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집을 짓고 싶다 - 타워팰리스 이후의 주거형태에 대한 상상]
1.
일전에 병원에 잠깐 입원했던 적이 있다. 자동차 사고가 있었고, 많이 다친 것은 아니지만, 계속 목이 뻐지끈해서 잠깐 누워 세월을 보냈더랬다.
그때 입원했던 병원 뒤쪽이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1이 되기까지 5년 정도 살던 곳이다. 차를 주차하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옛날 살던 집을 구경하게 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그 동안 차들이 참 많이도 늘었구나, 하는 점.
골목이라고 할 수 없는, 왕복 2차선을 만들 수 있는 그 긴 공간이 한쪽으로는 주차장이 되어 차들이 줄을 지어 서 있고 그 사이에 자리를 잡기가 만만치 않았다.
옛날에는 그곳에서 달리기도 하고, 공도 던지고 받곤 했던 것이 기억나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차들이 줄창 오가는 중이다. 꼬마들은 또 다들 어디에 있나.
서울에 갈 때면, 이태원의 친구네 빌라에서 잠을 자거나 이문동의 동생 하숙집 신세를 지곤 했다. 친구네 빌라야 주차장이 있어 문제될 것이 없지만, 동생네 앞에서 골목에 주차할 때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벽에 아주 밀착해서 주차하지 않으면 차들이 지나지 못하는 골목, 행여 누군가 어설프게 주차하면 꼼짝없이 갖혀 버리는 꼴이다.
조금 오래된 아파트나 계산을 잘못한 아파트를 찾으면, 영락없이 주차장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
2.
대체로 복도식 아파트가 계단식 아파트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전용율 문제도 있고, 사생활문제도 있고, 방범 문제도 있다.
하기는 복도로 나 있는 창을 열어놓을 수 없으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단점이야 장점도 함께 지니는 법이라, 어쩌면 복도식이 이웃을 알아가는 데는 더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야 그런 아파트에 살아 본 적이 없으니 (본가는 줄창 주택이었고, 나야 늘 반지하 원룸일 적이 더 많아서) 잘은 모르지만, 경매 물건을 찾아다니며 느낀 분위기이다. 아파트의 경우 해당 물건지에 주인이 없으면 옆집 초인종을 눌러본다. 복도식은 오가는 아이들도 있고, 문을 열어 놓고 서로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했다. 물론 복도식이 조금은 더 서민층 아파트이기도 하고.
그러고 보면, 복도식이 방범에 취약하다는 논리도 오히려 반대로 여길 수 있을 성싶기도 하다. 복도에서 창을 열고 들어온다? 그것보다는, 낯선 사람에 대해 서로 경계를 할 수 있기도 하지 않을라나?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못 보던 분인데, 어딜 찾아왔나요?' 라고 물어봄직도 하다.
요즘 아파트는 복도식과 계단식이 조금씩 혼합된 형태도 본다.
3.
역시 고층에 살아 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고층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땅과 가까워야 좋다고 하지 않는가. 아찔하게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쾌감이야 있겠지만(그래서 이름도 타워팰리스, 아크로빌, 하이팰리온 등이다. 다 높다는 뜻이 들어가 있다.) 땅을 밟고 서는 안정감도 무시 못할 요소이기도 하다.
있어서야 안 될 테지만, 만의 하나 고층 아파트에 대형 화재라도 한번 난다치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확인은 못해봤지만, 고층에서 화분은 식물이 빨리 죽는다는데, 사람은 괜찮을라나. 5층 이하의 아이들이 고층 아파트 아이들보다 신체 발육이 빠르다는 연구를 일전에 읽었던 적이 있다. 요인으로 여러 가지를 언급했더라만, 아무튼 사람이야 땅과 가까울수록 편안하다는 논리는 그 연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정할만 하다.
4.
그래서 생각해 본 것.
