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 썬더스
이팀만큼 기쁨과 슬픔의 역사가 깊은 팀도 없을 것이다.
영웅의 등장과 퇴장, 우승, 슈퍼스타의 이적 등
역사에 길이 남을 이슈를 많이 양산해냈던 그들.
History 세번째 페이지는 삼성 썬더스의 몫이다.
97시즌(6승 15패 정규리그 8위)
어둡기만 했던 원년시즌
삼성전자는 비록 농구대잔치에서 1988년 이후 한번도 정상에 등극하지 못했지만
'전국구 스타' 김현준, 문경은, 이창수 등을 앞세워 줄곧 좋은 성적을 유지하며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연고지를 수원으로 배정 받으며 수원 삼성 썬더스라는 이름으로 프로무대에 참가한 삼성.
하지만 이들의 프로 첫시즌은 아마추어무대의 영광을 이어가기엔 전력이 너무나도 빈약했다.
팀 전력의 알파요 오메가였던 문경은의 군입대 공백을 메꾸지 못했던 것.
김희선과 강양택이 올스타전에 참가할 정도로 근성 있는 플레이로 팬들의 이목을 끌었지만
선수층이 빈약했고 용병농사마저 낙제점을 면하기 어려웠다.
올스타전 사상 첫 덩크 컨테스트 우승자였던 빈스 킹과 케빈 비어드는 각각 평균 24.8득점, 22득점을 기록했지만
수비력이 형편 없었고 삼성의 골밑은 상대팀의 놀이터와도 같았다.
8개팀중 6개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6위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라이벌 현대(현KCC)와의 꼴찌 다툼에서도 패하며 '프로사상 첫 꼴찌팀'이라는 불명예를 안으며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97-98시즌(17승 28패 정규리그 9위)
모래알 조직력
97-98시즌은 구단 관계자나 팬들 모두 기대해볼만한 시즌이었다.
문경은·김승기가 전역을 명 받으며 팀에 돌아왔고 용병 드래프트에서 최대어로 꼽히던 존 스트릭랜드를 지명하며
화려한 비상을 꿈꿔볼만한 전력을 갖췄지만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신생팀 SK의 바로 윗순위였던 9위로 시즌을 끝마쳤다.
시범경기에서부터 조직력이 맞지 않아 삐걱거리던 팀은 시즌 개막전 최경덕 감독을 경질시키며
김현준 감독대행체제로 시즌을 맞이하였지만 시즌내내 엉망인 조직력은 삼성의 발목을 잡았다.
문경은이 평균 24.9득점 3.7개의 3점슛으로 고군분투했지만
용병과 토종선수들의 불협화음까지 장기인 깔끔한 3점슛처럼 처리해내진 못했다.
스트릭랜드는 나름 제 몫을 해줬지만 코트 밖에서의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코칭스탭과 불편한 사이를 이어나갔고
팀 역시 '현주엽 드래프트'로 불릴만했던 1998신인 드래프트에서 현주엽을 지명하기 위해
1998년 2월 26일 SK와의 경기에서 3쿼터까지 97:75로 앞서던 경기를
4쿼터에만 51득점을 헌납하며 패, '고의성 패배' 의혹을 받으며 연맹과 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삼성은 '1등주의' 삼성그룹의 모티브를 크게 벗어나며 그렇게, 힘든 두시즌을 보내야만 했다.
98-99시즌(25승 20패 정규리그 6위/플레이오프 4강)
부활서시곡
두시즌동안 팀이미지에 먹칠을 한 삼성은 98-99시즌 개막을 앞두고 대대적인 변화에 나섰다.
원년시즌 SBS(현KT&G)의 감독을 역임하며 팀을 정규리그 준우승으로 이끈 김동광 감독을 새로이 감독으로 영입했고
김동광 감독을 보좌할 코치진에는 김현준·전창진 라인을 앉혔다.
무엇보다도 큰 수확은 프로 최초의 신인상 수상자인 주희정을 영입하는데 성공한 것.
97-98시즌 팀을 하나로 만드는데 실패했던 삼성은 주희정을 통해 조직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비이기적이었던 버넬 싱글턴·이슈아 벤자민을 영입한 것도 호재였다.
