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함양오씨 대종중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 대종회 회보자료 스크랩 제주도 여행 記우서/병관,
lim888[현정] 추천 0 조회 34 09.02.25 10:51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함오 제주기행

 

우리 함오 영양낙남기행에 이어 또 하나의 친목기행을

제안한 것이 오남열 회장의 제주기행이다.

필자가 이 여정에서 10여 년의 蟄居隱遁으로

일관한 생활을 일깨워 준 귀중한 여행이기도 하다.

지난 영양답사 시에 이미 우리 서울 종친회장의 머리에는

서울 종친들의 단합을 위한 제 2의 여행이 머리에 그려져 있었던 듯

거침없이 5월 운영위에서 제주여행을 거론하셨다.

6월에 접어들고 어느 날 제주투어의 최종회의가 이루어지고

드디어 6 25 10시에 출발이 결정되고 카페 안내문이 실려

종친들에게 알렸다.

인원 점검에 들어가고 투어주관 회장, 부회장, 총무,

카페 운영자들의 최종점검 하에 20명으로 확정되었다.

6 25 1진이 출발하고 필자는 다른 일이 있어

오후 6 30분 비행기에 올랐다.

1시간여의 시간 후에 제주에 닿자마자 회장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슬포항 최남단 횟집으로 오라고 한다.

벌써 마음이 급해진다.

안내데스크에 모슬포항을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물으니

콜택시를 타란다.

택시 타는 방법을 물으니 대절과 일반 미터기 택시 두 가지가 있단다.

대절은 요금이 결정되면 가장 빠른 방법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다. 삼 만원에 요금이 결정되니 운전기사가 싱글벙글하면서 타라며 말을 건넨다.

 “손님, 제주도는 처음입니까?”하고 인정스레 묻는다.

아니오, 제주는 자주 왔고 모슬포항은 두 번째 입니다.

하니, “언제 모슬포항을 오셨었습니까?

저는 제주에 살아도 모슬포항은 자주 못가보았습니다.

라며 되묻는다. “, 75년도 봄에 왔었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오래되셨네요. 벌써 30년이 넘었는데지금은 많이 변했지요.” 한다.

그래요?라고 되물으며 모슬포의 아련한 추억에 젖어 든다.

 

 

75년 필자가 제주 호텔에서 세미나가 있어 참석차

출장을 왔었는데 그때 제주가 처음이고 직장동료들과 친구들도

모두 제주에 머물고 싶어하여 직장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2일간의 휴가를 요청하였더니 흔쾌히 2일간 출장으로 연장해줄 테니 마음껏 놀다 오라는 고마운 분부를 들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호텔에 2일 연장을 요청하였더니 야,

이 서울 촌놈들아 호텔에 자려면 서울 호텔에서 자지,

미쳤다고 제주까지 와서 호텔에서 자냐고 핀잔을 넣더니

서귀포행 버스를 타잔다.

세미나 잔류 동료 6명이 제주에서 서귀포로 이동하여 다시 모슬포행 버스로 옮겨 타고 모슬포항에 도착하니 항구 바닷가에 초라한 오두막으로 제주가 고향인 친구가 들어가더니 아주머니에게 제주말로 무어라 몇 마디 하더니 들어오라는 사인을 보낸다.

방 두 개와 부엌이 달린 초려다.

잠깐 기다리라 해놓고 바깥방은 쓰지 않은 듯 안방에 아주머니가 들어가 방을 치우는 듯 하더니 간단한 보따리들을 바깥 방으로 옮기고

안방으로 안내한다.

우리가 짐을 푸는 동안 아주머니는 함지박을 가지고

바닷가로 종종걸음으로 나가 해녀망을 바다에서 건져 내어 그 속의 멍게,

성게, 전복 등을 풍성하게 담아오더니 회 안주를 장만하고,

조 껍데기 막걸리 한 단지에 조롱박을 띄워 목을 축이라 내어 온다.

출출하던 우리 일행들은 허겁지겁 마시고 먹고 하였는데 당시 필자는 급성 간염으로 고생하여 회복기에 있었기 때문에 술은 먹지 못하고

성게를 까먹는데 열중하였다.

