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스트리아다!
음악의 도시 비엔나와 짤츠부르크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설렜다.
어제보다 한 시간 늦은 9시에 오스트리아를 향해 출발했다.
국경에 도착하니 11시 20분, 하지만 입국 심사가 예상보다 꽤 오래 걸린다.
이유인즉, 잘 사는 나라에서 못 사는 나라 들어갈 때는 심사가 간단하지만, 못사는 나라에서 잘사는 나라(특히 오스트리아)에 들어갈 때는 심사가 무척 까다롭다는 것이다.
어쨌든 무조건 잘 살고 볼 노릇이다.
이규희샘은 빈에 사는 후배 한스와 이메일로 연락이 되었다며 저녁쯤이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국제적으로 노는 이규희샘.
그런데 나는 뭐야?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영화처럼 이규희샘의 후배 한스가 짠! 하고 나타났다.
감격의 도가니. 두사람은 껴안고 팔짝팔짝 난리가 났다.
점심을 먹고, 둘은 일행과 떨어져 따로 구경하기로 하고, 우리는 쇤브룬 궁전으로 향했다.
이규희샘이 없으니 왠지 외롭고 심심하고 그렇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그런 모양이다.
멀리 보이는 쇤브룬 궁전 앞에서 세 남자가 포즈를 취했다.
비엔나(빈)는 링크 외곽 지역과 링크 안쪽 지역으로 나뉜다.
쇠브룬 궁전이 있는 곳은 빈 외곽 지역이다.
그러므로 구경이 끝나면 다시 버스를 타고 링크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고, 거기서부터는 걸어서 구경을 해야 한다.
'쇤브룬'은 아름다운 분수라는 뜻으로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이며, 이곳에서 마리아 테레지아와 그녀의 막내딸 마리 앙뜨와네뜨가 살았다.
궁전 내부는 당근 찍을 수 없었다.
궁전 내부는 모두 1441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45개만 개방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방은 '거울의 방'- 이곳에서 6살 어린 모짜르트가 마리아 테레지아의 앞에서 연주를 했다고 한다.
궁전 외부는 넵튠 분수와 이 분수 뒤에 있는 그리스 신전 양식으로 세운 글로리테이다.
시간이 없어서 넵튠 분수까지만 갔다오라는 가이드님의 말씀..
역시 시간이 문제였다.
비엔나만 보는데도 2~3일 걸린다고 하는데 번개처럼 하루만에 다 보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까.
하지만 어쨌든 꿈에도 그리던 비엔나 땅을 밟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기쁘다.
기쁨으로 가득찬 이 가슴의 울렁거림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이규희샘이 그랬다.
"안선모는 좋아하는 게 없더라."고.
이규희샘은 좋은 걸 보면 와, 좋다고 표현하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거침없이 사곤한다.
그런데 나는, 별로 갖고 싶은 것도 없고, 사고 싶은 것도 없다.
그러니, 미적지근 밍밍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이규희샘 가슴에는 뜨거운 불덩어리가 들어있지만 내 가슴엔 차가운 불덩어리가 들어있다. 차가운 불덩어리...
이제 링크 안쪽으로 들어갈 차례다.
링크 안쪽은 빈의 최고 번화가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찬란했던 문화유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궁정극장, 원래는 왕궁 무도회장이었다.
이 안에는 19세기 최고의 화가 클림트의 프레스코 천장화 <데어 테슈피슈카렌>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을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두 건물.
이곳은 자연사박물관이고,
이곳은 미술사박물관이다.
이 밖에도 1883년에 세워진 네오고딕 양식의 시청서 건물, 국회의사당이 있지만...
흑흑...모두 밖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쳐다보기만 했다.
좀 쉬었다 가자.
오스트리아 노인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가, 편안하게 기분좋게 포즈를 취했다.
오스트리아 노인들은 멋이 있고, 여유가 있으며, 입가에 늘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대대로 내려오는 문화유산의 에너지를 받아서일까.
어쨌든 부러운 노릇이다.
나도 이렇게 늙을 수 있을까?