아이들이 뛰어 놀 공간이 없다. 놀이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골목이 필요하다. 차가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골목. 그런데 골목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뉴타운 등을 통한) 재개발의 취지 가운데 하나는 역시 골목을 없애자는 논리가 아닌가. 반듯반듯하고 널찍널찍한 공간을 만들고 나면, 보기에 좋고 공간 효율성은 뛰어나겠지만, 아이들이 안심하고 뛰어 놀 공간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매번 먼 곳으로 보낼 것인가. 차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집 앞 골목에서 뛰어 놀 수만 있다면 좋지 않겠는가. 어린 조카들을 봐도 그렇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주 대단한 놀이시절만은 아니다. 좁은 골목이라도 그들의 창조성으로 얼마든지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웃이 만들어지며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역할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도시는 점점 삭막해지고 있는데, 그게 인심이 점점 흉흉해져서라기 보다는, 주거형태라는 구조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단순하게 구조만 바꾸더라도 서로 소통하고 다닐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땅에서 가까운 게 아무래도 좋다.
이런 제 조건들이야, 나에게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일견 예상을 해 본다.
4,5층 중심의 아파트에서 20층 내외의 고층 아파트로, 그리고 엄청난 주상복합아파트로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그 다음 단계는?
주택의 여과과정이론에 따르면 (강연에서 밝히기도 했고, 이전 글 마지막 기회론에서 밝히기도 했듯이), 상류층을 위한 양질의 주거공간을 공급하면, 그 아래 중류층이 이전의 상류층 주거를 차지한다. 그렇게 한 단계씩 올라간다. (이전 설명에서는 반대로 했던가. 서민들이 제일 아래층 서민아파트를 차지하면서 그곳에 살던 사람을 위로 밀어 올린다고.)
어쨌든 신규 공급되는 물량은 이전의 주거공간보다 못한 것이 나올 리 만무하다. 주거환경은 상류층의 기호에 맞추어 더욱 고급화 될 것이다. 그리고 아래쪽에서부터 밀려 올라가든, 위쪽에서 먼저 올라가 그 진공상태를 채우기 위해 끌려 올라가든, 결과적으로는 단계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그렇다면, 타워팰리스 이후의 주거 공간은? 정말 라퓨타가 되어 하늘 위에 붕 떠있는 공간이 될까? 아니면, 미래영화처럼 엄청난 고층의 주거공간이 될까?
글쎄, 어쩐지 나라면 그런 공간을 찾지는 않을 성싶다.
다음 주거 형태는, 4층 정도의 고급 빌라촌 형태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해본다. (전망은 믿지 말랬죠? 그냥 상상해 보는 겁니다.) 1층과 2층을 복층으로 사용하고(내부에서 연결되도록 계단이 있고), 3층과 4층을 복층으로 사용하며, 복도가 현재보다 배 이상으로 넓은(2미터 정도) 그런 고급 빌라 형태가 되지 않을까. 복도에는 화단도 만들어지고, 아이들 자전거도 놓이고, 함께 자리할 벤치나 의자도 갖추어진 골목의 역할을 하도록 예쁘게 꾸며지지 않을까.
빌라 앞으로는 정원이 딸려 있고, 어느 정도 그 정원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지하 4,5층에 주차하고 25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것이 아니라, 주차하면서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거나, 몇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구조가 되지 않을까.
그게 타워팰리스 이후에 등장할 최고의 주거 형태가 되지 않을까.
아니면, 말고.
그런데, 어쩐지 그런 집을 짓고 싶다. 이름이야 아무려면 어떤가. 그런 고급 빌라촌을 그려본다. 이전의 빌라처럼 고작 1,20가구의 한 두 동이 아니라, 대단지가 형성된다면, 단지 내에 상권과 학교를 구성하는 것으로, 아파트의 편리성을 그대로 이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구상해 본다.
타워팰리스의 주상복합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주거 형태가 나오기 까지는 10년 정도는 족히 걸리겠지. (더 빨라질 수도, 늦을 수도 있고, 아예 안 나올 수도 있고. 하지만 분명 새로운 주거 형태는 등장할 터.)
[선한 부자]에서 많은 부자들이 나와서, 함께 신 주거 형태를 짓는 것이다. 그리고 분양을 하는데, 전량 분양되면 수익을 거둘 수 있으면 좋고(그럼, 또 만들지), 분양 안되면 각자가 하나씩 꿰어차고 살면 되고.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죠수아
건강과 웃음 / 순수와 여유
사랑과 인정과 칭찬과 격려와 배려의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