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김삿갓이라 불리는 김병연은 조선말기 풍자시인입니다. 1807년에 태어나 1863년 죽기까지 수많은 시들을 남겼습니다. 그가 삿갓을 쓰고다닌 이유는 하늘아래 얼굴을 들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해서였다고 합니다. 그의 조부 김익순이 평안도 선천부사로 부임하고 있을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는데, 이때 김익순이 항복하는 바람에 관군측이 큰 피해를 입었고, 이사건을 계기로 김삿갓의 집안은 몰락하게 되어, 집안내역을 숨기고 영월에서 조용하게 숨어 살게 되었습니다. 김병연이 20세에 조부를 욕하는 글로 백일장에서 장원급제하였으나, 곧 집안의 내력을 알게 되어 이때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전국을 방랑하면서 재치있는 수많은 풍자시들을 남겼는데, 그는 전라도 화순 친구의 집에서 숨을 거두었고, 현재 강ㄷ원도 영월에 그의 묘가 있습니다. 방랑시인 김삿갓은 총 200회의 이야기로 연재를 이어가겠습니다. * 밝혀진 집안 내역의 秘密 어머니로 부터 조부(祖父) 김익순에 대한 내력을 듣게된 병연(炳淵)은 비틀거리면서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벽을 바라보고 꿇어 앉아 , 머리가 방바닥에 닿을듯 고개를 꺽고 있었다. 희미한 등잔불은 가끔씩 문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에 출렁거렸다. 어디선가 산짐승 우는 소리가 애처롭게 들려왔다. "여보, 밤이 깊었어요." 남편이 평소와 전혀 다른, 실성한 모습으로 벽을 향해 앉아 있자, 병연의 아내도 물끄러미 앉아 있다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오늘 집에 오실때 백일장에 참례하여 장원급제 하셨다고 좋아 하시더니" .. 병연의 아내는 불과 한 시각 전에 남편 모습이 어머니 방을 다녀 온 후 돌변한 것이 의아 했다. 그러나 병연은 대답이 없었다. "여보, 어서 자리에 드세요." 아내가 다시 말하자 병연은 그제서야 아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희미한 등잔불로 어두운 방안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음을 알수 있었다. "당신 아직까지 자지 않았구료." "당신이 그러고 계시는데 제가 어찌 잠자리에 들 수 있겠어요." "그렇군 ,내 미안하오." 자조섞인 말투로 대답한 병연은 다시 아무 말없이 공연스레 고개를 몇번 끄덕이다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아내에게 감추려는 듯 다시 시선을 천정을 향했다. 그리곤 한참동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천정으로 시선을 향했다. "여보 !" 남편의 부름에 아내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얼굴과 시선을 병연의 등뒤로 향했다. "오늘, 내 당신을 앞으로 고생 시키지 않고 호강시키리라 생각되더니 모두가 허사가 된것 같구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남편의 다정한 말을 듣자 더욱 궁금한 아내가 가슴 떨려하며 되물었다. "장원급제의 기쁨도 일장춘몽이 되고 말았소, 벼슬길도 이제 아득하게 멀어지고.. 아까 부터 , 모든 것이 헛된 꿈이요 뜬구름을 쫒는 신세가 된 기분이오." "저는 연유를 모르겠습니다" 아내의 궁금증은 다시 입을 다물고 있는 병연의 모습으로 더욱 커졌다. "말하기 부끄러운 일이오." 아내가 뒤이어 아무말 없자 병연은 한참후 입을 열었다. "오늘, 백일장에 시제는 논공가산충절사 (論鄭嘉山忠節死), 탄김익순죄통우천 (嘆金益淳罪通于天) 이었소." "제가 그런 어려운 글을 아나요" .. 아내가 이렇듯 대답하자 병연은 당연하듯 고개를 몇번 끄덕인후 다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한참만에 입을연 병연은, "그 시제로 장원이 되었으나 알고보니 내가 절절히 탄핵했던 김익순이 사실은 나의 조부였소." 