여유 있는 모습으로 미소를 짓는 할머니를 상상해 본다.
미래의 내 모습...
그리고 꼭 그렇게 늙겠노라고 다짐을 해본다.(하지만 어쩌랴. 그게 내 맘대로 되지는 않을 터..)
빈의 상징이자 혼인 성 슈테판 성당은 오스트리아 최고의 고딕 성당이다.
23만 개의 벽돌로 지어졌다는 이 성당에서 모짜르트의 화려한 결혼식과 초라한 장례식이 치뤄졌다.
멋진 상당의 모습을 한 장에 담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문을 감싸는 전면부는 13세기 로마네스크 양식, 높은 뾰족탑과 스테인드 글라스는 고딕 양식, 주 제단은 바로크 양식....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정말 좋겠다.
이렇게 찬란한 문화유적도 모자라, 걸출한 세계적인 음악가들도 많이 배출했으니.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앞으로 물질적인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정신적 문화적인 것에 더 힘을 기울이자고.
피아노도 치고, 음악회도 자주 가고, 음악의 멋에 취하는 생활,
그것이야말로 내가 꿈꾸었던 생활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원고에 치여, 직장일에 치여 허둥지둥 헐떡헐떡 하루 치 삶을 간신히 꾸려가고 있지 않는가.
유럽인들은 요렇게 작고 앙증맞은 차를 타고 다닌다.
거리 곳곳에서 우람하고 큰 차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어떤가. 나는 어떠한가.
작은 차를 타고 다니면 은연 중에 괄시를 당하고 무시를 당하고
큰 차를 타고 다니면 노골적으로 우대를 받는다는 생각에 너도나도 큰 차를 선호한다.
기름 한 방울도 안 나는 나라에서.
이 차는 아마도 가게를 선전하는 차이지 싶다.
귀엽고 앙증맞은 차 지붕에 황새 한 마리가 앉아 있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비엔나 링크 외곽과 안쪽을 왔다갔다 하는 동안
이규희 샘은 뭘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부지런히 발바닥을 혹사하면서 이리저리 다니셨겠지.
악세서리도 사고, 벼룩시장에도 가고, 갤러리도 기웃거리고...
신나게 다니시겠지.
번화한 비엔나 거리에서도 눈에 확~ 띄는 저 옷을 보라.
링크 외곽에 위치한 작은 마을 그린칭은 한적하고 조용했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간 곳, 바흐 엥겔스는 바흐 가문의 선술집이다.
이곳에서 그 유명한 '호이리게 정식'을 먹는 것이다.
호이리게는 '최근'의 뜻이라는데, 아마도 식사를 할 때 나오는 와인이 최근의 것이라는 뜻인가 보았다.
1137년부터 시작한 이 가게의 역사가 대견하다.
오랫동안 가업을 잇는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곳을 다녀간 유명인들의 모습이다.
소피아 로렌도 보이고, 빌 클린턴도 보이고, 또 교황 바오로 2세의 모습도 보인다.
어, 저 사람은 누구더라?
간판도 예쁘고, 인테리어도 예쁜 가게 앞에서...찰칵~
이규희샘과 한스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꼭 이산가족 상봉하는 것 같았다.
와인 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외치는데, 악사가 다가와 아름다운 음악을 곁들여준다.
호이리게 정식은 감자와 소시지 종류 그리고 돼지고기 수육이 나온다.
오랫만에 먹어보는 우리 나라 음식 비슷한 수육 맛에 모두가 배불리 먹었다.
이 악사는 아리랑과 만남까지 연주해 한국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행동들이 별로 달갑지 않다.
너무나 상업적으로 물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바흐 엥겔스 선술집의 오스트리아 여자 종업원과.
이렇게 보니 우리도 유럽여자에게 미모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구랴.(ㅋㅋ)
맛있고 유쾌한 저녁식사를 마친 후, 아주 외진 곳에 위치한 호텔로 가 짐을 풀고는 한스를 따라 우리 일행 11명은 대이동을 감행했다.
