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해, 장가계 원가계, 계림 여행기
올해같이 유난히 무더운 여름에 방학을 이용하여 8월 9일부터 8월 13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중국의 상해, 장가계 원가계 및 계림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사는 하나투어를 선정하였고 여행경비는 789,000원에 팁은 1박 1인 10불로 40불정도였다.
다음에 여행하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여기 여행기를 써 보았으니 혹시 이쪽 방면을 여행하는 사람은 참고하기 바란다.
2004년 08월 9일(월요일)
15시 5분 광주공항 출발 상해행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13시 30분에 광주공항에 도착하였다. 여행사 직원의 안내로 부칠 화물을 맡기고 간단한 여행 안내를 받았다.
간단한 수속을 마치고 15시 5분 광주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 10여분만에 상해 포동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포동국제공항의 규모는 우리나라 인천공항정도의 엄청난 규모로 큰 최신에 건설된 공항이었다. 중국은 우리보다 1시간이 늦어 시계의 분침을 1바뀌 돌려 조정을 하였다. 그곳 날씨도 우리나라 제주도보다 더 남쪽답게 무척이나 더웠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첫 여행지인 외탄을 향하였다.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도로중앙의 화단은 가히 대국 중국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도로 중앙분리대에 폭이 4-5미터도 더 되는 넓이에 반복되는 무늬로 끊김없이 관목들을 빽빽이 심어 놓았으며 도로가에도 협죽도, 쥐똥나무 등으로 식재를 아주 잘해 놓았다. 시내에 들어서니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똑 같은 모양이다. 거리는 오가는 사람들로 초만원이었고 거리의 차는 쉴 새 없이 지나갔다. 특히 삼성의 간판이 눈에 띄었는데 한 두군데가 아니었다. 외국에서 본 우리나라의 간판은 언제나 뿌듯했다. 삼성, LG, 현대, 대우 등 말이다. 원래는 야경을 봐야 하는데 냉방시설의 풀 가동으로 전기사정이 좋지 않아 외탄거리의 건물들이 절전을 하느라고 야경을 볼 수가 없기에 그냥 황포강의 강둑에서 주위의 건물 구경을 하였다.
상해항이 개방되면서 외국 문물이 들어오며 지어졌다는 각양 각색의 외국풍 건물들이 건물 전시장처럼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저 건물들이 은행들로 주로 사용된단다. 중국 사람들은 절약정신이 아주 강해 은행에 많은 돈들을 저축해놓고 산단다. 황포강 건너편에는 높이 486미터의 동방명주탑이 우뚝 서 있었고, 420미터의 88빌딩이 떡 버티고 서 있으며 황포강에는 갖가지 배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으며 우리처럼 강둑에서 이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기념사진을 몇 컷하며 구경을 하고 석식을 위하여 한 식당으로 향하였다. 그곳 식당은 밥을 먹으면서 쇼를 구경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춘 식당이었다. 노래와 춤을 추며 식사하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22시 장가계행 비행기를 타기 포서공항으로 향하였다. 가면서 가이드는 중국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을 해주었다. 중국은 13억의 인구중 92%의 한족이 12억을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8%는 55개의 소수민족으로 1억을 차지 한다고 했으며, 실제 인구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하였다. 포서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간단한 수속을 받고 22시 비행기를 타고 장가계로 향하였다.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본 상해시는 2000만 도시답게 엄청난 넓이의 도시였다.
0시경 장가계시에 도착한 우리는 마중나온 현지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약 40분간의 버스를 타고 장가계 원가계가 있는 무릉원구로 향하였다. 포장이 된 도로치고는 너무나 협소하
■ 상해 외탄거리에서 본 동방명주탑과 88빌딩 및 은행건물들
고 바닥이 울퉁불퉁하여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기분으로 덜커덩거리며 달렸다. 그나마 곳곳에 도로공사를 하는 곳이 많아 이리 조리 피하며 달렸다. 무사히 4성호텔인 천자대주점에 도착하여 방 배정을 받고 여장을 푼 뒤 내일의 여행을 위해 샤워를 하고 휴식을 취하였다.