병연의 아내는 이제서야 남편이 그토록 괴로워한 까닭을 헤아린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안하오 , 당신을 고생시켜서" ..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남편의 말을 들으니 병연의 아내는 자신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 "여보,저..." 아내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어 버린다. "무슨 말이오?" 병연은 천정을 쳐다본 채 물었다. 아내는 몇번인가 망설이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저 아기를 가진것 같아요." "아기를?" 병연은 이제서야 아내를 향하여 돌아서며 자세를 고쳐 앉아 아내에게로 얼굴을 향했다. 병연이 마주보자 아내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깊게 떨구고 있었다. 그런 아내를 한동안 아무말 없이 바라보던 병연의 입가에는 쓸쓸한 미소가 번졌다. 생각해 보면 백일장에서 장원급제 하였겠다,아내는 태기가 있겠다. 이 얼마나 경사스러운 일 인가 ? 그러나 병연에게는 기쁨보다 슬픔이 앞섰다. 그것은 아기가 태어나더라도 미천한 아비로 인해 신분이 제한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알고 있기에 아내의 말을 듣고도 기쁨에 앞서 가슴만 더욱 메어왔다. 병연은 아내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뜨거운 눈물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그것은 눈물이 아니라 차라리 피에 가까운 것이었다.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병연은 밤새 한잠 못자고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침해가 산마루를 넘어왔다. 사립문 밖으로 나온 병연의 눈에는 세상이 온통 새벽 안개속에 묻힌듯 뿌옇게 보였다. 어제 이시각의 병연은 싱그러운 아침 햇살에 소생하는 만물처럼 야심찬 사나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가슴속은 희뿌연 재만 남고 희망도 용기도 없는 타락한 몰골이었다. 잡목 숲을 얼마나 걸어다녔는지 모른다. 병연은 심한피로감을 느꼈다. "아 .." 무거운 신음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어느새 그는 잠이들어 있었다. 잠들었다기 보다 허탈감이 주는 공허함에 가사상태였다. 종달새 한마리가 하늘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병연은 가까스로 일어나 앉았다. 해는 이미 중천 높이 솟아 있었고 봄볓은 따사롭게 움트는 나뭇가지를 비추고 있었다. 넋을 잃고 망연히 눈앞에 펼쳐진 봄풍경을 바라보던 병연은 문득 당시(唐诗) 한 수가 떠올랐다. 초색청청 유색황 (草色靑靑 柳色黃) , 도화력난 이화향 (桃花乱 梨花香) 동풍불위 취수거 (东风不为 吹愁去) , 춘일편능 야한장 (春日偏能 惹恨长) 그렇다 , 이 화창한 봄날은 그에게는 한도 많고 지루하도록 길게 느껴질 것만 같았다. 문득 단시 한 귀절이 떠 올라 읊조리는데 만사 개유정 (万事 皆有定) , 부생 공자망 (浮生 空自忙) ~~2회로~~~ [박정린청주] [오후 6:21] ♥ 방랑시인 김삿갓 02,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날 준비 출처 : 해피포유 | 블로그 - http://naver.me/xHH9Cj6c 003 집을 떠나는 김삿갓 * 집을 떠나는 김삿갓. 이제 언제 떠날 것이며 유랑의 길을 어떻게 잡느냐만 남았다. (떠나기로 결심한 바에야 봄이 가기전에 떠나도록 하자. 봄바람을 타고 발길 닿는대로 가면 되지 않겠냐.) 생각이 이렇게 굳어지자 내일이라도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금강산도 보고싶고 구월산도 보고싶고, 할아버지가 봉직했다는 선천 땅도 밟아 보고 싶었다. 선천땅에 가면 할아버지의 체취를 맡을수 있을리란 막연한 생각도 함께 들었다. 