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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목포주안교회 중고등부 겨울수련회]
<비전의 발견과 준비>
마음열기① | 꿀벌 이야기 (비전의 부재) |
꿀벌은 1그램의 꿀을 모으기 위해 약 125 송의 꽃을 찾아다닌다. 그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참으로 열심히 꿀을 모은다. 한번은 식물학자들이 꿀벌을 겨울이 없는 열대 지방에 옮겨다 놓고 관찰해 보았다. 옮겨진 벌들은 늘 하던 대로 열심히 꿀을 모았다. 아마 ‘곧 겨울이 오겠지’라는 생각에 열심히 꿀을 모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꿀을 모으고 또 모아도 겨울은 오지 않았다. 열대 지방에 겨울이 올 리 만무하지 않은가?
벌들은 갑자기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꿀은 넘쳐나고 겨울은 오지 않으니 더 이상 꿀을 모을 필요가 없어진 탓이다. 그런데 더 나아가 전에 없던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벌들이 날카롭게 변해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벌들에게 겨울이라는 비전이 사라지자 자신의 역할을 팽개진 채 게을러졌을 뿐만 아니라 날카로워질 때로 날카로워졌다.
이것이 과연 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물론 아니다. 인간도 비전이 없으면 날카로워지고 쉽게 짜증을 내며 모든 사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오늘날 가정과 학교, 사회 속에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것도 비전의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남을 포용하지 못하고 따돌리며, 용서보다는 복수를 당연시하는 사회 풍토 역시 비전과 동떨어진 삶의 결과들이다.
지금 혹시 모든 일이 불만스럽게 느껴진다며, 누군가를 향해 증오의 화살을 겨누고 있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지금 자신이 비전을 향해 가는 길 위에 올바로 서 있는지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비전의 길에서 벗어날 때 우리의 삶은 무거운 짐으로 변할 것이며 고통으로 점철될 것이다. 반면 비전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 삶의 무게는 형언할 수 없이 가벼워지며 샘솟는 기쁨과 역동적인 힘이 함께 할 것이다. 예수님은 그 비전의 길에 우리를 부르셨다.
모든 사람의 삶에 있어 한순간도 놓쳐서도 안 되는 것이 바로 비전이다. 비전은 오늘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행동 모티브이며 방향 지시등이다. 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모든 사역의 존폐와 사활 역시 비전이 얼마나 확고하게 세워져 있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일수록 비전을 제시하고 교육하며 추구하는 일이 사역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전은 바로 우리가 이 땅에 창조된 이유이며 지금 이 순간 숨을 쉬고 있는 이유이다. 삶의 목적, 그것이 바로 비전이다. 비전을 위해 이 땅에 창조된 우리는 처음부터 그것을 이룰 수 있게끔 설계되어지고 만들어진 존재이다. 우리는 진정한 가치가 아름답게 흘러넘치는 풍성한 삶을 살도록 창조되었다. 우리가 비전을 찾아내고 그 비전을 이룰 수 있는 올바른 길 위에 서 있기만 하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이다.
당신에게는 이미 비전이 있다. 그것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 안윤식 박사 저 <내 인생을 바꾼 비전스토리> (도서출판 브니엘, 2006년) p. 7~9
강의1 | 비전네임(vision name) |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창세기 17:4~6) |
◯ 비전네임(vision name)이란?
개인의 비전(vision)을 함축된 이름(name),
곧 개인의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간단명료하게 함축된 이름.
모든 이름에는 이름(first name)과 성(last name, Family name)이 있는데,
사람에 따라서 종종 별명이나 애칭, 호 등 제3의 이름(third name)을 가지곤 했는데,
비전네임은 여기에 해당함.
◈ 별명(nickname): 사람의 생김새, 버릇, 성격 등을 가지고 본명 대신 지어 부르는 이름.
◈ 애칭: 본이름이 아니고 귀엽게 불리는 이름
◈ 호(號):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본명 외에 허물없이 부르기 위해 그 대신 쓰는 이름
◯ 왜 굳이 별명이나 애칭, 호 등을 사용해서 상대방을 불렀던 것입니까?
한 마디로, 본명(실명)만으로는 그 사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요,
그 사람이 지닌 인생의 목표나 철학 등을 담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 성경 속에도 제3의 이름(third name)이 존재합니까?
① 하나님이 직접 ‘개명(改名) 형식으로’ 제3의 이름(third name)을 붙여주신 경우
‘아브람’ → ‘아브라함’(열국의 아비)
‘사래’ → ‘사라’(열국의 어미, 여주인 / 창 17:4~6,15~16)
‘야곱’ →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김, 승리자 / 창 32:28)
② 예수님이 몇몇 제자들에게 제3의 이름(third name)을 붙여주신 경우
시몬 → ‘게바, 베드로’(반석 / 요 1:42 하)
야고보와 요한 → ‘보아너게’(우뢰의 아들들/ 막3:16,17)
③ 사람을 통해 붙여지는 경우
모세는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는 이름으로 불렀고(민13:16 하)
사도들은 레위족 요셉을 ‘바나바’라는 이름으로 일컬었으며(행4:36)
사도들은 또 다른 요셉을 ‘유스도’라는 별명으로 불렀음(행1:23 상)
<조별활동1>
비전네임(꿈이 담긴 이름표) 만들기
조별활동을 통해 각자의 비전네임을 한 번 만들어보고 이를 함께 나눈 후에 2박 3일 동안 서로의 비전네임을 불러보도록 합니다.
1) 조장은 조원들에게 이름과 함께 비전네임을 적을 수 있는 이름표를 나누어줍니다.
2) 조원들은 자신의 꿈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자기가 되고 싶은 모습을 ‘단어 형태로’ 적습니다.
3) 다 적었으면 이름표를 가슴에 부착합니다.
