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我的初生日(첫돌잔치)
태어난 지 6개월 정도 된 어린 아이가 무공을 배운다고 가정하자. 다행히 어린 아이는 글을 알고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나 혈도는 아직 완전히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은 상태이며 근육은 발달되지 않았고 골격도 굳어지지 않았다. 쉽게 말해 서지도 못하고 기어 다니는 것이 고작이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고 외공을 단련하는 것도 어림없는 상태이다. 그렇지만 이 아이는 반드시 무공을 배워야만 했다.
이것이 내가 처해있는 상태였다. 한마디로 말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배우고자 하는 무공이 바로 무림의 최고급 3대 내공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이 동네 용어로 말해 달마대사나 장삼봉 도사도 불가능한 노릇이다. 하물며 날나리 고등학생 강무태가 환생한 유세엽이 해내기에는 터무니가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내게는 태창허음이라는 지독한 선천성 질환이 있었고, 이를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이 이것이기 때문에 살고 싶다면 하지 않을 도리 또한 없었다(나는 한국인이다. 한국인은 몸에 좋은 것은 무엇이든 먹고 해낸다! 하물며 몸에 좋은 정도가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한 것이라면......)
나는 무림의 삼대 내공이 꽤 간단하게 구성되어있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었고, 동시에 내 신체 조건으로는 도저히 이를 완전히 몸에 체득할 수 없다는 것도 간파할 수 있었다.
내공구결은 정말 간단하다. 익히는 것도 쉽다. 심지어는 360개의 대혈의 이름을 다 외울 필요도 없다. 그림에 그려진 대로 호흡만 조절하면 된다!
문제는 그 호흡의 방법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천상무상심법은 백회에서 몸의 앞에서 뒤로 호흡이 일주한다.
은성심경은 단전에서 시작해서 좌회전 한다. 태음진기는 족심에서 시작해서 백회로 우회전 한다. 이 짓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것이다. 아직 똥도 자기 손으로 못 닦는 어린 아이가 말이다.
무림의 영웅호걸들도 가능하다면 두 가지 이상의 내공법은 익히려 하지 않는다. 하나의 내공을 본능처럼 사용하는 상태에서나 다른 내공에 도전하는 법이다. 그런데 내공이라고는 병아리 오줌만큼도 없는 내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익혀서 완전히 습득해야만 하는 것이다!!!
조부인 설중파는 내 체질의 변화와 함께 또 하나의 기이한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말하자면 내가 쉰 살 정도가 될 때까지 살아남는다면 이 엄청난 조기교육의 덕분으로 내 내공은 반박귀진의 경지에 달하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우화등선해버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이다.
"소림의 장문인 각해선사께서 드셨습니다."
청아한 목소리로 길게 소개를 하는 사람은 말하자면 내 숙부가 되는 유삼식이야. 나로서는 우선 삼식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고, 유삼식의 족제
비 수염도 마음에 들지 않아, 서른도 안 된 녀석이 수염 기르고 어른 흉내 내는 것은 어쩐지 보기 싫은 일이거든, 삼식씨도 내가 자기 가까이만 가면 수염을 뽑으려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가능한 내 근처에는 오지 않으려 하고 있지......
소개를 받은 사람, 각해선사는 물론 전날 밤에 와 있었는데 소개 방식상 "드셨습니다."가 표준으로 되고 있어, 웃기는 예법이지.
늙은 중, 각해선사는 의자에서 일어나서 내 앞으로 걸어왔어. 나는 딱딱하고 붉게 칠한 거대한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장시간 대기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거대한 기저귀를 찬 상태였다고......각해선사가 인사를 했을 때는 식이 진행된 지 3시간 가량 - 1시진 반 가량 - 이 지난 상태였고 이미 큰 볼일을 한번 보았기 때문에 엉덩이가 대단히 찜찜한데다가 3종류의 내공을 동시에 돌려대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무지 무지 좋지 않았지,
"선재 선재 선재, 이런 화창한 봄에 무사히 탄신 1주년을 맞게 된 소공자의 해맑은 모습을 뵙게 되니 무림의 홍복이라고 할 수 있소이다. 경하드리오. 소공자."