병연은 떠날준비를 서둘렀다. 사실 , 돈을 가지고 유람을 가는것도 아니라서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었지만 .. 싸리나무로 삿갓을 만들었다.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다 보면 심한 바람도 만날 것이오 , 줄기찬 비도 맛게 될것 이오, 때로는 눈보라도 닥칠 것이니 이것들을 다소라도 이겨내려면 삿갓이 안성맟춤일 것 같았다. 삿갓은 삼일만에 커다랗게 만들어졌다. 그는 우선 머리에 써보았다.차양이 널찍하여 하늘을 가렸다. 또 깊숙이 눌러 쓰니 땅밖에 보이지 않아 누군지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삿갓아, 너는 오늘 내 손에서 태어났으니 영원한 친구가 되겠구나. 너는 내 머리위에 올라 타 나보다 더 멀리, 더 빨리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 즐거운 일이 아니겠느냐.?" 그는 삿갓을 어루만지며 쓸쓸하게 말했다. 다음으로 그는 단단한 박달나무를 잘라 지팡이를 만들었다. 지팡이와 삿갓하나, 이것이 그가 가지고 떠날 모든 것 이었다. 그날밤 병연은 아내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여보, 그래.. 뱃속에 아기는 잘 자라고 있소 ?" 병연은 내일 일찍 떠나리라 마음 먹고, 마지막으로 아내를 사랑해 주고 싶었다. 병연은 시집와서 자나 깨나 일 밖에 모르는 온순한 아내가 오늘이 지나면 생과부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르자 , 안스럽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내는 남편이 갑자기 정답게 말을 걸어오자 오히려 온 몸이 떨려왔다. 책밖에 모르던 남편이 아니었던가. 병연은 아내의 배를 만져 보았다. 아내는 부끄러운듯 몸을 꼬았다. "그래 .. 이 속에 우리 아기가 있단 말인가?" "아이 당신도 ....." 아내는 숨을 색색 내쉬었다. "하늘이 점지해 주신 생명이니 잘 키워야지. 한데 여보, 내가 없더라도 아기는 잘 키워야 하오."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달콤한 흥분에 취해있던 아내는 남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음..나 바람이나 쏘이고 싶구료. 새 처럼 세상을 훨훨 날아보고 싶소." 말을 한 병연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럼 집을 떠나시겠다는 말씀이세요?" "글쎄 바람부는 대로 돌아다니고 싶소." "당신 답답한 심정은 저도 알아요. 울적하신 판이니 바람을 쏘이셔도 좋겠지요. 하지만 집을 영영 떠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내는 남편이 아주 집을 나가 버릴까 염려되는 모양이다. "당신이 집을 지키고 있는데 달리 생각 하리오 ? 내 답답함을 풀겸 , 천하를 두루 유람하다가 돌아오리다." 아내를 안심 시키기 위해 이렇게 말을 했지만 집으로 다시 돌아올 것인가는 자신도 기약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는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들었던지 잠시후 다시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아기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돌아오도록 하세요." " ......" 병연은 말이 없었다. 비록 빈 말 이라도 그러마 하고 자신있게 대답하기에는 어딘가 가슴이 찔렸다. "염려말아요." ..병연은 망설이다가 겨우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책임있는 대답은 아니었다. 오히려 병연은 아내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 손을 뻣어 .. 아내의 목덜미 부터 가슴과 봉긋해진 배와 ,둔부까지 더듬으며 쓸어 내렸다. 병연의 부드러운 손이 스칠때 마다 아내의 몸은 새삼스럽게 놀란듯한 반응이 손 끝에 전해졌다. 갖 이십을 막 넘긴 아내의 몸은 보드랍고 탄력있었다. 