4) 돌아가면서 자기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나누어 봅니다.
5) 2박 3일 동안 가슴에 부착한 이름으로 부릅니다. 본명과 함께 불러도 좋습니다.
6) 조원들의 '꿈이 담긴 이름표'를 조깃발에 함께 적어서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둡니다.
7) 이름표가 있는 곳을 지날 때마다 조원들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격려하거나 기도해주면 더욱 좋습니다.
- 위의 내용은 월간 낮은 울타리에 기재된 <백장미 선생님의 E.Q.교실>에서 발췌해 온 내용을 수련회 활동에 맞도록 각색한 내용입니다 -
참고: 비전네임의 실례
첫째, 성경 속에 나타난 비전네임들
하나님의 안위자(창5:29), 열국의 아비(창17:4), 열국의 어미(창17:16), 하나님의 승리자(창32:28), 꿈꾸는 자(창37:19), 하나님의 사람(신33:1), 왼손잡이 구원자(삿3:15), 이스라엘의 어머니(삿5:7), 여룹바알(바알에게 대항하는 자, 삿6:32), 이스라엘의 주권자(삼하7:8), 하나님의 대장장이(왕상7:14), 전도자(전1:1), 열방의 선지자(렘1:5), 이스라엘의 파수꾼(겔3:17), 길을 여는 자(미2:13), 사람을 낚는 어부(마4:19), 반석의 사람(막3:16), 우레의 아들들(막3:17), 그리스도의 증인(행1:8), 위로의 아들(행4:36), 이방인의 사도(갈2:8), 사랑받는 의사(골4:14) 등
둘째, 성경 속에서 간접적으로 도출해낼 수 있는 비전네임들
하나님의 동행자(창5:22~24), 하나님의 대변인(출4:14~16), 믿음의 정탐꾼(민13:16), 하나님의 동역자(삼상14:45, 고전3:9), 노래하는 사람(대상15:19), 비전가이드(visionguide, 잠16:9), 무너진 곳을 일으키는 자(사61:4),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행13:22), 복음의 대필자(롬16:22), 하나님의 농부(God`s farmer, 고전3:7), 날마다 죽는 사람(고전15:31), 그리스도의 향기(고후2:15), 그리스도의 편지(고후3:3), 보배 담은 질그릇(고후4:7), 그리스도의 대사(고후5:20), 하나님의 중매쟁이(고후11:2), 십자가의 전달자(갈6:14), 그리스도의 군사(빌2:25, 딤후2:3), 믿음의 기도꾼(약5:15), 선한 청지기(벧전4:10) 등
셋째, 신앙생활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거나 또 널리 사용될 수 있는 비전네임들
가정 지킴이, 강한 용사, 고아의 아버지, 꿈 설계사, 꿈을 찍는 사진사, 꿈의 건축가, 꿈의 전략가, 낙타무릎의 전도자, 민족의 파수꾼, 복음 딜러, 복음의 막노동꾼, 복음의 우체부, 복음의 조력자, 복음의 첨병, 불평청소기, 비전 메이커(vision maker), 사랑 나눔이, 사랑의 원자탄, 사랑의 전달자, 사랑의 해결사, 새벽이슬, 생명의 전달자, 선한 사마리아인, 소망의 징검다리, 소망의 항해사, 슬픔 처리반, 영혼의 미용사, 영혼의 수태자, 예수 마니아, 예수 밀수꾼, 예수 바이러스, 예수 선전가, 예수 혁명가, 이웃 섬김이, 인생 설계사, 전파선교사, 좋은 기별, 천국대변인, 천국문지기, 청소년 지킴이, 추수꾼, 축복의 통로, 캠퍼스 지킴이, 크루세이드(십자군), 파워 리더, 파워 리더(power leader), 파워 크리스천, 프론티어, 피스 메이커, 하나님의 옹기장이, 행복 감별사, 행복 딜러, 행복 바이러스, 행복 배달원, 행복 접착제, 행복 지킴이, 행복의 디딤돌, 행복재단사, 행복제조기, 환경 지킴이 등
마음열기② | 미운 오리 콤플렉스 |
* 날개는 짐이 아닌 축복의 선물!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오리 새끼’ 이야기 잘 아시죠? 왠지 동화 속 주인공이 여러모로 우리들과 닮아 보입니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무작정 살아가는 모습 말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혹 동화 속 주인공 미운오리처럼,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언제까지나 그리 살아가실 작정입니까? 언제까지 오리들처럼 땅만 바라보면서 살아갈 것입니까? 마냥 오리들만 부러워하면서 말입니다.
그럴 게 아니라 자신들의 날개를 보시기 바랍니다. 보셨다면 그것들을 활짝 펼쳐서 저 창공을 향해 날아올라보시기 바랍니다. 한 번도 사용해 본적이 없다고요? 미운오리처럼, 여태껏 한 번도 사용해 본적이 없기에 무거운 짐짝처럼 여겨왔다고요?
그런 오해 마십시오! 그것은 짐짝이 아니라 선물입니다. 마음껏 창공을 누비라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 말입니다. 놀라셨습니까? 꿈에도 ‘하나님의 선물’인 줄 몰랐다고요? 불편하게 여길 뿐 미처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었다고요? 그런 줄도 세상의 오리들만 부러워해 왔다고요?
그렇다면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고귀한 자녀들입니다. 세상의 오리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지닌 그런 존재들 말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하지만 좋은 것에는 항상 대가가 따르는 법. 우리는 이 땅 가운데 살면서도 이 땅의 법이 아닌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매번 형식에 매인 것 같고, 자유롭지 못하게 느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이 아닌 선물을 주셨으며, 고생이 아닌 특권을 주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마치 미운오리에게 있어서 날개는 더 이상의 짐이 아닌 하늘을 향해 도약할 수 있는 선물이자 특권이었던 것처럼...
