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기차에 대한 내 느낌은 완전히 둘로 나누어져 있었다. 내가 본 이탈리아 영화는 거의 기차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철도원 이나, 빅토리아 데시카 감독의 종착역이라는 영화같은, .. 이탈리아구나 싶은,이미지의 편린이 그 첫번째에 해당하는 느낌이라면,,, 도둑맞을 걱정 때문에, 큰 배낭은 위에 얹어서 줄로 묶어두고, 카메라가 든 가방은 가슴에 껴안은 채, 잠을 쫓기 위해, 괜시리 가방의 부직포를 찍찍 소리가 나도록 붙였다 떼었다를 반복하면서, 신경이 날카로와져 있는 것이 두 번째에 해당하는 느낌이었고,,, 경우에 따라, 순간순간 내 느낌은, 첫번째와 두 번째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약간 험상궂은 인상의 아저씨가 좌석 사이의 통로로 이동해 오면 두 번째의 느낌으로 향했다가, 창밖으로 근사한 토스카니의 풍경이 보일라 치면 첫 느낌으로 금새 바뀌곤 하는 것이다. 기차는 드디어 속력을 줄이고, 몇 번인가 Santa Maria Novella 라고 쓰여진 작은 팻말이 시야에서 미끄러져 갔다. 객차와 객차 사이, 플랫포옴과 연결된 기차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동양인 아저씨가 내 시선을 끌었다. 책 하나 달랑 들고 있는 행색을 보아 여행객은 아니었다. 어느 나라 사람일까 시펐는데, 반대편 객차에서 몇 사람인가 문을 열고 나오자, 아저씨가 내 쪽으로 밀려왔고, 그 때 아저씨의 손에 든 책의 표지에 신동아 라고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안녕하세여..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는데, 아저씨는 좀 놀라면서 내 아래위를 휙 훑어 보았다. 혼자다니는 애는 거의 본적이 없는데..한국애 맞냐? 그런 식으로.. 말했다. S 전자 단말기 사업본부에서, 이태리로 파견된 L 아저씨.. 이게 기차가 완전히 플랫포옴에 멈춰설 동안 내가 얻은 아저씨에 대한 정보였다. 인포 센터 앞에서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할려는데, 뒤따라 오는줄 알았던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인포센터에서 지도를 얻고, 역앞의 광장으로 걸어가려는 순간, 뒤에서 누가 탁 어깨를 쳤다. 사라졌던 아저씨가 다시 나타났다. 그래서 나란히 걷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된 바로는, 이 짧은 순간 그날 피렌체에서의 내 운명이 결정된 것이었다. L 아저씨는, 나를 집에 데려가서 점심이라도 먹여 보낼까 귀찮은데 그러지 말까로 갈등했다고 ^^. 결국은 그 날 밤 잠까지 자게 된다. 한국말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던지 아저씨는, 엄청난 질문 공세를 내게 퍼부어 대었다. 어느 대학 다니냐, 전공은 무엇이냐, 집은 어디냐,,,등등. . . 잘 모르는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거리감 같은 것이 걸을수록 점점 풀어졌다. 우리는 중세의 작은 골목길들을, 이리저리 헤쳐 나갔다. 아마도 지름길로가는가 보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골목길은, , ,중세의 표준 사이즈 같은게 있는지, 베네치아의 골목길과 거의 폭이 같았다. 두 사람의 양팔을 한껏 벌린 정도의 길을 사이에 두고 사오층 정도 되는 대리석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피렌체를 묘사한 은빛 피렌체라는 소설 속에서 아름다운 꽃의 성당이 시 어디에서나 보인다고 한 구절이 있었는데, 그것은 좀 과장된 말인 것 같았다. 골목에 따라 주황색 지붕의 일부분만 힐끗 보였다, 아, 다음 골목만 지나면, 이제 너의 전모가 드러나겠구나, 싶었지만 오히려 아예 안보이고 보였다가 안보이고, 계속 그런 아슬아슬함의 연속이었다. L 아저씨가, 우리 집 바로 산타크로스 광장 담 하나 너머야. 이러길래, 뭐야 크리스마스도 아니고 왠 산타크로스 광장이 피렌체에 있는거야하고 갸우뚱 했었다. 알고보니까 아저씨는 바로 저 santa croce 산타 크로체 광장을 그렇게 발음한 것이었다. -.- 아르노강을 넘어 서자마자, 사람들이 띠처럼 건물을 둘러싼 옆을 스쳐지나가게 된다. 자세히 보니까 태반이 일본인 단체 관광객처럼 보이는 동양인들이었다. 우피치 미술관..-.- 어, 저렇게 줄서야 되나 하고 작게 중얼거렸는데, 아저씨 왈. 아니야. 줄안서도 돼, 그러는 것이다.
