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문인협회 (회장 김순이)와 정드리문학회(회장 송인영)는 23일(음, 5월15일) 오후 5시 애월읍 유수암리 소재 ‘의녀 홍윤애’의 묘소에서 ‘의녀 홍윤애 추모문학제’를 제주문화원 사무국장인 현태용 수필가 사회로 도내 문인 및 애월읍 관계자들 등 150여명이 모인 가운데 성대히 개최 했다.
이날 초헌관에는 제주문인협회장인 김순이 시인이, 아헌관에 의녀 홍윤애의 외 6대손인 박용진씨, 종헌관에는 정드리문학회 부회장인 임태진씨, 집사에 제주문인협회 총무부장 백종진씨, 정드리문학회 강경훈씨 등이 집전했다.
이날 조정철의 시 '황천길 아득한데 그대, 누굴 의지해 돌아갔나' 추모시를 오상식 낭송가가, 송인영의 시 '부활하라, 사랑'을 제주시(詩)사랑회 문선희 낭송가가 애잔하게 낭송하여 추모에 온 참배객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 현태용수필가와 김정희 낭송가가 추모제를 진행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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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애(洪允愛)는 조선 정조 1년(1777), 모반사건에 연루돼 제주에 유배 온 조정철(趙貞喆)을 사랑한 여인이다.
그녀가 사랑한 사람은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관리도 아니고, 부귀와 명성을 누리던 양반이나 선비가 아니다. 조정철은 임금을 시해하려는 음모에 연루된 대역 죄인이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단 하나뿐인 생명을 기꺼이 바쳤다.
권력이 쳐 놓은 덫으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기 위해 거짓자백을 거부했기에, 처참한 고문을 받아 죽었다. 그날이 음력 정조 5년(1781) 5월 15일이다.
▲ 송인영의 시 "부활하라, 사랑"을 의녀 홍윤애 묘에서 애절하게 낭송하는 문선희 시 낭송가 |
홍윤애의 죽음은 역사성이 매우 강렬한 사건이었다. 당시의 조정을 발칵 뒤집어놓은 이 사건에는 치열한 당쟁에 의한 권력찬탈을 노린 반역, 억울하게 연루된 죄인의 유배, 절해고도에서의 목사의 권력 악용과 정적제거의 시나리오, 민심동요와 어사 파견 등이 골고루 얽혀있다. 이 사건에는 조선의 당쟁과 유배의 모든 요소가 들어있는 것이다.
▲ 오상석 낭송가는 조정철의 시 "황천길 아득한데 그대 누굴 의지해 돌아갔나"를 의녀의 비를 부여 잡으며 애절하게 낭송했다. |
제주여인 홍윤애가 목숨을 바쳐 사랑하고 지키고자 했던 조정철은 조선의 당쟁과 유배의 역사에서 여러 가지 기록을 세운 인물이다. 종조부와 부친, 그리고 자기까지 한 집안에서 3대에 걸쳐 4명이 제주에 유배됐다.
또 27세부터 55세까지 총 29년 동안의 최장기 유배생활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해배(解配) 후 57세부터 관운이 트여 제주목사 직을 비롯하여, 형조판서까지 81세 동안 승승장구한 관직생활을 했다.
홍윤애의 죽음으로 인하여 목숨을 건진 조정철은 29년의 오랜 유배생활을 끝내고 관직에 등용되자 순조 11년(1811) 제주목사 겸 전라도방어사를 자원하여 부임, 곧바로 생명의 은인인 홍윤애의 무덤을 찾았다.
조선시대를 총망라해서 목사의 신분인 사대부가 한 여인의 무덤에 찾아가 통곡을 하고 추모시를 써서 비석(碑石)을 세운 예는 없다. 고로 홍윤애 묘비명과 추모시는 우리 국문학사에서 <유배문학의 꽃>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 의녀 홍윤애 묘소에서 음력 5월15일 기일을 기념하여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
1997년 11월 9일, 경상북도 상주에 있는 양주조씨 문중의 사당인 함녕재에서는 홍윤애를 조정철의 정식 부인으로 인정하고, 사당에 봉안하는 의식이 거행됐다.
초헌관은 양주조씨대종회 조원환 회장, 아헌관은 홍윤애의 외손 박용진씨, 종헌관은 당시 제주문화원 홍순만 원장이었다. 이 행사는 실로 홍윤애가 비명에 간지 186년 만에 이루어진 복권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그 의미가 깊다.
홍윤애는 충분히 살아날 수 있었음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려는 일념으로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당시 제주목사 김시구가 유배인 조정철에게 저지르지도 않은 혐의를 걸어 오랜 정치적 숙적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갈파하고, 고문과 회유에 휘말리지 않는 대차고 명철한 여성이었다.
또한 불의(不義)한 흉계에 항거하여 혹독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써 지켜냈다. 이것은 한 여인의 순애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주여성의 내면에 잠재된, 권력에 굴하지 않는 정의로운 기질을 널리 선양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홍윤애의 고결한 정신과 순정한 사랑은 제주여성의 귀감이 될 뿐만 아니라 제주여성사에 빛나는 금자탑으로 조명되어 마땅하나 아직 그 중요한 사건을 풀 속에 묻혀있다는 것이 애석할 뿐이다.
한편, 문협측은 "홍윤애가 비명에 간 지 232주기가 되는 음력 5월 15일 오늘, 이제 우리는 홍윤애의 그 아름다운 푸른 넋을 위무하고 명복을 빌고, 권력의 부당함에 굴하지 않는 정의로운 기개에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고자 모였다. 사랑의 힘으로 사랑을 지켜낸 그 뜨거운 열정과 순수를 가슴에 새기고, 이 세상 여기저기에 널리 알리고자 이 행사를 개최 한다"고 밝혔다. <헤드라인제주>
다음은 권력에 굴하지 않는 정의로운 제주여성의 표상인 의녀 홍윤애의 푸른 넋을 기리는 조정철이 쓴 시.
황천길 아득한데 그대, 누굴 의지해 돌아갔나
<조 정 철>
瘞玉埋香奄幾年 예옥매향엄기년
誰將爾怨訴蒼旻 유장이원소창민
黃泉路邃歸何賴 황천로수귀하뢰
碧血藏深死亦緣 벽혈장심사역연
千古芳名蘅杜烈 천고방명형두열
一門雙節弟兄腎 일문쌍절제형신
烏頭雙闕今難作 오두쌍궐금난작
靑草應生馬鬣前 청초응생마렵전
묻힌 옥 숨은 향기 문득 몇 년이던가?
누가 그대의 억울함 푸른 하늘에 호소하리
황천길 아득한데 누굴 믿고 돌아갔나
정의의 피 깊이 감추고 죽음 또한 까닭이 있었네
천고에 아름다운 이름들 형두꽃처럼 빛나며
한 집안의 두 절개, 자매가 현숙하여라
젊은 나이의 두 무덤, 이제는 일으킬 길 없고
푸른 풀만이 말갈기 앞에 돋아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