* 더 이상 미운오리가 아닙니다!
더 이상 오리들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땅 위에서라면 오리들이 항상 앞설 수밖에 없지만, 하늘에서는 단연코 백조가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이 둘은 처음부터 ‘노는(?) 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직도 미운오리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여전히 비교의식과 열등감에 빠져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자신의 정체성부터 깨닫기 바랍니다. 우리 자신이 더 이상 미운오리가 아닌 아름다운 백조임을 자각하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만이 미운오리 콤플렉스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운오리 콤플렉스에 빠지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제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실력 한번 발휘해보지 못한 채 무기력함에 빠져 살 수밖에 없으며, 제아무리 타고난 재능을 가진 이라도 패배의식에 젖혀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오리가 아니면서 오리이고 싶어 하는 여러분! 오리가 아니면서도 오리라고 불림 받는 것을 너무도 좋아하는 여러분! 오리가 될 수 없음에도 여전히 오리가 되지 못해서 걱정이신 여러분!’
정말 안타까운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기독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자신을 오리로 착각하면서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오리가 아니면서도 오리이고 싶어 하지만, 결국 오리도, 백조도 아닌, 평생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방황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민수기 13장 27~33절에 등장하는 열 명의 정탐꾼처럼, 제대로 된 날개 짓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3 하)
당시 그들은 가나안 정탐을 마친 후 백성들에게 무엇이라고 보고했습니까?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외쳤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보고만 잔뜩 늘어놓았습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민 13:31 하) 한 마디로 악평(惡評)을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민 31:32 상)
어쩌다가 그 지경이 되고 만 것입니까? 가나안 정복이 ‘하나님의 확고부동한 뜻’으로 천명되었으므로 아무도 능히 이를 막거나 제지할 수 없다는 점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자신들이 곧 하나님의 성전(聖戰)을 수행하는 용사임을 깨닫지 못한 채, 자꾸만 ‘메뚜기 같은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전락시키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마치 미운오리가 백조임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을 미운 오리로 여기면서 살았던 것처럼...
* 지금은 저 창공을 향해 도약할 때!
지금 우리는 단순히 열등감(劣等感)을 논하려는 것도, 오리와 백조 등 동물의 세계를 설명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크리스천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아닌 바로 우리가 모두 ‘비전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보잘것없는 시시한 메뚜기 같은 존재들이 아닌, 하나님의 가장 고귀한 자녀들로써, 지구촌 방방곡곡을 힘차게 누벼야 하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자! 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준비가 되셨습니까?
물론 처음부터 잘 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한 번도 제대로 날아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태껏 한 번도 날개를 사용해 본적이 없기에, 부단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서투른 날갯짓이라도 부지런히 펄럭이어야 합니다. 명심하십시오. 처음부터 잘 날 수 있는 백조란 없으며, 다만 부단한 연습을 통해 비행에 성공한 백조만 있을 뿐임을 말입니다.
그러나 오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처음부터 시도조차 할 수 없습니다. 즉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오직 땅 위에서만 아등바등 하면서 살아갑니다. 어째서입니까? 그들의 날개는 처음부터 비행(飛行)을 목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여기서 ‘날개’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꿈, 곧 소명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꿈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크고 원대한 꿈, 언젠가 저 드넓은 창공을 마음껏 누비고 다니게 될 그런 하나님의 비전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런 비전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한 부단한 날갯짓이 요구됩니다. 이 외에 또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기류(氣流)입니다. 사실 철새들이 먼 거리를 이동할 때, 보이지는 않는 (상승) 기류들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꿈의 비행 역시 하나님을 앙모하고 성령을 의지할 때 지치지 않고 멀리에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1)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발견한 비전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날갯짓하고 있습니까? 또한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롱런(long-run)할 수 있도록 날마다 하나님만을 앙망하고 성령님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강의2 | 비전을 발견하기 (만들기☓, 발견하기◯)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서 2:13) |
첫째, 마음의 소원
가) 나에게는 변함없고 강렬한 열망이나 마음의 소원이 있습니까?
① 잘 모르겠다 ( ) ② 있다 ( )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항상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비전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어떤 일에 동기를 느끼고 흥미를 가지는지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을 맡길 때 먼저 우리 안에 소원을 두시기 때문입니다(빌립보서 2:13) |
나) 어떤 아이디어나 사소해 보이는 생각들이 떠오릅니까?
① 잘 모르겠다 ( ) ② 있다 ( )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처음부터 강렬한 열망이 생기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불꽃, 즉 작은 아이디어나 사소해 보이는 생각들로 시작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산 전체를 태우는 큰 불과 같이 됩니다. 그러니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하나님이 각 상황에 주시는 아이디어, 영감어린 생각들을 살펴보고 관심을 갖으시기 바랍니다. |
다) 이 열망은 지속적인 것입니까?
① 일시적이다 ( ) ② 지속적이다 ( )
지속적이면 얼마동안 지속되고 있는가?
이 열망은 신중하며 지속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한두 달 정도 갑작스럽게 타올랐다가 갑자기 사그라지는 열망은 우리의 진정한 소명이 될 수 없습니다. 적어도 6개월 이상 혹은 몇 년 이상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
라) 이 열망은 신중한 것입니까?
① 신중하지 않다 ( ) ② 신중하게 생각해보았다 ( )
신중하다면 구체적인 무엇이 떠오르는가?
이 열망은 '신중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구체적이고 중요한 그 무언가가 우리에게 떠올라야 합니다. |
우리는 어떤 일에서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까?
지금 당신의 내면에는 어떤 강한 열망이 일고 있습니까?
이 열망은 신중한 것이며 또 지속적인 것입니까?
둘째, 객관적인 증거들(재능, 은사, 타인의 증언)
가) 소원을 뒷받침할만한 재능들을 찾았습니까?