2004년 08월 10일(화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호텔주위를 운동삼아 걸어봤다. 멀리 보이는 주위의 희미한 산들이 장가계 원가계 풍경구인 모양이다. 길을 따라 걸으니 이곳이 중국인지 한국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로 한글간판이 많다. ‘발맛사지’ ‘참깨 판매’ ‘참깨 기름 짜 드립니다.’ ‘한국관’ ‘보봉호텔‘ ‘보신용 식품 판매’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등이다. 냇가를 따라 야시장터를 가 보았다. 아침에는 장사를 하지 않았는데 이곳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낮에는 주로 낮잠을 자고 밤에 활동을 많이 한단다. 그래서 이곳 야시장은 장사가 잘 된다고 하였다. 철망안에는 닭, 오리, 토끼, 너구리, 뱀, 개구리, 메기, 우렁, 거북, 가재, 자라 등도 있으며, 팔다 남은 연기에 그을린 고기덩어리가 즐비하게 걸려 있었다. 호텔에서 뷔페식으로 아침을 간단히 먹고 반자연 반인공의 거대한 호수인 보봉호로 향하였다. 우리를 처음 반긴곳은 인공폭포였다. 보봉호의 물을 끌여들여 만들었다는 인공폭포였다.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도록 구름다리며 사진촬영대를 만들어 놓았다. 보봉호를 가기위하여 오르는 길에 원숭이가 떡 버티고 앉아 우리를 맞아주었다. 보봉호에 도착하여 잠깐 땀을 식히며 주위 환경을 보니 깍아 지른듯한 바위가 주위에 병충처럼 둘러져 있었다. 잠시 후에 유람선이 와서 우리는 유람선에 올라 주위를 감상하며 유람을 하였다. 가는 도중 우리가 박수를 쳐주면 멋들어진 아가씨가 배속에서 나와 멋진 한가락의 노래를 불러 주었다. 물색깔이 맑았으면 좋겠는데 고인물이어서인지 녹조가 낀 것처럼 파랬다. 배가 도착한 곳에는 멋있는 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곳에 사는 토가족들이 나와서 민속공연을 하며 관광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고 있었다. 보봉호를 관람하고 오르던 길과는 반대의 협곡을 막은 곳에 낸 길로 내려오는데 내려오는 계단이 장난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곳에 이런 계단을 만들었을까 얼마나 힘들여서 만들었을까 생각이 되었다. 계속 내려오니 아까 지나가던 인공폭포 아래로 내려왔다. 기념사진을 몇컷 하고 점심을 먹기 위하여 식당으로 향하였다. 중국음식이 대체로 모든 것을 기름에 볶아 놓는데 느끼하기도 하지만 한국사람들이 하도 많이 오니까 김치도 나오고 깍두기도 나오고 가져간 고추장이며 마늘쫑이며 김 등과 곁들어 먹으니 먹는 것은 아무 지장이 없었다.
점심을 먹고 버스를 타고 장가계 자연풍경구인 무릉원을 향하였다. 매표플 한 뒤 우리나라의 공중전화 카드같은 것을 하나씩 나눠 주었는데 입장료는 약 4만원 정도로 이틀간 사용가능하다고 하였다. 입장시 카드를 넣고 지문을 찍으면 컴퓨터가 인식하여 다음날 다시 입장시 같은 사람인가를 확인한다고 하였다. 입장하면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다가 관광객이 오는 쪽쪽 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곳으로 계속 실어 날랐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멀리 보이는 장가계 원가계의 산 경치는 정말 가관이었다. 난 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였던 설악산을 학생들을 인솔하여 8번 가면서 대관령으로 3번, 한계령으로 5번을 가보면서 지금도 다시 가보고 싶은 코스가 한계령 코스였는데 여기 장가계 원가계를 보니 한계령은 장가계 원가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먼저 다른 나라와 합작을 하여 설치했다는 케이블카를 타고 장가계의 위를 지나갔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장가계의 모습은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 반인공 반천연의 보봉호수와 시원한 인공폭포
융기 현상으로 생겼다는 무등산의 서석대 입석대에 있는 돌기둥과 같은 것들의 높이가 몇10미터에서 몇100미터는 족히 되는 것들로 쫙 깔려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계곡과 능선위를 지나가는데 아래쪽을 보니 아찔하였다. 만약 여기서 케이블카가 떨어진다면 우리는 가루가 될 것 같은 높이였다. 특히 기둥을 지날 때 덜커덩 거리는 소리는 심장을 멈추게 할 정도였다.
