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리스도의 제한 속죄 (Limited Atonement)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해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할 의도로 죽으셨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확실히, 선택받은 사람들만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자신의 속죄 사역의 혜택을 실제로 누리게 될 사람만을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습니다.
이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으로는 마태복음 1장 21절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요한복음 10장 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이사야 53장 6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디도서 2장 14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데살로니가전서 1장 10절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라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위 구절들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그 목숨까지 버리신 사람들을 매우 명확히 한정시켜 묘사하는 방식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ex) 그의 양(요10:11,15) 그의 교회(행20:28; 엡5:25-27) 그의 백성(마1:21) 택하신 자들(롬8:32-35)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이 구원관을 반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은 그리스도는 비록 모든 사람이 구원받지는 않겠지만, 가능한 모든 사람들을 예외없이 구원하려는 목적에서 죽으셨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견해의 전제는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분들의 주장대로라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으셨는데, 그 결과는 그렇지 못하다고 할 때는 예수님의 구속의 효력이 실질적이지 않고 그냥 상징적일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죽음과 부활을 통해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해주셨는데, 결과적으로는 구원받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완전한 것이 아닌 반쪽짜리가 되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장을 하는 분들은 여러 가지 성경의 구절을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구절은 요한복음 1장 29절에 나오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는 말에서의 ‘세상’을 근거로 듭니다. 이 외에도 요3:16; 6:33,51; 롬11:12,15; 고후5:19; 요일2:2에 나오는 ‘세상’이라는 말에 근거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세상’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적으로 ‘세상’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눅2:1; 요1:10; 행11:28; 19:27; 24:5; 롬1:8; 골1:6), 위 구절들에서 사용된 ‘세상’이라는 단어는 ‘인류를 구성하는 모든 개인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 단어를 사람에 대해 사용할 경우에도 항상 모든 사람들을 포괄하는 것은 아닙니다(요7:4; 12:19; 14:22; 18:20; 롬11:12,15).
이 외에도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다는 구절들(롬5:18; 고전15:22; 고후5:14; 딤전2:4,6; 딛2:11; 히2:9; 벧후3:9)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 구절들은 문맥에 비추어 고려되어야 합니다. 예컨대, 로마서 5장 18절; 고린도전서 15장 22절의 ‘모든’은 아담 안에 있는 사람들과 대비하여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만을 포함합니다. 만일 이 구절들의 ‘모든’을 한정된 의미로 해석하지 않을 경우, 본문은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가능케 하셨을 뿐 아니라 실제로 예외없이 전부 구원하신다는 의미가 됩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5장 14절; 히브리서 2장 9절에서의 ‘모든’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이 구절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 즉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외에도 디모데전서 2장 4-6절; 히브리서 2장 9절; 베드로후서 3장 9절에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모두 구원받기를 원하는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관해 언급하고 있지만, 보편적인 속죄 의도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함축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제한 속죄를 부인하는 분들은 제한 속죄를 부인하고 보편 속죄를 말해야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더욱 값지게 만들 것이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반대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는데 실제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 버리면 예수님의 능력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으심으로 구원얻기로 하신 모든 사람을 다 구원얻게 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 중 단 한 사람도 예외없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입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영원 전에 선하시고 기뻐하신 뜻에 따라 당신의 백성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확실히 유효하며 인간의 행위로 인해 좌절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써 인간을 구원하려는 계획 역시 마찬가지이다. 만일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다면, 이 목적은 인간의 불신앙에 의해 좌절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오직 제한된 수효만이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유일한 자들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라고 하는 말은 마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부족함이 있었다는 듯한 오해의 가능성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특별한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음과 그리스도께서 개인적으로 그들을 일일이 다 알고 계셨고 그들을 염두에 두고 속죄의 사역을 이루셨음을 의미하는 ‘특별 구속’(particular atonement)이라고도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