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中世)의 해양대국 포르투갈(Portugal)
포르투갈 전도(全圖) / 포르투갈 국기(國旗) / 파티마 성모발현성지
◆ 포르투갈(Portugal) 개관(槪觀)
이베리아반도(Iberian Peninsula) 서안(西岸) 대서양을 면하고 있는 포르투갈은 태주(Taeju/Tajo) 강에 의해 남북으로 양분되는데 스페인에서 흘러들어온 강은 리스본에 이르러 대서양으로 흘러든다.
수도는 리스본(Lisbon)이고 스페인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서쪽과 남쪽은 대서양에 접해 있다.
국토의 중앙에는 2,000m급 에스트렐라 산맥(Serra da Estrela)이 가로놓여 있는데 북쪽에는 스페인의 메세타(Meseta) 고원이, 태주강의 남쪽은 해안 저지대로 기복이 완만한 내륙지대와 어우러져 주로 농촌지대를 이루고 있다. 총면적은 9만 2천㎢ 정도로 우리나라 남한과 비슷하고 인구는 약 1천만이다.
종교는 로마가톨릭이 94%로 가톨릭 국가이고 언어는 포르투갈어,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3천 달러정도.
◆ 포르투갈 약사(略史)
이베리아반도에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5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BC 140년경 로마인들에게 정복당했다가 5세기가 시작되면서 로마 제국이 기울기 시작하자 다시 게르만족이 많은 지역을 점령한다. 그러나 AD 711년 이슬람(무어인)의 침공으로 그리스도교도들은 포르투갈의 북부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빼앗겼으나 1179년, 이슬람세력을 몰아내고 엔히크(Henrique O Navegador)의 통치하에 왕국을 이룩했다. 19세기 초에는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포르투갈 왕실은 1807년 브라질로 망명하는 수모를 당한다.
1821년 브라질에서 돌아온 주앙 1세(Joao I)는 정권을 되찾았으나 정권을 놓고 여야간 갈등이 심화되어 격렬한 내란이 일어나고, 내란은 1834년 끝났지만 정치적인 불안은 계속되어 결국 1910년, 혁명으로 군주제가 전복되고 공화제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공화제 역시 불안한 정치 상황 속에서 수난을 겪다가 1926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이 다시 교체된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1976년 제헌의회는 사회주의로의 이양을 내용으로 하는 헌법을 승인했으며 총선에 따라 연립정부가 구성되었다.
1986년 마리우 수아레스(Mário Soares)가 60년 만에 최초의 민간인 대통령이 되었으며 1991년 재선에 성공했고, 현 대통령은 2016년에 당선된 사회민주당의 마르셀루 헤벨루 데 소자(Marcelo Rebelo de Sousa)이다.
1. 수도 리스본(Lisbon)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Lisbon)은 포르투갈어로 ‘리스보아(Lisboa)’라고 하는데 포르투갈 최대의 항구도시이다. AD 3세기에는 로마, 8세기에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다가 12세기 들어 알폰소 1세(Alfonso I)에 의하여 마침내 해방되었다고 한다. 리스본은 지중해와 북해를 연결하는 중요한 길목으로, 15세기에 들어 활발한 무역이 이루어지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1755년 대지진, 그로 인한 화재와 쓰나미(海溢)로 도시의 2/3가 파괴되면서 리스본의 전성기는 문을 닫는다. 그러나 폼발(Pomball) 후작에 의해 대대적인 복구 작업이 이루어져 오늘의 리스본이 되었다고 한다.
리스본의 볼거리는 리스본 대성당(Lisbon Sé), 제로니무스(Jeronimos) 수도원, 그리고 항구에 있는 벨렝탑(Torre de Belém)과 발견의 탑(Padrão dos Descobrimentos) 등이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이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Lisbon)은 동쪽과 북쪽으로 스페인과 경계를 이루고 있고 서쪽과 남쪽은 대서양에 접해 있다. 이베리아반도(Iberian Peninsula)에 있는 포르투갈은 태주(Taeju/Tajo) 강에 의해 양분되는데 스페인과의 동쪽 국경선 중간 지점에서 포르투갈로 흘러들어 남서쪽으로 흘러 리스본에 이른다.
