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적도, 진리선착장의 어시장풍경
신라의 김법민은 소정방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소정방을 맞으러 범선 100여 척을 이끌고 오면서 바람을 만나 3일 간의 시간을 지체하였기 때문이다.
소정방은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치기 위해 당군 14만 명을 이끌고 덕적도에서 잠시 쉬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14만 명은 덕적군도 여러 섬에 병영을 이루고 갖은 민폐를 끼치면서 여러 가지 유적들을 남겨 놓았다.
대이작도에는 지금도 전투마를 기르던 둔덕이 남아있고 소야도는 소정방의 성을 딴 “소(蘇)”를 섬의앞글자로 사용하고 있다. 굴업도는 제일 높은 산이 덕물산인데 당군이 덕적도에 큰 산처럼 쌓아 둔 군수물자를 바라보고 있는 산이라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때 덕적군도는 왜구의 침탈로 인해 육지로 소개령이 내려져 버려지다시피 방치되었는데 다시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 초부터였다.
1977년 우리나라 최초로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덕적도는 700가구 1,300여 명이 살고 있다. 면적은 23㎢로 여의도의 7배이고 울릉도의 3분의1 정도 되는 큰 섬이다. 덕적도는 42개의 섬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 무인도는 34개이고 유인도는 8개이다. 이 모두를 합하여 통상 덕적군도라 부르는데 덕적 주민들은 군도의 모든 주민을 합하여 950가구 1,800여 명이 거주한다고 말한다. 덕적도에는 면소재지도 있고 중.고등학교도 소재하고 있다. 인근의 소야도에서는 학생들이 배를 타고 이 섬으로 통학하기도 한다.
덕적도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하루 세번 운항하는 쾌속선을 타면 1시간이면 도착한다. 새로 놓인 인천대교의 웅장한 모습에 매료되어 감탄하며 가다 보면 어느새 진리선착장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 덕적도 진리선착장. 인천 연안부두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이면 도착한다
▲ 덕적도 진리선착장의 어시장. 광어와 우럭 놀래미 등이 주를 이룬다.
선착장에는 다른 선착장과 달리 주민들이 펼쳐놓은 어시장을 만날 수 있다. 덕적도에는 수협공판장이 없다. 그러다 보니 먼 어장에서 고기를 잡은 어민들은 인천은 너무 멀어 연안부두에서 내려온 운반선에 무게를 잰 뒤 통째로 넘겨주고 섬으로 돌아온다. 간혹 어선과 어선 사이에 어획물을 서로 물물교환하기도 한다. 이렇게 잡은 어획물을 선착장에서 판매를 하는 것이다.
덕적도는 다른 섬과는 달리 외국인들이 토요일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찾아온다. 외국인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찾는 섬이 덕적도인 것이다. 미국 어느 잡지에 세계에서 꼭 가 볼만한 섬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민관광지로 이름난 덕분에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형형색색의 배낭을 메고 섬의 구석구석을 훑고 일요일이면 돌아간다.
등산동호회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1박2일로 다른 섬을 들렀다가 비조봉과 국수봉을 오르고 인천으로 다시 돌아가는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는 중이다.
덕적도에서 제일 높은 산은 314m의 국수봉인데 그보다 낮은 292m의 비조봉이 더 알려져 있다. 그것은 바다를 보며 올라가는 등산코스의 경관이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하고 밭지름해수욕장 인근에서 쉽게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 덕적도에서 두번째 높은 292m의 비조봉
▲ 비조봉에서 바라본 진리선착장. 그 건너 보이는 섬은 소야도이다.
▲ 비조봉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섬은 문갑도이다.
비조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밭지름해수욕장에서 1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이 섬은 6.25전쟁 당시 인민군이 점령하여 좌우대립이 심각하였는데 충청도나 황해도에서 피난 온 주민들이
12,000명이나 거주할 정도로 번잡한 섬이었다.
덕적군도 인근의 백아도나 굴업도 등은 덕적도에서 피난 온 사람들에게 전쟁소식을 듣기도 하였다고 한다.
국군이 들어와서는 미처 피하지 못한 인민군을 무인도인 선갑도에서 처형했다는 역사적인 이야기도 남아있다.
섬은 너무 넓기 때문에 걸어다니기에는 너무 힘들다.
2대 밖에 없는 공공버스를 타고 서포리해수욕장으로 넘어가서 해물이 섞인 점심을 먹고 해수욕을 즐기거나,
12인승 카니발 택시를 5만원에 빌리면 2시간 만에 섬 일주를 할 수도 있다.