집 앞에 도착했다. 한 오층 정도되는 돌집들이 줄줄이 늘어선 아주 좁은 골목길이었다. 열쇠를 돌려 문을 여는 아저씨에게, 봉쥬르노...하면서 이탈리아 아줌마가 아는 척을 했다. 집은, 방 두개 정도의 스튜디오 구조였고, 홀아비 냄새 -.- 비슷한 것이 났다. 나무로 된 식탁같은 것이 하나 있었고, 작은 침대가 하나, 냉장고 하나,, 세탁기도 하나.. 있었다. 거기서, 밥과 김치를 거의 일주일만에 먹게 된다. 게눈 감추듯 먹는 내 모습에 아저씨는 같은 한국인으로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온몸에 기름이 배인듯이 찌뿌드드~한 느낌이 말끔이 사라졌다. 그 다음은, 노란색 전화번호부 ( 여기도 전화번호부는 노란색이었다.) 에서 뭘 찾아,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뭐라고 또 이탈리아 어로 뭔가 심각한 듯한 대화를 나누더니,.,, 내 쪽을 흘끗보며 10시에 볼래? 2시에 볼래? 이렇게 묻는 것이다. (황송스럽게도) 그것은 우피치 미술관 관람예약을 위한 전화였다. 나는 처음에 그것이 일종의 특권인 줄 알고 우쭐했는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우피치 미술관을 줄서지 않고 관람하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중 유일하게 돈이 안드는 것은, 줄서는 미술관 앞에 커다랗게 쓰여진 전화번호로 전화를 돌려 시간 예약을 하는 방법이었고 아저씨는 그것을 이용한 것이다.. 밀린 속옷과 양말 빨래를 세탁기를 이용해서 했다. 아저씨가 약속이 있다고 해서 같이 밖으로 나왔다. 나중에 집을 찾겠냐,, 걱정하시면서 위치를 두 번 세번 확인해주고는 구경잘하라며 사라졌다. 밥과 김치도 먹었겠다, 정말 꿈에 그리던 도시의 한가운데에 와있겠다, 기분은 정말 좋았다. 날씨 마저도 유럽와서 최고로 좋은 것 같았다. 하늘은 아주 푸르렀고 로마와는 달리, 무덥기는 하되 못걸을 정도는 아니었다.
산타크로체 광장이 정말 골목 하나를 두고 있었다. 여기서 메디치가 수만의 피렌체 시민을 앞에 두고 마상시합을 했다고 하는데, 이 광경을 폴리치아노는 시로, 보티첼리는 유명한 그림 프리마베라로 그려낸다. 화집 속에서 아주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던 광장은, 실제로는 어느 시골 중학교의 학교 운동장처럼 아주 소박하기만 했다. 소박해서 실망한 것은 아니었다. 아름다웠으나 이제는 저물어 버린 한 때의 역사를 담담하게 속삭이는 것 같아 피렌체의 광장중 제일 마음에 들었다.
시뇨리아 광장과 베키오 궁전은,건물의 선과 열에서 아주 차가운 느낌을 받았다. 광장에 목이 매달렸던 파찌 가문이나 수도사 사보나롤라같은 피비린내 나는 처형의 역사를 의식해서 그런지 몰라도 특히 사진을 찍기 위해 새벽에 이 광장에 섰을 때는 이상한 냉혈이 광장 곳곳에 흐르는 듯 해서 섬뜩한 느낌까지 드는 것이다. 여기서 비록 복제품이기는 하지만 처음으로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보게되는데,우와 저렇게 큰 조각이었구나 싶었다. 장소 탓인지 어쩐지 뭔가 어색해 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 다음 날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본 실물은 역시 오리지널리티란 아무리 완벽하게 복제를 당하더라도 범하기 힘든 기품이 있구나...하는 느낌을 주어서 안심이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그랬다. 거리를 헤매다가 작은 기념품 가게에서, 얇게 나무로 조각된 책갈피를 파는 것을 보았다. 라틴어로 성서의 구절이 조각되었고 작은 천사가 좌우로 짝을 이룬 책갈피 두 개를 만 리라에 샀다. 보디첼리의 그림이 프린트된 작은 쟁반 같은 것도 있었는데 좀 조잡해 보여서 망설이다가 사지 않았다. 그리고,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지금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틀리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작은 골목길에서 부터 사람들에 떠밀리다시피 해서 꽃의 두오모 앞에 완전 자동으로 밀려나왔으니까... 일단 광장의 한켠 꽃 가게 뒤에서 숨을 좀 돌렸다. 저걸 들어가봐야돼, 말아야 돼, 하다가 이를 악물고 사람들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시원해서 좋았다. 그리고 성당 외부의 야단법석과는 달리, 성당 안은 소근거리듯 억제된 말 소리만이 들릴 뿐 조용하기도 하고,,,. 여기까지 와서 안가면, 싶어서 천장에 기어 올라갔다. 피렌체 시내의 전경...높은데서 보면 언제나 그렇지만 별로 할 말이 없다. 중세란 무엇인가, 뭐 그런 고상한 것은 별로 생각이 안나고, 또 배가 고프구나 목이 마르구나...그런 것만 자꾸 생각이 났다.
맞은 편, 셰례당은 더 야단법석이었다. 기베르티의 천국의 문도 도무지 접근할수가 없어서 먼 발치로,. 화집에서 보아왔던 것과는 다른 질감을 육안에서 확인해 보는 정도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 마음은 그전부터 이미 베키오 다리에 가있었다. 어릴 때 본 계몽사에서 나온 빨간 세계의 동화 전집에 있던 피노키오, 피노키오가 깡총 깡총 뛰면서 학교로 가다가, 베키오 다리 위에서 여우의 꾐에 빠지던 작은 삽화를 보았을 때 부터, 피렌체에 가고 싶다는 꿈이 싹텄는지 모른다.
하지만 낭만이 현실이 되기위해서는 저항이 만만찮은 법... 막상 다리 위에 서자, 뭐 때문에 여기에 왔지...싶을 정도로 감회가 없었다. 수많은 금세공 상점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었고, 몇걸음 떼자마자 여기저기서 곤니치와 하면서, 호객하는 주인들로 걸음을 못걸을 정도였다. 베키오 다리를 떠나면서, 여우는 못보았지만, 여우를 닮은 작은 강아지는 보았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