대덕고승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데 나도 답례를 해야 되지 않겠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뻐꾸기를 먹여 주었지 ㅋㅋㅋㅋㅋ
각해선사는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노망이 났는지 환한 미소를 짓더라구,
"과연 대종사의 후예! 이 늙은 중은 감읍했소이다. 과거 부처께서 세상에 도래하셔서 집게 손가락을 높이 들어 올리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그런데 소공자께서는 이 늙은 중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이셨구려, 이는 필히 무림천하를 말하는 것이며 무림천하에서 자신은 가장 높은 봉우리가 되어 천하를 평안하게 만들 것이라는 의지의 표현, 늙은 중, 정말로 감읍했소."
전혀 내가 의도했던 상황이 아니었어. 내가 멍청한 얼굴로 사태파악을 하는 동안 소림의 까까중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내 발치에 일제히 꾸러미들을 내려놓았어.
"장백산에 기별을 넣어 채취하게 한 천년하수오와 천년산삼을 이제야 겨우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천산연맹주, 소공자의 태창허음에 도움이 될지 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돈이 없는 절간에서는 이 정도만 할 수 있었습니다. 이토록 영명하고 잘생기신 소종사를 보니 이 늙은 중......"
소림파의 장문이 눈물을 뚝뚝 떨구는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장로석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각해선사의 손을 잡고 함께 흐느꼈어. 정말 찡하더군, 누구는 똥을 무더기로 싸놓고 엉덩이가 짓물러 불편해 죽겠는데 이 딴 일로 시간이나 죽이고 말이야. 태창허음으로 죽기 전에 똥독에 올라 죽게 생겼단 말이야!
"똥! 똥이야!"
난 의자위로 벌떡 일어나서(하하 이제 서서 걷는 것도 할 수 있지롱......) 양손으로 뻐꾸기를 날려 보내며 고함을 쳤어. 꽤 귀엽게 들렸을 거야. 내 목소리가 한 앙증하거든,
황당해진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집중했지,
"이 녀석 두아야! 대체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이냐!"
어머니 설숙영이 뾰족한 목소리로 외치자 아버지 유기영의 눈초리도 사나워졌어. 할아버지는 담담한 눈빛이었는데 소림의 승려들은 일제히 서로를
바라보고 웅성대더군, 방장인 각해 늙은 중이 다시금 나를 바라보더니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어.
"과연, 선재, 선재, 부처님의 은혜로다. 아미타불, 그렇소이다. 소공자. 비록 무림의 영약으로 진기한 물건들이라 하나 부처님의 눈으로 본다면 모두 똥이나 다름없소. 이번에는 두 개의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였으니 이는 스스로 정파와 사파 모두를 아울러 지옥에서 부처님이 될 거라는 지장보살의 뜻을 펼쳐 보이시겠다는 뜻이 아니겠소? 노승, 정말로 감음 했소이다. 오늘 소공자의 위풍당당한 풍모를 보았으니 이제 내일 죽어도 한이 없소이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마지막의 아미타불은 모든 소림파의 승려들(한 스무 명은 온 것 같은데......)이 따라 해서 아주 웅장하게 울려 퍼졌어. 난 어이가 없어서 다시 의자에 앉았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너무 좋아서 입이 찢어질 것 같더군, 나도 덩달아 기분이 약간 좋아졌지, 잠시 참기로 했어. 그러고 보니 유모들에게 기저귀를 갈아 입혀 달라고 해야 할 것 같았어. 하지만 지금 그렇게 되면 소림파의 방장이 헛소리를 한 게 되니까 잠시 참았다가 하기로 했지. 소림파가 물러간 다음 붉은 융단 위에 놓여있던 산삼과 하수오들도 하인들이 창고로 가져갔어. 좌석 배치는 나를 중심으로 좌우로 되어 있었는데 왼편에는 천산파의 고수들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손님들이 있어.
