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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알록 계곡의 혈투 .2
임 동 후
7. 던져진 주사위
남의 일, 미군이 정글 폭격하는 것을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지. 지금이 어느 때인데 정신을 빼앗기고 있나? 여기는 적진! 우리 임무인 수색작전을 해야지! 구경하고 있던 조상병이 배낭을 멘다. 갈대와 대나무의 키가 너무 높아 몇 그루 건너에 베트콩이 걸어가도 머리가 보이지 않겠다. 우리 선두인 1분대는 어디쯤 가고 있을 까. 그런데 이건 또 뭐냐?
“⁉ … ⁂ ⁈ † ‼ ‷ ‽”
월남 사람 말소리 아닌가? 두 명이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다. 갈대 몇 그루 저쪽이다. 팔을 길게 내밀면 닿을 듯 가까운 거리다. 천천히 걸어 지나가는 한 명의 머리가 보일둥 말둥 하다.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앞뒤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한 탄창 갈겨버려? 방아쇠에 손을 얹었지만 쏠 수가 없다. 소대장님이 먼저는 쏘지 말랬어. 빠른 걸음으로 조상병을 따라가서 말소리 나는 곳을 턱과 눈으로 가리키니
“쉬-잇!”
조상병이 눈을 위로 치켜 올리며 왼손가락 검지를 세로로 자기 입에 갖다 댄다, 말하지 말라기에, 내 왼쪽 가슴에 달린 두 개의 수류탄을 톡톡 치며 공격하자고 하니 왼손바닥을 펴서 가로로 빠르게 몇 번 흔든다.
안 된다는 뜻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 기회가 올까?
‘졸병이 겁도 없이 무슨 끔찍한 말이냐?’
몇 발자국 더 가더니 조상병이 배낭을 벗어 내려놓으며 나를 손가락으로 부른다. 소리 나지 않게 살 살 가까이 가니,
“냄새가 많이 나, 베트콩이 바글바글 해, 우리를 보고 있어, 냄새가 지독한 거 못 느끼냐?”
냄새가 나건 말건 수류탄 두 발과 이어 M16을 연발로 갈겨대면 적긴 하지만 저 놈은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아깝다.
“… …”
“소대장 보고 베트콩 봤단 말 하지 마! 맞아 죽어, 소대장은 미쳤어, 아무 것도 몰라, 전과에만 눈이 멀었어, 여기는 대대본부야, 붙으면 우리 다 죽어!”
“…? …”
제 갈길 잘 가는 놈 다리 걸지 마라!
“우린 살아서 돌아가야 돼, 몇 놈 잡으려다 큰일 나, 저놈들이 총을 쏘면 그 때 쏴야지, 절대로 먼저 쏘지 마, 여기가 어딘지 우리는 모르잖아, 이놈들은 여기 사는 놈들이야, 지리를 잘 알아, 한 판 붙으면 연발로 막 쏘고 나서 동굴 깊은 데로 숨어 버리면 못 찾아, 설사 우리가 한 놈 잡았다 해도, 작대기 한 개 더 달 뿐이야.”
이 때 어디선가 요란한 북소리와 총소리가 들린다.
“둥둥둥둥둥둥…”
“탕탕탕탕탕탕…”
매우 다급하게 치는 북소리다. 큰북소리에 이어 들려오는 총소리.
AK47의 소리. 무슨 일이 앞에서 일어나는 것 같지만, 알 수가 없다.
첨병들이 적에게 발각되었나? 한두 명도 아니고 소대병력 30명이 완전무장을 하고 자기네 보금자리로 들어오는데 베트콩들이 보지 못했을 리가 없지. 정글을 벗어나 강물을 건널 때부터 알았겠지. 저놈들의 비상신호인 게 분명하다.
북소리와 총소리에 놀라 모두 엎드려서 앞에서 올 신호를 기다리는데, 우리 키 높이 보다 큰 산마 밭이 이랑과 고랑을 확실하게 자로 잰 듯 깔끔하게 심어져 있다. 저기 보이는 담배 밭이 저렇게 넓으니 미군의 담배를 목숨 걸고 약탈하지 않아도 되겠다. 또 상추밭이 이렇게 넓으니 다 먹을 수도 없겠어, 대대병력이 없고서야 이 넓은 밭을 무슨 수로 관리하겠나? 남는다고 시장에 내다 팔수도 없는 정글이잖아.
여하튼 가보자, 머리가 가면 꼬리는 절로 따라가는 것, 야, 이 샘은 뭐냐? 아름드리나무의 뿌리가 뽑혀 하늘을 향해 있나, 얼마나 큰 폭탄이 떨어져 터졌으면 웅덩이가 되어있나? 이런 웅덩이가 한두 개가 아니다.
맞아, 미군 B52 폭격기가 먼 괌에서 스무 발의 폭탄을 싣고 날아와서 호치민 통로를 폭격하고 간다고 했어, 승객과 짐을 4백 명이나 싣고 날아 간다는 그 큰 보잉 747기를 폭격기로 개조했다는 그 비행기 아닌가.
이 비행기들이 뜨면 소련군의 레이더가 보고 즉시 월맹군에게 알려준다고 했어, 이 비행기가 오는 것을 눈치 채면 베트콩들은 동굴 깊이 들어가 숨는다고 했다. 이 폭탄이 터지면 그 소리에 가까이에 있는 베트콩의 고막이 터진다고 했다.
잠시 앉았는데, 최병장이 마밭의 이랑을 몇 번 발로 차니, 고구마처럼 생긴 마가 5개나 나와 잘 먹기에 나도 한 개 쓱쓱 닦아 맛을 보니 고구마보다 더 달다. 절반을 뚝 잘라 조상병에게 던졌다. 여기에 심겨진 것만도 수십 가마니를 캐겠다. 이 깊은 정글에 에덴동산을 꾸며 놓았다.
비상식량이 이렇게 풍부하구나.
“따다당 탕 탕탕…”
앞에서 전투가 시작되었는가 보다, M16소총과 AK47 소총이 씨름을 하는 소리가 무질서하게 들려온다. 한참을 툭탁거린 후에 앞에서 오는 전달 사항, 저마다 왼쪽 어깨에서 비스듬히 오른쪽 옆구리로 매고 있는 탄보를 앞으로 보내란다, 탄창 7개들이 탄창을 풀어 통째로 보내려다가 혹시 하는 마음에 탄창 두 개를 빼고 앞으로 전달했다. 나에게 아직 많은 탄창이 남았지만 나중에 실탄이 모자라면 누구에게 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껴야지, 아직은 2백 발 정도의 여분은 있다. 장전된 20, 탄띠에 60, 방탄복의 양 윗주머니에 40, 예비 실탄 모두 합하면 2백 발은 될 터이니, 작전지에서 물은 빌려주지 않지만 여하튼 실탄은 빌려주는 게 도리다.
물론, 물도 아껴 먹어야 한다. 한 나절에 반 통 이상의 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 목이 말라도 입술만 축이는 것이다. 물이 모자라면 목이 콱 막혀 씨레이숀도 먹을 수 없다.
6.25 한국 전쟁 때도 전선에서는 피를 튀기며 싸웠지만 후방 부산의 군수기지 사령부에서는 저녁마다 춤파티, 술파티를 벌렸다고 하지 않던가. 군대에서는 직책, 계급, 군번 순이라 했어. 지금 우리도 앞의 전우들은 생사를 걸고 싸우는데 뒤에서는 고구마를 먹고 있다. 총소리가 그치고 한 참을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다. 누가 다치지 않았을까? 별로 오래 있고 싶지 않은 밀림 속에서 이게 무슨 짓이람.
이제 다 노출되었는가 보다. 모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
조상병이 배낭을 메기에 나도 배낭을 멨다. 갈대밭을 지나니 여기는 넓은 연병장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달리고 또 뛰어다녔기에 이렇게 길뿐만 아니라, 온 연병장이 아스팔트 같이 반질반질한가. 불그스레한 황토 땅이 단단하다. 이 정글 속에 웬 자동차 타이어들이 이렇게 굴러다니나. 자동차는커녕 자전거도 다니기 힘든 이곳에. 개활지의 반질반질한 연병장. 저 위 어디에서 베트콩들이 가시면류관을 만들어 쓰고 키득키득 웃으면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 같다. 이건 은밀한 침투가 아니라, 우리의 군세軍勢를 적들에게 자랑하는 꼴이 되었다.(우리가 이 정도야, 어디 덤빌 테면 덤벼봐, 이놈들아!)