① 잘 모르겠다 ( ) ② 찾았다 ( )
찾았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부르신다면 마땅히 그 일에 필요한 재능을 주신다. 우리의 열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소원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재능과 은사입니다. 소원은 반드시 적절한 재능에 의해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좋은 의도만으로는 안 됩니다. 일을 해내려면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
다양한 재능 |
그림, 노래, 댄스, 글쓰기, 악기 연주, 운동, 공예, 운전, 정리, 작사, 작곡, 가르치기, 사진, 프로그래밍, 엔지니어링, 미용, 의술, 요리, 메이크업, 판매, 등반, 디자인, 외국어, 전달력, 관찰력, 분석력, 설득력, 친화력, 문해력, 기획력, 경청, 상담 등 |
나) 소원을 뒷받침할만한 은사를 찾았습니까?
① 잘 모르겠다 ( ) ② 찾았다 ( )
찾았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은사(헬, 카리스마타) ‘거저 주어진 선물’이란 뜻을 가진 ‘카리스마’의 복수형 성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릴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모든 것 | ||
은사의 종류 | 관련구절 | 은사의 내용 |
지혜의 말씀 | 고전12:8 | 하나님의 뜻을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적용시키는 은사 |
지식의 말씀 | 복음의 진리를 깨닫는 이지적인 은사(주로 가르치는 직분) | |
믿음 | 고전12:9 | 그리스도의 고난에 구체적으로 동참하는 믿음(롬8:17) |
신유 | 효과적인 복음전파의 방편으로 나타남. | |
능력 행함 | 고전12:10 |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실천적인 능력 |
예언 |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아는 은사(지식의 말씀) | |
영들을 분별함 | 사탄의 거짓된 가르침을 분별하는 능력(요일4:1) | |
각종 방언 | 개인적인 영의 교제 또는 기도의 차원으로 나타남 | |
방언의 통역 | 공중예배 시 방언의 내용을 통역하여 밝힘(고전14:6) | |
섬김의 은사 | 롬12:7 |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은사 |
가르침의 은사 | 주의 교훈과 훈계를 잘 가르치는 은사 | |
위로의 은사 | 롬12:8 | 환난이나 슬픔을 당한 이들을 위로하는 은사 |
구제의 은사 | 가난이나 장애를 입은 이들을 구제하는 은사 | |
행정의 은사 | 주의 몸 된 교회와 그 기관들을 잘 다스리는 은사 | |
긍휼의 은사 | 긍휼이 여길 자들에게 긍휼히 베푸는 은사 | |
사랑의 실천 | 고전13장 |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은사(최고의 은사) |
다) 나에게 주신 재능이나 은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① 노력하지 않는다 ( ) ② 노력하고 있다 ( )
노력한다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재주와 재능은 드러내어야만 나타나고 꼭 필요한 일을 함으로써 개발됩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여러분의 재능을 찾기를 시작하십시오. 선천적으로 이것은 내 재능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리 많지 않고, 대부분 우리가 후천적으로 노력하고 힘쓸 때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시간에 '발견'됩니다. |
라) 다른 사람들도 우리가 하려는 그 일을 응원하거나 지지하고 있습니까?
① 아니다 ( ) ② 그렇다 ( )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지지하는가?
하나님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소명을 증언하십니다. 때로 하나님은 친구들, 가족, 교회 내의 사람들을 통해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주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주위에 두신 여러 사람들은 마치 거울과도 같아서, 충고를 통해 그리고 생각을 나눔으로써 우리의 재능과 장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줍니다. |
우리의 소원을 뒷받침할만한 재능이나 은사가 발견되었습니까?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족, 친구, 교회 등)는 무엇을 충고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계획을 격려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말리고 있습니까?
셋째, 삶의 경험과 열려지는 환경
가) 최근 우리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생각나는 대로 모두 적어보세요.
나) 이 일들 중에서 혹 우리를 특정 분야로 떠미는 것이 있습니까?
① 잘 모르겠다 ( ) ② 있다 ( )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 우리를 소명으로 떠미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편을 암으로 잃은 젊은 과부가 호스피스로 일하게 되고, 수년간 구타당하며 산 여자가 구타당하는 여자들을 위한 클리닉을 개설하며, 중학교를 죽도록 싫어하던 대학생이 중학교에서 인기 있는 상담자가 되며, 미지근한 교회에서 자란 사람이 훌륭한 전도자가 되며, 비전에 대해서 배고파 본 사람이 비전가이드가 되며, 영적 학대를 경험한 사람이 훌륭한 상담자가 되며, 주일학교 교육의 부재를 뼈저리게 경험한 사람이 훌륭한 주일학교 교사가 되며, 누군가로부터 문서선교의 도움을 받아 본 사람이 문서사역자로 자원하며, 특수한 질병을 겪은 사람이 희귀병을 앓는 사람들을 도우며, 캠퍼스 시절 예수님을 알게 된 사람이 후에 다시 캠퍼스사역에 뛰어들게 됩니다. |
다) 우리가 가려는 길에 어떤 문이 열려 있습니까?
① 잘 모르겠다 ( ) ② 있다 ( )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려는 길에 아무런 환경의 표징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는 반드시 재검토해야 합니다. 물론 성령 충만한 사람의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잠시 막으실 수 있지만(행 16장/ 바울),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끝까지 열리지 않는다면 그 길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그 길이 우리에게 적합하지 않거나 혹은 아직 때가 안 되었으므로 훈련하면서 기다리라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라) 우리가 하려는 일에 그것을 충당할 만한 재정이 공급되고 있는가?
