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재 이정신의 삶과 시문학
이원걸(문학박사)
1. 머리말 2. 백운재의 생애 3. 농촌 경물과 농가의 일상 4. 유자 의식과 역사 회고 정서 5. 객지 수심과 교유 활동 6. 여로 서정과 고향 그리움 7. 대과 응거와 불운의 형상 8. 백운재의 죽음을 슬퍼하며 9. 맺음말 |
1. 머리말
백운재는 선조 퇴계의 학문을 가학으로 전승했으며 조부 경옥으로부터 학문을 직접 배웠다. 백운재 집안은 문한으로 대대에 명성을 떨쳤다. 퇴계에게 직접 배운 학천, 증조부 개곡, 조부 경옥 등은 퇴계학 전개 과정에서 큰 역할을 수행한 분들로 평가된다. 백운재는 어려서부터 문학적 재주가 출중하여 중망을 받았다. 특히 사부 작품에 남다른 성취를 보였다. 이외에도 그는 육경과 제자백가에 능통하였다. 눌은 이광정과 강좌 권만 등과 종유하며 경서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쓰기도 했다.
백운재는 당시 그의 역량을 크게 인정을 받았으며 모든 이들로부터 급제는 무난할 것으로 기대를 받았다. 그의 대과 응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그는 이를 이루기 위해 촌음을 아껴 가며 최선을 다하였지만 결국 건강이 뒷받침 되지 못해 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그의 평생 행적이 시문학 작품에 반영되어 있다. 그는 경옥 이보의 학문을 이어 받은 손자로서, 그가 남긴 문예적 성취에 대한 분석은 의미를 갖는다. 그의 문집은 산문이 그리 많지 않다. 시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시 분석을 통해 그의 의식과 문예 성과를 검토한다. 먼저 그의 생애를 정리하고, 시 분석을 한다. 이로써 백운재의 문예 미학적 검토와 내적 고민을 파악하기로 한다.
2. 백운재의 생애
이정신(李廷藎 : 1685-1738)의 본관은 진보(眞寶)이며 자는 국경(國卿), 호는 백운재(白雲齋)이다. 고조부는 경준(敬遵)이다. 경준의 부친은 학천(鶴川) 이봉춘(李逢春)인데, 봉춘은 일찍이 퇴계의 문하에 나아가 배웠으며 성균관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증조부는 이장(爾樟)으로,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해 성균관에 유학하였으며 당시에 중망(重望)을 받았다. 조부는 보(簠)인데, 사옹원 참봉(司饔院參奉)에 제수되었고 문장과 덕행으로 추앙을 받았다.
부친은 귀징(龜徵)으로, 성균관 생원시에 합격해 성균관 장의(成均館掌議)를 역임하였다. 모친은 안동 권씨 윤시(允時)의 따님으로,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의 현손(玄孫)이다. 백운재는 퇴계에게 직접 배운 선조 봉춘의 학문을 이은 고조부와 증조부를 거쳐 전해진 퇴계의 학문을 조부와 부친을 통해 이어받았다. 백운재는 가학을 통해 퇴계의 학문을 이어받았으며 대과 급제를 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백운재는 숙종 을축년(1685)에 안동의 임동 대곡리(大谷里) 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글도 잘 지었다. 조부 경옥은 손자를 매우 사랑하여 글을 가르쳤다. 백운재는 영리해서 가르치는데 큰 힘을 들이지 않았다. 평소 손에서 책을 떼지 않고 부지런히 공부하였다. 육경(六經)과 제자백가(諸子百家) 및 불교 경전, 도가(道家)의 학설 등을 깊이 탐구하여 글을 짓는 바탕으로 삼았다.
이외에도 그는 역사 서적에도 관심을 기울여 복희(伏羲) 이후 삼대(三代), 양한(兩漢), 수(隋), 당(唐), 오대(五代)에 이르기까지 군신(君臣)의 득실(得失)과 국가의 치란(治亂), 충신(忠臣)․의사(義士)․거간(鋸姦)․대특(大慝)의 성패(成敗)와 선악(善惡)의 자취를 요약, 정리하여 시대에 적용하는 바탕을 삼았다.
간혹 종이를 펼치고 붓을 잡아 자연 경물을 읊으면 즉석에서 거침없이 써내려갔다. 시의 운자가 많게는 백운(百韻)이 넘었지만 붓을 멈추지 않고 곧바로 써내려갔다. 그렇게 했지만 시의 품격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네 형제 가운데 둘째로, 형제들과 시를 주고받았다. 이런 시와 글은 당시 선비와 문인들에게 큰 주목을 받았다.
경인년(1710, 26세) 6월에 조부상을 당해 염빈(殮殯) 절차와 상례․제례 의식을 행하는데 조금도 흠이 없었다. 신묘년(1711, 27세) 4월에 모친상을 당해 매우 애통해 하였다. 이후 4년 뒤인 갑오년(1714, 30세)에 부친상을 당하였다. 이처럼 백운재는 몇 년 사이 어버이가 연이어 세상을 떠나 경황이 없었으며 쉴 여유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매일 성묘를 했는데 비바람이나 추위와 더위에 상관없이 효성을 다해 그 일을 실천하였다. 집안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했지만 가난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형제와 친척들 간에 화목하고 순종하는 것을 가풍으로 삼았다.
중년에 임하현(臨河縣) 마동(馬洞)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달에 고재(顧齋) 이만(李
) 선생을 찾아가 뵈었다. 하지만 그는 과거 시험 준비에 바빠 막내 아우 정만(廷萬)을 보내 수업을 받게 하였다. 좋은 벗을 만나면 풍월을 담론하였으며 아름다운 산이나 강을 유람하였다. 지팡이를 짚고 산언덕에 올라 문득 종이와 붓을 꺼내어 몇 번 흥얼거리며 여러 차례 읊조린 뒤, 순식간에 많은 시를 지었다. 시는 시원하고 고아(古雅)한 풍격을 지녔다. 일찍부터 과거 시험공부에 열중하였으며 지은 부(賦)와 대책(對策)은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져 애송되었다. 여러 번 향해(鄕解)에 응시했는데 그때마다 수석을 차지하였다.
을미년(1715, 31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정유년(1717, 33세) 성균관 유학을 하였다. 그에 대한 명성이 높아지자 한양 고을 귀한 신분의 자제들이 처음에는 그를 시기했지만 그의 됨됨이가 바르고 마음가짐이 곧은 것을 보고 이내 모두 공경하였다. 백운재는 항상 조부께서 부(賦)와 책문(策文)으로 문과에 뽑혔지만 양장(兩場) 응시자들이 난동을 부려 파방되었던 것을 통분히 여겼다. 당시 백운재가 강론을 하거나 저술한 것에 대한 명성과 소문이 자자하여 사람들은 조상들이 오래 쌓았던 덕이 그를 통해 단번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정유년(1717, 33세) 봄의 과거 시험의 제목이 「사석(射石)」이었다. 그가 지은 부(賦)의 한 구절인 ‘청산에 해가 기울자 나그네 취하여 비바람 몰아치는 밤에 돌아오네’라는 한 구절은 모두 잘 지었다고 칭찬을 했지만 결국 시관의 눈에 들지 못했다. 이튿날, 그는 한양 여러 벗과 함께 한강을 유람하며 감회를 시로 표현하였다. 빨래를 하던 어떤 아낙네가 ‘이번 과거 시험에서 낙방한 것을 너무 걱정하고 탄식하지 마세요’라고 하며, 백운재가 과장에서 지은 부(賦)의 그 구절을 외우면서 이르기를, “이런 글재주를 가진 선비가 금번에 낭패를 보게 된 것은 운명이니 어찌하겠소?”라며 안타까워하였다.
이후 백운재는 평생 공부한 것을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더욱 분발하였다. 눌은(訥隱) 이광정(李光庭)과 강좌(江左) 권만(權萬) 두 선생과 함께 유교 경전을 강론하는 서원에 들어가 경전을 강론했다. 유교 경전을 연구하고 문장 짓는 공부에 전념하여 사후, ‘아홉 번 택궁(澤宮)에 들어가 활을 쏘았고 세 번 대전(大殿)의 부름을 받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백운재는 무오년(1738, 54세) 과거에서 결판을 내겠다고 작정하였다. 정사년(1737, 53세) 가을에 그는 한양에서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숙부의 부고를 전해 듣고 천 리 길을 달려와 상(喪)을 보러 왔다. 어떤 때는 걷고 어떤 때는 말을 타고 달려오다가 중도에서 병을 얻어 몸조리를 했지만 완쾌되지 않았다.
무오년(1738, 54세) 과거 시험은 정월에 있었다. 그는 비바람을 무릅쓰고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상경했다. 묵은 병이 채 낫지 않은 터에 다시 병이 겹쳐 중도에서 과거 응시를 포기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병이 더해 그 해 5월 26일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54세였다. 그 해 9월 30일에 우역산(牛驛山) 선영의 아래쪽에 장례를 치렀다가 뒤에 망진천(望津川) 신좌(申坐) 언덕으로 이장하였다.
사후, 난졸재(懶拙齋) 이산두(李山斗)는 뇌문(誄文)에서 ‘한 번 도성에 들어가 온 장안에 명성을 드날렸네’라고 하였으며, 용와(慵窩) 류승현(柳升鉉)은 만시(輓詩)에서 ‘한양 사람들 부질없이 공의 청산 구절을 외우네’라며 애석해 하였다. 후인들의 이러한 평가는 백운재가 치열하게 공부했던 삶의 궤적을 설명해 주고 있다. 부인은 전주(全州) 이씨 처사 익달(益達)의 따님으로 맑은 덕과 고운 행실을 지녔다. 백운재 사후 7년 뒤, 갑자년(1744) 8월 12일에 세상을 떠나 백운재 묘소 앞에 장사지냈다. 자녀는 4남 1녀로, 아들은 적(頔), 병(頩), 기(頎), 춘홍(春泓)이며, 딸은 이의백(李宜白)에게 출가하였다. 이제 시를 검토한다. 농촌 경물과 농가의 일상 풍경을 담은 작품이다.
3. 농촌 경물과 농가의 일상
경옥의 학문을 익힌 백운재는 농촌 일상의 삶을 진솔하게 묘사하고 있다. 조부 경옥의 이러한 농촌 목가적 정서 취향의 작품은 이미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문예 취향의 면모를 손자 백운재가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귀로의 자연 경관이다.
고운 새는 황금빛을 띠었고 好鳥黃金色
맑은 시내엔 푸른 옥이 흐르는 듯 淸溪碧玉流
비 맞은 새싹은 파릇파릇하고 草濕新雨過
구름 짙은 산은 더욱 그윽하네 雲深山更幽
농촌 봄 들판의 한 때 풍광을 그려냈다. 색감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황금 빛 깃털의 새가 재잘대며 산속 눈이 녹자, 시냇물이 불어나 옥빛처럼 곱게 흐른다. 기구의 색감과 승구의 청각적 조화가 시적 완성도를 높였다. 시인의 시선이 하늘에서 냇가로 이동했다가 다시 새싹이 자라는 밭으로 옮겨진다. 때 맞게 비가 내려 농촌 들녘은 평온한 정경이 펼쳐진다.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터에 적당히 비가 내려 곡식은 새싹을 내밀고 농부는 기쁨으로 충만하다. 하늘의 뭉게구름은 평화로운 농가의 모습을 선사해 준다. 물가엔 흰 새가 멱을 감는다.
맑은 날 따뜻한 포구 구름 걷히니 淸日暖浦雲披
모래 위의 흰 새가 눈처럼 희구나 沙上白鷗宜雪
더러워진 날개를 맑은 물에 씻고는 衣暗浴碧玉浪
물가 갈대에 몸 흔들어 가볍게 터네 搖蕩碎輕漪蘆
학은 하늘로 날아가고 흰 새는 떼 지어 노닌다. 맑고 따뜻한 날 물가에는 구름이 걷혀 산뜻한 풍광이 드러난다. 모래 위의 흰 새는 눈이 하얗게 내린 것 같다. 물새가 냇물에 먼지를 씻고 갈대에 의지해 몸을 털고 깃털을 건조시키느라 분주하다. 시에 살아 있는 자연 생태 현장을 그대로 담았다. 새가 냇물에 몸을 적셨다가 깃을 털기에 깃에 묻었던 물이 금방 튕겨올 것 같다. 생동하는 미물을 담음으로써 독자들이 거기에 반응하도록 배치했다. 다음은 봄이 깊어가고 초여름이 다가오는 농가의 풍경이다.
개울엔 느티나무 버들이 우거졌고 槐柳陰濃御溝傍
청화한 사월 낮 더욱 길어졌네 淸和四月日偏長
나그네 더위가 와도 두렵지 않으니 客愁不怕炎威近
추녀 끝 산들바람이 서늘하기 때문 先得微風殿角凉
음력 4월 농가의 한 때이다. 개울 가 느티나무가 물기를 흠뻑 빨아 들여 짙은 녹음을 이룬다. 이내 더위가 찾아오지만 나그네는 근심하지 않는다. 추녀 끝에서 산들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에 여유를 즐긴다. 봄에는 봄의 향연에 참여할 수 있고, 여름이 오면 여름 특유의 멋을 누리며 사색과 쉼을 즐긴다. 비 갠 뒤의 풍경도 일품이다.