이제 우리가 노출되었으면 손자병법의 13계에 타초경사打草驚蛇라 했으니 풀을 두드려서 뱀을 놀라게 해 잡아야하지 않을까? 각자 의심나는 정글에 한 탄창 씩 총을 쏘면 뱀들이 놀라서 줄줄이 튀어나올 때 잡으면 되지 않을까? 이건 졸병인 내 생각일 뿐, 소대장님에게 건의했다가는 「쪼인트」 까이기 십상일 것이다.
올라가자! 첨병이 가는대로 가자. 스무 명 이상의 소대원들이 지나갔지만 조심하자, 의심나는 것은 절대로 건드리지 말자, 호기심 나는 물건을 무심코 만졌다가는 나뭇가지를 휘어 만들어 놓은 쬐기(덫)에 한쪽 발목이 걸려 하늘 높이 올라가면 총이고 배낭이고 몸에 걸친 것들이 하늘에서 후두두둑 떨어지고, 나머지 한쪽 발과 두 팔이 땅을 향한 채 허우적거리며 창피한 꼴을 보이게 될 수도 있다. 조심하자, 조심해!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더라도
나는 스물 청춘, 너도 한 떨기 꽃봉오리
우리가 서로 만나 눈 마주친 적 없었고
서로 얼굴 붉힌 적은 더욱 없었지만
내가 너를 쏘지 않으면 네가 날 쏠 테니…
이것은 우리의 기막힌 악연
저승에 가서라도 나를 원망하지 마라
너는 네 나라 위해, 민족을 위해 싸웠고
나는 나의 조국 위해 총을 쏘았을 뿐이니.
8. 베트콩은 사라졌었다
K13대대 입구 같은 곳에 다다르니 아주 굵고 큰 나무가 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키가 큰 나무다. 서너 명이 손을 잡아야만 한 바퀴를 감을 수 있을 것 같이 큰 나무다. 이 나무의 3m 위에 매달아 놓은 아주 큰 북이 보인다. 북 위로는 지붕 같이 만들어 덮어 놓아 비를 맞지 않을 것 같다. 배낭을 벗어 놓은 최병장이 겁도 없이 혹시나 수류탄이라도 매달려 있는 지 살펴보지도 않고, 만들어져 있는 반질반질한 사다리를 타고 다람쥐처럼 올라가서는 북을 매달고 있는 끈을 대검으로 잘라 버리자, 아래로 떨어진다. 북이 툭 툭 툭 떨어진다.
다시 내려온 최병장이 북을 북 북 찢어버린다. 처음 북을 찌를 때는 북이 부욱 부욱 울더니 나중에는 맥없이 걸레가 되어 버렸다. 이 북은 다시는 울지 못하겠다. 북에게 자기 제대날짜 「오버」된 걸 분풀이라도 하는 것 같다. 모두 바라보기만 한다. 괜히 한 마디 거들었다가는 욕만 얻어먹을 테니까.
앵? 물이다! 찢어발겨진 북 옆 옹달샘에 고인물이 있다. 솟아나는 물은 아니지만 반가운 물이다. 손자병법 제12에는 순수견양順手牽羊이라 했으니, 작은 이익이라도 손이 닿으면 챙겨야지. 지금까지 오면서 한 개의 수통을 비운 것이 생각난다. 얼른 뚜껑을 열고 담으려는데 「핑크」 색깔의 실지렁이가 이렇게 많으냐? 그것도 뭉텅이로 보인다. 실지렁이들이 꿈틀거리는 걸 보면 독이 풀어진 물은 아니다. 습한 날씨가 아닌데도 땀이 비 맞는 것 같다. 어디에서 다시 물을 만날지 모르니 안 채울 수가 없다. 원래 수통을 3개 가져오려고 했다가 두 개만 가져 왔으니.
실지렁이 들어가지 않게 수통을 기울여 물을 반 이상 담고 옆에 달린 「클로르칼키chlorine」반 알을 넣었다. 가다가 흔들리면 소독이 되겠지. 이런 물은 10분 후에나 마셔야 한다.
휘유- 힘들다, 이제까지 온 길은 천리인데, 갈 길은 만리같이 느껴진다. 반질반질한 황톳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다. 뭐가 그리 못 마땅한지 뒤에 따라오는 최병장은 ‘시발시발’을 노래를 부른다. 좀 조용하면 좋겠구만….
여기가 베트콩의 대대본부의 입구인가 보다. 약간 비틀거렸을 뿐인데 가던 걸음의 오른발이 구덩이로 아래로 쑤욱 들어간다.
“앵?”
깊이를 알 수 없는 함정에 빠지는가 보다. 앗, 죽창의 함정일까? 쇠못들이 거꾸로 박힌 함정일까? 아니면 불발탄으로 만들어 놓은 「부비츄렙」이 내 발을 기다리고 있을까? 내 정글화 끝이 닿는 순간 그 폭발물이 터지면 내 다리는 산산이 찢어지고 잘려 많은 피를 흘리고, 그래도 살기만 한다면 후송가야 되겠지, 전우들이 내 다리는 정글에 버리고 우선 압박붕대로 남은 대퇴부를 칭칭칭 감아 지혈부터 시키고 나서 Dust off 수송헬기를 불러 나를 후송시키겠지. 들풀의 함정으로 들어가던 발이 땅에 닿았다. 물컹하다. 아무 것도 없는 맨땅이다. 한쪽 다리가 다 들어갔으니 내 모습이 말이 아니다. 그때까지 잡고 있던 총을 옆에 놓고 허우적 거리며 배낭을 벗어 밀어 놓았다. 그래도 나오지 못하자 최병장이 빠른 걸음으로 달려와서 내 손을 잡아 당겨준다. 그렇게 밉던 최병장의 손이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질 줄이야. 이게 전우의 손이구나. 여하튼 조상병을 찾아가야한다.
이 갈대숲을 헤치고 빠른 걸음으로 가야 조상병을 놓치지 않는다. 부지런히 따라가는데 너무 우거진 갈대밭 길에 난 길, 길이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갈래로 나있다. 조상병이 꺾어진 길로 가는 걸 봤는데 조상병을 찾을 수 없다. 큰일이다. 그 길이 그 길 같다. 망설이며 뒤돌아보니 최병장이 앞 사람을 놓쳤다고 입을 실룩실룩한다. 왼쪽 길로 가보아도 없다.
다시 바른 길로 가려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우측 길에서 조상병이 불쑥 나온다.
아! 하마터면 조상병에게 총을 쏠 뻔했다. 오발사고? 큰 일 나지. 석면 6겹으로 만들어진 방탄복을 입고 있긴 하지만 3m 거리에서 총을 맞으면 16조 우선인 총알은 방탄복을 뚫고 뱃속으로 들어가 휘젓고 등 뒤로 나가 창자가 다 쏟아지게 한다. 천만다행이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조상병이 잘 찾아왔다는 듯 눈을 아래위로 끔뻑끔뻑하고는 앞으로 간다.
이제는 놓치지 말아야지. 우거진 정글은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하지만 밟힌 풀들이 아예 땅과 어울려서 단단해진 길이 되어있다. 어디 멀리서 닭들의 꼬꼬댁 소리가 무질서하게 많이 들린다. 한가한 낮에 우는 닭의 목소리는 겨우 수탉 한 마리의 목소리가 한가하게 꼬꼬대액- 타탁탁(날개 치는 소리) 하고 들릴 뿐인데, 저 소리는 여러 마리의 닭이 놀라서 내는 소리 같다. 닭장에 여우가 들어왔냐? 뭐, 이 밀림에 닭장이 있다고?