① 잘 모르겠다 ( ) ② 있다 ( )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재정공급은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계획을 세웠는데 그것을 충당할 만한 재정이 공급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그 계획을 기뻐하지 않으시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재정공급은 하나의 방법일 뿐이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인도는 아닙니다. |
최근 일어난 일들 중에서 혹 우리를 특정 분야로 떠미는 것이 있습니까? 지금 우리 앞에는 어떤 문이 열려 있습니까? 우리가 하려는 일에 그것을 충당할 만한 재정이 공급되고 있습니까?
마음열기③ | 세 나무의 소원 (신앙동화) |
아주 오랜 전, 고요한 언덕 푸른 언덕 숲가에는 세 그루의 어린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나무들은 매우 작았지만 그들의 꿈은 컸어요. 어린 나무들은 먼 훗날 아름다운 나무들이 되어 하늘에 닿도록 크게 자랐을 때 무엇이 될까! 하는 이야기들로 꽃을 피우고 있었어요.
첫 번째 나무는 크게 자랐을 때 왕을 위한 아름다운 침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나무는 늘 자기가 ‘얼마나 아름다운 무늬와 모양으로 조각될까?’를 생각했어요. 그 나무는 위대한 왕, 고귀한 왕의 몸을 눕힐 위엄 있는 자리를 자기가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얼마나 자랑 했는지 몰라요. “왕이 나의 침대에서 쉴 때, 왕이 결정한 큰 계획과 아름다운 꿈들...이 모든 것을 생각만 해봐, 얼마나 멋지니!” 그는 다른 나무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두 번째 나무는 말을 했어요. “나는 침대가 되고 싶지 않아 그의 꿈은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큰 돛단배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돌아다니는 거예요. 내가 가보게 될 신기하고 아름다운 장소들을 생각해봐. 온 세계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값진 짐들을 운반할거야. 산들 바람이 나의 아름다운 돛 위로 불 때, 파도 위를 자랑스럽게 항해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봐! 굉장 할거야.”
두 친구들의 꿈을 듣고 있던 세 번째 조그만 나무는 말했어요. “나는 어떤 것도 되고 싶지 않아. 나는 이곳에서 하나님을 향해 크게 바르게 자라고 싶어” 그 나무는 말했어요. “하늘로 높이 솟아 이 세상과 우리를 만드신 놀라운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것이 가장 멋있을 거야!”
하나님이 만드신 나무들은 자신들의 꿈 때문에 마음이 부풀어 있었어요. 그리고 자주 자기들이 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했어요. 그들은 빨리빨리 자라고 싶었어요. 수년이 지났어요. 그 어린 나무들은 자라서 아름답고 푸른 잎이 많이 달린 가지들로 가득한 아주 키가 큰 나무들이 되었지요. 나무들이 바라는 목적들이 이루어질 날이 온 것 같아요.
어느 날 몇 명의 나무꾼들이 도끼를 들고 숲으로 왔어요. 그들은 나무들을 훑어보고, 첫 번째 나무를 택하여 잘랐어요. 물론 그 나무는 그동안 바라던 것을 생각했어요. ‘아마 이제 나는 위대한 왕을 위한 침대가 될거야!’ 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나무꾼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요. 침대를 만드신 그 나무 대신에 그 나무를 거친 판자로 잘랐어요. 그리고 못을 박아 가축들의 음식을 담는 구유로 만들고 말았어요. 저런, 그 나무는 얼마나 슬펐을까요?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은 거예요.
나무가 슬퍼하고 있던 어느 날 구유가 있는 동네의 사람들이 모두 잠자리에 든 고요한 밤이었어요. 역시 가축들이 평화롭게 쉬고 있는 밤이었어요. 그날 밤 늦게 젊은 여인과 남편이 마구간에 찾아 왔어요. 그 날 밤 잚은 여인은 그 곳에서 아기를 낳았어요. 그곳에는 아기를 눕힐 침대가 없었거든요. 어린 아기를 위해 구유가 침대가 되었어요.
그 후에 근처 언덕에 있던 목자들이 뛰어 왔을 때, 그 밤의 고요함이 깨졌어요. 천천히 그리고 매우 경건하게 그들은 들어와서 '구주'라고 부르며 어린 아기에게 경배하며 구유 주위에 무릎을 꿇었어요. 그 나무는 왕을 위한 침대가 되지 않았겠어요!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쉬시는 곳이 되었어요. 바로 이 아기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해줄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오신 분이니까요. 그 나무는 자기의 소원대로 되지 않았지만,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위대하고 놀라운 왕을 모시는 영광스러운 일을 하게 되었어요.
몇 년이 지났어요. 다른 두 나무들은 자기들의 꿈을 간직한 채, 언덕에 남아 있었어요. 다른 나무꾼들이 숲에 왔어요. 이번에는 배를 만들 나무를 찾고 있었어요. 두 번째 나무는 나무꾼들이 자기를 잘라 숲 밖으로 운반해 갈 때 얼마나 기대에 가득 찼을까요? 그 나무가 볼 많은 곳들은 얼마나 놀라운 곳들이겠어요. 그러나 자랑할 만 한 배 대신에 그 나무는 울퉁불퉁한 나무로 잘렸어요. 그리고 가난한 어부를 위한 조구만 고기 잡는 배로 만들어졌어요. 어떤 사람도 그 자그맣고 냄새나는 배를 바라보기를 원하지 않았을 거예요. 나무는 너무나 슬퍼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배가 바닷가에 정박하고 있을 때, 어떤 선생님이 옆으로 와서 어부에게 하나님에 대한 그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부탁했어요.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선생님이 서 있을 자리가 없었어요. 선생님은 배를 바닷가에서 조금 밀어 사람들에게 곧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그 배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태운 배가 되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어요. 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귀한 말씀을 전할 수 있었어요. 그 배는 이 세상에서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것보다도 가장 훌륭한 선물들을 나르고 있었어요. 이 선물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남자와 여자, 노인과 어린이 모두에게 줄 선물이 될 것이었어요.