탄탄한 전력을 갖춘 삼성은 시즌 개막후 두달여동안 1위를 고수하며 과거의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신은 삼성에게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
팀 전력의 핵심인 싱글턴이 발목부상을 당하며 장기결장이 불가피하게 된 것.
브라이언 힐을 부랴부랴 공수해왔지만 주희정과의 호흡이 맞지 않으며
쌓아온 승률을 조금씩 깎아먹던 삼성은 어느덧 6위까지 순위가 미끄러지게 되었다.
하지만 싱글턴이 돌아온 플레이오프에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었다.
창단후 최고의 성적을 올리며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대우를 6강에서 만났지만
카를로스 윌리엄스 봉쇄 작전과 선수들의 유기적인 팀플레이가 어우러져 4강 진출에 성공한 것.
문경은이 천적 김영만에 막히며 기아(현모비스)를 넘지 못하고
챔프전 진출에 실패했지만 충분히 다음시즌을 기대해봄직한 마무리였다.
99-00시즌(23승 22패 정규리그 3위/플레이오프 4강)
스타를 떠나보내다
99-00시즌 개막에 앞서 삼성은, 아니 한국농구계는 불의의 사고로 슈퍼스타를 하늘로 떠나 보내게 된다.
1999년 10월 1일 김현준 코치가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하며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인생을 마감하게 된 것.
삼성은 고인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우승을 달성하겠다는 일념으로 시즌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98-99시즌 맹활약했던 싱글턴과는 일찌감치 재계약을 체결했고 다양한 공격루트와 기동력을 겸비한 G.J 헌터를 영입하였다.
또한 신인드래프트에서는 강혁을 지명하며 국내선수진을 강화하며 시즌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장밋빛 시즌 전망과는 다르게 성적은 3위에서 6위까지, 롤러코스터 같은 행보를 이어나갔다.
조니 맥도웰·로렌조 홀, 서장훈·재키 존스 등 트윈타워를 앞세운 팀들에게는 제공권에서 한계를 드러냈던 것.
하지만 삼성은 주희정이 골드뱅크(현KTF)와의 경기에서 12득점 10리바운드 15어시스트로 생애 첫 트리플-더블을 작성하는 등
시즌 막판 스퍼트를 올려 현대·SK에 이어 3위로 시즌을 마감, 2년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뤄내는데에 성공했다.
6강에서 부상 당한 주희정을 대신해 선발 출전한 강혁의 맹활약을 앞세워 기아를 꺾고 4강에 오른 삼성의 상대는 SK였다.
주희정의 공백이 오래가며 강혁의 '약발'은 한계를 드러냈고 가뜩이나 높은 서장훈·존스라는 트윈타워에
로데릭 하니발까지 흔히들 표현하는 '크레이지 모드'에 돌입하며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주전가드의 부상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2년연속 4강에 진출한 성적은 충분히 성공적이었다고 할만한 성적이었다.
00-01시즌(34승 11패 정규리그 우승/플레이오프 우승)
MAC-ATTACK KBL을 강타하다
2000년 KBL은 "1인 최대 208cm, 2인 도합 398.78cm"라는 새로운 용병 신장안을 발표하였다.
기동력과 높이를 갖춘 센터+장신 포워드의 조합이 가능해지자 삼성은 과감히 싱글턴과의 재계약을 포기하였다.
그 후 참가한 용병 드래프트에서 '제2의 맥도웰'로 불리던 아티머스 맥클래리와
99-00시즌 동양(현오리온스)에서 활약했던 무스타파 호프를 지명하며 SK 부럽지 않은 포스트진을 구축하게 되었다.
여기에 신인드래프트에서 고려대 출신의 이규섭을 전체 1순위로 팀에 합류시키는 등
플레이오프 진출 이상의 성적을 노려볼만한 전력을 꾸렸다.
시범경기 통산 1호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던 맥클래리는 정규리그에서도 자신의 위용을 과시했다.
내·외곽을 오가는 득점루트와 기동력을 갖춘 맥클래리, 호프의 보드 장악, 문경은의 지원사격 등이 조화를 이룬 삼성은
1라운드를 8승 1패로 마감하며 일찌감치 선두자리를 예약해두었다.
시즌내내 안정적인 전력을 과시하던 삼성은 정규리그 잔여 세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 지으며
창단 첫 4강 직행을 일궈내며 편안한 마음으로 4강 플레이오프를 준비하게 되었다.
