요. 한 1,000평 받으면 그거 가지고 식생활 안됐잖아요. 다섯 여섯 식구가. 함경북도 아오지 탄광이란 게 있었어요. 글로 많이 갔어요. 저 경의선, 아오지탄광으로 다. 그렇게 분배받은 사람들은 한 1,000평씩 분배받은 사람들은 다 그리로 갔어요. 그렇게 거기 간 사람들 또 소식 끊기고.
면담자: 그 인민군들이 왔을 때 노동자 그런 사람들이 완장차고 지방 빨갱이 했잖아요?
구술자: 그렇죠. 여기는 이남하고 저쪽하고 달라가지고 38이북이잖아요. 여기는 벌써 이게 누가 누구다 하는 것을 완장은 안 찼어도 그 사람들이 중앙당의 세포위원장이다 뭐 인민위원장이다 하는 것은 부락사람들이 아니까 같은 동네고 하니까 그래도 같은 부락사람이니까 아무래도 많이 딛고 넘어갔죠.
면담자: 그냥 무난히 넘어간 거네요?
구술자: 예. 뭔 일이 있으면 미리 코치해주고. 미리 빼주고. 그런데 그렇게 또 지랄했던 사람들은 다 죽었어요. 저 앞에 뭐 지랄한 사람 다 죽고. 오히려 노인들한테 가서, 노인은 즉 반대거든요. 남한 얘기만 하고. 그러면은 당원이래도 자기가 당에 그 했던 얘기를 노인들한테는 얘기를 해요 비밀로. 그러니까 이 난리 통에 이쪽은 내가 낫고. 국군이 들어오면 아저씨들이 나으니까 서로서로 이렇게 해서 의지하면서 살자고. 그런데 그 사람들도 나중에 다 죽더라고요.
면담자: 국군이 들어와서 그 사람들 다시 잡아서 죽인 거예요?
구술자: 아니요. 그 사람들 죽이기 전에 벌써 노인들이 막으니까 안 죽는데, 이 전투하게 되면은 전부다 들고 뛰잖아요. 아이고, 거기 그래서 많이 죽었어요. 전투할 때. 전부다. 여기는 전투마당이에요 전부. 하루는 인민군 하루는 국군이에요. 그 바람에 다 죽었어요. 국군들 들어왔을 때 뛰니까 또 쏴죽이고. 그러고 또 인민군아들 들어오면 인민군들이 국군들한테 왜 또 붙었냐 하면 국군들에게 붙들려 가지고. 만약 국군들 하고 뭔 얘기라도 하면 그 반동분자로 낙인이 찍혀요. 국군들하고. 그러니까 안 잡히려고 내 뛰다 걸리면 국군들한테 죽고. 그러니 이래저래 하여튼 이래죽고 저래죽고 젊은 사람들 다 죽었어요. 나이어린 여자들은 뭐 배겨 나는 줄 알아요. 젊은 여자들은, 또 인민군아들은 안 그래요, 국군아들 들어와서 뭐 조사 받는다고 뭐 강제로 끌고 가서 지랄들하고 그랬지.
면담자: 성폭행 하고요?
구술자: 아이, 그럼요. 그럼요.
면담자: 인민군들은 왜 안 그랬어요?
구술자: 아이, 안 그래요. 갸들은 안 그래요.
면담자: 여자군인이 있어서 그런가요?
구술자: 아뇨. 갸들은 법이 엄해요. 갸들은 그러면 총살이에요. 같이 여자남자 같이 자도 절대로 그런 건 없어요.
면담자: 건드리지 않아요?
구술자: 아이고, 총살이에요. 갸들은 절대 때리는 건 없어요. 갸들은 인제 전부다 자기가 자아비판을 해요. 거 전부 맨땅 앞에서 내가 뭐에, 뭐에 해서 잘못했다는 걸 자기가 자아비판을 해요. 그것도 자이비판을 해서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하고 다시 하고 그것도 몇 차, 몇 차 해서 얼마 넘어가면 총살이에요. 죽여요. 갸들은 때리지 않아도 국군보다 더 엄해요. 갸들은. 이 여자남자 한 군데 자는 거 많이 봤어요. 자면서 아무 탈 없어요. 갸들은.
면담자: 국군이 들어와서 피해를 많이 줬군요?
