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군 임천면 가신리의 성주산 기슭에 위치한 보광사지는 사역이 4959㎡로 규모가 큰 사찰터이다. 현재는 사역은
대부분이 논으로 경작되고 있어 사지의 확인이 어렵다. 다만 당시에 쌓았던 축대 일부와 초석 및 석조 1기 등이 남아
있어 사지임을 알려 주고 있다. 사지에서는 이 외에도 연주문에 ‘범(梵)’자를 조각한 와당이 수습되고, 보광사 중창비
등이 유존하였는데 1963년에 부여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중창비에 고려 말 원명국사가 절을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보광사의 창건 연대는 고려 원종 이전으로 비정된다. 중창비는 방형의 화강석재로 된 대좌 위에 높이 197cm,
너비 114cm, 두께 23cm의 편마암 비신을 세웠다. 비신은 윗부분의 모서리를 깎아 귀접이를 한 규형이다. 글자는 비신의
전면과 후면에 음서하였는데 비신의 전면에는 주연부에 폭 7.5㎝ 내외의 구획을 만들고 그 안에 보상화문을 조각하였다.
비의 앞면 내용은 1358년(공민왕 7)에 음서한 것으로 위소가 찬하고 게왕이 썼는데 원명국사의 공적과 보광사의 중창
사실을, 뒷면은 1750년(영조 26)에 황폐된 사역을 복구하고 불탄 비각과 비를 다시 세우며 개각한 사실들을 적고 있다.
비의 내용으로 보아 당시 보광사의 규모는 5백칸이 넘는 웅장한 사찰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보광사 중창비는
고려시대 비의 양식 뿐만 아니라 당시의 불교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금석문 자료가 되고 있다.
초록
충남 부여군 임천면 가신리 일원에 위치한 부여 가신리고분군은 이미 충남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에 의해 고분의 존재가 확인된 곳이다. 하지만 고분이 존재한 일대의 토지 소유자가 수종갱신을 위한 작업을 하던 중 1기의 고분이 파괴된 채 지표에 노출되어 지역민의 신고와 우리 연구소의 발굴조사에 의하여 고분의 전모가 파악되었다.
발굴 조사된 가신리고분은 백제시대 후기에 유행하였던 횡혈식석실분으로 판석과 할석을 이용해 축조한 장방형의 평면 구조이다. 석실의 단면은 육각형의 구조에 고임식으로 판단되며, 연도는 우편재의 짧은 연도에 문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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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기님 !!! 장말 대단 하시네요~~~바쁜시간에 이렇게 좋은사진을 올려놓아 가끔와서 볼수있게만들어 주심에 감사하게 생각해요~~~ 복많이 받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