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
1877년 독일 뷔르템베르크 출생 1890년 괴팅엔의 라틴어 학교 입학 1891년 마울브론 신학교 입학 1892년 작가가 되기 위해 신학교 자퇴 1902년 시집 <시모음(Gedichte)> 출간 1905년 <수레바퀴 밑에서> 출간 1911년 화가 한스 쉬틀제네거와 함께 인도 여행 1919년 에밀 싱크레어라는 이름으로 <데미안> 발표 1939년 2차 세계대전 발발. 나치의 탄압으로 작품들이 몰수되고 출판 금지됨 1957년 <헤세 전집> 출간 1962년 뇌출혈로 사망 |
헷세는 그의 생의 반 이상을
이태리에 가까운 스위스의 테신(Tessin)에서
2000 여 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다.
특히 그는 뜨거운 여름 태양 밑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그의 삶의 역경과 고뇌를 극복하였고
그림을 통하여 그의 이상세계를 그리려고 하였다.
"사람이란 어느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그런데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건 자신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다른 어떤 사람에게 내준 데에 연유하고 있는 거야.
예를 들자면, 네가 어떤 나쁜 짓을 했는데
다른 사람이 알고 있어.
그러면 그는 너를 지배하는 힘을 갖게 되지."
헤세 / <데미안> 중에서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고뇌와 인고 속에서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헤세 / <삶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중에서
우리가 인생을 한곳에 묶어 두고 거기에
친숙해지는 순간, 무력감이 우릴 덮쳐 온다.
언제나 떠나고 방랑할 자세가 된 사람만이
습관이라는 마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쩌면 우리의 죽음의 순간마저도
우리에게 새로운 젊은 공간을 보내리라.
우릴 향한 생의 부름은 결코 그침이 없으리라...
그렇다면, 마음아, 이별을 하고 건강하게 살자!
헤세 / <삶의 단계> 중에서
"만일 내가 외적으로 나의 삶을 먼 발치에서 본다면 그것은 뭐 특별히 행복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삶이 온갖 오류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여튼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를 묻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삶의 가장 불행했던 날들을 유쾌한 날들보다 더 진지하게 몰두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 숙명적인 것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선과 악을 정말 끝까지 맛보고, 외적인것과 더불어 내적이고 원래적이고 필연적인 운명을 정복하게 되면, 삶은 빈곤하지 않았으며 나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흐르는 곡 : 전설적인 사랑 / Anna Vissi
헤세 / <게르트루트> 중에서
첫댓글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내 한때 가장 좋아했던 말이었는데... 그래요. 우리는 죽는순간 까지 파괴하여야 함을 다시 가슴에 담습니다... 인내의 끝이 없듯이...
데미안 데미안 데미안 데미안 데미안 헷세의 아브락사스은 데미안의 신이자 중학시절 우리들의 신이기도 했죠 데미안을 함께 얘기하던 (지금은 절교한) 중학시절 단짝 친구가 무척이나 생각나네요 몇 년 전 아직도 우리의 독신녀로 남아 있는 친구인데 왜 절교했는지 그 이유가 참 어처구니 없죠 화해해야 할텐데
자장면 먹다 단무지 하나 갖고 싸운거 아니죠? 한입에 단무지 두개먹다 싸우던 친구 생각이 불현듯.....ㅎㅎㅎ
영혼이 순수한 어린아이때는 죽은 파리 놓고도 다툰다자나요...용기를 내어 전화 한번 해봐요...오래묵은 채증이 말끔히 가라앉은 기분 될거예요.
절교한지 10년 되었네요워낙 센 여인이라 전화하기도 겁납니다. 언젠가 마음이 편안해지면 수화기를 들어야겠지요. 대신 그녀의 아버지랑 전화통화합니다. 서울사는 친군데 아버지가 몇 년전 제주도에 발령을 받았지요..(한국통신 본부장) , 그로인해 친구의 아버지랑 아주 친해졌답니다. 함께 친구 흉도 보고 아버지는 정말 멋지고 존경스럽던데 친구는 돌연변이 같아요 암튼 세상이 정말 좁다고 느꼈습니다. 하소연 할때도 없도 ..카페에 하소연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