각해선사 옆에 있던 도사는 바로 무당파 장문인인 수운도사라는 늙다리였는데 우습게도 대머리 도사란 말씀이야. 뚱뚱하고 혈색이 좋았어. 이 도사는 말 재주가 좋더군.
"이토록 기쁜 날 정말 잘생기시고 출중한 아름답기까지 한 소공자님의 존안을 뵙게 되어 영광이올시다......연맹주께서는 용맹 정의롭고 대부인께서는 미모 출중하시며 너그러워 연맹의 모든 문도들은 나날이 축복 받은 삶을 살고 있으며 태상장로께서 아직 정정하셔서 젊은이의 풍모를 보여주고 있으니 가히 태평성세라 할 수 있겠습니다......"
크아, 정말 아부에 일가견이 있는 도사 아니야? 게다가 선물도 정말 눈이 돌아갈 만큼 근사한 걸 가져왔더군, 아주 작지만 멋진 단검이었어.
"이 단검은 우리 도련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운철과 정금 정강을 벼려서 만든 것으로 쇠를 무처럼 자르고 돌을 두부처럼 꿰뚫지는 못하더라도 도사의 부적을 사방에 새겼으니 능히 도적을 막고 좋은 일만 가져올 것입니다. 이외에도 문도들이 십시일반으로 추렴하여 진기한 약재와 비급, 보물들을 좀 가져왔으니 잘 받아서 유용하게 써주십시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머리 도사와 눈인사를 나누었지,
어쩐지 친하게 지내고 싶은 인물이었거든, 무당파가 끝난 다음에는 아미파가 나왔어. 알겠지만 여자 중들만 있는 집단이지,
가장 앞에 나온 것은 꼬장꼬장하게 생긴 늙은 여중이었어.
"아미파의 대성신니께서 나오셨습니다."
숙부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내 앞에 서 있었어. 늙은 노파가 말이지, 눈빛 하나만은 정말 날카롭더군,
"아미타불, 도련님의 풍모는 이미 소림파를 감동시킬 때 아미파를 감동시켰소이다. 이 늙은 여중은 그러나 속세의 사람이 아니라 도련님께 드릴 물건이 없소이다. 다만 고이 키워왔던 사매들을 빌려드릴 터이니 소중하게 대해주시오."
딱딱한 얼굴에 딱딱한 말투로 뇌물도 없더군, 난 혀를 차려다가 늙은 여중이 가리키는 방향에 서 있는 머리를 깎지 않은 귀여운 소녀들을 보고는 침을 삼키고야 말았어. 열 셋이나 되었을까? 승복을 입었지만 그 귀여움과 깜찍함을 감출 수 없겠더라고, 두 소녀는 재빨리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내 앞에 절을 올렸지.
"소녀 매화와 난초 성심 성의껏 소공자를 보필하겠으며 충성을 다하겠나이다."
매화 난초 쭈우우우았어!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서로 다르면서도 한결 같은 깜찍함, 난 속이 불타올랐지, 흐흐흐흐흐, 좋아. 좋아. 십 삼 년만 기다려라 어쩌면 십 년만 기다리면 될 거야......그날이 되면 그 날이 되면 ㅋㅋㅋㅋㅋㅋ 어찌되었건 내색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의자에서 일어나서 공손하게 인사를 했지 남녀관계는 첫인상이 중요하거든, 내가 인사를 하자 사람들이 웅성거렸어.
"두아야! 어찌 어른께는 인사를 올리지 않고 어린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는 게냐!"
어머니가 뒤쪽에서 낮은 목소리로 호통을 쳤는데 아미파의 늙은 여중은 도리어 미소를 지었지.
