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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귀 – 문경자 수필가
0 POSTED BY HCNEWS - 2024-04-18 - 뉴스홈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다. 오전에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보험사라며 환급금을 준다고 하였다. 남자의 목소리는 업무에 열중이라는 믿음이 갔다. 은행에 빨리 가서 확인을 하라고 했다. 귀를 의심하며 공짜돈이 생긴다는데, 머리를 대충 감고 물이 마르기 전에 동네 슈퍼를 지나 엄청 빠르게 달려갔다. 상대는 전화로 나에게 안정된 목소리를 하고 지시를 하였다. 자동기계 앞에 서서 시키는 대로 하라며, 사람들이 없는 곳을 택하라고 했다. 사람이 없다고 하자 빨리 기계 앞에 다가서라고 했다. 이렇게 돈을 쉽게 돌려준다는 보험회사는 들어 보지 못했다. 전화를 잠시 끊고 머뭇거리다 그때‘아차 사기전화다.’생각하는 그 순간 전화벨이 또 울렸다. 어쩐지 겁이 나고 이상하였다. 은행안내원 아저씨를 바꾸어 주었다. “여보세요. 경찰입니다.”하는 순간 상대는 큰소리로 욕설을 하고 끊었다. 아저씨는 욕을 먹어 귀가 가려운지 손가락으로 귀를 살살 문질렀다. 나에게 조심을 하라며 “오늘 정말 큰일을 당할 뻔했다.”며 “많이 놀랐지요.” 하고 위로를 해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통장에 모아둔 돈을 한방에 날릴 뻔하였다.
여러 사람들의 사기전화 경험담을 들었다. 설마 그럴까! 조금은 과장된 이야기로 들렸다. 한참 사기전화가 서울시, 구 마다 전염이 되었다. 그런 날은 집중적으로 동네마다 사기 전화가 판을 쳤다. 내친구는 집전화가 울려 받았더니“당신 아들이 지금 교통사고로 입원을 했으니 빨리 돈을 송금하라”고 하며 아들의 앓는 목소리까지 들려주었다는 말을 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친구는 상대방 남자에게 “우리 아들은 지금 방에서 자고 있다.”고 하자 괴상한 욕을 해서 얼른 끊었다는 말도 들었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날따라 전화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여보세요?”하고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은 중년의 남자 목소리였다. 검찰청이라며 빠른 목소리로 통장에 있는 돈을 보호해 준다고 하였다. “그렇게 안 하면 어떻게 돼요?” 하고 물어보았다. 안 그러면 통장에 있는 돈이 다 날아 간다며 똑 부러지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쪽에서 쓰는 용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는 아들에게 한번 받아 보라며 전화기를 건네 주었다. 아들이 “누구세요?”하고 묻는 순간에 욕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입에도 담지 못할 만큼 상스러웠다. 아들은 엄마가 전화를 바꾸어 주어 욕만 얻어먹었다며 휑하니 방을 나갔다. 그 사기꾼 때문에 아들의 귀가 얼마나 괴로웠을까 듣는 귀도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연애를 할 때 귓속말로 ‘사랑해요’하면 달콤했다. 남편은 언제나 말소리가 작았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야했다. 한번은 아이들이 듣는다고 방으로 들어오라며 손짓을 하였다. “내일 저녁에 공원에서 만나요.” 했다. 이런 약속을 하고 나는 귀를 의심하며 잠을 잤다. 퇴근길에 동네공원으로 나갔다. 밤 벌레 소리가 귀에 들렸다. 간간이 모기도 귓가에 와서 윙윙거렸다. 남편은 별말도 없이 모기가 붙었다며 귀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잡지는 못했다. 웃음이 나왔다. 남편은 겨우 말을 꺼냈다. 내가 시집와서 집안의 대소사를 잘 챙겨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손이라도 잡아 주면서 그런 말을 하면 좋을 텐데 싱거운 남편의 말에 귀가 간지러웠다. 친구들과 있을 때 꼭 옆친구와 귓속말을 한다. 손으로 귀를 모으고 듣는 친구의 얼굴 표정을 보면, 좋은 말인지 흉을 보는 말인지 눈동자와 얼굴표정만 보아도 짐작이 갔다.
귀가 가려우면 누군가 내 말을 하거나 욕을 한다며 귀에 손가락을 살짝 문지른다. 거짓말을 할 때나 부끄러울 때도 귀가 빨개지는 사람들도 많다. 어릴 때 학교에서 벌을 받을 때 귀를 잡고 토끼 띔을 했다. 그러다가 옆으로 넘어지면 선생님은 다시 그 자세를 하고 뜀박질을 시켰다. 여자아이들은 싸움을 할 때 머리카락을 잡지만 남자애들은 귀를 잡아당겨 빨갛게 되었다. 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의 귀가 움직인다며 겁을 주기도 하였다.
아기들이 태어나면 귀가 훤하게 잘 생겼다고 장군감이라며 좋아했다. 귀가 크고, 귓밥이 도톰하면 남자 답게 보인다며 장래를 점치기도 하였다. 여자들 귀보다는 남자들의 귀를 중요시 여겼다. 여자들에게 귀가 잘 생겼다는 말을 들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 반면에 남자들은 귀가 얇아 남의 말에 잘 넘어가는 사례도 많았다. 사기꾼에게 당하거나 귀가 솔깃하여 당장에 이득을 취한다며 계약서를 쓴다. 또 빚보증을 서서 집안을 풍비박산으로 만든 경우도 많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입이 하는 말을 듣고, 귀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귀도 노래를 한다. 사랑스러운 귀는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하는지 모른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다 보면 귀가 줄에 눌려 아프기도 하다. 귀를 부드럽게 만지며 마사지도 해준다.
마스크도 지금은 패션으로 한몫을 하는 추세다. 여러 가지 색상과 무늬가 있는 마스크는 시중에 나와 불티나게 팔린다. 귀걸이 대신해서 멋스럽게 보이고 싶은 사람들 심리가 작용 한 탓인지, 마스크를 벗는 시간은 귀도 해방이다. 아무런 불평없이 걸거나 벗거나 참아준 예쁜 귀를 거울에 비추어 보고, 따듯한 물로 깨끗하게 씻어 주었다. 귀한 귀는 우리의 생명줄을 위해 기꺼이 내어 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오늘도 마스크를 귀에 걸고 외출을 한다. 앞에서 뒤에서 그림처럼 똑같은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삶을 위해 달려간다. 사람들의 귀가 하루빨리 마스크 고리를 벗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 가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