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푸르름이 여물어가는 햇살부터 한가로운 오후 나절 온다던 장마가 아직도 준비가 덜됐는지 뜸을 들이는 통에 후덥지근한 초여름에도 마당가에 옥수수 알통이 커지고 어머니가 모종한 고구마는 가을을 위해 영역을 넓히고 있는 중이다.
고향에서 내 인생의 망중한이되고있는 시절이 있을줄이야, 열심히 살면 되는줄알았던 나의 꿈이 그리 거창하지도 않았음에도 성공이 나를 외면하여 별재미도 못보고 고향으로 내려 온지 어느덧 2년여 생활 이제는 익숙해진 고향이 그리 포근할 수 없고 정신없이 살던 시절을 가만 뒤돌아보며 여유를 찻는 요즘생활이 또 다른 날을 위해 멀리뛰고자 음츠리고있는 고향 생활이 되었다.
사업을 물려준 서울 동생으로부터 내 여름바지 몇 장을 가공하여 보내왔다. 비록 좋은 물건은 아닐지언정 여적지 고향을 지키며 마을 이장을 맛고있는 깨복장이 친구 진권이에게 옷을 주고자 집에들렀다. 정말 소리 없이 고향을 지키는 친구였다.
집입구에 밤나무가 제법 울창하다. 농익은 밤나무에서 흐트러지는 밤꽃냄새는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예쁜꽃도아닌 오로지 열매를 맷기위한 절차일 뿐 그러나 멀리서 보면 군락을 이루어 멋진 것이기도 하다.
이시기에는 꽂이 적어 밤꽂이 꿀벌들에게는 가뭄에 단비 일것이다. 밤꿀을 생각하며 땅에 떨어진 밤꽂 하나를 주워 코밑에 대니 밤꽂냄새가 여전하다.
아마 열매를 맺는 나무 중에 제일 늦게 피는게 밤꽂이 아닐까 밤꽂을 보니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유년으로 회귀여행을 떠나듯 아련한 추억들이 들춰진다.
환이와 주인몰래 밤을 따다가 손에 밤가시가 찔려 속알이도 했고 동네형으로부터 군기잡히던 곳도 바로 그 밤나무밑이다. 그 맛에 가을에 미륵산으로 밤따러 동네친구들 자루 둘러메고 10리가 넘는 먼길을 걸어서 가 열린밤보다 꿈을땃는데 그런꿈들이 여의치않았던 모양이다.
추석이면 이북이 고향이던 밤나무주인 막둥이형 어머니는 송편을 이북식으로 어른 손바닥만하게 만들어 그송편안에다 콩과 깨 밤을 가득넣어 만드셨는데 그게 어찌나 맛이 있었는가.
고소하지도 않은 비릿한 밤꽃들의 행진이 해마다 피는 밤꽃들의 포효가 올해사 가슴에 더 더욱 진하고 깊고 짜릿하게 다가옴은 내가 이곳에 살아 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이런 여유를 갓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도 어쩌면 생의 순리가 아닐까. 나를 오랫동안 잊고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살아온 것이다.
우리동네 이름이 밤나무골(율촌리)이라 그런지 밤나무가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고향을 지키는 진권이를닮은 몇구루만 울창할 뿐이다.
밤꽂은 한그루의 나무에 여우 꼬리 같은 수꽂과 성게 새끼를 닮은 암꽂이 함께 피는데 수꽂에서만 밤꽂 향이 난다.
냄새가 비릿한게 남자의 정액냄새와 같다하여 밤꽂필 때 과부들 바람난다는 말이 있단다. 남자가 여자에게 밤나무 밑에서 사랑고백을 하면 성공한다는 말도 있고 밤꽂향에 얼굴을 붉히면 처녀가 아니라는 속설같은 옛말도 있다.
달밤에 밤꽃은 어떨까. 달빛에 비친 하얀꽃들은 배꽃만큼이나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이쁘지는 않지만 밤꽃도 꽃이며, 자연의 꽃향기는 인체에 좋다고 하는데 불안감이나 우울증을완화시켜준다는것이다.
어느덧 나는 이나이 먹어 변벼치 않은 사람으로 고향에 있다지만 나무는 성장하면서 한없는 자태가 풍성하듯 우리도 제 할일이라면 언제라도 끝이 없을것이다.
진권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밤나무가 속으로 여물어가며 또 하루가 슬그머니 지난다. 내 멀정한 날들이 어떻게든 가고마는데 난 제자리에서 제몫을다하는 저 밤나무처럼 내할일 찻아 내일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