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마지막 수업을 마칠 쯤. 청옥은 다시 동덕국민학교 가교사를 떠나야 한다는
소식을 선생님들로부터 들었다. 어딘지는 나중에 알려준다는 말만 듣고 우리는
긴 겨울방학에 들어 갔다.
그리고 1월 말. 청옥은 허허 벌판으로 둘러 싸인 경희여상 가교사로 옮겼고,
우리는 그 곳에서 졸업식을 가졌다.
낯선 교실. 울음 바다. 식장엔 부모들은 볼 수 없지만, 선생님들과 떠났던 선생님들, 그리고 졸업한 선배 들로 둘러 싸인 채 졸업식은 진행되었고, 우리는 뿔뿔이
각자의 갈 길을 떠났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아무도 모른 채.
고등학교에 간 친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다. 나는 가지 않았다.
이후 청옥은 잠시 경희여상을 거쳐 달서교회로 옮겼다가 마지막엔 북비산 노타리로
옮겼다.
나는 달서교회는 가 본 적이 없다. 내가 갈 길이 바쁘니 어떻게 돌아 볼 시간이
있겠는가.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에 청옥은 이미 북비산노타리로 옮긴 후였다.
북비산노타리에 있었던 청옥은 달맞이 꽃이 많이 폈던 걸로 기억난다.
나는 그 곳에서 주로 물상을 가르쳤다.
기억나는 것으로는 이틀 동안 경북대 물리학과 실험실을 청소한 끝에 망원경을
찾았고, 그 것을 청옥에 가져와 학생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나는 그 때 천문학에 미쳐서 망원경을 들고 다니면서 별만 보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천문학을 연구하고 있지만, 당시 물리학과 교수들한테 무지 욕을
얻어 먹었다. 내가 내중에 서울대학교 대학원 천문학과에 입학하니 교수들이
그놈 별만 보더니 결국 천문학을 하는 구나 하고 그래도 조금 칭찬 비슷한 말을
한 기억이 난다.
당시 최곤필 교장선생님은 당시 선생들이었던 우리를 늘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종종 학교를 비워 달라는 요구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학교 장소를 찾기 위해 여기 저기를 돌아 다녀야 했다.
허탕치고 나면 막걸리로 모든 것을 마감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면 학생 모집 포스터를 들고 다니며 여기 저기 벽에 붙이기도
하고 국민학교들을 찾아가 중학교 못 간 학생들의 주소를 구해 찾아가서 청옥에
오라는 부탁도 했다. 부모는 보내주지 않는다 하고 애는 간다고 하고.
가난에 찌든 집안을 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의문만 가득한
채 돌아서야 했다.
그런데 학교를 비우라는 교장 선생님의 강요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해서 해결
될 수 있었다.
내가 대학 3학년 겨울 방학 때인 걸로 기억난다.
당시 나는 모 교수님의 연구실 한 모퉁이에서 공부를 했다.
그런데 나보다 한 학년 후배인 효대 다니는 여학생이 찾아야서 하는 말이
그 여학생의 아버지가 라이온스클럽의 회원인데 청옥을 위해 뭔가를 기증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청옥은 오래된 풍금을 교체해야 했지만 돈이 없어 포기한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는 풍금을 요구했다.
그런데 돌발 사태가 발생했다.
풍금을 주는 대신 신문에 작아도 좋으니 기사를 실어 달라는 것이다.
우리가 무슨 빽으로 신문에 라이온스클럽이 청옥에 풍금을 기증했다는 기사를
실을 수 있겠나.
그래서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 "순수한 마음으로 기증하는 것으로 끝내지 뭘 또
바라는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궁하면 트인다고, 사회학과를 다니는 후배 여학생이 신문사를 잘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여학생 덕에 결국 매일신문에 작은 기사가 났다.
그런데 이것은 발단에 불과하다.
MBC 방송이 이 사실을 알고는 훌륭한 최곤필 교장선생님과 인터뷰를 했는데
감격한 교장선생님께서 학생이 한 명 될 때까지라고 이 학교를 계속 운영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말씀이 방송을 타고 적어도 대구-경북 지역엔 다 나갔고, 교인이신 교장선생님은 그 약속을 잘 지켜 주셨다.
그래서 내가 알기로 전체 학생이 몇 명에 불과했을 때 결국 청옥이 문은 닫은 것이다.
청옥이 문을 닫을 때의 과정은 내가 청옥을 떠난 이후이니 내 후배 선생 누군가
자세히 적을 걸로 생각한다.
북경의 밤은 깊어가고 술을 한 잔 한 채 이 글을 쓰니 마춤법도 틀리고 글이 자연
스럽지 못해 읽는 분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누군가 더 보충해 주기를 바란다.
첫댓글 술한잔이 좋을 때가 바로 이런 때가 아닌가 ! 너무나 생생한 그 시절의 아픔이 담긴 이야기인지라 그냥 읽고 넘기기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은 인쇄를 해 보고 다음은 또 드는 생각이 있으니 검토해 볼꺼나 --- 고운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