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엽 권사님은 내가 부임할 때 연로하여 모든 활동을 멈춘 상태였다. 안타깝게도 함께 교회를 섬긴 추억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도 교회 아랫집이어서 항상 대문이 열려 있었고 권사님은 마루에 앉아서 볕을 쬐고 계시니 오며 가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서평엽 권사님은 입담이 참 좋은 분이었던 것 같다. 권사님의 말투는 늘 여유롭고 구수했다. 한 마디씩 던지는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지금도 기억하는 말이 있다. “지팡이는 효자보다 낫다.” “집에는 쥐 잡는 고양이와 늙은이가 있어야 한다.” 나이가 들었어도 분별력이 떨어진 할머니가 아니었다. 꽤나 경우에 합당한 말씀을 하는 유식한 할머니였다.
서평엽 권사님은 어떤 말을 하든 알아듣는 능력이 탁월했다. 농담을 호탕하게 웃음으로 받아넘기고 더 진한 농담으로 응수할 줄 아는 분이다. 무슨 말이든 잘 통하기 때문에 말을 걸고 싶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정다운 분이다.
서평엽 권사님은 흥부의 집처럼 팔남매를 낳았다. 아이들을 키울 때 가난함이 극심했다. 먹을 양식도 없는 가운데 팔남매를 어떻게 키워냈을까? 며느리가 들려준 에피소드가 있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고구마를 쪄서 내놓았다. 이를 지켜본 서평엽 권사님은 깜짝 놀랐다. 겨울 동안 자식들에게 주식으로 먹일 고구마를 간식으로 몽땅 내어 놓았으니 말이다. 그 일로 한동안 혹독한 시집살이를 겪었다고 한다.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자랑스러운 것은 팔남매 모두가 신앙생활을 하게 된 일이다. 아들 중 한 명이 신앙으로 살지 않았는데 병이 들어 믿음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녀 중에 목회자도 있고 목회자와 장로의 부인이 되기도 하고 권사 직분을 받고 충실한 교회의 일꾼들이 되었다. 믿음의 승계가 이 정도로 이루어진 것이면 성공자라고 할만하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해야 할 일들 중 가장 중요한 일은 나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길러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좋을 수만은 없었는지 천국 가기 전 몇 해 동안 치매에 걸려서 분별력이 떨어짐으로 품위 있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늙고 병드는 일을 사람이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많이 외로우셨을까? 아들, 며느리는 새벽에 나가면 밤에 들어왔다. 아들 장로님이 농사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짧았다. 하루 종일 집을 지키는 일이 지루하셨을 같다. 기동력이 떨어져 교회도 자유롭게 올 수 없었고, 경로당에 가서 노는 일도 거의 없었다. 많은 날들을 홀로 지내다 보니 많이 외로우셨을 것 같다.
나도 그땐 어렸다. 치매에 대한 상식도 전혀 없었다. 어떻게 도와드려야 하는지 몰랐다. 고독한 분들을 보살피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작은 도움이라도 드렸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