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7. 23
다윈튠스 실험에 동참해 볼까
우리나라는 유난히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그 어떤 나라보다도 대중음악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우리의 대중음악은 다른 국가들보다 접근이 쉽기 때문이다. 음악을 듣는 청중들은 러브송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고 눈물을 짓기도 한다.
어떤 노래가 오랫동안 인기를 끄는 것은 음악 스타일이 대중의 기호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대중을 끌어당기는 유명한 음악가의 곡에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그것만의 색깔과 스타일, 이른바 ‘풍’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물리학자들은 음악에는 이러한 공통적 풍이 있기에 전통음악이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중음악은 실력 있는 작곡가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 하지만 음악을 들어주는 대중이 없으면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없다. 결국 대중의 반응에 따라 음악의 생존이 결정되고 대중의 기호에 맞게 음악이 계속 진화되어 가는 셈이다. 대중에 사랑받는 곡들의 음악적 특징을 객관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면, 음악의 무엇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 또 그 원리를 이용하면 히트곡을 무수히 만들어낼 수도 있다.
작곡가 없이 진화 거쳐 소음을 명곡으로
그렇다면 작곡가 없이 대중의 선호도만으로 음악을 만드는 일이 가능할까? 최근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ICL)의 진화발달생물학과 아만드 르로이 교수와 밥 맥칼럼 박사는 프로그램 ‘다윈튠스(Darwin Tunes)’를 개발해 오직 대중의 선택만으로 대중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 음악은 작곡가들이 악보와 코드를 집어넣어 만들어낸 일반적인 음악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저 컴퓨터 전자음만이 반복되어 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을 듣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어떤 땐 팝송 멜로디처럼 들리기도 하고 또 어떤 땐 테크노 음악처럼 들리기도 한다.
다윈튠스는 8초가량의 간단한 리듬과 선율을 만들어내는 컴퓨터 알고리즘이다. 신디사이저의 비트와 멜로디, 고요한 종소리나 시끄럽게 윙윙거리는 소리, 경고음 등을 무작위로 만들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연구팀은 음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몇몇 천재 작곡가 때문인지 아니면 대중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다윈튠스 프로그램을 사용해 모스 신호처럼 간단하고 단조로운 8초짜리 음원을 두 개 만들었다. 이것을 1세대 음악 샘플이라고 하자.
그리고 두 음원을 합치거나 재조합하는 방법을 통해 무작위 돌연변이를 가진 자손 음원을 만들었다. 이것을 4개, 16개, 64개 식으로 늘려나가 모두 100개의 선율을 만들어냈다. 이 중 20개를 무작위로 뽑아 웹사이트에 올린 후 이를 반복 재생시켜 온라인으로 모집한 6931명의 네티즌에게 들려주고 점수를 매기게 했다. 네티즌들은 샘플을 하나씩 들어보고 최고 5점인 ‘정말 좋아(I love it!)’부터 최저 1점인 ‘도저히 못 듣겠어(I can’t stand it!)’까지 점수를 매길 수 있다.
음악도 생물처럼 번식한다
▲ 다윈튠스 웹사이트(http://darwintunes.org)에 있는 진화 중인 음악 파일.
연구팀은 네티즌이 매긴 점수 가운데 상위 10개에 오른 샘플만을 골라 10개의 소리를 혼합하거나 재조합해 다시 새로운 결과물 20개를 만들어냈다. 대중들에 의해 ‘우수’하다고 판명된 상위 10개의 ‘부모’ 음악 인자들로 다음 2세대 음악인 ‘자식’을 탄생시킨 것이다. 여기에 처음에 만들고 남은 80개의 음악 샘플을 채워 다시 100개의 샘플을 만들었다. 이렇게 100개로 재정비되는 과정은 ‘진화’에 해당한다. 음악이 생물처럼 번식을 하는 셈이다.
그러고 나서 처음과 똑같이 무작위로 20개의 음악 샘플을 뽑아 네티즌의 평가를 받았다. 연구팀은 이런 과정을 총 2513회 반복했다.
진화론을 이용해 무작위로 음원을 조합하여 사람들에게 들을 만한 음원을 선택하고 이를 다시 조합, 선택하는 과정을 반복한 것이다. 이쯤에 이르자 청취자들의 반응이 좋아졌고 불협화음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좀 더 좋은 리듬이 나타났다. 마치 멘델이 완두콩 교배를 통해 우성 형질을 골라낸 것처럼 대중의 선택이 거듭될수록 음악이 진화돼 더 복잡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이후에도 선택받은 음악은 회를 거듭할수록 더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반면 선택받지 못한 샘플은 도태돼 갔다. 3000세대가 넘어갔을 때는 처음 모스 신호에 지나지 않던 음원이 음악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에 드럼 소리를 넣은 적이 없는데도 킥드럼이나 베이스드럼 소리 같은 것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이상 음악 수준이 좋아지지 않고 듣기 좋은 선율과 안정된 리듬을 가진 완성된 음악으로 바뀌었다.
일부 결과물은 현대의 대중음악과 유사한 특징을 보였다. 대중의 선택이 곧 창의력이 된 것이다. 연구팀은 여기까지의 중간 실험 결과를 정리해 미국국립학회보(PNAS) 6월 19일자에 발표했다.
그렇다면 과연 작곡가 하나 없이 대중의 선택만으로 탄생한 음악은 어떤 모습일까. 작곡가의 통제 없이 소음으로부터 3000세대 이상 진화된 곡을 한번 들어보고 싶다면 http://soundcloud.com/uncoolbob/darwintunes-evolution-of-music을 클릭해 보시라.
대중의 힘만으로 창의적 음악 탄생
이번 연구팀의 주 연구 목적은 음악에서도 생물종처럼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작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함이 가장 크다. 그래서 음악에도 자연선택설을 적용해 실험을 했다. 자연선택설은 변이를 보이는 생물 중에서도 주어진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개체일수록 더 많이 살아남아서 자손을 남겨 세대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이다. 연구팀의 연구 결과 음악에서도 자연선택설과 같은 진화 과정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고 수백만 명의 대중이 선택한 결과에 따라 창의적 음악이 생겨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사실을 더욱 확고하게 하기 위해 이후 별도로 다른 실험을 또 했다. 음원이 몇 세대의 결과물인지를 밝히지 않고 사이트에 올려 네티즌에게 점수를 매기게 한 것이다. 결과는 진화 초기의 음원보다 진화를 거듭한 후기에 가까운 음원일수록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는 왜 인기 있는 음악 트렌드가 끊임없이 진화하고 왜 전통음악이 수천 년을 지나도 존재하는지 알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연구팀의 음악 실험은 웹사이트에서 계속 진행 중이다. 네티즌이라면 누구나 다윈튠스 사이트에 접속해 실험에 참여할 수 있고 음원을 다운로드해서 벨소리로 쓰거나 실제 음악을 작곡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김형자 /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