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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남정맥 스크랩 낙남정맥4구간(마재 ~ 오곡재)
야초(이익수) 추천 0 조회 79 14.04.12 11:0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낙남정맥4구간(마재~오곡재)

낙남정맥(마재~오곡재)종주산행
산행일짜 : 2007. 4. 28(토),.
날 씨 : 산행 적합, 오후 덥게 늦껴 짐
산행시작 : 05 ; 50,,,  산행마침 : 18 : 45 ,,,    산행시간 12시간 55분
산행거리 : 29.1 km
종 주 자 : 산아, 야초.
산행경로및 시각
마재(05:50)~무학산(07:15)~안개 약수터(07:41)~대곡산(08:12)~쌀재(08:50)~바람재 (09:20) ~윗바람재(09:52) ~광산 먼등(10:15)~대산(10:23)~광려산(11:12)~투구봉 갈림길 (11:35) ~진(한치)고개(12:12)~대부산(봉화산 갈림길)(13:50)~서북산(15:23) ~대촌(나뭇골), 별천(상별내)갈림길(16:03)~소무덤봉(16:25)~여항산(16:58)~좌촌 2코스 갈림길(17:23)~배능재(17:29) ~미산령(17:55)~오곡재,(비실재) (18:45)

 

오늘 종주 구간은 마재에서 오곡재까지 도상거리 29.1km로서, 사는 곳에서부터 들머리 접속하기도 쉽지 않아서, 길게 잡은 구간이다. 산행예정시간은 13~14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생각된다. 05시50분 산행시작이다. 마재 표석이 세워진5번 국도를 가로질러서 육교밑으로는 남해고속도로와, 경전선 철로가 지나고 위로는 지방도 1004번이 지나는 도로를 건너 정맥 능선으로 붙는다. 동쪽 능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치 솟는다. 아마, 오늘 저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 질 때면, 우리 산행도 끝이 나지 않을는지 생각이 든다. 우측으로는 두릅 밭이 나타나고, 묘지를 지나니 송전탑이 나오고, 오름길이 이어진다. 06시30분 중리방향 삼거리 능선 분기점 이정표를 만난다. 이정표에는 정상 2.7km, 중리 입구3.6km, 로 표시되어 있다. 왼편쪽으로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진다.

 

 

06시51분 마산시 아카데미 하우스 라이온스에서 세운 삼거리 이정표(원계,삼계 1시간, 서마지기. 정상 35분, 중리역)를 만난다. 능선 분기점을 지나서 내리막길이 잠시 이어지더니 시루봉 삼거리이다(06:59)..이어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07시15분 무학산 정상이다.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등삭객도 별로이다, 한두 명 눈에 뛸뿐이다. 정상에는 무학산 정상석과 그 뒷면에는 마산 삼월정신의 발원지라고 쓰여 있고, 정상석 뒤편에는 태극기가 높이 꽂혀 바람에 휘날린다. 삼각점(마산 301, 1995재설)을 확인한다. 정상에 서서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정맥 능선이 아스라하고, 앞으로는 마산 시가지와 진해만, 돝섬, 마산~창원 대교 건설공사현장, 가야할 방향으로는 광려산, 여항산 이 바라보이지만 멀기만 느껴진다. 지리산 군을 제외하고는 낙남정맥 중에서 최고봉인 무학산을 뒤로하고, 너덜 길을 따라서 내려온다. 정성드레 쌓아 올린 돌탑 군들을 뒤로한 채 내림길을 계속하니 나무의자와 평상을 숲속에 설치 해 놓은 게 군데군데 보인다.

07시37분 헬기장을 지난다. 물이 말라 버린 안개약수터를 지나서 완월폭포 삼거리 이정표를 연이어 지나 08시12분 대곡산 정상에 선다(08:12). 마산 댓거리 산악회에서 2006.3.26 세웠다고 되어있다. 여기서 쌀재로 향하는 길은 오른쪽으로 꺾어야 하는데. 귀신한테 홀렸는지 산행지도도 확인하지 않고, 그냥 길 좋은 데로 직진을 한 관계로 20분 알바다. 어디서 알바 시간을 보충해야 할는지 걱정이 앞선다. 보충하는 길은 속도를 내는 수밖에는 별도리가 있겠나! 가속도를 붙인다.

