昭公 19年(紀元前 523年)
十九年春, 楚工尹赤遷陰于下陰, 令尹子瑕城郟. 叔孫昭子曰 : 「楚不在諸侯矣. 其僅自完也, 以持其世而已.」
십구년춘, 초공윤적천음우하음, 영윤자하성겹. 숙손소자왈 : 「초부재제후의. 기근자완야, 이지기세이이.」
[解釋] 소공 19년 봄에, 楚나라 工尹 赤이 陰을 下陰으로 옮기고, 令尹 子瑕는 <郟>에다 성을 쌓았다. 叔孫昭子가 말하기를, 「초나라는 뜻이 제후들을 병합하는데 있지 않다. 겨우 자기 나라나 지킴으로써, 대나 이어가려 하는 것이다.」고 했다.
楚子之在蔡也, 郹陽封人之女奔之, 生大子建. 及卽位, 使伍奢爲之師, 費無極爲少師. 無寵焉. 欲讒諸王曰 : 「建可室矣.」 王爲之聘於秦. 無極與逆, 勸王取之. 正月, 楚夫人嬴氏至自秦.
초자지재채야, 격양봉인지여분지, 생태자건. 급즉위, 사오사위지사, 비무극위소사. 무총언. 욕참저왕왈 : 「건가실의.」 왕위지빙어진. 무극여역, 권왕취지. 정월, 초부인영씨지자진.
[解釋] 楚나라 임금이 蔡나라에 있을 때, 郹陽땅의 국경을 지키는 사람의 딸을 결혼식도 없이 데리고 살아, 大子 建을 낳았다. 그 위 초나라 평왕은 즉위하자, 伍奢로 하여금 태자 건의 사로 삼고, 費無極을 少師로 삼았다. 그러나 費無極은 태자 건에게 총애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평왕에게 말하기를, 「태자에게 장가를 들이십시오.」라고 했다. 그래서 평왕은 태자를 위하여 진나라에서 며느리를 데려오도록 했다. 그때 費無極도 태자를 위하여 진나라로 가는 사자 일행 중에 끼었는데, 費無極은 평왕에게 그녀를 자신이 취하라고 전했다. 정월에, 楚나라 夫人 嬴氏가 秦나라로부터 왔다.
鄅夫人, 宋向戌之女也. 故向寧請師. 二月, 宋公伐邾, 圍蟲. 三月, 取之. 乃盡歸鄅俘.
우부인, 송향술지여야. 고향영청사. 이월, 송공벌주, 위충. 삼월, 취지. 내진귀우부.
[解釋] 鄅나라 夫人은 宋나라 向戌의 딸이었다. 그러므로 향술의 아들 向寧이 송나라 임금에게 군사를 요청했다. 2월에, 宋나라 임금은 邾나라를 정벌하여, 蟲지방을 포위했다. 3월에, 그것을 빼앗았다. 그래서 주나라는 우리나라의 남김없이 포로를 돌려보냈다.
夏許悼公瘧. 五月戌辰, 飮大子止之藥卒, 大子奔晉. 書曰, 弑其君. 君子曰 : 「盡心力以事君, 舍藥物可也.」 邾人郳人徐人會宋公, 乙亥, 同盟于蟲.
하허도공학. 오월술진, 음태자지지약졸, 태자분진. 서曰, 시기군. 군자왈 : 「진심력이사군, 사약물가야.」 주인예인서인회송공, 을해, 동맹우충.
[解釋] 여름에 許나라 悼公이 학질을 앓았다. 5월 戌辰日에, 大子 止가 바치는 藥을 마시고 죽자, 大子는 晉나라로 달아났다. 그래서 경문에 이르기를, '大子 止가, 그의 임금을 죽였다.'고 한 것이다. 君子가 평하기를, 「마음과 힘을 다하여 임금을 섬기면서, 藥같은 것은 관계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邾나라 사람, 郳나라 사람, 徐나라 사람이 宋나라 임금과 만나, 乙亥日에, 蟲지방에서 동맹을 맺었다.
