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심의행동(心意行動) - 나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습격이 실패 했다는 말을 들은 흑점사 곡현은 어이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 실패의 원인이 아운 한 명 때문이란 말을 들었을 땐, 더욱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강한 자였던가?’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했다. 일이 끝난 후 죽이려 했던 것을 알았다면 나중에라도 꼭 보복당할 것 같았다. ‘그래도 그것은 먼 훗날이겠지.’ 지금은 쫒기고 있을 시기였다. 자신에게 청부를 한 자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흑점사다. 그들이 얼마나 지독한 무리인지 너무도 잘 안다. 아마도 아운은 그들에게 쫒기다 불귀의 객이 되리라. 어차피 그런 상황이 아니라도 절대 낭인촌엔 올 수 없을 것이다. 언교해의 죽음으로 인해 진주 언가의 고수들이 낭인촌에 진을 치고 있었다. 흑점사는 만약을 위해 진주 언가에 정보를 슬쩍 흘렸었다. 본의 아니게 언가는 흑점사의 방패막이가 되고 말았다. 뿐인가? 오절의 전부가 낭인촌, 그 중에서도 흑점사의 거처에 와 있었다. 그들은 둘째인 형가의 내상이 치료되는 대로 다시 아운과 살아남은 묵가의 식솔들을 사냥하러 떠날 것이다. 특히 오절의 대형인 벽력자(霹靂者) 담대천(澹臺天)은 바로 자신의 옆방에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미친놈이 아닌 다음에야 이런 상황에서 흑점사를 찾아오진 않을 것이다. 그건 바보가 아니라도 알 수 있는 상식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가끔 상식적으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느긋하게 자신의 방에 들어온 흑점사 곡현은 바로 그 미친놈을 보고야 말았다. 혀가 굳어지고, 입이 벌어지면서 눈이 앞으로 툭 붉어져 나온 흑점사는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어, 어떻게…” “어떻게 왔냐고 묻는 것인가? 그거야 물론 뛰어 왔지.” 아운이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곡현은 등골이 서늘해서 입조차 함부로 놀리기 어려웠다. “네… 네놈은, 지금 죽음의 늪에 들어온 것을 아느냐?” “물론 알지, 네 놈의 고자질로 인해 언가에서도 와 있고, 오절도 전부 와 있다고 하던데.” 흑점사 곡현은 심호흡을 하였다. 예상 밖의 상황이라 당황했었다. 그러나 정신을 수습하고 나니 그리 심각한 문제도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운이 이 자리에 나타나긴 했지만,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우선 자신을 죽이려면, 정말이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야만 스스로 무사할 수 있다. 만약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만 해도 오절이 쫒아 올 것이고, 그 이후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언가의 인물들이 몰려 올 것이다. 오절이 강해도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다. 몇 백 년의 전통을 가진 오대세가는 또 다르게 마련이었다. 비록 아운보다 약할지 모르지만, 남들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무공을 지니고 있는 흑점사였다. 몰래 기습을 한다면 모르지만 일대일로 겨룬다면 단 한번에 자신을 죽이진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설혹 한 번에 자신을 죽일 수 있더라도 최소한의 소동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운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아무리 겁을 상실한 바보라도 자신이 죽을 걸 알면서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진 못 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가 판단한 아운은 바보가 아니었다. 바보는커녕 상당히 머리가 좋은 인간이다. 가끔 무대포 짓을 하긴 했지만, 결국 지금 상황에서 자신을 해하고 자신이 죽는 멍청한 짓을 할 인간은 아니었다. 결국 겁먹을 필요가 없는 상황이란 판단이 서자 그는 침착해졌다. 