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활한 감정의 발산이 건강한 아이
만든다 충분히 놀지 못한 아이, 충동조절력 떨어지기 쉬워
아이들이 노는 데도 부모의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를 마치면 온 동네 아이들이 모여 운동장, 놀이터,
집 앞 골목을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놀던 세대라면 의아할 것이다. ‘대체 노는 데 왜 노력이 필요하지?’ 싶지만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환경적 요인으로는 키즈 카페나 체험프로그램, 놀이공원과 같이 따로 시간을 내어 방문해야 하는
곳이 아닌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놀 수 있는 접근성이 편리한 놀이공간이 없다는 데 있다. 또한 사회적인 요인으로는 아이 교육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면서도 놀이에는 크게 관심을 쏟지 않는 양육 환경이 가장 크다.
지난달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가 ‘어린이의 놀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의 헌장이 공개됐다. 어른들이 발 벗고 나서서 사회적인 움직임을 벌여야 할 정도로
어린이들의 놀이가 사회에서 건강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헌장은 ‘어린이에게는 놀 권리가 있다’,
‘어린이는 놀 터와 놀 시간을 누려야 한다’, ‘어린이는 다양한 놀이를 경험해야 한다’, ‘어린이는 차별 없이 놀이 지원을 받아야 한다’,
‘가정·학교·지역사회는 놀이에 대한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등 5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과연 이렇게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야 할 정도로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놀지 못하고 있는 걸까?
육아도 힘든데 놀이까지
챙기라고? 초등학생, 방과 후 1시간 이상 놀기도 힘들어
지난 2014년 2월 경향신문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2학년 학생 4명 가운데 1명(23.1%)은
방과 후 노는 시간이 1시간 이상인 날이 하루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 1시간 이상 논다는 아이는 고작 20.6%에 불과했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지 못하는 이유는 ‘학원 가느라 시간이 없어서’(41.3%), ‘같이 놀 사람이 없어서’(20.6%), ‘부모님이 못 놀게
해서’(18.9%) 순으로 확인됐다.
방과 후 학교숙제를 하거나 학원을 가느라 노는
시간이 줄어든 아이들, 사실상 부모의 극성에 떠밀려 지내는 셈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행복해하고 있을까? 지난 5월 18일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가 전 세계 12개국의 만 8세·10세·12세 아동 4만 2,567명을 대상으로 ‘주관적 행복감’을 조사한
결과, 한국 아동의 행복감이 10점 만점 중 만 8세 8.2점, 만 10세 8.2점, 만 12세 7.4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문제는 주관적 행복감과 함께 아이의 자존감 역시 낮게 나타나는 데 있다. ‘주관적 행복감’ 조사에
참여한 12개국 외에 영국, 폴란드, 에스토니아를 더한 15개국 아동을 대상으로 확인한 결과, 어린이의 행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자기 자신’과 ‘시간 선택의 자유’였다.
이번 연구의 책임연구자인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교육이나 돈이 행복과 상관관계가 높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간 선택의 자유나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적인 측면에서 영향이
컸다”며, “부모가 삶에서 선택할 여러 것들을 정해주면 어린이들이 경쟁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 자존감 하락, 부모
탓! 에너지 발산할 기회가 없는 한국 아이들
자존감이 낮은 한국 아이들의 문제는 결국 사회성 결여로 이어진다. 이 현상은 소위 “친구를 만나려면
학원에 가야 한다”는 풍문이 단지 우스갯소리가 아님을 나타낸다. 학원에 가느라 놀이터에서 함께 놀 친구가 없는 아이들이 위 연구결과처럼
자기결정권을 잃고 자존감의 하락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
놀이는 단순히 ‘논다’는 행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아이가 평소에 발산하지 않았던 감정의 높낮이를 극렬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이다. 본능적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경쟁심리나 상황에 대한
몰입은 놀이를 통해 극대화할 수 있는데, 집중하고 몰입할 때 아이들은 더욱 많은 것을 습득하게
된다.
그러나 교육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사회현상으로 인해 놀이 시간이 하루에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해외의 교과서나 도서를 직구하면서까지 높은 학구열을 보이는 한국 부모들, 정작 아이의 사회성 발달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건강한 놀이문화 보급과 전래 놀이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는 ‘놀이하는 사람들’의 이수정 상임이사는
“우리(놀이하는 사람들)가 격주로 놀토(쉬는 토요일)를 운영할 때 놀이마당을 개최한 적이 있다. 당시 지역 주민들의 호응이 높았는데, 주5일
수업제가 전면적으로 도입되고 나니 오히려 아이들이 놀이마당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고정적으로 비는 시간이 생기자 엄마들이 학습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이나 학원 등 새로운 스케줄을 잡은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 이사는 “놀이가 가장 좋은 점은 지능적으로
발달시켜 주는 부분이 있고 영유아기의 신체발달에도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부대끼며 싸우기도 하고 다른 친구 때문에
속상하거나 고맙기도 하는 등 여러 감정을 겪는 데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그녀는 “여러 상황을 경험하면서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감정의
성숙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것들은 학습지가 알려줄 수 없는 부분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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