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과 내전(內戰)
삿 19~21장
기억절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중심 사상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을 저버리는 일은 소돔의 그것에 필적하는 도덕적 부패로 이어진다. 이스라엘로부터 이러한 악을 일소하는데는 엄청난 노력과 고통과 희생이 요구되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그 일을 성공시키셨다.
서론
정글의 법칙으로 되돌아감. 정글은 힘에 의해 지배된다. 먹이사슬에서 볼 때 모든 피조물들은 동등하게 창조되지 않았다. 강한 놈은 약한 놈을 잡아먹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계와 신속한 도망이 필수적이다. 재빠른 놈과 죽는 놈, 이 두 종류의 동물이 있을 뿐이다.
인간 사회는 “정글의 법칙”과는 다른 법칙, 곧 사람들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보호하는 법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들도 오직 그 이면에 있는 권위, 곧 법을 어긴 자들을 처벌함으로써 법을 강화시켜 주는 권위만큼 효력이 있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인간 사회의 왕들은 대개 법을 뒷받침하는 권위가 있었다. 이스라엘은 달랐다. 율법은 거룩하신 왕이신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었다. 그러나 “사사” 시대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거절하였다. 하나님도 인간 왕도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법은 그것들을 뒷받침해 줄 인정된 권위를 결여하고 있었다.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6, 21:25) 정글의 법칙에 따라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잡아먹었다.
소돔처럼(삿 19:1~26)
사사기 19장 1절은 미가와 단 지파의 이야기처럼 질서를 잡아 줄 왕이 “이스라엘에 … 없었”던 때에 일어난 새로운 이야기로 시작된다(삿 17:6, 18:1 비교). 앞서의 이야기에서처럼, 19~21장에는 다음 것들이 나타난다. (1) 에브라임의 산지에는 거류하는 한 낯선 레위인(19:1, 비교, 17:1,7~12) (2) 유다 베들레헴(19:1~3, 비교, 17:7~9) (3) 어떤 물건 또는 어떤 사람을 데려오는 여행(19:3, 비교, 18:22) (4) 범행(19:22~26, 비교, 18:17~20) (5) 한 이스라엘 지파가 저지른 불성실(20:12~16, 비교, 18:30,31) (6) 한 지파가 생존하도록 돕기 위한 시도(21:6~23, 비교, 18:1,2,27~29).
한 레위인이 어떻게 기브아에서 위험에 부닥치게 되었는가?(삿 19:11,12, 19:1~24).
답:
<참고> 한 레위인이 부정(不貞)을 저지른 그의 첩을 데려오기 위하여 베들레헴으로 여행하였다. 첩의 아비는 그가 더 참지 못하게 되기까지 계속 그를 머물게 하였다. 떠나던 그 날도 늦게야 떠났다. 그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한 나이 많은 에브라임 사람이 그 사람과 그의 종과 첩을 맞이해 들였다.
기브아 사람들은 비우호적일 뿐 아니라 소돔 사람들처럼 성도착자들이었으며 그들처럼 동성(同性) 강간을 하고자 했다(창 19:4,5 비교).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도 저급하게 되어 소돔 사람들처럼 되었다! 롯처럼, 그 나이 많은 에브라임 사람은 사태의 심각성과 손님을 보호해야 할 자신의 책임을 깨달았다(레 18:22, 20:13 참조). 역시 롯처럼, 그는 비류(匪類)들에게 여자들을 내주어 그들의 욕정을 채우게 하였다(창 19:6~8 참조) 이 이야기에 나오는 보다 의로운 사람들까지도 여성들을 매우 천시하였다는 것은 소름끼치는 일이다!
마침내 무엇이 기브아 사람들을 만족시켰는가?(삿 19:25,26)
답:
<참고> 롯과 함께 있던 두 천사는 소돔 사람들이 그들의 목적을 실행하지 못하도록 저지했던 반면에, 그 레위인은 자신의 첩을 그들에게 붙들어냄으로써 그 비상 사태를 자기 손으로 처리하였다. 그들은 정말 녹초가 되도록 그 여자를 밤새 욕보였다.
범죄에서 내전까지(삿 19:27~20:17)
아침에 그 레위인은 자신의 첩이 보호의 희망을 부여잡기 위해 문지방에 두 손을 얹은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제 그는 무정하게도 일어나라고 명령하였다. 그 여자가 애초에 그를 떠나갔던 일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삿 19:2)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 여자는 죽어 있었다.
왜 그 레위인은 자기 첩의 시체 조각을 이스라엘 전 지역으로 보냈는가?(삿 19:29,30).
답:
<참고> 비록 자신의 첩의 감정에는 동정적이지 않았지만, 그 레위인은 기브아 사람들이 행한 일에 대해서는 격분하였다. 그는 그들을 대항하기에는 무력하였으나, 그의 섬뜩하고 잔학한 “통신”은 정의를 위해 폭넓은 지지를 규합하는 데는 효과적인 전략이었다(삼상 11:5~7 참조).
