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이슈 문답집
"마태복음 22장 37-4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 구절을 인용할 수 있고 심지어 암송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 들이 무엇을 수반하는지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습니까?
또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 16절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그분과 같이 되도록 계속 연단하시는 가운데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복음의 신실한 증인이 되어 예수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진정으로 세상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101 문단집은 교회가 20세기 후반 이후 가장 논쟁적인 문제 중 하나인 동성애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유사한 글과 달리 이 책은 무엇보다도 문제의 진정한 초점인 하나님의 대표자로서의 교회의 역할을 교회에 상기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성에 관한 부분으로 시작하여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 견해와 논의에 관한 부분이 이어지고, 비크리스천이나 다른 견해를 가진
동료 크리스천이제기하는 일반적인질문에 대한 부분으로 끝납니다.
관심 있는 특정 질문을 먼저 탐색하고 읽을 수 있지만 질문이 대부분 순서대로 서로 관련되어있으므로 더 나은 이해를 위해 전체 FAQ를
연대순으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이 FAQ는 성경적 관점을 고수하면서 독자들에게 주제에 대한 보다 전체론적인 감정을 제공하고자 하기 때문에 주제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가진 출처에 대한 참조를 이 FAQ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의인화된 사랑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분을 추구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이것은 또한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 하나님께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대계명의 일부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4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 사에에는 항상 투쟁이 있는 것 같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사랑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까?
사랑은 가혹하지 않고, 사랑은 맹목적인 수용이 아니며, 사랑은 결코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겸손의 옷을 입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는 말과 행동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되찾아야 합니다.
동성애와 교회에 대한 오늘의 토론은 교회가 단합하고 중요한 것, 즉 세상에 대한 신실하고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의 대표자가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도록 촉구하는 분명한 요청입니다.
나와라, 거룩한 집으로 오라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를 보호하여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고 최대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선한 삶과 거룩함의 기준입니다.
거룩함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 예수님처럼 되는 것
이 문제에 대한 성경의 입장은 매우 분명합니다.
동성애의 성적 행위와 낭만적인 관계는 하나님께서 인류가 계획하신 것과 일치하지 않으며 죄입니다.
다만 이것들은 성경에 나오는 유일한 성적인 죄가 아닙니다.
이와 함께 간음, 근친상간, 시체성애, 수간 등이 있습니다.
성적으로 유혹을 받는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교회의 메시지는 다른 분야에서 유혹을 받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동일 해야 합니다.
거룩한 집을 준비함
우리가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고 그분의 제자가 되도록 세상을 부를 때, 교회는 환영하고 양육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 대한 부당 대우는 어려움과 결점에 관계없이 교회에서 용납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랜 기간 동안 교회는 동성애 활동에 우혹을 받거나 참여하는 사람들을 적절하게 사랑하고 보호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교회가 자신을 낮추고 화해의 일을 시작하여 모든 인류의 파괴와 불완전함을 위한 참된 피난처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결점을 인식함
교회는 많은 커뮤니티, 특히 LGBTQ 커뮤니티(반드시 웅호자만 그런 것은 아님)의 사람들에게 몇 가지 방식으로 상처를 입혔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우리를 가장 필요로 할 때, 너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죄에 빠져 있다, 대체 왜 그래? 게이짓은 그만하면 안 돼? 라고 쉽게 충고했습니다.
우리는 또한 동성애로부터 공개적으로 투쟁하는 자들의 간증에 더욱 귀를 기울이면서 은혜에 집중하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 하는데에 실패했을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예를 알고 싶다면, 동성 끌림(SSA)을 경험하고 이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열려 있는 사람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슬픈 점은 그들이 지도자, 동료 크리스천에게 마음을 여는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종종 그들의 용기와 신뢰를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1) 우리가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왜 그렇게 느끼는지 먼저 듣지 않고, 세상에서 게이가 사라지기를 기도 하거나 막연히 그들이 동성애를 멈추도록 기도 하려고 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상대방이 겪고 있는 일을 먼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변화시키려고만 할 때 우리는 사랑한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2) 우리는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못했습니다.
영화 어벤저스 엔드게임의 하워드 스타크의 말을 인용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면 그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습니다.
성적 투쟁은 종종 금기시되는 주제였으며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그 복잡성 때문에 그것을 피합니다.
우리는 성적 투쟁과 유혹 속에서 서로 함께 여행할 수 있도록 성에 대한 성경적 관점과 우리 자신의 이해를 구축하는 데 시간을 할애할 수 있고 뚀 그래야만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누군가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 끌림을 경험하거나 다른 성적 유혹과 싸우고 있는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을 위해 최선(결과)을 원할 뿐입니다.
3) 우리는 그들의 문제를 치료해야 하고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쉽사리 사역에 뛰어들지는 못합니다.
물론 죄는 누구에게나 나쁜 것이지만 죄는 또한 우리 모두 안에 있는 타락하고 반역적인 본성의 선물입니다.
이 타락한 본성은 우리가 자기 중심적으로 서로를 다치게 할 때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를 통해 여러 유형의 균열을 더 많이 만듭니다.
망가진 것은 복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있는 그분의 아들딸들들 통해 초자연적으로나 자연적으로 치유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그들을 돌보십니다.
우리는 그들의 구원자가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그들의 삶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에서 우리의 역할은 서로 돕는 것입니다.
짐을 지고, 서로에게 가족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서로 사랑하고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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