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병기: 활
활의 나라 한국
개요
한국은 예로부터 활의 민족이라 불리었다. 고구려의 건국왕인 동명성왕의 원래 이름인 주몽은 부여 말로 ‘활을 잘 쏘는 사람’ 이라는 뜻이었고, 실제로 주몽은 7살 때부터 백발백중의 실력을 가진 신궁이었다. 조선의 건국왕 태조 이성계 또한 당시에 신궁이라 불렸고, 조선의 22대 왕 정조도 활을 잘 쏘았다고 하며 50발을 쏘면 49발을 맞췄다는 기록이 있다. 심지어는 그 1발도 일부러 빗나가게 했다고 한다.
한국 역사에서 활을 잘 쏘았던 사람들은 비단 왕들뿐만이 아니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 백제의 계백, 신라의 관창, 조선의 이순신 등 한국사에 이름을 남겼던 명장들은 대부분 활을 잘 쏘았다. 이런 신궁의 피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현재 한국은 전세계 양궁 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어가고 있다. 오죽하면 다른 나라들에게 양궁은 은메달 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활을 잘 쏘았던 것일까? 지금부터 한국인들이 활을 잘 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보려고 한다.
한국이 활의 나라인 이유
역사적인 요인
한국은 국토의 70%가 산지인 국가다. 또한 한국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전쟁은 외세의 침략이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전투가 우리 국토 안에서 벌어졌다. 대부분이 산지인 우리 국토에서 지리적 이점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무기는 다름 아닌 활이었다. 지형이 험준한 산에서는 칼을 이용한 근접전이나 대포 같은 화약무기를 이용한 화력전이 불가능했기에, 적은 인원으로 게릴라전을 펼치며 적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활이 전략상으로 유리했던 것이다.
또한 과거 우리나라와 가장 많이 전쟁을 벌였던 국가는 중국이었다. 그리고 중국은 전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다. 그런 중국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당연히 수적으로 열세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상술했듯 적은 인원으로 적들을 상대할 수 있는 무기인 활이 선호된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전투 양상은 지형이 험준한 산에 산성을 짓고 농성을 벌이는 것이었는데, 이런 수성전에서 수적인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무기 중 하나가 바로 활이었다. 활은 원거리 무기였고, 그것은 곧 내가 받는 피해 없이 적을 공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러한 이점들이 겹쳐져 고대 한국에서는 활이 주 무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문화적인 요인
한국인들에게 활이라는 것은 전쟁병기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들에게 활쏘기는 하나의 문화였다. 한국에서 활쏘기는 일상생활에 녹아 들어있던 하나의 놀이문화였다. 이후 조선 시대에는 유교가 국가 이념이 되면서 활쏘기 문화가 더욱 부흥했는데, 공자와 맹자가 활쏘기는 유교의 교육과정이라며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조선은 왕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까지 활쏘기를 즐겼으며 대부분 활을 잘 쏘았다고 한다.
궁중에서는 매년 ‘대사례’ 라고 하는 왕과 신하들의 공식 활쏘기 행사가 열렸으며, 왕은 평소에도 심신 수련을 위해 활쏘기를 했다고 한다. 또한 활쏘기는 민간에서도 유행했는데, 외세의 침입이 잦은 북방 지역에서는 여자들도 말을 타면서 활을 쏘는 게 가능했다고 한다. 또한 사람들은 넓은 공터만 있다면 어디서든 활쏘기를 즐겼다고 하며, 19세기에는 서울에만 활터가 50곳 가까이 될 정도였다고 한다. 이처럼 활쏘기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한국의 대표 스포츠였으며, 지금도 그 명맥은 유지되어 한국 국가대표팀이 양궁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보이고 있다.
결론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활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한국인에게 활은 하나의 스포츠였으며 놀이였다. 활은 이미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 속에 깊게 녹아들어 있었다. 이처럼 활을 오랫동안 애용한 덕분에 우리 일상에서도 활과 관련된 단어들이 많다. 쏜 화살처럼 빠르다는 뜻의 ‘쏜살’, 과녁에 화살이 맞았다는 뜻의 ‘적중’, 과녁의 한가운데를 말하는 ‘정곡’ 등이 있고, 우리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인 ‘긴장’ 또한 활시위를 맨다는 뜻에서 유래된 말이다.
우리의 조상님들이 애용하던 활은, 이제 우리나라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수천 년 동안 한국을 지킨 최종병기 활은, 이제 한국을 올림픽 강국으로 만드는 최종병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