아침 햇살 문득 창을 환히 비추고 朝陽唐突照窓明
뜰엔 바람 멎고 장마 비도 그쳤네 庭院無風宿雨晴
구름 걷히자 옛 산 모습 드러나고 雲捲山頭開舊面
불어난 물결 돌 사이 콸콸 흐르네 波喧石齒報新聲
빛 받은 좋은 나무 우거져 고운데 寵光佳木濃陰麗
산새들 정답게 재잘거리네 和意幽禽話舌輕
눈 가득 좋은 경치 싫증나지 않고 滿目奇觀看不厭
종일 스님과 한가롭게 읊조리네 閑吟終日伴僧淸
장마가 그친 농촌 풍경화다. 궂은 비바람이 멎자 산천초목은 머리를 감은 듯 윤기가 흐른다. 구름이 걷힌 하늘은 청아한 자태를 드러낸다. 동시에 장마로 인해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던 산이 자태를 드러낸다. 지나간 밤에 사납던 불던 비바람이 멈춘 아침 하늘에 태양이 밝게 솟는다. 아침 햇살이 창가에 반짝이며 반사되고, 정원에는 비 그친 정적이 찾아온다. 산을 에워 싼 구름이 걷히자 산의 본래 모습이 드러난다.
많은 비가 쏟아진 탓에 골짜기마다 토해내는 물이 돌을 헤치고 세차게 흘러내린다. 홍수가 발생되어 계곡과 냇물은 물 천지로 변한다. 햇빛을 받은 나무들은 더욱 싱그럽고 윤기가 난다. 지루하던 장마가 멎은 뒤, 자유롭게 비상하던 새가 즐겁게 노래하는 정경도 담아내었다. 평화로운 분위기 때문에 시인은 시야 가득한 풍광에 매료되어 종일 스님과 함께 선시를 주고받는다. 자연과 합일을 추구하는 시인은 미물에게 접근해 속삭인다.
절개 굳어 가을 이슬 머금고 苦節含秋露
저녁 바람에 홀로 울고 있네 孤吟引夕風
사람 중에 누가 이에 견주랴 人中誰可比
고사리 캐먹던 백이숙제일세 惟有採薇翁
매미의 청아하고 고결한 속성을 시적으로 표현하였다. 매미는 절개가 곧고 청신한 이슬을 받아먹고 살기에 사람에 비유해 불의에 항거하여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먹으며 고결하게 살았던 백이숙제를 떠올렸다. 저녁에 바람이 불어대는 가운데 고독하게 우는 매미의 형상화를 통해 백이숙제의 고결한 정신 지향을 기렸다.
이러한 표현을 거쳐 백운재가 추구하는 것은 자연 미물 매미의 고결한 자태의 형상화이다. 매미의 속성을 주목하여 자연 미물의 이미지화에 성공하였다. 백운재의 자연친화적이며 사실주의적인 시풍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백운재의 시풍은 조부 경옥 이보의 영향을 그대로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가을 풀벌레 울음에도 귀를 기울인다.
풀벌레 슬피 울어도 虫雖遣爾苦悲鳴
가을바람 이슬은 밤 낮 맑네 白露秋風日夜淸
천기에 따라 우는 것일 뿐 只是天機動觸發
다만 사람들 놀랄 것 없네 不曾要得使人驚
가을 들판에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가을을 알리고 추수를 재촉하듯 풀벌레의 향연이 더욱 깊어간다. 낮에는 가을바람이 불어와 온 대지의 가을 정서를 무르익게 한다. 새벽에는 영롱한 이슬이 풀잎마다 곱게 맺힌다. 아침 햇살이 떠오르면 햇살을 받은 이슬은 알알이 반짝이는 구슬이 된다. 시인은 풀벌레가 우는 건 천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울음을 내는 것이기에 굳이 놀랄 필요가 없다고 한다. 자연의 순환 속에 전개되는 천기의 발현을 주시하였다. 미물에 대한 관심의 표현은 자연 생태에 대한 특별한 인식을 소유해야만 가능하다. 저녁 풍경을 보기로 한다.
밤기운 차갑게 방에 들어오기에 夜氣侵房冷
아이 불러 작은 창문 닫게 시켰네 呼童閉小窓
사방 이웃 사람 말소리 고요한데 四隣人語寂
바람결 낙엽에 삽살개 멍멍멍 風葉或驚狵
아이에게 밤에 창문을 닫게 하고 지은 시다. 만추에 느끼는 서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찬 밤의 공기가 스며들기 때문에 아이에게 문을 닫게 하였다. 사방 이웃 사람들의 말소리도 조용할 만큼 저녁 시간이 깊었다. 인적이 끊기고 모두들 잠이 들 무렵, 시인은 가을밤의 한적한 분위기에 매료된다.
문을 닫고 방안에서 외부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바람을 따라 낙엽이 떨어지고 이에 놀란 삽살개가 멍멍 짖는다. 삽살개의 울음소리가 적막한 가을밤 공기를 가르며 정겹게 들려온다. 적막한 늦가을 밤의 정경과 시골 마을 멍멍이의 울음이 조화되어 있다. 다음은 농촌의 일상을 담은 시다.
살랑살랑 봄바람 잔잔한데 習習東風靜
부슬부슬 곡우비 내리네 纖纖穀雨垂
안개 내린 숲에 새들 지저귀고 霧林禽濕語
아지랑이 언덕엔 버들개지 눈 뜨네 烟陌柳開眉
점점 산이 그림 같더니 漸覺山如畵
이내 땅이 살쪄 보이네 俄看土似脂
밭갈이 시작되고 田龍不長臥
흐르는 물 벌써 연못 가득하다네 流水已盈池
봄바람 잔잔한데 곡우절 비가 내려 시골은 퍽 정겹다.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 한가로운 서정이 우러나온다. 숲 가득한 안개는 신비감을 더해 주고 숲에는 새들이 정겹게 울며 흥을 보탠다. 조용히 내린 비는 안개를 형성하여 숲은 온갖 신비로 쌓인다. 새들이 울어 정적을 깨운다. 언덕에 아지랑이 피고 버들개지 눈을 뜨는 농촌 전경이 펼쳐진다. 산에는 새순이 곱게 자라 그림 같은 모습을 자랑한다. 봄 농사를 시작하는 농토는 분주하다. 농부와 누렁소가 힘을 합해 밭갈이를 시작하고 불어난 물이 연못에 가득 고여 봄 정서가 넉넉하다. 봄 비 내린 농촌 경관 묘사에 노동의 미학도 담겨진다.
산속에 종일 비가 내려 盡日山窓雨
잠시도 쉬지 않고 주룩주룩 垂垂不暫休
마른 벼 비 맞아 다시 살아나고 沾禾蘇久稿
냇물은 또 다시 콸콸 흐르네 盈澗活新流
거북 등처럼 갈라져 걱정했더니 幾悶龜文坼
문득 코 내미는 소를 본다네 忽看牛鼻浮
농부는 황급히 삿갓을 쓰고 野叟催荷笠
어부도 서둘러 배를 손질하네 漁子急裝舟
흥이 난 개구리 시끄럽게 울어대고 鼓吹喧鳴蟆
흠뻑 젖은 갈매기 목욕 즐기네 淋漓戱浴鷗
풍년들어 경사가 있을 것이니 豊年知有慶
들판에 온화한 기운 넘실대네 和氣遍郊頭
긴 가뭄 뒤에 많은 비가 온 대지를 적신다. 마른 논에서 힘겹게 생명을 유지해 온 벼가 생동감 넘치게 고개를 쳐들고 해갈의 기쁨에 동참한다.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냇가로 모여들어 냇물은 급기야 물줄기를 이루어 힘차게 흘러간다. 긴 가뭄으로 논바닥이 거북 등처럼 갈라져 농민의 한숨을 자아내게 했지만 간만에 내린 비로 극난했던 농민의 안타까움이 일시에 해소되었다. 이제 농가는 긴박감 있게 움직인다.
농부는 소를 몰아 일터로 나갈 준비를 한다. 어부 역시 급히 강으로 나갈 채비를 마친다. 농부와 어부는 저마다 생업의 현장에서 생태계의 생명수를 공급 받아 경작하거나 조업에 열중한다. 땀 흘리는 생업의 현장이 생생하게 전개된다. 이에 따라 개구리도 흥이 나 합창을 하며 물새도 즐겁게 멱을 감으며 먹잇감을 찾고 있다. 이즈음 시인도 이러한 즐거움에 끼어들어 풍년을 축원하며 기뻐한다. 비 온 뒤 농촌은 살아있는 풍경화이다.
비 그친 산 이슬 젖어 촉촉한데 雨歇山中浥露氛
말을 타고 동구를 벗어났네 征馬騑騑出洞門
들판엔 푸르고 누런 보리 넘실대고 色間靑黃盈野麥
하늘엔 희고 검은 구름 가득하여라 容翻黑白滿天雲
아낙은 광주리에 들밥 담아 논을 찾고 携筐餉婦尋秧畝
망태 멘 초동은 물을 불러 뿜네 荷𪟊蒭童喚水噴
타양을 찾아가니 멀지 않았고 欲向沱陽知不遠
늦바람 물결 일으켜는 소리 들려오네 晩風吹浪響猶分
비 내린 산 곳을 벗어나 일직으로 가며 지은 시다. 비 내린 산천은 이슬과 습기로 가득하다. 산 어귀를 벗어나니 넓은 들판 마을이 나타난다. 들판에는 푸르고 누런 맥랑이 일고 하늘엔 희고 검은 구름 가득해 청황과 흑백의 조화를 이룬다. 이어 모내기에 열중하느라 시장기를 느낀 일꾼들을 대접하기 위한 아낙은 머리에 새참을 이고 잰걸음으로 논으로 가고 누렁소 먹이를 제공하기 위해 꼴을 베러 가는 아이를 그렸다. 목적지 일직이 가까워지고 바람 소리도 들려온다.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며 지은 시이다.
복사꽃 활짝 핀 길을 路出桃園裏
홀로 소에 타고 돌아간다네 騎牛獨也歸
좋은 산 빠짐없이 구경하고 好看山歷歷
한가로운 들판을 더디 간다네 閑度野遲遲
아무 생각 없이 천천히 가면서 步倦無壯意
짧은 시 지어 편안히 읊조리네 吟安有短詩
우습구나, 살찐 말 탄 다른 길손은 笑他肥馬客
어이하여 고달프게 빨리 가는가 何事苦奔馳
그림 같이 고운 봄 풍광 속에 노니는 풍류한적의 미학이 담겨 있다. 소등에 타고 분홍빛 복숭아 꽃 활짝 핀 산천을 거쳐 귀가하는 시인의 풍류가 일품이다. 굳이 서두를 필요도 없다. 소가 가는 대로 행보를 맡긴 채 봄 꽃으로 수놓은 산과 들판을 감상하면서 느릿느릿 가는 형상에서 시인의 풍류가 한껏 드러난다.
세상의 고달픈 잡념도 간여할 수 없다. 속세에 찌들고 눌린 마음이 절로 해소되어 여유와 낭만 정조가 발산된다. 게다가 흥에 따라 시를 짓노라니 낭만과 격조가 융합된다. 그래서 세인들이 빠르게 말을 몰아 고달프게 달리는 모습을 보고 웃고 만다. 임천 주인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시에도 이상향 추구의 풍류 정신이 담겨 있다.
한가한 몸 조용한 집에 쓸쓸히 지내노니 蕭然靜室稱閑身
푸른 절벽 푸른 산 하나하나 새롭구나 翠壁蒼巒面面新
신선이 깊은 산에 머무른다고 하지 마소 莫道仙翁深處住
어부는 봄 되어 또 무릉도원으로 간다오 漁舟更趁武陵春
한가롭게 지내는 동안 푸른 절벽과 산이 새롭게 보인다. 조용한 집에서 소일하며 지내는 한적한 멋과 산천을 대하며 자연 친화적 정감이 묻어난다. 심산유곡에 신선이 산다고 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신이 신선과 같은 자유와 낭만 정서로 충일해 있다는 말이다.
이제 풍류의 멋을 더욱 갈구하기 위해 무릉도원을 찾아간다. 시냇물을 따라 복숭아꽃이 둥둥 떠서 흘러오고 초록이 짙어가는 봄 정경이 그려진다. 속세의 근심과 고단한 모습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낭만과 풍류 서정이 격조 있게 그려져 있다. 비 오는 한식에서 누리는 낭만을 보자.