국토의 중앙에는 2,000m 급 에스트렐라 산맥(Serra da Estrela)이 가로놓여 있는데 북쪽에는 스페인의 메세타(Meseta) 고원이, 태주강의 남쪽은 해안 저지대로 기복이 완만한 내륙지대와 어우러져 주로 농촌지대를 이루고 있다. 1인당 GNP는 서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해마다 1.6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포르투갈을 방문하고 있다고 하며, 이는 포르투갈의 주요 외화 소득원이라고 한다.
포르투갈의 관광자원은 오랜 역사로 인한 문화유적도 많지만 1917년 리스본 북쪽, 파티마(Patima) 인근의 이레네(Irene) 골짜기에서 시골 농부의 자녀들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신 ‘성모발현성지’로 유명한데 로마교황청에서 공식 인정한 뒤 매년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1917년 리스본 북쪽, 버스로 1시간 30분 거리의 농촌마을 파티마(Fatima) 인근의 이레네(Irene) 골짜기에서 시골 농부의 자녀들인 7살 히야신타(여), 9살 프란치스코(남), 10살 루치아(여) 앞에 성모님이 5번이나 나타나서 3가지의 비밀을 일러주신다.
<1>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리스본 대성당
리스본 도시풍경 / 제로니무스 수도원 / 대성당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1498년 ‘바스쿠다가마(Vasco da Gama)’가 인도항로를 개척하여 비단과 향신료가 포르투갈에 쏟아 들어오게 되자 ‘마누엘 1세(Manuel I)’가 그의 부(富)를 과시하기 위해 지었다는 수도원인데 1502년에 착공하여 1672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수도원 안의 성당에는 바스쿠다가마와 시인 카몽스(Luís de Camões)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리스본 대성당은 1147년, 이슬람으로부터 리스본을 되찾은 알폰소(Alfonso) 왕이 세웠는데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때에도 무너지지 않고 견뎌냈다고 하는 유서 깊은 성당이다.
포르투갈은 지금은 비록 선진국 대열에 끼지 못하고 국민소득이 우리나라만도 못하지만 중세 해양대국으로 전 세계에 군림하던 국가였다는 사실을 건물들을 보면 바로 느낄 수 있다.
<2> 발견의 탑(대항해 기념탑)과 벨렝탑(Torre de Belém)
태주강 하구, 대서양이 펼쳐지는 리스본 항구는 바스쿠다가마와 콜럼버스가 대 항해를 떠난 장소로 유명한데 이곳에 세워져 있는 ‘발견의 탑’ 일명 ‘대항해 기념탑’은 범선을 본떠 만든 약 52m의 기념비다.
웅장하게 강변에 서 있는 이 대항해 기념탑은 항해왕자로 불렸던 엔히크 왕자(Infante Dom Henrique de Avis)가 세상을 떠난 지 500년이 되던 해인 1960년에 세운 기념비라고 한다.
발견의 탑 / 맨 앞이 항해왕자 엔히크 / 벨렝탑(Torre de Belém)
엔히크 왕자는 포르투갈 아비스(Avis)가의 왕자였는데 포르투갈 제국 초창기, 대항해시대의 막을 열었던 바스쿠다가마(Vasco da Gama), 콜럼버스(Columbus) 등을 적극 지원하여 ‘항해왕자(航海王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리스본 포구 앞에 강 하구에 세워진 발견의 탑은 뱃머리의 맨 앞에 모형범선을 들고 있는 사람이 엔히크 왕자이고 그의 뒤를 따라 바스쿠다가마, 마젤란, 대항해시대의 왕이었던 마누엘 1세, 천문학자, 지리학자 등 총 30명의 인물들이 부조로 새겨져 있는데 너무나 멋진 조형물이다.