楚子爲舟師以伐濮. 費無極言於楚子曰 : 「晉之伯也, 邇於諸夏. 而楚辟陋, 故弗能與爭. 若大城城父, 而寘大子焉, 以通北方, 王收南方, 是得天下也.」 王說, 從之.
초자위주사이벌복. 비무극언어초자왈 : 「진지백야, 이어제하. 이초벽루, 고불능여쟁. 약대성성보, 이치태자언, 이통북방, 왕수남방, 시득천하야.」 왕열, 종지.
[解釋] 楚나라 평왕은 수군을 편성하여 濮지방을 정벌했다. 費無極은 초나라 평왕에게 말하기를, 「晉나라가 패주가 된 것은, 諸夏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나라는 치우쳐 있기 때문에, 진나라와 경쟁이 안 됩니다. 만약 城父땅에다 큰 성을 쌓고, 大子 建을 그곳에다 둠으로써, 北方과 통하려 하시고, 임금님께서는 남쪽 지방을 거두어들이면, 천하를 얻을 수 있습니다.」고 하였다. 평왕은 매우 기뻐하여, 그 말을 따랐다.
故大子建居于城父. 令尹子瑕聘于秦, 拜夫人也. 秋齊高發帥師伐莒, 莒子奔紀鄣, 使孫書伐之. 初莒有婦人, 莒子殺其夫, 已爲嫠婦. 及老, 託於紀鄣, 紡焉以度而去之.
고태자건거우성보. 령윤자하빙우진, 배부인야. 추제고발솔사벌거, 거자분기장, 사손서벌지. 초거유부인, 거자살기부, 이위리부. 급노, 탁어기장, 방언이도이거지.
[解釋] 그러므로 大子 建은 城父땅에 가 살게 되었다. 令尹 子瑕가 秦나라를 방문하니, 부인을 모셔온 데 대한 답례 차 간 것이다. 가을에 齊나라 高發이 군사를 거느리고 莒나라를 정벌하자, 莒나라 임금은 기장으로 도망가므로, 孫書로 하여금 가서 정벌하게 했다. 처음에 莒나라에 한 부인이 있었는데, 莒나라 임금이 그녀의 남편을 죽여, 그녀는 과부가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늘그막에, 기장 땅에서 몸을 의탁해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삼으로 만든 동아줄을 성의 높이에 맞추어 만들어 감추어 두었다.
及師至, 則投諸外, 或獻諸子占. 子占使師夜縋而登, 登者六十人, 縋絶. 師鼓譟, 城上之人亦譟. 莒共公懼, 啓西門而出. 七月丙子, 齊師入紀.
급사지, 즉투저외, 혹헌저자점. 자점사사야추이등, 등자육십인, 추절. 사고조, 성상지인역조. 거공공구, 계서문이출. 칠월병자, 제사입기.
[解釋] 그 후 제나라 군대가 성 밑으로 오자, 이 줄을 성 밖으로 내려 던지니, 어떤 자가 그 줄의 한 끝을 손서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손서는 군사들로 하여금 그 줄을 타고 올라가려 하니, 올라간 자가 60명이나 되었는데, 줄이 끊어졌다. 그래서 성 밑의 군사들이 북을 치며 소리치고, 성 위의 군사들도 또한 북을 치며 소리쳤다. 그래서 莒나라 공공은 두려워, 성문을 열고 달아났다. 7월 丙子日에, 제나라 군대는 <紀>지방으로 들어갔다.
是歲也, 鄭駟偃卒. 子游娶於晉大夫, 生絲, 弱其父兄立子瑕. 子産憎其爲人也, 且以爲不順, 弗許, 亦弗止. 駟氏聳. 他日, 絲以告其舅. 冬晉人使以幣如鄭, 問駟乞之立故.
시세야, 정사언졸. 자유취어진대부, 생사, 약기부형입자하. 자산증기위인야, 차이위불순, 불허, 역불지. 사씨용. 타일, 사이고기구. 동진인사이폐여정, 문사걸지입고.