구술자: 국군들 들어오면 그때 아주 개판이라 그랬어요. 개판이라고. 지가 죽으면서도 그 지랄을 해. 아주 개판이라고.
면담자: 죽으면서도 그래요?
구술자: 아이, 여자들 하고 그 방에서 하다가 공비들 들어오면 그렇잖아.
면담자: 공비들한테요?
구술자: 예 예.
면담자: 미군들도 들어왔잖아요?
구술자: 미군들은 도로로 다니고 여기까지 개인집에 들어와서 그러진 않았어요. 미군들은. 도로로 차로나 다니고.
면담자: 미군들이 여기 들어왔을 때 1.4후퇴 때 피난가라고 안 그랬어요?
구술자: 미군들은 안 그랬어요. 그 전에 피난가고 그러고 여기서 맨 처음에 여기선 이북아들이 됐고. 두 번째도 이북아들이 됐고. 우리는 그때도 미군 못 봤어요. 그리고 우리 자체가 안 갔지요. 그래서 그때부터 남한정치 했어요.
면담자: 소련사람도 봤을 거 아니에요?
구술자: 많이 봤어요.
면담자: 소련사람들 어땠어요?
구술자: 아휴 지저분해요. 진짜 지저분해요.
면담자: 어떻게?
구술자: 갸들은 헐레발이라고 있어요. 빵. 이 베개만치 해요. 헐레발이라는 게.
면담자: 베개만 한 거를요?
구술자: 비고(베고) 자는데. 비고 자는데요. 갸들은. 그걸 비고 자요. 그걸 잘라서 먹고. 아주 지저분해요. 갸들은 이 죽 쒀 먹을 때 이렇게 곁에 가보면 지랄하고. 인제 “로스께 헐레발이다오.”하면 이렇게 박스로 갖다 줘요. 이제. “로스께 헐레발이 다오.” 그러면 음식을 좀 주고 그래요. 그런데 이 죽을 쑬 때 막 빼가지고 쑤고. 이제 집게 있잖아요. 나무 이제 쑤셔 넣고 부지깽이 있잖아요. 나무 이렇게 쑤셔 넣고 하는.
면담자: 고무래?
구술자: 고무래. 나무로 이렇게 된 거. 하필이면 그걸로 다 죽을 쑤고 지랄해요. 그리고 기름을 많이 넣어서 손에 묻잖아요, 옷에 닦아서 번들번들해요. 기름 묻어서. 아이고 지저분해요. 그런데 장교들은 깨끗해요. 장교들은 깨끗한데. 그런데 그때 당시 말로는 이 영창에 있는 놈들 끌어 내와서 그랬다는데 잘 모르겠어요.
면담자: 소련군 애들 영창에 있는 애들을 데려와서요?
구술자: 죄수들, 그런 애들 내보내서 왔다고 하는데. 아이고 미국아들은 아주 양반이고 신사지요. 한국 사람들 같았잖아요. 그런데 소련아들은 먹는 것도 그렇고. 아이 생고등어를 막 먹더라고요. 빵하고. 그러고 빵 저기 비고 자다가 그걸 먹고 뭐. 하나하나 행동이요. 소련군은 그래도 여기서요. 그래도 몇 년 있었지요.
면담자: 민간인들에게 피해 안 줬어요? 소련군은.
구술자: 안 줬어요. 차로만 다녔어요.
면담자: 갸들도 자아비판해요?
구술자: 글쎄 모르겠어요. 아, 그 정치가 그 정치인데 했겠죠, 뭐. 그리고 그때 소련은 스탈린, 스탈린 만세하고, 뭐 김일성 장군 만세 하고.
면담자: 중공군은 어땠어요?
구술자: 중공군은 여기 설악산 전투 때 중공군이 왔는데요, 그때 지금도 우리끼리 얘기인데 그때 이 중국은 그때 말로는 “미국사람들 총알이 모자르냐, 우리 인구가 모자르냐. 내기 한 번 해보자.”고. 이 설악산 전투에 들어가면 보통 일개 분대가 9명에서 12명이잖아요. 얘네들은 12명이 가게 되면 총 4자루나 5자루에요.
면담자: 다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요?