또, 발견의 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벨렝탑(Torre de Belém)이 있다. 이 탑은 마누엘 1세에 의해 1515년에 세워진 탑으로, 원래는 외국 선박의 출입을 감시하는 요새였다는데 이 후,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 때에는 이곳에서 선원들이 왕을 알현하는 장소가 되었고 나중에는 정치범과 독립 운동가들을 가두던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정교하게 조각된 외부 모습은 흡사 작은 궁전을 보는 느낌인데 흐르는 강물 위에 떠있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입장료를 내면 다리를 건너가 탑 위로 올라갈 수도 있고 지하의 감옥으로 쓰이던 방도 볼 수 있다는데 우리는 그냥 외관만 감상하고 돌아섰다.
시내에서 이곳으로 오려면 전철을 타야 하는데 역에서 내리니 그다지 먼 것 같지도 않고 해변을 걷는 것도 멋있을 것 같아서 그냥 걸어갔는데 생각 외로 멀어서 나중엔 짜증이 난다. 날씨도 덥고, 다리도 아프고.... 거의 40분 정도나 걸었다.
2. 성모 발현성지 파티마(Fatima)
파티마 성당 / 루치아, 프란치스코, 히야친타 / 당시 신문 기사
리스본에서 일찍 성모 발현성지 파티마(Fátima)를 가려고 왕복 버스표를 끊었는데 타고 보니 파티마가 종점이 아니고 이튿날 우리가 갈 포르투(Porto)의 중간쯤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아예 배낭을 메고 파티마를 들른 다음 방문이 끝나고 곧바로 포르투로 갈걸....
쓸데없이 다시 리스본으로 다시 갔다가.... 파티마는 버스를 타면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다.
가난한 포르투갈 시골 동네 파티마의 젊은 농부의 자녀들인 7살의 히야친타(Hyacintha), 9살의 프란치스코(Francisco)와 10살의 루치아(Lucia)는 1917년 5월 13일부터 그 이후 10월 13일까지 인근의 이레네(Irene) 골짜기에서 자신을 ‘로사리오의 성모 마리아’라고 밝힌 한 여인을 매달 만났다고 한다.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는 친 남매간이고 루치아는 사촌 간이었다. 3번째로 성모 마리아를 만난 뒤 아이들은 자신들의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직접 성모님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다음 달 10월 13일, 아이들의 말을 확인하려고 신문기자와 7만여 명의 군중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날씨는 시커먼 구름이 온통 뒤덮이고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는데 오후 1시경, 갑자기 비가 그치고 먹구름들이 물러갔으며 태양이 구름을 뚫고 나와 묘한 은빛 원반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루치아가 군중을 향해 태양을 보라고 크게 소리치자 하늘에는 여러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고, 태양이 하늘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으며, 또한 태양이 하늘에 있는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가기 전에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느꼈다고 한다. 이 현상은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수십 km 떨어진 인근 마을의 주민들도 모두 목격하였다. 훗날 수녀가 된 루치아는 성모님과의 만남을 이렇게 회고하였다.
『지금까지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는 매우 아름다운 부인이었다. 그 부인이 입은 옷은 반짝거리는 물이 채워진 수정 유리보다 더 강하고 밝은 빛을 쏟아내는 찬란한 것이었다. 부인이 입은 옷은 발밑에까지 늘어뜨려졌으며 별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나이는 열여섯 살 정도로 보였고,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천상의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인지 생각에 잠긴 듯 슬픔도 비치고 있었다. 가늘고 섬세한 부인의 손은 진주 같은 것으로 엮어진 묵주를 들고서 가슴 부분에서 서로 맞잡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모님의 모습이나 말씀을 들을 수 없었고 오직 세 어린이들에게만 보이고 들렸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주교님도 1930년 10월 13일 세 어린이의 환영목격을 성모 마리아의 출현으로 공식 승인했고 같은 해에 교황은 파티마 순례자들에게 면상(免償)을 주었다.