사람의 손이 전혀 미치지 않는 계곡을 흐르는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너무나 무서워서 창살을 꽉 잡고 타느라고 사진을 몇 컷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위에서 내려다본 장가계의 모습은 영원히 못 잊을 것 같은 너무 너무 멋진 광경이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린 우리는 대기하고 있던 셔틀버스를 타고 장가계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하룡공원으로 이동하였다. 가이드는 주의사항을 이야기 하였는데 토가족 처녀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가 기념사진을 찍을 때 갑자기 끼어들어 모델료를 요구한다며 거절을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거기서 파는 길가 음식물은 절대로 사먹지 말라고 하였다. 이유인즉 건조를 막기위하여 비위생적인 수건 등에 물을 묻혀 덮다보니 그런 것을 사먹고 배탈이 나서 곤욕을 치른 선례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하룡공원에 도착하여 장가계의 비경인 서해 어필봉, 선녀헌화등 멋들어지게 이름붙여진 돌기둥을 감상하며 기념사진을 몇컷 하였다.
하룡공원에는 전망대도 지어 놓았는데 멀리서만 구경하였다. 기념사진을 찍으니 토가족 쳐녀가 의자를 주면서 거기서 올라서서 사진을 찍으라고 권하여서 친절에 감동하여 의자위에 올라서서 사진을 찍으니 어필봉이 훨씬 잘 잡혔다. 그런데 이게 함정일줄이야 돈을 요구하였다. 물론 많은 돈은 아니었다. 일금 1,000원이었다. 이곳 장가계는 모든 거래단위가 1,000원 기준이다. 옥수수가 1,000원에 5개 , 고구마가 1,000원에 3개, 이런식이다. 중국 여행시 달러나 중국위엔화 환전은 필요없다. 1,000원권 10,000원권이 통용되는 곳이다. 또 재미있는 일은 우리 일행을 따라 다니며 언제 사진을 찍었는지 열쇠고리에 찍은 사진을 넣어 1,000원씩에 판매를 하였다. 물론 맘에 안들면 안사도 상관없다. 그들의 상술은 기가 막혔다. 구경을 마치고 오솔길을 걸어 나오는데 어디선가 전통악기로 도라지를 연주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앞을 잘 보지 못하는 앳띤 청년이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두줄짜리 현악기를 이용하여 노래까지 불러가며 연주를 하고 있었다. 1,000원을 모금함에 넣으며 아리랑을 신청했더니 노래를 부르며 멋들어지게 연주를 해주었다. 사이 사이에 좋-다까지 넣으며 말이다. 이어서 도라지 타령등 몇곡을 계속 들려주었다. 이국에서 들어보는 우리나라 노래 는 향수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다시 셔들버스를 타고 원가계로 향하였다. 계속 내려가는 길이었다. 산은 우리나라 산이나 똑 같은데 유독 장가계와 원가계가 있는 부분만 지형변화로 아름답게 된 모양이다. 원가계에 도착하니 가게에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과일과 아열대 과일을 전시해놓고 팔고 있었다. 걸어서 원가계를 가는데 가는 길을 전부 돌계단으로 다음어 놓았다. 지게로 지어 날라 길을 다듬었다고 하니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짐작이 갔다. 장가계가 멋있다고 했더니 원가계는 더 가관이었다. 장가계 규모의 몇 십배였다. 