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렝덱스봉 앞 풀밭에 앉은 트레커들 너머로 메르데 빙하와 그랑조라스 북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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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서를 읽다보면 자신이 속해 있는 곳이나 자신이 등반해본 대상에 대한 내용일 때, 더구나 등장인물 또한 익히 아는 이들일 때 더 큰 즐거움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나쁜 날씨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등장인물들이 오르지 못한 산이나 벽을 독자 자신은 올랐다는 가당찮은 자부심도 가지며 읽는 재미는 그만이다. 바로 <Eiger Dreams>가 나에게는 그런 산서에 속하는 셈이다.
- ▲ 원본
와 번역본 <그들은 왜 오늘도 산과 싸우는가>. - ▲ 원본
- 이 책 속의 12가지 이야기 중에 아이거와 샤모니, 그리고 데날리쪽의 이야기는 손에서 책을 떼어놓지 못하게 만든다. 그 후 몇 년이란 세월이 흘러 이 책이 한국에서 <그들은 왜 오늘도 산과 싸우는가>로 번역 출판되었음을 알고 이번에 또 읽어볼 기회를 가졌다.
9월 중순의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이 책을 배낭에 넣고 샤모니 계곡을 내려다보며 즐길 수 있는 트레킹에 나섰다. 몽블랑 익스프레스 산간열차를 타고 레프라(Les Praz·1,060m) 마을에 내린 나는 곧바로 플레제르(Flegere·1,877m) 행 케이블카에 올랐다. 차츰 고도를 높일수록 가을색이 완연하다. 곧이어 렝덱스(L'Index·2,385m) 행 체어리프트에 올라 2,000m 고도를 넘어서니 따뜻한 태양 아래서도 바람이 차다.
- 산양보다 더 사람을 두려워하는 양떼
렝덱스 주변에는 몇몇 트레커들이 오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북쪽 끝 투르 빙하에서부터 남쪽 끄트머리의 구테봉까지 펼쳐지는 몽블랑 산군의 파노라마는 언제 보아도 장관이다.
- ▲ 산양보다 더 사람을 경계하는 양들이 누아르 호수 앞을 지나고 있다.
- 2박3일치 배낭을 짊어지니 꽤나 무겁다. 몽블랑쪽을 보며 남쪽으로 향한다. 한동안 렝덱스봉(Aig. l'index·2,595m) 아래를 돌아간다. 도중에 길을 잘못 들어 시간만 낭비하고 가던 길을 되돌아와 큰 길을 따라 걷는다. 약 1시간 내리막을 걸은 다음부터 오르막이다. 쉬엄쉬엄 걸어 오르는데, 저만치 아래에 산양 한 마리가 반긴다. 2m까지 다가가도 녀석은 도망가지 않고 건너편 드류와 메르데 빙하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낭을 내려놓고 카메라 앵글을 이리저리 돌려보지만 만족스럽지 않아 단념하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1시간 정도 오르막을 올라 글리에르 고개(Col de la Gliere·2,461m) 아래에 이르니 트레커 넷이 반갑게 인사하며 렝덱스로 내려간다. 이윽고 글리에르 고갯마루다. 몽블랑 산군 반대편인 서쪽 지역이 환하게 눈에 들어온다. 코르누 호수(Lac Cornu·2,276m)는 발아래에 펼쳐져 있다. 고갯마루에 배낭을 벗어두고 서쪽으로 길을 잡는다. 누아르 호수(Lacs Noirs·2,494m)에 찾아가기 위해서다. 삼사년 전에 찾아가 하룻밤 자고선 처음이다.
오르막 돌길을 두어 개 넘어서니 작은 알파인 호수가 나타난다. 마침 양떼들이 몰려오더니 멈칫거린다. 녀석들은 겁을 먹고 오던 길로 돌아간다. 산양보다 더 사람을 무서워하는 양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그들 뒤를 따라 바위언덕을 도니 누아르 호수가 오후의 강렬한 햇살에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 ▲ 샤모니 계곡과 몽블랑 산군의 밤 풍경.
- 조심해서 바위들을 타고 내려 호숫가에 닿는다. 가을 가뭄에 수면이 낮아져 있다. 호수에 비치는 몽블랑은 예전과 다름없다. 멀리 양들의 가냘픈 소리만이 들려오는 가운데 정적에 휩싸인 호수를 천천히 둘러보고 배낭을 벗어둔 글리에르 고개로 돌아온다. 곧바로 짐을 지고 코르누호수 고개(Col du Lac Cornu·2,414m)로 향한다. 이제 한두 시간 후면 해가 지기에 잠자리를 찾기 위해서다.
