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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벤에셀의 하나님(사무엘상 7장 12-14절) 240602 주일 설교
‘에벤에셀’은 합성어로서 ‘에벤’은 ‘큰 반석’, ‘에셀’은 ‘돕는다’. ‘후원한다’. ‘원조한다’라는 뜻. 즉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 ‘도움의 비석’.
풀러신학교의 리더십 교수인 로버트 클린턴 교수(Robert Clinton)는 1500명의 크리스천 리더들에 대해 수년간 연구한 후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결과를 얻었다. 단 30퍼센트의 리더만이 마무리를 잘했고, 70퍼센트의 리더는 마무리를 잘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70퍼센트의 리더는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클린턴 교수는 “시작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마무리를 잘 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경과 교회사에 등장하는 사람 900명을 연구해 보았다. 그런데 900명 중에 뛰어난 지도자로 평가된 사람은 100명 정도였고, 또 그중에서 인생의 결승점까지 멋지게 통과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것. 특히 성경 속에 인생의 끝부분까지 기록된 사람은 불과 49명뿐. 그는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의 여러 목사를 직접 지켜보며 인터뷰했는데 놀랍게도 90% 이상이 끝이 좋지 않았다고. 때로는 스캔들로 인해 실족하였고, 교회 안의 심한 분열과 덕스럽지 못한 은퇴로 끝이 좋지 않았다.
리더가 마무리를 잘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클린턴 교수는 첫째 돈에 대한 오용을 꼽았다. 합법적이지 않은 돈을 주고받고 사용한 것이다. 둘째 권력 남용을 꼽았다. 셋째 교만을 꼽았다. 넷째 성적 부정행위를 꼽았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다. 성적 유혹은 리더를 파멸시키는 함정이다. 다섯째 가족 불화를 꼽았다. 가족들의 지지가 없는 리더는 오래가지 못한다. 화목한 가정이 마무리를 잘하는 리더가 되게 한다. 여섯째 자기만족을 꼽았다. 이만하면 됐다는 자기만족은 끝까지 잘 달려갈 동력을 잃어버리게 한다.
우리는 어떤가? 이 여섯 가지 중에 해당되는 것이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말년이 괴로운 인생이 될 것이다.
클린턴 교수는 끝이 좋은 사람들의 특징을 한 가지로 지적하는데 바로 높이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라고. 그는 특히 성경의 다니엘을 가리켜 잘 끝내신 분의 모범으로 말한다. 1장에 나온 청소년 다니엘이나 6장에 나온 80대의 노인 다니엘의 모습은 변함없이 멋진 삶으로 소개되어 있다는 것. 이렇게 시작도 과정도 끝도 좋은 것은 다니엘의 삶이 어떤 상황을 만나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항상 높이 계신 하나님을 인식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나라와 성전과 부모를 잃은 상황에서도, 얕은 얼음 위를 걸어가는 정치 세계의 현실 속에서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에도 그는 높이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
어떻게 하면 마무리를 잘 할 수 있는가? 클린턴 교수는 다음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평생 배우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성장하지 않는 리더는 리드할 수 없다. 둘째는 영적 갱신과 훈련이다. 끊임없는 자기 갱신이 없이는 사람은 변질될 수 있다. 로버트 하퍼 박사는 “당신이 변화를 거부하는 순간이 당신에게 죽음이 시작되는 순간이다”라고 했다. 끊임없이 변화되어야 한다. 셋째는 멘토링이다. 마무리를 잘 한 리더들을 보면, 대략 10~15명의 멘토가 있었다고 한다. 발달단계에 따라, 그들의 멘토링을 받으면서 성장했고, 위기를 이겼다.
사람은 시작과 끝을 비교해 볼 때 네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시작도 좋고 끝도 좋은 사람입니다. 둘째는 시작도 나쁘고 끝도 나쁜 사람입니다. 셋째는 시작은 좋았는데 끝은 나쁜 사람입니다. 넷째는 시작은 나빴는데 끝이 좋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결정됩니다.