제일 먼저 가는 곳은 역시 밭지름해수욕장과 서포리해수욕장이다.
고운 모래밭으로 유명한 두 개의 해수욕장은 주변에 각종 식당이 줄지어 서있고
민박집과 펜션은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하며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다.
길게 늘어선 해송들은 바람을 막고 서 있고 서쪽 해안에서 볼 수 있는 소사나무군락이
아름다운 곡선으로 시원하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
서포리해수욕장에는 최분도 신부를 기리는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최신부는 1930년대 초반 덕적도로 들어와 30년 동안 거주하면서 병원선을 띄우고 환자를 돌보고
간척사업을 벌이며 식량증산에 힘쓰는 등 덕적도와 인근의 섬에서까지 칭송을 받을 정도로
많은 업적을 이룬 신부이다. 주민들은 그 뜻을 기려 76년 이곳에 공덕비를 세워준 것이다.
하지만 금모래 빛나는 서포리해수욕장은 그 명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산처럼 언덕을 이룬 모래들은 밋밋하게 푹 꺼져 운치를 잃어가고 있고
소라 고동들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인근에 있는 충청도에 속한 풍도 주변의 자갈채취와 대이작도의 생태보전지역을
교묘하게 벗어난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해사채취의 부작용 때문이다.
▲ 서포리해수욕장에 세워져 있는 최분도신부의 공덕비
▲ 덕적도 등산로 안내판
북쪽의 자갈이 깔린 소재해변을 지나서 북리에 가면 능동자갈마당이 위치하고 있다.
60년대까지 작은 영화관이 있을 정도로 어업으로 번성한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한적한 마을로 변해있다.
해변에는 작은 자갈이 아닌, 수박만한 돌들이 가득 깔려 있어 걸어갈 때 조심해야 한다.
오른쪽으로 가면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행여 해수욕을 할 생각은 접어야 한다.
대신 서포리에는 보기 힘든 소라 고동은 마음껏 볼 수 있다.
▲ 북리에 있는 능동 자갈마당. 걸을 때는 조심조심 걸어야 한다. 넘어지면 대형사고로 이어지니까
▲ 서포리해수욕장.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해수욕장이다.
1993년 정부가 굴업도에 핵폐기장을 짓는다고 발표하자 그 위험성 때문에 덕적도 주민들은 들고 일어섰다. 다행히 다음 해 굴업도 앞바다에 활성단층이 형성되어 있다고 해서 그 계획은 취소되었지만 그때의 후유증은 지금도 주민들 사이에 앙금처럼 남아 있다.
덕적도는 유난히 교육열이 높은 섬이었다. 조선 연산군 때 사화를 피해 낙향하거나 귀양을 온 선비들이 사당을 지어 “덕적도에 가면 아는 체 하지 말라”는 말이 남아 있을 정도였다.
섬 주민들은 가난이 싫다. 도시인들처럼 여유롭게 살고싶은 것이다. 이제는 도시의 외지인들이 땅을 사 팬션을 짓거나 식당을 운영하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
덕적도 주민들은 최근 어느 대기업에서 굴업도에 골프장을 비롯한 대규모 관광단지 개발을 발표하자 대부분 찬성하였다. 그것은 개발의 바람이 덕적도에도 불어오리라 예상하였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잘살게 된다면 어떤 개발이라도 막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덕적군도는 남해의 해상국립공원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 오밀조밀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섬이 많이 있다. 이와 같은 섬들을 연계하여 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하고 해상공원으로 가꾼다면 바다도 살리고 소득수준도 늘어나는 획기적인 일임에 분명할 것이다. 개발을 하지 않더라도 관광객이 몰려오는 섬들을 우리는 순천만과 청산도를 빌려서 알 수 있는 것이다.
▲ 밭지름해수욕장에서 비조봉으로 올라 반대편으로 길을 내려가면 조용한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첫댓글 굴업도를 갈려면 인천 연안부두에서 덕적도까지 1시간동안 쾌속선을을 타야 갈 수 있습니다.
덕적도에서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이어지는 행정선을 타고 굴업도를 들어갈 수 있습니다.
덕적도의 풍경은 나오는 날 연안부두에서 오는 쾌속선을 기다리면서 잠깐 볼 수 있습니다.
기억해 두실만한 섬입니다.
우와~ 굴업도 갈때 잠깐 들리게 될 덕적도에 대한 정보까지~^^ 감사합니당~ㅋㅋㅋ
섬 전문 작가?
와~ 대단하십니다.
잘 읽었구요, 얼른 굴업도 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