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본 문 / 마태복음 5장 8절
주 제 / 보혈로 거듭난 사람은 욕심을 버려 마음이 청결하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 영생을 누린다.
작성일 / 2024년 4월 14일. (№ 24-15)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8)
Ⅰ 예수의 법으로 살자! (롬 8:1∼2)
2024년 신앙생활의 목표를 외치자! “예수의 법으로 살자!”(롬 8:1∼2)
“예수의 법은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이 법입니다.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는 법입니다. 그러니 예수의 법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법을 살자’는 신앙생활의 목표를 정했다. 그리고 ‘산상수훈’을 통해 ‘예수의 법’을 배우는 중이다. 오늘은 예수님의 여섯 번째 법을 배우는 날이다. 마태복음 5장 8절을 보라.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예수님의 여섯 번째 법이다.
Ⅱ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8a)
세상에는 과연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존재할까? 그렇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창세기 8장 21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창 8:21b). 홍수가 끝나고 ‘노아’가 제사를 올리자, 그 제사를 흠향하신 하나님의 독백이다.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말아야겠다. 사람의 마음은 본질적으로 악하니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면 해마다 땅을 저주하는 일이 발생하겠구나.” 이렇게 독백하셨다. 또 ‘예레미야’를 통해서 이런 말씀도 하셨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렘 17:9a).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는데, 만물보다 더욱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증언과 비방이니”(마 15:19). 사람의 마음은 죽이고 싶은 마음, 훔치고 싶은 마음, 음란한 마음, 거짓증언으로 이웃을 해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과연 세상에는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있을까?”란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는 말씀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이 더러움으로 가득 찬 요인이 무엇일까?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 1:14). 죽이고 싶은 마음, 훔치고 싶은 마음, 거짓증언으로 이웃을 해하고 싶은 마음, 음란한 마음은 ‘욕심’이 불러온 마음이라고 한다.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사람의 마음은 더럽다.
얼마 전, “3,600만원만 주면, 10년 동안 아파트 전세를 살게 할 것이고, 10년 후에는 아주 좋은 가격으로 분양해주겠다.” 이런 광고를 보고 돈을 빼앗긴 사람들이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비슷한 시기에 “손해 없는 좋은 투자 상품이 있으니 가입하라”는 은행의 권유를 받고 노후자금을 모조리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본 사람이 있다는 기사도 보았다. 3,600만원에 아파트를 가지게 된다면 왜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않겠는가? 정말로 시중금리보다 훨씬 많은 수익이 보장된다면, 그 상품을 만든 회사와 직원들이 모두 가입해서 품절되었을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3,600만원짜리 아파트 광고’를 보았을 것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안전한 고배당 펀드가입’을 권유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광고와 권유를 물리쳤다. 그런데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귀가 솔깃해서 투자했다. 무슨 차이일까? ‘욕심’이다. 욕심이 클 사람일수록 귀도 커진다.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욕심으로 가득한데, 그래서 더러운데, 예수님은 왜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법을 선포하셨을까? 아무도 행복할 수 없다고 조롱하시는 걸까? 그렇지 않다. 마음을 청결하게 가꾸어서 행복한 사람이 되라고 이 법을 선포하신 것이다.
디모데전서 1장 5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 1:5). 사도들이 가르치는 복음의 목적은 사랑인데, 그 사랑은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 없는 믿음’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복음을 배우면 ‘욕심’을 버리게 되고, 그 빈 자리에는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 ‘진실한 믿음’으로 채워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을 보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복음을 사도에게 배우지 않고, 좀 이상한 사람에게 배우면 마음이 깨끗해지기는커녕 마음이 ‘욕심’으로 더러워진다. “…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시 81:10) 이 말씀은 광야에서 목마르고 배고픈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이다. 아무리 배고파도 이방나라에게 구걸하지 말고, 하나님께 간구하라는 말씀이었다. 이 말씀을 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간구했다. 그랬더니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려왔다. 일용할 양식이 내려온 것이다.
그런데 좀 이상한 사람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욕심을 크게 키우라”고 가르친다. ‘욕심’을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가꾸어야할 사람들에게 ‘깨끗한 마음’을 버리고 ‘욕심’을 키우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거짓선지자’이다. 그러니 복음을 배울 때에는 반드시 예수님과 사도들에게 배워야 한다.
Ⅲ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8b)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것이니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알기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 행복이 아니다. 출애굽기 19장 21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경고하라 백성이 밀고 들어와 나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출 19:21). 하나님을 보면 죽을 것이니 시내산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라 말씀하신다. 사사기 6장 22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삿 6:22) 기드온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고도 죽을 것을 걱정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왜 죽을까? ‘어둠’이 ‘빛’을 만나면 소멸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람은 죄인이다.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소멸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는 것이야 말로 큰 복이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죄인의 신분으로 하나님을 만나면 죽는다. 그러나 ‘예수의 보혈’로 거듭난 사람인 경우에는 하나님을 만나도 죽지 않는다. 오히려 영생을 누린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만남이 행복이다.
그러면 누가 예수의 보혈로 거듭난 사람일까?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다. 오염된 복음으로 거듭난 사람은 욕심이 충만하게 되지만, 예수의 복음으로 거듭난 사람은 ‘깨끗한 마음’, ‘선한 양심’, ‘진실한 믿음’으로 충만하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 영생을 얻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Ⅳ 마음의 청결을 위해 힘써 복음을 배우자! (딛 1:15)
디도서 1장 15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딛 1:15).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은 마음이 청결하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무엇을 해도 깨끗하다. 그래서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복음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 ‘진실한 믿음’이라”고 했다(딤전 1:5). 우리 영광교회 성도들은 오염된 복음을 배척하고, 사도들이 가르치는 복음을 성실하게 배워서 하나님을 만나서 영생 누리길 바란다.
<기도>
하나님 우리 영광교회 성도들, 복음을 배움으로써 마음이 청결해지고,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 영생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