시작도 좋고 끝도 좋으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작이 잘못되었더라고 끝을 잘 맺어야 합니다. 끝이 좋아야 시작도 빛이 납니다. 끝이 좋아야 과정도 교훈이 됩니다. 끝이 좋아야 공로도 인정이 됩니다. 무슨 일이든지 끝이 좋아야 합니다. 정치도, 사업도, 연애도, 공부도, 대인관계도, 만남도, 신앙생활도 끝이 좋아야 합니다. 물건도 끝이 좋아야 명품이 됩니다. 좋은 영화는 마지막 장면이 좋습니다. 좋은 소설은 결말이 아름답습니다. 좋은 물건은 끝마무리가 깔끔하고, 좋은 회사는 끝까지 책임지며, 좋은 경기는 끝이 좋습니다. 좋은 사랑은 끝까지 아름답고, 끝이 좋아야 명품, 명인, 명가가 됩니다. 결혼도 끝이 좋아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끝이 좋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도 이가봇 시대가 있었던 반면, 본문은 에벤에셀 시대를 기록한다. 이가봇이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린 시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외면하셨다. 그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의 손에 붙인바 되어 고통의 멍에를 메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들이 계속적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에벤에셀 시대는 다르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시대, 그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다. 그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크나 큰 승리가 있었다. 하나님의 손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붙드시고 지켜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들 가운데 평화가 유지되었다.
본문 13-14절. “13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4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우리도 우리들의 죄악으로 이가봇을 경험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하나님을 붙들어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경험해야 한다.
신지애 골프 선수 이야기. 그녀는 일찍이 국내 대회를 석권했다. 2006년 KLPGA 신인상과 함께 MVP, 최저타수상, 상금왕, 다승왕 등 5관왕을 석권했고, 2007년에는 국내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2008년에는 국내 MVP, 최저타수상, 상금왕, 다승왕 등 4관왕을 차지하면서 신지애 천하를 알리기도. 2008년에 비회원 자격으로 브리티시 여자오픈 등 3승을 거둬 이것도 기록으로 남아 있을 정도.
LPGA 투어에서 11승, 유럽투어에서 5승, ALPG투어에서 2승을 기록하였고, 그 밖에 신인상, 상금왕, 다승왕 등을 차지하며 3관왕에 올랐던 선수.
신지애 선수는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에서 합동측 신재섭 목사님의 1남 2녀 중 장녀다. 그녀에겐 어린 나이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커다란 아픔이 있었다. 2008 브리티시여자오픈 마지막 4라운드를 앞두고 신지애 선수는 우승하게 되면 그 영광을 돌아가신 어머님께 돌리겠다 말했다. 항상 웃는 신지애지만 ‘어.머.니’라는 얘기만 나오면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는데 박세리의 세계제패로 골프바람이 불 때였다. 이들을 일명 ‘박세리 키드’. 개척교회 목사인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동생.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하게 생활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2003년 11월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고 두 동생마저 중상을 입고서 병원에서 1년여 동안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 가정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커다란 시련이 불어 닥친 것.
그럼에도 그녀는 오직 믿음 하나만 붙잡고서 동생들의 병수발과 운동을 병행해나갔다. 넉넉한 가정형편이었던 또래 선수들이 개인레슨과 꾸준한 대회참가, 해외전지훈련 등을 할 때, 그녀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천사표 어머니를 닮아서일까? 아니면 그토록 자상하던 어머니를 일찍 불러간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을 주신 것일까? 신지애 선수는 2005년 아마추어로 프로대회에서 우승한 데 이어 2006년부터 3년 연속 국내 여자 그린을 싹쓸이 하며 두각을 나타내더니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대회는 물론, 마침내 LPGA 메이저 대회까지 우승하며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아름답게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그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그래서 생긴 그녀의 별명이 ‘미소천사, 기부천사’라고.
한참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여의고서 그녀는 ‘이가봇’ ‘하나님이 날 떠났다!’ 얼마든지 불평할 수도 있었다. 원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큼은 잃지 않고서 도리어 하나님만을 붙잡았던 것.
