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63-168
陶文(도문)과
磚瓦款識(전와관지)
陶文(도문)
진흙으로 만들어진 銘文(명문)의 기물은
크게 陶器(도기)와 磚瓦(전와)로 나눌 수 있다.
도문의 행렬 순서는 갑골문에 비하면 불규칙하다.
전국시대의 字體(자체)가 다변하여
일정한 표준이 없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磚瓦款識(전와관지)
벽돌과 기왓장에 새긴 것인데
磚文은 대개 가열하기 이전에
模印(모인)으로 눌러 찍은 것으로
연대나 성명 또는 吉語(길어) 등이 있다.
출토의 최대의 벽돌은 B.C14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국시대 齊(제)의 것이다.
古瓦(고와)는 문자가 있는 것이 많고
靑龍(청용). 白虎(백호). 朱雀(주작). 玄武(현무) 등을 도안한 것도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磚瓦는 전국시대 燕(연)의 것이다.
石刻文(석각문)
석각문자는 금문보다 비교적 길다.
석각은 크고 무거우므로 毁棄(훼기)될 확률이 적고
문장이 실릴 수 있는 면적도 넓을 뿐 아니라
재료도 얻기 쉬워
진한 이후의 문자 기록에 있어서 청동기의 대용이 되었다.
石鼓文(석고문)
석고는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조의 석각이다.
북경의 古宮博物院(고궁박물원)에 있다.
돌을 쪼아서 북의 모양을 만들었는데
이를 ‘碣(갈)’이라고 한다.
한 대에 와서 장방형의 ‘碑(비)’가 생기게 되었다.
石鼓(석고)는 7-8세기 秦(진)의 것으로 본다.
필획이 곡선이며 운필의 起止處(기지처)가 둥글고
획의 굵기가 일정하며 소전과 비슷하다.
자형이 긴 것도 있고 정방형도 있으며
間架(간가)가 均整(균정)하고
포백이 寬舒(관서)하여 疏朗(소랑)한 맛이 있다.
행간 또한 整齊(정제)하여 종횡의 배열이 같아
단정하고도 渾厚(훈후)한 풍격의 것으로
籒篆(주전)을 익히는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료이다.
渾厚(훈후) ; 크고 넉넉함. 온화하고 인정이 두터움
籒 (주문 주) ; 周나라 宣王 때의 太史 籒(주)가 창작한 것
小篆(소전)의 前身(전신)으로 보통 大篆(대전)이라고 함
장방형 ; 직사각형
정방형 ; 정사각형
참고 도판
石鼓文(석고문)
詛楚文(저초문)
석고보다 조금 후의 것으로 진의 석각이다.
모두 세 개이며 巫咸文(무함문) 326자,
厥湫文(궐추문) 318자,
亞駝文(아타문) 325자이다.
당시 진과 초가 적대관계에 있어
진이 초를 저주하기 위해 신에게 제사 지내는데
사용된 祭文(제문)이다.
小篆期(소전기)의 三石(삼석)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東巡(동순)할 때
여러 곳에 立石(입석)하고
자기의 공을 頌(송)하였다.
기원전 219-211년간에 7개의 석이 세워졌는데
그 중 삼석이
山東(산동)의 嶧山(역산)과
泰山(태산) 瑯琊臺(낭야대)에 세워졌다.
서체는 籒文(주문) 大篆(대전)을 정리하여
문자통일을 한 이른 바 ‘小篆(소전)’이다.
瑯琊臺刻石(낭야대각석)
소전의 典型(전형)으로 원필로 결체가 장방형이며
석고문에 비교하여
더욱 긴밀하고 단정하여 典雅(전아)한 풍격이다.
참고도판
瑯琊臺刻石(낭야대각석)
泰山刻石(태산각석)
원석은 청의 乾隆(건륭) 5년에 크게 파손되어
지금은 10자가 남아 있다.
낭야대각석과 글씨가 비슷하며
氣質(기질)과 神勢(신세)가 渾厚典雅(혼후전아)하다
참고도판
泰山刻石(태산각석)
嶧山刻石(역산각석)
역산각석은 당 때에 소실되었고
翻刻本(번각본)이 있으나
그 참된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낭야. 태산의 혼후함보다는 오히려 流麗(유려)하다.
참고도판
嶧山刻石(역산각석)
참고문헌 ; <<서예통론>> 선주선저 원광대학교출판국, 인터넷 사전, 도서 참고
첫댓글 우리 후배들 기말고사 치루느라 애썼다.
오늘 서예이론 읽어나간 부분이다.
참석치 못한 후배들은 시간이 나는 대로
읽어보길 바란다.
pc화면으로 보는 것이 가장 잘 볼 수 있는 비결이다.
나의 스마트폰으로는 " pc화면으로 보기" 로 들어가니 제대로 볼 수가 있었다.
이제 방학이다. 방학 즐겁게 지내고 우리 명지서법은 방학 중에도 강의는 계속된다.
시간나는 대로 금욜에 나와라 오바~~~~~~~~~~~~
번각본(翻刻本) : 한 번 새긴 책판을 본보기로 삼아 그 내용을 다시 새긴 책.
후배들아 방학 잘 지내고 있지?
오늘은 2020년 2월 14일
금요일이다
서예이론 올린다
참고하자 오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