밤새도록 산비가 창가에 뿌리더니 山雨通宵灑紙窓
빈 집엔 온종일 아무도 찾지 않네 空齋盡日不聞跫
봄바람 불어 집집마다 찬밥 먹고 東風吹冷千家食
넓은 들 강물처럼 펼쳐졌다네 大野平浮一面江
봄이 벌써 반이나 후딱 지나갔는데 眼看新春今又半
하늘이 좋은 벗과 짝 맺어주었다오 天敎良友忽成雙
남쪽의 이웃 노인 풍류가 그지없어 南隣老叟風流甚
제단 머리 술 한 동이 보내주었네 送與壇頭酒一缸
산 창가에 밤 내내 비가 내렸고 빈 집에는 찾아오는 이 없지만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시절이 한식이어서 집집마다 찬밥을 먹는 풍습을 재현하며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강물은 끝없이 흘러간다. 그 사이 봄이 반이나 지나가 버려 한편으로 아쉬운 감이 없지 않지만 남쪽 이웃의 풍류 노인이 벗이 되어 주기에 풍류를 공유할 수 있어 즐겁다. 남쪽 노인은 시인과 멋스러운 삶을 공유하기에 술 한 동이를 보냈다.
자연의 향연과 순수한 내면에서 발산되는 한적한 멋과 풍류 정신이 합쳐져 시상 전체가 밝고 명랑하다. 이처럼 백운재는 전원적 시풍으로 자연 경관과 미물의 속성을 간파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그의 시에는 농촌 정서와 노동의 미학, 농부들의 소박한 마음까지 담겨 있다. 그리고 농촌 정서를 토대로 한 풍류 낭만적 서정을 표현해 냄으로써 자연 친화적이며 풍류낭만 미학이 융화된 정감을 그렸다.
3. 유자 의식과 역사 회고 정서
유자 의식과 역사 회고가 반영된 작품을 보기로 한다. 이는 백운재의 사상 근저를 엿보는 주요 단서이다. 그는 타고난 문학 재능이 출중했을 뿐만 아니라 평생 유학을 존숭하며 본업으로 여겼다. 유자 의식이 반영된 작품을 보기로 한다.
강산의 멋진 풍광 높은 누대에 비치고 溪山集勝獻高臺
맑은 달에 취한 길손 돌아갈 줄 모르네 淸月留人醉不回
바위에 걸터앉아 호탕하게 노래 부르니 坐倚盤石歌浩浩
곧 몸이 무우대에 온 것 같구나 却疑身自舞雩來
길손은 도산서원 천연대에서 달밤의 멋진 풍광에 젖어 갈 길을 잊었다. 도산 산수 자연의 아름다움은 비취색 강물과 병풍처럼 고운 석벽이 조화를 이룬다. 그 비경의 가운데 도산서원이 자리하고 있고, 천연대는 아래로 낙동강을 굽어보며 강과 산이 조화된 공간 미학을 조성한다.
낮의 경치도 그만이지만 고즈넉한 달빛 아래의 풍광은 운치를 더해 준다. 바위에 앉아 호탕하게 시 한 수를 읊고 나니 흡사 무대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선조 퇴계의 정신 철학이 간직된 도산서원에서 사색에 젖어든다. 도산서원은 퇴계를 선조로 둔 후손에게 남다른 공간이다. 청량산과 낙동강을 배경으로 한 한국 성리 철학의 성지로 인식되었다. 다음 도남서원을 찾은 감회를 보자.
낙동강 가 우뚝 솟은 누대 漂渺高臺洛水頭
강물 흘러 서원에는 상쾌한 기운이네 軒楹淸爽一江流
오랫동안 남쪽 지방 사람 덕을 생각하고 百年南國人思德
길손은 봄바람 부는 누대에 기댔네 二月東風客倚樓
푸른 절벽 태초의 모습 닳지 않았고 蒼壁不磨盤古色
푸른 대는 사시사철 푸른빛을 띠었네 綠筠長帶四時秋
하늘빛 구름 그림자 배회하는 속에 天光雲影徘徊裏
지극한 이치의 근원 찾을 수 있네 至理淵源可細求
유유히 흘러가는 낙동강은 상주를 거치면서 들판을 적시며 역사를 안고 흐른다. 강에 우뚝 솟은 누대는 풍치도 아름답지만 낙동강 바람이 불어와 상쾌함을 만끽케 한다. 시인은 어진 정치가 실현되는 태평성세를 희구하면서 낙동강을 바라보며 위안을 받는다. 강을 배경으로 서있는 푸른 절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푸른 대나무는 선비의 지조와 절의를 상징하며 시인의 마음을 바르게 하는 매개이다. 시인은 절벽의 군센 형상과 대의 꼿꼿한 정신을 되새기길 다짐한다. 하늘에 구름이 떠있고 강물 위에 그림자가 흐르는 천지 유동의 묘미를 체득하고 희열에 잠긴다. 강물과 산천을 바라보며 철학적 사색과 정심의 세계를 응축시켰다. 이어 더 깊은 성리 철학 사유에 몰입한다.
높고 우뚝한 높은 집 멀리서도 보이고 迢遞高堂眺望通
엄숙한 사당모습 볼수록 위엄이 있네 巋然廟貌仰彌崇
영남의 도는 많은 현인의 학맥을 이었고 一江道接千賢脈
많은 댓잎 소리에 백세 유풍 남아있네 萬竹聲留百世風
모래섬의 밝은 달은 은빛 세계 펼치고 沙浦月明銀世界
석병에 구름 걷히니 연꽃 형상일세 石屛雲剝玉芙蓉
맑은 난간에 기대어 한 곡조 길게 노래하니 長歌一曲凭淸檻
되레 이곳이 바로 무우대 인가보네 却訝舞雩卽此中
이 작품도 도남서원에서 지은 것이다. 높은 서원 건물이 멀리서도 확연히 드러나며 엄숙한 사당은 볼수록 위엄을 느낀다. 영남 유학의 정맥은 도도한 학맥을 이루어 선비들이 대대로 유학을 탐구하고 의리를 실천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점을 회고하였다. 쉼 없이 흘러가는 낙동 강물은 그러한 영남 학맥의 간단없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서원 한쪽에 심긴 대나무 소리는 옛 선비들의 유훈으로 여전히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시인은 서원에 들어서는 순간 영남 도맥과 유풍에 압도되어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였다.
이어지는 시구는 서경 묘사를 통한 철리적 사유를 반영한 것인데, 밝은 달이 오른 달밤에 모래 벌은 달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인다. 석병에 구름이 걷혀서 밤에 보니 연꽃 형상이다. 이에 시인은 밤 풍경에 심취되어 길게 한 곡조 부르고 나니 이곳이 무우대와 다를 바 없다고 한다. 이러한 백운재의 유자 형상은 역사 회고 정서를 담은 시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신라의 옛 도읍지를 찾아드니 來訪新羅舊帝京
천년 사적이 한순간 꿈같구나 千年基業一夢驚
지난 왕조 계림의 늙은 나무 색이요 前朝樹老鷄林色
고국엔 봉덕의 차가운 종소리 들려오네 故國鍾寒鳳德聲
문물이 번화했음을 어디에서 찾아볼꼬 文物繁華尋底處
첨성대 월성 남긴 이름 생각해보네 星臺月堞想遺名
황폐한 능에 경작을 금하고 있으니 荒陵尙有犁鋤禁
도읍인이 신라왕 존중하는 맘 알겠네 可見都人愛主情
천년 고도 동도를 찾아가니 천 년 신라의 역사가 꿈만 같다고 회고한다. 늙은 나무는 찬란했던 과거 역사를 뒤로 하고 노쇠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차가운 봉덕사 종소리가 나그네 마음을 더욱 구슬프게 한다. 과거 찬란했던 신라의 역사를 뒤로 한 채 남은 첨성대와 반월성은 지난 역사를 회고하기에 훌륭한 시적 소재이다. 황폐한 능에 경작을 금하는 것을 보니 여전히 신라 역대 왕에 대한 후인들의 존모심을 느낄 수 있다. 과거 번화했던 역사의 뒤안길을 돌아보면서 회고 정서를 표현하였다. 이어 첨성대를 돌아본다.
흥망성쇠 다 겪고 홀로 우뚝 섰으니 閱盡興亡獨巋然
첨성대는 그 옛날 동선보다 낫구나 星臺猶勝古銅仙
가련타 오래된 이 돌 말이 없으니 可憐老石無言口
천 년의 옛 일을 물어보기 어려워라 古事難憑問一千
역사의 흥망성쇠를 다 겪은 첨성대를 둘러보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시인은 우뚝하게 천 년의 역사를 지켜보면서 말없이 서 있는 첨성대 돌을 바라보며 세월의 무상함과 지난 역사 회고 정조를 듬뿍 담아내었다. 첨성대는 지난 역사의 흥망성쇠를 두루 안고 묵묵히 서있는 역사의 증언 매개로 형상되었다. 첨성대가 구리로 만든 동상보다 낫다고 하면서 말없이 오랜 세월을 인고하며 지내 온 모습에서 신라의 천 년 역사를 회고하였다. 이는 불국사를 탐방한 시에서도 파악된다.
신령한 바람이 길손의 소매에 불어와 靈風吹客袂
말에서 내려 짐짓 방황하네 下馬故彷徨
언덕으로 변한 황폐해진 왕릉은 荒陵一坯土
신라의 몇 대 왕의 무덤일까 新羅幾代王
비석은 닳아 글씨가 보이지 않고 石磷看剝落
초목도 마냥 처량하기만 하네 草樹任凄凉
천 년의 사적을 묻고 싶으나 欲問千年事
석양에 나무꾼 노래 소리만 들리네 樵歌起夕陽
불국사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황폐한 왕릉을 보고 하마해 잠시 방황한다. 왕릉이 폐허가 되어 언덕으로 변해버려 안타깝기만 하다. 닿은 비석은 판별할 수 없고 초목도 처량하게 보인다. 천년 사직을 묻고 싶지만 반기는 이 없고 석양 무렵에 나무꾼의 노래만 들려온다. 봉덕사 신종을 둘러보며 지은 시이다.
신라 천년의 옛 구리종을 千年羅氏舊金鍾
새로이 주조하여 종 틀에 달았네 留作新周業虡鏞
신의 공덕으로 주조하여 부처를 새겼는데 鑄冶神功銘釋字
민간에선 황당하게 아이 얼굴 그렸다 하네 荒唐野語畵兒容
나라가 태평하면 강산도 소중히 여기련만 太平永鎭山河重
고국이 초목으로 덮임을 길이 슬퍼하네 故國長悲樹草茸
마치 지금까지 흥하고 망한 일을 호소하듯 似訴至今興廢事
우레치고 고래 우는 듯한 소리 들려오네 雷轟鯨吼響舂舂
신종의 주조 과정을 언급하면서 종에 불상을 새겼지만 민간에서는 어린 아이의 얼굴을 새겼다는 전설이 나돈다고 했다. 신라의 화려했던 역사 회상을 통해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이 안정된 삶을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역사 인식론을 제시하였다. 나라가 망하니 강산이 이처럼 황량해 졌다는 탄식을 발한다. 때문에 그러한 원한을 담은 종소리가 귓전에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시에는 역사 회고 정서와 감계 의식이 복합되어 있다. 역사 회고 정서는 감계 의식의 표현으로 점증된다.
초왕이 사냥 놀이를 즐기자 楚王耽畋遊
번희는 고기를 먹지 않았네 樊姬不食肉
고기가 어찌 맛이 없으랴만 食肉豈不佳
미혹된 왕의 마음 돌리려고 所願開王惑
중국 춘추시대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였다. 번희라는 여인은 초장왕의 비이다. 왕이 냥을 즐기자 이를 제지하며 어진 재상을 임명하게 했다. 제왕의 비로서 제왕의 사냥 놀음을 간하고 어진 정치를 실현하도록 내조한 점에 유의하여 역사 감계 의식을 드러냈다. 번희가 초왕이 사냥한 고기의 맛을 즐길 줄 몰라가 아니라 지나친 사냥놀이를 막고 정치에 집중하도록 마음을 돌리기 위해 그러한 조치를 취했던 점을 기렸다. 다음은 채희라는 여인에 대한 작품인데 여기에도 감계 의식이 표현되고 있다.
강엔 배들이 어찌나 많았던지 江舟何霮霨
배를 흔드니 배가 기우뚱하네 蕩舟舟亦傾
다만 총애가 지나쳤기에 秪緣嬌愛極
마침내 전쟁이 일어났네 遂致干戈爭
채희는 춘추시대 채 나라 제환공의 부인이다. 환공이 장난을 쳐서 그녀를 축출하고 나중에 도리어 봉변을 당했다는 역사가 있다. 이는 제왕이 체통을 잃고 여색에 빠짐을 경계한다는 점에서 위의 시와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감계 의식은 조령에 올라 왜적 소탕을 부르짖는 분개 의식으로 확장된다.