유방은 엎어놓은 사발처럼 솟아 올랐고 그 한가운데는 솟은 유두가 종의 추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얕은 모래언덕같은 둔부로 손이 가자 아내는 부끄러워 어쩔줄 모르고 몸을 비틀며 신음소리 비슷한 소리 까지 얕게 뱉었다. 병연이 몸을 반쯤 일으켜 아내의 양 허벅지에 손을 넣어 다리를 벌리고 정상위 자세를 취하자 아내는 병연의 가슴을 양 손으로 막으며 작게 속삭였다. "안되요.." 병연은 난감했다. 그러면서 일편, 아내의 제지에 부끄러워졌다. 그것은 이미 봉긋하게 솟아 오른 아내의 배를 압박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과 어떤 방식으로 아내와 사랑을 나누어야 할것 인지, 자신은 알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잠시 아내의 세운 무릅 , 발끝에서 멈칫했던 병연.. 그의 아내는 이런 병연의 모습을 즐기고 있는지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리곤 그녀는 병연에 팽창한 양물을 한 손으로 곱게 잡았다. 그리고 자기 앞으로 천천히 끌어 당겼다. 그는 그녀가 이끄는대로 얌전히 두 무릅을 꿇고 끌려갔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속으로 인도했다. .....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아침 상을 물릴 때쯤 병연은 어머니께 자기 뜻을 말했다. "어머니, 저 바깥 세상 구경이나 좀 할까 합니다." 어머니는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마음도 편치 않을 것이니 좀 돌아 다니는 것도 괜챦을 것이야, 그래 어디로 갈 셈이냐 ?" 병연은 어머니가 선뜻 응락 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금강산을 들려볼까 합니다." "가볼만한 곳이지. 그러나 길이 험하다고 들었으니 각별히 몸조심 해야 할것 이다." "네, 말씀하신대로 조심하지요. 또 젊은 몸인데 별 일이야 있겠습니까. 걱정 마세요." "언제 떠날 셈이냐 ?" "오늘 떠날까 합니다." "오늘 ?" 어머니는 의아한 양 물었다. "예" "먼 길을 떠나자면 준비해야 할것도 있으려니와 오늘로 되겠느냐 ? 또 얼마쯤 노자도 마련해야 할것 이어늘 .." "노자를 가지고 여유롭게 떠날 처지가 아니오니 풍찬노숙(風餐露宿)으로 지내볼까 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말에 더이상 말이 없었다. 어차피 아들에게 노자를 마련해 줄 형편이 아니고 보니, 아들의 뜻에 맡기는것이 오히려 편할 것 같았다. "내 네 마음을 알아 만류하지 않는다만, 여름이 되기전에 돌아 오도록 하여라." "예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병연은 즉시 행장을 차렸다. 무명 두루마기를 걸치고 삿갓을 쓰고 박달나무 지팡이를 짚었다. "어머니 다시 뵈올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뜰 아래서 어머니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옆에 서있는 아내에게도 눈길을 돌려 얕트막히 말했다. "당신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병연은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사립문을 나섰다. 형 병하와 동생 병호가 사립문 밖까지 따라나왔다. "형님 이놈을 용서해 주십시오." "병연아 그런 말 하지 말고 가서 마음이나 안정 시키고 돌아 오너라. 그리고 이건 몇푼 안된다만 곤란할때 쓰도록 하여라." 형님은 이러면서 엽전 몇닙을 병연의 손에 쥐어 주었다. 병연은 거절하기가 어려울것 같아 받아 넣었다. 병호가 눈물을 흘리며 두 눈을 연신 껌뻑이며 형에게 인사를 했다. "형님 속히 돌아오셔야 합니다. 몸조심하세요." "그러마, 어머니 잘 받들고 네 형수도 잘 보살피거라." 사립문 밖에서 병연은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마음을 모질게 먹고 첫 발걸음을 떼기 무섭게 빠른 걸음으로 쏜살같이 숲속길로 빠져 나갔다. "형님 " .. 