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칼국수
유해용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통원치료차 충주건대병원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점심으로 아내가 칼국수를 먹고가자고 했다. 나는 아침 먹은 것도 아직 소화 안되었다고 했더니, 아내는 그냥 어머니 처방전을 주며 약을 타오라고 했다. 처방전을 가지고 가 가까운 약국으로 가서 약을 타오니, 아내는 먼저 날치주먹밥을 시켜놓아서 함께 먹으라고 했다. 아내는 주먹밥을 먹기 좋게끔 어머니 앞에는 작게 만들어 놓았다. 중간 크기의 주먹밥도 있었다.
어머니는 두 점 쯤 집어 드시고, 아내도 몇 점 먹더니, 나더러 다 먹으라고 해서 은근히 한 두 점을 집어먹다가 맛있기에 아내가 조금 먹고, 대부분은 내가 거의 다 먹었다. 그리고 조금 후 10여분이 지나자, 또 아내가 주문한 칼국수와 비빔국수가 나왔다. 아내는 비빔국수를 시켰고, 어머니에게는 칼국수를 시켜 드리신 거였다. 내 것도 칼국수로 주문해 놓은 터였고….
사실 나의 어린 시절에 어머니께서 칼국수를 많이 만들어 주셔서, 먹었기에 나는 칼국수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주문한 국수를 작은 그릇에 담아 엄마에게 덜어 드렸다.
아아! 나의 어린 시절 그 국수를 만들기 위해 집엔 큰 안반과 홍두깨가 있었다. 일곱 식구가 먹을 밀가루를 가져와서 콩가루와 알맞게 섞은 뒤 큰 양푼에다 담아서 물을 부은 다음 잘 어우러지게 반죽을 계속 이기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안반을 가져와 국수 반죽을 달라붙지 않게 밀가루를 뿌려가며 홍두깨로 문질러 밀었다 당겼다 하니, 방안의 밀가루 속포대를 보자기 삼아 넓게 펼쳐놓은 위로 손오공의 요술봉처럼 얇으디얇은 반죽이 쭉쭉 커져가는 게 아닌가.
우리 2남 2녀 형제자매는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아주 신기하였다.
오! 드디어 큰 둥근 모양의 반죽이 만들어졌다. 다음은 어머니가 긴 밀가루 반죽이 달라붙지 않게 밀가루를 뿌린 뒤, 여러 겹으로 접은 뒤엔 부엌칼을 가지고 와서 칼로 토막토막 가늘게 써는 것이다. 마치 한석봉 어머니 떡 자르는 솜씨처럼, 어머니께서는 길다랗게 국수를 완성시켜 놓으신다. 처음과 끝의 양쪽 국수 꼬다리 부분은 남겨두곤….
맞다. 우리는 국수 꼬다리 부분을 특히 기다린 거였다.
그래서 조금 기다리다보면 어머니는 국수 꼬다랭이를 불에 구어서, 우리에게 먹어 보라하는 것이다. 호호호 불면서 고소하고 바삭거리는 밀가루로 만들어진 국수꼬다랭이를 먹었던 일이 56~58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가마솥엔 물을 부어 감자를 큼직큼직하게 썰어넣고 이어 고추, 마늘의 양념을 골고루 잘 섞어 넣고 육수를 펄펄 끓인 후에 조금 있다가 국수를 골고루 풀어 넣는다. 대파 썬 것. 애호박을 자른 것은 국수를 넣은 뒤에 넣어준다. 국수는 중간중간 젓가락이나 주걱 등으로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잘 저어가면서 끓여준다. 이렇게 해서 부엌의 가마솥 안에선 칼국수는 먹기 좋게 익는 것이다. 마침내 뜨겁게 만들어진 진짜 칼국수를 어머니는 제각기의 그릇에 담아 주셨다. 싱거울 수 있으니 숟가락에 간장을 조금 떠서 자기가 먹을 그릇에 담아 잘 풀어주라 하셨다. 이렇게 하여 다 익은 국수를 후후 불어가며 얌냠 찹찹 맛있게 먹었었다.
먹을 양식이 귀했던 유년기 시절은 이렇게 국수를 만들어 먹었던 일 또는 수제비를 빚어서 만들어 먹던 일이 귀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국수와 함께 제일 많이 먹는 음식은 역시 보리밥이었다. 요즘이야 일 년에 한두번 보리밥을 추억 삼아 먹으러 식당을 찾지만, 보리밥이 나오면 반찬으론 파란 고추에다가 빨강 고추장과 된장이 있었다. 나는 그 보리밥을 고추에다가 고추장이나 된장을 푹푹 찍어가며 맛있게 밥을 먹은 반면, 내 아래의 다섯 살 차이가 나는 어린 남동생은 반 공기도 못 먹고 남긴 기억도 떠오른다. 그리고 드물게 조가 섞인 조밥에다 감자 몇 알이 섞인 조감자밥도 맛있게 먹었다.
어머니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버지와 결혼한 이후에는 고생도 많이 하셨다. 나의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다섯 살 무렵 일찍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할머니와 함께 산에 가서 연약한 몸으로 무거운 나무짐도 자주 해오셨다고 하셨다. 기차가 지나가는 조그마한 산비탈을 밭으로 개간하여 감자와 콩을 심기도 하셨다. 또 아버지가 군대에 있을 때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 나를 가졌을 때 입덧도 심하여서 나를 모유도 넉넉지 못하게 먹이셨다고 미안하단 말씀을 하셨다. 그래도 어린 시절에 귀했던 엿이나 사탕을 많이 먹지 않았기에 지금도 치아가 튼튼한 건 아닌가 생각하매 그때의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있다.
돌이켜보면 보리개떡도 귀한 시절 나의 어릴 때 먹던 음식들이야말로 오늘의 건강한 나를 만들어준 귀한 음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