낭인촌의 살수들과 낭인들을 관장하는 흑점사 다운 판단력이었다. 목소리가 냉정해졌다. 당황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왜 다시 돌아왔지? 자칫하면 죽을 텐데. 후후, 협박하려고 왔는가?” 아운이 웃는다. 곡현은 다시 한번 섬득한 느낌이 들었지만, 애써 떨쳐 내었다. “궁금해서.” “뭐가 말이냐?” “누구지? 누가 묵가장을 몰살시키라고 한거지?” 곡현은 아운을 보면서 차갑게 웃었다. “모른다. 설혹 안다고 해도 말해 줄 것 같은가? 난 낭인촌 제일의 흑점사다.” “그렇겠지? 뭐 기다리다 보면 천천히 알게 되겠지. 이제 그 이야긴 그만하고 이제 빚 청산을 해야지.” “빚.” 아운은 주먹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나를 죽이라고 했다며, 설마 그냥 넘어 갈 생각은 아니겠지?” “그 멍청한 야이 놈이 입을 나불댔군. 제 형의 십분의 일만 쫓아갔어도 그런 멍청한 짓은 안 할 텐데.” “형?” “흐흐, 야이의 형은 바로 무림 삼대 자객 중, 한 명인 귀검살(鬼劍殺)야한(夜寒)이란 말이다. 비록 동생이 멍청하단 이유로 버리긴 했지만,그래도 혈육이다. 그래서 거기 간 놈들 중에 야이만은 살려 주려고 했었다. 야한은 정말 겁나는 인간이거든.” 곡현은 야한이란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이제 네 놈은 그 무서운 야한과도 원한을 지게 되었으니 각오하란 뜻이리라. 아운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좋군.” “제법 태연한 척 하는군.” “울어도 소용없으니까. 뭐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지. 결국 날 죽이라고 한 것은 사실이었군.” “분명히 그랬지.” “그럼 그 빚을 받는 일만 남았군.” “지금 말이냐?” 곡현은 아운을 비웃으며 말했다.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냐 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웃음 뒤엔 해 볼 태면 해봐라 하는 배짱도 숨어 있었다. 아운의 얼굴이 조금 심각하게 변했다. “난 말이야!” 흑점사가 아운을 본다. “너무 화가 나면 아무것도 생각을 안 하거든. 그리고 그 다음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지.” 흑점사가 움찔한 표정으로 아운을 보았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깨우친 것인데, 잔 머리를 너무 굴리다 보면 결국 때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지. 때론 가슴이 시키는 일이 잔머리 골백번굴리는 것보다 훨씬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단 말이야. 그래서 집에서도 뛰쳐나왔지만, 그래도 그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아운이 눈이 점점 차갑게 가라앉고 있었다. 곡현은 가슴이 식어오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면 답답하지가 않거든, 난 그게 좋아.” 아운의 웃음이 조금 더 깊어 졌다. 곡현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시 꼿꼿해졌다. “풋! 바보 같은 놈,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이냐? 오절이 전부 모여 있고,언가에서는 십절벽력창(十絶霹靂槍) 언행(彦幸)과 소운십절창(沼雲十絶槍)이 와 있다. 네 놈은 나를 죽이고 그들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너는 보표로서도 자격 상실이다. 일에는 선후가 있게 마련이고,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묵가장의 남매를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지 않은가?” 아운의 표정이 암울해졌다. 곡현은 아운의 표정이 즐거웠다. 그는 얄미울 정도로 느긋하게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은 네가 내공으로 이 안의 소음을 전부 차단하고 있겠지만, 나를 죽이려면 내공을 풀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겠지.” 아운이 가볍게 한 숨을 내쉬면서 곡현을 본다. 인정한다는 표정이었다. 곡현은 가볍게 웃으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한 시진을 주겠다. 한 시진 동안은 네가 왔었던 것을 알리지 않겠다. 그 안에 될 수 있으면 멀리 도망가라.” 