과거 그녀의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제일 먼저 ‘믿음’이라는 두 글자가 있었다. 신지애 선수는 자신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환난 중에 오히려 믿음의 눈을 밝히 떠서 주님을 바라보았을 때 여기까지 도우시는 에벤에셀의 축복을 맛보게 된 것이다.
본문의 이스라엘은 영적 암흑기를 지나고 있었다. 제사장 엘리는 영적 분별력이 없었고, 그의 아들들은 성소에서 여러 가지 죄악을 저지르고 있었다. 블레셋의 전투가 벌어지자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가지고 오지만, 전투에서 패하고, 언약궤도 빼앗기고 만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 싸움에서 죽었으며, 엘리 제사장은 성전 앞 의자에 앉아서 꾸벅 꾸벅 졸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의자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그만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다. 당시 엘리의 자부, 곧 비느하스의 아내는 임신을 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졌을 때 갑작스럽게 해산의 고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죽어가면서 낳은 아이가 바로 이가봇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이가봇 시대를 마감하시고, 에벤에셀 시대를 새롭게 여시기 위해서 신실한 일꾼 한 사람을 예비하셨다. 바로 사무엘이었다. 그의 어머니 한나는 사무엘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 서원했다. “하나님, 저에게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도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사무엘은 기도한대로 젖을 떼자마자 하나님께 드려졌다. 그리고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겼다. 그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였음에도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에게 나타나셨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나님은 사무엘을 부르시면서 자신의 뜻을 어린 사무엘에게 계시해 주셨다. 사무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엘리가 죽은 후 그의 뒤를 이어서 사무엘이 드디어 이스라엘의 백성의 사사가 되었다. 사무엘은 제일 먼저 전국적으로 회개의 운동을 일으켰다. 모든 이방신들을 다 제하고, 오직 참되신 하나님 여호와만을 온전히 섬기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전역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열기가 무르익게 되자,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 족속들로 하여금 미스바로 모이게 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운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로 모였다. 그는 여호와 앞에서 물을 부었다. 이는 물을 쏟아 붓는 심정으로 자신들의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쏟아놓고 철저하게 회개하겠다는 표시였다. 그들은 금식하면서 통회 자복하며 기도했다.
그런데 이 소식이 블레셋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저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모인 것으로 착각하고 군대를 일으켜 미스바로 진격해왔다. 블레셋 군대는 철병기로 무장한 막강한 군대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인 것은 전쟁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하나님 앞에서 성회를 열기 위해서였다. 더욱이 그들은 금식까지 하느라 힘이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의 말발굽소리를 듣게 되자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사무엘에게 나아와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들을 위해서 쉬지 말고 부르짖어 달라고 간구했다.
이에 사무엘은 어린 양을 취해 온전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하늘을 향해서 간절히 부르짖었다. 하나님께서 드디어 사무엘의 기도에 응답하사 큰 우뢰가 블레셋 사람들의 진 사이에 일어나게 하셨다. 블레셋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뇌성벽력에 혼비백산하고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뒤를 추격해서 크나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이에 사무엘은 미스바와 센 사이에 승전비를 하나 세웠는데 그 승전비의 이름이 바로 “에벤에셀”,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우리는 어떻게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을까?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와야 한다(3절).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를 빼앗긴 사건을 언급하면서 미스바 대성회를 선포한다. 이스라엘을 향한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다. 사무엘은 본문 3절에서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라고 외친다. 하나님께 전심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하나님보다 앞에 둔 우상들을 제거한다는 의미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우상에 대해 “당신의 마음이 매달리고 의지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이 하나님이다.마음의 신뢰와 믿음이 하나님도 만들고 우상도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팀 켈러(Timothy Keller) 목사도 저서 <내가 만든 신>에서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우리의 마음과 공상의 세계를 하나님보다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 하나님이 줄 수 있는 것을 주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상”이라고 정의하였다.