산머리 해는 지고 닭은 홰를 찾는데 山頭斜日欲棲鷄
높은 다리에 오르니 하늘이 가깝다네 始上高橋天可梯
벼랑길에 나는 새와 길만 보이고 石棧飛禽纔看道
얼음 절벽의 여읜 말 자주 넘어지네 氷崖羸馬幾顚蹄
하늘이 내린 험준한 관문은 장엄하고 天生險阻關防壯
땅이 트인 서남쪽 고을이 낮게 위치했네 地豁西南郡邑低
임진년을 떠올리니 아직도 분노가 치미는데 歲憶龍蛇猶膽奮
누가 진흙 덩어리로 일본을 봉쇄할까나 東封誰借一丸泥
서산으로 해가 지고 닭이 홰를 찾을 만큼 시간이 경과했다. 높은 다리에 오르니 하늘이 가깝다. 조령을 넘다보니 여러 가지 상념이 일어난다. 시인은 조령 전체 경관을 조망하면서 벼랑길에 새가 흐릿하게 나는 모습을 주목했다. 얼음 절벽을 오르던 말도 지치고 힘들어 연신 넘어진다. 조물주가 빚은 관문은 장엄한 위용을 드러낸다. 고개 마루에 오르니 서남쪽의 넓은 고을이 환하게 나타난다. 자연 경관 감상을 통해 웅건한 기상을 느끼게 한다.
문득 임진왜란의 치욕적 역사를 반추한다. 조령을 거점으로 하여 침탈을 일삼았던 왜구들의 만행에 대해 분개하는 의식을 표출한다. 굴욕의 역사를 안겨준 왜구를 무찌르고 싶은 충동을 표현하였다. 이는 후한 외효의 부장인 왕원이 “내가 하나의 진흙 덩어리를 가지고 대왕을 위해 함곡관의 틈새를 막아 버리겠다.”라고 한 데 근거한 고사로, 조령에서 임진왜란을 돌아보며 왜구를 무찌르고 싶은 애국 기상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표현 속에 백운재의 역사 감계 의식이 토로되고 있다. 백운재는 유자 의식을 근간으로 해서 역사 현장에서 회고 정서와 감계하며 분개하는 의식을 토로하였다. 말하자면 그는 유교적 역사관에 근거한 일련의 시를 창작했던 것이다.
5. 객지 수심과 교유 활동
이러한 유교적 의식을 구비한 그는 성균관 유학 시절에 많은 인사들과 교유하면서 시를 창작하였다. 삼산의 정붕정과 류영 두 벗이 초청하기에 반가이 달려간다.
당체나무에 비 내리니 버들 더욱 푸르고 棠雨霏霏御柳陰
서울 객사엔 푸른 안개 자욱이 드리웠네 長安客舍翠烟深
나그네 마음 우울하여 하루가 일 년 같고 羈懷壹菀朝如歲
돌아갈 계획 어긋나 오늘도 어제 같네 歸計蹉跎昨又今
역참에는 남쪽으로 서신 전할 말이 없고 驛路騎無南去便
관산의 기러기는 북쪽 소식 끊어졌네 關山鴻斷北來音
이때 문득 삼산의 심부름꾼을 만나니 此時忽見三山使
두 통의 편지가 만금의 값어치네 錦字雙封抵萬金
당시 작가는 성균관 유학을 하고 있었다. 형제 우애를 상징하는 당체나무에 비가 내리고 버들잎이 곱게 자라는 초여름이다. 한양의 객사는 푸른 안개에 싸여 있지만 나그네 심기는 편하지 않다. 하루가 일 년처럼 길게 느껴지며 귀향할 계획도 어긋나 내내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역참에는 남쪽으로 소식을 전할 말도 보이지 않고, 관산의 기러기를 통해 북으로 소식도 전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고향으로도 소식을 전할 수 없고 벗들과의 교유도 단절되어 공허를 느낀다. 이 때, 삼산의 두 벗이 심부름꾼을 보내 소식을 전해 준다. 삼산의 두 벗은 정붕정과 류영이다. 문집에 두 벗과 절친히 교유했던 면모가 여러 차례 확인된다. 한양의 고독한 유학생이 친한 벗을 찾아가는 것은 퍽 즐겁다.
저물녘에 서울 길을 떠나 晩出長安陌
배를 타고 과천으로 향하였네 呼舟向果川
돛을 다니 빗속에 흰 새 날고 帆懸鷗背雨
노를 저으니 안개 속에 새 나네 鞭拂鳥邊烟
기쁜 마음으로 가까운 산을 보니 靑眼迎山近
세속 먼지를 벗어난 것 같네 緇塵出市蠲
저물녘에 옥동에 도착하여 乘昏尋玉洞
벗을 불러 신선놀음 즐기네 催喚舊遊仙
과천에서 배를 타고 내려가 삼산으로 간다. 저녁 무렵, 한양에서 길을 재촉해 과천의 삼산으로 유람한다. 우중에 돛을 달고 출발하니 새가 날며 뒤따른다. 안개 속에 노를 저어 가는데 새도 뒤따르며 한가로운 정경이 펼쳐진다. 시인은 절로 흥분이 되어 지나치는 산을 바라보자 세속의 잡념을 떨쳐버릴 것만 같다. 옥동에 도착해 벗을 만나 정다운 모임을 가진다.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정붕정을 통해 백운재의 교유 양상을 살필 수 있다. 삼산에 도착해 정다운 벗과 친밀한 교유를 이어간다.
삼산의 달 밝은 밤에 三山明月夜
여러 신선들이 만났네 邂逅列仙群
한 자리에 참 흥취 일어 一榻成眞趣
많은 근심을 물리쳤네 千魔作退軍
밤 깊어 이슬은 옷깃 스치고 更深衣撲露
세찬 노래 소리 구름을 뚫네 歌烈響穿雲
인간 세상사 점치려고 欲驗人間事
북두성 견우성을 바라보네 起看斗牛文
달 밝은 밤 삼산에서 정든 벗을 만나 흥을 누린다. 한양 유학을 하며 고독한 그에게 객지에서 사귄 벗과의 교유는 각별하다. 한양에서 쌓였던 근심이 이 모임을 통해 해소되고 밤 깊도록 시를 창화하며 우정을 다진다. 벗을 만나 심회를 토로함으로써 근심을 떨쳐낼 수 있다. 이들의 즐거운 모임은 밤이 깊어 이슬이 내릴 때까지 이어진다.
이슬이 옷깃을 적시자 시간이 경과되었음을 깨닫는다. 북두칠성과 견우성을 바라보며 밝은 미래에 기대를 걸어본다. 암울한 현재의 상황이 전환되고 밝은 미래가 열려지길 염원한다. 백운재과 정붕정의 절친한 관계는 다음 시에서도 파악된다.
천리 길에서 우연히 만나 萍逢千里路
그대와 좋은 무리 되었네 君我好爲群
달빛 자리에 소매 나란히 月榻聯雙袂
두 사람 서로 시를 다투네 詩城掎兩軍
비바람 몰아치는 밤에 용이 울고 龍吟風雨夕
바다 하늘 구름에서 학이 꿈꾸네 鶴夢海天雲
우리 도가 어찌 길이 곤궁하리 吾道寧長困
임금의 계책 문덕이 빛나리라 皇猷可煥文
정붕정은 천리 타향에서 만난 벗이기에 각별하다. 단짝으로 시를 수창하고 학문을 연찬하며 결속을 강화했다. 대과 급제를 거쳐 입신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했다. 비바람 몰아치면 용이 승천하듯이 조만간 욱일승천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자신들이 오래 곤궁한 신세로 지내지는 않을 것이며 급제해 임금의 계책을 빛내겠다는 다짐을 한다. 다음 시에서도 찬란한 미래의 도래를 염원한다.
정다운 벗 타향에서 만나보니 客地逢情友
시 지으며 기쁘게 무리 되었네 騷壇喜得群
돌아갈 기약 천리 길 막히니 歸期阻千里
그 언제 삼군을 쉬게 할거나 幾日休三軍
깊 밤 달빛 정이 많지만 永夜多情月
넓은 하늘에 구름이 보이네 長天入望雲
마음속 돌아보니 똑 같아 心懷看一樣
칼집 속의 용문검 어루만지네 匣裏撫龍文
타향에서 정다운 벗을 만났기에 더욱 반가워 동지 의식을 공고히 한다. 동학으로 시를 짓고 학문을 연찬하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진해 가는 중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인좌의 난이 발생하여 오가는 길이 막혀 근심이 깊다. 조속히 이 변란이 종식되어 안정이 회복되길 바랄 뿐이다. 학문 토론과 작시 활동은 밤이 깊도록 이어진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 보며 칼집 속의 용천검을 어루만진다. 용천검이 칼집에서 나와 기량을 발휘하듯이 자신들도 면학과 근신을 다짐하여 기개와 역량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그것을 위해 변란 중에 근신하며 위기를 극복해 나가자고 다짐한다.
세상 어려운 때 만나 世値艱難際
길에 도적 떼 많이 불러 모았네 路多嘯聚群
봄철이 다 지나갔건만 三春看過節
한 달 동안 군사 돌아오지 않네 一月未返軍
돌아가길 재촉하는 새는 마음 아프고 心碎催歸鳥
저무는 구름을 뚫어지게 바라보네 眼穿欲暮雲
객창에서 벗 만나 기뻐하며 客窓欣得伴
함께 자세히 글을 따져보네 相對細論文
무신란을 당해 길목 도처에 도적들이 진을 치고 있고 봄이 다 지나도록 관군들은 도착하지 않는다. 귀향을 재촉하는 새의 울음을 듣자니 마음이 아파 저무는 구름을 주시한다. 저 산천 너머에 고향이 있지만 가지 못한다. 때문에 난리 가운데 객지에 만난 벗과의 친분은 더욱 돈독해진다. 그래서 백운재는 복잡한 현실 번뇌를 잊기 위해 벗과 학문 활동을 전념했던 것이다. 이런 심경은 다음 연작시에서 핍진히 드러난다.
조용한 오두막에 작은 담장이 둘렀고 窈窕衡門繚小墻
주인은 나그네와 함께 봄꽃을 보네 主翁携客賞春芳
세상엔 풍파와 누런 먼지 넘치는데 人間風雨黃塵漲
안개 노을 속의 동리에 해는 길구나 洞裏煙霞白日長
하루 밤 정담이 구슬처럼 이어지고 一夕淸談瓊散屑
몇 구절 좋은 시에 붓 향기 피었네 數聯佳句筆生香
우리들은 참으로 신선의 분수 있어서 吾儂定有神仙分
보름 동안 수석 곁을 함께 노닐었네 半月從遊水石傍
이 당시, 백운재는 무신년 칠월에 정붕정과 함께 과천의 삼산 상사 류백흥의 집에 갔다가 난리를 만난다. 고향 소식 아득하고 돌아갈 기약도 없어 정붕정․류백흥과 바둑을 두고 소일하는 감회를 표현했다. 작은 담장이 오두막을 둘렀고 주인은 나그네를 맞아 함께 봄을 즐긴다. 온 산천에 봄꽃이 만발하지만 전란이라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안개 낀 노을은 당시 착잡한 시인의 심경을 대변해 주는 시적 소재이다.
이 때문에 하루 일상이 길게만 느껴진다. 반면에 저녁에 심회를 털고 시를 주고받으며 문학 정감과 흥취를 즐긴다. 그러한 정취를 느끼며 보름 동안 함께 지냈다고 한다. 무신란의 어려움이 가중되어 객지에서 봄을 지내는 나그네의 심정을 절박하다. 이런 정서는 다음 시에서 더욱 극명해진다.
꾀꼬리 날고 나비 춤추며 꽃잎 스치고 遊鶯舞蝶掠飛花
인간 세상 혼란과 두려움 알지 못하네 不識人間亂㥘沙
한강 물 풍파 일어 전란에 놀라고 漢水風波驚蕩滌
서울의 봄 빛 아름다움이 줄었네 洛陽春色減繁華
삼산에서 즐거이 신선 굴을 만나 三山喜遇神仙窟
천리 길에 나그네의 집이 되었네 千里仍成客子家
낭랑하게 수창하니 마땅히 고취되니 酬唱峩洋當鼓吹
가슴 가득 쌓인 근심이 사라져 버렸네 滿胸愁疊破如瓜
꾀꼬리가 날고 나비가 춤추며 꽃잎을 희롱하는 계절이다. 이로 인해 세상의 혼란과 두려움을 느낄 수 없다. 시인은 애써 난리의 흔적을 지워보려는 내심을 드러냈다. 좋은 계절과 전란의 혼란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전란으로 한강 물도 사뭇 풍랑이 사납게 느껴진다. 그로 인해 서울의 봄빛도 제 빛을 발하지 못한다. 삼산에서 즐겁게 벗을 만났고 이로 인해 천리 길 나그네는 벗의 집에서 둥지를 틀었다. 가슴 가득한 울분과 현실 난관을 해소하기 위해 시를 읊으니 근심이 사라지는 쾌감을 누린다. 하지만 이는 완전한 해소는 아니다.