쭉쭉뻗은 돌기둥 거기에서 살고 있는 질긴 생명력의 소나무와 잡풀들 한두개도 아니고 몇 백개 몆 천개다. 어떤 곳은 바위의 아래부분이 뽕 뚫려서 천연구름다리가 된 곳도 있다. 그 위를 걸어보기도 하고 소원도 빌어보란다. 거기를 돌아 멀리서 구멍뚫린 구름다리를 배경으로 몇컷의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계단을 밟으며 원가계의 장관을 구경하였다. 경치가 좋은 곳은 전부 관람할 수 있도록 안전시설을 하여 관람하고 사진을 찍도록 하였으며 안내판도 세워 놓았는데 얼마나 한국사람이 많이 오는지 안내 석판에 한자, 한글, 영문순으로 안내를 해 놓았다. 멀리 있는 곳은 희미하었는데 햇빛이 비추는 곳은 선명하게 잘 보였다. 그걸 배경으로 디지털사진을 찍으니 잘 찍혔다. 원가계를 거의 구경하고 하산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하여 엘리베이터 승강장으로 향하였다. 수직돌벽에 파일을 박고 바위를 수직으로 파서 일부는 지상 일부는 암벽속으로 엘리베이터를 운영하는데 무려 그 높이가 326미터라고 하였다. 2대를 운영하는데 날마다 교대로 운영한다고 하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면서 주위의 원가계 장관을 구경하는것도 또 다른 멋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바위동굴을 걸어 나와 아래에서 올려다본 원가계의 멋은 또 기가 막혔다. 위에서 내려다본 원가계가 접시모양 같았다면 아래서 위를 올려다본 원가계의 모습은 젓가락 같았다. 내일 십리화랑과 금편계곡을 아래에서 위로 관람한다니 기대가 된다. 대기하고 있는 셔틀버스를 타고 입구로 내려왔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장가계 원가계의 장관들! 이 아름다운 장관을 잊을 수가 있을까? 여행비가 하나도 아깝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입구에서 내린 우리는 우리의 관광버스에 올라 식당으로 향하였다. 우리가 잠자는 호텔의
식당이었는데 김치, 고구마대순무침, 콩나물 등 한식 반찬이 나와서 먹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오늘 상당히 많은 거리를 걸어서 발의 피로를 풀기 위한 발맛사지를 받으러 갔다.
각종 한약재료를 우린 물통에 발을 담그도록 한 뒤 남자손님은 처녀들이, 여자손님은 총각들이 맛사지를 해주는데 이건 발맛사지가 아니라 전신맛사지다. 간지러워 약간 몸을 비틀면 한국말로 “간지러워요?” 주무르는곳이 약간 아파 ‘‘아야“ 하면 ”아파요?“하고 한국말을 아주 잘 하였다. 정말 성심성의를 다해 시원하게 맛사지를 잘해주었다. 끝나고 팁은 3,000원씩 주자는 약속이 있어 3,000원씩 주었다. 정말 고맙다고 10,000원도 주고 싶지만 다음에 오는 한국사람들을 위해 3,000원정도만 주라는 가이드의 부탁이 있었다. 이들이 한달에 받은 급료가 30불 우리나라돈 36,000원정도이니 3,000원이 적은 돈도 아니다. 우리 기준으로 하니 적은 돈이지 이들 기준으로 하면 1,000원도 큰 돈이다.
맥주, 소주, 과일, 과자등을 준비한 우리 일행은 호텔방에 모여 한잔씩 기울이며 회포를 풀고 잠자리에 들었다.
2004년 8월 11일(수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삼아 어제 걸었던곳과 반대방향으로 향하였다.
길거리에는 청소부들이 어제 저녁에 어지럽혀진 길거리를 청소하고 있었다. 청소부들은 놀랍게도 전부 여자들이었다.
장가계 원가계가 있는 산이 천자산인데 천자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적은 양이 아니었다.