4강에서 SBS를 가볍게 제압하고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삼성의 상대는 공격농구로 중무장한 LG였지만
제공권에서 삼성과 대등한 싸움을 벌였던 SK가 아닌 LG가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것은 삼성에 반가운 일이었다.
당시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모 언론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8명의 전문가 모두가
삼성의 압승을 예상할 정도로 삼성과 LG의 전력차는 컸다.
막강한 조직력을 앞세운 삼성은 LG에 한경기만 내주었을 뿐 시리즈 내내 LG를 압도,
창단 첫 우승의 기쁨을 누리며 우승컵을 김현준 코치의 묘지에 가져갈 수 있었다.
정규리그에서 조성원에게 MVP를 내준 주희정은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하며 자신의 전성시대를 예고하기도 했다.
01-02시즌(24승 30패 정규리그 8위)
정상은 오르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삼성의 프랜차이즈스타였던 문경은과 맞트레이드 되어 합류한 우지원이
문경은의 공백을 메꿔줄 것으로 기대했던 삼성의 바램은 무너지고 말았다.
SK와 함께 잠실 실내 체육관으로 연고지를 이전한
삼성은 문경은의 이적과 강혁의 군입대로 전력에 구멍이 생겼다.
디펜딩 챔피언의 저력을 앞세워 2연패에 도전하였지만
그 누군가의 말처럼 정상은 오르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려웠다.
맥클래리는 상대팀들의 집중견제에 자제력을 쉽게 잃으며 무너졌고
호프 또한 예년의 블루워커 역할을 망각하며 팀 조직력을 흐려놓는 플레이로 김동광 감독을 화나게 했다.
주희정의 활약은 여전했지만 주희정을 보좌해주던 강혁의 부재가 아쉬웠고
우지원은 승부처에서 문경은만큼의 무게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설상가상 맥클래리가 부상을 당하며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자 삼성의 조직력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결국 삼성은 전년도 챔피언임에도 해당시즌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1호팀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는 02-03시즌 삼성이 배수의 진을 치고 전력을 정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02-03시즌(28승 26패 정규리그 5위/플레이오프 6강)
국보급 센터의 입성
01-02시즌의 수모를 씻기 위해 삼성은 FA최대어였던 서장훈을 영입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고
결국 서장훈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서장훈을 영입하며 내준 벤치 자원들은 많았지만 노련한 서장훈이 V2를 가져다 줄것이란 기대는 대단했다.
하지만 삼성의 기대는 시즌 개막도 하기전에 엉뚱한 곳에서부터 이상 기류를 보이기 시작했다.
용병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카를로스 윌리엄스가 거짓말 같게도 시즌에 임하기도 전 살해당하고 만 것.
대체용병 인선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 삼성은
아비 스토리·스테판 브래포드로 용병 인선을 마무리하였지만 두 선수는 노련미가 부족했다.
서장훈은 시즌 중 "능력은 있지만 경험 부족을 자주 드러낸다"며 두 선수의 기량 외적인 면에서 아쉬움을 토로했고
이규섭마저 입대하자 삼성의 외곽은 상당히 부실해졌다.
김희선이 그 자리를 채워줬어야 했지만 김희선은 기복이 심했고 주희정의 기동력도 서장훈을 만나 한풀 꺾인 모습이었다.
설상가상 서장훈도 족저근막염에 걸려 완벽한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했다.
결국 삼성은 '헝그리 정신(그들은 이렇게 불리길 거부했지만)'을 앞세운
코리아텐더 4강 돌풍의 희생양이 되며 6강에서 씁쓸하게 체육관을 떠났다.
03-04시즌(28승 26패 정규리그 5위/플레이오프 6강)
또다시 4강 신화의 희생양이 되다
강혁의 제대, 신인 박종천·이현호의 합류 등으로 부족한 점들을 보완하며 03-04시즌을 의욕적으로 준비한 삼성.
서장훈이 "그간 KBL에서 뛰었던 정통센터 중에선 최고"라고 극찬한 데릭 존슨과
과거 SK에서 영광을 함께 했던 로데릭 하니발이 용병으로 합류하는 등
표면적으로 그들은 약점을 모두 보완한 전력을 갖추게 되었다.