구술자: 다 총이 없어요. 그리고 반땅꼬 수류탄만 차고 가는 거예요. 전방에 가서 전투할 때 앞에는 총 가진 놈을 뒤로 한다 그래요. 앞에 놈이 죽으면 그 총을 하고, 또 죽으면 그 총 갖고 하고.
면담자: 뒤에 사람이 받아서요?
구술자: 예, 총 없는 놈이. 총 없는 놈이 많았어요. 이 반땅꼬 수류탄이라고 그 수류탄만 들고. 반땅꼬 수류탄이라고. 나무를 이렇게 밑에 해서.
면담자: 방망이처럼요?
구술자: 예 예. 그런데 그 때만해도 중공군이 참 그랬는데.
면담자: 꽹과리 막 쳤다면서요?
구술자: 피리불고. 꽹과리 치고. 그런데 여기서 그런 전투하는 건 못 봤어요. 여기서는. 그런데 이 설악산 전투에서 많이 죽었어요. 그 총이 없는 게 뭐 버티나요. 그때 하여튼 설악산전투에도 많이 죽고 하여튼 엄청 죽었어요. 그런데 이북아들은 전투할 때보면 참. 그때 일개 중대가 망할 때 죽은 거 봤거든요. 얼마나 죽었나 봤거든요. 총 4명밖에 안 죽었어요.
면담자: 4명밖에 안 죽었어요?
구술자: 예, 너이 죽고, 다섯인가 부상당했어요. 그런데 ‘아이고 아이고’ 하니까 총 맞은 사람이 그때 뭐 약이 있나 아무 것도 없을 때인데. 그래 그걸 보던 중대장이 자기 부하들에게 시켜 쏴죽이라고 하더라고요. 자기 부하들이잖아요. ‘아이고 아이고’ 하니까. 쏴죽이라 그러더라고요. 그러니 한참 그러더니 가만히 있더라고요. 그 다음엔. 그런데 그렇게 갔는데 다 죽었을 거예요. 뭐 약이 있나 뭐가 있나. 다 죽었을 거예요. 그렇게 이북아들 다 넷이 죽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랬어요. 야 국군들은 왜 국군이냐고 물으니까 이승만이가. 저저 왜 백골부대냐 그러니까. 이승만 씨가 백골이 되도록 싸우라고 그랬대요. 그래서 명칭을 백골부대라 했대요.
면담자: 그 치안대라고 있었죠?
구술자: 그건 남한에 있었죠.
면담자: 여긴 없었고?
구술자: 남한에 치안대란 게 있었죠. 아이고, 우리들. 우리들은 참 고생 많이 했어요.
면담자: 공민증 이런 것도 발급했다면서요?
구술자: 그렇죠. 공민증은 다 있어요.
면담자: 어떻게 생긴 거예요?
구술자: 여기 주민등록증이랑 비슷해요. 그거 공민증 없으면 어디. 그리고 어디 당길 때도 없어요. 여기서 원통을 가도 소를 사러 원통을 갔다 와도 하루 종일 걸리는 데요. 말이 공민증이지. 여기서도 어디 나가면 조사하지. 모르는 사람들은. 같은 마을이라도 별의 별사람들이 다 오니까 조사하고. 그러고 나중에는 망할 때가 되니까요. 설악산에 국군이 한 번 왔다가 갔어요. 이 경비라는 게. 지금도 경비 세운다 하잖아요. 보초 세운다고. 한 300메다(미터)에 하나씩 경비 세우는 거예요.
면담자: 삼백 메다(미터)에 하나씩요?
구술자: 예, 그러니까 백담사에서부터 여기까지 300미터에 하나씩 세우는데. 그 인제 하나,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 두 사람씩 하면 그 전에야 뭐 앉아서 신도 삼고. 신은 삼아야 신으니까. 한 번은 그런 일이 있어요. 그런데 백담사서 국군이 오면은 한 사람 300미터씩은 뛰는 거야 젊은 사람들이니까. 그러면 그 밑에 가서 전달하면 그 사람이 또 300미터 뛰는 것은 또 빨리 뛰잖아요. 한사람이 뛰자면 못 뛰지마는. 하나 앞에 300미터씩 뛰면 금방 뛰잖아요. 젊었으니까.
면담자: 그렇게 전달하는 거예요?
