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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6. 18
박근혜 레임덕은 약하게, 천천히 올 가능성
⊙ 박근혜 지지기반 堅固, 1998년 이후 처음으로 執權黨이 지방선거 完敗 면해
⊙ 역대 정권 보면 각종 선거 패배가 바로 레임덕으로 이어지지는 않아, 선거 후 대통령 行步가 관건
⊙ 레임덕 피하기 위한 人爲的 노력 별 성과 없어, 박근혜는 반기문과 連帶 통해 레임덕 회피하려 들 수도
6·4 지방선거가 끝났다. 선거 결과는 특정 정당에 일방적 승리를 안겨 주지 않는 절묘한 균형이었다. 세월호 참사라는 대형 악재(惡材) 속에서 새누리당이 예상 밖의 선방(善防)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요인에 의한 설명이 가능하지만 핵심은 ‘박근혜 대통령 레임덕 위기론’이 자리 잡고 있다. 새누리당 후보들은 선거 막판, 경기·인천·부산 등 격전지에서 일제히 ‘레임덕 위기론’을 들고 나와 지지를 호소했다.
남경필 새누리당 경기지사 후보는 투표 이틀 전에 “경기도에서 저 남경필과 새누리당이 승리하지 못하면 박근혜 정부가 아무 것도 못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며 “대한민국 대개조(大改造)를 진두지휘해야 할 대통령의 리더십이 흔들리면,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기 어렵다”고 레임덕 위기론을 제기하면서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서병수 부산시장 후보는 투표 전날 “부산과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읍소(泣訴)했다.
야당은 이런 여당의 ‘레임덕 위기론’은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허구라고 주장했다. 한 진보언론 매체가 “결국 이번 지방선거는 그 결과에 따라 박 대통령에 대한 자극과 경고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레임덕과는 무관하다. 현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심판이 곧바로 대통령의 레임덕과 동의어(同義語)는 아닌 것이다”는 논평을 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로 귀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박 대통령의 레임덕은 사라진 것인가? 분명 이번 지방선거는 향후 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 지난 6월 5일 새벽 윤상현 사무총장이 6·4 지방선거에 당선이 확정된 새누리당 후보들의 사진 밑에 당선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박근혜 지지층 건재 확인
첫째, 1998년 지방선거 이후 16년 만에 집권당이 처음으로 완패(完敗)를 면했다. 그것도 세월호 참사 악재 속에서 일궈낸 결과였다.
선거 결과만 보면 세월호 민심은 여당에 크게 불리하지 않게 작용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친여(親與) 보수층이 선거 막판 무섭게 결집하면서 박 대통령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자는 구호가 먹혀든 것 같다. 결과적으로, 부산에서 서병수 후보가 1.4%포인트, 인천에서 유정복 후보가 1.8%포인트, 경기에서 남경필 후보가 0.8%포인트 차로 신승했다.
둘째,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석패(惜敗)했지만, 기초단체장 선거, 광역의회 선거(지역구), 광역의회 비례구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에 크게 앞섰다.
기초단체장 선거(총 226석)에서는 새누리당 117석, 새정치연합 80석이었다. 지난 2010년 기초단체장 선거(총 228석)에서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이 82석으로 민주당(92석)에 패배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광역의회 지역구 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이 375 대 305로 승리했다. 지난 2010년 선거에서는 252 대 328로 여당인 한나라당이 야당인 민주당에 완패했다. 정당투표에 기초한 광역의회 비례구 선거에서 새누리당 득표율이 새정치연합보다 7%포인트 많았다.
이런 결과들은 세월호 참사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층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서울에서 참패한 이유는?
셋째, 새정치연합은 이길 수 있는 선거를 이기지 못함으로써 당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박지원 의원은 “수도권 핵심 지역인 경기지사와 인천시장 선거에 당력을 집중해야 하는데도 당 지도부인 안철수 공동대표가 자신이 전략공천한 광주 선거 지원에 올인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이 지역에 대한 지원이 약해져 새정연 후보들이 석패했다”고 비판했다.