호텔에 도착하여 샤워를 하고 뷔페식으로 아침을 간단히 먹고 짐을 챙겨 버스에 올랐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입구에서 어제 나눠준 입장티켓을 넣고 지문인식을 한 뒤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아래쪽에서 위쪽을 감상할 수 있는 십리화랑과 금편계곡을 향하였다. 십리화랑에 도착하여 모노레일을 타고 가면서 원가계의 장관을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감상하였다. 쭉쭉 뻗은 갖가지 모양을 한 돌기둥 바위산이 정말 장관이었다.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시간이 많다면 모노레일을 타고 가는 것보다 걸어서 가는 것이 더 운치가 있을 것 같았다. 모노레일의 종점에서 내려 기념사진을 몇 컷하고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입구로 내려왔다. 오면서 보는 십리화랑은 또 다른 멋이 있었다.
■ 십리화랑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금편계곡으로 향하였다. 강택민의 장가계란 글씨가 큰 돌에 새겨져 있었다. 큰 바위와 돌기둥이 어우러진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토가족 그네, 물레가 인상적이었으며, 나무에 인두질을 하며 장가계 원가계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서 판매하는 것이나 초상화를 그려주며 파는 것은 우리나라의 어느 관광지와도 똑같았다. 가마를 타라고 권하는 이곳 사람들의 고달픈 모습이 애처로웠다. 계곡에 잠시 발을 담그며 여유를 즐기다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입구로 나왔다.
황룡동굴을 보기 위하여 차에 오른 우리는 황룡동굴에 도착하여 동굴 내부를 감상하였다. 일부만 개발되었다는 황룡동굴의 규모는 어마어마 하였다. 동굴의 높이며 석순, 종류석의 크기가 정말 엄청났다. 우리나라의 성류굴이나 고수동굴은 조족지혈이다. 동굴안에는 걸어서 구경하려면 3-4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동굴안의 계곡에 배를 띄워 배를 타고 동굴을 감상하도록 하였다. 배를 어떻게 이 안으로 운반했느냐고 물어봤더니 이 안에서 부품을 가져다 조립을 했단다. 배에서 내려 걸어서 감상하는데 갖가지 모양을 한 종류석과 석순이 밭을 이루고 있었다. 어떤 곳은 집단적으로 밭을 이루고 있었는데 높이 19.5미터의 석순은 우리나라돈 150억원의 보험에 들었다고 안내문에 써 있었다. 어떤 곳은 석순과 종류석이 곧 닿을 것 같은 곳도 있었고 동물모양, 사람모양, 각양 각색이었다.
잠시 쇼핑순서로 차를 판매하는 곳으로 안내가 되었다. 여러 가지 차를 보여주고 직접 타서 맛보게 하며 차를 판매하였다. 값이 비싸서 거의 희망자가 없었다. 나오며 갖가지 차를 끓이는 다기등의 전시물을 감상하였는데 우리나라 다기나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점심을 먹기 위하여 한식집으로 향하였다. 간판도 한국말로 ‘한국관’이었다.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날씨가 무더워서 에어컨을 틀었지만 삼겹살을 굽는 열기에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는데 비계가 많이 붙었지만 차돌베기처럼 맛있다며 먹었다. 서비스로 콜라도 나오고 향이 짙은 중국소주도 나왔다. 오후에 잠시 기념품점에 들렀다. 이곳은 산이 많아 보석과 수정 옥들이 많이 난단다. 나라에서 운영하며 표시가격의 절반이하로 디스카운트가 가능하다는 가이드의 귀뜸이 있었다. 원석등 볼거리를 진열해놓고 기념품점으로 안내가 되어 기념품을 구입하고 나왔다. 거기서 할인해주는 정도는 500위안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1대 150이니 75,000원 정도인데 이돈을 다 주고 사면 이건 완전이 봉쓰는 것이다. 거기에 써진것에 곱하기 100을 하여 반으로 깍으면 틀림없는 구매가격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예를 들어 500위안짜리면 곱하기 100을 하여 50,000원 반으로 할인하여 25,000원에 흥정하면서 가감하면 된다. 우리 일행들은 그렇게 많이 샀으며 여러개를 사면 그 이하로도 할인을 해준다. 국영가게인데도 이렇게 에누리를 해주니 어느 것이 진짜 가격인지 알 수가 없다.