애앵? 타이어 일 부분을 잘라서 만든 애기의 「샌달」이 여기에 왜 있나? 그렇다면 아기 베트콩도 있단 말인가? 여하튼 여기는 이상한 것 투성이다. 하기야 며칠 전에 연대 근처에 있는 우리 파견대 64고지를 수색하러 가다가 첨병 최국시 상병이 다리가 떨어져나간 채 후송 갔던 사고가 있었지, 하는 수 없이 잘라진 다리까지 헬기에 얹어 보냈지만, 참 미안했어, 하지만 그 다리는 후송헬기에 실어주었지만 이어 붙일 수는 없었을 거야, 너덜너덜 해져버렸거든 그 때 클레모아 격발기를 눌렀던 놈이 7살 아기 베트콩이었지. 가까이 오면 이걸 누르라고 그 아이의 아버지가 가르쳐 주고, 잠시 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예측 불허의 이 시간과 이 장소, 차라리 앞뒤가 탁 트인 개활지에서 싸웠으면 좋겠다. 가옥을 발견하면 왼손을 펴서 총구로 지붕을 만들어 뒷사람에게 보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이건 뭐냐? 이놈들이 여기서 캠핑을 하나? 나무가 빽빽한 정글에서, 가운데 나무 열댓 그루를 잘라내고 그 가장자리의 나무를 안으로 휘어서 서로 묶었으니 지붕이 되었다. 그리고 지붕 위에 풀을 엮어 얹은 것도 있고, 잎이 넓은 나무 잎을 이엉처럼 엮어 비를 맞지 않게 하였다. 더러는 찢어진 판초우의 조각으로 덮은 지붕도 있다, 조명탄을 천천히 하늘에서 내려오게 하던 낙하산 조각으로 덮은 지붕도 보인다. 집집마다 사람이 금방까지 살고 있던 흔적이다. 흔들거리며 쉬고 자는 「해먹」도 있고 모포도 있다. 땀에 찌들은 걸레 같은 베트콩의 옷들도 있다. 이런, 집 아닌 집들 수십 채가 줄지어 있는 걸로 보아 아주 많은 수의 베트콩이 거주하는 게 확실하다.
이건 뭐 집이 한두 채가 아니라 어디까지 연결되어있나? 한 개의 큰 동네를 이루어 놓았구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가옥들의 행렬. 마을이장도 뽑고, 각 반의 반장도 선출해야겠다. 여길 소탕하려면 연대 병력이 아니라 사단 병력이 들어와야 하겠다. 넓게 포위하고 포격을 하여 베트콩을 분산시키면서 「삐라」를 뿌리고 다시 포격을 하고, 한 보름은 작전을 해야 되겠다. 우리는 간덩이가 부은 한국군 ‘따이한’.
개코인 조상병은 그 냄새가 지독한지 얼굴을 찡그리며 코를 자주 만진다. 이게 베트콩의 냄새로구나. 희미하지만 냄새를 나도 맡을 수 있다. 그 나름대로의 베트콩의 특유한 냄새를.
옷깃을 한 땀 한 땀을 찌르고 넘기면서 이를 잡듯 해야 가능하지 우리 특공대 30명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하기야 우리가 여기 왜 왔나. 그 것 때문에 온 거야, 확인해 보라고 여기 보내졌잖아. 베트콩의 군세가 얼마나 되는지. 졸병들이 별 생각을 다 하고 있구나.(까라면 까고, 빼라면 빼면 돼… 맨손으로 밤송이를 까서 알밤을 가려내면 되는 거야, 너는 졸병이야, 한 개의 총알받이, 한 개의 바둑 돌, 한 개의 풀잎이야. 그래, 나는 하나의 먼지일 뿐이지, 억 년의 세월 중에 잠시 왔다 가는, 어느 화산에서 분출된 수많은 화산탄 중에 한 개의 화산탄火山炭, 보일둥 말둥한 먼지야.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하늘이 도와주었나? 오늘도 날씨가 맑다. 9월부터 3월까지는 우기철이라 시도 때도 없이 어느 날이고 한 번은 비가 오는데 어제 오늘 연이어 맑아서 작전하기에는 안성마춤이다.
그런데 웬 핏자국이냐? 불그스레한 액체가 보이나? 아니구나, 어떤 사람이 빈랑檳榔을 씹다가 어지간히 씹고 나서 뱉은 것이로구나. 시집간 여자들이 정조를 지키기 위하여, 이 열매를 자주 씹으면 치아가 새까맣게 변해 다른 남자가 보면 해골을 보는 것 같아 기급하고 도망친다는 그 열매를 씹다가 뱉은 토물吐物이다. 아열대에서 아침에 추울 때 이걸 씹으면 몸이 후끈해진다고 했어. 사내놈들이 나라를 방어하지 못한 약소국 여인네들의 자기 방어술이었다는 이야기.(사돈 남말하네)
왼쪽으로 보니 1분대가 열었는지, 베트콩들이 도망치면서 우리가 닭을 다 잡아 먹을까 저어해서 인지 큰 닭장 문이 열려있고 몇 백 마리나 되는 알록달록 우리나라 닭보다 조금 작은 산닭들이 어느 놈은 날아다니고 어느 놈은 정글의 나무에 올라가 있어 고국 땅 어느 강가의 소나무에 무리지어 앉아있는 학의 무리와 같이 보이고, 땅에서는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들은 커다란 오리 사육장을 보는 것 같다. 둥지에는 꿩알 같은 많은 달걀이 보인다.
길 오른 쪽으로 세 번째, 문이 달리지 않은 가옥에 들어가니 주먹 크기나 되는 양은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난다. 금방 해놓은 밥을 먹으려다가 갔구나. 최병장이 뚜껑을 여는데 보니 하얀 쌀밥이다. 이놈들이 우리보다 더 잘 먹고 사는구나. 저렇게 많은 채소와 푸성귀, 고구마 감자가 있으니 소금만 있으면 살 수 있잖아. 여긴 아주 에덴동산이야. 이렇게 먹을 게 풍부하니 애써 죽을 지도 모르는 한국군의 창고를 약탈하러 가까이 올 필요는 없지. 이 깊은 정글에서 문화생활을 하고 있어. 이 넓고 깊은 정글에 양계장이 어디 여기 하나뿐이겠는가. 말을 하지 않지만 모두의 마음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최병장이 그 밥솥을 살짝 올리고는 냅다 찼는데, 하필이면 우왕좌왕하는 닭장으로 날아가 그 가운데 떨어지니 닭 떼거리가 놀라 호알록 계곡이 떠나가도록 떠들어 댄다. 멀리서 보고 있는 베트콩들이 얼마나 약이 오를까. 먹는 음식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예의 바르지 못한 ‘따이한’이라 하겠지. 무더기, 무더기 보이는 달걀을 정글화 신은 구둣발로 다 깨부수지 않는 최병장이 기특하다.
베트콩의 냄새가 가득한 집들이 대충 헤아려도 마흔 채가 훨씬 더 된다. 어느 집에도 대포나 소총은커녕 탄피 한 개도 보이지 않고 문서 한장이 안 보인다.
그 짧은 시간에 잘도 감추었다. 군인들은 산도 만들고 강줄기도 옮기는데, 이런 것을 감추는 거야 식은 죽 먹기겠지. 이렇게 자기네 보금자리를 쳐들어와서 박살내는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 게 더 신기하다.
우리를 공격했다가는 저희들의 보금자리인 이 정글에 모두 불이 붙을테니 겁을 내는 걸 거야. 우리에게는 든든한 후방 전우들이 대기한다고 말씀들 하셨잖아. 하지만, 치열한 전투가 붙어 지리를 잘 알고 있는 대대병력과 처음으로 들어와 지리를 생판 모르는 소대병력이 싸운다면 누가이기느냐는 자명한 일일 텐데. 그리고 우리를 공격한다면 우리를 다 죽일 수 있겠지만, 벌떼처럼 달려올 후속부대를 겁내는 것이겠지. 대대병력이 공격하지 않으니 다행이랄 수밖에. 앞에 가는 소대장님은 상부와 우리 위치를 교신하고 있겠지. 끔찍한 일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을 것만 같다.
한국군 일등병은 하루 1달러
소위는 4달러
소령은 5.5달러
부자 나라 미국의 일등병은 11달러
미군에 준해서 준다고 한 수당
어디로 새는지 우리는 몰라
아무소리 하지 말고 싸우다 가자
목숨이나 부지하다 돌아가자.