어느 날 나무꾼들이 숲에 들어와서 나무를 잘라 쓰러뜨릴 때까지 셋 째 나무는 꿈을 꾸던 것과 같이, 하나님을 향해 하늘을 우러러보며 언덕 위에 남아 있었어요. 그 나무는 매우 곧게 그리고 키가 크게 자랐어요. 그러나 마지막 셋 째 나무는 땅바닥에 쓰러질 때 마치 가슴 전체가 터지는 듯 했어요. 나뭇가지들은 다듬지도 않고 나무꾼들은 가지를 잘랐어요. 그리고 그것으로 투박한 십자가를 만들었어요. 십자가는 죄를 지은 사람들을 처형할 때 사용하는 도구였어요.
그 나무는 울고 싶었어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내가 바란 것은 결코 이런 것이 아니란 말이에요.’ 나는 다만 하나님을 향해 하늘을 향해 우러러 보며 살고 싶어요. 나무는 마구 울었어요. 그러나 곧 그 나무 십자가는 예루살렘 성의 분주한 거리로 옮겨져 매우 피곤하고 약해 보이는 어떤 사람의 어깨에 놓여 졌어요. 성으로부터 그 사람의 어깨에 메워져 운반되고 있을 때, 그 사람은 너무 무거워 쓰러져 버렸어요. 이 모두가 얼마나 슬픈 일들이에요!
성 밖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벌거숭이 언덕에 하나님의 아들이며 사람이신 예수, 우리 주님이 그 나무로 만든 투박한 십자가에 못 박히셨어요, 곧 그 나무는 다시 언덕에 서 있게 되었지요. 그 나무는 우리 모든 죄에 대한 벌로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님 아들의 몸을 지고 있었어요. 그 나무는 하나님을 향해 우러러 보며 서 있었어요.
예수님은 말씀하셨어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요12:32)
강의3 | 비전선언문 - 인생을 꿰뚫는 한 문장 |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사사기 13:5) |
◯ 비전 선언문이란?
: 자신의 비전을 한 문장으로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것
한 문장을 넘어서면 설명이 너무 장황해지고 그 핵심을 놓칠 수 있음
◯ 비전선언문과 비전네임(vision name)
- 유사점: 둘 다 개인의 비전을 집약하고 함축한 것임
- 차이점: 비전네임이 한 단어로 표현했다면, 비전선언문은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임
◯ 비전선언문과 유사한 것들은?
표어(slogan), 구호, 가훈, 사훈, 좌우명 등
◯ 비전선언문을 작성하는 방법
- 우리의 비전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확히 이해하고,
- 이해했으면 우리의 비전을 표현하는 핵심적인 단어들을 찾아내고,
- 찾아내었으면 구슬을 꿰듯 이것들을 우리의 비전선언문에 고스란히 담아내어야 합니다.
◯ 비전선언문 작성 시 유의할 점
- 너무 장황하거나 길지 않아야 한다.
- 가급적 한 문장으로 표현해야 한다.
- 명료하면서도 핵심적이며, 핵심적이면서도 명료해야 한다.
◯ 비전선언문 피드백 받기
- 자신의 비전선언문과 그 이유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피드백를 받는다.
- 비전선언문은 끊임없는 피드백을 통해 다듬어지고 완성되어간다.
◯ 비전선언문 각인시키기
- 자신의 비전선언문을 ‘POP 글씨쓰기’나 ‘캘리그라피’(calligraphy)를 해본다.
- 붓글씨로 쓰거나, 목판에 직접 새기기, 포스터, 현수막이나 배너 등으로 제작할 수도 있다.
- 가정의 거실이나 교회나 회사의 로비나 중앙홀에 전시한다.
◯ 비전선언문의 실례 (구약성경)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생물들을 다스리라’(아담, 창1;28)
‘세상 가운데 동행을 외치라’(에녹, 창5:22~24)
‘방주를 지어 대홍수 심판을 대비하라’(노아, 창6:13~22)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 열국의 아비가 되라’(아브라함, 창12:1~3l 17:4,5)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 열국의 어머니, 언약가문의 여주인이 되라’(창17:15,16)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자신의 반차로 오실 메시야를 예표하라’(멜기세덱, 창14:18~20)
‘약속의 땅으로 건너가 언약가문의 안주인 자리를 승계하라’(창24:58),
‘열두 아들들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직접적인 조상이 되라’(야곱, 창25:23),
‘애굽의 주권자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의 애굽 이주를 준비하라’(요셉, 창45:7~11)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이끌어내어 하나님의 언약백성들로 준비시키라’(모세, 출3:10,12)
‘하나님께 대하여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라’(이스라엘 민족, 출19:6),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대로 성막과 그 기구를 만들어 봉헌하라’(브살렐과 오홀리압, 출36:1,2),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그곳을 차지하게 하라’(여호수아, 신31:7),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입성을 돕고 언약 백성 가운데로 편입하라’(라합, 수2장),
‘언약 백성 가운데로 편입되어 자손대대로 성전 봉사자가 되라’(기브온 족속, 수 9장),
‘여호수아를 도와 가나안 정복을 끝까지 완수하라’(갈렙, 수14:6~15),
‘메소보다미아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이스라엘의 최초의 사사가 되라’(옷니엘, 삿3:7~11)
‘이스라엘의 이방종교를 혁파하고 그들을 미디안 족속으로부터 구원하라’(기드온, 삿6~8장)
‘블레셋 족속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내기 시작하라’(삼손, 삿13:5),
‘언약 백성에 편입되어 메시야의 오시는 길을 예비하라’(룻, 룻1~4장)
‘하나님의 충실한 제사장이 되고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들을 세우라’(사무엘, 삼상2:35),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어 이상적인 신정국가의 모델을 제시하라’(다윗, 삼하7장),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라’(솔로몬, 왕상3:4~14),
‘솔로몬을 도와 예루살렘 성전과 그 기구들을 제작하라’(히람, 왕상7:13,14),
‘북이스라엘의 우상종교와 맞서 싸우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라’(엘리야, 왕상17,18장)
‘아합의 왕궁에 남아서 핍박받는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도우라’(오바댜, 왕상18:3,4)
‘엘리야의 뒤를 이어서 북이스라엘의 우상종교와 맞서 싸우라’(엘리사, 왕상19:16,17)
‘예후를 도와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자손들을 믿음으로 교육하라’(여호나답, 왕하10:15~27)
‘종교개혁을 단행함으로써 풍전등화와 같은 유다를 되살리라’(요시야, 왕하22:1~23:25)
‘다윗을 도와 성전음악을 정비하고 집대성하라’(헤만, 아삽, 여두둔, 대상15:17; 25:1)
‘해방된 백성들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건너가고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라’(스룹바벨, 스1:1~11)
‘돌아온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무너졌던 성전예배를 회복하라’(에스라, 스7:10)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이스라엘의 재건을 도우라’(느헤미야, 느2:17)