더욱이 당 지도부가 ‘기초선거 무공천’을 둘러싸고 우왕좌왕하면서 당(黨)의 전통적 지지 지역인 전남북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지원 의원은 “광주(光州)의 무소속 연대 바람이 전남·북까지 강타해 전체 36개 기초단체장 중 15개 기초단체장을 무소속에 헌납했다”며 “이런 (광주 전략) 공천은 안 해야 한다”고 안 대표를 정면으로 공격했다.
넷째, 새누리당 내 비박(非朴) 성향의 유력 대권후보였던 정몽준 후보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완패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문재인 후보에게 3.6%포인트 차로 승리했지만 서울지역에서는 오히려 문재인 후보에게 3.2%포인트 차로 졌다. 안철수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에게 후보직을 양보했던 지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는 무소속 박원순 후보에게 7.2%포인트 차로 패배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만에 치러진 199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최병렬 후보는 국민회의 고건 후보에게 9.8%포인트 차로 졌다.
그런데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예상을 깨고 정몽준 후보가 13.1%포인트라는 큰 차로 패배했다. 다른 수도권 지역과 마찬가지로 선거구도가 양자(兩者)대결 구도였고, 선거 막판에 ‘박근혜 마케팅’이 주효했는데 유독 서울에서만 집권당 후보가 큰 차로 패배한 것은 의외다.
‘강남의 반란’이 주원인이었다. 지난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후보는 강남 4구(서초, 강남, 송파, 강동)에서 약 54%를 득표했고,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같은 지역에서 약 60% 득표했다. 그런데 정몽준 후보는 이 지역에서 49.1%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박원순 후보가 오히려 50.2%의 득표로 정 후보보다 11만502표를 더 얻었다. 이런 강남 선거 결과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강남 지역에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만이 심판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 지역 유권자들은 박근혜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를 했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 강도 높은 세무조사 등 자신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더불어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관피아 척결’도 고위 전현직 공무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강남 지역에서 세종시 선거에서와 같이 대통령에 대한 조직적인 저항이 분출됐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해석은 친박(親朴) 성향이 많은 강남 지역에서 반박(反朴) 성향의 정몽준 후보를 심판한 것이다. 친박 성향의 유권자들은 정몽준 후보가 당선되면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차별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선거 결과로만 보면 강남 지역에서는 ‘박근혜 구하기’가 오히려 ‘정몽준 죽이기’로 나타났다고도 할 수 있다.
만약 전자(前者) 해석이 맞다면 대통령에게는 위험 인자인 동시에 향후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반면, 후자(後者) 해석이 맞다면 박 대통령에게는 위안이 될 수 있다.
레임덕(Lame duck)이란 현직 대통령의 임기만료를 앞두고 나타나는 일종의 권력누수 현상이다. 즉 대통령의 권위나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거나 먹혀들지 않아서 국정수행에 차질이 생기는 현상이다. 임기 말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크게 흔들리는 ‘조기(早期) 레임덕’도 종종 발생한다.
전두환 구속으로 레임덕 극복한 YS
5년 단임 대통령제하에서 선거 주기(週期)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대통령 임기 중에 총선과 지방선거가 치러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런 선거들은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가 되기 쉽다. <표>는 1995년부터 이명박 정부 시절까지 총선, 지방선거, 그리고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이후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당들의 정치행태 및 흐름을 비교·분석한 것이다. 이런 분석을 통해 선거가 대통령의 레임덕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심층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김영삼(YS) 정부 집권 3년차에 실시된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인 민자당은 참패했다. 전체 15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5곳에서만 승리했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민자당은 전체 230석 중에서 70석을 얻는 데 그쳐 84석을 얻은 민주당에 패배했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서울 25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23석을 석권(席捲)했을 뿐만 아니라 수도권 66곳 가운데 민주당은 39석(59.0%)을 얻어 20석(30.3%)을 얻는 데 그친 민자당을 압도했다. 민자당은 자신의 텃밭인 영남지역에서 총 68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34석(50.0%)을 얻는 데 그쳤고 무소속이 47.1%(32석)를 차지했다.