실제로 삼성은 1라운드에서 단 한번만 패했을 뿐 8승을 쓸어담으며
우승을 차지했던 00-01시즌처럼 시즌초부터 선두로 치고 나갔다.
하지만 존슨의 태업과 기동력·외곽슈터 부재·얇은 벤치라는 약점들이 어우러져
2라운드부터 기복을 보이던 삼성의 순위는 어느덧 중위권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안드레 페리가 영입되며 다시 힘을 내는가 싶었지만 이번엔 서장훈이 부상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서장훈의 공백을 이현호가 나름 분전하며 메꿔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6강에서 앨버트 화이트·문경은·제이슨 윌리엄스라는 삼각 편대를 앞세운
전자랜드의 창단 첫 4강 플레이 오프 진출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1년전 코리아텐더와의 일전때와 마찬가지로,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록의 희생양이 되고 만 것이다.
04-05시즌(27승 27패 정규리그 5위/플레이오프 4강)
세시즌 연속 5위
김동광 체제의 한계를 느낀 삼성은 오랫동안 김동광 감독을 보좌했던 안준호 감독을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하며 새 판을 만들었다.
이규섭이 제대하여 2001 우승 트리오 주희정·강혁·이규섭이 다시 뭉쳤고 서장훈도 명예회복을 다짐했다.
하지만 자유계약제도가 도입되어 입맛에 맞는 용병을 영입할 수 있었음에도 삼성 프런트진의 안목은 수준 이하였다.
서장훈을 보좌해주는 역할을 맡겼던 바카리 헨드릭스는 평균 16.9득점 9리바운드라는 표면적인 기록 외에
박스-아웃, 팀 전술 이해도 등에서 기대치에 한참 미치지 못했고
드숀 헤들리는 한번도 두자릿수 득점을 얻어내지 못하며 평균 6.3득점 3.3리바운드를 기록,
헤들리의 기량을 믿어 의심치 않던 안준호 감독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47득점의 커리어-하이를 기록하는 등 헤들리와 비교했을 때 이름 그대로
활동반경의 '스케일'이 달랐던 대체용병 알렉스 스케일의 활약 덕분에
삼성의 외곽이 약하다는 평은 수그러들었지만 "주희정-서장훈 조합은 애초부터 실패였다"는 평은 수면 위로 올라왔다.
헨드릭스를 대신해 합류한 자말 모슬리는 부지런한 움직임과 성실함이 강점이었지만 팀 전력을 크게 상승시키진 못했다.
결국 시즌 내내 어정쩡한 팀칼라만 보여주던 삼성은 그들의 그 어정쩡한 팀칼라대로
어정쩡한 순위인 5위에 다시 한번 랭크 되었다.
골드-트리오 중 한명이었던 게이브 미나케가 부상으로 시리즈에 뛰지 못하게 되었던 KTF를 6강에서 제압하긴 했지만
김주성·자밀 왓킨스의 무시무시한 트윈타워를 앞세운 TG삼보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
서장훈 효과를 누리지 못한 채 서장훈 영입 후 세번째 시즌을 마감하였다.
05-06시즌(32승 22패 정규리그 준우승/플레이오프 우승)
잠실벌을 수놓은 우승축포
04-05시즌 용병농사에서 낭패를 본 삼성은 그 어느 부분보다도 용병 영입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04-05시즌 오리온스에서 뛰며 평균 28.7득점으로 득점왕에 오른 네이트 존슨과
중국리그에서 활약하며 한·중 프로 올스타전에서 크리스 랭을 상대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Double O" 올루미데 오예데지라는 이상적인 용병 라인업을 구축했다.
무엇보다 성공적인 선수영입은 서장훈과 인상적인 팀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던
주희정을 내보내며 이정석을 수급한 것이다.
드디어 서장훈 중심의 농구를 할 수 있게 된 삼성은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선수들이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내며 시즌내내 상위권을 유지하였다.
서장훈의 득점은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평균 20득점대 아래(19.67득점)로 내려갔지만
서장훈은 프로 데뷔 이후 두번째로 정규리그 MVP를 수상하였다.
존슨과 오예데지는 서장훈의 뒤를 잘받쳐주었고 이규섭은 식스맨으로서
짧은 출장시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나갔다.