“정글의 법칙”까지라도 한계는 있었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가운데서 발생한 악을 멸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임할 하나님의 보복이 두려웠을 것이다(여호수아 7장의 아간의 이야기와 비교하라).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하였다.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까? 문제가 너무도 심각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미스바에 전부 모였다. 그 레위인의 증언을 듣고, 백성들은 그 거민들의 행위를 처벌하고자 기브아를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왜 그 레위인과 그의 첩에 대한 이야기(삿 19장)가 성경에 기록되어있는가?
답:
<참고> 성경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취급하시는 방법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죄는 추악하기 때문에, 성경에는 아름답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 만일 사사기 19장의 이야기가 하나님을 섬기노라고 공언한 백성들이 그분으로부터 돌아서게 될 때, 다다를 수 있는 타락의 깊이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그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먼 길을 간 셈이다. 긍정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주님과 그분의 율법과 맺은 우리의 관계, 곧 그분과 다른 인간들과 맺은 우리의 사랑의 관계에 기초된 복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소중히 여김으로써 우리는 그렇지 않았더라면 필연적이었을 도덕적 타락에 빠지는 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고통과 매복(삿 20:18~48)
동시대(삿 20:28)와 유사한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는 사사기의 서두에서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를 대항하는 싸움을 누가 이끌어야 할 것인지를 여호와께 물었다. 대답은 동일하였다. 유다가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었다(삿 20:18, 비교, 1:1,2). 그러나 이번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아니라 동료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적해서 싸우려 하고 있었다.
왜 여호와께서는 베냐민 지파를 대적하는 두 번의 싸움(삿 20:19~25)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하게 하셨는가?
답:
<참고> 방어하는 베냐민 지파는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에 비해 다소 유리하였다. (1) 뛰어난 군사 기술(삿 20:16, 비교, 3:15 - 에훗 또한 유력한 베냐민 지파의 왼손잡이 전사였다) (2) 조정하기 쉬운 보다 작고 보다 응집력이 강한 군대 (3) 보다 좋은 전략적 위치(기브아는 작은 언덕위에 자리하였기 때문임) (4) 그들이 동료 지파 사람들의 생존을 위하여 싸우고 있다는 인식.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유다가 선도를 하도록(18절) 지시하지 않으셨던가? 백성들이 첫 번째 싸움이 끝난 후에 여호와께 물었을 때,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두 번째 올라가라고 말씀하셨다(23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준비 기간이 지날 때까지는 승리하도록 허락되지 않았다. 좌절은 그들로 하여금 효과적으로 금식하고 기도하게 하였으며 그들이 실패한 원인에 대하여 진지하게 묻도록 하였다. 지체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결점과 마찬가지로 교정이 필요한 그들 자신의 품성의 결함들을 지적해 주실 수 있는 기회였다. 그들은 그것에 대하여 매우 효과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으므로 그들 자신의 결점들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들의 형제들을 교정하는 일을 착수할 수 없었다”(본교 성경 주석 2권, 416).
이스라엘 백성은 마침내 어떻게 베냐민 자손들을 패배시켰는가?(삿 20:35, 20:26~48).
답:
<참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번째 패배한 다음에 울며 금식하고 희생을 드렸다(삿 20:26). 그런 다음 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쳐서 파하게 하”(35절)셨다. 기드온의 승리(7장)처럼, 이 승리도 인간의 노력 없이 얻어지지 않았으나, 성공하게 하신 이는 여호와이셨다.
생존자들을 위한 아내(삿 21:1~24)
승리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어떤 곤경에 빠진 것을 알았는가?(삿 21:7, 21:1~4,6).
답:
<참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본래 목적은 기브아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이었다(삿 20:10). 일단 그들이 베냐민 자손들을 패주시키자, 다소 쉽게 이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가열된 가운데 그들은 언제 중단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지 못했다(삿 20:48). 결과적으로 그들은 베냐민 지파를 거의 쓸어버렸다. 모든 여자들은 멸망되었으며 전쟁 중에 도망친 몇 명의 남자들만이 남았다.
아내가 없이는, 남은 베냐민 지파의 남자들이 그들의 지파를 다시 번성케 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찍이 그들의 딸들을 베냐민 자손에게 출가시키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입다의 성급한 맹세(삿 11:30,34,35)와 미가의 어머니의 저주(삿 17:2)에서처럼, 돌이킬 수 없는 발언이라고 생각되는 말의 결과는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곤경을 타개할 어떤 해결책을 찾아냈는가?(삿 21:5, 21:8~24).