우상은 마음속에 하나님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들. 마음을 사로잡고 있거나 기대고 의지하는 것. 따라서 사람도 우상이 될 수 있다. 누구 없이 못산다면서 마음을 빼앗겨 버리면 그 사람이 곧 우상. 돈이나 권력, 명예도 우상이 될 수도 있다. 그것에서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찾고,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면 우상.
<내 안에 커져가는 하나님의 자리>라는 책에 보면 ‘0과1’의 원리가 나온다. ‘1’은 완전하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수’를 나타내고 ‘0’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에서 ‘인간’이라고 할 때, ‘0과 1’의 원리는 ‘나’를 하나님 앞에 세우면 세울수록 0.1, 0.01, 0.001과 같이 점점 작아지지만, ‘하나님’을 앞에 세우면 세울수록 10, 100, 1,000과 같이 그 수는 백 배, 만 배, 백만 배로 엄청난 차이가 난다.
십계명 1계명은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이다. ‘나 외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내 앞에’다.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명목상 하나님의 이름만 앞세우고 살 때가 많다.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 최우선주의를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보다 앞서는 우상들은 다 제거해야 한다.
미국의 기독 실업가 아더 미다스(Arthur Midas)의 이야기. 그는 미국의 10대 재벌 가운데 한 사람으로 대학생 선교단체에 50만 달러를 기부하고 선교재단 설립을 위해 7억 달러를 기부하였다. 그 외에도 구제하며 봉사하는 일에 많은 재산을 헌납하였다.
어느 날 기자가 성공 비결을 물었다. 그러자 그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제가 남보다 특별히 머리가 더 좋은 것도 아니고 더 많이 노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생활신조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첫째는 주일성수, 둘째는 온전한 십일조 생활, 셋째는 하루의 첫 시간을 기도로 시작하는 것, 넷째는 예수를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 그리고 다섯째는 시간과 돈을 선한 사업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다른 건 없습니다.”
남자들 군대 훈련소에서 PRI, ‘피가 나고 알이 배기고, 이가 갈린다’는 사격훈련을 한다. 사격할 때 ‘영점 조정’을 한다. 자기가 쏠 총을 조정하는 것인데, 영점 조정이 안 되면 아무리 앞에 있는 표적에 조준해서 쏘아도 빗나간다. 그런데 영점 조준을 하면 표적을 향해 쏘는 대로 명중한다. 인생도 마찬가지. 인생의 영점조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하고,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이유다.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단하고 마음에 있는 우상들을 제거할 때 비로소 복은 시작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세워지면 복은 필연적으로 임한다.
숙대총장 이경숙(李慶淑) 박사가 1994년 총장으로 취임했을 때 숙명여자 대학교는 엄청난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숙대의 땅은 본래 고종황제가 하사한 것인데 해방 후 토지 정리를 하지 않아 국유지로 묶였습니다. 고종이 하사한 땅문서를 손에 쥐고도 수억의 임대료와 벌금까지 쌓여 있었습니다. 이 총장은 취임하자마자 땅 문제를 풀 수 있는 길을 찾아 담당자들을 찾아다녔지만 풀리지 않고, 몸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께 구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기도실에서 울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언제 나에게 일할 기회를 주었느냐? 너 혼자 뛰어다니고 너 혼자 다 하지 않았느냐?” 이 총장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그 음성에 따라 사람을 만나고 움직여야 했는데 순서가 바뀐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먼저 해 놓고 주님보고 따라오라고 손짓한 것입니다. 그녀는 진심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하나님, 능력도, 체력도 부족해서 저는 기권입니다. 보잘것없지만 제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립니다. 하나님이 숙대의 주인이 되어주십시오”
그 날 이후 하나님이 총장이심을 믿고 자신은 청지기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지 않으면 학교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기도부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녀를 무시하던 담당자들의 태도가 달라졌고 그 해 12월 31일 땅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그 녀는 제2의 창학을 선언한 후 대학 정문에 여호수아 1장9절 말씀을 새겨 넣었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나님께 돌아와 기도로 구한 자에게 내려주신 놀라운 응답이었습니다.