한마디로 대통령 지지층이 붕괴되면서 YS 정부에 대한 불만이 여과 없이 표출된 선거였다. 이를 계기로 김대중(DJ)은 지방선거 후 한 달 만에 정계복귀를 선언했고, 9월에 민주당을 깨고 새정치국민회의(이하 국민회의)를 창당했다. DJ가 이런 담대한 정치행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민자당의 지방선거 참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6·27 지방선거 이후 정국은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JP)이 이끄는 ‘신(新) 3김 시대’가 도래했다.
정치 승부사인 YS는 자신의 레임덕을 재촉하는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1995년 12월 역사바로세우기를 내걸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군사반란·내란죄로 구속하고 5·6공 잔재 청산에 나섰다. 또한 1996년 4월 총선을 맞아 그해 2월에 이회창·박찬종을 영입해서 민자당 간판을 내리고 신한국당을 창당했다.
레임덕을 막기 위한 YS의 정치실험은 성공했다. 4월 총선에서 신한국당은 DJ 국민회의와 통합민주당으로 분열된 야당을 격파했다. 신한국당은 총 253개 지역구 의석 중 121석(47.8%)을 차지해 국민회의(66석)와 통합민주당(9석)을 이겼다. 무엇보다 신한국당은 서울지역 47개 지역구에서 27개(57.4%)를 석권, 수십 년 만에 여당이 서울에서 야당에 승리했다.
그러나 집권 말기 해인 1997년 1월 노동법 파동과 2월에 터진 한보사태, 그리고 비리 혐의로 차남이 구속되면서 YS는 현격하게 레임덕에 시달렸다.
DJ, 아들 비리로 급속한 레임덕 빠져
DJ의 경우는 좀 달랐다. 새 정부 출범 4개월 만에 치러진 1998년 6·4 지방선거에서는 김대중·김종필(DJP) 공동정부는 승리했다. 이를 계기로 김종필 총리가 ‘서리’ 꼬리표를 떼고 정식 총리로 취임했다.
하지만 그해 7월에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국민회의는 의외로 패배했다. 한나라당이 전체 7곳 중 4곳에서 승리한 반면 국민회의는 2석을 얻는 데 그쳤다. DJ는 이런 패배를 극복하기 위한 승부수로 그해 8월 국민회의와 이인제의 국민신당 통합에 합의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재·보선 승리에 힘입어 지도체제를 개편했다. 조순 총재가 물러나고 대선 패배 후 침묵하고 있던 이회창 전 총재가 정치 전면에 복귀했다. 1998년 8·31 전당대회에서 이회창은 55.7%의 득표로 총재로 복귀했다.
DJ의 승부는 집권 3년차에 치러진 2000년 4월 총선이었다. 그해 1월 국민회의를 버리고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해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야당인 한나라당에 패배했다. 전체 227석 중 96석(42.3%)을 얻는 데 그쳐 한나라당(112석)에 완패했다.
DJ는 총선 패배로 전개될지도 모를 자신의 레임덕을 막기 위해 총선 직후인 6월에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집권 말기 해인 2002년 6월 지방선거와 8·8 재·보선에서 야당에 완패하고 ‘홍삼 트리오’라는 조어가 나올 정도로 아들 3형제가 비리에 연루되면서 DJ는 급속하게 레임덕에 빠졌다.
소수(少數) 비주류(非主流)였던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민주당을 집권 10개월 만에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고난이 시작됐다. 노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 선거연합을 깸으로써 조기 레임덕을 자초(自招)했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대통령 탄핵에 분노한 민심에 힘입어 열린우리당은 152석의 과반(過半)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 이후 치러진 각종 재·보선에서 박근혜 대표가 이끈 한나라당에 연패(連敗)했다. 심지어 0 대 40의 패배를 기록하기도 했다.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도 열린우리당은 완패했다. 전체 16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전북 1곳에서만 승리하는 치욕을 당했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대세론이 급부상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당으로부터 조기 탈당(脫黨)을 요구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노 대통령이 임기말 레임덕을 막기 위해 2007년 1월에 원 포인트(one point) 개헌(改憲)을 제기했지만 박근혜 전 대표로부터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말만 듣고 레임덕의 깊은 수렁에 빠졌다.