아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흑점사를 보며 말했다. “네 말이 다 맞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차피 열 받아서 가슴이 터져 죽을 것이다.” “뭐라고 이 미친…” 고함을 지르던 곡현이 놀라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운의 신형이 화살처럼 날아와 발로 곡현의 턱을 올려 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흑점사의 턱이 부서지며 뒤로 튕겨 날아가 벽 한구석에 쳐 박혔다. 그리고 그대로 날아온 아운이 발로 흑점사의 입을 걷어차 버렸다. 퍼억! 기운 찬 소리와 함께 누런 이빨 십여 개가 화살처럼 날아가 벽에 들어가 박힌다. 얼마나 세 개 찼으면. 물론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운은 번개처럼 흑점사의 몇 군데 혈을 집었다. 이제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기절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아운은 자신의 등을 향해 날아오는 무지막지한 힘을 느꼈다. 아운은 칠보둔형보법으로 몸을 틀어 그 힘을 흘려보냈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흑점사의 거쳐 한쪽 벽에 커다란 손자국 모양의 구멍이 생겨났다. 무지막지한 위력이었다. 아운은 상대를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장절(掌絶)이군.” 아운이 돌아본 곳에는 정말 평범해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키도 얼굴도 복장도 전부 평범하였다. 그러나 그 몸에서 풍겨 나오는 기세만큼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장(掌), 도(刀), 편(鞭), 지(指), 검(劍)의 오절 중 가장 강하다는 장절이었다. “눈치 빠르군. 내가 장절 담대천이다. 남들이 벽력자(霹靂者) 담대천(澹臺天)이라고들 하지.” “눈치라기보다는 들은 소리가 있어서. 한데 보아하니 날 기다리고 있었던것 같군.” “여기서 기다리면 올 지도 모른다고 하더니, 정말 올 줄은 몰랐다.” “머리 좋은 녀석이군. 내가 돌아선 것 하나로 내 성질을 파악하다니. 저 불쌍한 흑점사는 결국 미끼였군.” 아운은 얼굴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상대편엔 정말 머리 좋고 눈치 빠른 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담대천은 기광이 어린 얼굴로 아운을 보았다. 아운이 이 곳에 올지도 모른다고, 어느 정도 예상한 인간도 놀랍지만, 그것을 태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무엇을 근거로 상대가 이런 추측을 하였는지 단 한번에 눈치 채는 인간도 놀랍다. 담대천은 곡현을 보면서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흑점사 곡현 따위야 어떻게 되던 별 상관이 없었다. 한데 지금 상황에서 저 흑점사를 두둘겨 팬 무식한 배짱은 인정하지만, 이건 머리 나쁜 골통들이나 하는 무식한 짓이었다. 한데 아운은 단순 무식한 인간 같지는 않았다. 단 한 마디지만 그 한 마디로 아운이 바보가 아니란 것은 알 수 있었다. 한데 지금 곡현의 모습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혹시 자신들이 있었던 것을 몰랐을까? 그것은 더욱 아닐 것 같았다. 그 두 가지 사실 속에서 담대천은 아운에 대한 혼선으로 머리가 복잡해 지고 말았다. ‘설마 우리 오절을 혼자서 다 이길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럼 뭐냐? 담대천이 고민할 틈에 나머지 사절이 나타나 그의 뒤에 나란히 늘어섰다. 아운은 그들 중에 형가와 오요홍을 힐끗 본 다음 다시 담대천에게 시선을 던졌다. “다섯이군. 이거 내가 상당히 불리한데.” 아운의 말에 담대천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겁이 없는 놈이군.” “용기가 지나칠 뿐이지.” “그 용기가 너를 죽일 것이다.” “뭐 그래도 할 수 없지. 그 전에 난 저 자식의 이빨을 몽땅 부셔놓고 팔 하나를 끊어 놓는 것으로 빚 청산을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이제 이빨은 전부 날렸으니 팔 하나만 자르면 되거든. 좀 기다려 줄수 없을까? 어차피 중요한 인간도 아닌데.” “미친놈. 나중에 무림의 친구들이 우리를 뭐라고 하겠는가? 미안하지만 그건 절대 안 되는 일이지.” “그래? 그럼 한번 막아봐라 난 반드시 빚을 받아야겠다.” 