5절.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당시 블레셋 사람들은 철제 무기로 무장하였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철을 다루는 기술을 갖지 못했다.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은 전혀 무장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그러나 그들에게는 철로 만든 창칼보다 더 강한 무기가 있었다. 바로 기도의 무기였다. 사무엘이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블레셋과 싸우셨다. 큰 우레에 놀라 도주하는 블레셋을 뒤쫓은 이스라엘은 무찌르기만 하면 되었다.
레이먼드 에드먼(Raymond Edman)의 <그들은 비밀을 발견하고 변화된 삶을 살았다>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 영혼을 구하는 일에 뛰어났던 월터 윌슨(Walter Lewis Wilson)은 성령께 이렇게 고백함으로 자신을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 내내 당신을 잘못 대해 왔습니다. 당신을 종처럼 취급했습니다. 필요할 때만 당신에게 손짓해서 제 일을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당신을 종의 자리에 놓았습니다. 저 혼자 결정하고 선택한 일에서, 기꺼이 저를 도와주는 종으로만 당신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에게 몸을 드립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당신에게 드립니다. 제 손과 사지와 눈과 입,두뇌를 드립니다. 제 안에 있는 것과 제 밖에 있는 것 모두를 당신에게 넘겨 드립니다. 당신이 제 몸 안에서 당신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시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은 이 몸을 아프리카로 보내실 수도 있습니다. 혹은 암에 걸리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눈을 멀게 하실 수도 있으며, 메시지를 주어 티벳으로 보내실 수도 있습니다. 이 순간부터 이 몸은 당신의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윌슨이 자신을 드리는 일에 힘쓰자 그 열매들이 곧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다. 9절.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번제는 태워드리는 제사로 헌신을 의미한다. 사무엘이 온전한 번제를 드린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헌신하였다는 뜻. 온전한 번제를 드린 후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응답하셨다. 10절.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이스라엘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온전한 예배와 헌신을 회복하자 하나님은 큰 우레를 발하시며 승리케 하셨다. 이스라엘은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가면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부시 대통령 시절에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역임하고 국무장관에 올랐던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는 흑인으로 탁월한 외교관이었습니다. 그녀는 26세에 덴버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명문 스탠포드 대학 정치학 교수가 되어 부시 정부 하에서 핵무기 감축 정책을 수립하여 인류 역사에 공헌을 했습니다. 장로교 목사의 딸이었지만 결혼도 하지 않고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였습니다. 왜 결혼하지 않느냐 묻자“저는 신앙심이 매우 깊습니다. 이미 하나님과 결혼한 걸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스스로 생각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결정한다면서 믿음이야말로 자신의 공적인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미국 사회는 백인남성위주의 사회여서 흑인이자 여성은 정치하는데 큰 핸디캡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신앙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국무장관직을 수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매진하였습니다.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려고 작정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신다. 13절.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모든 위험에서부터 보호하신다. 성경은 그 보호하심을 가리켜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드시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사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특별히 ‘오른손’이라 함은 능력 있는 손길임을 강조. 성경에서 ‘오른쪽’은 능력 혹은 권능을 상징합니다.
다윗은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이렇게 표현. 시37: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영화 <닥터 지바고> 오래된 영화지만 아름다운 영화다. 많은 사람들이 주로 지바고와 라라의 러브 스토리에 집중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을 아주 인상 깊게 기억합니다. 닥터 지바고의 형(장군)은 지바고의 친딸을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다가 한 소녀를 만납니다. 분명히 딸이 맞는 것 같아서 지바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질문을 합니다.
“너는 왜 아버지와 헤어지게 됐느냐?”
소녀는 당황해 하면서 얼버무립니다. 왜냐하면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전쟁 중이었어요. 거리는 온통 불바다였고, 저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러자 장군은 다그치며 다시 묻습니다.
“아냐, 아버지와 헤어진 진짜 이유가 뭐지?”