다음 코스는 토가족의 삶을 보여주는 전시관인 수화산관이다. 수화산관을 보기 위하여 우리는 첫날 덜커덩거리며 왔던 그 길로 다시 되돌아 나왔다. 그 길은 계곡을 끼고 낸 도로였는데 차창밖으로 보이는 경치가 장가계 원가계의 일부처럼 쭉쭉 뻗은 돌기둥과 멋있는 바위가 보였다. 가면서 농가의 모습도 보이는데 사람이 사는 곳은 다 같은 모양이다. 호박, 수세미, 옥수수, 고추 등을 심어 놓은 곳도 보였다. 한참을 달려서 수화산관에 도착하여 그 안에 들어갔다. 입구에서 큰북을 치며 노래를 부르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1층, 2층. 3층에는 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갖가지 도구들을 전시해놓고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방의 구조, 생활도구, 작품, 디딜방아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방의 입구에는 나무를 섬세하게 조각하여 붙여서 장식을 해놓았으며, 나무뿌리를 다듬고 칠을 하여 전시해 놓았는데 사람모양 동물모양 새모양등 갖가지 였다. 각종 그릇등도 전시가 되었고, 각종 돌가루를 이용하여 그린 석분화가 있는데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밑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돌가루를 붙여 장가계 원가계의 비경을 그려놨는데 판매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격이 50만원, 70만원이었다.
각종수예품, 장식을 멋있게 한 가마등이 인상적이었다.
수화산관의 관람을 마친 우리는 계림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하여 장가계역으로 향하였다.
장가계역에 도착하니 장거리 여행을 위하여 필요한 물건을 파는 잡상인과 역의 4층까지 가방을 운반해주기 위한 짐꾼들이 벌떼처럼 몰려왔다. 특히 이중에는 여자짐꾼들이 많았다. 4층까지 올려주는데 1,000원이란다. 1,000원을 벌기 위하여 경쟁을 하는 고달픈 이 여인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태어난 것을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역건물의 4층에 도착한 우리는 오늘 저녁 장가계에서 계림으로 가는 비행기가 없어서 12시간의 기차를 타고 유주역으로 가서 계림으로 이동을 해야한다. 오늘 날씨도 무더웠는데 샤워까지 할 수 없으니 미칠 지경이다. 우선 세수를 하기 위하여 세면대가 있는 화장실로 향하였다. 세수를 하면서 머리까지 감고 나니 시원하기는 한데 온몸이 땀으로 젖고 옷에서도 땀냄새가 난다. 나는 우선 새 양말, 내의를 챙긴 뒤 수건을 깨끗이 빨아 물수건을 만들었다.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뒤 옷을 벗고 물수건으로 온몸을 닦았다. 이른바 군대에서 근무시 전방에서 했던 수건목욕이다. 다시 수건을 짜고 몸을 닦은 뒤에 새 옷과 새 양말로 갈아 신으니 샤워를 한 것처럼 개운하였다. 헌옷과 양말은 비닐봉투에 넣어 짐가방에 넣고 기차를 타기 위하여 플랫홈에 갔다. 기차는 30량 정도는 달았을까 그리고 우리나라 기차보다 훨씬 높이가 높았다. 기차에 오르니 완전 찜통이었다. 4인 1실로 되어 있었으며 2층침대가 양쪽으로 놓여있었다. 베게며 이불이 그리 깨끗해 보이지는 않았다. 한참 땀을 흘리다 보니 아까 수건목욕한 것이 헛것이 되어 버렸다. 