파티마가 성모발현의 성지로 알려진 후 전국적인 규모의 파티마 성지순례는 1927년에 처음 이루어졌다. 1928년에 바실리카(Basilica/성전)가 건축되기 시작하여 1953년에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65m 높이의 탑 위에는 거대한 청동 왕관과 수정 십자가가 얹혀있고, 성당의 양쪽에는 병원과 피정의 집이 있다. 정면에는 엄청나게 넓은광장이 있는데 한쪽에 자그마한 성모 발현 기념성당이 있다. 이 파티마 성모 발현성지는 기적적인 치유의 은총이 많이 알려졌지만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없다고 한다.
1967년 5월 13일, 성모님 첫 출현 후 50주년 기념일에는 100만 명으로 추산되는 군중들이 교황 파울루스 6세(Paulus VI)가 평화를 기원하며 집전한 미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운집했다고 한다.
2007년에는 파티마에 신자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광장 앞에 추가로 성당을 지었는데 8,5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하며 공사비는 모두 순례자의 헌금으로 충당되었다고 한다.
미사 전 성모님을 모신 가마를 뒤따르는 깃발의 행진과 대성당 모습
마침 우리가 가던 날이 9월 29일 주일이어서 대 광장에서 미사가 봉헌되었는데 광장은 이미 수만 명이 운집하여 발 디딜 틈이 없다.
의자도 없이 모두 맨바닥에 앉거나 서서 미사를 드리는데 신자가 아닌 사람들인 듯 사람 숲을 헤집고 다니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도 있다. 미사를 보는 사람들의 가운데 통로는 묵주를 들고 무릎걸음으로 가는 신자들의 행렬이 끝이 없는데 광장 입구부터 제단 앞까지 200m도 넘을 거리를 수없이 왕복한다. 어떤 이들은 자녀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옆에 따라가며 손수건으로 땀도 닦아주고 비틀거리면 부축도 한다.
또 광장 안쪽에는 초를 봉헌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는데 봉헌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놓을 자리가 없어 옆쪽에 큰 불구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초를 들고 오는 사람들은 그 앞에 이르면 초에 불을 밝히고 기도를 드린 후 불구덩이에 초를 던지는데 시커먼 불꽃과 연기가 엄청나게 치솟는다. 초도 작은 초가 아니고 굵기가 팔뚝만 한, 1m도 넘는 초를 서너 개씩 들고 가는 사람도 있는데 그 행렬이 100m도 넘는다. 나는 간단한 기도로 미사를 마무리하고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3. 중세도시 포르투(Porto)
포르투(Porto)는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280km 떨어져 있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로, 포르투갈(Portugal)이라는 국가명은 고대 로마인들이 포르투를 부르던 ‘포르투스 칼레(Portus Cale)’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포르투의 역사는 기원전부터 시작되는데 고대 로마인들의 정복, 이슬람 세력에 의한 점령, 그 후 국토 회복 운동으로 기독교가 자리를 잡았다. 대항해시대를 끝으로 포르투갈의 화려했던 시대가 저물기 시작했고, 동시에 경제적으로도 고립되면서 포르투의 발전도 멈추게 된다.
포르투는 고대역사도시로 인정받아 1966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도우루(Douro) 강을 사이에 두고 포르투의 역사 지구인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누어진다.
포르투 대성당(Vimara Peres) / 포르투 시청 / 엔히크 왕자 동상(시청 앞)
포르투 대성당은 12세기에 지었는데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건축양식이 혼합된 건물로 언덕 위에 있어 시내와 도우루(Douro)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대성당 앞에 있는 기마상(騎馬像) 주인공은 포르투갈의 영웅 비마라 페레스(Vímara Péres) 동상인데 포르투에서 이슬람 세력인 무어족(Moors)을 몰아낸 백작이라고 한다.
성당 앞 광장에는 꽈배기 모양의 첨탑도 눈에 들어온다. 이 기둥의 이름은 ‘수치의 기둥(Pelourinho Pilloy)’으로 중세 죄인을 묶어두는 기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것은 1940년에 새로 만들어 세운 것이라고 한다. 포르투 시청 앞은 리베르다데(Praça da Liberdade) 광장인데 광장 높은 탑 위에는 한 손을 들고 서 있는 엔히크(Henrique) 왕자 동상이 있다.
