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산악자전거 PART 3 라이드매거진 젊은이들의 놀이에서 시작된 MTB의 역사](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static.naver.net%2Fncc%2F2013%2F10%2F16%2F201122862344984.png)
산악자전거는 무척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가졌다. 프로선수들의 엘리트 스포츠가 대중화 된 것이 아니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마린 카운티에서 시작된 ‘동네 청년들의 놀이’가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로 발전했고, 1996년부터 올림픽 정식 종목에 포함되었다.
산악자전거의 발전의 밑바탕이 된 것은 바로 순수한 ‘재미’다. 크로스컨트리, 다운힐, 프리라이드, 엔듀로 등 다양한 산악자전거의 장르가 있는데, 이러한 장르 대부분이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는 산악자전거 라이더에 의해 만들어지고 개척되었다. 지금도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산악자전거를 개발하고, 더 재미있는 라이딩 스타일을 추구하는 이들이 있기에 산악자전거는 아직도 진화 중이다.
산악자전거 이전에도 비포장도로를 달릴 수 있는 자전거가 있었다. 하지만 산악자전거의 직계 조상을 찾아보면 엉뚱하게도 해변을 여유롭게 달리는 비치크루저라는 자전거가 튀어나온다.
1940년 제작된 스윈 엑셀시오 비치크루저.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만들어진 낡은 비치크루저는 차체가 무겁지만 튼튼했기 때문에 산악주행용으로 개조하기에 적합했다.
비치크루저는 1930년대부터 50년대 사이에 미국에서 크게 유행했던 자전거로, 속도를 내기보다는 주로 편안하고 여유 있는 주행을 위한 자전거다. ‘발룬 타이어’라는 폭이 넓은 타이어를 장착해 해변을 달리더라도 모래에 바퀴가 쉽게 빠지지 않아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즐겨 탔기에 비치크루저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앞서 말한 몇몇 엉뚱한 젊은이들이 이 비치크루저를 산에서 타기 시작한다. 자전거를 끌고 산에 올라가 산불에 대비하기 위한 소방도로(fire road)의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오는 놀이를 생각해 낸 것이다. 비치크루저의 큰 바퀴는 비포장도로를 달리기에 좋았고, 두툼한 타이어가 충격을 흡수하는 서스펜션 역할도 했다.
MTB는 첨단 스포츠로서가 아닌, ‘동네 청년들’의 놀이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의 ‘클렁커’는 브레이크의 제동력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뒷바퀴를 미끄러트려 속도를 줄이며 달리는 기술을 사용했다.
이들은 낡은 비치크루저의 프레임을 보다 튼튼하게 보강하고, 핸들바를 교체하고, 변속기를 장착하는 등의 개조를 거듭하며 산을 달리기에 적합한 자전거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개조 자전거와 이를 즐기는 젊은이들을 가리켜 클렁커(klunker, clunker)라 불렀다. 고물자동차처럼 마구 덜컹거린다는 뜻인데, 이들의 개조 자전거가 거친 지면에서 마구 튀어 오르며 달렸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클렁커라는 말에는 ‘괴짜’라는 의미가 담겨있기도 하다.
MTB의 시초라 알려진 개리 피셔의 클렁커. 스윈 엑셀시오X 비치크루저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유럽에서 인기 있었던 오프로드 경주용 자전거인 ‘사이클로크로스’에서 영감을 받아 비치크루저에 변속기를 달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산악자전거를 최초로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대체로 게리 피셔(Garry Fisher)를 산악자전거의 창시자로 꼽는다. 게리피셔가 1974년 스윈 엑셀시오 X(Schwinn Excelsior X) 모델을 개조하여 변속기와 강력한 브레이크를 장착한 클렁커가 근대적인 산악자전거의 모습을 갖춘 첫 자전거라고 일컬어진다.
산악자전거의 선구자들. 타말파이스 산 부근에 사는 젊은이들의 놀이에서 MTB가 탄생한다. 좌측부터 오티스 가이, 크리스 맥마누스, 조 브리즈로 1977년 타말파이스산 켄트락 정상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클렁커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수는 197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늘어났다. 1971년 마린카운티 인근 타말파이스 산에서 자전거를 타는 젊은이들의 모임 ‘벨로클럽 타말파이스(Velo Club Tamalpais)’는 산악자전거의 탄생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게리 피셔, 조 브리즈, 찰리 켈리, 오티스 가이 등의 산악자전거 탄생을 주도한 선구자들이 이 클럽에 속해있었다.
벨로클럽 타말파이스의 젊은이들.
벨로클럽 타말파이스에는 ‘히피’라 불리는 젊은이들도 많았기에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썩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1976년 벨로클럽 타말파이스는 타말파이스 산의 ‘리팩(repack)’이라는 코스에서 최초의 산악자전거 대회를 열기도 했다. 3.4km에 이르는 소방도로의 내리막길을 누가 가장 빨리 내려오는지를 겨루는 대회였다. 이 코스를 달려 내려오다 보면 자전거의 브레이크가 과열되어 안의 윤활유가 다 타버려서 새로 채워 넣어야 했고, 이것이 ‘리팩’이라는 코스 이름이 되었다.