"역시, 선재로다. 선재, 도련님께서는 사람의 고하를 무시하며 오직 정성으로 사람을 대하고 아랫사람을 윗사람처럼 대하니 장차 무림의 훌륭한 영도자가 될 것입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니 늙은 여중에게도 인사를 해야겠더라고,
그래서 조금 뻣뻣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어. 여중도 내게 다시 고개를 숙였고 말이야.
사람들이 박수를 치더군, 박수를 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야. 우리 문도들도 나와서 내게 축복을 하고 선물을 바쳤어. 우리문파의 장로들이 인사를 하고 선물을 주고 나서야 구파일방의 다른 장문들이 선물을 주었지.
내게 선물을 주는 순서가 말하자면 정파무림의 세력 순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 연맹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을 거야. 아래로 갈수록 선물의 품질이나 아부의 크기가 커져만 갔어. 역시 이 동네에서도 작은 애들은 큰애들에게 빌붙어서 살 수 밖에 없을 테니까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해.
나는 적당한 시점에서 계선향을 꼬집어서 기저귀를 갈고 옷을 바꿔 입었어. 기분이 한결 나아진 상태에서 아랫것들의 인사를 받았지. 가끔씩 지루하게 하는 놈들에게는 인상도 써주고 말이야. 시간은 이미 해가 뉘역뉘역 넘어갈 무렵이었어. 계절은 5월, 내가 처음으로 이곳으로 넘어와서 설숙영을 통해 태어났을 즈음이었지. 감개가 무량하더군,
기어 다니지도 못하고 오직 낼 수 있는 소리는 "응애" 뿐이었던 시절을 생각하니까 말이야. 그리고 한국의 부모와 친구녀석들도 생각이 났어. 철딱서니 여동생도 떠올랐고......
생각을 말아야지, 그리움이라는 건 마음이 편해지면 더 심해지는 것 같아. 혜미도 생각이 났지 사실 혜미 생각이 가장 커......
내가 사색에 잠겨있을 때 숙부인 유삼식은 지루한 소개 일을 마무리 하고 2차(정파 무림 영웅 중에도 술과 여자 좋아하는 인사들이 꽤 되거든)를 준비
하던 차에 기겁할 만한 소리를 들었던 거야. 부하에게 귓속말을 듣고 사색이 된 그의 얼굴이 내 눈에도 띄더라고, 그는 곧장 아버지에게 다가가서 속삭였고 다시 어머니에게도 속삭였지, 아버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숙부에게 멋들어진 손 신호를 보냈어.
숙부는 믿겨지지 않는 다는 듯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아버지가 다시 한 번 손 신호를 보내자 대기하고 있던 부하를 불러 속삭였지. 숙부의 하는 짓이 워낙 수상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숙부에게 집중되어 있었어.
"에, 그렇다면 만장하신 무림의 영웅호걸 동도 여러분, 이번의 축하손님은 바로 음......그러니까 거시기......"
삼촌은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배어 있었어. 그걸 닦고 다시 입을 열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 분위기였지.
"대체 무슨 손님이신가요? 정기당주(精氣堂主)?"
입을 연건 어머니 설숙영이었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생김새에 비해 꽤 터프한 여성이라 답답한 건 참지 못하거든,
"네, 대부인, 그러니까......"
"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
삼촌이 무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요사스러운 여자의 웃음 소리가 울려 퍼졌어. 그냥 요사스러운 건 아니고 폐부를 찌르는 듯한 압력이 느껴진달까?
사람들이 수근 댔고 나도 기이하게 생각했지, '대체 어떤 뇬이 겁대가리 상실하고 천산연맹 소공자님의 탄신일에 상스럽게 웃어대는 거지?'
"냉혈자객문의 문주이신 빙환혈사(氷幻血蛇) 모부용님께서 천산연맹의 대공자이신 유세엽 공자께 문안드립니다!"
이번에는 꽤 젊은 남자의 음성이었어. 하나가 아니고 여럿인데 동시에 내는 소리가 마치 한 사람이 내는 듯 정갈하고 단아한데 역시 은근한 압력이 느껴지고 있었지.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