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골2:8-10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접촉이다. 예수님은 큰 무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무리를 이루는 각 사람을 사랑하신다.” -에이미 카마이클
❏ 가치관價値觀: 인간이 자기를 포함한 세계나 어떤 대상에 대해 부여하는 가치나 의의에 관한 견해나 입장:
세상에는 세상의 가치관 있다.
사회적 격변기나 혼란기에는 가치관의 혼란이 생기기도 한다.
가치관이 혼란한 사회일수록 주관을 뚜렷하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스럽다.
우리 사회에서나 본인 인생에서 가장 팔팔해야 할 청춘들이 먹고사는 문제, 이른바 ‘먹고사니즘’에 매몰돼 자신의 적성이나 가치관은 고려하지 않고 ‘폼 나는’ 일자리만 좇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사회적인 변화가 가속되면서 사람들의 가치관도 많이 달라졌다.
우린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가치관이 바뀌져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3:7-11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이 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전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함께(양자) 붙잡고 간다. 한 쪽에 무게 실어야 한다. 양쪽은 안된다.
시소게임에서 세상이 항상 위쪽에 있거냐 중간에 있으면 안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한다.
세상에 속지 말아야 한다..
❏ 속는 것도 죄다.
속이는 사람을 세상은 벌주나 하나님은 속은 사람도 벌준다.
가인도 제사! 아벨도 제사!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만 받으니 가인이 화를 낸다.
죄가 문에 엎드렸으니 죄 다스려야한다.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세기4:6-7
"엎드리느니라"(* =로베츠)와 잘 부합 힌다. 엎드린다는 말은, 짐승이 웅크리고 있음(crouch)을 의미한다. 사단(뱀이란 짐승으로 상징됨)은 사람의 마음 문에 엎드려 있으면서 그 마음을 주관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러니 만큼, 사람은 심령에 선한 경향을 가져야 된다. 그 마음에 선한 경향이 없으면, 사단은 그 속에 들어간다. 박윤선주석
먹히면 안 된다.
죄의 종이 된다. 하나님이 가인 찾아가 경고한다.
동생 보란 듯이 동생 돌로 쳐 죽인다. 하나님이 경고하신다.
미리 말씀해 주시는데 욕심, 어리석음 때문에 깨닫지 못한다.
사기꾼에게 당하지 말아야 하지만 마귀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
처음부터 속이는 자다. 속지 말라.
우리의 소중한 것 다 잃게 한다. 이것 쫓아가면 생명, 시간, 인생, 영성, 말씀, 사명 잃고 수많은 영혼 다 잃는다. 내가 아우를 죽이는 자 입니까? 내가 아우 지켜야 해. 죽여 놓고 변명해. 믿음의 어린 사람들 다 지켜야 해. 마귀에 속으면 그들 다 놓친다.
「크리스천: “이 무시무시한 절망의 감방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은 없습니까?
그 남자: “예, 이제는 없어요. 전혀 없습니다.
크리스천: “왜요? 찬송 받으실 하나님의 아들은 매우 인자하시지 않습니까?
그 남자: “나는 내 자신의 정욕을 위해 그를 새로운 십자가에 다시 한 번 못 박은 죄인입니다(히 6:6). 나는 그분의 인격을 경멸했고(눅 19:14), 그분의 의로우심마저도 경멸했습니다. 또한 그분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생각하였고, 그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였습니다(히 6:4~6, 10:28~29).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모든 언약으로부터 스스로 마음을 닫아버림으로써 결국 모든 은총을 잃고 버림받게 되었고, 지금 내게 남아 있는 것은 맹수가 나를 집어삼킬 듯한 위협, 확실한 심판과 원소로서 나를 태워 죽일 듯한 가혹한 분노의 위협과 두려움만이 있을 뿐입니다.”」-존 번연,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 유성덕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6-포켓판, p. 60.
존 번연,「천로역정」’에서는 크리스천이라는 주인공이 순례의 여정에서 여러 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 ‘신실’과 ‘소망’이라는 이름의 두 사람과 만나 함께 길을 가다가 의미가 없는 헛된 박람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장사꾼들은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물건들을 사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애써 귀를 막고 지나가려고 하는데 한 장사꾼이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들은 무엇을 사길 원하십니까?”
이때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사기 원합니다.”
그들은 진리를 얻어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 오늘 있다가 내일 없어지는 것이 아닌, 물질이 아닌 내 인생에 대한 대답을 얻기 원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들은 허무하고 불안한 마음에 영광스러운 진리를 얻어서 자신들의 영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 하나님이 다 주신다.