이명박 대통령(MB)은 지난 2007년 대선에서 531만 표 차의 압도적 승리를 거뒀지만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둘러싼 광우병(狂牛病) 파동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산 소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위력을 보이면서 MB 지지율은 20%대로 추락했다.
‘레임덕=데드덕’
▲ 2011년 12월 22일 청와대 여야대표 회동에서 인사를 나누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한나라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들어가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은 가속화됐다.
새 정부 출범 2개월 만에 치른 2008년 4월 총선에서 MB는 공천(公薦)파동을 일으키면서 당내 비주류이지만 지역과 이념을 가진 차기 유력 대권후보인 박근혜 전 대표와 엄청난 정치갈등을 촉발시켰다. 박 전 대표는 “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면서 MB 공천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MB 공천에 불만을 품고 선거 직전 한나라당을 탈당해 만든 친박연대는 총선에서 14석을 획득하는 기염을 토했다. 총선이 ‘박근혜의 박근혜에 의한 박근혜를 위한 선거’가 돼 버렸다. MB는 임기 중반 세종시 수정을 둘러싸고 박 전 대표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싸움을 벌였지만 패배했다. 큰 틀 속에서 보면 MB는 조기 레임덕으로 시작해 완벽한 레임덕으로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재임 중에 치른 총선, 지방선거, 재·보선 결과를 비교 분석해서 대통령 레임덕과 관계를 살펴보면 주목할 만한 몇 가지 사항이 발견된다.
첫째, 선거 결과가 직접적으로 대통령 레임덕과는 연결되지는 않는다. 비록 집권당이 특정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선거 이후 대통령이 어떤 행보를 취하느냐, 집권당이 다음 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도출하느냐, 야당이 선거 승리 이후 어떤 행보를 취하느냐에 따라 대통령 레임덕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가령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예상외의 패배를 당했지만 그 이후 실시된 7·28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승리함으로써 MB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다시 찾았다. 김대중 대통령도 2000년 총선에서 패배했지만 곧이어 남북정상회담 카드를 통해 사태를 반전시키면서 레임덕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둘째, 5년 단임(單任) 대통령제를 채택한 우리나라에서는 조기 레임덕보다는 임기 말 레임덕이 보편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임기 말에 대통령 친인척 비리와 여당 내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강조하는 유력 대권후보의 등장은 레임덕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이었다. 가령 여당 내 강력한 대권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표는 여당 내 야당을 자임(自任)하면서 정권재(再)창출이 아니라 정권교체를 한다는 심정으로 대선에 임함으로써 정권 말 MB를 곤경에 처하게 했다. 더욱이 임기말 박근혜 전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공천권을 장악하자 대통령의 위상은 비참하게 추락했다.
셋째, 대한민국 대통령은 일단 레임덕에 빠지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이른바 ’데드덕‘(Dead dock) 상태로 간다. 그만큼 모든 언론의 관심은 차기 대선후보에 맞춰지고 집권당마저 대선 승리를 위해 서슴없이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게 된다. 그런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임기 말 대통령의 정치 실험은 예외 없이 실패했다.
早期 레임덕 올까?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을 말해 주는 척도는 20%대를 넘지 못하는 낮은 국정운영 지지도, 대통령 정치적 지지기반의 붕괴, 집권당의 재·보선 참패, 대통령과 여권 내 차기 유력 대선주자와 갈등, 여권 내 차기 대선주자들의 경쟁과 갈등으로 인한 집권당 분열,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 비리 발생 등이다. 이런 것들이 상호 증폭작용을 일으키면서 대통령이 완전히 국정 장악력을 상실하면 이것이 대통령 레임덕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6·4 지방선거 결과의 특징과 현재의 정치상황을 분석해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 가능성은 낮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단 한 번도 지지도가 30%대로 떨어진 적이 없다. 세월호 악재 속에서도 40%대를 유지했다. 선거기간 전후(6월 2~6일)에 리얼미터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7주 만에 하락세를 멈추고 0.9%포인트 상승한 51.8%를 기록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처음으로 반등(反騰)한 것이다. 더구나 박 대통령 대한 지지층은 지역·이념·계층·세대별로 여전히 견고하게 포진해 있다.