여전히 시인의 내면 깊은 곳에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다. 현실을 외면이라도 하듯 애써 즐겁다고 노래하는 이면에는 여전히 떨쳐버리지 못하는 근심이 가슴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운재는 객지 생활에서 오는 고독한 심정을 달래기 위해 벗과 교유를 하거나 작시 활동을 했다. 객지의 고독을 극복해내는 힘을 거기서 찾았던 것이다. 때문에 그의 고독한 형상은 벗과의 교유를 통해 회복되었던 것이다. 여로 서정과 향수를 반영한 작품을 보기로 한다.
6. 여로 서정과 고향 그리움
백운재는 고향을 떠나 한양 등을 전전하며 객지 생활을 하는 동안 여로 감회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시에 담아내었다. 그의 시 한 특징으로 보이는 우수와 번민의 정서가 어우러진 작품이다. 여로 서정과 고향을 사모하는 정서 및 가족애 표현까지 포함된다. 이러한 시를 통해 시인의 내밀한 서정을 파악하며 가족과 인간애를 느낀다. 동작 나루를 건너며 지은 작품이다.
이별의 나루터에 저녁연기 피어오르고 人家別浦暮烟浮
강에 부슬부슬 비 오고 배에는 손님 가득 江雨絲絲滿客舟
이곳에서 삼산이 그리 멀지 않아 此去三山知不遠
뱃머리에 푸른 봉우리 점점이 솟았네 靑螺點點聳舤頭
한양에서 벗들과 이별하고 삼산의 벗을 찾아간다. 이별 나루터에는 저녁 연기가 피어오른다. 강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배 안에는 길손들이 가득해 흥을 돋운다. 삼산도 그다지 멀지 않다. 뱃전을 지나가는 푸른 봉우리는 운치를 담고 있다. 시인의 마음은 퍽 가볍다. 멀지 않은 삼산엔 그리운 벗이 있어 심회를 털어놓을 수 있고 시도 화답할 수 있다. 청명절 반촌 풍경에도 향토 서정이 담겨 있다.
좋은 시절 청명일 간밤의 비 그치고 佳節淸明宿雨乾
서울 도성엔 비바람 가득하네 滿城風雨是長安
주인은 면산의 한을 아는 듯 主人似解綿山恨
외로운 객에게 찬밥 차려 주네 孤客盤中食上寒
지난밤에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도성에는 비바람이 사납다. 반촌의 세시 풍속 풍경이 그려진다. 주인은 한식 유래를 알아 나그네에게 식은 밥을 대접한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시상이 전개된다. 한식 풍속을 이행하는 반촌의 정경을 화폭에 담아낸 풍속도이다. 봄에 중리에 도착한 감회이다.
석양에 말을 멈추니 마음 더욱 산란하고 立馬斜陽倍慘神
지난겨울 떠난 나그네 금년 봄에 다시 왔네 前冬歸客又今春
대나무 언덕 꽃동산 옛 모습 그대로인데 竹壇花塢依然在
당시의 옥인들 한사람도 보이질 않네 不見當時玉一人
석양에 중리에 도착해 말을 멈추니 마음이 산란하다. 지난 해 겨울에 이곳을 지나가던 나그네가 봄을 맞아 다시 찾은 감회가 새롭다. 푸른 대나무에는 새순이 자라고 언덕에는 작년에 폈던 꽃이 다시 활짝 펴 그를 반긴다. 하지만 고운 벗님은 보이지 않아 애석하다. 무궁한 자연 앞에 유한한 인간 존재를 느낀다. 풍취동을 지나며 말 위에서 지은 시를 보자.
험준한 돌길 말이 걷기 힘들고 石峭馬難度
텅 빈 산엔 새만 홀로 노래하네 山空禽自謠
바람은 온갖 구멍에서 새어 나오고 風從萬竅出
물은 한 근원에서 흩어져 멀리 흐르네 水散一源遙
어지러운 봉우리 구름이 해를 뒤덮고 亂峀雲霾日
외론 마을 버들가지 다리에 스치네 孤村柳拂橋
기쁘게도 함께 가는 나그네가 聯鑣欣有客
술잔 나누며 쓸쓸함 달래주네 分盃却無憀
말을 타고 험한 돌길을 가야 하기에 퍽 힘겹다. 말이 지친 터에 나그네도 지친다. 산에는 새만 조잘대며 공허감이 증폭된다. 온갖 구멍에서 바람이 새어나오고 샘 근원에서 샘물이 흘러나와 멀리 흐른다. 하늘에는 어지럽게 솟은 봉우리가 있고 그 봉우리를 구름이 가려 태양을 가린다. 시인의 시선은 다시 지상으로 향한다. 늘어진 수양버들 가지가 다리를 스치는 촉감각적 이미지가 선사된다. 이 때문에 나그네는 흥겹게 술잔을 기울이며 여로의 서정을 달랜다. 다음은 여로 서정과 향수가 복합된 작품이다.
시냇가 연못에는 물고기들 번뜩이고 溪心澤腹動龍鱗
쓸쓸한 찬바람이 먼지를 일으키네 凄切寒風搏面塵
천지간에 백년의 꿈을 잃어버리고서 天地百年牢落意
나그네는 천리 강산을 유랑한다네 江山千里漫遊人
고향 땅은 여기서 얼마나 떨어졌나 鄕園此去長程幾
객지에서 내일은 희망이 새롭겠지 客日明回暖律新
하양으로 가서 대취하고 싶어도 欲向河陽謀大醉
주머니에 돈 없으니 어이 할꼬 囊中其奈乏錢神
시냇가 연못에는 물고기가 힘차게 유영한다. 비늘이 번쩍거리며 힘찬 생기를 드러낸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 먼지를 일으키는 어두운 시상이 이어진다. 이러한 주변 분위기로 인해 나그네는 꿈마저 상실한 채 천리 강산을 유랑한다. 문득 고향이 그리워진다. 타향에서 겪는 서러움이 깊은 만큼 향수도 간절하다. 고독한 향수 가운데 시인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보다 밝은 미래가 전개될 것을 확신하며 설움을 삭힌다. 실컷 술을 들이키며 여독과 향수를 달래보고 싶지만 돈이 떨어져 그마저 수월하지 않다. 밤에 누워 두보 시에 차운한 작품을 보자.
객지에서 잠 못 이룬 채 긴 밤 지새우는데 客窓無寐度長宵
서리 맞은 달이 하늘에 걸려 있네 霜月依依掛碧霄
남아로 앞날이 창창하다고 자부했건만 自詫男兒前路遠
어찌 가난 때문에 마음조차 흔들리랴 豈將窮阨此心搖
오늘 옥 밥 먹고 계수나무로 불 땜은 如今白玉愁炊桂
고관대작도 예전엔 나무꾼에서 발신했네 終古朱衣起販樵
고요한 가운데 묵묵히 밤기운을 살펴보니 靜裏黙觀淸夜氣
텅 빈 하늘에 티끌 하나 보이지 않네 一塵難着太虛寥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긴 밤을 지새운다. 허공엔 서리가 내리고 휘영청 밝은 달이 걸려 있다. 남아로 태어나 크게 포부를 펼치길 기대했건만 가난 때문에 마음이 흔들릴 수 없다고 다짐한다. 지난한 현실을 버텨내며 발신하길 기대하며 자위해 보기로 했다. 예전에 어렵게 나무꾼으로 살던 사람들이 발신하여 입신양명한 사례를 언급하며 극난한 현실을 감내해 보기로 다짐한다. 하늘은 티 없이 맑고 깨끗하다. 이러한 여로의 수심은 향수 서정으로 이어진다.
부평 같은 신세 오래 돌아가지 못하고 萍梗行裝久不回
몇 번이나 고개 들어 고향을 보았네 幾番矯首望鄕臺
전란의 불이 남북으로 이어졌건만 燔天火色南連北
땅 가득 꽃은 활짝 피고 또 지네 滿地花光落又開
고향 산천 그립지 않은 날 없으니 泉石故園無日到
전란의 타향에 왜 왔던가 兵塵異土爲誰來
주인이 본래 풍류를 좋아하여 主人自是風流好
돌아갈 길 험하니 서두르지 말라네 畏道歸鞭勸勿催
부평초 같은 나그네 외로운 신세 한탄이 나온다. 난리 통에 객지에서 느끼는 향수는 그리움을 넘은 고통이 수반된다. 몇 번이나 고개를 들어 고향 하늘을 주시하건만 고향은 아득하고 근심만 쌓여간다. 전란이 연속되고 마을마다 불길이 치솟고 있지만 땅 가득한 봄꽃은 피고 지기를 멈추지 않는다. 전란의 병화와 대조적인 자연의 순환 섭리에 따라 봄꽃이 만개하는 이치를 멈추게 할 수 없다. 고향 산천이 그리운 나머지 타향의 객으로 지내는 자신을 탓한다. 주인은 애당초 마음이 넉넉한 분이어서 일체 염려를 말고 마음껏 머물라며 위로한다. 그러나 시인은 고향 안부가 그립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유발한 자들에게 분노한다.
한양의 풀빛 사람 옷을 물들이고 長安草色染人衣
봄꽃 다 져도 나그네 돌아가지 못 하네 送盡春花客未歸
꿈속의 고향 산천 돌아갈 길 막혔으니 夢裏鄕山征路阻
난리 통에 꽃과 나무 좋은 모습 드무네 兵前花木好顔稀
구름을 뚫고 나는 외로운 새 바라보니 眼隨孤鳥穿雲去
골짜기 넘어 나는 어린 꾀꼬리 부럽네 身羨新鶯出谷飛
요사한 기운 쓸어버릴 날 멀지 않으니 掃蕩妖氛知有日
대장부가 어찌하여 세상을 떠나겠는가 丈夫寧與世相違
한양의 고운 풀빛이 사람들 옷을 물들만큼 좋은 시절이 왔지만 귀향하지 못해 통증을 느낀다. 꿈에서만 고향을 찾는 아쉬움이 남는다. 난리 탓에 아름다운 꽃과 고운 나무의 자태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꽃과 나무를 감상할 만큼 여유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구름을 뚫고 멀리 치솟아 오르는 새가 무한 자유를 누리는 것을 동경한다. 시인은 자유를 누리는 새를 보면서 자유와 평화를 갈망한다.
이어 골짜기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꾀꼬리를 투시함으로써 새같은 자유를 희구하는 심경을 표출하였다. 말미에서 대장부로서 세상을 등질 수 없다는 포부를 발산한다. 조만간 요사한 기운을 휩쓸어 버릴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시인은 현실 위기를 극복하고 혼란을 멎게 하길 염원하며 경세 의지를 밝혔다. 이런 내면화된 경세 지향 의지는 다음 시에도 보인다.
나그네살이 어느덧 겨울 지나 봄인데 客日居然冬又春
멀리 동쪽 바닷가 고향 생각하네 家鄕遙憶海東濱
요즈음 전란으로 길이 막혔지만 此時道路干戈阻
이곳의 강산은 모습이 새롭구나 是處江山面目新
긴 밤 괴롭게 읊으니 월나라 새 따르고 永夜苦吟隨越鳥
오랜 나그네 자취는 진나라 사람 같구나 長羈○迹似奏人
은하수 물을 당길 수 있다면 若爲挽得天河水
세상의 비바람과 먼지 씻을 것인데 蕩滌人間風雨塵
겨울을 지나 새봄을 맞았다. 객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나날의 생활이 편하지 않다. 동쪽의 아득한 고향 생각이 간절하다. 전란으로 길이 막혀 괴롭지만 강산의 모습은 새롭다. 봄철의 산과 강에 삼라만상이 생동하는 면모를 지켜보며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체감한다. 긴 밤 외롭게 시를 읊는 신세는 고독하며 오랜 나그네 생활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가슴에서 치미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다. 은하수를 끌어와 세상의 모든 풍파를 씻어내고픈 심정을 털어 놓았다. 향수 서정은 가족애의 표현으로 이어진다. 종형과 이별하며 애틋한 마음을 토로한다.