채 1시간이 되지 않아 코르누 고갯마루의 적당한 풀밭에 텐트를 친다. 동쪽으로 몽블랑 산군이 훤하게 건너다보일 뿐 아니라 서쪽의 피츠산군 너머로 지는 일몰도 볼 수 있는 자리다. 아직 해가 떨어지려면 1시간 정도는 남아 있기에 가져온 책을 집어 든다. 책을 펼치다 다시 표지를 바라본다. 설릉을 횡단하는 알피니스트들의 모습만 보아도 가슴이 뛴다.
하지만 제목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과연 산과 싸우며 산에 오를 산악인들이 몇이나 될까 싶다. 그릇된 욕망의 덫에 걸린 몇몇 이들 외에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그렇게나 투쟁적으로 산에 오를 까닭이 있겠느냐 말이다. 대중성과 상업성을 염두에 둔 출판사의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원제 그대로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페이지들을 넘긴다.
- 멀티피치 등반시대에 볼더에 몰두한 존 질
첫 장 ‘아이거, 꿈을 꾸다’부터 읽는다. 17년 전 나 또한 올라본 아이거 북벽을 시도하지만 나쁜 날씨에 등반을 단념해야 했던 크라카우어. 등반은 못했으면서도 재미나게 실패담을 늘어놓는 그의 이야기에 페이지들이 잘도 넘어간다. 그의 동료 마크 트와이트나 종종 보는 샤모니의 유명 가이드 크리스토프 프로피 또한 나쁜 날씨에 아이거 북벽을 포기하는 대목을 접하면서 등반기술이나 경험, 열정 이전에 날씨 운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건너편에 보이는 드류와 베르트 너머의 동북쪽에 위치해 있을 아이거 북벽은 여전히 알피니스트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음을 생각하니 언젠가 꼭 다시 한 번 더 오를 다짐을 해본다. 그 때는 아마 하계등반이 아닌 동계등반이 되리라 짐작해본다.
이제 해가 서쪽 바위산들 아래로 떨어져 한기가 돈다. 방한복을 꺼내 입고 밖으로 나오니 몽블랑의 하얀 설사면이 붉게 물들어 있다. 그와 더불어 샤모니 계곡의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몽블랑 산군 위의 드넓은 하늘이 보라색으로 바뀌면서 어둠이 찾아왔다.
- ▲ 플랑프라에서 코르누 고개로 오르는 트레커들.
- 텐트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침낭 속에 들어 책을 펼쳐든다. 볼더링의 개척자 존 질에 대한 내용이다. 전통 산악인들이 여전히 멀티 피치 등반을 고수할 때 그는 9m도 되지 않는 낮지만 극한의 등반선을 추구하며 볼더링의 수준을 한층 드높인 인물이다. 수학자이기도 한 그는 ‘뛰어난 등반가가 되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의 말만 들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1980년대 중후반, 암벽등반에 한창 재미를 붙인 내가 그의 훈련과 등반에 대한 잡지 기사에 자극을 받아 전국의 몇몇 유명암장을 찾아다닌 추억이 새롭다.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자정이 조금 지났다. 밖으로 나온다. 초저녁 때의 풍경과는 또 다른 장관이 펼쳐져 있다. 샤모니 시가지의 현란한 조명을 받은 침봉들이 하늘 위로 우뚝 솟아 있고, 그 위의 검은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점멸하고 있다. 밤의 아름다움이다. 잠시 후 텐트로 돌아와 ‘발디즈의 빙벽’에서 이본 취나드가 샤모니 계곡 건너편의 몽블랑에서 뻗어내리는 보송 빙하에서 피켈의 일자형 피크에서 곡선형 피크로 획기적인 전환을 착안해낸 대목을 읽다 잠이 든다.
- ▲ 브레방 언덕을 오르는 두 트레커 뒤로 몽블랑 산군이 깨어나고 있다.
- 우시봉은 몽블랑 북서쪽 전망대
아침이다. 해가 텐트에 닿아서야 눈을 뜬다. 샤모니 계곡에는 구름이 잔뜩 머물러 있지만 그 위로는 쨍한 하늘만 펼쳐져 있다. 급할 게 없어 차 한 잔을 마시고 침낭 속에서 좀 더 게으름을 피워본다. 책을 펼쳐 ‘ 텐트에 붙박이가 되어’를 읽으며 1시간을 더 보낸다. 학창시절 동하계 장기산행이나 히말라야 원정등반에서 겪은 고립된 텐트생활들이 떠오른다.
함께 한 이들이 아무리 친한 사이더라도 위험한 등반을 하며 긴장 속에서 장기간 가까이 지내다보면, 더구나 며칠씩 좁은 텐트에 발이 묶여 있다 보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나게 마련이다. 이런 경험을 한번쯤 해본 이들에게, 그리고 장기등반을 떠나고픈 이들은 이 ‘텐트에 붙박이가 되어’를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 ▲ 코르누 고개에서 몽블랑 산군을 배경으로 첫날밤을 맞이했다.
