忠北戀歌 충북단양 ①
혼자 애끓는 짝사랑이라 말해도 좋았다. 도담삼봉, 청풍호반으로 오버랩되던 충북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
분히 아름다운 옛 연인이었으니깐. 뼛속까지 함께 하고 돌아온 그녀와의 2박 3일 체험 여행.
그 옛날 연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여행 떠나기 전에 영어강사를 하는 미국인 친구와 통화할 일이 있었다. 단양·제천·충주를 다녀올 거라는 말에 그는 대뜸 ‘한국 에서 제일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곳이 아니냐 했다. 글쎄…, 사람마다 취향이다를 테니 ‘제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외국인
도 알 만큼 매력적인 곳임에는 틀림없을 터.
혹 연애 시절 추억 하나쯤 충주호에 던져두고 온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하나 있다. 그러니까 15년 전, 군입대하기 며 칠 전에 살 오른 봄 햇살 같던 아내와 이곳에 왔었다. 방위 주제에 유난 떤다고 친구들 놀림을 받으면서도 두 연인은 가슴이 사
무쳤다. 단지 18개월 동안 떨어져 지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어찌 연인에게 형극이 아니리!
그때 우린 새벽버스를 타고 단양으로 향했다. 유람선을 타고 충주까지 갔던가. 하룻밤을 묵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호수를 건너던 산 그림자와 하얀 구름, 그리고 그녀와 나눠 꼈던 반지를. 그런데 15년 후에 찾은 충북은 내가 알
던 충북이 아니더라. 호수물이 말랐다거나 도담삼봉이 사봉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낭만의 청풍호반 드라이브 길은 온갖 체험 문화 공간들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그 옛날 연인들이 이곳에서 데이트를 즐겼다 면 이제 그들 아이와 함께 다시 찾아오라는 메시지처럼.
물·바람·햇살로 담그는 장
단양 ‘장 익는 마을’로 갔다. 푸른 장작 냄새가 와락 달려들며 잘 왔노라 반겨준다. 아궁이에는 무쇠 솥이 걸려 있고 그곳에서 모락모락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노란 콩이 익어가고 있었다. “순두부 좀 드셔 보세요.” 아주머니가 김치 한 보시기를 내놓으
신다. 간장 양념장을 쳐서 한 그릇을 후딱 비웠다. 간장 맛이 독특하다. 거칠면서도 진하다.
장을 담그기 시작해 내다 판 지 15년째라신다. “큰 수해가 나서 논밭이 다 잠겨버렸어요. 여자 혼자 아이 셋 데리고 할 일이 없 더라고요. 처음엔 메주를 만들어 내다 팔았죠. 친환경이라고 좋아들 해주니까 장도 담그고 순두부도 만들게 된 거죠.” 그 아이
들이 커서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가업을 이을 거란다. 마당으로 내려서자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메주를 만들고 간수(소
금물)를 붓는 풍경이 눈에 그려진다.
물, 바람, 햇살이 좋다는 이곳에서 ‘장담기 체험’을 한 가족은 아마도 아주머니의 저 미소도 덤으로 담아가리라. 인간의 꿈을 하늘에 닿게 하는 솟대
제천 ES리조트에 도착하자 희끄무레한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청풍명월’의 고장답게 호수 위로 달이 떠올랐다. 달, 별, 호수, 바람. 아내와 함께 오지 못한 것이 다시 아쉬워지는 시간이다. 다음 날 새벽, 운무를 보기 위해 차를 타고 금수산 자락에 올랐
다. 전날 밤 늦게 <100분 토론>을 진행하던 아나운서가 새벽부터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다.
“의원님은 삼성비자금이….” 풋, 저 양반 어젯밤 집에 못 갔겠군, 잠깐 오지랖을 넓히는 사이 정방사에 도착했다. 동이 터오고 있었다. 불쑥 찾아든 여행자에게 스님이 차를 내오신다. “매일 운무 모양이 다르지요.”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다. 마을 어디서나
안나푸르나 영봉들을 볼 수 있었던, 네팔 포카라의 한국 식당 아주머니가 같은 말을 했었다.
“여기 온 뒤로 매일 새벽 해 뜨는 걸 봐요. 하루도 같은 날이 없어요. 하늘도 산도 구름도.” 하지만 우리 일행은 운무를 보지 못 했다. ‘운무’에게는 모닝콜이 가지 않았거나, 시간을 친구 삼아 살아가는 이들의 특권인 모양이었다.
아침을 먹고 ‘능강 솟대 문화 공간’으로 갔다. 방금 호수를 건넌 것 같은 기러기 떼가 미술관을 호위하고 있었다. 솟대다. 싱글
기러기, 아기 기러기를 등에 태운 엄마 기러기, 서로 눈길을 나누는 부부 기러기…. 어찌나 다양하고 많은지 묶을 끈만 있으면
나 하나쯤은 저 호수 너머 세상으로 데려갈 수도 있을 듯싶다.
“솟대는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메신저예요. 인간의 꿈을 하늘에 닫게 해준다고 믿었죠.” 솟대 조각가 윤영호 선생의 설명이 다. 20년 동안 솟대 작업만 고집해온 그는 여섯 번의 개인전과 광주비엔날레 특별초대전을 열었다. 미술관에만 그의 작품이
400여 점 있었다. “사실 자연이 다 만들어놓았어요. 저야 그저 자르고 끼우는 작업만 하는 거죠.”
그는 인위적 손길을 더하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그의 솟대는 단 하나도 같은 모양새가 없다. 물과 해와 바람이 키워낸 나무가 모두 제각각이듯. 하지만 그의 솟대에는 공유하는 어떤 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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