아운이 차가운 시선으로 담대천을 보자, 담대천은 눈이 시린 느낌이었다. ‘지독한 눈빛이군.’ “후후, 네 놈은 오늘 여기서 살아 돌아갈 생각은 말아라.” 담대천은 가슴속에 치미는 한기를 억누르며 말했다. 아운의 얼굴이 웃음이 사라졌다. “근데 말이야…” 오절이 아운을 본다. 그리고 그 순간 아운의 공격은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기습이었다. 아운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하면서 쏘아진 화살처럼 오절에게 달려들었다. 모두들 엇 하는 사이에 아운의 발이 벽력자 담대천의 복부를 차고 있었다. 선풍팔비각(?風八飛脚)의 선풍비혼차(?風匕魂車)의 초식이었다. 비수처럼 날카로운 발이 회오리바람처럼 돌아가며 상대를 공격한다. 는 구결이 초식의 맨 앞에 등장하는 것처럼, 이 초식은 비수처럼 날카롭게 담대천의 복부를 찍어 갔다. 발끝이 비수가 된 셈이었다. 담대천을 비롯한 오절이 모두 놀란다. 아운과 담대천 사이의 거리가 꽤 됨에도 불구하고, 그 거리를 한번에 좁혀온 아운의 빠른 보법에 놀랐고, 각법의 위력과 날카로움에 또한 놀랐다. ‘주먹만 강한 것이 아니었다.’ 형가와 오요홍의 생각이었다. 아운의 공격은 그렇게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담대천은 장절의 수좌였다. 그렇게 쉽게 당할 인물이겠는가? 그의 몸이 좌로 회전하면서 아운의 공격을 피해내었다. 동시에 그의 성명절기인 벽력진팔장(霹靂震八掌)의 절초로 아운의 옆구리를 가격하려 하였다. 우르릉! 하는 벽력음과 함께 벽력장의 장세가 아운을 덮쳐왔다. 순간 나머지 사절 중 삼절이 아운을 포위하며 일제히 협공을 시작하였다. 형가의 칠성쾌도와 추혼절편 오요홍(吳妖紅)의 추혼십절(追魂十絶), 그리고 지절(指絶) 예혼(叡魂)의 청월지(靑月指)가 아운의 심장과 단전,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그 찰라의 순간, 위에서부터 아래로 역할 분담을 하였으며, 담대천은 옆구리를 공격하면서 거의 완벽한 협공을 만들어 내었다. 서로 오래 동안 호흡을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단 한 명 검절(劍絶)인 비천검(飛天劍) 고벽(高壁)만이 만약을 대비해서 검을 뽑아 든 채 한쪽에 비켜 서 있었다. 사실 고벽으로서는 굳이 자신이 끼어들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어느 누가 감히 오절 중 내 명의 협공을 이겨낼 수 있겠는가? 각 대문파의 장로급 이상의 인물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운은 사방에서 밀려오는 살기를 느끼자 망설이지 않고 허공에서 몸을틀며 섬광어기풍(閃光魚氣風)의 신법을 발휘하였다. 하나의 섬광이 네 명의 사이, 정확하게 오요홍과 지절 예혼의 사이로 빠져 나오며 홀로 서 있는 고벽을 향해 날아갔다. 아운은 섬광어기풍의 신법으로 네 명의 협공을 빠져 나왔지만, 몸에 세 군데나 상처를 입고 말았다. 그 상태로 아운의 주먹이 고벽을 향해 날아갔다. 주먹에 어리는 밝은 광채, 순간 형가와 오요홍이 기겁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정면으로 마주치지 말아.” “피해.” 둘이 동시에 외쳤지만, 고벽은 피할 사이가 없었다. 그러기엔 아운의 주먹에서 날아온 광채가 너무 빨랐다. “어헙!” 기합과 함께 아운의 주먹이 고벽의 검과 충돌하였다. 거친 소리와 함께 고벽이 뒤로 밀리며 벽에 쳐 박혔다. 아운 역시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물러서는 아운을 향해 오요홍의 절편과 청월지(靑月指) 예혼(叡魂)의 지풍이 날카롭게 공격해 온다. 아운은 오른손으로 예혼을 향해, 그리고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왼손은 오요홍을 향해 내 질렀다. 누구보다도 아운의 주먹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아는 오요홍이었다. 그리고 그 주먹이 순서대로 강해진다는 사실도 안다. 오요홍은 공격하던 절편을 거두고 빠르게 옆으로 회전하며 몸을 피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예혼의 신형이 뒤로 튕겨 나갔다. 벽력자 담대천이 잡지 않았다면, 최소 삼 장은 날아갔을 것 같았다. 한데 아운의 공격을 피한 오요홍은 아운의 왼손에 아무런 힘도 실리지 않은 허초였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와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게 물이 들고 말았다. 육삼쾌의연격포는 공력의 특성상 두 주먹으로 펼칠 수가 없었다. 결국 두 주먹으로 하려면 일초 다음의 이초를 다른 손으로 펼쳐야 하는데, 지금 아운의 경우가 그랬다. 