구술자: 예, 그게 연락망이에요. “국군이 왔다.”하면 또 거기서 들고 뛰고, “국군이 왔다.” 그러고. 그것도 그냥 하는 게 아니에요. 뭐 창을 갖다놓고 찔러 죽인다고. 그렇게 또 갸들은 시키니까. 국군을 찔러죽이라고. 근데 창이 어디 있어요. 총 앞에. 그런데 그렇게 연락을 했는데 그래도 꽤 빠르더라고요. 벌써 백담사서 군인들이 나오는데 여기서 미리 벌써 알고.
면담자: 인민군들이요?
구술자: 예, 인민군들이 미리 알고 대처를 하는데 인제 38보안대에 일개 대대가 있었어요. 전방 지키는. 그런데 일리 나와 가지고, 여기 소비조합이라고. 지금 소비조합이라고 하면 가게죠. 거기 뭐 쌀도 있고 여러 거를 파는 데거든요. 국군들은 거기 한 자루 불을 싸놓고, 그렇게 해놓고 민간인도 몇 죽였어요. 그렇게 하고 들어갔는데. 이 인제에 군인이 있는데 인제 군인 출동하고. 이 간성서 오더라고요. 간성서 왔다 그러더라고요. 간성 특별 대대에서 왔다 그러더라고요. 그 사람들 서화리 들어가서 한 사람도 안 남고 전멸했어요. 거기서 또.
면담자: 아, 전멸했어요?
구술자: 예, 전멸했어요. 아이 그 저저 그때 한 대대 되나. 그까짓 것 들어와서 뭐해요. 여기는 적진지인데. 그래 가지고 그것도 또 가만히 잠복하고 뭐 서로 있다가 전투가 나면 그러면 덜 죽었지. 목욕하다가. 하다가 보니. 총 세워놓고 목욕하다가 그 목욕하는 거를 딱 해가지고 하니. 거기서 싸우는데 거기서 전멸했어요.
면담자: 아, 그러면 전체가 목욕을 하다가?
구술자: 예, 거 총 세워놓고. 거 하니까 뭐해. 다 해놓고. 거 서화리 가매소라는 곳인데 거기서 목욕하다가 거기서 전멸 당했어요. 그렇게 하고 아이고 여기 군인들 많이 죽었어요. 군인들 그 분들.
면담자: 그러면 그 서화리에 갔다가 언제 다시 여기로 오셨어요?
구술자: 우리요? 그해 왔어요. 봄에 갔다가 한 20일 있었나. 그러고 바로 나와서 여기서 농사지었어요.
면담자: 그럼 서화리 들어간 지는 얼마 안 됐네요?
구술자: 얼마 안 됐어요. 들어가서 한 20일 있다가 바로 나왔어요. 그때는 인제 이북아들 후퇴당시에 우리 쫓았는데, 그때는 다시 내려 밀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다시 농사지으라고 해서 나왔어요. 나왔는데 뒤로 나온 사람 못나왔어요. 우린 또 피난 가라고 할 판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안 가고 농사짓는다고 거길 들어갔지요. 그래 산속에 들어가는 바람에 안 가고. 못나온 사람들은 막혀서 못나오고 그랬어요.
면담자: 그러면 그 사람들 딱 끊겨버렸구나?
구술자: 예, 끊겨버렸죠. 그래 우리도 그때 당시에 못나왔으면 다 죽었지요.
면담자: 그러면 전쟁이 끝나고 나선 어땠어요?
구술자: 저 전쟁 끝나고 나서요. 그때는 뭐 좋았지요 뭐. 전쟁 끝나고 나서는 자기 마음대로 하니까. 저거 하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하고. 그리고 여기는 전쟁 끝나고 나서 이 정권 때잖아요. 이승만 대통령 할 때잖아요. 그래 그렇게 하고 있다가. 저기 저 그때는 나이 들어가지고 군대 가서 한 삼년 동안 또 거기서 있었지요.
면담자: 군대는 언제 가셨어요?
구술자: 아이, 오래됐어요.
면담자: 몇 년도에?
구술자: 그때가 50년대 하여튼 갔어요. 그래가지고 이승만 대통령 있을 때 제대했으니까요. 59년도에 아마 제대했는지 그랬을 거예요. 3년 만에 4.19가 났어요. 제대하고. 제대하고 3년 만에 4.19가 났어요.
면담자: 4.19가 60년도에 났으니까?