‘모르드개와 함께 위기에 처한 언약 백성들을 구원하라’(에스더, 에4:14)
‘열방의 선지자로서 멸망해가는 유다와 주변 열방들을 향하여 대언하라’(예레미야, 렘1:5)
‘포로생활 중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라’(에스겔, 겔2:37)
‘하나님을 위하여 뜻을 정하고 이방나라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증거하라’(다니엘, 단1:8)
‘범죄한 북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끊임없이 외치라’(호세아, 호14:1)
‘돌아온 백성들의 성전 재건공사를 독려하라’(학개와 스가랴, 스5:1,2)
◯ 비전선언문의 실례 (신약성경)
‘십자가 대속으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라’(예수님, 마1:21; 20:28)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와 그녀를 통해 나실 예수님을 보호하라’(요셉, 마1:18~25, 2:19~23)
‘별을 보고 유대 땅으로 건너가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경배하라’(동방박사들, 마2:1~12)
‘세례를 통해 주의 길을 준비하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라’(세례 요한, 마3:1~17)
‘베드로와 함께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고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라’(안드레, 마4:18,19)
‘믿음의 사람이 되며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세상을 감동시키라’(백부장, 마8:5~10)
‘어떤 역경에도 낙심치 말고 간구함으로 큰 믿음의 사람이 되라’(가나안 여인, 마15:21~28)
‘주님을 위해 물불가리지 않고 헌신 봉사하는 열정의 형제들이 되라’(야고보와 요한, 막3:17)
‘어둠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거하라’(거라사 광인, 막5:1~20)
‘믿음의 눈을 떠서 주님의 일하심을 바라보고 세상 앞에 증거하라’(바디매오, 막11:46~52)
‘억지로라도 십자가 짐으로써 믿음의 명문가대를 열라’(구레네 시몬, 막15:21)
‘예수님의 장례식을 거행함으로써 구약의 예언을 성취시키라’(아리마대 요셉, 막15:42~47)
‘어둠의 권세로부터 풀려나서 오직 그리스도만 섬기고 증거하라’(막달라 마리아, 막16:9)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분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마리아, 눅1:26~38)
‘죽기 전에 그리스도의 오심을 보고 사람들 앞에 증거하라’(시므온, 눅2:25~35)
‘일평생 성전에서 주야로 기도하다가 그리스도의 오심을 목도하고 증거하라’(안나, 눅2:36~38)
‘안드레와 함께 사람 낚는 어부가 되고 초대교회사의 반석이 되라’(베드로, 요1:42)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고 이스라엘의 참 선생이 되라’(니고데모, 요3:1~21)
‘공석이 된 가룟 유다의 자리를 충실하게 메우고 사도직을 감당하라’(맛디아, 행1:21~26)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일꾼들을 온전히 세워나가는 위로의 아들이 되라’(바나바, 행4:36)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전파하며 전도인의 책무를 다하라’(빌립, 행8:4~40; 21:8)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많은 이방인들을 주께로 인도하라’(바울, 행9:15; 갈2:8)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많은 선행과 구제로 교회를 유익하게 하라’(룻다, 행9:36~42)
‘날마다 기도와 구제로 나아가며 말씀을 통해 은혜 가운데 머물라’(고넬료, 행10장)
‘말씀으로 성도들을 권면하며 바울을 도와 이방선교를 감당하라’(실라, 행15:32, 40)
‘바울을 도와 그의 복음사역을 헌신적으로 도우라’(아굴라와 브리스길라, 행18:1~3)
‘그리스도의 복음으로써 온 교회를 유익하게 하라’(아볼로, 행18:24~28)
‘겐그레아 교회를 섬기며 바울과 여러 사람의 보호자가 되라’(뵈뵈, 롬16:1,2)
‘바울과 함께 선교사역을 감당하되 특별히 편지(성경)의 대필로 그를 도우라’(더디오, 롬16:22)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 받는 의원이 되라’(누가, 골4:14)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바울을 도와 복음사역을 감당해나가라’(디모데, 딤후2:3)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하나님 나라 역사에 유익한 일꾼이 되라’(딤후4:11)
‘하나님과 예수의 종이 되어 예루살렘교회와 그 흩어진 성도들을 굳게 하라’(야고보, 약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거짓교사들로부터 교회와 성도들을 파수하라’(유다, 유1:1~25)
◯ 비전선언문의 실례 (현대)
“굶주림을 겪는 모든 아이들과 가정, 공동체가 회복되어 또 다른 공동체를 돕는 것”(기아대책)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람과 나라를 세우는 것”(성서유니온선교회)
“크리스천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워질 수 있도록 섬기는 것”(갓피플)
“‘어느 곳에서나 영적 운동을 일으키기’라는 비전을 가지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믿음을 훈련시키고,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전도하고 제자화 할 수 있도록 파송하여, 지상 명령을 성취하도록 돕는다.”(한국대학생선교회)
“크리스천들이 세상에서 성경적 직업관으로 무장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우도록 섬긴다.”(직장사역연합)
“성경적 창조신앙을 회복하고 열방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창조과학회)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누구나 자기가 낼 수 있는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게 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보급하는 것.”(대한성서공회)
“바울이 에베소의 두란노서원에서 가르쳤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까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두란노서원)
“이 땅의 어린이들을 예수님께로, 세계의 어린이들을 예수님께로”(한국어린이전도협회)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된 모든 세대들을 일으켜 온 열방에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며 파송한다.”(예수전도단)
“한국과 세계의 대학가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세우는 선교적 공동체가 일어나고, 훈련된 하나님의 일꾼들을 통해 성서한국, 세계선교가 이루어지게 한다.”(기독대학인회)
“전 세계 가장 취약한 아동, 가정, 지역사회가 빈곤과 불평등에서 벗어나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모든 파트너와 함께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월드비전)
마음열기④ | 비전을 발견하신 분만(?) 읽어보는 편지 |
사랑하는 너에게
이제야 네가 이 일에 눈을 뜨게 되었구나.