- 이제 아침 해가 텐트에 닿아 따뜻해진다. 벌떡 일어나 텐트를 걷으니 9시가 지났다. 조금 있으니 아래에서 사람 소리가 들린다. 아침 첫 케이블카를 타고 이곳까지 트레킹을 온 이들 셋이 나타난다. 아마 그들은 렝덱스를 거쳐 락블랑까지 갈 모양이다.
그들과 헤어져 이제 플랑프라(Planpraz·1,999m)쪽 긴 완사면을 내려간다. 길은 샤를라농봉(Aig. de la Charlanon·2,549m) 앞으로 돌아간다. 코르누 고개로 오르는 트레커들 몇몇과 아침인사를 하며 지나친다. 1시간만에 플랑프라의 초원이다. 잠시 앉아 쉬며 샤모니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약 30분간 몽블랑을 배경으로 하늘을 나는 형형색색의 패러들을 보고서 브레방 안부(Col du Brevent·2,368m)로 오른다. 등에 진땀을 흘리며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아 고갯마루에 올라 브레방(2,525m) 정상으로 이어진 서쪽 산비탈을 걷는다.
- ▲ (좌) 우시봉에서 샤모니로 하산하며 만나 두 트레커 뒤로침봉들이 솟아 있다. (우) 브레방쪽 알파인 초원에서 풀을 뜯는 양들과 같은 장소에서 이틀밤을 맞이하는 네덜란드 청년.
- 30분만에 도착한 브레방 전망대에는 케이블카로 오른 관광객들이 여기저기서 몽블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북적이는 전망대 언덕을 뒤로하고 남쪽으로 난 돌길을 따라 내린다. 브레방 호수(Lac du Brevent·2,127m)가 눈앞에 있다. 큰 길에서 20분은 내려가야 하기에 그냥 지나친다. 잘 곳이 우시봉(Aig. de Houches·2,85m)쪽이기 때문이다.
곧이어 벨라차 산장(Refuge Bellachat·2,136m) 뒤편 언덕이다. 산장쪽으로 가지 않고 카를라베이롱(Carlaveyron) 자연보호구역쪽으로 난 오솔길을 걷는다. 한두 트레커들이 우시봉에서 내려온다. 가을색이 완연한 알파인 초원 위를 지나 우시봉 정상에 선다. 몽블랑 북서면을 가장 가까이서 건너다볼 수 있는 곳이라 이곳서 보는 풍경은 그만이다. 특히 서쪽으로 시원하게 뚫린 풍경이 좋다.
조금 있으니 개를 데려온 부부 트레커가 올라와 조망을 즐기고 내려간다. 이제 시간은 오후 4시가 가까워져 한두 명의 트레커들도 모두 하산길을 서두르고 있다. 발걸음은 브레방봉으로 향한다. 그곳 알파인 초원에서 하룻밤 자기 위해서다. 마침 양떼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몽블랑과 침봉들을 배경으로 풀을 뜯는 그들을 바라보며 배낭에 기대어 쉰다. 잠시 후 100m 정도 떨어진 건너편 언덕을 보니 누군가가 필자와 마찬가지로 배낭에 기대어 쉬고 있다.
어차피 그쪽 언덕에 텐트를 치고 싶어 드문드문 흩어져 풀을 뜯고 있는 양들 사이를 지나 가보니 키 큰 네덜란드 젊은이가 오후의 한가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 그는 한 달간의 일정으로 샤모니에 와 등반도 하며 이렇게 트레킹을 하는데, 이곳이 마음에 들어 하루 더 자고 싶다며 이미 자리를 펴고 있었다. 텐트도 가져오지 않은 그는 얇은 침낭에 매트리스 하나에 의지해 이틀 밤이나 같은 곳에서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산이 없는 네덜란드에서는 찾을 수 없는 뭔가가 그를 끌어당겼던 것이다.
- 구름 속으로 사라진 패러글라이더
붉게 물드는 서녘 하늘을 바라보며 텐트를 치고 저녁을 맞이한다. 반대편의 몽블랑 또한 장밋빛이 되더니 차츰 희미해져 어둠의 장막으로 사라졌다. 이제 텐트 안으로 들어와 못다 읽은 페이지를 펼친다. ‘탈키트나의 조종사들’의 삶과 애환을 읽는다. 10여 년 전 필자가 매킨리 남벽을 오르기 위해 탈키트나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알래스카의 하늘을 난 적이 있다. 삼사십 분 후 2,200m 고지의 빙하에 사뿐히 내려앉은 조종사의 실력은 대단했다. 바로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들 선배 조종사들로부터 전수한 실력이 아닐까.