오늘의 목적은 비엔나 시청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필름 페스티벌에 가서
스크린으로 상영되고 있는 오페라 '마농'을 잠깐 맛보고, 한스의 집으로 가는 것이다.
걷다, 전철을 타고, 또 걸어서 우리의 종착역은 lath house(랏 하우스)이다.
비엔나에서 그것도 한밤중에 전철을 타보다니, 꿈 같은 일이다.
어느 이름 모르는 역에서 표를 끊고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비엔나에서는 오페라 공연이 없는 7,8월에는 필름 페스티벌이 열린다.
시청사에 대형 스크린을 걸고 유명 오페라를 상영하는 것이다.
의자에는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어른, 아이, 남녀구별 없이 음악을 좋아하는 전세계 사람들이 다 모인 것이다.
시청앞 광장은 노천 카페가 늘어서 있고, 사람들은 누워서 보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서 보기도 하고,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보기도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각자 음악을 즐기는 것이다.
지금 상영되고 있는 것은 '마농'이다. 화면 속 두 남녀의 애절한 모습이 보이는가.
2007년 필름페스티벌 팜플렛...
'마농 레스코'....최후의 디바라는 러시아 여자(이름을 못 외운다)의 열창을 아쉽지만 잠깐 맛만 보고 우리는 비엔나 중심가에 자리잡은 그의 집으로 향했다.
우람한 석조건물의 육중한 쇠문을 열고, 꼬불꼬불 뱅뱅 돌아가는 층계를 타고 올라가니, 작고 예쁜 예술가의 보금자리가 나왔다.(꼭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한스의 부인은 일본인으로서 빈 국립음대 피아노과 교수란다.
마침 그녀는 일본에 가 있어서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덜 했다.
한밤중에 손님이 들이닥치는 일, 그것도 11명씩이나 -주부에게는 분명 곤혹스러운 일일 테니까.
시원하고 상큼하고 텁텁한 각종 와인이 나오고, 그 와인이 떨어지니까 샴페인이 나오고. 매콤한 신라면이 나오고, 이야기 꽃이 활짝 폈다.
오랫만에 한국말을 신나게 하게 되어 한스는 신나는가 보았다.(한스는 한국사람)
그 집에서 나온 게 새벽 1시던가, 2시던가.
어쨌든 우리는 세 대의 택시를 타고, 허름하고 변변찮은 우리의 하루보금자리 호텔로 돌아왔다.
어쩌면 이건 꿈일지 몰라.
아침에 일어나, 무심결에 침대 모서리에 앉았더니 침대가 쿵!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린다.
아, 꿈은 아니었군..
비엔나의 하룻밤 잠자리가 불편한게 무슨 대수람.
우리는 비엔나의 밤을 즐겼고, 비엔나의 분위기를 느꼈고, 비엔나의 정취에 흠뻑 빠졌는데 뭐....
이규희샘이 벼룩시장에서 발견하여 선물한 반짝반짝 부엉이가 나에게 속삭인다.
"비엔나를 잊지 마.
비엔나에서 네가 생각했던 그 숱한 생각들을 기억하며 살아.
꿈을 갖고 사는 것, 잊지 말고."
꿈? 어떤 꿈이지?
하여튼, 나는 이제부터라도 예전에 가졌던 생각들을 되살려 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으련다. 예술을 즐기며 살련다. -6편에서 계속-
* 6편 예고- 이 여행기를 6편에서 끝내려고 했으나, 짤츠부르크 얘기가 너무 길어 부득이 7편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6편은 모짜르트의 고향 짤츠부르크와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 짤츠 캄머굿입니다.
첫댓글 음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고 싶어하는 곳..비엔나...이 다음 생에서는 오스트리아에 태어났음 좋겠어요.ㅋㅋ
저도 모짜르트와 클래식을 좋아해서 비엔나를 늘 동경했어요.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주먹 불끈)
딸내미랑 꼭 같이 가세요.
부엉이 너무 예뻐요. 정말 오래도록 기억될 듯..
브롯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