동생 병호의 외침이 등 뒤에서 들렸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이렇게 병연의 방랑은 시작 되었다. "이제 내 이름은 병연은 저 구름에 실어 흘려 보내자. 이제부터 내 이름은 삿갓 이다. 김삿갓, 불러보니 그럴듯도 한 이름이구나, 하하하 ...." 김병연, 아니 김삿갓의 너털 웃음은 봄바람 타고 공허하게 흩어졌다. 그는 마을 어귀를 휘돌아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오라는 곳도 없고 가야할 곳도 없기에 길을 서두르지 않았다. 발이 아프면 쉬고 ,피로하면 양지 바른곳에서 자면 그만이었다. ♣004 방랑의 시작♣ * 방랑의 시작. 따듯한 봄 볕을 받으며 김삿갓은 망연히 북쪽으로 북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걸었던지 .. 야산 기슭이 끝나고 넓은 들판이 나타났다. 산골에만 살던 그는 넓은 들판을 보니, 일순 가슴조차 뻥 뚫리는것 같았다. 논에서는 농부들이 한창 모내기를 하고 있었고 ,어디선가는 농악 소리도 들려왔다. 김삿갓은 구성진 못줄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모내기를 하고 있는 두렁길에 발길을 멈추고 구경을 하였다. 농군들은 못줄 넘기는 소리와 함께, 빠른 손 놀림으로 신명나게 일을 하고 있었다. 김삿갓은 가만히 서서 그들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새참거리라도 얻을수 있을까 생각하며 해를 쳐다 보니, 오시(午時)는 지난듯 하고 .. 얼추, 새참이 나올 시간이 임박해 보였다. 농사철이 되면 농군들은 하루 다섯끼를 먹는다. 아침 조반을 마치고 들에 나가면 점심전에 막걸리가 나오고, 다음으로 점심을 먹게되고 저녁전에 국수를 곁들인 술이 나온다. "음..농사철이라 음식이 흔하겠구나." 김삿갓은 입맛이 먼저 다셔졌다. 집을 떠나 올때 이미 아침은 설친채 줄곧 걸어왔으니 시장기가 느껴질 법도 하였다. 그는 농부들의 가락에 귀를 기울였다. 못 줄을 잡은 사람이 선창을 하면 모심는 사람들은 대꾸를 하였다. 어라뒤야 상사뒤야 여보소 농군님네 얼마나 남았나. 문전옥답 서마지기 반달만큼 남았네. 어라뒤야 상사뒤야 여보소 농군님네들 ~ 이농사 잘지어 풍년가 불라치면 .. 어라뒤야 상사뒤야 풍년이들면 뭣하겠소 .. 한양가서 비단사서 우리님 곱게 입혀보세~ 어라뒤야 상사뒤야 .. 신명나는 일 소리를 들은 김삿갓은 저절로 어개가 들썩 거려졌다. 그도 논으로 당장 뛰어들어 그들과 같이 어울려 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이때 마침 아낙네들이 커다란 함지박을 이고 논두렁 길을 걸어왔다. "이크, 새참이 나오는구나." 자기를 대접하려고 가지고 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장기가 든 김삿갓은 무엇보다 반가웠다. "자, 쉬었다 합시다." 못 줄잡이가 줄을 높이 쳐들며 새참이 나왔음을 알리자 엎드려 있던 농군들이 일제히 허리를 펴며 흙탕물에 손을 흔들어 씻고, 하나씩 아낙네 들이 새참을 차리는 논두덕으로 나왔다. 아낙네들은 그릇 그릇 넉넉한 국수를 담아냈고, 막걸리 동이에는 표주박도 띄워 놓았다. 이를 바라 보던 김삿갓은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리곤 그쪽으로 어슬렁 어슬렁 걸어가며 주위를 끌기위해 우선 한마디 내던졌다. "거 농부가 한번 구성지고 신명납니다 그려, 허허허 ...." 농군들은 일제히 그를 돌아다 보았다. 무명 두루마기에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폼이 마치 어느 심심유곡에서 내려온 도사(道士) 같이 보였다. "길을 잘못 잡은 것은 아니오?" 늙수구레한 못 줄잡이가 김삿갓의 행색을 살펴보고 말대꾸 했다. "길이야 밟고 지나 가라고 있는 것인데, 잘 들고 못 들고 할리가 있겠소이까 ?" "허, 보아하니 염불이나 조아리는 땡중은 아닌것 같고 , 그렇다고 선골도인(仙骨道人)도 아닌것 같고..." 말이 끝나자 김삿갓이 바삐 다음 말을 받았다. "그렇다고 문전걸식 , 비렁뱅이도 아닌 것 같다는 말씀이오?" "허허, 그 양반 눈치도 빠르네. 