이별만 하면 몇 년이 문득 흘러 相別動經歲
겨우 하룻밤 서로 만났네요 相逢纔一宵
빈산에서 이별을 아쉬워하니 空山惜分路
가을이 더욱 쓸쓸하네요 秋思更蕭蕭
혈육과 이별을 아쉬워하며 아쉬움을 담았다. 한 번 헤어지면 훌쩍 몇 년이 지나가 버린다. 몇 년 헤어져 지내다가 하루 저녁 만나 회포를 나누니 밤도 짧다. 이제 서로 다시 헤어져야 할 시간인데, 가을이라 마음은 허전하고 아쉬운 정만 남는다. 고향의 아우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고향 소식 담은 한 통의 편지를 받고 기뻐 消息欣憑一札中
잠시 가던 길 멈추고 먼 하늘 바라보네 暫停寒眼送遙空
기러기 높이 날아감을 길게 탄식하면서 長嗟鴻雁高飛月
바람난 말로도 만나지 못해 슬프네 若恨馬牛不及風
생활이 힘들다니 오막살이 걱정되고 契活艱辛愁白屋
공명이 늦어져서 얼굴이 수척하겠구나 功名腕晩失顔紅
집안에 전해오는 말 한 필 잃어버렸다니 傳門櫪下單騎喪
맹수의 소굴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될 터인데 難可久留豺虎叢
고향 소식 담긴 서찰을 받고 가던 길 멈추고 서서 고향 하늘을 주시한다. 기러기가 자유롭게 창공을 날고 있다. 자유롭게 제 갈 길을 날아가는 기러기의 비상이 부럽다. 그러나 자신은 고향으로 가지 못한 채 구속당한 현실 탓에 마음까지 아파온다. 아우가 고향에서 가족을 건사하는 힘겨운 생활고를 알기에 마음도 편치 않다. 아우의 공명이 늦다고 걱정하며 길러오던 말 한 필을 잃어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염려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뜻밖의 이별을 하고서 벌써 가을이 되어 居然離別動經秋
너는 깊은 산에 있고 나는 떠돌이 신세 君在深山我遠遊
가난은 병이 아니라서 물리치기 힘들지만 貧不病哉難可逐
이익은 기름과 같으니 어찌 이를 구하랴 利猶膩也豈容求
깊은 연못의 용은 끝내 날아오르겠지만 九淵神物終騰翼
먼 곳의 외론 새는 묶여 있어 부끄럽구나 千里孤禽恥羈韝
잃어버린 말은 원래 저절로 돌아오는 법이니 喪馬由來元自復
하찮은 득실에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區區得失莫深憂
아우와 헤어지고 계절도 바뀌어 가을로 접어들었다. 아우는 깊은 산에 있고 그는 유랑하기에 만날 수 없는 상황이다. 가난을 물리치기 어렵고 이익도 쉽게 구할 수 없어 무력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용이 등천하는 꿈은 버리지 않았다. 외로운 새는 시인의 고독한 형상이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궁벽하게 살아가는 고독한 형상을 말한다. 잃은 말에 대해 너무 상심하지 말라는 충고를 곁들였다. 섣달 그믐날 밤에 지은 작품도 향수 서정을 반영한다.
근심 떨고 흥 이어가는데 술 힘이 크고 挑愁排興酒多功
호탕한 마음을 일으켜 나그네 심정 달래네 强作豪情慰客中
섣달그믐날 함께 보내는 이 밤 비 내리고 暮臘共流今夜雨
새벽 종소리 재촉하니 봄바람에 이별하네 晨鍾催喚別春風
기약한 듯 늙음이 찾아와 백발이 더해지고 老來如約頭添白
마음 맞는 사람 만나 촛불을 마주 하네 人遇同心燭對紅
고향에서 즐겁게 놀던 일 생각나니 遙想故園行樂處
촌 늙은이 흥겹게 노래하며 춤추겠지 幾家歌舞鬧村翁
근심을 떨치고 흥을 돋우기 위해 술의 힘을 빌린다. 술기운으로 호탕한 기운을 일으켜 서러운 심정을 달랜다. 눈비 뿌리는 섣달그믐 밤을 고독히 보내는데 새벽의 종이 울린다. 밤과 함께 향수의 정이 깊어 기약하듯 백발이 찾아오나 마음에 합한 자와 정담을 나눈다. 고향의 추억도 상기된다. 시골 늙은이들이 흥겹게 춤을 추며 노래하던 일이 그립다. 향수가 깊어 고향의 일이 환영처럼 나타났다. 이러한 향수병은 가족을 그리워하는 애정 표현으로 이어진다.
나그네 신세 무슨 생각하나 客中何所憶
멀리 형제의 마음 생각하네 遙憶兄弟情
큰 이불 근심 외로움으로 자니 大被愁孤臥
깊은 공부 일정이 잘못되네 深工失日程
구름 보려고 언덕 자주 오르고 看雲崗幾陟
달을 보니 외로운 기러기 소리 對月鴈孤聲
밤마다 고향 찾아가는 꿈에 夜夜歸山夢
연못의 향기로운 풀 우거졌다네 池塘芳草靑
첫 수에서 형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았다. 어릴 때 큰 이불 함께 덮었던 추억을 떠올렸다. 고향에 형제들이 남아 있고 타향에서 외로이 지내는 자신의 형상을 그려내었다. 하지만 객지에서 공부한 것이 원만하게 풀리지 못해 내심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낮에는 언덕에 올라가 구름을 바라보며 고향의 형제를 그리워하고 밤에는 달을 며 형제를 그리워한다. 꿈에서 고향을 찾아 간다. 연못 주변에 풀이 우거져 있음을 느껴본다. 고향 산천을 꿈꾸며 향수를 이겨낸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도 접을 수 없다.
나그네 신세 무슨 생각하나 客中何所憶
멀리 힘든 아내를 생각하네 遙憶糟糠妻
장마에 어렵게 살림을 살며 積雨艱炊桂
무더위에 지쳐 젓갈 같겠네 蒸炎困鮓魚
한 달 동안을 돌아가지 못하고 三旬歸不得
석 달 동안 그리워 어이하리 三月思何如
살면서 온갖 고초 겪었으니 生受多千萬
응당 나를 두루 책망하겠네 應知徧謫予
가족을 돌보고 자식을 부양하느라 고생하며 지낼 아내가 그립다. 보고 싶은 정은 물론이거니와 유학 생활 내내 가족 부양의 책임을 전가시키고 떠나왔기에 아내에게 미안하며 가장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자책도 고백된다. 장마철에 어려운 살림을 하느라 매우 골몰할 것이며 무더위에 지치고 힘든 일 탓에 온 몸이 녹초가 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온다. 이미 한 달 동안 돌아가지 못했고 아직 두어 달은 더 지나야 귀향할 것 같아 아내가 견뎌야 할 삶의 무게를 알고 있어 더욱 미안하다. 여태껏 자신만 믿고 살아 온 아내 입장을 생각해 보니 원망이 많을 것이라 했다. 고생하는 아내를 그리워하며 마음 아파하는 시인의 면모가 돋보인다. 손자도 그립기는 마찬가지다.
나그네 신세 무슨 생각하나 客中何所憶
멀리 우는 손자를 생각하네 遙憶呱呱孫
점차 지혜로워 책상 잡겠고 漸慧應扶案
조금씩 알면서 말 배우겠네 稍知艱學言
사랑스런 마음 깊이 느끼며 慈情愈覺重
고향 꿈 자주 꿔도 싫지 않네 歸夢不禁煩
그 어느 날 품에 안고 何日懷中抱
웃는 손자를 즐겁게 볼까나 喜看孩笑溫
고향의 손자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손자와 헤어져 지낸 지 몇 해가 되었다. 영리한 손자가 책상을 잡고 조금씩 말도 익힐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자 손자가 더욱 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고향 꿈을 자주 꾸어도 전혀 싫증이 나지 않다. 어여쁜 손자가 깔깔 웃는 모습을 즐겁게 지켜보고 싶은 소망을 여운으로 남기며 시를 마무리한다. 고향의 가족을 그리워하며 보고픈 심정을 진솔하게 그려낸 시에서 백운재의 인간적 따스함을 느낀다. 일련의 시에 여로 서정과 향수, 가족 그리움의 정서가 그려져 있다. 이어 대과 응거와 불운을 그린 작품을 보기로 한다.
7. 대과 응거와 불운의 형상
백운재는 대과 급제를 통해 가문을 흥기하고 발신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열망과 불운이 시로 형상되었다. 관모를 두고 지은 시는 입신출세를 은유하고 있다.
나아가고 물러남은 저절로 절도가 있고 卷舒自有節
쓰이거나 버림받음도 사람에게 달려있네 用舍任隨人
세상에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듯 乾坤雷雨動
오래 은거했다가 하루아침에 등용되네 久屈一朝伸
거두어들이면 한 웅큼도 되지 않지만 斂之不盈掬
펼쳐 놓으면 머리도 가릴 수 있네 放之能捍頭
비를 만나야 바야흐로 쓰이게 되니 得雨方用事
그 이치는 용이 되는 것과 같다네 其道猶龍乎
관모의 특성을 이용해 선비의 출처 형상에 빗대어 이렇게 표현했다. 관모가 펼쳐지고 오그라드는 것에 절도가 있고, 관모가 쓰이고 그렇지 못한 원인은 그것을 소유한 선비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이는 선비 개인적으로 출처 대의에 절도가 있어야 하며 선비가 등용되고 그렇지 못한 것이 오로지 시관에 달려있음을 상징한다. 세상 비바람이 몰아치면 관모가 쓰임을 받는 것처럼 은거하단 세파의 소용돌이에서 선비가 일시에 등용되는 것을 우의적으로 표현하였다.
관모가 거두어들이면 한 움큼도 못되지만 펼쳐놓으면 선비의 머리를 가리는 특성을 들어, 선비의 출처와 역할 수행을 비유하였다. 잠용이 비바람을 만나면 승천하듯이 선비가 때를 만나면 입신출세의 가도를 달리게 된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런 시를 통해 백운재의 입신출세 의지를 간파할 수 있다. 경세 지향 의지가 투영된 작품을 보기로 하자.
이 마음 편하고 몸도 한가하여 此心安處此身閑
나그네 시름 마음에 두지 않네 休着羈愁方寸間
세상을 피함 군자의 일 아니니 逃世本非君子事
평생을 청산에 지낼 필요 없소 百年何必臥靑山
한 때 그는 한가로운 생활을 영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몸과 마음이 한가롭고 편해서 나그네로 지내는 근심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군자로 세상에서 도를 실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다. 세상에 나아가 장부다운 기백으로 군자의 도를 실천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강조한다. 평생 청산에서 은둔해 사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다음 시는 아들 적에게 보낸 것인데, 아들의 장래를 염려하며 자신의 출세 의지도 반영한 작품이다.
너는 머지않아 성인이 될 것이니 看汝成人在眼前
머리에 의젓한 장부의 관을 쓰겠구나 欣然頭戴丈夫巾
시서는 우리 집 대대로 해야 할 일 詩書本是吾家業
언행은 옛 성현을 본보기로 해야 한다 言行須師古聖賢
천하에 용 잡을 솜씨를 지니려면 欲作屠龍天下手
시렁 위의 책을 좀먹게 하지 말아라 不辭書蠹架上篇
남아 이십 세는 어린 나이 아니니 男兒二十非兒齒
먼 장래위해 일찍 채찍질하라 願向長衢早着鞭
곧 성인이 될 아들에게 가업을 이어 학문에 충실해 주길 당부한다. 곧 관례를 치르고 나면 어엿한 장부로 관을 쓰게 될 것이며 유학은 대대로 이어져 오는 가업이라고 충고한다. 성현의 언행을 준거로 삼아 심신을 수련하는 선비의 길을 추구해야 하며 입신출세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시렁 위의 책을 부지런히 익히고 공부하여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런 표현 이면에는 조상들이 이루지 못한 대과 급제의 숙원 성취 염원이 내재하고 있다. 자신에 이어 아들에 이르기까지 그런 열망을 꼭 이뤄야 한다고 했다. 문씨 노인에게 화답한 시에 대과 급제의 기대감이 가득하다.
홀로 등잔 심지 돋우며 잠 못 이뤄 挑盡孤燈竟未眠
긴 칼을 어루만지니 애처롭기만 하네 手彈長鋏使人憐
고삐 풀린 말처럼 미처 날뛰는 기세 憑陵逸氣無羈馬
줄 풀린 배처럼 떠다니는 신세로구나 放浪遊踪不繫船
나그네 귀밑털 천 길 눈처럼 길어지고 客路鬂添千丈雪
고향 그리는 마음 꿈에서도 끝이 없네 鄕愁夢繞一涯天
남아로서 다행히 품은 뜻 이루게 되면 男兒好遂幸蓬志
내년 봄엔 다시 대궐 향해 나아가리라 更趁明春向日邊
밤을 지새우며 고독한 정서를 달랜다. 칼을 어루만지며 마음을 다잡고 의지를 굳힌다. 하지만 마음에 흡족하지 않다. 불안정한 삶은 고삐 풀린 말이나 줄 풀린 배 같은 형색이다. 나그네 생활을 하는 사이 귀밑털은 눈처럼 하얗게 많아졌고 향수는 꿈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남아로 꿈을 이루게 되면 내년 봄에 당당히 입성하리라는 기대를 걸고 있다. 두보 시에 차운하며 상경 채비를 다짐하는 연작시에도 이런 내심이 담겨있다.
