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부이지치는 바다표범처럼 팔다리가 짧은 해표상지증(Phocomelia)이라는 희귀병으로, 태어날 때부터 팔이 없고 아주 찗은 한 쪽 다리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팔 다리가 없는 것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외로움으로 인한 절망’이었다고 말합니다.“내 주위에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 철저한 절망에 갇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팔다리가 없는 말로 다 표현 못할 불편보다도 결국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불구로 인하여 마음 속에 갖게 된 절망감이었습니다.
‘절망감(Hopelessness)’을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즉 자신이나 어느 누구도 불행이나 고통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Brent et al., 1986; White, 1989)’이라고 정의내린 사람이 있습니다. 청소년의 자살을 연구하는 전문적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도 청소년을 자살로 이끄는 최종적인 원인은 절망감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절망감, 이로 인한 자괴감, 무력감이 우리를 지금도 끊임없이 사망의 길로 끌어 잡아 당기려 합니다.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던 닉은 부모님의 위로와 함께 아이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라는 부모의 가르침대로 닉은 무난히 학교생활에 적응해 나갔고, 끊임없는 도전으로 수영과 스케이트보드, 공차기, 골프를 능숙하게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닉은 서서히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고,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닉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장애를 주신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늘 고민했고, 마침내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많은사람들에게 들려주고,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열 아홉 살 때 처음으로 청소년들 앞에서 강연했습니다. 강연이 시작되자 마자 여학생들은 흐느꼈습니다. 그리고 한 여학생이 “당신을 한 번 안아도 되겠냐?” 고 물으며 닉을 안고는 “단 한 사람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고 말해 주지 않았다”고 자기의 속을 털어 놓았습니다.
‘기부 천사’로 통하는 가수 김장훈은 편모슬하에서 외롭게 자랐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악성 빈혈로 3년 내내 병원에 갇혀 지내야만 했습니다. 청소년 시절 월세 8만원의 단칸방에서 식구들이 모여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때부터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는 요즘도 목사인 어머니의 신앙 지도를 받으며 모은 돈을 남김없이 기부하면서 사랑의 노래를 부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지독하게 가난했었고 의사로부터 넌 평생 제대로 뛰지도 걷지도 못할거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은 좌절과 분노, 절망 밖에 없었죠. 저는 주머니에 천원조차 없어서 종로에서 사당동까지 걸어 다니면서 음악을 했습니다. 그런 제가 기부를 하자 많은 사람들이 물었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고요
저는 “어떻게 하면 나 한 사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저는 그것만 집중했습니다. 그러자 콘서트와 앨범 판매에서 성공하게 되었고 이렇게 해서 벌게 된 돈을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쓰여지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불우아동, 끼니를 거르는 노인들, 제 3 세계의 굶주리는 사람들, 1달러짜리 주사를 맞지 못해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쓰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일을 할 때마다 하늘에 계신 그분께서 저를 그냥 두시지를 않으시나봐요. 전 행복합니다. 항상 남을 위해 살았더니 돈도 생기고 건강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저를 사랑해줍니다. 남을 위하는 마음만 있다면 어떤 사람이라도 저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에요.
김장훈은 그의 콘서트에 대하여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기를 좋아합니다. 내 콘서트는 ‘절망 끝에 부르는 희망’이라고.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소망을 품을 때 우리는 이 어려움에서 놓여나서 더 높이 날아 오르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넬슨 만델라, 그는 D급 죄수였습니다. 최악의 정치범인 D급 죄수의 면회는 6개월에 한 번, 편지도 한 통밖에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시계라는 건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었으며 갈수록 죄책감만 늘어갔습니다. 간수는 일부러 그 신문기사를 오려 그가 보도록 했습니다. 그를 더욱 괴롭히기 위해서였습니다. 차라리 자살이라도 하겠지 여기며.