구술자: 제대하고 3년 만에. 그때 제대군인들은 원주 38사단에 가서 다시 훈련받거든요. 그때 원주 38사단 가서 훈련 받을 때 4.19가 났어요.
면담자: 그러면 6.25끝나고 군대를 갔네요?
구술자: 그렇죠. 6.25때는 여기 이북이니까.
면담자: 몇 살 때 가셨어요?
구술자: 군대 갈 때는 22살에 갔어요. 제 나이에 갔어요. 정확히. 여기 있던 사람들 다 그렇게 갔어요. 자기 나이 따라서 22살에.
면담자: 군대에는 몇 년 동안 계셨어요?
구술자: 한 3년 있었어요, 우리는 지금 뭐 군인 뭐 저번에 보니 18개월이니 20개월이니 하더구먼, 우린 36개월 했어요. 3년을 좀 더했어요.
면담자: 저도 30개월 했어요.
구술자: 30개월 했어요? 아.
면담자: 그러면 결혼은 언제 하셨어요?
구술자: 스물아홉에 했어요.
면담자: 늦게 하셨네요 그 당시에?
구술자: 늦게 했어요. 군대 제대하고 한참 있다가.
면담자: 그러면 자식들이 나이가 많지 않겠네요?
구술자: 많아요. 40이 좀 넘었어요.
면담자: 농사만 계속 지으셨어요?
구술자: 그렇지요. 농사만 계속 했어요. 지금도 또 농사만 해요.
면담자: 나중에 부역자 처벌은 안했어요?
구술자: 그건 없었어요. 여기 사실 나라정치가 살기 좋죠. 그런데 저 아무 것을 해도 내 마음대로 하니까. 그때 이북에는 내가 또 그때 나이어리니까. 맘대로 못하고 그렇지만,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안 되죠. 그래도 대우 해줬지요.
면담자: 마을에 주요 사건 같은 거는 없었어요?
구술자: 그 전에 주요 사건은 없었어요.
면담자: 인민군들 왔다 갔다 하는 것만?
구술자: 그리고 갸들 지금은 이 국군들은 우리 아군들은 지금 여기 연대도 있고 그렇지만은 휴가도 나오고 그랬잖아요. 이북아들은 여기 있을 때 평양 특별 대대가 여기 나와 있어도요. 외출외박 없어요. 딱 훈련 나올 때는 부대에 전체가 나와서 훈련받고 들어가고. 이 뭐 하나도 없어요. 면회 같은 것은 없어요. 면회도 없고 갸들은. 이 군대는 갸들은 민간인 싹 접촉도 안 해요. 부대에서.
면담자: 여기는 38선이 멀어서 38이남이랑 서로 교통도 하고 그랬어요?
구술자: 아이고 못했어요. 그 저 38선이 딱 막혀 있기 때문에.
면담자: 원통까지는 했다는데요?
구술자: 원통 인제 사람은 가만둥이로 했다고 그래요. 처음에는 했어요. 소련놈 나왔을 때. 그때 딱 막히고 인민군아들 38보안대 와서 딱 지키고 나서. 그때는 넘어가면 죽는데요, 뭘.
면담자: 공동으로 일을 해서 소비조합에서 사고 그랬어요?
구술자: 그때만 해도 여긴 안 그랬어요. 처음에 인제 해방되고서는 안 그랬어요. 그때도 인제 집단농장이 생긴다생긴다고는 했어요. 그때도.
면담자: 생기진 않았어요?
구술자: 예, 생기진 않았어요. 그때도 그런 얘긴 있었어요.
면담자: 그러면 세금은 어떻게 걷어 갔어요?