여보시오 도사 비슷한 양반 ,보아하니 출출하신 모양이니 새참국수에 막걸리나 자시오." 그러자 눈치껏 새참을 이고 온 아낙이 새로 ,국수 한사발을 말아 김삿갓 앞에 내밀었다. 농사철 들녁 인심은 좋은법이다. 너나없이 지나는 사람을 불러 차린상에 젓가락을 얹어주고, 누구라도 맛있는 들녁 음식을 지나치기 또한 어려운법이다. 김삿갓은 순식간에 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막걸리도 꿀꺽꿀꺽 마셨다. 배가 불렀고 이제사 살것 같았다. 먹은 값을 한다고 모내기를 하는 논에 들어갈 처지가 아니라서 잘 먹고 간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재촉 하여 떠났다. 어느덛 날이 저물었다. 어디에 가서 하루 밤 신세를 져야할 처지가 되었다. 그는 꽤 큰 동네로 들어갔다. 이집 저집을 살펴보다가 사랑채가 있을 만한 어느 큰 집에 이르러, "주인장 계시오" 목청을 가다듬고 큰 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뉘시오?" 안채에서 풍채가 그럴싸한 중년 남자가 탕건을 쓰고 나타났다. "길을 가던 과객인데 어둠을 만나 하룻밤 신세를 질까 합니다." 김삿갓은 처음으로 해보는 구걸 행각이라 차마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과객이라고 ?" 순간, 주인장의 표정이 싹 달라졌다. "과객이 날이 저물면 주막을 찾을 것이지 여염집을 왜 찾는단 말이오.썩 돌아가시오." 서릿발 같은 말씨로 매정하게 말을 한다. 세상 인심이 이럴수 있을까 하고 분한 생각이 치밀었지만 김삿갓은 꿀꺽 참았다. (어차피 아쉬운 것은 나 인데, 화를 낸들 뭐 한단 말이냐. 앞으로 이와같은 일을 다반사로 겪게 될터인 즉 . 허.. 그러나 오늘 인심 한번 고약하군.) 이렇듯 생각한 김삿갓 , 그래도 밸이 틀려 한마디 하는데, "허, 안된다면 그만이지 뭐 그깐일로 호령을 하오 ?" "아니, 저 놈이 ! " 놈자가 서슴없이 튀어 나왔지만 이미 돌아선 그의 등 뒤에 꽂혔다. 김삿갓은 들은 척 만 척 그집 문전을 떠났다. 몇 집을 더 찾아가 가까스로 어느 허술한 사랑채에 들어가게 된 김삿갓은 저녁도 굶은 채 더벅머리 낮선 머슴놈과 더불어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 왠지 기가막힌 생각이 들어, 잠이 오지 않았다. 밤은 점점 깊어가는 듯 한데 , 어디서 두견새 우는 소리가 자신의 처지처럼 애처롭게 들렸다. 김삿갓은 문득 시상이 떠올랐다. 사양구립양시비 (斜阳邱立兩柴扉) 삼피주인 수각휘 (三被主人手却挥) 두우역지풍속박 (杜宇亦知风俗薄) 격림제송불여귀 (隔林啼送不如归) (날이 저물어 두어 집 문을 두두렸는데 주인은 번번히 손을 휘둘러 쫒는구나.) (두견새도 이 박한 인심을 알고 있는지 수풀속에 떨어져 집에 돌아가라고 울어주누나.) 어느사이 눈물이 김삿갓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신세 한탄이 절로 나왔다. 방랑시인 김삿갓] ♣005 김삿갓 눈 앞에 우뚝 솟은 금강산♣ 청운의 큰 뜻이 이루어져 청루거각에 누워 있어야 할 몸이 멍석이 깔려있는 낯선 사랑방에 누워 있다니 대체 어느 쪽이 잘못 되어 있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모두 뜬 구름이야 뜬구름" "아니 이 양반이 잠꼬대는 웬 잠꼬대" 더벅머리 머슴놈이 부지중에 김삿갓이 내뱉은 말을 잠꼬대로 들었던지 툭툭 발길질을 한다. "총각, 내 잠세." 김삿갓은 이렇게 말하고 억지로 눈을 감았다. 다음날도 , 또 다음날도 김삿갓은 계속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절은 벌써 오월 이었고 집을 떠난지 어언 한달이나 되었다. 봄도 지금은 다 지나가고 신록과 더불어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김삿갓은 양구를 거쳐 금강산의 관문인 단발령에 도착하였으니 집에서 부터 오백리 길을 걸은 셈이다. 단발령 ..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쫒겨 , 이곳을 넘었을 어린 단종왕의 심사가 어떠 하였을까 하는 애처로운 마음이 김삿갓의 마음을 무겁게 짖눌러 마루턱에 앉아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회한에 젖어 있다가 다시 발길을 재촉 하였다. 