-하나님은 사명을 주시고 복을 주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기도를 찾으신다. 기도 시킨다는 것은 복 받는 기회 주신다. 기도 시켰다면 감사하라. 속지 말아야 한다. 내 삶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 주의 일이 자기 일에 열심히 하는 것. 기도 안하고 하는 것. 우리는 인생,
❏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9-10절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예수님이 최고 대장이다. 최강!
그리스도는 영적 충전소이다.
몸도 쓰면 고갈되어진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충만도 쓰면 고갈 된다.
❏ 쓰리아웃: 번아웃/보어아웃/브라운아웃
영적충만한 사람들도 쓰리 아웃을 당합니다.
번아웃(burnout):일로 인해 정신과 육체가 고갈된 상태:교회일이 싫어지고 우울해진다
보어아웃'(Boreout): 업무가 부족하거나, 업무가 지나치게 단순하거나, 도전적이지 않아 발생하는 심리적 상태 : 교회가기가 즐겁지 않고 기도/찬양/예배가 기쁘지 않다.
브라운아웃brownout:정신적인 무기력 상태:모든게 싫다-주님/교회/남편/성도
하나님의 은혜로만 충만해질 수 있다!
코드 꼽고 있으면 충전된다.
그리스도는 영적 충전소이다.
하나님께 연결 되면 그러면 모든 것이 다 온다.
말씀으로 영적 자신감, 기쁨, 여유, 행복, 위로, 사랑 등 인생 좋은 것 거기서 온다.
그리스도는 내가 충만해 지길 원한다.
그리스도 없이 충만은 아니다
❏ . 플랜A보다 플랜B가 더 좋을 수도 있다
선택한 이 길, 나에게 손짓하던 그 많은 무화과 중에서 이 열매가 나에게 최선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 배를 끝까지 타고 가서 목적지를 확인할 것이다. 내일은 내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끝까지 가 보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성실함이다. 어차피 나는 죽음에 패배하기 위해 태어났다. 하지만 아름답게 패배하는 것은 나에게 달린 일이다. 심장이 침묵할 것 같으면 스스로 심장을 깨워 그 고동 소리를 들어야 한다. 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194쪽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자신이 계획했던 삶을 기꺼이 놓아 주어야 한다.’(조셉 캠벨)
우연을 거부하는 것은 신의 계획을 무효화시키는 것과 같다.
인생은 길을 보여 주기 위해 길을 잃게 한다.
돌아가는 길투성이의 인생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일과 행복한 일은 동시에 일어난다.
플랜A보다 플랜B가 더 좋을 수도 있다, 가 아니라 더 좋다.
플랜A는 나의 계획이고, 플랜B는 신의 계획이기 때문이다. 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181쪽
「천로역정」‘’의 저자인 존 번연(John Bunyan)은 인생과 영혼에 대한 의문이 자기 마음에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 이런 결심을 했다.
“내가 구원을 받기 전까지는, 이 진리를 확실히 알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분명히 깨닫기 전까지는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리라. 아니 이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나는 지구 어디라도 갈 것이며 무엇이라도 할 것이다.”
"하나님 위에는 아무것도 없고,
하나님 밖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나이다.
하나님 밑에 모든 것이 있고,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있으며,
하나님과 함께 모든 것이 존재하나이다.
(Deus supra quemnihil, extra quemnihil, sine quo nihil est. Deus sub quo totumest, in qu totumest, cum quo totumest).” - 아우구스티누스, 「독백 Soliloquia 1.1.4」
전도자님,
이런 제게 희망이 있을까요?
지금이라도 원래 길로 다시 돌아가
좁은 문으로 가면 안 되겠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이 일로 결국저는 버림을 받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세속 현자의 조언을 들은 것은 큰 잘못이지만
이러한 저의 죄를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 존 번연,「천로역정」
주를 찬양/CCM
1. 세상의 유혹 시험이 내게 몰려올 때에
나의 힘으론 그것들 모두 이길 수 없네
거대한 폭풍 가운데 위축된 나의 영혼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매이고 있을 때
후렴 :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 아니니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2. 거짓과 속임수로 가득 찬 세상에서
어디로 갈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네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지금도 우리들을
실패와 절망으로 넘어뜨리려 하네
3.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는듯
믿음의 눈을 들면 보이는 분 계시네
지금도 내안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사망과 어둠의 권세 물리치신 예수님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