구술자: 갸들은 세금은. 그러니깐 그때는 돈이란 건 없고. 이 세금이라는 거는 쌀이지요 뭐. 그러니까 거의 다 뺏어가다시피 한 거예요. 그 사람들이 농사지은 것. 콩, 팥, 감자, 옥수수 이 사람 먹은 곡식은 전체니까. 그래 말은 삼칠제라고 하지만, 거의 다 삼칠제 반 다 뺏어가고. 그 다음에 세금이다 뭐. 그러니까 돈이 없으니까 쌀을 팔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막고. 또 호당 갸들은 왜 저 지금은 자루가 많아서 곡식을 자루에다가 넣지만. 그때는 가마니거든요. 그럼 한 집에 거의 할당을 줘요. 40전이면 40전 50전이면 50전 그러면 할당을 주면 가마니 짜서, 가마니 짜서 오면 그거를 또 등수를 쳐요. 1등 2등 3등, 불합격 하면 다시 해야 돼요. 다시 짜야 해요. 그러면 1등 얼마 2등 얼마 3등 얼마야 그때 내가 40장을 짰는데. 거 한 집에 40장을 짰는데, 겨울 내내 짰으니까. 그거를 갖다가 공출을 하니까 그때 돈을 주는데, 그때 몇 백 원인가 받았는데. 갸들은 카바이트란 게 있어요. 카바이트. 거기 이렇게 불 켜잖아요. 그래 공출을 하고 카바이트 두 관을 샀거든요? 그러니까 가마니 40장해서 바친 거를. 돈 탄 거를 카바이트 두 관 사니까 딱 맞더라고요. 그래가지고 갸들은 그것 갖다 켜는 간드레라는 게 있잖아요. 거 불 초 켜는. 그걸 어떻게 했냐면 깡통. 간시메 통. 깡통을 따먹고는 아주 작게 거기만 구멍을 뚫어놓고 밑에다가는 이 나무를 맞게 해놓고서는 걸레를 짜가지고 틀어막고 물에다 담가나요. 거기다 카바이트를 넣고서 물에다 딱 담가놓으면, 그게 녹으면서 그 구멍에서 카바이트가 나오거든요. 거기다 불을 탁 키면 아주 밝아요. 그게. 지금은 뭐 등에 대면 아무것도 아니지만은 그때는 등잔불이잖아요. 그게 우리 아버지가 칭찬하던 거 어제 일 같아요. 우리 저놈이. 내가 외아들로 태어났잖아요. 우리 저 이놈이 카바이트 저걸 사가지고 이렇게 불 킨다고. 불을 환하게 킨다고. 아들덕본다고 참 칭찬 많이 한 게 엊그저께 같은데. 벌써 이 세월이란 게 벌써 한 60년이 더 지나갔어요.
면담자: 외아들이었어요? 누나나 여동생은 없고?
구술자: 딸을 열 명을 낳고 아들을 못 낳아가지고 저 백담사 절에서 기도를 드렸대요. 10년 기도를 드렸대요. 그래서 나 하나 나아가지요. 그래가지고 여기 외아들로 컸어요. 그래서 어려서 귀여움도 많이 받고 이랬는데. 일찍이 뭐 조실부모 하니 뭐. 개밥에 도토리지요 뭐. 그렇게 컸어요.
면담자: 누나가 멸 명이네요?
구술자: 다 죽었어요. 다 죽고 동생하나 있어요.
면담자: 누이동생?
구술자: 예, 누이동생.
면담자: 백담사서 기도를 드렸군요?
구술자: 네, 10년을 기도를 했어요. 오세암. 그것도 오세암 가서 했어요. 오세암이 40리에요. 10년을 오세암 가서 기도를 드렸대요.
면담자: 아버지가요?
구술자: 예, 우리 어머니하고요. 그래서 마지막에 그게 날보고 그랬는데. 그래 뭐 10살 돼서 우리 엄마 돌아가시고.
면담자: 많이 그리웠겠네요.
구술자: 아휴 그럼요. 우리 엄마 있을 때는 인제군 전체에 과질이 있잖아요. 과질 선수랬더랬어요. 그래 큰 결혼식 집이 있으면 우리 엄마가 다니면서 과질해주고 그랬어요. 그런데 거기에 열병이 걸려가지고 그해 걸려가지고 돌아가셨어요.
면담자: 어머니도 열병으로요?
구술자: 네 열병으로 돌아가셨어요.
면담자: 눈에 선하겠네요?
구술자: 그렇죠, 우리 어머니 45세에 돌아가시고. 지금에는 아주 청춘이지요. 지금으로 말하면. 우리아버지는 57세에 돌아가시고. 그래서 지금 저 서화 가전리에 송로평이라고 있어요. 전방 밑이에요. 그래서 금년에도 거길 한 번 갔댔어요. 나는 매년 인제 뭐 과일 뭐 제사꺼리 해가지고. 해가지고 가면서 초소마다 이렇게 또 송편해서 주고.