리팩 대회를 알리는 포스터와 리팩 코스의 지도.
참고로 최초의 리팩 대회에는 7명의 선수가 참가했는데, 유일하게 넘어지지 않은 선수인 앨런 본즈가 우승했다. 게리 피셔는 리팩 대회에서 총 4번의 우승을 했고, 그가 리팩에서 세운 4분 22초의 기록은 지금도 리팩 코스를 가장 빠르게 달린 기록으로 남아있다.
자신이 설계한 자전거를 타고 리팩 코스를 질주하는 조 브리즈.
리팩 대회 이후 클렁커를 타는 젊은이들은 점점 더 늘어났고, 클렁커로 개조하기 위한 낡은 자전거들은 점점 구하기 힘들어져 샌프란시스코 만 일대 100마일 이내 지역에서는 더 이상 낡은 자전거를 구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전거 회사들은 클렁커를 일시적인 유행이라고만 생각했고, 산악주행을 위한 자전거를 특별히 개발하지는 않았다.
조 브리즈의 산악자전거. 조 브리즈의 클렁커보다 가볍고 튼튼한 프레임을 직접 개발한다.
마린 카운티 인근의 젊은이들은 클렁커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거나, 손재주 좋은 젊은이들이 개조하여 판매하는 자전거를 구입했다. 조 브리즈는 당시 가볍고 튼튼한 프레임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제작자였고, 후일 ‘브리저’라는 자전거 회사를 세운다. 게리 피셔는 그의 친구 찰리 켈리와 공동으로 ‘마운틴바이크’라는 회사를 세우고, 이후 찰리 켈 리가 회사를 떠나게 되면서 회사명을 ‘게리 피셔 바이시클’로 바꾸게 된다. 마운틴바이크사의 프레임을 만들던 자전거 제작자 톰 리치는 ‘리치 로직스’라는 자전거 메이커를 만든다. 조 브리즈, 게리 피셔, 톰 리치 이 세 사람을 산악자전거의 아버지라 부르기도 한다.
1982년 제작된 최초의 양산형 산악자전거인 스페셜라이즈드 ‘스텀점퍼’. 스페셜라이즈드의 최신형 산악자전거 모델도 스텀점퍼라는 이름을 물려받아 사용한다.
젊은이들의 놀이로 시작되었던 산악자전거는 급속히 인구가 늘어나 1980년대에 이르러 자전거 시장의 큰 흐름이 되었다. 이에 대규모 자전거 메이커들도 산악자전거의 생산에 눈을 돌리게 된다. 최초의 양산형 산악자전거는 1982년에 등장한 미국 스페셜라이즈드 사의 ‘스텀점퍼’라는 모델이다.
조 브리즈가 1989년 만든 '브리저‘. 강철 케이블의 탄성을 스프링처럼 이용한 프레임으로 승차감을 개선하려는 독특한 시도를 했다.
스텀점퍼 이후 산악자전거의 인기를 실감한 다른 많은 자전거 메이커에서 다양한 모델을 양산하기 시작하고, 미국을 벗어나 전 세계로 산악자전거의 존재가 알려지며 산악자전거 전성시대가 열린다. 8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자전거 메이커들은 더 가볍고 승차감이 우수하며 튼튼한 산악자전거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레이스용 산악자전거에 본격적으로 서스펜션이 장착되기 시작한다. 사진의 모델은 95년 생산된 예티 ARC 레이스 하드테일. 당시의 최고급 소재인 이스턴 알루미늄을 사용한 프레임에 서스펜션 포크, 내리막길 고속주행 시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한 알루미늄+카본 휠세트를 장착했다. 외형상으로는 최신형 크로스컨트리 산악자전거와 큰 차이가 없다.
지금 보면 모양이 독특하거나 실용적이지 못한 모델도 있지만, 산악자전거의 등장으로 인해 100년 가까이 모습이 변하지 않았던 자전거가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게 된다. 서스펜션과 디스크브레이크의 장착 등 로드바이크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기술적 혁신을 산악자전거가 주도한다.
1990년대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인 NORBA 월드챔피언 존 토맥의 역주(1995).
2012 런던올림픽 크로스컨트리. 2004, 2008 올림픽 골드메달리스트 줄리안 압살롬의 역주. 런던올림픽에서는 타이어 펑크로 넘어지며 아쉽게 리타이어 했다.
2013 MTB XC 월드컵 경기. 런던올림픽 골드메달리스트 야로슬라브 쿨하비의 역주. 단 한명의 월드챔피언만이 흰 바탕의 오색 무지개 유니폼을 입을 수 있다.
1983년에는 미국 산악자전거 협회(NORBA)가 설립된다. 1990년 첫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렸으며, 1996년에는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산악자전거 크로스컨트리 경기가 남녀 각 1개의 금메달이 걸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게리 피셔의 클렁커가 등장한 이후 약 20년 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