<1> 페르난디나(Fernandina) 성곽
Muralha Fernandina 성곽 / 성벽에서 여학생들과 / 리베르다데 광장 / 독립기념 오벨리스크
고색창연한 위용을 자랑하는 페르난디나 포르투 성곽은 로마의 통치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는 2,000년도 넘은 고대 성곽인데 낡아서 보수하여 오늘의 모습으로 탄생한 것은 1376년 페르난도 왕 때라고 한다.
그러나 성벽은 대부분 없어지고 도루우강 옆의 절벽 위에 일부분이 남아있는데 주변 풍경과 어울려 너무나 멋지다.
절벽 아래로는 포르투의 자랑인 ‘동 루이스 다리(Ponte dom Luis)’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다리 부근에서 성벽까지 오르는 등산 열차 푸니쿨라(Funicular)도 있다.
<2> 롤링 여사와 해리포터(Harry Potter)
영국의 작가 롤링(J. K. Rowling: 1965. 7. 31 ~)여사가 쓴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Harry Potter) 시리즈는 유례없는 대히트를 쳐서 롤링여사를 스타덤에 올려놓는데 롤링여사는 젊은 시절 포르투갈에 와서 교사를 하였고 결혼도 이곳 포르투에서 하였다고 한다.
롤링여사는 25세이던 1990년, 처음으로 해리포터 판타지 소설의 모티브를 착상하는데 이듬해인 1991년 이곳 포르투에 영어교사로 취직을 하게 되며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롤링은 결혼도 포르투에서 했는데 결혼 2년 만에 남편과 이혼하고 4개월 된 딸을 데리고 영국으로 돌아오는데 여동생이 살고 있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로 돌아가 전업 소설가로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싱글 맘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롤링여사는 정부로부터 주당 70파운드(약 8만원)의 보조금으로 생활했다고 한다.
그러나 해리포터 시리즈가 영국 불룸즈버리(Bloomsbury) 출판사에서 출판되자 공전의 대 히트를 치게 되고, 모든 출판계 기록을 갈아치웠다고 한다. 작가상과 도서출판 상 등 모든 상을 휩쓴 것은 물론, 전 세계 67개 언어로 번역되어 총 4억 5천만 부 이상이 팔렸다니 놀라운 일이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영화화되어서도 크게 히트를 쳤는데 원래는 어린이들이 읽는 판타지 동화로 썼지만 어른들도 즐겨 읽는 소설과 영화화 되어 또다시 대 히트를 친다.
현재 그녀의 연간 수입은 약 1억 5천만 파운드(2,200억 원),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작가라고하며,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갑부가 되었다.
나는 현직에 있을 때 영어공부를 한답시고 해리포터 시리즈 전작(총 8편)을 모두 영문원서로 읽었는데 정작 한글 번역판은 읽지 못했다. 그 밖에도 작가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3부작도 영문 원서로만 읽었는데 교감시절 선생님들은 내 책상위에 항상 놓여있는 영문원서를 보며 신기하게 쳐다보던 생각이 난다.
우리가 페르난디나 성벽에 갔을 때 마침 대학생들로 보이는 한 무리의 학생들이 성벽 밑에서 어떤 행사를 했는지 끝나서 흩어지고 있었다. 여학생을 붙잡고 잠시 담소를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 해리포터와 관련된 행사를 한 모양인데 영어가 서툴러 설명을 잘 못한다. 검은 옷차림으로 봐서 마법학교 ‘호그와트(Hogwarts)’의 학생 분장인 것도 같고, 포르투갈의 대학생들 전통 교복인 것도 같고... 페르난디나 성벽을 보면 언뜻 해리포터에 나오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마법학교 호그와트(Hogwarts)를 연상시킨다.
또, 롤링여사는 포르투의 렐루서점(Livraria Lello)을 애용했다고 소문이 나서 관광객들로 들끓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보러가지 않았다. 포르투의 레스타우라도레스(Praca dos Restauradores) 광장에는 굉장히 높은 오벨리스크가 서 있고 둘레에는 날개 달린 천사의 모습도 보이는데 포르투갈이 합스부르크가로부터 독립한 것을 기념하는 오벨리스크라고 한다.