단발령을 지나면 천하의 명산 금강산의 품에 안긴다. 이곳에서 비로봉 까지의 거리는 백리길 이지만 수려한 내금강에 첫 머리가 밟히는 지점이었다. 금강산을 눈 앞에 두자 김삿갓의 가슴은 쿵쿵 뛰고 발걸음은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는 길 마다 길가에 나무며 ,막 자란 풀 한포기며, 딩굴고 있는 돌멩이 하나까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금강산 어귀 골짜기에는 드문드문 동네도 있었는데 명산을 배경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인심도 나쁘지 않았다. 어느 골짜기에 이르니 무릉도원 같은 마을이 나타났다. 김삿갓은 쉬어갈겸 동네 어귀로 들어갔다. 마침 글방에서 아이들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오는 집이 있어 김삿갓은 다짜고짜 들어갔다. 방안에는 여나믄 학동들이 있었는데 불쑥 나타난 김삿갓을 보자 호기심 찬 눈으로 바라 보았다. "마침 글을 짓는 시간이군." 김삿갓은 학동들이 쳐다보던 말던 개의치 않고 학동들이 펼쳐놓은 종이를 바라 보았다. 글제는 역발산 (力拔山)으로 항우의 글을 지으라는 훈장의 분부였다. 김삿갓은 호기심에 한 학동이 지어 놓은 글을 주욱 읽었다. "남산북산 신령왈 / 南山北山 神嶺曰 항우당년 난위산 / 項羽當年 難爲山" "남산 북산 신령이 말하기를 항우가 살았을적 에는 산이 되기 어려웠다더라." 김삿갓은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린 학동이 지었다고 믿을수 없는 솜씨였다. 그래 옆에 아이는 어떻게 썼는가 하고 읽어 보았다. "우발좌발 투공중 / 右拔左拔 投空中 평지왕왕 다신산 / 平地往往 多新山" "오른손 왼손으로 빼내어 공중에 던지니 평지 곳곳에 새 산이 많이 생겼다." 김삿갓은 감탄했다. 어린 학동들의 글 짓는 솜씨가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글 좀 하는 선비들은 힘 센 장사는 두려워 하지 않지만 글 잘 하는 인재는 두려워 하는 법이다. 김삿갓도 어린 학동들을 보기가 무서웠다. 그렇다고 슬그머니 나오기도 멋 쩍은 일 이라서 자기도 한수 적어놓았다. " 항우사후 무장사 / 項羽死後 無壯士 수장발산 투공중 誰將拔山 投空中" " 항우가 죽은 후 힘쓴 장사가 없었으니 지금은 누가 산을 뽑아 공중에 던질것 인가" 김삿갓 처음에 이곳에 들어 올때는 학동들에게 글 줄이나 가르쳐 주고 하루쯤 쉬어갈 요량 이었으나 어름어름할 자리가 아닌듯 하여 황망히 뛰쳐 나오고 말았다. 며칠을 더 걷자 금강산이 눈 앞에 우뚝 서 있었다. 때는 여름이 되었고 수풀사이에서 목탁을 두두리고 불경을 외우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절이 있었다. 김삿갓은 성큼성큼 법당으로 오르는 층계를 밟았다. 법당안에는 까까머리 스님 한분과 유건에 도포를 입은 젊은 선비 하나가 대좌하고 김삿갓이 온 것도 모르고 무언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에헴 !" 김삿갓은 인기척을 하였다. "누구요 ?" 중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절 구경 좀 왔소이다." 김삿갓은 천연스럽게 대꾸하고 다짜고짜 법당 안으로 썩 들어섰다. "아니 이양반이 여기가 어디라고 무례하게 함부로 올라오는게요 ?" 유건을 쓴 선비가 쌍심지를 치켜 세우며 날카롭게 내뱉는다. "법당이지요, 자비로우신 부처님께서 어디 양반 상놈 가리신답니까 ?" "아니 이 사람이 선비가 어이없어 하며 김삿갓을 위 아래 훝어보며 행색을 살펴본다. 차림새는 비록 남루하지만 말하는 태도를 보아하니 글줄이나 읽은 사람으로 보였는지 , 이 무례한 방문객을 보기 좋게 물리칠 계책을 재빨리 궁리했다. "어디서 오셨소이까 ?" 이번에는 중이 말문을 열었다. "예,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 올씨다. 