08시50분 쌀재이다. 쌀재에 도착하니 대곡산 방향으로 커피도 팔고 간단한 음료도 팔수 있도록 적재함을 개조한 트럭 1대가 서있고, 진행방향으로는 바리케이드가 설치 되어있어 능선으로 바로 붙는다. 찔레나무 밭이다, 밭을 일구다가 그만 둬서 묵밭이 되었는데 그 자리에 찔레나무만 무성하다. 보통 등산객은 임도를 따라서 진행하는지 길이 통 나있지를 않다. 09시18분 표지판을 만난다. 표지판은 마산시장이 세웠는데. 내용은 이 등산로는 개인농장을 통과하는 관계로. 폐쇄 되었음을 알려드리오니 임도를 활용 하산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라고, 적혀있다. 내용으로 봐서 내려가는 사람한테만 적용되는 것인지, 올라가는 사람에 대해서는 말이 없으므로 그대로 오르막 진행이다. 곧 이어서 입산통제 간판(,통제구역: 대산, 통제면적 1.32ha, 목적 : 산불방지, 위반시 20만원 과태료)이 나오고, 바람재 진달래 축제 3월 31일,, 표지석을 만난다. 여기서도 마창(마산~창원 간)대교 공사 현장이 보인다.

09시52분 억새 밭 한 가운데 뒤편에는 장대가 높이 꽂혀있고, 그 앞에 윗 바람재 나무 표지판이 땅에 닿을 정도로 박혀있다. 이왕 표지판을 달려면, 좀 높이 달아 줬으면 하는 마음이다.진달래 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숲을 10여분 뒤 오른쪽으로 전망바위가 타난다. 여기서 조망은 일품이다. 마산시 내서읍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한차례 오름이 또 시작된다. 10시14분 광산(匡山)(광산 먼등)정상석을 만난다. 뒷면에는 마산시 진동면 동전리, 동심회 라고 음각되어 있다. 헬기장을 가로 질러 암봉을 하나 넘어 8분여 뒤에 대산 정상에 오른다. 정상석은 마산 장수 산악회에서 세운 것이다. 진달래 숲길은 계속 이어진다.

 

11시05분 광산사, 대산, 광려산 3거리 이정표를 지난다. 잠시 내림길이 이어지고, 오름길을 계속하니 광려산 정상이다(11:12). 정상에는 마산 반월산악회에서 세운 정상표지판이 암반 위에 설치되어있다. 가야할 서북산과, 여항산으로 이어지는 정맥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11시50분 투구봉 갈림길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서 왼편으로 꺾는다. 계속 내리막이다. 크고 작은 자갈길이다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자동차 소리는 가까이 들리는데 도로와는 먼 것 같이 느껴진다. 미끄러지듯 떨어지니, 국도 79번 도로가 지나는 마산시 진북면과, 함안군 여항면 경계인 한치(진고개)이다(12:12). 왼편으로는 애국지사 안재휘 선생의 묘 안내판이 서있고, 길 건너로는 충렬공 이방실 장군 태역비가 있으며.,, 함안 방면으로 커다란 진고개 휴게소가 있다. 도로 옆에 쉼터도 잘 가꾸어 놓았다. 파고라 꽃이 만발하고, 그 밑으로는 쉴 수 있도록 의자, 테이블이 놓여있다. 여기서 점심을 먹을까 하다가 여기서 먹게 되면, 계속 또 오르막길이 이어지는데 거북할까 싶어서 일단 대부산 직전 봉우리 하나를 올라서 먹기로 한다. 가야할 서북산, 여항산 이정표도 함안군에서 잘 설치 해 놓았다..