독방에 갇힌 지 4년째 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큰아들마저 자동차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는 장례식에 참석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가족 역시 14년째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집에서 쫓겨나, 고립된 흑인 거주 지역으로 끌려 갔습니다. 둘째 딸은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정부 당국을 향해 그냥 내버려둬 달라는 하소연뿐이었습니다. 누군가 자신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고 느낄 때 삶은 절망 그 자체입니다. 이 끔찍한 무력감 앞에서 그는 아직도 더 견뎌야 하는 것인지, 얼마나 더 이대로 견뎌야 하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그러던 와중에 14년 동안이나 보지 못한 맏딸이 아기를 낳았다고 찾아왔습니다. 면회도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피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그때 편지로 말씀드린 제 딸의 이름은 정하셨나요?" 그들에게는 할아버지가 손자의 이름을 지어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맏딸은 무수한 고난의 시간을 견뎌 어른으로 성장했고 결혼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딸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쪽지를 내밀었습니다.
딸은 그 쪽지를 받아 조심스럽게 펼쳐보았습니다. 그리고 종이에 얼굴을 묻고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겨우 참아냈습니다. 종이에 묻은 잉크가 눈물로 얼룩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적혀 있는 글자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즈위’(Azwie)
아즈위는 희망이라는 뜻입니다. 26년간 감옥에 그 중에서도 14년 간은 독방에 갇혀 있던 그가 그 안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품지 않았다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백 차별 철폐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감옥에서 풀려 나와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요? 오히려 그 자신 한 몸마저도 온전히 간수하기조차 어려웠을 것입니다.
소망을 품는 것은 각자 자신의 몫이지만 매우 큰 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소망을 품는 것은 작은 송사리가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연어가 알을 낳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매우 많은 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다 한 마리의 작은 송사리, 펄떡거리며 뛰어올라야 하는 연어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소망을 키워가야하는 막중한 사명을 지닌 10 대의 청소년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해내야 할 힘든 과제와 실망했던 일들과 지금 이 시간도 끊임없이 걱정되는 일과 해결해야 할 문제들, 좌절할 만한 일들을 갖고 있습니다.
바랄 수 없는 상황인데도 바라는 것이 진짜 소망입니다. 지금 현재 바라볼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바라볼 것을 찾아내고 가꾸어서 내 삶의 목표와 기준점으로 삼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소망을 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걱정없이 과제없이 문제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에 우리는 분명히 살아가는 가운데에 좌절할 일, 낙심할 일, 힘에 부치는 일들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는 악처로 소문난 크산티페를 아내로 두었으며, 노예를 해방시킨 아브라함 링컨은 지독한 추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불과 열네 살에 학업을 중단했으며, 영화의 아버지 챨리 채플린은 삼류 유랑극단의 배우와 가수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를 바꾼 인물들은 모두 절망감에 무릎을 꿇을만한 충분한 조건을 갖고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은 어머니가 기생이었으며, 한국 현대시의 초석 이상은 겨울 밤 홀로 각혈을 하면서 시를 쓰던 결핵환자였습니다. 전 유럽을 무력으로 지배했던 나폴레옹은 키가 작았으며, 현대 우주 물리학의 초석 스티븐 호킹은 루게릭병이라는 온몸의 운신이 불편한 악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지독한 절망감에 시달렸을 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거의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다 닉부이지치, 김장훈, 넬슨 만델라, 소크라테스, 나폴레옹, 장영실이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도 각자 자신 만의 열등감과 절망감을 짐처럼 진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이 유명한 사람들에 못지 않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멋진 소망을 이루어 낼 것입니다.
자신의 역작인 혁명사가 잠시 하인의 부주의로 벽난로의 재로 변해 버린 카알라일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 나의 삶에서도 이런 좌절할만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을 때 심지어 더 내려가기 까지, 사귀고 싶은 친구에게 용기 내어 말 걸었는데 오히려 무안당했을 때 호감의 표시로 웃었는데 너 왜 바보같이 실실거리냐고 할 때, 관심 있어서 살짝 본건데 너 왜 나 째리냐고 할 때 우린 좌절합니다. 소심한 내 맘을 더 소심하게 하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다 속으로 상처받기 쉬운 인간일 뿐입니다. 한 번 속을 터 놓고 서로 이야기해 보십시오. 평소에 쎄보이던 친구도 알고 보면 맘약한 아이일 뿐이라니깐요...