하지만 그것도 원래 한쪽의 공격이 완전히 끝나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자신의 주먹맛을 제대로 아는 오요홍에게 세 번째 주먹을 휘두르는척하여 그녀를 피하게 하고 실상은 예혼을 공격한 것이다. 아운은 일단 예혼을 물리치자, 바로 오요홍을 향해 섬전어기풍의 신법으로 돌진하면서 세 번째 주먹을 내 밀었다. 이런 공격 방법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아운의 신형이 너무 빨라서 오요홍은 피할 여력이 없었다. 다행이라면 담대천이 빠르게 예혼의 신형을 한쪽으로 밀면서 아운을 공격하였고, 형가 역시 칠선쾌도로 협공을 하였다. 하지만 이미 아운은 주먹을 내 지른 다음이었다. 콰앙! 거친 폭발음과 함께 오요홍의 절편이 튕겨 나갔고, 오요홍은 입가에 피를 흘리며 겨우 버티고 섰다. 내상을 입은 듯 했다. 오요홍의 실력으로 아운의 세 번째 주먹을 막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일단 일격을 성공한 아운은 허공에서 섬전어기풍을 칠보둔형으로 바꾸면서 몸을 틀어, 형가의 도를 피함과 동시에 벽력자의 장법을향해 네 번째 주먹을 휘둘렀다. 하나는 피하고 하나는 정면으로 겨룬 셈이었다. 콰쾅! 소리와 함께 아운의 신형이 주르륵 밀려났고, 벽력자 역시 뒤로 밀려났다. “과연.” 아운이 감탄한 듯이 말했다. 오절의 명성은 벽력자 담대천과 칠선쾌도 형가에 의해 빛이 난다고 하더니 결코 그 말이 와전된 것은 아닌 듯 했다. 아운의 등은 형가의 도에 의해 길게 베어져 있었는데, 적지 않은 피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피하기는 했지만, 조금만 잘못 했으면 두 쪽이 나고 말았을 뻔했다. 만약 아운이 담대천의 공격을 피하고, 형가와 정면충돌 했다면, 형가에게 타격은 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자신 또한 지금보다 더 심한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운은 숨을 돌리기도 전에 무려 세 명의 협공을 받아야 했다. 더군다나 형가의 도엔 일곱 개의 푸른 별이 아름답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운이 어떻게 그 별을 잊을 수 있겠는가? “칠군청랑성.” 뿐이랴, 내상을 입은 고벽이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두르며 공격해 오는데 그 검에도 푸른색의 검기가 맺혀 있었다. 또한 절편을 손에서 놓치고 부상을 당한 오요홍도 이를 악물고 손으로 벽공장을 펼치며 공격해 오고 있었다. 아운의 다섯 번째 주먹이 펼쳐졌다. 콰아앙! 아운은 컥! 하는 비명을 토하고 피를 뱉어 내었다. 역시 삼대 일은 무리였다.특히 형가의 공격은 여전히 무서웠다. 제법 무시할 수 없는 내상이었다. 하지만 아운은 미쳐 숨 한번 돌릴 시간도 없었다. 지금의 공격으로 내상이 더 악화된 오요홍과 고벽 대신에 벽력자가 형가와 함께 협공을 해 왔다. 아운은 이를 악물고 여섯 번째 주먹을 휘둘렀다. 콰가강! 소리와 함께 형가와 담대천은 엄청난 압력으로 인해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내부가 진탕되는 것을 느끼기도 전에 두 사람의 눈이 부릅떠졌다. 충격으로 인해 뒤로 튕겨지고 있는 아운이 다시 한번 주먹을 지르고 있었다. 일곱 번째 주먹이었다. ‘일곱 번째 주먹도 있었던가?’ 형가와 오요홍이 자신도 모르게 떠 올린 생각이었다. 드디어 육삼쾌의연격포 중에 후 삼식에 해당하는 삼절파천황(三絶破天荒)의 일격이 펼쳐진 것이다. 우웅! 하는 소리가 담대천과 형가의 귀에 천둥처럼 들려왔다. 이건 다르다. 어느 정도 일정한 만큼씩 위력이 더해지던 지금까지의 주먹과는 전해 오는 기세부터가 달랐다. 형가와 담대천의 감각에 위험 신호가 감지되었다. “피해.” 둘이 외치지 않아도 오절은 이미 몸을 날려 피하고 있었다. 커다란 폭발 소리가 들리며 아운의 주먹에서 날아간 광채가 곡현의 집 한쪽을 완전히 부수어 버렸다. 동시에 아운의 신형이 섬전처럼 벽을 부수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모두들 잠시 동안 멍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만 본다. 생각하기도 싫은 위력이었다. 이때 담대천의 표정이 더욱 굳어지면서 곡현을 보았다. 주먹에서 날아온 광채는 한쪽 벽을 박살내면서 곡현의 한 팔을 완전히 부셔 버렸다. 그 와중에서도 할 짓은 다하고 도망간 아운이었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절대로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될 인간을 건드린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