인구 지형의 변화로 5060세대의 인구가 2030세대보다 많아졌고, 이들의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충성심은 견고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5개 영남지역 광역단체장은 새누리당이 모두 싹쓸이했다. 이 지역의 기초단체장도 62곳(88.6%)을 차지해 석권했다.
여권에 대통령을 무시하고 조기 대선행보에 나설 만한 ‘미래 권력’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지방선거 이후 한국일보·코리아리서치(6월 6일)가 실시한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1~3위 선두권은 박원순(17.5%), 문재인(13.6%), 안철수(12.2%) 순으로 모두 야권 인사가 차지했다. 4위는 정몽준 전 대표(7.8%), 5위는 남경필 경기지사 당선자(4.7%), 그 뒤를 물러나는 김문수 경기지사(4.3%)가 치지했다. 새누리당 당권 경쟁에 뛰어든 김무성 의원은 3.2%에 불과했다. 이런 여러 객관적 사실들을 기초로 유추(類推)해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조기 레임덕을 피할 수 있을 전망이다.
7·30 재·보선
▲ 2013년 11월 4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화성甲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서청원 의원(오른쪽)이 김무성 의원(왼쪽)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하지만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과 같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을 위협하는 요인들도 분명 존재한다.
무엇보다 미니 총선급으로 치러지는 7·30 재·보선 결과에 따라 정치판이 크게 출렁일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재·보선은 무승부로 끝난 지방선거의 연장전이기 때문이다.
승부처는 보궐선거가 확정된 14곳 가운데 6곳이 몰린 수도권이다. 서울·경기 6곳 가운데 4곳(서울 동작을, 경기 수원병·평택을·김포)은 새누리당이, 2곳(경기 수원을·수원정)은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당선됐던 지역이다. 따라서 새누리당 입장에선 적어도 4곳을 지켜야 ‘수성(守城)’하는 것이 된다. 새정치연합은 수도권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탓에, 3~4곳 이상을 이겨야 ‘설욕’이 가능하다.
관건은 공천이다. 어느 정당이 파열음 없이 경쟁력 있는 후보를 공천하느냐가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던 이정현 전 홍보수석이 이번 재·보선의 최대 승부처인 서울 동작을(乙)에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지만, 그는 출마한다면 자신의 고향인 전남 순천·곡성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박 대통령이 총리 교체, 개각, 그리고 청와대 수석진 개편을 통해 친정(親政) 체제를 구축했는데, 만약 이런 결과에 대한 심판격인 7·30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패배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은 앞서와 같은 여러 요인에도 불구하고 급격히 앞당겨질지 모른다. 더구나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새누리당이 수도권과 중부권 8곳에서 모두 진다면 과반(151)이 무너지는 상황과 함께 박 대통령의 레임덕은 가속화될 것이 분명하다.
둘째, 7·14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누가 당권(黨權)을 잡느냐도 관건이다.
만약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는 김무성 의원이 당선되면 당청(黨靑)관계는 그동안의 일방적 수직관계에서 긴장적 수평관계로 전환될 것이다. 새 당 대표는 2016년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동안 대통령에게 줄을 섰던 의원들이 대거 새 대표에게 전향(轉向)할 수 있다.
지난번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비주류의 정의화 의원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데서 보듯이 당내 최대 그룹인 초선(初選) 의원(78명)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왔다갔다할 수 있다. 재선을 노리는 것이 최대 관심사이기 때문에 그들은 새 대표에게 줄을 서는 것을 당연시 여길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친박의 사실상 해체를 가져오고 박 대통령의 당 장악력은 급속하게 떨어질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승리를 위해 끊임없이 MB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하는 것이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차기를 노리는 김무성 의원은 당 대표가 되면 이런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을 벤치마킹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주요 현안을 둘러싸고 당청 관계가 삐걱거리면서 대통령은 국정 주도권을 상실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심화되면 대통령은 레임덕에 시달리게 된다. 특히, 인사나 주요 국가 어젠다를 둘러싸고 당청 관계가 꼬이게 되면 피해는 대통령이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친박 맏형인 서청원 의원이 당 대표가 되면 당청 관계는 급격한 변화보다 긴장적 협력관계가 만들어지고 대통령의 불안감도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다.