출발시간이 되어 달리니 선풍기도 돌아가고 에어컨도 나온다. 준비해준 도시락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우리 일행은 한실로 모여 일명 월남삼봉을 하였다. 화투는 우리칸의 서울 사람에게 빌렸다. 서울서 온 여행사 직원은 화투, 동전, 컵라면을 준비해오라고 하여 준비를 해왔단다. 혹시 기차여행을 하려면 화투나 카드, 동전, 컵라면은 필수준비물이다. 화투는 빌렸는데 동전이 없어서 과자박스를 잘라 동전대용으로 하여 월남삼봉을 즐기면서 박장대소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잠을 청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달리는 기차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나에게는 거의 불가능하였다. 덜커덩거리는 소리와 진동, 그리고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을 피하려고 이불을 덮으면 더웁고, 더워서 이불을 차버리면 발이 시럽고 코에 바람이 들어오고, 엎어지면 답답하고 구석으로 코를 대니 냄새가 나고 앉아서 잠을 청하니 이것도 아니고 정말 고역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아름다운 추억이다. 기차여행에서나 느껴볼 수 있는 낭만이리라. 잠도 안오고 하여 복도를 왔다 갔다하며 객실을 구경하였다. 우리가 탄 기차는 그래도 고급이었다. 앞칸으로 가니 침대칸인데 문이 없으며 침대가 없는 칸도 있었다. 세면대가 있는 칸의 물을 틀어보니 쨀쨀 나와서 세수 한번 하기도 힘들었다. 하도 몸이 찜찔하여 샤워를 해볼까 하고 이곳 저곳 꼭지를 틀어보니 물탱크가 가까운 곳에 있는지 상당량의 물이 나왔다. 옳다 이곳에서 샤워를 해보자 하고 옷을 챙겨 이곳으로 갔다. 세면대에 물을 받으려면 배수구멍을 막을 수 있는 고무같은 장치가 없어서 물을 받기 위해 물병을 준비하고 발받침으로 종이 박스를 준비하였다. 문을 걸어 잠그고 옷을 벗어 걸고 종이박스를 깐뒤 그 위에 올라서서 물병에 물을 받아서 머리부터 물을 뿌리며 샤워를 하였다. 그런데 물병에 물 받기가 영 판이다. 그런데 이리 저리 찾아보니 마침 종이컵이 보였다. 종이컵에 물을 받아서 샤워를 하니 참 좋았다. 그래서 종이컵을 이용하여 정말 멋진 샤워를 하였다. 이것도 군대에서 배운 경험이리라.
2004년 8월 12일(목요일)
돌아와서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복도의 의자에 앉아 있다가 다시 누워봤다가 하다가 유주역에 도착하였다. 새벽4시경이니 밖은 깜깜하다. 유주역에서 오늘의 관광을 위하여 버스에 오른 우리 일행은 고속도로를 타고 계림으로 이동하였다. 중간에 화장실에 들렀는데 화장실은 형편이 없었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실은 정말 호텔급이다. 한참을 달리니 날이 훤하게 새어 창밖의 농촌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어떤 곳은 벼를 수확한 논, 이제 막 모를 심은 논, 소로 쟁기질을 하는 곳, 소에게 풀을 뜯기는 곳 등 한가로운 우리네 농촌과 다를 바 없다. 이곳에서 부지런한 사람은 벼를 3모작까지 한단다.
백마강이라는 한식집에 도착하여 아침을 먹는데 배추김치, 깍두기, 돌산갓김치, 된장, 콩나물, 갈치구이, 오이무침 등이 나와 여기가 중국인지 한국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였다.