시골집 떠나 서울로 가려고 하니 脫迹蓬門向帝城
찬바람이 떠나는 배 깃발 나부끼네 寒風觱發颭歸㫌
갑옷 입은 삼 천 명의 수군을 이끌어 提携三千匣中水
눈앞의 천 명 군사 모두 쓸어버리리 掃盡千軍眼下兵
남아가 표범처럼 변할 수 있다면 可是男兒成豹變
오늘 조정이 황하 맑을 때와 같을 수 있으랴 卽今朝著屬河淸
웅대한 마음 험한 산도 이미 상관 않는다면 雄心已無關山險
하늘 닿은 조령 길도 숫돌처럼 평평하리 鳥途連天若砥平
상경하며 지은 시이다. 차가운 강바람이 뱃전에 몰아친다. 깃발이 힘차게 나부낀다. 강을 건너면서 수군의 위용을 느낀다. 무장한 수군을 이끌고 적군 천 명을 휩쓸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혼란한 세파를 조장하는 악의 무리를 단번에 소탕해 버리고 싶다. 남아로 표범처럼 용맹을 발휘해 사악한 무리를 숙청하고 싶지만 황하가 맑을 기약이 없듯 이는 희망 사항이라며 체념한다. 하지만 웅건한 포부와 기개를 꺽지 않는다면 하늘에 맞닿은 조령도 숫돌처럼 평평히 갈아버릴 수 있다며 자부한다. 상경하면서 청운의 꿈을 마음껏 펼친다.
기이한 기세는 만 길 산처럼 높고 奇氣崢嶸萬刃山
삼동이라 현관에 누워 있기 어렵네 三冬不合臥玄關
조정에서 일할 청운의 뜻을 품었기에 長懷魏闕靑雲志
멀리 한양 향해 푸른 숲 헤치며 가네 遠向秦京綠樹間
처자들아, 천 리 이별을 걱정하지 마라 妻子莫愁千里別
공명이 오랜 막힘을 넓힐 수 있으리라 功名能博百年閑
넓은 거리에 장원급제 행렬 펼쳐질 것이고 亨衢早展驊騮步
초라한 우리 집에도 웃음꽃 활짝 피리라 白屋將看解苦顔
기세는 만 길 산처럼 높지만 삼동이기 때문에 현관에서 지내기 어렵다. 조정에서 활약할 포부를 품고 있어 한양을 향해 힘차게 나아간다. 아내와 자식들을 위로하며 청운의 꿈을 펼치길 다짐하며 씩씩한 행보를 시작한다. 공명을 이루면 백 년 동안 평안해 진다고 하면서 자신만만한 기백을 드러내 보인다. 시인은 급제의 영광도 상상한다. 넓은 거리에 장원 급제 행렬이 이어질 것이며 구경꾼들이 칭송하는 가문의 영광을 상상했다.
미래 영광을 미리 상상한 것은 그에게 대과 급제는 필연적으로 이뤄내야 할 과제였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이렇게 되면 가문의 영광을 되찾게 될 것이라며 기뻐한다.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치며 영광의 도래를 만끽한다. 이처럼 그에게 급제는 현실 위기 극복의 절실한 대안이었다. 그러한 절박감이 이러한 영광을 앞당겨 설정해 희열에 빠져들게 한 것이다. 다음 연작시에도 이를 갈망하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이 세상 경영할 포부를 지니고서 天地經綸入算來
어찌 새와 짝하며 춥게 지냄을 슬퍼하랴 寒棲寧伴凍禽哀
연성과 바꾼 백옥은 높은 값을 지녔고 連城白璧懷高價
빈객을 맞이한 황금대는 오랫동안 남았네 迎客黃金有古臺
험난한 조도를 가벼이 채찍 휘두르며 鳥道巉巖輕拂策
꽃 핀 달밤 봉성에서 술잔나누길 기약하네 鳳城花月待含盃
이번 행보에 맹세코 남아의 뜻 이루어 此行誓遂男兒志
하늘이 헛된 재주 부여치 않았음을 보이리라 不是洪勻賦浪才
세상을 경영하는 포부를 지니고 태어나 초라하게 살 수 없다는 기백을 드러냈다. ‘화씨의 구슬 고사’를 인용해 자기의 재능을 알아준다면 신명을 다해 역량을 펼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미래의 밝은 영광을 위해 험준한 현실 위기를 감내해 나가겠다는 의지도 표명하였다. 특히, 금번 과거 시험에 반드시 뜻한 바를 이뤄 하늘이 자기에게 헛되이 재주를 내리지 않음을 증명해 내겠다고 다짐한다. 다음 시도 그런 내심을 보여준다.
겨울날씨 아직 남아 진눈개비 내리나 寒律將殘雨雪饕
곧 낙양에도 복숭아 필 봄날 오겠지 韶光不遠洛陽桃
십 년의 높은 뜻 청하처럼 성대하고 十年奇意靑霞菀
큰 뜻 품은 장정 태양처럼 높다네 一劍長程白日高
아내는 이별로 얼굴이 시름겨우나 家室別離愁菜色
남아는 문호를 크게 떨쳐야 한다네 男兒事業奮椽毫
기러기마냥 황급히 짐 꾸리니 沛然行李同征鴈
하늘가 바람이 깃털을 떨치네 天畔長風拂羽毛
진눈개비 흩날리는 계절에 한양을 향해 다시 길을 재촉한다. 한양에 도착할 무렵이면 봄을 맞겠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십 년 동안 갈고 닦은 기량이 성대하며 지닌 포부가 태양처럼 우뚝하다고 자부한다. 아내는 이별을 염려하지만 남아로 태어나 가문을 빛내는 일이 급선무라며 위로한다. 기러기가 철을 따라 서식지를 떠나듯 자신도 과거 시험을 앞두고 한양으로 길을 재촉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 집안일을 제쳐두고 전력한다는 의지를 보인다.
수줍어 시냇물 거슬러 가느라 지체되니 羞向洄溪翅久睡
멀리 훨훨 날아가는 기러기들 부럽다네 翩翩長擧慕鴻儀
바람 부는데 여윈 말 타니 관산이 멀고 風前嬴馬關山遠
우레치자 숨은 용이 동굴 집을 옮기네 雷後潛龍屈宅移
영예로움을 얻기 위해 이제부터 從此身榮容着手
다른 집안일은 내팽겨칠 수밖에 任他家事付無知
급히 한 곡조 읊어 다리 기둥에 쓰니 狂吟一曲題橋柱
붓 아래 푸른 구름이 벼루에 감겼네 筆下靑雲繞硯池
잡다한 집안 일로 과거 준비에 몰두하지 못한 게 안타까웠다고 술회한다. 공부에만 매진하는 선비들이 부럽다고 한다. 창공을 자유롭게 비상하는 기러기는 곧 그러한 부류임을 은유한다. 여윈 말을 타고 바람 부는 가운데 한양으로 떠나가는 자신의 신세가 보잘 것 없다. 불리한 조건에서 과거에 응해야 하는 자신의 열세를 은유한 부분이다.
하지만 우레가 치고 곧 비가 쏟아질 형색이 되므로 용이 승천할 준비를 하는 것처럼 자신도 대과를 앞두고 한양을 향해 출발한다. 이제부터 집안일을 등한시하더라도 과거 준비에 전념하리라는 의지를 굳힌 것이다. 그 무렵 심경을 이처럼 표현한 것이다. 붓 아래 푸른 구름이 벼루에 감기듯 청운을 향한 포부가 웅장하고 살아 있음을 강조한다. 백운재는 역량이 뛰어났지만 현실 여건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그는 불운을 맞는다.
가는 곳마다 우스운 일만 생기니 到底留連摠可笑
어이하여 가는 길이 이처럼 더딜까 如何行邁故遲遲
아우생각 집 생각 견디기 어려운데 難堪憶弟思家夢
또한 추운 날씨에 눈마저 내리누나 況是寒天凍雪時
이르는 곳마다 우스운 일만 생긴다고 했다. 세상만사가 여의치 못해 안타깝고 속이 상한다. 금번에 급제하리라 기대했건만 다시 실망하는 아픔이 재현된다. 가족과 친척들을 볼 면목이 없고 용기마저 상실된다. 집안을 돌보는 아우와 자신만을 믿고 있는 가족 생각을 하니 절망감과 미안한 정감이 엄습해 온다. 날씨는 차갑고 눈발이 나부낀다. 정미년(1727) 윤7월에 귀가하며 지은 시에도 이런 심정이 토로된다.
한 해의 절반을 서울에 머물러 살다보니 一年强半住京華
부질없이 남아의 예전 베옷만 해졌다네 謾弊男兒舊着麻
푸른 산 강물 따라 옛집을 찾아가는데 靑山綠水尋古屋
복사 살구 곱게 핀 곳이 누구 집이런가 碧桃紅杏耀誰家
양생이 늦게 공부했다고 비웃지 마소 梁生晩禧人休笑
강괴도 끝내 하늘에 오르지 못한 것을 姜怪終登天不可
내게 거친 농장 갈아엎을 힘이 있고 破得荒庄吾有力
입 속의 혀도 아직 살아 있다오 口中耕舌未消磨
한 해의 절반을 한양 유학 생활을 하는데 예전에 입었던 베옷이 낡아짐을 느낀다. 초라해진 자신의 형상이 절로 위축됨을 느낀다. 어쩌면 이에 이르자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돌아가고픈 심정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 시인은 푸른 산과 강물을 따라 고향 집을 찾아간다. 복숭아 꽃 살구꽃이 곱게 핀 시골 오두막이 정겹지만 그 멋을 느낄 여유도 없다.
양생이 늦게 공부했고 강괴가 등천할 수 없었던 고사를 반추하며 자신의 불운을 자위하며 귀향한다. 잠시 무기력감에 빠졌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농장을 갈아 뒤엎을 힘이 있고 입 속의 혀는 살아 있어 여전히 기백은 남아 있다고 하였다. 다음 시에는 체념 의식이 드러난다.
인간 세상 기로가 평탄해짐을 보지 못했으니 人間不見平岐路
천하에 괴로움이 많으나 시비를 등한시하네 天下苦多閑是非
은거하겠다는 약속 지켜 돌아가니 滄洲有約堪歸去
뭇 산이 손뼉 치며 기롱할까 두렵다네 又恐群山拍手譏
인간 세상에 기로가 많아 평탄한 대로만은 아니라고 하며 불우한 신세를 위로해 본다. 온 천하에 괴로움이 많고 시비를 등한시하는 풍조를 언급하며 불우한 자신의 형편을 소개한다. 이전에 고향 산천과 은거하겠다는 약조를 했던 바, 그 약속을 지켜 돌아가니 산이 손뼉을 치며 기롱할까 두렵다. 시인의 은거는 현실 장벽을 초월하지 못한 데서 오는 자기 상실감을 대체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므로 치사 이후 퇴거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자괴감에 빠져 들고 마음도 편하지 않다. 재주가 출중하지만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현실 모순 앞에 그는 좌절을 경험했고 내키지 않지만 어찌할 수 없는 은거를 실행한다. 이러한 그의 행적은 평생 불우하게 살았던 천재 시인 두보의 형상과 부합된다. 때문에 그의 시에는 두보의 시에 차운한 것이 매우 많다. 두보를 추구하는 내심에는 그의 입장이 두보의 형상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곤궁하게 산 두보는 가난 탓하지 않고 杜陵生瘦不緣貧
날마다 근심과 시로 세월을 보내었네 日事愁吟秋復春
어렵고 힘든 시절에 머리털 희어졌고 時際艱危頭變白
자연을 벗 삼아 참된 취미 이루었다네 身隨魚鳥趣成眞
당시 외로운 충성심은 가을빛과 같았고 孤忠一代爭秋色
수많은 아름다운 시구 귀신도 울게 했다네 佳句千編泣鬼神
이백이 강남으로 떠난 이후로 白也江南飛去後
뜻 같이 한 시인은 그 누구인가 騷壇同志更誰人
일생을 곤궁하게 살았던 두보는 가난을 탓하지 않고 날마다 근심을 안고 시를 창작하며 살았다고 술회한다. 힘겨운 세월을 지내느라 머리털이 희어졌고 자연을 벗 삼아 고독한 심리 장애를 극복해 내려고 했던 점을 회상하며 위로의 대상으로 삼는다. 두보가 조국과 백성을 사랑한 시인임을 강조한다. 아울러 자기도 그런 부분을 체득했다는 점을 은근히 드러내 보인다. 특히 두보의 아름다운 시는 귀신도 감읍케 할 정도였다고 했는데, 이 표현 역시 백운재의 시적 수준이 탁월했던 점을 견준 것이다.
이백이 떠난 이후, 두보와 수창의 대상이 없었던 점을 들어 당시 종유했던 인물과의 교류 단절이나 사별로 인한 교유 단절 공백의 허무함과 상실 의식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결국 시인은 이 시를 통해 불우했던 자신의 일생을 천재 시인 두보의 행적에 견주어 투시함으로써 자신의 고민과 슬픈 인생 역정을 반추했다.
8. 백운재의 죽음을 슬퍼하며
백운재의 불행한 죽음은 집안의 큰 상실감으로 밀려왔으며 그를 익히 아는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과 슬픔을 가져왔다. 혈육을 잃은 맏형 정일의 통곡을 보자.