1시간이 지났을까, 사방이 캄캄한데도 어디에선가 양들의 방울소리가 들려온다. 쉬지 않고 내내 풀을 뜯어야만 하루의 생을 이어갈 수 있는 그들의 삶 또한 결코 평화롭지만은 않다. 인간들의 보금자리인 계곡 아래의 마을 불빛들을 보며 그래도 인간으로서의 삶이 보다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쌀쌀해진 저녁기온에 어깨를 움츠리며 텐트로 들어와 침낭에 든다. 잠들기에는 이른 시각이라 다시 책을 펼친다. ‘데날리클럽’이다. 북미 최고봉 매킨리를 오르는 이야기다. 지은이 크라카우어는 이번에도 나쁜 날씨 탓에 가장 만만한 웨스트버트레스 루트로도 정상에 서지 못한다. 등반이야기에서 등정이야기가 무엇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도 그의 실패담은 재미가 있다.
한편 그가 묘사한 매킨리 빌리지의 얼음동굴을 읽을 때는 가슴이 싸늘해진다. 10여 년 전 후배들 셋과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남벽을 넘어 하산루트인 이곳으로 내려와 바로 이 춥고 축축하고 끔찍스러울 정도로 좁고 답답했던, 지옥과도 같은 곳에서 이틀 밤을 보낸 필자의 경험 때문이다. 그 춥고 괴로운 기억이 밤새 잠자리를 뒤숭숭하게 했다.
- 깨어나니 아침 7시다. 아직 태양이 침봉들 위로 솟아오르기 전이다. 샤모니 계곡에는 구름이 잔잔히 깔려 있다. 아마도 가을에 접어들어 심해지는 일교차 때문이리라. 약 10여m 떨어진 풀밭에서 비박하고 있는 네덜란드 청년은 꼼짝도 않고 침낭을 보듬은 채 누워있다. 은근히 지난 저녁의 멋진 일몰과 같은 아침 풍경을 기대했건만 침봉들 위로 솟아오른 해는 모든 풍경을 평이하게 만들고 말았다. 실망하며 텐트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드러눕는다. 서너 시간이면 샤모니까지 하산할 수 있으니 급할 게 없다며 또다시 책을 집어 든다.
‘샤모니’에 대한 이야기다. 바로 텐트 앞, 계곡 바닥에 위치해 있는 ‘스키와 등반의 세계적인 수도’ 샤모니에 대해 크라카우어는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각가지 찬사와 놀라움, 그리고 부러움을 표하고 있다. 이곳서 살고 있는 나의 시각에서는 잠시 이곳을 찾은 그의 과장스런 표현에 웃음이 절로 나지만, 파카르 거리의 까마귀클럽에 대한 언급은 적절하지 않았나 싶다. 선술집 까마귀클럽은 여전히 수많은 알피니스트와 스키어, 익스트림 스포츠맨들의 만남의 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샤모니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다 읽었을 무렵, 인기척이 나 밖을 내다보니 두 명의 트레커가 올라와 있다. 그리고 얼마 후, 또 다른 두 명의 트레커가 큼지막한 배낭을 지고 왔다. 가만히 보니 그들은 패러를 지고 있었다. 즉 이곳에서 활강할 준비를 한다. 잠시 그들이 순풍을 기다리는 동안 텐트를 걷는다. 곧이어 순풍을 받은 두 패러글라이더는 곧장 땅을 박차 올라 우시 마을쪽으로 구름을 뚫고 사라졌다. 네덜란드 청년과 함께 멋진 활강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잽싸게 날아가 버린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담지 못한 아쉬움을 가지며 그는 우시로, 필자는 샤모니로 긴 긴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우시봉쪽 완사면으로 내려가는데, 아마 엇저녁에 본 그 양떼들이 열심히 풀을 뜯고 있다. 다시 길을 벨라차 산장쪽으로 잡으며 내려오는데, 두 명의 프랑스 트레커가 다가오며 필자와 같은 카메라임을 확인한 그는 반가웠던지 엄지손가락을 펼쳐들고 좋은 사진 많이 찍으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곧 산장 앞으로 난 샤모니쪽 하산길에 접어든다. 계곡에는 여전히 구름이 자욱이 깔려 있다. 흩어지는 구름들 사이로 샤모니가 깨어나고 있었다.
월간 산[459호] 2008.01 - / 허긍열 한국산악회 대구지부 회원·www.goalps.com
- 구름 속으로 사라진 패러글라이더
- 멀티피치 등반시대에 볼더에 몰두한 존 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