莊公 19年(紀元前 675年)
十九年春, 楚子禦之, 大敗於津還. 鬻拳弗納, 遂伐黃, 敗黃師于踖陵還. 及湫有疾, 夏六月庚申卒.
십구년춘, 초자어지, 대패어진환. 육권불납, 수벌황, 패황사우적릉환. 급추유질, 하육월경신졸.
[解釋] 장공 19년 봄에, 초나라 문왕은 파나라 군대를 수비하다가, 진에서 대패하고 돌아왔다. 그러자 그의 보좌역인 鬻拳이 문왕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드디어 황을 정벌하여, 황의 군대를 踖陵에서 패배시키고 추로 돌아왔다. 그러나 초나라 땅 추에까지 온 문왕은 병이 나서, 여름 6월 庚申日에 죽었다.
鬻拳葬諸夕室, 亦自殺也, 而葬於絰皇. 初鬻拳强諫楚子, 楚子弗從, 臨之以兵, 懼而從之.
육권장저석실, 역자살야, 이장어질황. 초육권강간초자, 초자불종, 임지이병, 구이종지.
[解釋] 鬻拳은 문왕을 석실 지방에다 장사지내고, 또한 자신도 자살했으므로, 絰皇에 묻혔다. 처음에 鬻拳은 문왕이 파나라 군대에게 대패하고 돌아왔을 때에 초 문왕에게 강하게 간했으나, 문왕은 듣지 않았으므로, 무기를 들이대자, 문왕은 두려워서 그 의견을 따랐다.
鬻拳曰 : 「吾懼君以兵, 罪莫大焉.」 遂自刖也. 楚人以爲大閽, 謂之大伯, 使其後掌之. 君子曰 : 「鬻拳可謂愛君矣. 諫以自納於刑. 刑猶不忘納君於善.」
[解釋] 鬻拳은 말하기를, 「내가 무기를 들고 임금을 두렵게 망들었으니, 죄가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하고, 스스로 발꿈치를 베어 자살했다. 초나라 사람들은 그를 수문장으로 삼아, 大伯이라 부르고, 그의 후손들로 하여금 그 직책을 계승하게 했다. 그래서 군자는 비평하기를, 「鬻拳은 정말 임금을 사랑했다고 할 수 있다. 임금을 간하고 그 책임을 자신이 지고 스스로 자신을 처형했다. 자신을 처형하면서도 오히려 임금을 훌륭하게 만드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
初王姚嬖于莊王, 生子頹. 子頹有寵, 蔿國爲之師. 及惠王卽位, 取蔿國之圃以爲囿, 邊伯之宮近於王宮, 王取之, 王奪子禽祝跪與詹父田, 而收膳夫之秩.
초왕요폐우장왕, 생자퇴. 자퇴유총, 위국위지사. 급혜왕즉위, 취위국지포이위유, 변백지궁근어왕궁, 왕취지, 왕탈자금축궤여첨보전, 이수선부지질.
[解釋] 처음에 王姚가 주나라 장왕에게 사랑을 받아, 子頹를 낳았다. 子頹는 장왕에게 총애를 받아, 蔿國이 그의 스승이 되었다. 그러나 혜왕이 즉위하자, 蔿國의 채마밭을 빼앗아 왕의 동산으로 만들고, 또 대부 邊伯의 저택이 왕궁에 가까웠으므로, 왕은 그것도 빼앗고, 또 子禽, 祝跪, 詹父 등 세 대부의 땅도 빼앗고, 膳夫의 직책에 있던 석속의 복록도 빼앗았다.
故蔿國, 邊伯, 石速, 詹父,`子禽, 祝跪作亂, 因蘇氏. 秋五大夫奉子頹以伐王. 不克, 出奔溫, 蘇子奉子頹以奔衛. 衛師燕師伐周, 冬立子頹.
고위국, 변백, 석속, 첨보,`자금, 축궤작란, 인소씨. 추오대부봉자퇴이벌왕. 불극, 출분온, 소자봉자퇴이분위. 위사연사벌주, 동입자퇴.
[解釋] 그러므로 蔿國,` 邊伯, 石速, 詹父, 子禽, 祝跪 등 6명이 난을 일으켜, 일찍이 왕실에 원한을 품고 있던 대부 蘇氏를 중심으로 단결했다. 가을에 5명의 대부들은 子頹를 받들고 혜왕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기지 못하여, 溫지방으로 도망가고, 蘇씨는 子頹를 받들고 위나라로 도망갔다. 그래서 위나라 군대와 연나라 군대가 주나라를 징벌하고, 겨울에 子頹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