면담자: 송편요?
구술자: 예, 추석 때. 해서 주고. 그 안에 들어가면 철책선이 있는데 또 그 안이에요. 그것도. 이 바깥이었으면 벌써 파가지고 왔지요. 그런데 그 안이니까 들어갈 순 없고.
면담자: 그러면 묘를 못 파왔어요?
구술자: 못 파왔어요. 그러니 거기 방향만 보고 제사만 지내는 거예요. 다 보이는데.
면담자: 아, 그러면 망제를 지내는 거네요?
구술자: 예, 거기서 그 동네서 그래도 가만히 보면 데려다 보이는데. 먼저 군인을 하나 데려 갔는데 내가 그 얘길 하니까. 그 저 철미라는 데가 그 위에 우리 아군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위에 우리 아군이 있는데. 거기가 이남일수도 있고 이북일 수도 있다 그러더라고요.
면담자: 아버지 묘 있는 데 가요?
구술자: 그 묘 있는 데가. 이남일 수도 있고 이북일 수도 있다고 그래요. 거기서 쭉 올라가는데 거기 안치되어 있으니까. 그러니 뭐 거기는 어떻게 들어갈 수도 없고.
면담자: 눈에는 선하겠네요?
구술자: 예, 눈에 선해요. 그래 거기 사진도 찍고 해왔는데. 지금 그래도 내가 그전에도요. 거기 고물 캐러 가는 사람한테 질문했어요. 그때 특무대에서 거 뭐 고물 캔다고 그래서요. 나도 하나 신청해라. 나 신청하면 나는 고물은 안 캐고 우리 아버지 산 파가져오고 그 대신 내가 소 한 마리 큰 거를 낸다. 그러니까 나를 신청해 달라 그랬더니. 자기가 보고서 얘길 해 주겠다 해요. 그래 갔더니 이북이라 그러더라고요.
면담자: 이북이래요?
구술자: 예, 그래서 거길 못 들어간다고. 그런데 나중에 다시 알아보니까. 이남 땅이기도 하고 이북 땅이기도 하대요. 거기가.
면담자: 중간에 있구나?
구술자: 예, 거기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그래요. 철미라는 거는. 그거 날보고 철미라는 곳이라 했더니. 거기가 철미인데. 거긴 이남일 수도 있고 이북일 수도 있대요.
면담자: 아버님은 피난 갔다 돌아가신 거네요?
구술자: 네 거기서 돌아가셨어요.
면담자: 거기서 장사지냈네요?
구술자: 예를 들어 거기가 뭐 이 철책선 밖에만 있어도. 그전에 어떻게 했을 것인데. 그래 우리 아들보고서 항시 추석 때면 거길 들어가요 얘길 해가지고. 거기 들어가서 거 지금은 찾겠냐 뭐. 나도 열일곱에 해서 벌써 60년이 벌써 지났어요. 10년이 지나면 강산이 변한다고. 게도 내가 어려서 그걸 봐서 원래 이런 산골에서 산을 많이 타고 그래서 가보니까 방향은 알겠더라고요. 그 지점은. 그래서 나는 지금도 들어가면 찾아요. 그래도 나는 지금이라도 들어가면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면담자: 그러면 매년 추석 때가서 제사꺼리 준비해서?
구술자: 예. 철책선 가서 제사를 지내요. 아이고 그것도 한 번씩 들어가려면 얼마나 힘든지.
면담자: 못 들어가게 해요?
구술자: 아휴, 그럼요. 조용히. 거기다 검사하고 거기 들어가는데 거기 민통선이니까 미리 신청해 가지고 군인하나 딸려 보내면 가서 제사지내고.
면담자: 같이 가서요?
구술자: 예, 제사를 지내고.
면담자: 어머니묘소는 이남에 있겠네요?
구술자: 네 거긴 여기 있어요. 여기 있으니까, 걱정을 안 하는데. 내가 살아서 아버지 뼈라도 추렸으면.
면담자: 제가 여쭸는데 얘기 안한 거 빠진 거.
구술자: 뭐 빠진 게 있어요. 다했어요. 크면서 살던 얘기는 거의 다 했어요. 그거 거기까지예요.
면담자: 존함은 안 적어도 돼요?
구술자: 정oo이에요.
면담자: 정자 o자 o자.
면담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