<3> 아름다운 일데폰소(Ildefonso) 성당
일데폰소(Ildefonso) 성당 / 푸른 타일 벽 / 아담한 성당 내부
포르투 관광에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성 일데폰소(Igleja de Santo Ildefonso) 성당은 외벽을 장식하고 있는 아줄레주(Azulejo/타일) 벽화로 유명하다. 아줄레주는 채색된 도자기(陶瓷器) 타일(Tile)을 일컫는 말이다. 이 성당은 오래전부터 낡은 성당이 있었다고 하는 기록은 있지만 건축연대에 관한 언급은 없었는데 가장 오래된 언급으로 1296년이라는 기록이 있다고 하니 최소 500년 이상 된 성당이다.
그런데 붕괴의 위험성이 있어 1709년에 헐고 다시 짓기 시작하여 1739년에 오늘의 모습으로 재탄생하였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건물 곳곳에 건축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 이를테면 자물통 하나를 제작한 사람 이름까지도 적혀있는데 정작 건축가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4> 동 루이스(Dom Luis) 다리와 보아비스타(Boavista) 공원
동 루이스 다리 / 시티투어 버스에서 / 렐루(Lello) 서점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어스름 녘에 도심과 강변을 한 바퀴 도는데 강 건너 구도시의 빨간 지붕의 집들이 언덕 위에 옹기종기 있는 모습과 강변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1886년에 완성되었다는 ‘동 루이스 다리(Ponte Dom Luis)’는 2층 구조로 위쪽은 전철 철로가, 아래층은 자동차와 인도교로 되어있는데 둥근 아치 모양이 너무나 멋지다.
도우루강에 놓인 5개의 다리 중 하나인 이 다리는 파리 에펠탑(Eiffel Tower)을 설계했던 구스타프 에펠의 제자 테오필 세이리그(Teophile Seyrig)가 건축한 다리라는데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176m) 다리였다고 한다.
동 루이스(Dom Luis)는 포르투갈이 자랑하는 작가로 본명은 루이스데까모스(Luís de Camões)라고 하는데 16세기,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불멸의 대시인이라고 한다. 그는 포르투갈이 낳은 대항해가(大航海家) ‘바스쿠다가마’가 인도항로를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우스 루시아다스(Os Lusíadas)’(1572)라는 대서사시를 썼다고 한다.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가 몇 번이나 마주친 광장 한가운데 우뚝 솟은 기념탑이 멋지긴 한데 사람 모양도 아니고 형체가 아리송하다. 나중 알고 봤더니 보아비스타(Jadrim da Boavista) 광장이고 탑 위의 조형물은 사자라고 한다.
축 늘어진 날개가 보이는 것은 사자가 독수리 위에 걸터앉은 모양이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19세기,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의 모잠비크(Mozambique)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 전쟁 중 전사한 군인들을 기리는 기념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꼭대기에 있는 조형물은 나폴레옹시대 포르투갈을 지배하던 프랑스를 몰아낸 것을 기념하는 상징물이라고 하는데 위에서 찍어 누르는 사자는 포르투갈을, 밑에 깔려있는 독수리는 프랑스를 상징한다고 한다. ㅎㅎ
포르투 구시가지는 포르투갈에서 ‘포르투 역사지구’로, 유네스코에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포르투는 가는 곳마다 광장이고, 성당이고, 멋진 중세의 건축물들과 가지가지 유적들로 가득 차 있는 매력 넘치는 중세의 도시였다. 포르투갈을 다녀간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면 리스본의 여자도둑 시장(Feria da Ladra), 또 수녀원에서 수녀님들이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는 계란빵 ‘에그타르트(Eggtart)’, 그 계란빵을 파는 과자점이 18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꼭 들러 맛본다고 하던데... 우리는... 그냥 왔다. ㅎ
보아비스타(Jadrim da Boavista 광장) / 성 삼위일체의 성당 / 또 멋진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