오랜만에 6강을 건너 뛴 삼성이 4강에서 만난 상대는 리 벤슨 영입 이후 상승세를 타고 있던 오리온스.
오리온스는 김승현과 오용준의 맹활약속에 동부를 제압하고 4강에 올라왔지만
그들에게 삼성을 상대할 힘이나 여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존슨은 친정팀을 만나 3차전 2쿼터에만 25득점을 쓸어담는 괴력을 과시하며 맹활약했고
주전들의 고른 활약속에 삼성은 세 경기만에 오리온스와의 4강전을 마무리하였다.
서장훈 시대 이후 처음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삼성의 상대는
조직력을 앞세워 시즌 내내 돌풍을 일으킨 정규리그 우승팀 모비스.
하지만 삼성은 그들이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던 2001년의 챔피언결정전만큼 전문가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실제로 시리즈 내내 모비스는 서장훈·오예데지·존슨이라는 트리플 타워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또 그간 식스맨 색깔이 강했던 강혁은 공수에서 안정 된 기량을 과시하며
팀을 사상 첫 퍼펙트 우승(7전 전승)으로 이끌어 챔피언결정전 MVP 투표에서 70표중 40표를 받으며
챔피언결정전 MVP로 등극하기도 하였다.
06-07시즌(29승 25패 정규리그 5위/플레이오프 6강)
서장훈 시대를 마감하다
삼성은 퍼펙트 우승을 일궈 낸 우승전력을 고스란히 가져갔다.
존슨·오예데지와 무난히 재계약을 체결했고 서장훈은 삼성과의 FA계약 마지막 시즌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우승이었다고 해도 변화 없이 챔피언 자리를 사수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모비스는 제공권 싸움에서 완패하자 크리스 버지스라는 특급 센터를 영입하였고
LG는 '한국형 용병' 찰스 민렌드를 데려오며 안정된 전력을 구축하였다.
나이젤 딕슨과의 재계약에 실패한 KTF는 필립 리치를 영입하며 전화위복에 성공하였고
오리온스는 스페인 리그 최고의 용병으로 꼽히던 득점기계 피트 마이클을 영입하였다.
이렇듯 다른 구단들은 분주히 시즌 준비에 여념이 없었지만 삼성은 위에도 언급했듯
전력에 칼을 대지 않았고 상대팀들의 집중견제속에 승수를 쉽게 쌓아가지 못했다.
서장훈·이규섭이 아시안게임에 차출되었을때 강혁·이정석·이원수라는 쓰리가드 시스템으로 재미를 보긴 했지만
국가대표의 합류 이후 계속되는 상대팀들의 집중견제에 무너지며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지 못했다.
워낙 중위권과 하위권의 격차가 커 플레이오프 진출은 어렵지 않게 달성했지만
삼성이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오리온스는 1년전의 한풀이라도 하듯 삼성을 몰아부쳤고
역대 플레이오프 한경기 최다득점 타이기록(47득점)을 세운 마이클의 활약에 2년 연속 우승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서장훈과 삼성의 인연은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07-08시즌(32승 22패 정규리그 3위/플레이오프 준우승)
가드 가드 가드
FA계약기간인 5년을 채운 서장훈과 FA협상 테이블에 앉은 삼성은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하였다.
사실 06-07시즌, 아니 그 이전부터 줄곧 이적설이 제기되어 왔던 서장훈이었기에 협상 결렬이 충격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시선은 서장훈이 과연 영입의향서를 제출한 모비스, 전자랜드, KCC 중 어느 팀을 선택할 것이며
삼성이 보상선수로 손에 넣을 선수는 누구인가로 향했다.
결국 서장훈은 대학선배 이상민이 있는 KCC의 줄무늬 유니폼을 입기로 결심, 임재현과 함께 전주에 입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기가 막힌 일이 KBL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KCC가 서장훈·추승균·임재현을 보호선수로 묶어놓은 것이다.
삼성의 과거 라이벌이었던 현대 이미지가 강하긴 했지만 삼성이 전국구 스타 이상민을 놓칠 리 없었다.
