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무장간첩 고동원이 체포된 곳이자 공비들의 이동경로인 이곳 불심골에서 승부까지는 봉화군 전역에서 가장 산이 깊고 골이 많을뿐 아니라 험준하다. 조금만 주의를 게을리하여 능선을 놓치면 몇시간은 쉽게 알바를 하는 곳이다. 특히 800m 에서 1,000m 지대에 산죽이 폭넓게 자생하고 있어 이를 뚤고 나가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허벅지와 발목에 걸리는 산죽줄기는 사람을 주눅들게 만든다. 특히 이곳은 도계도 아니고 대간도 아니고 정맥도 아닌 1,000 여 고지로서 인적이 없으며 깊은곳으로 중간에 탈출이 불가능하다. 간간이 멀리 임도가 보이기는 하지만 인위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곳이다. 따라서 단독산행은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고 여럿이 함께 산행을 하더라도 비상식량과 렌턴등 만일의 사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녹음이 짙은 여름철에는 독도가 어려워 울진 방면으로 진행하기 쉬우며 눈이 쌓이면 탈출로가 없기 때문에 위험하다. 백병산과 오미산 부근에는 산양이 살고 있다고 마을주민이 전하며 실제로 산양을 본 사람이 많이 있다고 한다. 이번 산행은 오래전 부터 조금씩 준비를 해 온 구간이다. 혼자 가기에는 부담이 많이오는 깊은 곳이므로 우리군 지형에 밝은 군청 산림과 최병학씨로 부터 1/1,000도면과 지형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함께 동행하여 주기를 부탁하였으나 산불비상관계로 무산되고 말았다. 석포면 반야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으며 군청과 석포면에서 오래 근무한 김기년씨가 함께해 주었다. 낙동정맥 종주대원이자 카페 운영진인 안정은씨와 3명이 산행에 나서기로 되었다.
세벽 5시 봉화에서 만두국으로 공복을 달래며 석포면 소재지에 도착하였다. 김기년씨의 부친께서 불심골까지 데려다 주시겠다며 반야에서 석포까지 나오셔서 기다려주셨다. 불심골 막창까지는 10여km가 넘는 깊은 골짜기이며 무장공비가 울진과 삼척지대에서 내륙쪽으로 접근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바로 이곳이 김기년씨와 그 부친께서 태어나고 또 지금까지 생활하는 곳이다. 정상에서 사진을 한컷하고 7시 40분 부터 산행이 시작되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49/2_cafe_2007_12_01_23_09_47516b01f0c0f)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49/13_cafe_2007_12_01_23_09_47516b04438b8)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49/6_cafe_2007_12_01_23_09_47516b0743258)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49/14_cafe_2007_12_01_23_09_47516b09833e3)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49/7_cafe_2007_12_01_23_09_47516b0bbcfdd)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49/1_cafe_2007_12_01_23_09_47516b0e27b2e)
낙동강 도하 사건
2007. 12. 1. 밤 6시 20분
사방은 캄캄한 칡흑이다. 하늘에 별은 총총하다. 비가 올 염려는 없다.
낙동강을 건너야 한다. 다행이 바람은 잠잠하고 날씨는 혹한은 아니다.
남아있는 음식은 빵2개, 사과2개, 귤5개, 육포. 커피4개
함께한 일행이 시장끼를 느끼지 않는것 같았다.
하산 지점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산 위에서 멀리 들려오는 열차 소리는 들었지만 도무지 여기가 어딘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해 계곡을 타고 1시간 가량 내려온 도착지점은 큰 강이 가로막고 있었다. 목적 했던데로 승부 부근 이라면 철로가 가로막고 그 옆을 낙동강이 흘러야 한다. 강의 상부로 하부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해 보았지만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학교마을과 승부마을이 어딘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렌텐은 하나 밖에 없고 비박장비는 없다. 다행히 헤드렌텐의 건전지는 새것으로 교체되어 걱정이 될 된다. 그러나 깊은 산속에서의 밤 보다는 강변의 밤이 낳다는 생각이 든다. 산속에서는 불을 만들수 없으나 강 옆에는 큰물에 떠 내려온 많은 나무와 불을 피울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확보한 셈이다. 렌텐 하나로 3명이 움직이다가 안전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야생동물이 덤비지는 않을까, 밤세 기온이 많이 떨어지면 어쩔까? 만감이 교차한다. 조난을 대비해 전원을 꺼 비축해 두었던 핸드폰 밧데리도 무용지물이다. 통화 불통지역이다. 나뭇잎을 끌어모아 덮고 불을 피워 하룻밤을 세워 볼까 궁리 중이다.
