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임재를 인간행위와 역사에서 경험한다고 주장하는 유일신교이다.
유대교는 광의로는 아브라함·이사악·야곱 등 족장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4,000여 년에 걸친 유대 민족의 종교현상 전부를 뜻하며,
협의로는 BC 5세기 유대 민족이 바빌론 유수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와 유대교를 재건한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2,400여 년 동안 믿어온 신앙체계를 가리킨다.
유대교 재건 시대개요(BC 538~333)
유다 왕국이 신바빌로니아 제국에게 패망하는 과정에서 엘리트 유대인들은
3차례에 걸쳐(BC 597, 587, 582) 신바빌로니아로 끌려가서 큰 고초를 겪었다.
그러다가 BC 539년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황제가 신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 이듬해 칙령을 내려,
신바빌로니아에 살던 유대인들에게 귀향을 허락하고 성전재건을 명했다(에즈 1:2~4, 6:3~5).
세스바쌀과 그의 조카 스룹바벨이 유대 총독으로 임명되어,
동족들을 데리고 귀향해서 성전재건에 진력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마리아인들과 귀향하지 않고 눌러 살던 유대인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데다가,
귀향자들은 너무 곤궁해 생계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거의 한 세대가 지나 스룹바벨은 다리우스 황제의 지원을 받아 BC 515년 3월 드디어 성전을 완공하고
다시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제사장·레위인·평신도 가릴 것 없이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신앙생활이 위태롭게 되었다(〈이스라엘의 역사 A History of Israel〉).
페르시아 황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BC 464~424 재위)의 술 시중을 들던
유대인 느헤미야가 BC 444년 유대 총독으로 임명되어
BC 437년 12월에 예루살렘 성벽 공사를 마쳤다(요세푸스의 〈유대교사〉).
BC 433년 느헤미야는 총독 임기를 마치고 궁정으로 돌아갔다가
1~2년 후 다시 유대 총독으로 부임하여 유대인들이 율법을 준수하도록 여러 조치를 취했다.
십일조를 바치고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하고 혼종혼(混宗婚)을 금했다(느헤 13).
BC 428년을 전후하여(〈이스라엘의 역사〉) 느헤미야에 이어 제사장이며
율법학자인 에즈라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의 명으로 모세의 법전을 갖고
유대로 와서 초막절을 맞아 본격적으로 율법을 가르쳤다(느헤 8).
그는 이방인들과 맺은 혼종혼을 모두 파기하여 이방인 아내들과 그들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을
모두 내보내도록 명했다(에즈 9:2, 10:2~43). 유대인들은 에즈라의 가르침에 따라
율법을 곧이곧대로 지키기로 다음과 같이 맹세했다.
"이 땅에 사는 다른 민족 가운데서 사위를 맞이하거나 며느리를 보지 않을 것,
이 땅에 사는 다른 민족이 안식일에 곡식이나 그 무엇을 팔러 오더라도 사지 않을 것,……
7년마다 땅의 소출을 거두어 들이지 않을 것, 남에게 빚준 것이 있으면 없애버릴 것,
우리 하느님의 성전행사를 위하여 해마다 1/3세겔씩 바칠 것,……
우리 밭에서 나는 햇곡식과 처음 딴 과일은 해마다 야훼의 성전에 바칠 것,
법에 있는 대로 맏아들과 처음 난 가축, 곧 갓난 송아지나 새끼양을 우리 하느님의 성전에서
봉직하는 사제들에게 바칠 것"(느헤 10:31~37) 등이며
또한 십일조를 바치기로 다짐했다(느헤 10:38~39). 에즈라가 예루살렘에 갖고 온
모세의 법전이 정확히 어떤 책이었는지는 계속 논란이 되고 있으나 모세5경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독립국가는 아니었지만 모세의 법전을 생활신조로 삼은 율법공동체로 다시 태어났다.
AD 70년 8월 29일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버림으로써 성전제사가 아주 사라진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은 율법공동체로 존속할 수 있었다. 에즈라야말로 유대교를 재건한 장본인이므로
그를 제2의 모세로 일컫기도 한다.
유대교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신관
바빌론 유수 이전에는 하느님을 마치 다른 인간처럼 묘사하곤 했다.
그런데 바빌론 유수 이후에는 하느님의 초월성을 강조한 나머지 될 수 있는 대로 의인화 경향을 피했다.
예를 들면 히브리어 성서를 아람어로 번역한 타르굼에 따르면 에덴 동산을 거니신 분은 하느님이 아니고
그분의 말씀(멤라)이었다고 한다(창세 3:8). '하느님은 삼키는 불'이라는 표현을 '말씀은
삼키는 불'이라고 고쳤다(신명 4:24). 초월적인 하느님을 너무도 경외한 나머지 이스라엘의 신명(神名)
'야훼'를 입에 담지 못하고 '야훼'가 나오면 '아도나이'(나의 주님)로 읽었다.
그밖에도 하느님 야훼를 가리키는 우회적 표현들이 발달했는데 '이름'(마태 6:9),
'하늘'(마태 5:34), '전능'(마태 26:64), '셰키나'(現存) 같은 것들이다.
선민사상
에즈라의 명에 따라 이스라엘 남자들이 이방인 아내들과 그들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을 모조리
내쫓음으로써 이스라엘은 이방인들과는 다른 선민으로 자처했다.
선민 이스라엘이 보기에 이방인들은 죄인들이다(마태 5:46~47, 6:7, 18:17, 사도 2:23).
이때부터 선민이 만민을 적대시하고, 따라서 만민이 선민을 적대시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율법
에즈라는 이스라엘을 율법 중심의 공동체로 만들었다.
국가제도·성전제도 등 모든 제도가 없어져도 이스라엘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율법 중심의 공동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율법은 모세5경과 그 안에 들어 있는 규범들을 가리킨다.
이 규범들은 바빌론 유수 이전의 것들이 많았던 까닭에 바빌론 유수 이후 시대에 새롭게 적용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레위인들이 옛 규범들을 시대에 맞게 해석했다(느헤 9).
이렇게 해서 미드라시 문헌(성서 주석)이 생겨났다.
율법체제가 확립됨에 따라 예언자들이 차츰 사라진 것도 이 시대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