아, 애통하다. 과거 시험이 무엇이란 말인가? 너의 문예(文譽)는 ‘득(得)’이 참으로 몸을 영화롭게 하기에 부족 했고, ‘실(失)’ 또한 참으로 죽을 만한 이유는 아닌데 세속의 분주함을 따르다가 너는 병들어 죽었다. 시종 일념 으로 과거 시험 때문에 끝났으니, 내 어찌 애통하고 탄식하지 않으랴. 과거 시험이 우리 집안과 이렇게도 원수 를 맺을 수 있단 말인가?
정일은 아우의 비운을 애통해 하며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였다. 아우 백운재의 문예에 대한 득과 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점을 언급하며, 아우를 회고하며 애상감을 집약했다. ‘과거 시험이 자기 집안과 철저하게 원수를 맺었다’는 표현을 통해 과거 급제 염원이 그만큼 강렬했다는 점이 반증된다. 이어 아우의 삶을 회상하며 슬픈 마음을 털어 놓았다.
너는 지난 해 가을에 관시(館試)의 행차에 숙부 상기(襄期)가 갑자기 임박함에 따라 돌아오는 길에 걷기도 하고 말을 타고 오느라 매우 피곤하고 야위어 이 때문에 병이 생겼다. 다행히 겨울 동안 뜸을 뜨고 약을 복용하며 조리를 잘해서 큰일은 나지 않았다. 정월의 과거 시험 때 나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병이 더해질까 염려해서 그랬다. 그런데 너는 “선부형(先父兄)과 온 집안의 기대가 어떠한데 갑자기 멈출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며, 또 “제 병은 점점 호전되고 있고 날씨도 봄이 다가오니 말을 타고 떠나면 마음도 맑아지고 묵은 병도 낫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억지로 붙들 수 없어 네 말을 따를 수밖에 없어 권면하는 뜻으로 ‘삼가 과거 시험의 득실을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하고, ‘부디 잘 다녀오라’고 하며 경계시켰다. 망령스럽게 혹여 하늘이 순풍으로 도와 진흙에서 몸을 틀고 있다가 날개를 떨쳐 이번 과거 시험에서 통쾌하게 결판을 내면 몸에서 병을 떨쳐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어찌 병을 지고 몇 달 사이에 갑자기 낭패를 당할 줄 알았는가? 아, 마음이 아프고 아프다.
아우가 여러 악조건에서 급제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당시 백운재는 한양에서 과거 시험 준비에 몰두했지만 숙부의 부음을 전해 듣고 분상하느라 자신의 건강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형은 아우의 건강이 악화됨을 알기에 정월 과거 시험에 응시하지 말도록 만류했지만 아우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혹여 아우의 발신을 통해 묵은 병도 쾌유되며 숙원도 이루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가졌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아우의 지병이 더욱 심해지면서 좌절되었고, 과거 응거 포기로 이어졌다. 이어 애통한 심정은 더욱 깊어진다.
우리 집안은 선조로부터 대대로 유업(儒業)을 전해 오면서 대과(大科)에 원통을 품은 것이 네 번째다. 너는 어려서부터 여러 번 경향(京鄕) 해액(解額)에 여러 번 합격하였고 경전 강론이나 제술(製述)에서나 그 재주와 솜씨는 자유자재였는데, 지나친 칭찬은 싫어했다. 온 세상 여러 사람들 입에 자자하게 퍼져 조만간 공을 이루게 될 것은 손바닥에 침을 뱉어 점을 보듯 하다고 했으며, 모두 선조들이 여러 대 쌓은 보답이 너에게 이르러 크게 드러나 몇 대에 걸쳐 이루지 못했던 한을 조금이나마 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정일은 아우가 탁월한 문예적 재질과 경전 독해 능력을 지녀 과거 급제는 크게 어렵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주변에서도 백운재의 학문적 우수성을 감안하면 그가 조만간 조상들의 숙원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고 한다. 이어 아우의 고단했던 삶을 돌아보며 연민의 정을 털어놓았다.
평생 동안 글을 읽되 거의 침식을 폐했고 추워도 방에 불도 때지 않았으며 더워도 부채를 부치지 않았다. 집안은 더욱 영락해져 갔지만 돌아보지 못했는데 아이들이 비록 외로웠지만 보살피지 않았다. 해마다 과거를 보러 서로 가고 향시를 보러 한 달 건너 서로 가서 삼십 년 만에 늦은 때에 단지(丹墀)에 나아갔다. 여러 번 빈정(賓庭)에서 강석했는데 여음이 조화되었지만 패수의 눈물 흘리며 십여 차례 내왕하였다. 충실한 기백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지만 혈기는 어찌 나이와 함께 쇠하지 않겠는가? 결국 병 한 가지가 말을 타고 가는 수고에서 발생하여 스스로 명을 재촉했으니 너를 해친 것은 글이다. 너를 해친 글이 너로 하여금 병이 들고 죽게 했으니 글 때문에 그러했다. “저 푸른 하늘이여!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당대에 뜻을 얻어 청운의 길로 나아간 자 몇 사람이겠는가? 재주가 반드시 너의 글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아우가 각고의 노력을 했던 점을 회고하였다. 아우는 침식을 폐할 정도로 과거 공부에 전념했다. 물론 가족의 생계는 친척들이 책임을 져주었을 것이다. 백운재로서는 온 집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여기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기회가 될 때마다 회시, 향시, 대과에 응시하였다. 그는 역경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강인한 정신력과 집념으로 필경 대과 급제를 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접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상황들이 그의 건강을 악화시켜 결국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말미의 발언이 주목된다. 체념이지만 당대 과거제 반감과 제도적 모순을 회의한다. 이런 문면에 아우와 사별한 슬픔, 가문의 꿈이 실추된 현실 위기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 등 복합된 감정이 담겨 있다. 이 제문은 아우의 고단했던 삶을 반추하고 슬픔을 담아낸 형제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백운재도 31세의 일기로 요절한 아우 정약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형제의의 애정을 표현한 바 있다. 다음은 백운재 사후, 슬픔을 표현한 류현시의 제문이다.
큰 재주 지니고 낙척한 이 많건만 才大由來落拓多
애석한 그대 궁한 운명 어찌 할거나 惜君無奈命窮何
가을 산 검은 구름 많음을 탓하지 말지니 秋山莫怪陰雲重
원통함이 찬 공중에 엉켜 사라지지 않네 恨入寒空結不磨
넉넉한 재주를 지니고 불운을 겪는 이들이 많건만 그처럼 곤궁한 경우는 없다고 하였다. 이에 그와 같이 탁월한 재주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당한 이도 흔하지 않다는 언지를 덧붙였다. 망자에 대한 정념과 추모 정서를 집약하면서 그의 슬픈 인생을 회고하였다. 그의 심경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쓸쓸한 가을 산을 검은 구름이 휘 감고 있다. 게다가 원통한 기운이 공중에 엉켜 풀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시인은 자연 경물의 특성에 빗대어 망자의 특별한 운명에 따른 연민의 시각을 담았다. 다음 작품 역시 조부의 학문을 이었던 그가 불운했던 것을 한탄하고 있다.
경옥산 유업이 공에게 이르니 玉山遺業至于公
빼어난 기백은 태백산 정기 이었다오 間氣胚胎太白峰
사부로 명성 높아 적통을 허여 받았고 鼓吹楚騷爭許嫡
성현 경전 탐독해 모두 종주로 추앙했네 窮耽聖傳共推宗
연못의 용처럼 승천하길 기대했건만 惟期澤窟龍爲起
오막 집에서 궁하게 살다 마칠 줄이야 誰爲蔀屋蠖以終
명정에 성균관 진사 이름만 남아 丹旐謾題司馬號
고개 돌리니 눈물이 가슴을 적시네 不堪回首淚沾胸
경옥산장에 은거했던 경옥 이보의 학문 전통이 손자 백운재에게 이어졌음을 강조하였다. 때문에 손자가 조부의 중한 문재를 이어 사부(詞賦) 창작에 탁월한 성취를 보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성현의 경전을 탐독해 추앙을 받았다. 모두 그가 연못에 웅거해 있다가 등천하는 용처럼 비상하길 기대했지만 궁벽한 신세로 그칠 줄 몰랐다며 탄식을 발했다. 펄럭이는 명정에 쓰인 진사 명함을 보니 새삼 슬픔을 감출 길 없다. 다음은 김명석이 망자를 추모한 글이다.
성균관 유생으로 태학에서 유학하다가 太學儒生遊太學
병을 안고 돌아오니 백발이 되었네 歸來抱疾白紛如
평생 충심은 작은 행적으로 드러났고 一生忠悃宜微行
종신 성실했던 마음 글에 남아있네 到死誠心只在書
경전과 제술 훌륭하나 곤액을 당했으며 經述已成身困厄
재능이 훌륭했지만 집안은 텅 비었네 技能雖富室空虛
선을 행한 자 종국엔 다복할 줄 아니 卽知爲善終多福
여러 아들이 그 복을 받길 기다리세 留待諸郞食有餘
백운재의 성균관 유학 생활을 회상하면서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병을 안고 귀향한 불운을 담아내었다. 백운재가 평생 충심으로 일관하여 성실했던 행적이 그가 남긴 시문에 그대로 남았으며, 그가 경전과 제술에 능통했지만 곤액을 당해 애처롭다고 했다. 집안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를 잃은 온 집안의 상실감이 그만큼 크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작가는 백운재의 선행은 후일 자손의 발복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스스로 위로한다. 지인과 친척들은 그의 인생을 돌아보며 이렇듯 애틋한 심정을 토로하였다. 이처럼 백운재는 문학적 재능이 특출하고 경전에 능통했지만 여건이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지 못해 결국 어려움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한 점이 모든 이들에게 고통과 슬픔을 안겨 주었다.
9. 맺음말
백운재유고는 백운재 이정신의 행적이 집약된 문집이다. 이는 일부 산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시와 제문, 애사 등으로 편집되어 있다. 그의 시문이 온전히 보전되지 못한 채 일부 전해지는 시를 중심으로 편집했고 오탈자 및 벽자가 많아 난해한 부분도 있다. 그는 가학을 통해 퇴계의 학문을 전승했으며 유교 경전을 비롯한 제자백가를 두루 섭렵하였으며 문예가 출중하여 중망을 받았다. 백운재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성실하게 공부했다. 하지만 그는 신병으로 대망을 이루지 못한 채 5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백운재가 남긴 시문을 통해 당대 과거제의 명암을 파악할 수 있다. 그는 재주가 특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급제로 발탁되지 못하는 모순 현실 앞에 좌절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도전을 시도했지만 건강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이로써 그를 아끼던 모든 이들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 주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을 애석해 하는 많은 이들이 제문과 만사에서 아픔과 슬픔을 토로하였다.
그는 경옥의 손자로 그가 남긴 문예적 성과는 시를 통해 파악된다. 그는 조부의 문예 취향을 계승하여 문학적 정감이 담긴 시를 많이 남겼다. 그의 시에 농촌 경물과 농가의 일상이 핍진히 그려져 있다. 백운재는 사실주의 작가로 손색이 없다. 이와 함께 그는 유교 의식을 발판으로 한 영사회고시를 남겼다. 어려서부터 체득한 유교적 소양과 해박한 경전 지식은 그를 유자 의식을 기초한 시인으로 성장케 하였다. 그래서 성리 철학 사유가 깃든 시와 역사 회고 정서 및 감계 의식이 담긴 영사회고시를 창작했다.
성균관 유학과 한양 생활을 하는 동안 여로와 향수의 서정을 다룬 시가 많다. 그는 늘 타향에서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고 과거 급제를 열망하였다. 그의 이러한 염원이 시를 관류하고 있다. 이와 함께 현실 장벽 앞에 좌절하고 번민하는 내적 고민과 애절한 감정도 투영되어 있다. 그의 시에는 두보 시에 차운한 것이 많다. 그 이유는 그의 처지가 두보의 행적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불우했던 천재 시인 두보를 표상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반추했던 것이다.
그는 영남 남인의 실각 시대에 태어나 타고난 재주와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인물이다. 그는 퇴계의 학문을 직접 배운 학천, 증조부 개곡과 조부 경옥이 퇴계학 전개 과정에서 그 의의를 확보한 인물인 만큼 백운재의 문예 성과와 경전 강론 활동 업적도 이와 연계하여 평가되어야 한다.
【참고 문헌】
訥隱集(李光庭 : 1674-1756)
江左集(權萬 : 1688-1749)
慵窩集(柳升鉉 : 1680-1746)
壺窩集(柳顯時:1667-1752)
懶拙齋集(李山斗 : 1680-1772)
鶴川集(李逢春 : 1542-1625)
開谷集(李爾樟 : 1594-1650)
景玉集(李簠 : 1629-1710)
白雲齋遺稿(李庭藎 : 1685-1738)
莊子, 史記, 戰國策, 後漢書, 三國遺事, 春秋左氏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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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원걸, '백운재 이정신의 삶과 시문학', [안동문화] 제21집, 안동문화원,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