본격적으로 가져간 마작판을 벌여 놓고 시작하는데 엄마,

손님 왔네 하는 소리에 밖을 내다보니 아주머니와 똑 같은 아주머니가

한 명 더 마당에 들어선다. 다만 나이가 좀 더 젊어 보이는데

엄마라는 것을 보니 모녀간인가 보다.

조금 있다가 아주머니가 제주출신 친구에게 무어라 알아들을 수가 없는 말을 하였더니 그 친구가 아주머니에게 알아서 해달라고 한다.

이래서 그 두 밤을 이 집에서 꼬박 세우고 마작을 했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올라 기대에 부풀었다.

 

최남단 횟집을 찾았다고?”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택시기사 목소리에 놀라 정신을 차리니 벌써 모슬포로 들어서는데 거의 1시간을 달려온 것 같았다.

그 이후의 추억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고 부두 쪽으로 몰던 택시기사가

다 왔습니다하는데 보니 최남단 횟집 간판이 붙은 식당에 차가 멈추고 횟집에는 왁자지껄 소리가 요란하다.

들어서니 반가운 종인 들이 여기저기서 박수로 환영한다.

푸짐한 회와 각종해산물로 상다리가 휘청하니 어찌 한잔 술이 없을 소냐.

회장님의 인사와 건배의 순서를 넘어 폭탄주 너,댓 잔에 얼큰해진 몸으로 숙소로 향했다.

중문단지 한복판에 오남열 회장의 별장 빌라가 있고

그 옆에 함오종친들이 묵을 숙소가 있는데 여자분들은 회장님 별장으로 가고 남자들은 숙소(콘도) 12명이 짐을 풀었다.

 

국민교육 헌장의 한 구절처럼 저마다 소질을 계발하고

하여 우리 함오 종친들은 하나같이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분들이다.

방이 세 개 거실이 있어 20여명의 잠자리가 넉넉하다.

방을 정하는 방법 또한 독특하다. 코를 골지 않는 자 한 방,

 코를 골다 안 골다 하는 자 한 방, 코를 고는 자 한 방으로 정한다.

일사불란하게 불평한마디 없이 찾아 들어간다.

들어가 자리에 눕는 분 그냥 자기엔 아쉬운 분들은 한 판 벌인다.

필자는 눕자 마자 잠에 골아 떨어졌다.

눈을 뜨니 벌써 네시다. 다른 분들에게 누가 될까 다시 누워 뒤척이는데

우리의 보배 순식 총무가 일어나 세수하고 오늘 일정에 대한 준비를 한다.

일정이 2개조로 나누어 골프투어 8명 관광9명으로 나뉘었다.

 

이번 행사에 가장귀한 문객을 만났는데 카페 운영자 현정씨 부군

정재기씨다. 송강 정철 선생의 직계 손이라고 듣고

필자가 역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한 분의 후손이라는데 왠지 정감이 간다.

항렬과 연치도 필자가 조금 위 인 것 같아 정서방이라고 편하게 부르며

부담스러움을 덜고져 농을 건네며 스스러움 없이 말했는데

실례를 무릅쓰고 한 말들이니 해량해주시기 바라오며

반듯하게 자란 따님에게도 찬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또 한 분은 형판공파 경순 종친이다.

老莊思想陽明의 지식을 修身에 접목시킨 것 같다.

필자도 동기간들은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며 사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는데 현대문명에 잠식당하고 황금만능시대에 노예처럼 利器에 새장처럼 갇혀 사는 것 보다는 비록 현대의 미아로 보일지 모르나 자연을 벗하며 옛 선현들의 여유로움을 배우며 사는 것도 좋을 수 있지 않겠는가?

 

 

각설하고 관광조의 여유로운 시간을 뒤로하고

골프 조는 황황히 차에 올라 중문골프장에 도착하니

장비부터 필자는 10년을 정지된 속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타임머신을 타고 온 사람으로 볼 것이다.

그래도 회장 부회장 대종회 창건국장 경순 종친이 감싸준다.