'눈물의 이적 기자회견', 은퇴설 등 그리 좋지 않은 모습으로 삼성 유니폼을 입은 이상민이었지만
시즌에 임하자 '회춘'이라는 표현에 어울리는 활약을 펼치며 삼성의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상민 영입과 함께 높이에서 스피드로 팀 색깔을 바꾼 삼성은
이상민과 더불어 06-07시즌 FA대박을 터뜨린 강혁과 2년차를 맞아 기량이 일취월장한 이원수,
안정적인 게임 리딩을 앞세운 이정석을 앞세운 '가드 농구'로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다.
오랜만에 부활한 용병드래프트에서 뽑은 테런스 레더는 평균 22.1득점 12.5리바운드(전체 1위)로 골밑을 사수했고
햇수로 4년만에 대체용병으로 KBL로 돌아온 빅터 토마스는 예전과 같은 폭발력을 앞세워 팀에 힘을 보탰다.
예상을 뛰어넘는 선전으로 3위에 오른 삼성은 시즌 막판 자신들을 6강에서 만나기 위해
일부러 경기에서 패하며 6위로 올라온 LG와 6강 플레이오프를 가졌다.
삼성은 1차전에서는 이상민(17득점 3점슛 3개)이, 2차전에서는 레더(34득점)가 활약하며 손쉽게 LG를 물리쳤다.
삼성이 LG를 넘어 4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팀은 KCC.
서장훈·브랜든 크럼프의 위력적인 포스트진과 내외곽을 휘젓고 다녔던 제이슨 로빈슨을 앞세운 KCC의 신승이 예상되었지만
삼성은 이상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친정팀을 상대로 맹활약,
6강 플레이오프를 포함해 단숨에 5연승을 내달리며 구단 창단 30주년을 맞이하여
통산 세번째 챔피언결정전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원주 치악산에 있는 호랑이를 잡으러 왔다.", "안 감독님은 개그 프로그램에 나가는게 좋겠다." 등
양팀 사령탑의 장외혈전으로도 뜨거운 관심을 모은 동부와 삼성의 챔피언결정전은 관심과는 달리 싱겁게 마무리 되었다.
높이와는 반비례하는 기동력을 갖고 있던 KCC에 비해 공·수,
제공권·기동력 모두에서 안정된 전력을 과시한 동부에 삼성이 1승 4패로 무너지며 챔피언결정전 사상 첫 패배를 맛보게 된 것.
비록 통산 세번째 우승컵을 따내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그들이 보여준 '가드 농구'는
훗날 07-08시즌을 되돌아 볼 때 많은 농구팬들에게서 회자될 것이다.
첫댓글 음 04-05시즌 팀성적 상승의 일등공신을 모슬리로 보는데 전 ㅋㅋ 다소 서장훈에게 부족했던 오펜스리바와 블록을 도맡았죠 개인적으론 가장 맘에 든 시즌이었습니다 스케일 보고싶네용
5위를 주로햇던 삼성 ㅠㅠ
상민옹 따라 썬더스로 이민 온지라 잘 몰랐는데 잘보고 갑니다 ~ 올시즌엔 꼭 우승햇음 좋겠네요
대단한 삼성광이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졸지에 삼성팬이 되버렸네요^^;;
잠실에 자주가다보니 삼성팬이 되었어요.. 이상민선수따라 KCC에서 저절로 삼성으로~~ ㅎㅎ
농구를 좋아한지 1년 밖에 안되서 예전 이야기는 잘 몰랐는데 이제 제가 좋아하는 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잘봤습니다 ㅋㅋ
우워^^; 잘봤습니다.
04-05부터 삼성 농구를 보기 시작해서, 그 이전 이야기는 잘 몰랐는데, 흥미롭네요
잘 봤습니다....역사가 느껴 지네요..
삼성 팸게시판에 가져갈게요. 감사히 보겠습니다.
저도 사실 KCC 팬이였는데 상민 횽 때문에 삼성으로.. ㅋㅋ;; 확실히 삼성은 이상민 덕택 심하게 받았죠.. 특히 주말에도 늘 많은 자리가 비어있던 잠실 실내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거의 꽉 차는.. ㅎㄷㄷ;; 티켓 구하기 되게 힘듬.. 인터넷으로 예매 안하면 볼 수가 없어요.. ㅠㅠ
공짜표도 없어졌죠 ^^
잘 읽었습니다..
잘 보았습니다.저두 삼성팬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