-〈전투수당〉 전문
9. 베트콩 K13대대
마흔 채의 집 중간쯤의 어느 집을 들어가니 여자가 월수를 하고 닦은, 피가 묻은 거무틱틱한 걸레가 보이는데, 조상병이 내 배낭에 달아주며
“이건 재수 좋은 것이야, 이거 달면 총알도 비켜간단 말이야”
글쎄, 재수있다는 걸 일부러 풀어 던질 필요야 없지. 반드시 우리를 멀리서 바라보는 눈들이 있을 텐데, 첨병분대는 왜 빨리 지나간 것일까, 은밀한 수색은 틀렸지만 차분하게 한 집 씩 수색을 철저하게 하고 가지.
‘처삼촌 묘지 벌초’를 하나?
우리가 얼마나 어렵게 들어온 곳인데…
한 집마다 서너 명이 자고 먹고 생활 할 수 있겠다. 마흔 채의 비슷비슷한 집들이니 적어도 2백 명은 족히 살만하다. 이들이 모두 동굴로 들어가서 숨어있을 테니 몇 개의 동굴에 몇 명 씩 숨어있을까. 자연동굴이 든 인공을 가한 동굴이든 이 병력이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이라면 무척 넓어야겠다.
1분대가 산꼭대기를 향하여 완전히 노출된 채 가는 것이 먼 눈으로 보인다. 산등성이 길은 여기도 수많은 사람이 밟아 반짝거린다. 어쩌려고 저리 겁도 없이 가나? 저 산꼭대기에 베트콩들이 ‘나잡아 봐라!’ 하고 기다리나?
한두 곳이 의심나는 게 아니라, 정글 전체가 의심이 가니, 자기가 생각해서 의심이 가는 데를 한 탄창 씩 쏘아보면 좋겠다. 호랑이가 나올지, 너구리가 나올지, 베트콩이 튀어나올지 몰라.
산 정상에 거의 다 왔는데 웬 비행기 소리냐? 제공권은 미군이 장악하고 있으니 적군의 비행기는 아니다. 은색을 반짝이며 동쪽 하늘로부터 느린 속도로 날아오는 비행기는 전투기가 아니라, 전단지를 살포하거나 마이크로 선무방송을 하는 비행기 같다. 꼬리 부분이 사다리꼴로 생겼다.
멀리서 올 때는 천천히 오더니 우리 머리 위로 지나갈 때 보니 상당히 크고도 빠르다. 정글을 정찰하러 다니는 비행기인가? 그렇다면 왜 저렇게 빠른 속도로 날아갈까? 작전하는 우리 육군에게 무슨 도움을 줄까?
나중에 안 이 비행기는 2차 대전 때 일본전투기를 수백 대 이상 떨어 트린 P-38 라이트닝 전투기였다. 지금은 연락기로만 쓴단다.
수색 작전하는 우리의 기다란 줄을 보았겠지. 그런데 이 비행기가 서쪽 하늘 멀리 가더니 한 바퀴 큰 원을 그리며 처음 올 때처럼 우리를 향하여 내리꽂히듯 날아온다, 비행기가 우리를 베트콩으로 오인한 게 아닐까?
“모두 엎드려!”
소대장님이 낮지만 묵직한 톤으로 명해 모두 엎드렸다. 내리꽂히던 비행기가 “푸슉”하고 미사일을 딱 한 발 쏘고는 다시 머릴 들어 서쪽하늘로 올라간다.
“콰앙…”
우릴 향하여 쏜 그 미사일이 조금 전에 우리가 수색하고 나온 곳을 향해 날아가 터진다. 저 방송기에 무기가 장착되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시야를 가리는 연막탄이나, 바람의 방향을 알려주거나 서로의 상황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닌 고폭탄高爆彈이다. 근처에 있다가 맞은 놈들은 박살이 났을 것이다. 폭음에 놀란 정글 속의 새들이 여기 저기 무작위로 날아오른다.
“ ! ? …”
미군의 항공기와 우리의 무전 소통이 안 된다. 베트콩이 저기 있으니 가서 잡으라는 걸 우리에게 알려주는 신호 같다. 그 걸 소대장님이 감지했는지 올라가던 1분대가 첨병을 필두로 무척 빠른 걸음걸이로 다시 내려온다. 연대장님이 은밀하게 들어가라 했는데, 비행기가 쏜 미사일 소리가 얼마나 큰지 이 모퉁이 저 모퉁이 모두에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니 ‘은밀하게’라는 말은 틀렸다. 일이 이렇게 된 바에야 저런 포탄 백 개만 쏴 주고 가면 좋겠다. 쥐구멍에 불 놓는 것 같이 놀란 베트콩이 튀어 나올 때 우리가 몽둥이로 두드려 잡으면 좋겠다. 미군이 우리를 돕는 것인지, 판을 깨는 것인지(이제는 차라리 우리의 위엄을 보여 주는 게 낫겠는데…).
우리 3분대는 기다렸다가 다시 맨 마지막으로 내려오며 땅을 보니 야전삽으로 우리가 간 방향으로 흙을 제켜놓았다. 그것도 여러 군데에 꺾어지는 길 초입마다.(소름이 쫘악 돋는다)
이놈들이 우리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 우리를 손바닥에 놓고 ‘구슬치기’를 하고 있다. 조상병에게 베트콩의 야전삽이 한 짓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니 고개를 끄득끄득한다. 고참은 다 아니 그냥 가자는 표정이다.
내려가면서 뒤를 자주 돌아보게 된다. 혹시나 최병장의 목에 날카로운 기역자 월남 낫이 지나가지 않았는지, 최병장은 잘 따라오고 있다. 천하태평한 모습이다. 저러다가 콧노래 나오겠다. 이 작전만 끝나고 중대에 가서 내일 모래면
-나는 고향으로 간다- 가서 어머니 만나 어리광 부리고, 순이 만나서 허리도 만져 보고 목구멍을 톡 쏘는 막걸리도 거나하게 마셔야지.
움직여도, 서도 앉아도 등이 무척도 가렵고 쓰라리다. 등판이 아주 많이 까졌나, 방탄복은 아주 질긴 천이다. 석면섬유 6겹으로 만든 질긴 천이고 그 위에 20kg의 배낭이 누르니 이게 바람이 통할 리가 없다. 땀띠가 엄청 많이 돋았나보다. 아무리 가려워도 다른 방법이 없다.
누구나 상의 방탄복만 입지, 하의 방탄복은 입지 않는다. 설마 총알이 아무리 빨라도 고추를 맞추기야 하겠는가. 혹시나 해서 하느님이 고추는 깊이 감춰두었잖은가. 그런데, 정글에 웬 모기가 덩치는 쬐그만 게 모포 두 장 뚫는다는 새까맣고 독한 월남모기다. 이렇게 극성이람, 우리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또 기다렸나? 틈이 나는 대로 노출된 피부마다 모기약을 바른다. 다행스럽게도 나무에서 떨어져 몸에 붙으면 피를 빠는 산나무거머리는 안 보인다.
다시 마흔 채의 집들이 있는 동네를 지나 내려오는데, 이 동네의 반장도 이장도 보이지 않는다. 산닭들은 아직 어지러운지 닭장에 제 자리를 잡고 들어가 있지 않고 흐트러진 모습 그대로이다. 뭘 쪼아 먹는 놈, 꼬꼬댁 우는 놈. 나무에서 날개를 펄럭거리며 날아다니는 놈.
U자로 돌아서 내려와 미사일이 떨어진 장소까지 왔으나 가시둥치 정글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조용하다. 폭살爆殺 되었으면 피가 튀고 사지가 흐트러진 흔적이라도 있을 텐데.
이렇게 수박 겉핥기식 수색은 피라미 한 마리도 못 잡을 것 같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철수하는 척 하면서 1개 분대 씩 3개 조로 나누어 매복하고 있다가 우리가 다 철수한 줄 알고 나와서
“‘따이한’ 별 거 아니야, 우리의 위대한 당과 수령 앞에서는 오합지졸烏合之卒이야, 모두 나와서 통일 사업에 박차를 가하자, 베트콩 만세!”
하고 모여 있을 때 몽땅 때려잡으면 좋겠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다.
닳고 닳은 놈들인데 왜 그걸 모르겠나. 지난번에 잡힌 포로 장교의 말에 따르면
“따이한은 일렬종대로 길을 따라 수색하면서 그냥 길만 따라가니 가시에 좀 찔리더라도 가시둥치 속으로 다섯 발자국만 들어가면 절대로 잡힐 염려가 없으며, 무전하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저만치 오면 다 들린다”고 했어.