12시40분 오름 끝에 대부산 직전 봉우리이다. 적당한 자리를 잡아서, 점심이다. 20분도 안 걸려서 끝이다. 오늘 산행 시작한지도 7시간 가까이 되었지만, 산행지도를 보니 오늘 구간 반쯤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갈 길이 멀어서 좀 빨리 서두른다. 13시09분 봉화산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서 한차례 오름이 이어지더니 대부산 정상이다(13:50), 정상에는 서북산, 한치, 청암마을과 봉화산 0.9km 이정표가 있다. 이어서 임도가 나타나고, 내림길이 이어진다. 14시13분 고압철탑을 왼쪽에 끼고 먼지 나는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또 고압철탑이 왼쪽에 나타나고, 방화선인지. 임도인지, 능선을 따라 길을 닦아 놓았다. 임도에 들어설 때 독사 1마리가 길을 막고, 대가리를 쳐들기에 스틱으로 한 빵 줬더니만, 처음에는 꼬리 부분에 맞았는지, 또 치켜들기에 또 한빵 더 줬더니만, 이번에는 정통으로 머리 부분에 맞았는지 꼼짝을 안한다. 한 구간에 독사 1마리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찬바람 불기까지는 조심에 조심을 해야한다.

14시49분 임도사거리 안부이다. 안부에는 서북산0.9km, 미천 마을 5.3km, 버드내 1.5km, 봉화산 2.6km 이정표를 함안군에서 보기 좋게 세워놓았다. 곧이어 헬기장이 나온다. 여기가 서북산 정상이다(15:23)...정상에는 정상석과 삼각점(함안 11, 1992재설)이 박혀 있고, 바로 밑으로는 오석으로 된 서북산 전적비가 세워져있다. 전적비 뒷면에는 동판에다가 영어와 한글로 병기하여 서북산 전투에 관하여, 공훈을 양각하여 놓았다.

15시45분 여항산, 서북산, 별천(적십자수련원)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서, 20여분 후 나뭇골, 별천(상별내)마을 갈림길 이정표를 만나고, 주위에는 억새밭이 무성한 헬기장이 나타나고 (16:20)... . 바로 앞에는 거대한 암봉이 서있다. 여항산이다. 여항산 직전에는 급경사지역 으로서 등반 중 추락사고가 생길 수 있어 위험하오니 돌아가십시오. 하는 함안군의 안내표지판이 나오고, 곧 이어서, 로프가 달려있는 암벽이다. 암벽을 힘겹게 오르니 전망이 확 트이는 여항산 정상이다(16:58). 정상에는 함안 산악회에서 세운 정상석과, 조망안내도가 깨끗한 게 잘 설치되어있다. 잠시 휴식이다 . 오늘 물 준비는 3.5L 인데 오후 들어서는 날씨가 더워서 벌써 다 비워간다. 다음 구간 시에는 날씨를 봐서 4L 이상은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여항산을 지나서는 조그마한 봉우리 3개만 쳐올리면 오곡재이다. 여항산을 지나서는 내리막길의 너덜지대가 시작되고, 좌촌 2코스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면, 곧바로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 한 쪽 편에 좌촌 3코스 갈림길이 나온다. 보통 여기서 구간을 끊는 경우가 많다.

17시29분 배능재를 통과한다. 누가 돌탑을 쌓았는지, 돌탑군이 나온다. 내림길이 이어진 다음 곧 오르막이 이어지더니 743.5봉이다((17:35). 내리막길을 계속 이어가니 미산령이다(17:56).. 임도이용안내문이 세워져 있는데, 급경사 난간에는 추락에 위험이 있으니 유의 하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함안군 군북면과 함안면, 왼쪽으로 내려가면 마산시 진전면이 나온다. 미산령에서 오른쪽 임도를 바라보니 S 자 커브가 아닌ㄹ자 길이 계속 이어진다. 미산령에서 바라본 임도는 도로폭이 좁고 급경사 와 급회전 지점이 많아 일반 차량 통행이 부적합하고 사고 위험이 있으므로 출입을 제한 한다는 함안군수의 출입제한 표지판과, 그 옆에는 미산청년회에서 여기서부터 전방 1km지점에 도로가 없으므로 진입을 하지 말라는 경고판도 나란히 붙어 있으며, 드럼 통으로 막아 놓았다. 이정표 (여항산1.8km, 의상대2.5km, 산서 3km, 미산3.5km를 확인하고, 오늘 구간 끝점인 오곡재를 향하여 한차례 오르막이 시작 된다. 18시13분 군북사촌(4.48km)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 오곡재에 내려선다(18:50).