적당한 자리에 나무를 구하기 시작하자 김기년씨의 반응이 나왔다. 이곳은 봉화가 아니고 울진땅이다. 승부는 핸드폰이 터지는 지역이기 때문에 이곳이 울진땅이라는 말이다. 노력을 해보고 않될 경우 도리없이 비박을 하자는 제안이다. 강을 건너 상류쪽으로 갈수있는 곳까지 가보고 않되면 도리없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의견이 모아지고 어디로 강을 건너야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졌다. 바로옆에 돌을 던져보니 "풍덩" 소리가 났다. 이곳은 깊은 소라서 건널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위쪽은 셋강(세천)이 흘러 넘어갈 수 없고 절벽이라 접근이 불가능하다. 하류로 길을 잡았다.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건너갈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돌을 던져보니 깊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등산화를 서로 묶어 목에 걸치고 옷은 벗어 배낭에 넣었다. 혹여 강을 건너다 넘어져 옷이 젖어버리고 탈출로를 찾지 못한다면 꼼짝 없는 동사다. 헤렌렌턴을 중심으로 좌우로 3명이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돌은 생각보다 미끄럽고 물은 찹다 못해 따끔따끔했다. 다행히도 옷을 적시지 않고 무사히 건너왔다. 한기가 들기 시작했다. 식은 몸을 데우기 위해 남아 있는 커피를 묽게 타 빵과 함께 남은 음식으로 재충전을 하였다.
이제 부터는 상류로 가 보아야 한다. 넓적바위와 잡목지대를 지나자 커다란 PVC 파이프가 보였다. 김기년씨가 직감적으로 이곳이 옛날 수해 복구 지역이며 그 이후 큰 수해가 없었으므로 어쩌면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런 예측을 한다. 한 20 여분 진행하니 마침네 핸드폰이 통화가능 지역으로 표시되기 시작하고 울진과 봉화군 경계지역이자 석포와 소천의 경계지점에 도착한 것이다.
역시 오랫동안 출장다니며 보고 기억속에 남은 여러정황이 사실 판단에 엄청난 기여를 한것이다. 오늘 산행에 김기년씨의 한마디는 고립무원의 땅을 빠져나오는 더듬이 역활을 충분히 하고도 남은 것이다.
승부는 통화가능지역, 반야를 보면서 감싸고 돌아야 한다는 마을 이장님과 통화내역 이런 짧은 말 한마디가 이렇게 중요한 것인가를 느끼게 해준다.
만약 오늘 이 산행이 단독이며 현 상황이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말 없이 따라오는 안정은씨의 모습이 그렇게 든든하게 보여진 적이 없었다. 낙동정맥의 반을 함께하면서도 한번도 빠진적이 없는 안정은씨와 오늘 비록 첫 산행이지만 김기년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쉽게 잊혀지지 않을 기억거리로 두고두고 이야깃 거리로 남을 것이다.
이 시각 오늘 산행에 불심골까지 태워주신 김기년씨 아버님이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것을 보고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어른과 며느님이 번갈아 우리 집으로 걱정스런 전화를 하고 계셨다. 평생 사셨던곳 이지만 한번도 가보지 않았고 이야기로만 들었던 깊은 곳이란 느낌이 들어 괜한 걱정만 드린것 같았다. 통화가 되자 안심과 다행으로 우리 일행을 태우려 반야에서 승부로 한숨에 달려 오신다. 아버님 고맙고 죄송합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오늘 산행을 함께 하려했던 최병학씨!, 누구 보다도 우리군 산악 지형을 제일 정확히 꽤뚫고 있는분이 아닌가? 오미산까지 통화가 되다가 이후 통화 불가능이 되자 위험을 직관하였는지 경찰에게 위치추적 의뢰를 할 것인지를 골똘이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결론은 오미산을 지나 하산기점까지 운행에서 독도 실패로 하산 지점을 놓친 것이다. 수차례 격고 느끼는 것이지만 나의 독도 능력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오미산에서 거의 직선으로 내려오면서 1시 방향으로 약간 꺾어 500m 정도를 계속 내려와야 하는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하산 지점을 놓치고 울진방향으로 더 진행하다가 시간에 좆기게 되어버린 것이다.
하산 지점에서의 산 줄기 방향은 정확하였다. 그러나 도면의 고도와 고도계의 차이는 무려 100m 이상의 차이를 금방 알수 있었다. 결론은 여기가 도면에 있는 하산점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하산하지 않으면 어둡기 전 산을 빠져 나가기는 어렵다. 시계는 오후 4시 3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하산길은 1/25,000 도면상 어림잡아 8cm 이니까 약 2km 정도 남았다고 보면 정상적인 진행으로 1시간이면 가능하다.
가파르고 잔돌이 많은 산능선을 내려오니 계곡이다. 계곡 부위에 도착하자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빠져나온 계곡의 끝은 어딘지 알 수 없는 낙동강만 무념히 흐르고 있었다.
첫댓글 오늘에서야 산행기를 읽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외면했을수도ㅎㅎㅎ 지나고 나니 참으로 아름다운 추억입니다만은!! 그날은 너무 춥고.... 즐거웠습니다ㅋ 오래토록 기억 될 거 같네요^^ "낙동강 도하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