전쟁터에서는 계급이 중요한 게 아니야 월남 고참이 중요하지, 고참이라는 말은 경험을 많이 했다는 것이야. 경험은 교과서 보다 한 수 위지. 태권도 도장에 다니며 기본기에 능숙해도 단증을 따기 전엔 동네 깡패들에게 당할 수 있어.
사람은 처절한 아픔이 여기 저기 널려있어도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해서 순간순간의 삶이 행복한지도 모른다. 닭장에서 닭을 잡아 목을 비틀어도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 옆에 있는 닭들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모이를 먹는다.
여기에는 아무 것도 건질 게 없다. 당연한 일이지, 모두 다 동굴 깊이 숨어서 오늘은 나오지 않을 텐데 뭐. 다시 다른 길로 정상을 향하여 간다, 여기는 또 다른 베트콩의 세상이다. 가는 길마다 주렁주렁 달린 탐스러운 열매들이,
“나를 따 맛있게 먹어보세요”
하고 혓바닥을 홀리고 있지만 아무도 따지 않고 지나갔으니 탐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정글 깊은 곳에 이런 선악과가 많으니 여기가 ‘에덴’이지,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여기 와서 살고 싶을 정도이다.
놀고 있네, 집이고 동굴이고 논밭까지 다 때려 부셔놓고 여기에 와서 살겠다고? 누구 맘대로,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이 땅에 두 번 다시 오면 강아지다.
시계가 없어서 모르긴 하지만 한 시는 넘은 것 같다.
“베트콩 장교를 한 놈 잡아야 시계를 찰 수 있는데…”
늘 최병장은 시계 타령을 했지.
그 길을 따라 가며 아무리 자세히 살펴보아도 베트콩은 그림자도 없다. 적군이 덤비지 않는 데야 뭐 우리도 별다른 재간이 없다.
엄청 많은 병력이 있는 게 확실하지만 다른 뾰족한 수가 없이 K13 대대 「바운드리」를 벗어나 정상을 지나가니 상당히 넓은 개활지에 다다랐다. 한 쪽은 절벽이고 한 쪽은 평지다. 평지에 모두 앉았다. 분대별로 앉아 늦은 점심을 먹는데 소대장님이 훈시한다.
“이미 우리가 온 걸 적들이 눈치 채고 모두 동굴 깊이 피했지만 저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만일에 적이 박격포나 B40(RPG7) 적탄통을 쏘면 모두 저 절벽으로 몸을 피해라. 함부로 개인행동 하지 말고… 경계를 철저히 해야 한다.”
불행은 점 점 가까이 오고 있는 데 아무도 모른다. 당연한 일, 잠시 후에 큰 일이 벌어질 걸 알면 모두가 자연스럽지 않겠지.
10. 어떤 상황
방탄복 입은 채 철모를 베고 누워
총을 가슴에 안고 별을 헤인다.
어느 전우, 별이 되었나 날아가는 별똥별
전갈, 독사 올지 몰라 모기약 발라
이 밤에 적군이 올지는 모르지만 토끼잠
고향 산에서 진달래 꺾는데 느닷없이 터져나가는 크레모어 꽝!
조명탄 불빛 아래 작은 조각배 하나
조각배에 무기가 있으면 좋을 텐데…
피투성이 베트콩 한 명, 잉어 두 마리 뿐
“살겠나?” 위생병에게 묻는 소대장
“어렵습니다.”
“모두 뒤로 물러서라!”
박격포는 쏠 때 포신이 움직이기 때문에 같은 고각高角과 사각死角을 수정해서 쏘아도, 그 다음에는 앞의 탄이 날아와 터진 자리에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으니, 초탄이 떨어진 자리로 달려가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배웠다.
여기의 지형을 보면 동, 서, 북쪽은 낮은 야산으로 밀림이지만 남쪽은 70도 경사의 절벽으로 수십 미터 낭떠러지이다. 포탄이 떨어질 때 너무 급하게 경사지에 매달리다가는 미끄러져서 저 아래 깊은 골짜기 가시둥치 속으로 내리쳐박히면 정글 귀신 되기 알맞다.
늦게 「씨레이숀」 깡통을 땄지만 제일 먼저 먹고 물까지 마셨다. 먼저 먹은 사람은 무조건 외곽으로 나가 경계에 임해야 모두 안전할 수 있는 법. 배낭을 왼쪽 팔로 반쯤 매고 총은 오른 손으로 잡아 전우들이 마저 먹을 수 있도록, 외곽으로 나갔다. 1m 높이의 가시덤불을 지나 전우들에게서 잘 보이지 않는 데 앉았다.
경계를 서는 것이다. 등이 너무 간지럽고 쓰라려 배낭 위에다가 방탄복을 벗어 그 위에 놓으니 엄청도 시원하여 살만하다. 뒤를 돌아보니 모두들 열심히 자기 배를 채우고 있다. 때는 이때다 싶어 군복 상의를 벗고, 런닝 샤쓰를 벗어 샤쓰의 위와 아래를 양손으로 잡고 등을 아래위로 마구 문지르니 살 것만 같다. 이 시원함은 더운 여름 날 하루 종일 굶다가 얼음이 동동 뜨는 냉면을 먹는 맛이다.
적의 총구가 사면에서 노리고 있는 이 작전지 정글의 한 복판에서 최병덕 병장은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주위를 돌아다니며 누가 언제 쏘았는지도 모르게 떨어져 있는 항공기에서 쏜 듯한 기관총 탄피를 주우러 다니는 가 보다.(귀국할 때 가져간다고? 놀고 있네, 저러다가 큰일 나지)
큰 탄피 두 개를 주워 톡톡 소리나게 두드리며 다닌다. 여긴 적진 한 가운덴데 겁도 없이…
“시발 손등이 다 까졌네, 성한 데가 없어…”
피 흐르는 손등을 보곤 투덜거리며 콧노래를 부르다가 여기 저기 기웃 거리며 왔다 갔다 한다.
참 철없는 고참일쎄, 처음 파병 되어 와서 3개월 조심해야하고, 귀국하기 전 3개월 조심하라고 늘 말하더니 자기로서는 이 마지막 작전이 장난으로 쉽게 보이나.
‘군기가 쏙 빠졌군, 여기 소풍 온 줄 아나?’
자칫하다가는 이게 불행의 씨앗이 될 수가 있는데…
금방이라도 어디서 수류탄보다 위력이 센 곤봉처럼 생긴 RPG7 포탄이 날아와 우리 모두 다 죽을 지도 모르는 판인데 츳 츳 츳. 하기야 고참의 말이나 행동은 틀려도 맞다고 해야 하는 게 군대이긴 하지만… 여하튼 나는 등이 시원해서 좋다. 등에 났던 땀띠가 다 터졌는지 쓰라리기도 하지만 시원하다.
여기 이 정글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하나?
조금 전에 다 도망치고 없는 그 마흔 채의 집에 가서 한 집에 한 사람씩 오늘밤만이라도 주인 노릇하며 자보면 어떨까? 베트콩들이 우리가 다간 줄 알고 와서 보고는 까무러치겠지.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내가 뭐 스님이냐, 집도 없고, 절도 없이 이런 정글에서 자다가 죽어야 하나. 여하튼 정신을 바짝 차리자. 오늘이 힘들어도 내일은 또 다른 태양이 웃으면서 동쪽하늘로 솟아오르겠지.
스님 얘기가 나와서 생각난다. 중학교 졸업하고 출가出家하여 큰 절의 불목하니 행자로 불도를 배우던 중에 주지 스님에게 잘 보여 스님들이 먹는 국 담당을 하게 되었는데, 스님들이 나물로 만든 국이 영 맛이 없어 남기는 게 미안해서, 잠시 짬을 내어 미꾸라지를 냇가에서 잡아와 국을 끓일 때 넣었더니 스님들이 국을 두 그릇 씩 먹어버렸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감찰 스님께서 수일 만에 미꾸라지 탕을 발견하여 다시 불목하니로 강등 되어 수행하던 중,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기 직전에 입대하여 파병되어 온 2소대 성상병의 이야기.