오곡재에는 군북 오곡 마을, 마산 산서(비실) 갈림길 이정표가 있으며, 정상 부분에만 시멘트 포장이 되어있고, 나머지는 비포장도로 이며, 함안 방면으로 임도 하나를 새로 내는 공사 현장 간판이 붙어있다. 오늘 하루 종일 산행 시작부터 끝날 때 까지 머리위에서 땡볕을 내리 쬔 태양도서산에 걸친다.

 

 

 

 

 

 

 

 

 

 

 

 

 

 

 

 

 

홍건적을 물리친 이방실 장군(1298-1362)

이 방실 장군은 고려시대(高麗時代)에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이원(李源)의 아들로서 고려 공민왕때의 유명한 구국장군으로 함안 이씨(咸安李氏)의 중시조이다. 그는 고려 충렬왕 24년(1298)에 지금의 경남 함안군 여항면 내동에서 투우봉의 정기를 이어 받아 태어났으며 고려 말엽의 외침(外侵)에 의한 존망(存亡)의 위기를 누차에 걸쳐 구한 맹장이다. 그는 고려 오백년 역사를 지킨 4성군(四聖君)과 16공신 중의 한 사람으로서 현재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소재하는 숭의전(崇義殿)에 배향(配享)되어 국가에서 춘추(春秋)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 방실 장군은 충목왕(忠穆王)을 따라 원나라에 들어가 시종할 때 뛰어난 지모(智謀)와 무용(武勇)으로써 왕을 안전하게 보필한 공으로 왕이 즉위하자 그 지략을 인정하고 인품을 가상(嘉尙)히 여겨 중랑장(中郞將)에 보하였고 호군(護軍)에 옮겨 전(田) 백결(百結)을 하사(下賜)하였다 .1354년(공민왕3)에 대호군(大護軍)으로 올라 선성(宣城)에서 다루가치 노연상(魯連祥)이 모반하자 용주(龍州)의 병사를 이끌고 이를 진압하였다. 1359년(공민왕8)에 우리 나라를 침략한 홍건적의 괴수 모거경 위평장(僞平章)등은 4만의 홍건적(紅巾賊)을 이끌고 압록강의 얼음판을 건너와 의주(義州)를 함락하고 이 나라 관원(官員)인 부사(副使) 주 영세(朱永世) 및 주민 천여명을 죽이고 다시 정.린주(靜.麟州)를 함락하여 도지휘사(都指揮使) 김 원봉(金元鳳)을 살해하므로써 드디어 안주(安州)에 웅거하였다. 이때 이 방실 장군은 안주만호(安州萬戶)로 안 우(安祐) 이 음(李蔭) 이 인우(李仁祐) 등과 협력하여 적을 압록(鴨綠) 서경(西京)간에서 격파한 공으로 이 방실 장군은 추성협보공신 추밀원부사(推誠協輔功臣 樞密院副使)로, 안 우는 추충절의정란공신 중서평장정사(推忠節義定亂功臣 中書平章政事)로, 김 득배는 수충보절정원공신 정당문학(輸忠保節定遠功臣 政堂文學)으로 제수되었다.