공을 발로차도 그것 보다는 잘나갈 것 같은 한 라운드를 돌고 나니

피로가 엄습한다. 아쉬운지 일행은 9홀 추가를 하잔다.

내색은 할 수 없고 따라 나섰다. 27홀을 하고 나니 모든 것이 귀찮다.

숙소로 돌아와 조금 쉬고 있노라니 회장님께서 저녁 식사로

 제주 돼지 오겹살 이란다. 완전히 몸보신을 시키나 보다.

어찌 술 한잔 없으리요 자기기분에 맞게 얼큰해지니 어찌

비둘기가 콩밭을 지나칠까 보냐 우재공파

 예원 부회장이 제일 큰 노래방을 통째 빌린다.

 

문객 정서방이 익살을 부린다. 함오가 하나같이 노래에 끼들이 있다고,

한바탕 열창들을 하고 나서야 마음과 몸이 풀렸는지 숙소로 돌아왔다.

3일째 새벽 전날과 같이 관광조 거기에다 한 조가 늘었다. 낚시 조다.

필자는 자주 왔던 곳이라 딱히 갈 곳도 없는데 포기할 가도 했던 골프가

슬그머니 오기가 난다. 정말 발로 차는 골프로 끝낼 것인가?

하여 골프로 따라 나섰다.

한번 더 도전코져 첫 홀에 스푼을 들었다.

제법 백칠팔십은 나간다.

다음부터는 드라이버로 쳤는데 18홀 동안 한번 실수로 끝났으니 장족의 발전이다. 그런데  역시 어프로치 퍼팅은 금방 될 일이 아닌 것 같다.

 

 

오후에는 천제연폭포 정방폭포를 거쳐 성산포로 향하였다

4,5십 분을 달려 표선 해비치 리조트안에 있는 바다횟집에 들러

저녁 예약을 해두고 섭지코지에 있는 올린-뉴 촬영지와

성산일출봉을 관람하러 출발하였다.

도중에 회장님 친척 되시는 분의 농장을 둘러보고

총무의 해수욕 익살도 보고 섭지코지를 둘러 보고나니

저녁예약시간이 촉박하다

성산일출봉은 멀리서 보는 것으로 하고 차에 올랐다.

서울에서 2진이 도착한단다.

그런데 서두른다는 것이 길을 잘못 들어 두어 시간 이상 헤맸다.

그래도 즐거움은 이상 없다.

웃음 속에서 간신히 도착하였는데 2진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오늘은 예원 부회장이 저녁을 낸다고 회장님이 멘트를 한다.

우선 건배로 목을 추길 때 2진이 도착하였다. 모두 반갑게 맞았다.

역시 폭탄주 몇 잔을 마시고 나니 피로가 확 가시면서 기분 최상이다.

우리함오 종친들은 적당히 마시고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슬기가 있다.

회장님 인사와 아울러 서울 종친회에 대종회 연락사무소가

들어 온다고 말씀하셨다. 결정된 것에는 반론이 있을 수 없다.

함오의 발전을 위해 축하하자.

내일은 한라산 등반이다.

 

 

      아! 한라산!!.

 

옛날에는 영주산이라 하여 봉래산(금강산) 방장산(지리산)과 함께

 三神山이라 했다.

기원전 나라 威王,宣王燕나라 昭王이 이 삼신산에 사람을 보내

不老不死의 영약을 구해오게 했다는 고사가 있다.

이후 2200년전 기원전209년 진시황이 童男童女500쌍과

군사 2000명을 데리고 서불(徐市 徐福이라고도함)이란

신하를 시켜 영주산에 불로초를 캐기 위해

현재 정방폭포 있는데 상륙하여 백록담 주변에 있는

시로미 열매를 채취해가면서 徐市過此라는 기록을 바위에 새기고

과두문자 열두 자를 새기고 갔는데 그 뜻을 알수 없다고 한다.

은하수를 끌어 당길수 있는(雲漢可拏引也) 높은 산이라 해서

붙혀진 이름이 한라산이다.