맛있게 아침을 먹고 관음동굴을 보기 위하여 계림시내를 통과하였다. 시내에는 이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마침 출근시간이라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로 도로는 만원이었다. 계림시내를 가로 지르는 이강에는 유람선이 떠다니고 낚시를 하는 사람도 보인다. 시내 중앙분리대에는 각종 꽃들이 심어져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시내를 벗어나 이강을 끼고 농촌을 지나는데 우리나라 농촌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관음동굴을 가기위하여 자기가 손수 운전하는 모노레일에 2인씩 승차하여 관음동굴에 도착하였다. 이곳 관음동굴은 어제 장가계에서 봤던 황룡굴과 거의 흡사하였다. 특이한 것은 동굴안에 계곡이 있는데 폭포가 있었고 배를 이용하여 관람하고 나올때는 동굴안에서도 모노레일을 타고 나왔다. 동굴을 감상하고 동굴입구에서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밖으로 나와서 차에 몸을 싣고 이강을 보면서 다시 점심을 먹기 위하여 시내로 들어왔다. 오늘 점심은 용봉탕이란다. 그런데 이곳 용봉탕은 자라와 닭뿐만이 아니라 뱀을 넣는단다. 뱀을 빼달라고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차례 차례 음식이 나왔다. 이곳 음식은 향이 짙어서 먹기가 좀 거북스러웠다. 죽순을 아주 얇게 썰어 볶아 나오는데 정말 맛있었고 이강에서 잡은 물고기도 아주 맛있었다. 용봉탕이 나왔는데 다들 손도 안대었다. 우리나라는 대개 큰 그릇에 자라와 닭을 넣어 주는데 이곳은 토막을 내어 큰솥에 끓여서 작은 그릇에 내오니 뱀과 함께 끓였다고 생각하니 먹기가 꺼림직했기 때문이리라.
점심후 국영보석가게에 들러 쇼핑을 하였다. 가이드는 국가방침으로 한지역 관광시 2곳을 의무적으로 안내해야 하며 들렀다는 증명서를 받아가야 자기임무가 끝난다는 말을 하였다.
그곳은 원석, 화석, 각종 목각, 보석들을 진열하여 놓고 판매하고 있었다. 각종 기념품을 사고 이강 유람을 위하여 이강 선착장으로 향하였다. 소나기가 내렸다. 더운 대지를 식혀주는 청량제와 같은 시원한 비였다. 이곳 사람들은 이런 비가 오면 아주 좋아한다고 하였다.
이강 유람선에 오른 우리는 배를 타고 가면서 강가를 관람하면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작살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는 사람, 수영을 하는 아이들, 통대나무를 이용하여 만든 배를 타고 낚시를 하는 사람, 노를 저어 유람객을 태워 주는 사람 등 갖가지 광경이다.
아름다운 다리를 지나고, 전통춤을 추며 저녁에는 민속쇼를 보여 준다는 멋진 건물들도 감상하고 코끼리가 마치 이강물을 마시는 모양을 하는 상비산을 구경하면서 시원한 물줄기를 가르면서 거슬러 거슬러 올라갔다.
2시간여의 뱃놀이 마치고 도착하니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이번에도 역시 기념품점에 도착하여 쇼핑을 하였다. 아침에 먹었던 백마강 식당에서 아침과 같은 메뉴로 이른 저녁을 먹고 상해행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계림비행장으로 향하였다. 9시 1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2시간전에 도착하여야 한다.
상점에는 기념품 판매점이 즐비하였는데 부르는 값의 1/4로도 살 수 있었다.
수속을 마치고 면세점의 물건을 사는데 이건 가관이다. 면세점도 할인이 가능하다.
마침 태풍이 불어 상해에서 비행기가 제시간에 뜨지 않아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단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나 지루했다. 모기는 물지 시간은 지루하기만 하였다.
10시 반경에 비행기가 도착하여 출발하여 상해에 12시 반경에 도착하여 1시경에 호텔에 도착하여 샤워를 하고 잠을 청하였다.
■ 이강의 명물 코끼리가 이강을 물을 먹는 것처럼 보이는 상비산
2004년 8월 13일(금요일)
5시 반 모닝콜 6시 호텔 뷔페식하고 광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6시 반에 버스에 올라 포동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10시 20분경에 비행기에 올랐으나, 수속까지 마치고 짐까지 붙였다는 다른 일행 3사람이 타지 않아 무려 1시간을 그 사람들 때문에 출발을 못하였다.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지는 못할지언정 피해주는 이런 일은 없어야겠지
13시 20분경에 광주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서로 고생했다는 격려의 말을 남기여 이번 여행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기로 하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