12중대 뒷산 정상 3km에 있는 우리 중대 경계 병력과 대대통신대가 함께 근무하는 op- Observation Post.(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설치 운용하는 작은 초소)에 문서를 전달하러 갔다 오는 길에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성상병은 간 크게도 부처님의 도움이 항상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여 베트콩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그 험한 길에 늘 소총을 휴대하지 않고 단검만 차고 다녀서 벌어진 일이다. 군인의 생명은 두 개인데 그 하나는 소총 아닌가.
구부러진 길에서 한 개 고비를 돌아오다가 베트콩을 만났다는 것이다. 모퉁이 돌아가는 길에서 베트콩과 1:1 만났는데 둘이 다 비무장이었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 서로 얼굴만 바라보다가 성상병이 두 손을 모아 합장合掌을 하고는, 절에서 수없이 반복하여 외우던 그 많은 경 중에 아무 경도 생각나지 않아,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기도문을 외웠더니 비무장인 베트콩도 성상병을 따라 합장하고는,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경을 외우며 쳐다보고 약속이나 한 듯 서로 뒤돌아 오던 길로 냅다 뛰어 자기가 온 길로 내달렸다는 일이다.
아깝다, 넝쿨째로 굴러온 걸, 무공훈장(적어도 인헌무공) 탈 뻔했는데…(다행스럽게도 두 사람은 무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생을 면했다는 이야기다. 사병들 사이에 여러 날 동안이나 얘깃거리였지만 장교님들은 모른다)
“적을 속이고 유인해 내기 위한 계략이 없이 적진에 들어가는 건 무모한 전략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소대장님은 베트콩들이 가다가 흘려 놓은 찌꺼기(다리가 부러져서 못쓰게 되었거나, 복통이 심해 동굴에서 나와 땅에 입을 대고 토하고 있는) 베트콩을 공짜로 주우려고 하는 것같다.
그들도 나름대로 의리가 있고 전우애가 있을 텐데, 어림없는 일이지. 총을 맞고 자빠지면 적진에 전우를 두고 가는 당나라 군대가 있을까. 무슨 방법으로든지 전우의 시체라도 가져가야지. 무슨 낯으로 그저 돌아가겠나. 어느 나라 어떤 군대라도 전우의 시신을 놔두고 오면 높은 분들이 다시 부대를 정비하여 시체를 찾아오라고 되돌려 보내겠지.
우리 편이 아무도 없는 적진의 한 복판에 던져진 우리 30명, 스스로 오아시스를 찾아가야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적을 찾아야한다. 이 정글 지옥의 한 복판에서.
차라리, 식량은 넉넉하니 잠복하자, 이틀이고, 사흘이고 무슨 걱정이냐. 네가 지치나, 내가 지치나, 한 번 길고 긴 끈기로 대결해보자.
사나흘이 지나도록 우리가 꼼짝 않고 매복하고 있다 보면, 이놈들이, 이렇게 많은 대군 6백 명 이상이 사는데 설마 몇 놈이야 못 잡겠나?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지구전에 돌입하자. 한국군이 아무리 무섭고 두려워도 며칠 동굴 속에 있으면 좀이 쑤셔서 안 나오고는 못 배길 것이니.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라 하여 정신 똑바로 차리면 못 이룰 일이 없고 손자병법 1계에 만천과해瞞天過海 적의 눈을 속이고 바다를 건너라고 했으니, 다시 들어올 수 없는 이 깊고 거친 정글에서 반드시 전과를 올릴 수 있으리라. 후에 우리가 두 번 다시 여기 올 수는 없을거야.
또 엉뚱한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주인이 다 도망가고 없는 여기 K13 대대의 본부를 우리가 아주 빼앗아 둥지를 틀고 앉으면 깨끗하게 일을 끝낼 수도 있지 않을까? 여기에 있는 동굴을 모두 빼앗아 대궐을 지어 연대장님과 대대장님도 초청하여 맥주 파티도 벌리고 …
‘미친 소리 작 작 해라, 여기가 네 안방인 줄 아니?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엄청난 위험이 한 발 두발 다가오는 걸 모르고 정신 차려 이 자식들아!’
적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수 있는 이런 개활지에서 씨레이숀을 단체로 먹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이냐. 소풍 와서처럼 이렇게 오순도순 둘러 앉아 음식을 먹는 일.
소대장님 말씀대로 이런 자리 가운데 포 한 발 떨어지면 몰살할 수도 있으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씨레이숀을 먹어야 한다.
전우란 무엇인가. 너는 내 등 뒤에서 총구가 나오나 보고, 나는 너의 등 뒤를 살펴 주는 것이지. 무얼 먹든 마시든 언제나 총은 바로 발사될 수 있도록 오른쪽 무릎 위에 있어야한다. 소총의 약실에 실탄은 물려 있고 자물쇠는 오른 손 엄지로 밀면 되니 잠시라도 정신을 놓아선 안 된다. 천당은 창창하게 푸른 저 하늘에 있고, 지옥은 여기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 밑에 있을지도 모른다. ‘용감한 한국군 30명이 동굴 속에서 저항 하는 베트콩 백 명을 사살했다.’는 뉴스가 나올 때까지 수색해보자.
우리는 적군의 휘하에서 숨도 못 쉬고 억압받는 베트남 국민들의 정의를 위하여 파병된 십자군이니 남을 도우려면 확실히 책임을 져주어야 한다.
잠시 생각해 보니 어제 오늘 몇 시간 동안에 엄청나게 많은 일이 벌어졌구나.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는 이 나라의 힘이 부치니 우리가 목숨을 걸고 막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 와서 민간인들과 접촉해보니 이 민간인들은 이미 발갛게 붉은 물이 들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결사적으로 공산주의를 막아내려는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자기나라를 지키려고 하지 않으면, 조금의 도움으로 이 나라의 공산화를 막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 같다. 모택동의 말대로 “백성은 물이고 당원은 물고기다” 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만 하다. 오랫동안의 외세의 침략에 그저 자기보존주의만 팽배해있는 것 같다.
우리 인간은 잠시 후에 일어날 일을 몰라서 삶이 생복한지도 모른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행복한 삶이 아니라 엄연하게 닥쳐올 지옥일지도 모른다.
추운 겨울밤 따스한 아랫목에 목침을 베고 자다가 천장에 매달렸던 메주가 떨어져 뇌진탕으로 죽는다든가, 재미있는 얘기로 깔깔 웃고 있다가 어디서 누가 쐈는지도 모르는 유탄에 맞아 죽을 것을 예측하다면 웃을 수 있겠는가.
고국에서 오래 전에 사두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내일이 마감인 1등의 복권을 오늘 저녁에 찾아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어쩌면 인간은 앞날을 모르기 때문에 행복할 것이다. 그래 앞날은 모르는 것, 알면 불행해지는 미래.
오늘 저녁에 여기서 숙영하고 있는데 한 2백 명의 베트콩이 온갖 포를 쏘고 나서 돌격을 감행해 온다면 여기서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의 꼬리는 앞의 생각이 아직 남아있는데 벌써 그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군인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먹은 씨레이숀의 깡통은 스스로 알아서 땅에 파묻는다.
작전지에서는 서로의 눈빛을 보고 알아차려야 한다. 가능하면 말소리를 내지 않는다.
찰랑찰랑 쉬임없이 오가는 파도
조각배 타고 멀리 가고 싶은 마음
푸른 바다를 그리워하던 소년이
소원대로 배를 타게 되었는데
이게 뭐냐 배가 앞산보다 컷지만
바다에 나오니 한 개의 나뭇잎
그까짓 일 년이야 금방 지나갈 걸
매일 큰 파도와 생사 혈투로구나
아침에 눈을 떠야 살아있구나
고향 땅엔 진달래 곱게 피었겠지
날 위해 기도하고 계실 어머니
이제 겨우 반 년, 세월아 화살같이.
-〈소년과 바다〉 전문
11. 별은 영혼인가
‘나무 잘 타는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다’
베트남에 먼저 와서 전투 경험이 많은 ‘월남고참’이라고 반드시 살아남는 건 아니다.
‘식사 시간에는 개도 건드리지 마라’ 했지만, 지금 우리가 잠시 음식을 먹고 있는 동안에 이놈들이 덫을 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우리를 해칠 기묘한 짓을 하고 있을지 모르니 허를 찔리고 후회하기 전에 정신을 더욱 바짝 차려야한다.