박근혜-반기문 連帶?
▲ 2013년 5월 5일 유엔본부에서 반기문 사무총장과 만난 박근혜 대통령.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이 손을 잡을 수도 있다.
셋째, 야권 대선후보들의 지지도가 급상승하고 대통령이 이들과 심하게 대립할 경우 대통령의 권위와 위상에 흠집이 생길 수 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대통령이 야권 유력 대권후보들과의 사사건건 대립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동할 것이다. 국민과 언론은 현재 권력보다는 미래 권력에 훨씬 많은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박 대통령은 승부수를 던질지 모른다. YS가 이회창을 정치판에 불러들였듯이, 외부 인사를 영입해 기존의 새누리당 예비 대선후보들과 경쟁을 시킬지 모른다.
외부 영입인사로 가장 물망에 오르는 사람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문제는 박근혜-반기문 연대(連帶)가 불공정경선이라는 빌미를 주면 일부 후보들이 새누리당을 탈당하는 상황도 초래할 수 있다. 물론 그 시기는 지금이 아니라 2017년 대선에 임박한 시점이 될 것이다. 이럴 경우, 당은 혼란에 빠지고 대통령 레임덕은 가속화될 수도 있다.
넷째,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이나 어젠다가 국민과 야당의 엄청난 저항을 일으키고 국론(國論)을 분열시킬 경우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이에 맞춰 떨어질 수 있다. 과거 광우병사태, 세종시 수정을 둘러싼, 대통령의 야당과 여당 비주류와의 대립과 갈등이 좋은 사례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은 국가 대개조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그런데 규범적 차원을 넘어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관료를 포함한 기득권 세력의 엄청난 저항이 시작될 것이고 결국 이들 저항세력을 압박하기 위한 사정(司正) 정국이 전개될 개연성이 크다. 이것이 여권 분열과 야권 저항으로 이어지면서 이들이 대통령을 향한 ‘반박근헤 공동전선’을 펼칠 수도 있다.
다섯째, 대통령 친인척 비리 문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박 대통령도 YS와 DJ처럼 엄청난 레임덕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김영란법’이 박 대통령의 목을 죌 수도 있다.
레임덕, 소리 없이 올 수도
지방선거 결과만 보고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세월호 면죄부(免罪符)’를 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통령은 일단 큰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후속대책에 소홀할 수 있다.
총리 임명과 내각 개편 그리고 청와대 개편를 보면 국민들이 기대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이 그 방증(傍證)이다. 오히려 대통령 친위(親衛)체제 강화라고 느낄 정도로 선거 결과에 대한 대통령의 과신과 자만의 표출로 보인다.
대통령 레임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강하게(강도) 그리고 얼마나 빠르게(속도) 전개될지가 관건이다.
현 상황에서 진단해 보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레임덕은 약하게 그리고 천천히 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제 상황이 바뀔지 모른다. 7·30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패배하고,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염두에 둔 비박 성향의 인사가 당권을 차지하며, 국가 대개조와 같은 국가 어젠다가 난관에 봉착하고, 예기치 않은 친인척 및 측근 비리가 발생하면 상황은 급변하게 된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 2기 내각이 국민들이 체감하는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민생경제가 도탄에 빠지며, 북한의 위협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안보를 불안하게 하고, 세월호 같은 비극적인 국가재난이 다시 일어난다면 대통령 레임덕은 아주 강하게 그리고 빠르게 전개될 수도 있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한마디로 박근혜 정부에 세월호 책임을 묻되 기회를 한 번 더 준 것이다. 만약 박 대통령이 이런 마지막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다면 그에 맞춰 대통령에 대한 레임덕도 소리 없이 시작될 수 있다. 국민은 결코 어리석지 않기 때문이다.⊙
김형준 /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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