뒤에 홍건적(紅巾賊)이 전함 70여척으로 서해도(西海道)에 재침하자 풍주(豊州)에서 이를 물리치니 왕은 크게 기뻐하며 제신(諸臣)에게 향연을 내리시고 이 방실 장군에게 옥대(玉帶)와 옥영(玉纓)을 하사(下賜)하였다. 이때 공주가 이를 보고 말하기를 "어찌 지보(至寶)를 사랑하지 않고 가볍게 남에게 주시나이까" 하니 왕이 말하기를 "우리 종사(宗社)가 폐허가 되지 않게 함은 다 방실의 공(功)이다. 내가 비록 살을 베어 주더라도 오히려 능히 보답하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이 물건이 어찌 아까우리요" 라고 말하였다. 왕이 말씀하신 사실로 보아 우리 민족을 구한 충렬공 이 방실 장군의 업적은 성웅(聖雄)임과 동시에 위대한 맹장임을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1361년(공민왕10)에 홍건적인 위평장(僞平章), 반성(潘城), 사유(沙劉), 관선생(關先生), 주원수(朱元帥) 등이 용봉(龍鳳)으로서 기원(紀元)하고 적의 무리 20만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삭주(朔州)와 이성(泥城)에 침입하자 안우(安祐)를 상원수(上元帥)로 김득배를 도병마사(都兵馬使) 이방실을 도지휘사(都指揮使)로 삼아 난(亂)을 평정코저 그들과 함께 개주(价州), 연주(延州), 박주(博州) 등지에서 적을 요격했으나 중과부적(衆寡不適)으로 패하고 안주(安州) 절령에서 참패하게 되니 서울인 개성까지 적의 손에 함락되었으며 이때 공민왕은 복주(福州-지금의 경북안동-)에 피난하였다.

1362년(공민왕11)에 이 방실 장군은 서북면 도지휘사(西北面 都指揮使)로 제수되어 총병관(總兵官) 정 세운(鄭世雲), 안 우(安祐), 김 득배(金得培), 황 상(黃裳), 한 방신(韓方信), 이 여경(李餘慶), 안 우경(安遇慶), 최 영(崔瑩) 등과 함께 20만 대군을 이끌고 동교(東郊)의 천수사(天壽寺) 앞에서 진을 치고 서울을 포위하여 적을 섬멸하고 잔적을 압록강 너머로 격퇴, 개선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구국의 공을 평소부터 시기하던 간신(奸臣) 김 용(金鏞)은 위계(僞計)로 불세출(不世出)의 대공을 세운 3원수인 안 우, 김 득배와 더불어 이 방실 장군을 살해하고 말았다. 이때 이 방실 장군의 아들 중문(中文)은 나이 겨우 10여세였으나 당시의 사람들은 "지금 우리 모두가 침식을 편히 함은 다 원수님의 공이다"라고 하면서 그를 극진히 보호하였다 한다. 국난(國亂)을 극복한 영웅들 가운데 이 방실 장군을 비롯한 김 득배, 안 우 등 고려 3원수가 국운이 누란(累卵)의 위기(危機)에 처하여 서울 이 함락되고 거의 대부분의 국토가 홍건적에게 빼앗겨 나라마저 잃을 시기에 외세(外勢)의 도움없이 이를 수복구국(收復救國)하였다는 것은 고구려의 영양왕때 수나라 백만 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乙支文德)장군 이나 조선조 선조(朝鮮朝 宣祖)때 임진왜란(壬辰倭亂)을 평정(平定)한 이 순신(李舜臣)장군의 공(功)과 더불어 우리 민족사(民族史)에 길이 빛날 것이다

 

 

 

 

 

 전적비 뒷면 비문 내용은

                                  {{{이곳 서북산 전투는 6,25 한국전쟁 중 낙동강 방어전투가 치열하였던 ‘50. 8월에 미
                         제25사단 예하 제5연대 전투단이 북괴군을 격퇴하여 유엔군의 총반격작전을 가능케 하였
                         던 격전지이며, 이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 중대장 티몬스 대위 외 100여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 아들 주한 미8군 사령관 리차드 티몬스 중장과 제39사단장 하제광 소장을 비롯한
                             사단 장병 및 지역주민들이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라고 되어 있다.


 

 

 

 

 

 

 

 

 

 

 

 

 

 

 

 

 

 

 

by 야초 | 2007/04/29 10:31 | 낙남정맥종주산행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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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설 산 at 2007/04/29 20:11
벌써 함안 땅에 닿으셨내요.
2월에 마재고개 까지 하고 먹고 사는게
넘 바빠 낙남에 언제 갈지.......
두분 넘 부럽내요.
장도 무사산행 기원 합니다.
Commented by 윤재만 at 2007/04/29 22:30
27일 수도산.단지봉 종하와등산 했다네
언제나 건강한 산행과 종주를 기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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