지금 우리가 있는 남쪽은 미끄러져 떨어지면 지옥 가기 좋을 만한 낭떠러지 이지만 동쪽은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보다는 상당히 높은 위치라 저 숲 어디선가 베트콩들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의미심장意味深長하게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신발 끈을 꽉 매고 철모 끈을 조여라! 너를 위해, 가족을 위해, 조국을 위해, 고향집에서 기다리고 계실 어머니를 위하여!
“개활지라서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선임 김중사님의 걱정스런 말에
“괜찮아, 걱정 마시오, 허허실실虛虛實實이라고 겁을 먹은 이놈들이 오늘 밤에는 쳐들어오지 않을 테니까.”
소대장님도 속으로는 꺼림칙하겠지만 모두를 안심시킨다. 병사들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모두가 죽든지 살든지 아닌가.
「짜빈동」 전투에서 한국해병대 한 개 중대는 베트콩 연대 병력 천 명을 박살냈고, 베트남 허리 17도선의 「캐산」 전투에서는 미군 해병대가 또 엄청난 전과를 올렸다고 들었다. 미군은 물론 전투기의 항공지원과 함포지원까지 받았다지만.
그래, 우리는 알보병이지만 특공 교육을 받았으니 문제가 없지. “오늘 여기 숙영하게 되면 남쪽은 낭떠러지니 비워 두고, 1분대 이하사는 서쪽을 맡고, 선임하사는 북쪽을, 그리고 나와 3분대는 저 높은 지대를 향해 동쪽을 맡기로 한다. 아무래도 저 위가 몹시 수상하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각자 자기 위치로 가서 잘 살펴보도록 한다. 너무 멀리는 가지 말고."
우방군 아무도 여기 들어온 흔적이 없고, 이 깊은 데를 들어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니 여기는 원시림 그 자체이다. 베트콩이 여기 들어와서 또아리를 틀기 전에는 밀림 그 자체로 삶과 죽음을 반복했을 것이다. 저희들끼리 태어나서 사랑하고 싸우면서 병들어 죽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했을 정글. 소대장님의 혼잣말 같은 훈시는 자주 반복된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일에 포탄이 날아오면 남쪽 낭떠러지로 몸을 피하는 게 좋을 거다”
그래, 생사는 운에 맡기고 오늘 밤에는 우리 소대장님이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명령 소리가 정글에 울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원자탄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터진 것이 20년이 넘어 이제는 원자탄의 위력이 거기 떨어진 폭탄 화력이 백배가 넘는 다는데, 월남 북쪽의 수도인 하노이에 그냥 한 방 때리고 북베트남을 멸망시키고 말지, 왜 1년에 60만 명이 넘는 미군이 이 월남 땅의 정글에서 수 없이 죽어가는 이런 소모전을 하는지 모르겠어, 하긴 6.25 때 미군이 한국에서 5만 명이나 전사하고 20만 명이 부상했지만 원자탄은 사용하지 않았지. 아니 사용하지 못했지. 정치적으로 어떤 뜻이 있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일 년의 반은 매일 비가 오고, 나머지 반년은 비가 거의 오지 않아 초목은 살아남기 위하여 잎을 가시로 바꾸어 살아가지만 늘 삶의 색깔인 초록색의 나라. 고국의 산이나 월남의 정글 속이나 벌레들의 노래 소리는 같구나. 짝을 찾는 소린가, 짧은 삶과 영원한 죽음에 대하여 토론하는 소린가, 애절하게도 들리고 경쾌하기도 들리는 벌레들의 소리, 여하튼간에 오늘 밤에 여우, 늑대, 오소리는 상관없지만, 길을 잘못 든 호랑이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대만한 구렁이나 붉은 색깔의 독사도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
M16소총의 길이만큼이나 긴 포, 걸음을 걸을 때마다 넝쿨에 걸리는 무거운 배낭 위로 비쭉 나온 이 로켓포를 13대대 본부 저기 쯤에 한 방 갈기면 좋겠는데 이건 아껴야지.
한번 쏘고 버리는, 철판 2.5인치 뚫는다는 80cm의 너무 길어 귀찮은 이 로켓포, 정글 행군할 때는 힘들지만 이게 반드시 필요할 때가 있을지 모르니 아끼고 참아야지. 한 발로 탱크를 박살낼 수 있는 이걸로 K13대대 본부 동굴에 한 발 쏘아 선물로 넣어 주면 원시의 동굴이라도 폭삭무너질 거야.
분대별로 각자 맡은 위치로 간다. 우리는 동쪽이다. 야산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하품하고 있는 제일 기분이 좋지 않은 위치다. 여하튼 저놈들이 날개가 없는 이상 쳐들어오더라도 길을 따라 올 테니 잘 살피고 클레모어를 설치해야 한다. 개활지가 넓지는 않지만 비상시에 대비하여 소대장님은 우리를 분산시켜 놓는 것이다.
우선 우리가 숙영할 위치에서 앞으로 나가 지뢰가 있는지 「부비츄렙」이 있는지부터 살피는 것이 최우선이다. 이게 작전하는 병사가 마지막으로 피우는 담배일지도 모르지만 담배에 불을 붙여 반 쯤 피운 다음 꽁초는 다시 담배갑에 넣는다. 씨레이숀 한 끼 분에 4개피 씩 들어 있는 담배.하루 12개피의 담배는 애연 병사에게는 모자라는 양이니 아껴야한다.
어디에 「크레모어」 폭탄을 설치하는 게 좋을까, 숲속에 도마뱀처럼 웅크리고 숨어있는 베트콩은 없는가. 천천히 일대를 샅샅이 뒤져보지만 아무 것도 없다. 멀리 어디선가 들리는 포성. 늘 들어온 소리라 그냥 흘러버릴 뿐이다. 모든 행동은 고참 조상병이 하는대로 눈치껏 따라하는게 좋다.
이젠 무척 안전하다고 생각했는지 최병장은 귀국준비 하느라고 혹시 떨어진 탄피 없나 멀리로 찾아다닌다. 여기가 어딘지 뻔히 알면서 여기저기 마구 쏘다니나. 그까짓 탄피 몇 개 고국으로 가져간다고 돈이 되겠나?
‘목숨 귀중한 줄 알아야지’
멀찍이 앉아서 보는 소대장님도 제지하지 않는다.
중대장님의 무전을 받고 난 소대장님이 전달 사항이 있다며 우리 3분대 쪽으로 모두 모이게 해서 자기네 맡은 데다 배낭을 놓고 총만 들고 와 모두 옹기종기 앉아서 지시사항을 들으려고 하는데 엄청난 일이 터지고 말았다.
십여 미터 떨어진 동쪽 풀밭을 최병덕 병장이 오는 것이 보였는데
“딱, 번쩍- 쾅-, 번쩍- 쾅-, 번쩍, 콰아앙!”
안전핀이 빠져 수류탄의 뇌관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인계철선에 연결된 불발탄으로 만들어 이어 놓은 포탄 두 발마저 터졌다. 최병장이 풀썩 앞으로 고꾸라진다.
‘앗, 적이 포를 쏘는구나! 감히 우리에게 도전을 해?’
순간적으로 생각나는 게 연대 보충대에서 교육 시간에 들은 안전교육과 소대장님의 훈시다.
“적이 포를 쏘면 포탄이 떨어져 터진 자리로 가라, 적의 똥포는 편차가 있어 그 자리에는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이 총만 들고 무작정 뛰어간 곳이 첫 번 째 포탄이 ‘번쩍- 쾅 쾅쾅’ 하고 터진 자리로 달려가니 최병장이 엎어져 있어, 바로 그 앞에 가서 엎드리려고 왼손을 짚었는데, 왼손이 힘없이 푸욱 내려가서 캐액 고꾸라졌다. 둥근 철모 모서리가 땅에 먼저 닿아 얼굴 깨지는 것은 막아줬다.
휴우---
왼손이 왜 힘이 없을까? 몸을 꿈틀거려서 얼른 왼손을 들려고 하나 전인하기 전까지는 아픔을 느끼지 않았고 파편에 맞은 줄 전혀 몰랐다.