[解釋] 이 해에, 鄭나라 駟偃이 죽었다. 전에 子游는 晉나라 大夫의 집안에서 아내를 맞이하여, 아들 <絲>를 낳았으나, 나이가 어리므로 자유의 숙부 子瑕를 후계자로 세웠다. 그러나 자산은 자하의 사람됨을 싫어하고, 또 자하를 세우는 것은 순리가 아니라고, 허락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말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駟氏들은 두려워했다. 어느 날, 사는 이 일을 진나라에 있는 외조부에게 알렸다. 겨울에 진나라 사람은 사신에게 선물을 가지고 정나라로 가서, 자하가 駟氏의 대를 잇게 된 까닭을 물었다.
駟氏懼, 駟乞欲逃, 子産弗遣, 請龜以卜, 亦弗予. 大夫謀對, 子産不待而對客曰 : 「鄭國不天, 寡君之二三臣札瘥夭昏, 今又喪我先大夫偃, 其子幼弱, 其一二父兄懼隊宗主, 私族於謀, 而立長親.
사씨구, 사걸욕도, 자산불견, 청구이복, 역불여. 대부모대, 자산부대이대객왈 : 「정국불천, 과군지이삼신찰채요혼, 금우상아선대부언, 기자유약, 기일이부형구대종주, 사족어모, 이립장친.
[解釋] 그래서 자하는 겁이 나서, 달아나려고 하였으나, 자산은 놓아 주지도 않고, 거북을 요청하여 점을 치려했으나, 자산은 그것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들이 진나라 사신에게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를 묻자, 자산은 거기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자기가 직접 진나라 사신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정나라는 하늘이 복을 받지 못하여, 우리 임금님 곁의 몇 대부들이 근래 모두 죽었고, 지금 또 우리의 先大夫 사언이 죽었는데, 그의 아들은 어려, 그 집안의 한두 부형들이 그 집안의 종가가 망할까 두려워하여, 가족회의를 열고, 집안의 어른을 골라 세웠소.
寡君與其二三老曰, '抑天實剝亂是, 吾何知焉?' 諺曰, '無過亂門.' 民有亂兵, 猶憚過之, 而況敢知天之所亂? 今大夫將問其故, 抑寡君實不敢知, 其誰實知之?
과군여기이삼노왈, '억천실박난시, 오하지언?' 언왈, '무과난문.' 민유난병, 유탄과지, 이황감지천지소난? 금대부장문기고, 억과군실불감지, 기수실지지?
[解釋] 그래서 우리 임금님과 몇몇 대부들은 도리어 말하기를, '하늘이 실은 그 집안을 박살내는 것이나, 우리가 어찌 그것을 알 것인가?'라고 했소. 또 속담에도 이르기를, '문란한 집 앞을 지나가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백성을 중에 무기를 휘두르며 싸우는 것을 보아도, 지나가기를 꺼리거든, 하물며 감히 하늘의 장난을 알겠소이까? 지금 진나라 대부께서 그 연고를 물으시려 하나, 도리어 우리 임금님도 실은 알지 못하시니, 누가 알 수 있습니까?
平丘之會, 君尋舊盟曰, '無或失職.' 若寡君之二三臣其卽世者, 晉大夫而專制其位, 是晉之縣鄙也, 何國之爲, 辭客幣而報其使. 晉人舍之.」
평구지회, 군심구맹왈, '무혹실직.' 약과군지이삼신기즉세자, 진대부이전제기위, 시진지현비야, 하국지위, 사객폐이보기사. 진인사지.」
[解釋] 平丘의 회합에서, 진나라 임금님께서 예부터 동맹을 되새기면서, '각기 맡은 바 직책을 잃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우리 임금님의 몇몇 신하가 죽어, 진나라 대부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면, 우리나라는 진나라의 한 속국이 되는 것이니, 가져온 선물을 사양하여 보내고, 사신을 따로 진나라로 보내어 답례하게 하였다. 그래서 진나라에서는 이 문제는 내버려 두었다.
