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오은
2002년 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유에서 유』, 『왼손은 마음이 아파』, 『나는 이름이 있었다』와 산문집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 『너랑 나랑 노랑』, 『다독임』이 있다. 박인환문학상, 구상시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작란作亂 동인이다.
14쪽
모든 쓰기는 결국 마음쓰기다.
46쪽
눈앞에 근사한 답이 가득한 상황에서는 굳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다. 오히려 어떤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을 때, 살면서 쌓아왔던 믿음에 균열이 생길 때, 사람들은 드디어 다르게 보기를 감행한다. 다르게 생각하기를 실천한다.
75쪽
'적바림'은 "나중에 참고하기 위해 글로 간단히 적어둠. 또는 그런 기록"을 뜻한다.
101쪽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포르투갈 시인이 있잖아. 그 사람이 생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나는 포르투갈어로 시를 쓰지 않는다. 나는 나로 시를 쓴다.' 이 말이 내 경우에도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 우리가 한국어라는 뜨거운 공동체 속에 있긴 하지만, 결국은 '나'를 쓰는 거잖아. '나'라는 존재가 바로 언어지.
172쪽
슬픔이 진짜 같은 짠맛이라면 아이스크림은 거짓말 같은 단맛이었다.
(5월 20일의) 오.발. 단 : 얼찬이
오늘 발견한 단어는 '얼찬이'다. 얼이 찬 사람을 떠올리면 뜻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얼찬이는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을 의미하는데, 성년이 되는 일은 어떤 면에서는 얼찬이가 되는 일을 가리키는 것일 테다. 물론 똑바로 박힌 정신을 뽑으려 드는 각종 유혹도 물리칠 줄 알아야 하고, 혐오와 차별의 자리를 비우고 그 자리에 사랑과 평등을 채울 줄도 알아야 한다. 어쩌면 얼찬이가 되는 것보다 얼찬이의 상태를 유지하는 게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얼찬이의 반대말은 얼간이다. 차지 않으면 가버리는 복불복 얼의 세계. 소만처럼 적게 가득차는 방식으로 얼이 차면 가장 좋지 않을까.
책을 읽고
어쩌면 타인의 글을 읽는 이유는 글 속에서 나를 찾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아! (작가와 마찬가지로)나도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나는 이럴 때 이렇게 행동하지 않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생각을 바꾸어 봐야겠다.'등 글을 읽으면서 나의 거울을 만나기도 하고, 나의 오류를 만나기도 하고, 내가 변화해야 하는 지점을 찾아내기도 한다. 안개처럼 모호한 나를 글 속에서 분명하게 찾아내어 똑바로 보게 되는 것이다. 나를 글 속에서 보는 일은 조금 부끄럽다.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은 그 누구에게보다 잔인하고 정확하기에 그렇다. 나는 나를 잘 모르는 채로 살아 왔고 신념이 크게 흔들릴 계기도 없이 지내왔다. 그런 나를 직시하려니 너무나 부끄러웠다.
심리학 책을 지나 사회학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게만 국한된 시선을 나를 포함한 사회로 확장시키는 중이다. 인간은 관계를 떠나 생각할 수 없으니 말이다. 나를 둘러 싼 세상을 더 깊이 파헤치고 나면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와 진짜 나를 드러내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는 '나'로 글을 쓸 수 밖에 없다는 것. 피할 수 없다. 글이 쉽게 쓰이지 않는 건 내 자신이 단단하게 채워지지 않은 탓인가. 아니면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인가. 나를 그대로 드러내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이 글쓰기를 머뭇거리게 만든다.
첫댓글 오늘의 연재 재밌어요 얼찬이 얼간이에 대해 생각하는 중
ㅎㅎㅎ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