답:
<참고> 두 번째 맹세가 첫 번째 맹세로 야기된 문제의 일부를 해결해 주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를 대적하는 일에 그들과 함께 참여하지 않은 자는 누구든지 죽일 것을 맹세하였다. 야베스 길르앗 거민들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녀들을 제외하고 그 성읍의 모든 거민들을 멸망시켰다. 그들은 처녀들을 살아남은 베냐민 자손들에게 아내로 주었다. 성급한 맹세의 신성성을 유지하고 또 베냐민 지파에게 동정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들은 무죄한 부녀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학살하였다! 더 많은 여인들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두 번째 해결책이 고안되었다 처녀들이 실로에서 여호와의 연중 절기에 춤을 출 때, 그들은 그들의 가족들과 다소 떨어지게 되었다. 베냐민 자손들은 그들 중 몇을 탈취하여 아내로 삼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이 야기한 과격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거친 치료법이 요구되었다. 그들의 가족들을 죽이기 전에 그들이 좀 더 일찍이 베냐민 자손들에게 동정심을 나타내지 못했던 것은 얼마나 큰 비극이었는지!
“그 소견에 옳은 대로”(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는 진술은 긍정적인가 아니면 부정적인가?
답:
<참고> 그 자체로서만 볼 때, 사사기의 맨 끝에 반복되는 이러한 발언(삿 17:6 참조)은 중립적일 수도 심지어는 긍정적일 수도 있다. 인간을 다스리는 중심적인 권위가 결여된 상태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그 자신의 도덕적 판단의 명령에 따랐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실패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도덕적 판단이 잘못되었음이 명백하다. 그분은 그들의 왕, 곧 그들이 준수해 오고 있던 율법의 이면에 있는 권위였다. 그러한 준수는 그들을 그들 자신과 서로로부터 통합시키고 보호해 왔다.
“사사” 시대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구했을 때는 다소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 자신의 본능과 논리를 의지하는 대신에 여호와의 지시를 좀 더 자주 따랐더라면, 그들은 무서운 문제들과 잔학한 행위들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사기의 마지막은 사무엘상과 룻기를 미리 지적한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였다. 그의 지도가 끝날 무렵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요구하였다(삼상 8장). 그들은 계속적인 지도자에 대한 그들의 필요성을 인식하였으나. 여호와께 대한 헌신을 새롭게 하는 대신에 인간 통치자를 구했다. 결국 인간의 왕권은 일찍이 있은 지파의 지도자들만큼이나 불행하게 실패하였다. 그러나 궁극적인 성공은 우리의 구원자이자 사사이며 왕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온다(계 5:9~14 참조). 예수님은 “사사” 시대 동안 그 시대의 불충성된 언약과는 현저히 대조적으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충성하기로 한 언약을 지킨 모압 여인 룻(마 1:5)의 후손이셨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법적인 권위가 필요할 뿐 아니라 우리의 성향에도 불구하고(롬 7:14~20)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과 용서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두 가지를 모두 우리에게 주신다! 그분께서는 예수님의 보혈을 통하여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깨끗케 하시며(롬 3:21~26)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에 진실되고 이타적인 사랑을 부어 주신다(롬 5:5). 우리는 사랑의 동기를 가짐으로써 그분의 품성을 반사하는(요일 4:8) 하나님의 사랑의율법과 조화된다(마 22:36~40).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기드온의 승리처럼 인간이 그분과 협력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순종함으로 오는 성공은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연구 · 토의· 요약
연구와 명상
왜 여호와께서는 비록 백성들의 요구가 그들이 여호와를 거절하였음을 나타낸 것일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을 임명하도록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는가? 삼상 8:7,22. 이스라엘의 왕권 제도에 관해서는 엘렌 G. 화잇, 부조와 선지자, 603~608쪽에서 “이스라엘의 첫 왕” 장을 읽어라.
“이스라엘이 최대의 번영을 누리던 시대는 저희가 여호와를 저희 왕으로 승인하던 시대 곧 당신께서 세우신 율법과 정사를 다른 모든 민족의 그것들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한 시대였다. 모세는 여호와의 계명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신 4:6).”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입법자와 능력의 근원으로서 백성들이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기를 원하셨다.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에 그들은 끊임없이 더욱더 하나님께로 가까이 이끌리게 될 것이다. 그들은 향상하고 고상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저희를 당신의 선민으로 부르신 높은 운명에 적합하게 될 것이었다”(엘렌 G. 화잇, 부조와 선지자, 605, 606).
토의 사항
그대는 하나님의 율법을 충분히 평가하고 있는가?
여호와를 그대의 왕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그대의 생애와 예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과 “새 언약”(“신약”)을 맺으실 때를 고대하였는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율법을 그들 속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새기도록 허락하실 것이기 때문에(렘 31:31~34) 그것을 지킬 것이었다. 언제 이 예언이 성취되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분의 율법을 어떻게 내재화시키는가? “새 언약”과 “새로남”의 경험(요 3:5~8; 히 8:10~13)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요약
미가와 단 자손의 이야기와 레위인과 그의 첩과 뒤이은 내전의 이야기를 통해 예증된 대로, “사사” 시대 동안의 무법(無法)은 우상숭배와 절도와 강간과 살인을 포함해서 하나님과 인간에게 저질러진 사악의 모양을 통해 그 자체를 보여 주었다. 개인과 사회가 여호와를 떠날 때, 그들은 악한 성향의 먹이가 된다. 그 결과는 종종 무수한 사람들에게 비극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