잠시 쉬어갈겸 절 구경을 왔습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 곁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러자 젊은 선비가 눈쌀을 찌푸리며 노골적인 언사로 말을 하였다. "여보시오, 우린 지금 긴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자리를 삼가해 주시오." "어허 , 보아하니 은밀한 말씀을 나누고 계신 모양인데 참 딱도 하시오." "아니 뭐가 딱하단 말이오 ?" 김삿갓은 냉큼 일어날 기색은 없이 그들의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방랑시인 김삿갓 ♣006 선비와의 언문풍월 대결♣ * 선비와의 언문풍월 대결. "아니 뭐가 딱하단 말이오?" 중이 험악한 대꾸를 하는데 그의 말에는 칼과 같은 날카로움이 있었다. "스님, 긴요한 이야기라면 뒷켠 승방에서 나눌 일이지 어찌 부처님 앞에서 나눈단 말씀이오. 앉아 계셔도 구만리를 내다 보시는 부처님이 두렵지 않고 한낮 지나가는 이 과객은 두렵단 말이오 ?" "뭣이 ?" 선비와 중은 동시에 입을 딱 벌리며 기막혀 했다. 말을 듣고보니 이치에 닿는 말이었다. 인간은 속일수 있을지언정, 부처님은 못 속이는 법, 지금까지 부처님 앞에서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잘것 없는 나그네 하나를 물리치려던 자신들이 부끄러웠다. 선비는 이 낯선 과객의 말솜씨가 보통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마침내 한꾀를 생각했다. 그것은 어려운 글겨루기를 해서 창피를 주어 내쫒을 심산 이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풍류 과객을 자처하며 어설픈 글줄이나 읊조리며 밥술이나 얻어 먹으려는 부류들을 많이 겪었지만 제대로 시 한수 읊는 놈은 본봐 없었다. 선비는 김삿갓도 그런 치들중 하나로 생각했다. 그래서 글짓기를 하여 뾰족한 코를 뭉개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우선 상대방의 실력을 알아야 하겠기에 먼저 딴청을 피워 보았다. "보아하니 풍월깨나 알고 있는것 같은데 진정 풍류를 아는 선비라면 내 톡톡히 선비 대접을 하려니와 글에 자신이 없다면 어서 저쪽 주방으로 가서 찬 밥술이나 얻어먹고 가시구려." 김삿갓은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오냐, 네 놈이 글줄이나 읽은 모양인데 어디 한번 혼똥을 싸보아라..) 이렇게 선비를 비웃으면서도 표면으로는 정색을 하면서 점쟎게 말문을 열었다. "거 듣던중 반가운 말씀이외다. 불초 깊이 배운바 없으나 일찍이 부친덕에 천자문을 읽어 하늘천 따지는 머릿속에 집어 넣었고 어미덕에 언문줄이나 깨우쳤으니 하교 하시면 가르침을 받겠소이다." 김삿갓의 이같은 말에 중이나 선비는 눈쌀을 더욱 찌푸렸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이건 은근한 도전이 아니던가. "쫗소.그럼 내가 먼저 운을 부를테니 즉시 답을하시오." 선비는 어차피 내친 발길이라 돌릴수 없어 이렇게 말을 하고 잠시 생각끝에 입을 열었다." "타 ! " 그의 입에서 타란 말이 떨어졌다. "타라니, 이건 한문 풍월이오,아니면 언문 풍월이오 ?" 김삿갓은 눈을 반짝이며 선비에게 물었다. "그야 물론 언문 풍월이지." 김삿갓을 싹 무시하는 말씨였다. "좋소이다. 그럼 내 답 하리다. 사면 기둥 붉게 타 ! " "또 타 !" "네 절 인심 고약타 !" 타자가 떨어지기 무섭게 김삿갓이 내뱉으니 선비는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더구나 갈수록 듣기 거북한 말이 나오자 다시 더부를 마음이 없었다. 잘못 더 불렀다가는 무슨 욕이 나올지 모를 판이었다. 김삿갓은 선비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다시 "타!" 하고 내뱉으면 "지옥가기 꼭 좋타 !" 하고 내쏠 작정 이었다. 그러나 선비의 입에서는 더이상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그냥 있기가 안된 던지 중이 먼저 입을 열었다. sep 6 2020 pm :5:10 ,wellbeing rema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