楚人城州來. 沈尹戌曰 : 「楚人必敗. 昔吳滅州來, 子旗請伐之, 王曰, '吾未撫吾民.' 今亦如之. 而城州來以挑吳, 能無敗乎?」
초인성주래. 심윤술왈 : 「초인필패. 석오멸주래, 자기청벌지, 왕왈, '오미무오민.' 금역여지. 이성주래이도오, 능무패호?」
[解釋] 초나라 사람이 州來에다 성을 쌓았다. 그래서 沈尹戌이 말하기를, 「초나라 사람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옛날 오나라가 州來를 멸할 때, 子旗가 정벌하자고 했으나, 임금님은 이르기를, '나는 아직 백성들을 안정시키지 못했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그때와 같다. 그런데 州來지방에다 성을 쌓아 놓고 오나라에 도전하니, 패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侍者曰 : 「王施舍不倦, 息民五年. 可謂撫之矣?」 戌曰 : 「吾聞撫民者, 節用於內, 而樹德於外, 民樂其性, 而無寇讎. 今宮室無量, 民人日駭, 勞罷死轉, 忘寢與食, 非撫之也.」
시자왈 : 「왕시사불권, 식민오년. 가위무지의?」 술왈 : 「오문무민자, 절용어내, 이수덕어외, 민락기성, 이무구수. 금궁실무량, 민인일해, 노파사전, 망침여식, 비무지야.」
[解釋] 이에 같이 있던 부하가 말하기를, 「임금님께서 은혜를 베푸는 일에 게으르지 않고, 백성을 안식시킨 지가 5년이나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안정됐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라고 하자, 심윤술이 다시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백성을 안정시키는 자는, 안으로는 비용을 절약하고, 밖으로는 덕을 세워, 백성들은 그 생활을 즐기고, 원수를 만들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궁실이 한이 없고, 백성들은 날로 두려워하며, 피로하여 지쳐 죽거나 이사 가며, 침식을 잊으니, 이것은 안정시킨 것이 아니다.」고 했다.
鄭大水, 龍鬪于時門之外洧淵. 國人請爲禜焉, 子産弗許曰 : 「我鬪, 龍不我覿也. 龍鬪, 我獨何覿焉? 禳之, 則彼其室也. 吾無求於龍, 龍亦無求於我.」 乃止也.
정대수, 용투우시문지외유연. 국인청위영언, 자산불허왈 : 「아투, 용불아적야. 용투, 아독하적언? 양지, 즉피기실야. 오무구어용, 용역무구어아.」 내지야.
[解釋] 鄭나라에 홍수가 나서, 龍이 도성문의 시문 밖 洧淵에서 싸웠다. 국민들이 푸닥거리를 하라고 했으나, 子産은 허락하지 않으면서, 우리들이 싸울 때, 龍은 우리를 보지 않는다. 그러니 용이 싸울 때, 우리가 왜 보는가? 푸닥거리를 하려 해도, 洧淵은 용이 사는 곳이라. 우리가 龍에게 요구할 것도 없고, 龍도 우리에게 요구할 것이 없다.」고 하므로, 곧 중지했다.
令尹子瑕言蹶由於楚子曰 : 「彼何罪? 諺所謂, '室於怒市於色者.' 楚之謂矣. 舍前之忿可也.」 乃歸蹶由.
영윤자하언궐유어초자왈 : 「피하죄? 언소위, '실어노시어색자.' 초지위의. 사전지분가야.」 내귀궐유.
[解釋] 楚나라 令尹 子瑕가 초나라 평왕에게 오나라 왕의 동생 蹶由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속담에 이르기를, '방안에서 골이 나고 시장에 가서 화풀이한다.'고 한 것은, 우리 초나라를 두고 한 말입니다. 진나라의 분함을 푸심이 좋습니다.」고 하였다. 그래서 곧 蹶由를 오나라로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