그러자 하는 수 없이 소녀는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말을 꺼냅니다.
“사, 사실은 ... 아버지가 제 손을 놓아버렸어요.”
그러자 장군은 단호한 어조로 말합니다.
“그러면 그렇지. 그 사람은 네 아버지가 아니란다. 아버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의 손을 놓지 않는 법이지. 너의 친아버지는 바로 닥터 지바고야!”
아버지는 절대 자식의 손을 놓지 않는다!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분명히 어떤 경우에라도 그 손길로 우리를 꼭 붙잡아 주신다.
<성공의 조건>이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한 독일의 위르겐 휠러는 늑대를 만났을 때의 비유를 들어‘두려움의 상대성’을 설명하였습니다.
혼자 숲 속을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100미터 앞에 굶주린 늑대가 나타났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립니다. 만약 이때 느낀 두려움의 정도를 1부터10까지 중에서 책정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10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손에 칼이나 창이 있다면 9정도로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만약 옆에 동행자가 있다면 두려움의 정도는 5나 6정도로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여섯 명이 똑같이 무장하고 있다면?
혹은 손에 창 대신에 총이 들려 있다면?
바로 옆에 나를 이런 위험에서 탈출하게 도와줄 오토바이나 자동차가 있다면?
뭔가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많다면 두려움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것입니다.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종교개혁가 루터가 지은 찬양이다. 그가 좋아했던 말씀 시편 46편에서 은혜를 체험한 루터는 불가능해 보이는 종교 개혁을, 포기하지 않고, 거대한 권력 앞에서 담대하게 이끌 수 있었던 것.
이청승, <두 개의 르네상스>에 나오는 세종대왕의 이야기. 우리가 세종대왕을 ‘聖君’이라 부르는 이유는 백성들을 살피는 마음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세종은 여자 노비들이 아이를 낳다가 죽는 일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근무조건을 알아보게 하였다. 그런데 겨우 출산 후 8일간 쉬게 한다는 말을 듣고는 모든 관노비들에게 출산 후 100일간 쉼을 주도록 법을 개정한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알아보니 여전히 관노비들이 출산 후 많이 죽는 것. 사실을 알아보니, 관노비들은 산과 들에서 일을 하다가 산통이 오면 부랴부랴 집으로 가는데, 그 중간에 죽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출산 전30일을 포함해 130일 간의 쉼을 허락한다. 그런데 세종은 그 법이 제정된 지 4년쯤 지났을 때, 아직도 개선되지 못한 관노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는 남편들에게도 30일간의 휴식을 주어 아내를 돌보도록 했다. 그래서 세종을 ‘성군’이라고, 백성을 잘 돌보는 왕이라고 칭송했던 것.
‘회복의 탄력성’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 에미 워너와 루쓰 스미스 교수팀은 열악한 환경에서 같은 해에 태어난 하와이의 카우아이 섬의 아이 833명 모두를 30년 넘게 추적 조사했다. 가정불화, 이혼, 알코올 중독, 정신 질환 등으로 시달리는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2/3량의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의 희생자가 되어 학습부진이나, 약물중독, 정신질환을 앓거나, 범죄에 빠져 사회 부적응자가 되었다. 18세가 된 후에는 전과자나 미혼모가 되었다. 그런데 조사에 의하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아이들 중 3분의1인 72명은 밝고 건강한 청년으로 문제없이 성장했다는 것. 이런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잘 자라는 이유를 지속적으로 추적 조사한 끝에 알게 된 것은, 이들에게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 사람이 아버지든 어머니든, 할아버지든, 친척이나 학교 선생님이든,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이 베풀어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그들의 인생에서 기댈 언덕이 되어 주었을 때, ‘회복의 탄력성’이 높아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비록 우리의 죄악으로 이가봇의 시간을 지나가게 될 때에도, 에벤에셀의 하나님으로 우리 곁에서 여호와의 손으로 우리를 지켜주시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이 사실을 우리가 깨닫게 될 때, 어떠한 고난과 환난이 찾아와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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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에벤에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