나는 참으로 오랫동안 너를 기다려왔단다.
네가 이 사역을 네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또 좀처럼 이 일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관심조차 주지 않던 네가
너의 태도와 생각을 바꿀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와야만 했단다.
우리 함께 이 일을 시작해보지 않으렴?
나는 네가 이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그 동안 부지런히 여러 가지 준비들을 마쳐 두었단다.
네가 이 일을 시작해 가다보면
내가 그 동안 얼마나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었는지
역력히 느낄 수 있을게다.
네가 이 일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이 일을 너의 비전으로 받아들일 때까지
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단다.
그 기간이 나에게 기다리기 보통 힘들던 시간이 아니더구나.
너는 참으로 의심이 많은 녀석이더구나.
오늘 당장에 받아들일 것 같으면서도
몇날며칠을 질질 끌더구나.
어떤 때엔 오히려 이 일에 대해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살더구나.
당장 눈앞에 보이는 분주한 것들에 끌려 다니더구나.
넌 참으로 욕심이 많더구나.
좀 더 확실한 확신을 그렇게도 소유하고 싶어 하더구나.
그렇지만 확실히 해두고 싶어 하는 네 신중한 모습이 보기에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더구나.
그래서 난 더 기다려야만 했다.
결코 네가 이 일에 동참하도록 재촉하거나 서두르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분명히 네가 뜻을 정하고 열정적으로 뛰어 들어올 그 때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지금부터 너무 조급해 하지는 말아라.
서둘러서 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단다.
자! 분주하게 뛰어오느라고 거칠어진 숨을 잠시 돌리고
침착하게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시작하자꾸나.
자세한 것은 진행하면서 설명해줄 테니 말이다.
아직은 네가 들어선 이 길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은 것은 당연하단다.
일단 시작해서 해가다보면
이 일에 대한 윤곽이 네 머릿속에 점점 더 잡혀져 갈 것이고
모든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명확해질 테니 말이다.
너의 아버지로부터...
ps) 이 편지를 읽어 볼 수 있는 축복을 얻게 된 것을 축하한다.
발견한 네 비전을 우리 함께 멋지게 펼쳐보자꾸나.
사랑하는 내 아들, 내 딸 파이팅!
- 비전가이드 -
강의4 | 나를 따라오라! (Follow Me!) |
* 비전의 삶은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부지런히 따라가는 것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마 4:18,19) |
본문은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흔히 소명(召命) 기사(記事) 하면, 무언가 굉장하고 놀랄만한 사건들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은 어떻습니까? 좀처럼 그와 같은 기대들을 충족(充足)시키지 못해 보입니다.
왜 입니까? 흔히 생각되는 극적(劇的)인 요소들이 거의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9)는 주님의 한 말씀만 있을 뿐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베드로와 안드레의 소명 기사가 이처럼 평범(平凡) 할 수 있다니 말입니다.
비록 여기서 흔히 기대되는 (영화 같은) 드라마틱(dramatic)한 장면을 볼 수 없지만, ‘나를 따라오라’는 주님의 짧은 이 한 마디에 담긴 굵직한 교훈들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향해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이 둘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이 둘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만들어야 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말입니다. 응당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한편, 그들이 이 일을 위하여 어떤 일들을 해야 합니까? 극도로 어려운 것이나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먼 것입니까? 아니면 도저히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거창한 일인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일입니다(신30:11~14). 즉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날마다 부지런히 따라가는 것 말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비전을 깨닫게 해주시는 이도, 그 비전을 완성시켜 주실 분도, 모두 우리를 부르신 그 주님 한 분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이란 주님의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매일 살아가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주님을 부지런히 쫒을 생각은 안 한 채, 홀로 ‘어찌 하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비전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고 고민을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고민이 전혀 불필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자신이 매일 주님을 부지런히 따르는 것’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은 그 어떠한 질문도 무의미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따져보자면, 베드로와 안드레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 스스로 한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 앞에서 실수를 연발하고, 그 믿음 없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3년 동안 예수님을 전적으로 따라다녔습니다. 즉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그의 인생을 전폭적으로 맡기고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멋진 사도들로 세움 받을 수 있었고요. 할렐루야!
오늘도 우리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보길 원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치 못해서 낙심될 때...길을 향하다가 너무 힘들어 주저앉아 있을 때...주님이 주신 비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를 때...나는 오늘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부지런히 쫒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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