그리고 왼쪽 무릎 아래가 시큰거려 자세히 보니 정글복 바지가 부욱 찢어져있다. 오른손가락으로 헤집어보니 거기에서도 피가 정글화로 흘러내린다. 아프다, 아픔을 느끼는 건 살았다는 것이지.
‘나도 맞았구나, 적을 잡기는커녕 그림자도 못 봤는데…’
“아이구- 아이구-”
내 눈 바로 앞에 엎드려 있는 최병장이 슬피 우는데 보니 양쪽 엉덩이 살이 뭉텅뭉텅 날아가 없고, 피가 줄 줄 많이 흘러내리는 게 커다란 쇠고기를 잘라놓은 것 같다.
‘나야, 찰과상이지만 최병장의 상처를 어떻게 지혈해야하나, 아니지 나부터 지혈하고 다음 생각을 해야지’
“뭐냐?”
모두 정신이 멍한데 소대장님의 짧은 고함소리가 퍼진다. 모두 자기 배낭 있는 데로 달려가 전투준비를 하려는데 또 이게 무슨 일이냐?
“아- 아- 아”
아주 여러 명이 파편을 맞은 것이다.
최인상 상병은 머리에, 백종옥 유탄사수는 목에, 배병원 상병은 어깨에, 00상병은 등에, 나는 팔과 다리에, 최병장은 엉덩이가 다 헤집어져 정육점에 뭉텅 칼로 잘라놓은 피가 줄줄 흐르는 고기같다. 중상이다.
적이 대포나 총을 쏘는 것이 아니고 부비츄렙을 건드려 일어난 이 환장할 일이 현실인데, 김중사님은 도대체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하는지, 「부비츄렙」이 터진 데로 달려와서 여기저기 살피더니 수류탄이 터진 데에서 결국 찾아냈다. 비닐로 꼬아진 초록색 굵은 인계철선引繼鐵線이다.
‘큰 일 하셨네요.’
“이렇게 굵은 줄을 못 봤단 말이야?”
생사의 기로에서 울부짖는 최병장을 보고 고함을 지른다. 지금 그 걸논할 때가 아닌데…
벌써 해거름인데, 병원으로 후송을 보내지 않으면 최병장은 오늘 밤에 별이 되어 은하수로 갈 것 같은데…
“빨리 헬기부터 불러라, 중대장님께 보고도 하고”
임채선 통신병이 「롱안테나」를 꽂더니 재빨리 맹호사단 전체의 통신이 통하는 병원 생명수 망으로 주파수를 맞추어 후송헬기를 부른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본래의 임무를 다 하지도 못하고 적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다니!
‘반반한 돌 위에 앉거나 배낭을 놓지 말고, 의심 가는 데가 있으면 다시 한 번 보라’고 소대장님이 누누이 신신당부申申當付했는데. 잠깐의 실수로 이런 엄청난 결과를 만들다니? 이게 무슨 황당한 꼴이란 말인가. 오늘을 위하여 그토록 힘들여 노력한 훈련이 다 허사가 되고, 멀리서 우리를 바라보는 후방 부대들과 대대장님, 연대장님께 면목이 없게 되었잖아. 병사 한 명의 실수가 이토록 슬픈 결과를 만들다니. 다친 전우들이 아프다는 소리를 내기 싫지만 상처가 쑤시니 여기저기서 낮은 신음소리가 들린다.
맑은 날씨에 안개도 없어 천만 다행스럽게도 어둡기 전에 미군의 헬기가 온다고 한다. 맹호사단과 담을 하나 사이로 붙은 106 병원은 상당히 먼 거리인데 가능할까? 「퀴논」에서 그 높은 「꾸멍」 고개 위로 높이 즉시 날아와도 한 시간은 날아와야 할 텐데.
“모두 앞으로 나가 경계부터 철저히 해라, 헬기 올 때까지 두 눈 똑똑히 뜨고 자기 위치를 지켜라!”
이 작전에는 위생병이 따라 오지 않았으니 어떻게 하나, 최병장의 상처는 너무 깊고 넓어 아무도 압박붕대로 묶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다른 경증 환자들은 자기 압박붕대를 꺼내 나름대로 동여매지만, 나도 정신이 멍하여 압박붕대를 꺼내긴 했지만, 앞에 엎드려 신음하는 최병장의 엉덩이를 보니, 내 작은 상처에 둘러매고 싶은 생각이 가신다.
어떻게든지 폭발에 그을린 소고기 덩어리를 또 진창에 패대기친 것 같은 최병장의 저 상처를 지혈시켜야할 텐데…
파편 맞지 않은 전우들이 붕대로 어떻게 해보려 하지만 손을 쓸 수도 없어 모두 난감한 표정들이다. 압박붕대로 우선 줄줄이 흘러내리는 피를 지혈하는 것이 거미가 처음 망을 치는 것과 흡사하다.
‘사람 엉덩이에 거미가 줄을 쳐?’
경상인 전우들은 큰소리를 내지 않고 스스로 지혈하고 있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다니는 소대장님.
“너도 맞았구나. 팔이 움직이지 않나?”
팔이 축 처져 엉거주춤하고 있는 내 얼굴과 피를 흘리고 앉아있는 팔 다리를 보더니 소대장님이 위로의 말씀을 하신다. 몹시도 굳은 얼굴로.
“헬기가 오고 있다고 좌표를 읽어 달라고 합니다.”
우리가 있는 위치를 지도에서 읽은 소대장님이 알려준다.
“08 ✖ 88”
“헬기가 보인다. 08 ✖ 88 이다.”
정말로 우리를 구원하러 오는구나. 동북쪽 하늘에서 까만 점 하나가 보인다. 가까이 오는데 적십자 마크가 배에 새겨진 구조헬기다. 이윽고 소리가 가까워지며 노란색 연막을 터트리란다.
“낙엽(전사자)이 있나?”
“낙엽은 없고 절름발이(부상)가 여섯이다.”
“헬기가 땅에 내릴 수는 없는 위치다. 구조용사다리가 내려가니 환자를 두 명 씩 묶어 올려 보내라.”
헬기가 십여 미터 높은 허공에서 사다리가 아닌 한 개의 구명줄이 내려왔는데 의자를 뒤로 젖히면 세 명이 앉을 수 있다. 죽는다고 신음하는 최병장 한 명만 서너 명이 들어 올려 앉히고 묶어 올라가라고 신호를 하니 줄이 주르르 올라간다.
‘나도 같이 갈지 모르지만 속이 시원하다’
다시 줄이 내려오자 두 명이 타고 올라간다.
내가 팔을 늘어뜨리고 절뚝거리는 걸 본 소대장님이 같이 후송가란다.
“너도 타고 가야겠다. 가라!”
“괜찮습니다. 안 가도 괜찮습니다.”
“안돼, 가, 우리 철수하는데 짐이 된다. 얼른 타라!”
소대장님의 단호한 명령에 마지막으로 헬기에서 내려온 줄에 매달리니 헬기가 대롱거리는 나를 매달고 줄을 올리며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내가 무슨 곡예를 하는 기분이다. 올라가다가 줄이 뚝 끊어지면 나는 저 녹색의 정글에 몽달귀신이 되겠지?
행여나 저격탄이 날아올까 봐 헬기는 하늘 높이 올라간다.
헬기에 올라가니 백인 미군 기관총 사수가 손을 내밀어 당겨주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최병장이 헬기 가운데 큰대자로 엎어져서 신음하고 있는데 미군이 나에게 묻는다.
“Where’s the wound? 상처가 어디냐?”
어디를 다쳤나 묻는 것 같아 상처를 보여주니
“You’re lucky boy! 행운아구나!”
우리를 실은 헬기가 호알록 계곡을 뒤로 하고 높이 날아간다. 하지만 그 많은 내 짐을 누가 메고 철수할까? 모두 무사히 적진을 빠져나올 수는 있을까? 전우들에게 인사도 못하고 왔어.
“우리는 살았지만 미안해, 정말 미안해”
후송 가는 길
산길 들길 꽃길 세상에 많은
기쁜 길, 슬픈 길, 즐거운 길
사나이 한 번 지나야 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보는 길
피 흘리며 싸우는 전우를 버리고
돌아보며 가는 길 후송 가는 길
남자는 일생에 세 번 운다
군인은 죽어도 울지 않는다, .江
임동후
시인, 한국문인협회청소년분과 회장, 월남전 참전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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