소망을 품는 다는 건 용기가 안나도 내 선한 동기를 포기하지 않고 무릅쓰고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내가 무안을 당하고 거절을 당하고 심지어 오해를 받아도 더 심하게는 비난을 받아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무릅쓰는 용기를 끝까지 잃지 않는 것이 소망을 품는 일입니다.
쉬운 것과 어려운 것 중에서 더 어려운 것을 택하는 것이 소망을 키워가는 행동입니다. 집에 가자 마자 쉬고 싶고 놀고 싶어서 손도 안씻고 소파에 앉아서 티비 리모콘을 잡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집에 들어가 하기 싫어도 씻고 가방 꺼내서 정리하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당장 하고 당장 처리되지 않는 일이라도 처리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놓는 것 그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품은 소망이 정말 소중한 것이라면 진실된 것이라면 여러분 자신의 그 소중한 소망을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완전노력해야 진짜 여러분의 그 소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험난하여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습니다. 생명으로 들어가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우리에게는 다 소망을 품을 기회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다소 생뚱맞게 들릴 수 있는데 그것은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죽으셨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입니다. 우리가 뭔가 쌓지 않은 공로로 혜택을 누리고 있을 때 그것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누군가의 남모를 노력과 수고와 희생이 있어서 그런 일이 생긴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온갖 모욕을 무릅쓰고 죽으셨기 때문에 된 것입니다.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누구도 치룰 수 없는 어마어마한 댓가(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값을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피값은 그것보다 훨씬 비싼 것입니다.)를 자신의 죽음으로 피로 그 값을 치루셨기 때문에 되어진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어도 죽는 것은 우리와 똑같이 고통스러우셨습니다. 죽기 힘들지 않아서 룰루랄라 흥에 겨워 죽으신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죽으실 때 기뻐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구원받을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예수님은 지금도 알고 계십니다.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응답은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위해 정직한 노력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이 바라는 바 그것을 그 소망을 진실로 사랑한다면 여러분의 그 사랑을 퍼 부으십시오. 어떻게? 행동하십시오. 거창한 행동을 하려고 기다리지 마십시오. 지금 당장 시작하십시오. 한 번에 하나씩만 느긋하게 해 나가십시오. 1 분 안에 할 수 있는 일이면 지금 바로 하십시오.( 1 분 안에 할 수 있는 일 참~~ 많습니다. 책상 위를 대강 치우는 것도 1분이면 충분합니다.) 당신이 베풀 수 있는 작은 친절로 맘이 좋아질 그 누군가가 당신 옆에는 항상 있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 그 친절을 베푸십시오. 쪽지를 보내는 일도 좋습니다. 편지를 써도 좋습니다. 조용히 앉아서 친구에게 마음을 전하는, 부모님께 마음을 전하는, 선생님께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습니다.
A broken hand works, but not a broken heart 다친 손으로 일할 수는 있지만, 다친 마음으로는 일할 수 없습니다. 라는 속담이 있지요? 여러분의 마음을 다친 채로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절망 속에 방치해 두지 마십시오. 희망을 품음으로 건강한 마음으로 만드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으로 소망을 품게 하여 마음을 튼튼해지게 하세요. 희망을 품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신 생명의 하나님, 마음으로 입으로 내 행동으로 언제나 찬양하십시오. 노래하십시오.
첫댓글 아주 감동깊게 단숨에 읽었어요. 그 중 격언이 될만한 말들이 몇 개 있었는 데 다시 찾으니 안나와주네요.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것을 바라는 것이 소망' 이라던가 만델라가 지어준 손자 이름이 아즈위(희망)라는... 난 역시 희망이라는 말을 좋아하나보다.. 내세우지 않는 누군가의 노려과 희생으로 편한 삶을 누리는 것을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에 비유한 것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다 너무 좋고 새로운 지식과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들이었답니다. 청소년들이 많이 읽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진실을 찾아서...
충실하고 진심어린 피드백 언제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