 

그 외에 頭無岳, 頭無山, 無頭岳, 耽羅山, 圓山, 圓嶠山,

 釜岳, 鎭山, 仙山, 中岳, 女將軍, 單山, 蓬萊山, 浮羅山, 穴望峰, 朝鮮富山,

하늘산등 20여 개에 달한다.

또 오름이라는 용어가 탄생했는데 순수한 제주어로 寄生火山을 이른다.

일반사전에는 한 화산의 중턱이나 기슭에 새로 용암이분출하여 생긴

작은 화산을 말하며(主火山火道가 갈라지거나

위치가 변하여 생긴 側火山) 전문용어로는 현무암질

화산활동에 수반된 분석구를 말하며 분화구를 갖고 있고

화산 쇄설물인 송이(scoria)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뿔형의 산

모양을 이루는 작은 화산 체라고 한다.

이 오름(분화구)이 제주에 총368개가 있는데

한라산 국립공원 안에만 46개가 있다 고한다.

제주를 왔다가는 우리 함오 종친들은 상식적으로 알아 두시기 바란다.

새벽 네 시에 밖을 내다보니 비는 오지 않는데 금방 쏟아 질것 같다.

등산장비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이다.

다시 자리에 누어 포기 쪽으로 마음을 굳히려는데 조금 있으려니까

모두가 일어나 등산준비에 부산하다.

가만 보니까 나 혼자만 우두커니다.

이래서는 안되지 1100m 고지 까지는 가야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예원아재 운동화를 빌려 신고 나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회장님의 강행군 령이 떨어진다.

모두가 차에 올라 한라산으로 향했다.

나와 같이 준비도 없이 나서는 자체가 한라산을 우습게 보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들면서도 욕심이 난다 .

 

7시 반에 1100m 고지 영실 휴게소에 도착하니 비가 본격적으로 내린다.

필자는 포기하려 했더니 옆에서 가다가 내려오는 한이 있어도

가자고 부추긴다. 1회용 우의가 지급되고 하나 둘 나선다.

그래 경순 종친은 구두신고도 나서는데 용기가 생긴다.

회장님은 앞장서 독려한다.

어찌 오르지 않으랴! 비가 물동이로 퍼붓는 것 같다.

1시간여에 1400m 고지에 이르니 본격적으로 세찬 바람까지 불어댄다.

그래도 전진, 1500m 고지에 이르니 바람이 너무 세다.

몸 약한 이는 서있기도 힘들다.

드디어 회장님 하산 령이 떨어 졌다. 그래도 몇몇은 등반을 고집한다.

회장님 신신 당부 속에 6명이 1조가 되어 오르는 것을 보고

우리는 1100m 고지인 영실 휴게소에 내려와 간단한 요기를 때우고 커피로 휴식을 취하는데 하늘에서는 계속 퍼붓는다.

(그날 오후 두 시까지 200mm가 왔다고 하니 굉장한 비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상 정복 조가 내려왔다.

박수 속에 완주를 축하해주고 하산하였다.

숙소에서 행장을 수습하자 점심 설렁탕을 한 그릇 하고

제주비행장으로 달렸다.

! 우리 함오 장함이여 누구 하나 낙오 됨 없이 일사불란함이여

제주를 떠나며 회장님 예원 부회장 대종회 창건국장 카페 현정 운영자

순식총무 감사해 마지않으며,

특히 회장님 부인께 깊은 감명을 받고 갑니다. 이번 행사를 내조함에 말없이 깔끔하게 진행하여 주신데 대하여 재삼 감사 드립니다.

 

 
다음검색
댓글
  • 작성자 09.02.25 10:56

    첫댓글 종친 제주 여해기로 위의 내용이 어떨지요 제가 우서님글에 편집을했는데 참고하시고 이제 향제 두암신도비 참여 영양 유적답사기만 있으면 될것같군요 임원 사진은 잘 몰라서 어떤분인지 잘모르기에 더이상 진행이 불가능하군요 참작하시구요?수고 많으셔요,

  • 09.02.25 14:49

    회의때 참석한분 및 등산때 올려둔 사진 회원 사진등 참조 해 주셔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